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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모아서 하나로 엮을 시간이나 있을까?

5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05
    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2)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6/10/29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6/09/25
    고도를 기다리듯(3)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6/06/01
    개미와 악어(2)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6/03/31
    지도교수(5)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6/03/03
    피톤치드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6/01/13
    겨울비(2)
    손을 내밀어 우리
  8. 2005/12/02
    아스피린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5/11/03
    단풍
    손을 내밀어 우리

노조 게시판에 올린 글

지난 3월 27일에

과기노조와 연전노조가 통합해서 공공연구노조가 출범했다.

그런데 아직 정상적인 집행부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뜬 소문들이 난무하고

의도했건 아니건 동지들끼리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동안의 내 고민도 많았는데

오늘 노조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골치도 아프고, 산오리님 사는 일산에나 가야겠다.^^;;



 

1. 떠도는 말들과 표류하는 노동조합

여기에 떠도는 말들이 넘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도는 소문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누군가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상식으로 보자면, 어떤 사람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이 있을 경우 그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 보면 최소한 균형잡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여기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없습니다. 발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지만 기실 현장 조합원들에게까지도 가지 못하고 상층으로만 떠돌고 있습니다. 떠도는 말들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상처는 깊이 그들의 심장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그 생산자들은 반복해서 그것을 퍼뜨리고 그것이 진실인 양 조직의 안팎을 갉아먹습니다. 조직을 위해서나 그 당사자들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저는 지금 차분하게 그와 관련된 얘기들을 풀어갈까 합니다.


일단 우리 공공연구노조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옛 과기노조와 옛 연전노조가 통합한 것이 3월 27일입니다. 그리고 100일 가까지 지났습니다. 통합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옛 과기노조의 위원장이 중앙위 결정에 따라 복직한 이후 새로 출범한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임원진 선출은 난항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통합 초기의 어려운 과정에서 현장의 간부들이나 조합원들까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면 현재의 조직적 어려움은 상당히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공론을 형성하는 우리 노동조합의 각급의 회의체계는 지금 사실상 마비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한 달에 평균 2회는 열렸던 중앙집행위원회는 5월 29일에 마지막으로 열렸습니다. 임원과 전체 지부장들을 성원으로 하고 있는 중앙위원회는 통합 이후 지금껏 3차례 열렸고, 그나마 3차 중앙위원회(6/21)는 성원 부족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노동조합의 사업은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허구로 밝혀지고 연구현장에서 수년간 묵묵히 일해오던 많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2-3년 내로 대거 해고되는 상황으로 들어서고 있는데도 맞대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내세워 연구현장에 대한 상시적 구조조정계획을 추진하고 있어도 겨우 30여명의 간부들만 집회에 참가할 뿐입니다. 87년 이후 20년동안 민주노조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임하는 우리 노동조합이 민주노총과 공공운수연맹과 그 지역조직들의 지침이나 협조요청에 대해 아무런 호응을 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각 지부마다 발생하는 긴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각 지역의 지부장들이 연대하여 응급처방을 하거나 아니면 사무처 수준에서 간신히 불만 끄고 있는 형국입니다.


요컨대, 우리 노동조합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고민을 털어놓고 동지들과 함께 토론해보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든 견해를 달리 하시는 동지들이든 이 게시판을 통해서 얘기를 나눌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지금 물밑에서만 흐르고 있는 무성한 논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소문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지기를 바랍니다. 게시판이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노동조합을 살리는 풍성한 담론들이 여기에 넘치기를 희망합니다.


2. 저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성우라고 합니다. 옛 과기노조에서 3대와 4대(1996-2000), 6대(2003-2004) 위원장을 맡은 바 있고, 2005-2006년에는 옛 공공연맹(지금은 공공운수연맹)의 사무처장을 맡았습니다. 지난 3월 이후 본부 전임자로 복귀했지만 3월 27일 공공연구노조의 출범 이후 초대 임원선거가 난항을 겪으면서 우리 노조에서는 아직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옛 공공연맹의 청산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서 남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고, 시민참여연구센터의 운영위원장을 맡아서 진행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각종 집회나 투쟁현장에는 당연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이면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는데 당신이 불출마 선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조직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고 질타하는 동지들이 있다면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임원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성우가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위원장이 되려 한다, 사무처장이 되려 한다, 하는 소문들이 임원 선출을 위한 정상적인 소통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맹 사무처장의 임기를 끝내고 우리 노동조합으로 복귀하면서 주변의 동지들에게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더 이상 노동조합 위원장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 좀 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다. 과기노조와 연전노조가 통합하여 조합원 7천여 명의 공공연구노조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운동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기노조가 담당해 왔던 역할을 계승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과학기술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여 과학기술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대정부 투쟁력을 높이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 경험을 최대한 살려 과학기술(노동)운동과 과학기술자운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통합된 공공연구노조의 위원장은 내가 맡을 일이 아니다.”


여전히 제 생각은 위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와 함께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몇몇 동지들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한번쯤 흘러가는 얘기이겠거니 하면서 일축하고 말았지만 제가 침묵하고 있는 두어달 동안에 얘기는 왜곡에 과장을 더하여 이제는 저와 얘기 한번 제대로 나누지 않은 낯선 지부장들까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저로부터 비롯된 것인 양 오해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제 애정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저는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과학기술운동의 영역에서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하면 (상근)부위원장이든, 상설위원회 위원장이든 위원이든, 사무처의 국장이든, 그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맡을 것이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입니다.


3. 공론의 장을 열어 토론을 활성화하자

옛 과기노조의 경험으로 보면 자천 타천의 후보군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집중하여 지금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임원들을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공공연구노조의 임원선거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인 경로를 거쳐서 유력한 위원장 후보가 부상되면 곧바로 그 후보를 음해하고 비방하는 말들이 퍼뜨려집니다. 우리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자유게시판 11386번 게시물(지금은 경선 중)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월 20일에 게시된 이 글의 내용은 “일부 지부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부장을 했고 본부에서 감투까지 썼던 사람이 이번에 또 출마를 하려고 한다던데, 새로운 얼굴 참한 얼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고 특정한 동지의 이력을 은근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이 동지는 지부장 경력 4년째이고, 과기노조 초기에 국장과 부위원장 역할을 반전임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본부의 임원 역할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마치 이 동지가 본부 임원자리에 집착하여 새로운 인물의 출마를 막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별노조의 본부 임원의 역할과 지부의 간부 역할은 현실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위 글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7천여 조합원들의 요구를 모아 우리 노조의 조직적 요구로 만들고,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노동 및 과학기술정책에 맞서 투쟁하고, 79개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장의 사용자들에 대한 교섭과 투쟁을 일상적으로 지휘하는 일은, 참으로 고된 역정이며 상당한 고민과 결단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지부의 간부를 여러 차례 역임하고서도 막상 본부의 간부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하는 동지들이 적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부장을 몇 번 했다거나 예전에 본부의 직책을 맡았다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공공연구노조의 임원을 맡는데 결격사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6월 12일에 있었던 2차 중앙위원회에서는 마지막 안건으로 선관위를 구성하려 했지만 성원 부족으로 유회되고 말았습니다. 중앙위가 유회된 상태에서 현장에 남아 있던 중앙위원들은 초대 임원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공공연구노조 초대 집행부 구성을 위한 소위원회(이하 “소위원회”)>의 활동보고를 들었습니다. 소위원회는 위 11386번 게시물에서 거론된 동지를 위원장 후보로 추천하였고, 현장의 의견들은 추천된 동지를 중심으로 그동안 거론되었던 동지들까지 두루 아울러서 초대 임원진 구성을 할 수 있도록 다함께 더욱 노력하자는 것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게시물이 올라온 다음날(3/21) 열릴 예정이었던 3차 중앙위원회는 아예 성원조차 되지 않아서 다시 선관위 구성은 무산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지부장들이 사전에 의도적으로 중앙위 불참을 조직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참고로 소위원회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지난 4월과 5월, 3차례의 공공연구노조 임원선거공고에도 불구하고 입후보자가 없어서 선관위까지 해산되고 난 후에, 5월 2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임원후보를 발굴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소위원회의 구성원은 모두 6명이고, 과기노조와 연전노조 출신의 중집위원과 중앙위원이 각 3명씩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소위원회에서는 5월 29일 중집위 이후 6월 12일 2차 중앙위 전까지 자천, 타천의 출마예상자들을 인터뷰하고 중앙위원회에 추천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소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후보를 모두 추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위원회의 활동 과정이나 그 동안 지부장들이 자발적으로 가졌던 일련의 공식, 비공식 모임을 통하여 거론된 후보 동지들이 있고, 또 스스로 임원을 하겠다고 나선 동지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흐름들이 공론의 장으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정상적인 집행부를 구성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2007년에 해야 할 교섭, 투쟁, 사업들을 신속하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저는 지금 임시집행부를 맡고 있는 분들에게 요청합니다. 중집위와 중앙위, 필요하다면 대의원대회를 절차에 따라 조속히 소집해 주십시오. 그리고 작금의 현안문제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리하여 공공연구노조가 더 이상 파행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7천여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활발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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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

노보에 글 하나씩 쓰기로 했는데 그럴싸한 주제가 없나 찾다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관련해서 꾸준하게 모니터링 좀 하기로 했다.

 

처음 과기노조 위원장 할 때는 이것 만들라고 외치고

나중에 또 과기노조 위원장 할 때는

민간위원과 정부위원을 같은 수로 하라고 떠들곤 했었는데

어렵사리 생겨난 것이 요즘 하는 짓거리들을 보니 참 걱정스럽다.

 

이 후로, 차근차근 내용을 뜯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글의 사족부터...(사족은 지면관계상 노보에서 짤릴 예정임^^)

 

 

사족

국과위 홈페이지(http://www.nstc.go.kr)는 일반인이 찾기가 참 어렵다. 국과위의 존재를 아는 사람만이 포탈사이트의 검색창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라고 입력하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다. 과기부 홈페이지에 가면 국과위가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거기에 국과위는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서 정부조직도를 클릭하면 노사정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등 정부의 각종 정부위원회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클릭만 하면 해당 위원회 홈페이지로 가게 되어 있지만, 거기에도 국과위는 없다. 왜 그러냐고 과기부에 전화를 걸었더니 국과위는 기구가 아니라 회의체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회의체라, 예산권도 없는 회의체라,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위상치고는 참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더 하자. 국과위 본회의가 아침 7시 30분에 열린다고 해서 과기부에 전화를 걸었다. 조찬회의로 하는 거냐고 했더니 왜 그러느냐 신분부터 밝히라고 한다. 참 딱딱하고 불친절한 말투였지만 참고 신분을 밝혔더니 그제서야 조찬회의가 맞다고 인정했다. 한 가지 더 물었다. 최근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적은 없지요? 과기부 공무원은 그건 왜 묻느냐, 함부로 얘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아니 그게 무슨 기밀사항이라고 그러느냐, 내가 홈페이지만 찾아봐도 금방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인데, 하고 말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라면서 퉁명스레 되받았다. 제발 열린 마음으로 민원인의 전화를 받으라고 충고하고 끊었다. (사실은 상급자한테 항의전화를 한번 더 했다. 그리고 궁금한게 있어서 전화를 또 했더니 그제서야 좀 순하게 받더라.)


황우석씨 얘기도 해야겠다. 황우석씨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국과위 민간위원이었고 2005년 8월에 연임했다가 그해 12월경 줄기세포 사건의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황우석씨가 국과위 민간위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과위 홈페이지 역대 민간위원 명단에 황우석씨의 이름은 없다. 황우석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갖은 특혜를 퍼부었던 청와대나 국과위가 늦게나마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 황우석씨라는 이름이 국과위 민간위원으로 회자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

-제23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열려-


조찬회의

제23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가 지난 4월 30일 오전 7시 30분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오전 7시 30분에 열리는 회의라면 통상 조찬회의를 의미한다. 모여서 아침밥 먹고 식사가 끝나면 부리나케 제각기 출근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아침밥 먹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으로 처리하다니 기막힌 일이다. 기록을 찾아보았다. 국과위는 매년 3회 정례회의를 갖는다. 1999년 4월 1일 첫 회의를 가진 이후 지난 9년 동안 국과위 본회의는 23차례(2002년과 2004년에는 2회씩만)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대부분의 회의를 청와대에서 일과 중에 위원장 주재로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고 2년 동안 5차례의 회의를 청와대(13회 본회의는 KIST)에서 주재했고, 18회 회의(2005. 8. 29)를 끝으로 국과위 본회의 의장 역할을 더 이상 맡지 않았다. 2005년 8월이면, 황우석씨가 5월에 난치병 환자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세계를 놀라게 한데 이어서 8월초에 그토록 어렵다던 개 복제에도 성공했다고 발표함으로써 과학자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도달해 있을 때였고, 그 때 황우석씨는 국과위 위원이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하는 국과위는 과학기술부 장관(부총리, 국과위 부위원장)의 주재로 17회, 19-22회 본회의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그리고 23회 본회의를 신라호텔에서, 조찬회의로 열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ouncil)는 재차 강조하지만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국가과학기술정책 사업의 수행주체가 다원화되고 투자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김대중씨가 대통령을 맡고 있던 1999년 1월에 발족하였고 그 해 4월에 첫 회의를 가졌다. 국과위는 김대중씨의 선거공약이기도 했지만 그 수년 전부터 우리 노동조합을 비롯해서 과학기술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항이기도 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던 시기에 우리 노동조합의 핵심간부가 그를 직접 만나서 국과위 설치와 출연연구기관의 안정화를 위한 방안 등 주요한 정책요구에 대해서 설명했던 일도 있다.


국과위는 매년 3회(4월, 7월, 12월) 정례 회의를 갖는다. 4월에는 전년도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7월에는 다음 해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검토 심의, 12월에는 다음 해의 과학기술발전 시행계획 수립이 주요 안건이다. 과학기술기본법을 비롯한 9가지 법에 근거하여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관련 예산의 확대방안 및 R/D투자권고,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배분 및 조정과 효율적인 운영에 관한 사항,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의 육성 발전방안 등 14개 의제들이 본회의에서 다루는 법정 심의사항이다.


그러나 국과위 설치에도 불구하고 국가과학기술정책은 여전히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정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거시적인 기획기능의 부재로 사전 정책조정에 실패했고, 객관적인 평가기구가 없으며, 법률 제정과 개정에 대한 권한이 없어 정책조정을 위한 기반이 미흡하고, 실질적인 예산 배분 권한이 없어서 정책조정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요지였다. 이러한 비판은 국과위 체제의 개편으로 이어졌다. 2004년 10월에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국과위 사무국 기능을 맡게 되었다. 더불어 국무총리실에 속해 있던 기초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가 국과위 산하로 이관되면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지원과 육성 체계가 일원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과위의 활동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사무국(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예산 기획과 조정의 전권은 여전히 기획예산처에 있기 때문에 각 부처가 국과위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기보다는 기획예산처와 직접 연구개발예산의 규모를 놓고 협상을 벌이는 형국이다. 예산을 통한 기획 조정 기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 사이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조정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부처 이기주의적인 행태는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국과위 본회의 뿐만 아니라 운영위원회 등의 사전 심의기구에서도 부처에서 올라온 안건들이 별다른 이견없이 통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과위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민간위원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과학기술부총리를 부위원장으로 하며, 기획예산처를 포함하여 13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되는 당연직 위원과, 대통령이 위촉하는 9명의 민간위원이 국과위의 위원이 된다. 임기가 2년인 민간위원은 현재 8명이다. 2005년 8월에 연임했던 황우석씨가 그 해 말에 줄기세포가 사기로 드러나자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나서 1명이 줄어든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은 출범 초기 민간위원이 3명에 불과한 것을 비판하면서 국가위 민간위원은 전체 위원의 절반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들이 국과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출범 이래 민간위원은 주로 재벌이나 유수의 벤처기업인, 학계나 여성계에서 대통령이 선택한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어떤 조직이나 현장의 대표성을 갖는 민간위원은 현재로서는 단 1명(참여연대 소속)밖에 없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한 개인이 국과위에 참여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실 밥숟가락 들고 고개나 끄덕이는 것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23회 국과위 안건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계획(안), 융합기술 종합발전 기본계획(안), 산림과학기술 기본계획(안), 국방 연구개발 역량강화 방안(안),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운영성과 보고(특별보고), 「이공계 전공자 공직진출 확대방안」06년도 추진실적 보고(서면보고) 등이 이번 23회 국과위 본회의 안건이었다. 이 안건들에 대해서는 이른바 참여정부 시대에 국과위에서 다룬 많은 안건들과 함께 분석하여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한다. 다만, 국가위 본회의가 조찬회의로 진행된 이후, 심층적인 검토와 토론이 필요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결과와 같은 주요 의제가 실무위원회로의 위임이라는 명분으로 운영위원회와 전문위원회 안건으로만 상정되고 본회의에는 아예 보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자. 앞에서 얘기했지만, 4월 본회의의 주요 안건은 전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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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핵...하면서 급히 써서는 네트워커에 보냈습니다.

 

 

새벽길님의 [북의 핵개발에 대한 설문결과] 에 관련된 글.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학생당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게 되었다. “이북의 핵개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다(52.63%). 2. 반전반핵의 견지에서 볼 때 옳지 않은 조치이다(41.05%). 3. 평화적 이용목적의 핵개발은 괜찮지만 군사적 핵개발은 옳지 않다(4.21%). 4. 기타(2.11%). 핵문제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하나로 뭉뚱거려 질문한 것도 억지스럽고, 예시한 답변 항목들을 보니 마치 편가름을 하려는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각급 회의에서의 논쟁도 학생당원들의 인식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당혹스러움을 넘어 화가 치민다. 어떠한 이유의 핵무기 개발에도 명확히 반대하고 이른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하는 핵 발전까지 반대하는 것은 당의 강령을 떠나서 진보정당의 확고부동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시때때로 당 간부들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이 흔들림없이 지켜야 하는 이념이자 가치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최근 논란은 당의 정체성에 커다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한편,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은 따로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 핵에너지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과는 달리, 에너지 자원을 새롭게 개발한 결과가 아니라 원자폭탄 개발이라는 군사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파생물이다. 핵에너지에 관한 연구는 공통의 핵물리학적 기초, 공통의 과학기술적 연구, 공동의 경제적 예산과 관리에 기반하고 있다. 2차 대전 후에 핵개발을 주도했던 미국 원자에너지위원회(AEC)와 영국 원자에너지청(AEA), 프랑스의 원자에너지원(CEA)은 핵의 군사적, 비군사적 사용을 모두 관장했다. 순수한 과학연구 목적의 원자로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한 인도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핵의 민간․상업적 이용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정치․군사적 목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도 핵개발 초기에 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확산된 것은, 핵에너지의 장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과장된 선전, 관련된 과학자들의 열광적인 지지, 산업체의 낙관주의, 언론의 대대적 호응,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도 옛 얘기일 뿐이다. 본격적인 반핵운동이 벌어지고,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거치면서 핵에 대한 대중의 환상은 모두 깨졌고,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힘을 잃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사고는, 핵에 관한 한 20세기 중반에 머물고 있고, 진보정당 또한 냉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핵무기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이 영구히 억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갈파했던 노벨상 수상자 52명의 마이나우 선언(1955)처럼, 이판에 핵에 관한 과학기술자 선언을 조직하자고 하면, 당신은 대략난감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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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듯

 

주말에 TV를 켰더니 어떤 과학자가 출연하여 패널들에게 질문공세를 받고 있었다. 일전에 영화배우 정진영과 축구선수 이영표가 각각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얼마나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을 모으고 있기에 과학자가 저런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왔을까 하고 지켜보았다. 앞서 정진영의 솔직한 모습이나 이영표의 겸손한 자세에서 좋은 인상을 얻었기 때문에, 진작 알고 있던 그 과학자의 이름에 새로운 이미지 하나 추가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은근히 일었다.


자연에 대한 무지와 여성을 억누르고 비하했던 마초적 삶을 반성하고 환경주의자와 여성주의자로 탈바꿈한 그의 인생역정은 미국 유수의 대학 박사학위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만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지향하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도 학제간 연구조차 빈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자못 흥미로웠다. 실험실의 벽에 갇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대다수 과학자들이 인문학자, 사회과학자들과 전공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교감한다면 과학계도 크게 달라질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알면 사랑한다’ 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그만 맥이 좀 풀렸다. 그것은 통찰력을 가진 인문학자의 분위기와 달랐고, 잘난 체하는 사회과학자의 면모나 남다른 세계관을 가진 자연과학자의 것도 아니었다. 천박하고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허덕이며 살아가는 평범한 지식노동자가 지닌, 그야말로 소박한 인생관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느낌! 어쩌면, 배신이었다. 그래서 그를 좀 더 알고자 곧바로 책을 한권 샀다.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그가 쓴 글의 일부이다.


그는 어릴 적에 자연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그것을 파괴하는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이제 그는 학문(동물행동학, 사회생물학)을 통해서 자연(동물)을 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인간사회에 적용할 교훈을 적잖게 찾은 듯했다. 그러나 앞에 인용한 글에서 나타나듯이, 인간 ‘사회’가 아닌 사회 속의 ‘인간’들을 개별적으로만 들여다보고, 단지 개체 상호간의 작용으로서 好惡와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동물‘사회’ 연구를 통해 인간이 먹고 먹히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통섭’적으로 알아낸 것도 아니었고, 그 대안사회를 제시하고 실천하는 과학자는 더욱 아니었구나!


내가 잠깐이나마 가졌던 바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TV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 다 그런 거지 뭘, 하고 나를 타박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스타과학자만 섬기고 받드는 사회에서, 사회모순을 갈파하고 저항하는 지식노동자로서 과학자들의 모습이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때로 고도를 기다리듯 간절하다.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중에서 싹수가 보이면 참 행복하겠다. (2006.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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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악어

 

어느 교수가 FTA 교육을 하면서 말랬다. 악어와 개미가 덩치에 비해 깨무는 힘이 세다. 그러니까 둘이서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한 번씩 깨물어주기로 하자. 그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나. 한미 FTA는 이처럼 악어와 개미가 서로 깨물기 놀이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킥킥 웃었다. 악어의 큰 이빨 사이에 개미의 몸뚱아리 하나 숨기지 못하겠는가, 개미 한 마리 잡겠다고 연신 큰 턱을 앙다무는 악어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발, 이 쬐그만 땅덩어리 삼키려다가 미국이란 나라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그런데 현실은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국제무역위의 시장조사보고서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낱낱이 분석해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기세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직 한미 FTA가 한국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각 분야별로 일일이 파악하지 못했다. 10개의 IMF가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고 경고하지만, 공공서비스 부문만 하더라도 포괄범위가 너무 넓어서 세세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마련하기에 아직은 힘이 부친다.


과학기술 분야는 어떨까? 한미 FTA가 과학기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수소문했다가 별 소득이 없어서 직접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 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도 가보고, 과학기술 관련 시민사회단체 게시판을 두루 살펴보았지만, 한미 FTA에 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과학기술은 한미 FTA의 무풍지대? 그러다가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펴낸 정책자료 한 편을 간신히 찾았다.


2004년 8월에 낸 이라는 보고서였다. ‘한국・일본, 한국・싱가폴 FTA 협상을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보고서의 흐름을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WTO 협정에서 한국, 일본, 싱가폴의 과학기술 양허와 요청 현황을 분석했다. 이를테면, 자연과학과 엔지니어링에 있어서 연구 및 실험개발 서비스는 3개 국가가 모두 양허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한국의 개방수준이 높다. 그러나 WTO 협정에서 개방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싱가폴) FTA로 들어가면 개방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 따라서 FTA 협상을 할 때 다른 나라가 개방한 것만큼 우리 양허안을 제출하든지, 우리가 개방한 것만큼 다른 나라가 양허안을 제출하도록 하든지, 우리에게 양허를 요청한 나라가 자기 나라에서는 동일 분야에서 양허하지 않은 경우 동일분야 및 관련분야를 양허하도록 하든지, 잘 알아서 해라!


이게 뭐냐? 어렵사리 쓴 보고서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다. 그런데 이것이 한미 FTA에 직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준이고 현실이다. 차라리 과학기술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더 설득력이 있다. “미국 기술사 취득자(합격율 65-70%)는 국내에서 2차 면접시험을 통해 인정하고, 그보다 더 어렵게 시험을 통과(합격율 2-10%)한 한국 기술사 합격자는 미국의 제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의 오만과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그들한테 구걸해야 하나. 당당하게 협상하라.” 아, 개미가 악어를 물어서 상처라도 입히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할까. (2006. 5. 30. 월간 네트워커에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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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3월 25일은 내 지도교수가 돌아가신지 17년 되는 날이었다.

 

고 정보섭 교수께서는

평택 대추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혀 계신데

혼자서는 정확히 찾아갈 수 없어서 죄송하기 짝이 없다.

 

생각난 김에 25일에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가는 길은 아는데 설명은 못하겠단다.

 

세월이 가니까 다들 잊고 사는 듯하다.

 

다시 평택 근처로 가는 일 있으면

혼자라도 물어물어 찾아가 보리라.

 

지도교수의 기일임을 떠올렸다가

생각나서 쓴 글이 아래 글이다.

 

월간 네트워커에 보냈다.

 

 

 



 

황우석씨가 마침내 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그에 대한 최고과학자 지정도 취소되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언론은 끝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곧 새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업데이트되면 이른바 ‘황까’나 ‘황빠’들을 제외하고는 황우석씨를 망각의 저편에 묻게 되겠지. 요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여론의 선망을 받거나 집중적인 포화를 받거나 세월이 흐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황우석 사건에 관한 논란도 시나브로 잠잠해지고 있다. 과학자 사회에 대한 연구나 연구윤리에 관한 쟁점들은 전문가들의 연구주제나 토론꺼리로 계속 등장하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황우석 드라마는 일단 끝난 듯하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이 떠난 자리에서 후속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황우석씨를 지도교수로 삼았거나 프로젝트 책임자로 섬겼던 학생이나 연구원들이다. 황우석씨가 교수직을 사퇴할 때 배경화면으로 등장했던 그들이 이제는 제가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험난한 인생행로에 직면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공계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의 자리는 권력 그 자체이다. 지도교수가 생활습관부터 시작해서 논문, 취업, 해외연수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따라서 학위를 취득하는 기간이 달라지고, 심지어 교수의 필요에 따라 논문을 다 쓰고도 졸업을 미룬 채 더 일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연구계획서 작성, 연구비 지출에 관한 영수증 처리, 인건비의 편법 집행과 비자금 관리 등등,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수족이 된다.


연구실적은 변변하지 않았지만 난자를 제공한 보답으로 휘하의 연구원을 어떤 의과대학의 교수로 취직시킨 황우석씨의 ‘권력’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일에 몰두했을 학생과 연구원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잘못이 다 드러난 상황에서도 선뜻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지도교수를 편들고자 했던 가상한 용기로 여전히 황우석씨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을까? 새 지도교수에게 의탁하여 학위논문이나 빨리 끝내야지 하고 교수 연구실을 기웃거리고 있을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까? 혹시 단 한 사람만이라도 황우석씨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는 이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니 황우석씨에 대한 분노와 학생들에 대한 연민이 더욱 커진다.


새삼 내 지도교수를 기억한다. 평생 차를 몰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걸어서 출퇴근했다. 학생들을 속박하거나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모범을 보였고 학문적으로 엄정했다. 과도한 연구비에 욕심내지 않았고 한 푼의 장학금이라도 더 주려 애썼다. 이 땅에 이런 교수들 많다. 그 중에 누군가가 황우석씨를 거둬들여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면 이 어처구니없는 드라마가 끝이 날까? (200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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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네트워커 3월호에 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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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phytoncide)라는 것이 있다. 식물을 뜻하는  ‘phyto-’와 ‘죽이다’는 뜻의 ‘-cide'가 합해서 생긴 ‘요상한’ 말이다. 왜 요상한 말이냐고? 알다시피 cide는 대개 ’사이드‘라고 발음한다. 같은 어원을 가진 phytocide(식물을 말려죽이는 물질)도 파이토사이드라고 읽고, 자살을 뜻하는 suicide도 그렇게 읽는다. 그런데 phytoncide의 cide는 왜 사이드가 아니고 치드라는 말인가. 처음엔 일본에서 만든 말인가 했더니, 여기저기 찾아보니 러시아어(fitontsid)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phytoncide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다. 그는 결핵약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해서 노벨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일상적으로 발산하는 방향성 휘발물질이다. 식물은 끊임없이 각종 세균과 곰팡이에게서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런 조건에서 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항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식물이 병원균에 저항하기 위해 방출, 분비하는 일종의 자기방어물질을 피톤치드라고 부른다. 동물이 체내에 침입한 세균에 대해 항원 항체반응을 일으켜 스스로를 방어하듯이 식물은 피톤치드를 면역체계로 삼아 자신을 지킨다. 고대에도 피톤치드를 활용해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일상생활에 응용한 사례들이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피톤치드의 과학적 효능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피톤치드는 어떤 효능을 갖고 있을까. 피톤치드는 우선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쥐에게 피톤치드를 공급하자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의 혈중농도가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25~70%나 낮아졌다. 피톤치드는 긴장을 완화시키며 혈압을 낮춰준다. 피톤치드는 심장과 폐기능을 강화시켜 심장병. 기관지천식. 폐결핵의 치료를 돕는다. 예나 지금이나 숲은 폐결핵 환자 치료에 안성맞춤인 휴양소이고, 실제로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작용은 모두 피톤치드의 구성물질인 테르펜을 비롯한 페놀 화합물, 알칼로이드 성분, 글리코시드 등의 식물성분에 의한 것이다.


이른바 ‘웰빙(well-being)'의 시대에 피톤치드는 아주 각광받는 웰빙상품이다.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즐기며, 격렬한 운동보다는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운동을 하고,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즐겨 먹는 ‘웰빙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피톤치드는 참 매혹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상에서 견줄 곳이 따로 없을 만큼 극단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이 자본주의 땅에서, 대다수 노동자 민중에게 피톤치드를 구매하거나 섭취하고 즐기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언제라도 자신들의 몸뚱어리가 곧 피톤치드가 되도록 굳세게 담금질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악법, 로드맵과 같은 괴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덮치고 말지니!

 

(2006. 2. 28. 철도노조 파업전야제가 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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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작두날 위 백척간두, 내림굿판이다.

 

무병을 앓아 신이 내린 무당이 사뿐사뿐 춤을 춘다.

쟁기쟁기쟁기 쟁기 재쟁기 쟁기쟁기

산에 가서 산신을 맞고

뒷마당으로 가서 잡귀잡신을 달래고

인간 세상에 신명을 내리고 풀쩍풀쩍 작두를 탄다.

 

삼라만상이 적요한 이 때,

차디차게 희고 광대무변한 버선발 끝에서

한방울 두방울 피가 배어나더니

 

금세 천지에 고드름이 빽빽하게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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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월간 네트워커 12월호에 기고함


 이젠 아주 옛날 얘기지만, 내가 약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아스피린 탓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은 병에 대한 저항력과 치유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약이 꼭 필요하면 천연물에서 유래한 약을 먹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아스피린과 같은 합성의약품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요것이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 열을 떨어뜨리고, 염증을 낫게 하고, 통증을 가시게 하다니, 영 불쾌했다.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이놈들을 몰아내려면, 그래, 약을 좀 공부해야겠구나.


아스피린은 물론 완전한 인간의 창조물이라기보다는 반합성의약품이다. 수천년 전부터 버드나무 껍질에 함유된 살리실산이 해열, 소염, 진통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고, 19세기 말에 이 살리실산을 아세트산으로 처리해서 만든 것이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해열진통제일 뿐만 아니라 요즘은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약으로 쓰임새가 확대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스피린을 만병통치약으로 신봉하기도 한다.


아무리 좋아도 약은 곧 독이다. 약은 모두 약효 못지않은 다양한 부작용을 갖고 있다. 부작용이 약효로 인정받기도 하고(아스피린의 혈전용해작용), 부작용 때문에 시중에서 각광받기도 하고(기침약 덱스트로메트로판의 환각작용), 부작용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약을 쓰기도 한다(항암제로 인한 탈모 등 독성작용). 약의 종류를 불문하고 쇼크와 알러지와 같은 과민반응이나 특이체질반응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상당하다.


인터넷은 현대인들에게 주어지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요 처방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갈수록 인터넷의 부작용이 약효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황우석 스캔들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을 진지삼아 벌어지는 온갖 논란과 상당수 누리꾼들의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누리꾼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올바른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들과 각 직능 집단들, 언론매체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방치하거나 도리어 조장하는 정부의 책임이 더욱 크다. 심지어, 누리꾼들 덕분에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난자 확보가 아주 쉬워졌다며 반색을 하는 어떤 과학자를 만나고는 아연했다.


워낙 오래되어 약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펜토바르비탈류에 속하는 어떤 수면제의 부작용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잘못된 판단에 대한 믿음은 높여준다! 가히 환상적이다. 적절한 정보가 자유롭고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채, 왜곡된 여론이 기승을 부리는 인터넷 공간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인터넷이 아스피린보다 더 유효한 처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당장 해야 할 투쟁이 무엇인지 다함께 찾자. 황우석에게 가리고 우리들의 불감증에 덮여서, 외롭고 비참하게 숨져 간 고 전용철 동지의 명복을 빈다. (200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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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현근님의 [관악산...] 에 관련된 글.

오프에도 산에도 함께 하지 못한 마음을 글 하나 묶어서 전해요~^^;;

 

사진도 한장 빌려다 쓸께요.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다. 지금쯤이면 계룡산을 비롯한 중부권의 산들이 단풍절정기에 막 들어서고 있겠다. 주말이면 단풍에 취한 사람들로 산과 길마다 몸살을 앓는다. 빨강, 노랑, 갈색이 서로 뒤섞여 타오르는 가을산의 풍경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곧 낙엽이 지면 다시금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게 될지라도 지금 눈앞에서 이글거리는 저 선연한 색채 앞에서 무엇을 앞당겨 걱정하랴.


단풍의 정체는 무엇인가. 색깔의 근원으로 따진다면, 붉은색 계통은 안토시아닌(Anthocyanin), 밝은 오렌지색은 카로틴(Carotene), 노란색에서 오렌지색 계열은 크산토필(Xanthophyll), 그리고 갈색계통은 탄닌(Tannin)에 의해서 발현된다. 겉으로 보면 가을이 되어야 나타나는 듯하지만, 이러한 물질들은 사실 봄부터 생겨나서 어린 잎과 줄기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엽록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모름지기 잎의 주인이자 나무의 생명은 한결같이 엽록소이다.


가을이 되어 밤이 길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월동준비에 들어간다. 물이 무엇보다 부족하므로, 물 쓰임새를 줄이기 위해서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들어 물과 당의 이동을 막는다. 그래도 잎은 가을의 남은 햇빛으로 광합성을 계속한다. 이 때 만들어진 당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잎의 산도를 높여 엽록소를 파괴한다. 그 동안 엽록소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카로틴, 크산토필이 비로소 나타나고, 한편 남아있는 당을 이용해서 안토시아닌이 생합성된다. 탄닌까지 포함해서 단풍의 색깔에 관련된 물질은 모두 뿌리가 같다. 당에서 출발해서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은 색을 보여준다면 단풍의 아름다움은 훨씬 못할 것이다. 단풍의 색깔은 같은 나무라도 잎마다 조금씩 색깔이 다르다. 온도, 햇빛, 물의 양에 따라서 단풍의 색채는 달라진다. 예컨대 붉은 색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크고 햇빛이 좋을 때 가장 좋다. 현란하고 다채롭고 아름다운 단풍의 색깔은 붉은색과 노란색과 갈색의 무수한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변주곡이다.


하지만 단풍은 수명을 다한 나뭇잎이 안간힘을 써서 태우는 마지막 촛불같은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청장년의 시기를 지나 황혼으로 접어드는 때이다. 결코 드러나는 일 없어도 한평생 자기 몫의 노동을 다하고, 남아있는 생이 얼마가 되든지 끝까지 아낌없이 제 몸을 던진다. 그래서 단풍은 몇 가지 감춰진 색소의 조합에 머물지 않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를 아로새기듯이 지금 이 산과 저 산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것이다.


여느 해보다 더 곱고 뜨거운 단풍 앞에서, 우리네 노동운동판이 제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투쟁을 하든지 교섭을 하든지 선거를 하든지, 제발 상식과 순리를 좇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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