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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4/19
    4.19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9/11/13
    김 준 동지를 추억하며(6)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9/10/15
    [서평] 77일간의 저항을 기억하라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9/06/02
    애창곡에 어린 추억들(8)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9/05/26
    유감(8)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9/05/21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1)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9/05/01
    연맹 신임 집행부에게 바란다(3)
    손을 내밀어 우리
  8. 2009/02/24
    특례를 집대성한 특별법안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9/02/11
    기초과학 육성부터 제대로 하라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9/02/03
    벨트, 그게 도대체 뭐냐?
    손을 내밀어 우리

4.19

기억하지 않으면 과거란 없는건가

몸에 새겨진 숱한 상처와 흉터가

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까지 담고 있듯이

이 땅에 남겨진 무수한 상흔들

파묻고 또 파묻어도

불감증의 무리들이 오로지 폭력에만 탐닉해도

언 땅 시나브로 녹아

어디선가 진달래 핀다
 

-오늘 아침,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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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 동지를 추억하며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했던 동지여...] 에 관련된 글.

 

김 준 동지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11월 25일 오후 3시에 갑산공원묘지에서

동지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아래 글은

동지들에게 미리 보낼

리플렛에 담겠다고 해서 썼다.

 

동지를 땅에 묻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모두가 오열했던 작년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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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 동지를 추억하며

 

2008년 11월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늦가을에
동지는 두물머리 너머 고즈넉한 산기슭으로 가고,
어느 덧 1년이 지났습니다.
 
동지의 호탕한 웃음
동지의 형형한 눈빛
동지의 거침없는 논리
동지의 유려한 언변
동지의 한결같은 투지
동지의 의연한 투병
 
어느 것 하나 과거형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에
동지를 추모하는 것은 참으로 낯설기만 한 일입니다.
 
삶과 죽음의 길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열려 있지만
먼저 간 동지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참으로 뜨거운 사랑에
이 가을에는 비가 더 자주 내립니다.
 
바람 불고 눈 내리고
잎 피고 단풍 들고 다시 또 지고
갑산공원묘지의 키 큰 나무들이
1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동지를 지키고 있듯이
우리 이제 다 함께 동지에게 가려고 합니다.
 
슬픔의 노래들과
하염없는 눈물은 걷어버리고
동지가 살고자 했던 세상
동지가 꿈꾸었던 세계
동지가 가고자 했던 미래
우리의 꿈과 소망과 포부로 이어받겠다고 했던 약속,
잘 지키고 있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가서 동지와 서로 보듬고 어루만지며 살펴볼 것입니다.
 
모두 오소서.
김 준 동지, 어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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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77일간의 저항을 기억하라

참 오랜만에 미디어충청에 써보낸 글.

 

 

77일간의 저항을 기억하라

[서평] '77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사진 기록'

2009-10-14 08시10분 이성우

80년 5월 광주는 그 시대를 살았으나 그 지역을 비켜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이 광주에서 싸우거나 숨져간 사람들에게 빚진 것이라’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계엄령 아래 철저히 차단된 보도 통제를 뚫고 전해져온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에 전율했고, 그것에 온몸으로 맞선 투쟁의 자취들을 접하면서 통곡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를 앙다물고 변혁의 꿈을 갈무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부채의식이 80년대 이후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우리 사회 정치적 민주주의의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있어난 일은 29년 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일과 어떻게 다를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일만 해오던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공장 밖으로 내몰고는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무참하게 폭력을 가했으며 급기야 그 과정에서 6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고무총탄을 쏘았고 유독성 최루액, 치명적인 테이져건과 해머, 경찰 특공대의 집단 린치는 사실상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아비규환의 참상을 만들었다. 공장 밖에서는 자본이 동원한 구사대와 용역들이 물과 음식물과 전기와 의약품을 차단했고, 심지어 쇠파이프로 노동자의 가족들과 연대온 사람들을 서슴없이 공격했다. 정리해고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노동자들은 오로지 맨몸으로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잔인한 폭력에 맞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77일간, 그들은 고립무원의 섬에 갇혀서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분연히 저항했다. 자본과 권력은 집요하게 '산자'와 '죽은 자'를 나누고, '파업참가자'와 '파업불참자'를 분열시켰지만, 노동자들은 머리를 맞대며 토론하고 스스로 갈 길을 차분하게 결정해 나갔다. 오로지 함께 살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지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연하고 의로운 저항 앞에서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본의 광기는 물 한 모금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게 했으며 잠조차 잘 수 없게끔 만들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생체실험실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바깥의 '노동자'와 '인간'들은 무엇을 했던가. 지금 여기가 2009년 대한민국인가 의아했을 정도로 야만적인 폭력이 판치는데 그것을 제압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전국을 누비며 눈물로 호소했고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이어졌지만 공장을 둘러싼 바리케이트와 철조망과 폭력집단의 벽을 넘지 못했다. 모두 발만 동동 굴렀다. 빤히 보이는 공장 안에서 가공할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분노가 모자랐던 것일까, 단결력이 약했던 것일까, 바깥 사람들은 참으로 무기력했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으로 갈라놓고도 정부는 그것을 법치라고 했다. 법치를 내세운 폭력 앞에서 공장을 아꼈고 일을 사랑했던 노동자들은 77일만에 저항을 일단 멈췄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77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사진 기록>은 이 싸움이 얼마나 정당한 것이며 이후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차분하게 기록하여 보여주고 있다. 77일간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함께 걸었던 진정한 동지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고립된 공장 안에서 희망을 일구는 노동자들의 공동체가 거기에 담겨 있다. 짐승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공존하는 순간들이 거기에 들어 있다. "당신은 정말 예뻐요" 하는 수줍은 고백과 "여기 인간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절규가 절절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사진모음은 결코 감정에 의탁하지 않고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해고는 곧 살인이며 그것에 저항하는 투쟁은 필연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희망의 기록이며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고 의지이다. 그래서 사진들은 대체로 밝고 씩씩하다.

2009년 10월, 노사간의 합의서를 무시하고 쌍용자동차의 자본은 여전히 투쟁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을 공장 밖에서 차단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사회적으로는 보이지 않은 폭력이 77일의 투쟁 이후 또 다른 77일이 더하도록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2009년 여름에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갇혔던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부채의식이 이윽고 천박하고 야만적인 한국의 자본주의를 아래로부터 갈아엎는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이 사진기록을 통해서 내가 다시금 반추하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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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창곡에 어린 추억들

지난 주에는 써야 할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 정신을 차릴 사이가 없었다.

그 중에 하나, 노동자 역사 <한내>(http://www.hannae.org)에 보낸 것을 여기 올려둔다.

실은 시간에 쫓겨서 오래 전에 썼던 것에 살을 좀 붙였다. 암튼...

 

 

[내가 살아온 길]

 

 애창곡에 어린 추억들


대학교에 꼭 가야 하나, 하는 사치스런 생각에 빠져 살던 사춘기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 나는 대학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지방 도시에까지 대학생 시위대가 거리를 휩쓸던 시기, 우리 고등학생들 사이에도 독재정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화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평생 하는 줄 알았던 대통령이 총 맞아 죽었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의 20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음악시간에 가창력 시험 칠 때 말고는 남들 노래할 때 입만 벙긋거렸던 나에게 노래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운동가, 민중가요, 노동가요, 그런 이름으로.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로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 30여년간 내가 불렀던 애창곡(?)들을 되새기면서 내 살아온 내력을 슬쩍 훑어본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자연스럽게 듣고 불렀던 운동가는 「아침이슬」, 「흔들리지 않게」, 「정의가」정도였고, 개사곡이 몇 개인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실력은 그야말로 음치 수준이기는 했지만, 나는 집회에서나 술집에서나 어깨를 걸고 함께 부르는 「아침이슬」같은 노래들의 맛에 흠뻑 빠져들었고, 술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서 혼자서도 목청껏 불러젖히곤 했다. "정의와 용기는 젊음의 생명 승리의 깃발은 높이 솟았다...", 이렇게 시작하던 「정의가」는 그 시절에 내가 열린 공간에서 주먹을 내지르며 곧잘 부르던 노래였다. 그렇지만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조용한 모임에서는 뒤늦게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의 노래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금관의 예수」, 「가뭄」, 「강변에서」, 「기지촌」, 「친구」, 「작은 연못」, 「바다」와 같은 김민기의 노래들은 아직도 가사를 대부분 기억하고, 운전을 하다가 졸릴 때 이따금씩 부르는 노래들이다.


무리들 속에 파묻혀 조용히 지내던 내가 공식적으로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농민가」를 통해서였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을 부르면서 나는 연극반에서 배운 사박자 춤을 단과대학 체육대회에서 선보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자주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나를 아는 동지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지만, 판소리에서 유래한 「농부가」를 다른 단과대의 신입생들에게까지 가르치기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 후에 동급생들을 불러 모아 민요를 부르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노래를 못해도 제자(^^)들은 훌륭하게 잘 소화했기에, 나중에는 장단만 쳐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농민가」와 「농부가」는 나를 사람들과 호흡하게 해준 노래들이었고, 요즘도 거나한 술자리에서는 한 번씩 부르기도 한다. 농촌활동을 가서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무기 중의 하나가 내 막걸리 실력이요, 그 다음이 이들 두 노래였다.


내 기억으로는 82-84년 사이에 학교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무척 다양해졌다. 광주항쟁에서 비롯된「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로 이 시기에 집회에 등장했고, 「광야에서」, 「불나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단결하세」, 「선봉에 서서」를 기억한다. 그리고 샹송의 곡에 가사를 붙인「오월의 노래」도 해마다 5월이면 불끈불끈 불렀던 노래들이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는 젊은 내 가슴을 분노로 들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서관 난관에 밧줄을 타고 올라가 시위를 이끌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날마다 수천의 학생들이 도서관 앞 광장에 모여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때, 학교측은 도서관 창밖에는 쇠창살을 치고 잔디광장에는 수백 포기 가시 돋힌 장미나무를 심음으로써 집회를 효과적으로 막으려 했다. 어느 봄이었던가, 독재 타도와 졸업정원제 폐지를 외치던 집회 대오들은 한순간에 잔디광장을 채우고 있던 장미나무들을 모두 뽑아버렸는데, 그 사건 이후 내가 이따금 불렀던 노래가 있다. "장미꽃 만발한 아크로폴리스, 쇠창살 둘러친 면학의 도서관, 붉은 넋 쓰러져간 그 때 그 자리, 피 흘리던 그 목소리 벌써 잊었나, 학우여 들리는가......".


이른바 아크로폴리스는 어떤 대학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조합원으로서 활동을 막 시작했던 90년대 초반에도 가끔씩 옛 생각에 젖어 술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다가 한 번 호된 질책을 겸한 조언을 들었다. “동지에게서는 아직도 그 대학의 냄새가 나, 노동자 냄새가 안 나고 말이야!” 술이 확 깨는 듯했다. 노동자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아직도 출신 대학의 냄새나 풍기고 다니다니, 그 날 이후 아무리 취했어도 다시는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진짜 노동자들의 투쟁을 얘기하는 노래를 불렀다. 80년대 중반까지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부르던 노래를 노동자에게 배급했다면, 87년 이후에는 노동자들의 노래가 학내로 마구 유입되기 시작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바야흐로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변혁운동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89년에 직장에 들어와서 조합원이 되자마자 잘 불렀던 노래가 「파업가」와 「전노협진군가」이다. 전노협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알기도 전에 「전노협진군가」를 통해서 나는 노동해방의 길로 달려가는 노동자 군대의 위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사랑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여 우리들의 결사투쟁은 이다지도 끝이 없구나"로 시작하던 「골리앗의 그림자」가 내 30대 초반에 가장 열심히 불렀던 노래였다. 집 어귀에 들어서면 아내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노래 소리만 듣고 내가 오는 것을 알아챘을 정도로, 엉망으로 취한 날이면 꼭 이 노래를 불렀다. 그만큼 노동조합에 대한 열정과 연대에 대한 갈망이 아직 젊었던 내 가슴을 채우고 있었고, 나는 평생을 투쟁하며 살리라 생각했다. 90년대 들어서서 영화 <파업전야>의 감동은 「철의 노동자」를 급속히 전파했고, 그 후로도 참 많은 노래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어디서나 부르던 우리들의 투쟁노래들은 노래방과 단란주점으로 포위되고 급기야 투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나, 우리는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이 휘황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서 공연되면 박수치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TV에는 나오지 않아도 투쟁현장에는 어디나 온다는 노래활동가 동지들이 투쟁사업장에 왔을 때 노래를 따라 부르기보다는 박수치고 환호하기에 바쁘다. 투쟁가 한 가락이라도 가사를 보지 않고 부르는 동지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술자리에서나 수련회 뒷풀이에서 개인적인 푸념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들이 투쟁의 노래를 대신하여 여과없이 술술 흘러나온다.


좀 과장스럽기는 해도 20대 이후의 내 삶은 노래와 함께 흘러왔고, 그것은 곧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한 역사이기도 했다. 우리가 부르는 투쟁의 노래들도 다채롭고 풍성해지고 또 분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내 삶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노동운동의 역동성이 퇴화되고 있다는 한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혁명의 노래라고 해도 우리가 함께 부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금 내 삶이 동지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로 채워지기를 고대한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고 밤하늘의 정적을 깼던 그 옛날의 술판 하나가 불현듯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2009.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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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유서] 에 관련된 글.

 

=미디어충청(http://cmedia.or.kr)에 오늘 기고한 것.....

 

 

민주노총 지도부 조문 유감

다시 두 통의 유서를 아프게 읽으며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40대의 후반에 작고한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은 죽음이 갖는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서 죽음을 애도하는 정치, 사회적인 근원을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며, 그의 육체가 완전히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추모의 열기는 그에 대한 기억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뜨겁고, 또한 그의 죽음이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것은 더욱 커지거나 줄어든다. 젊은 연예인의 자살이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나, 그런 의미에서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니까 지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한 국민적 추모의 열기는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의 급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열광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큰 충격이고 슬픔일 수 있으며, 누구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애도할 수 있다. 비록 모양새는 자살이지만 많은 국민들은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을 괴롭혀서 살해’했다고 믿고 있으며 서슴없이 그렇게 말하고들 있다. 더 부패한 정권이 전직 대통령의 ‘옥에 티’를 압박하여 못 견디게 하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대중적인 공분은 이명박 정부 아래 자신들이 15개월여 동안 겪은 핍박과 굴종의 경험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응축하고 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죽은 대통령의 유령이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2004년 탄핵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를 심각하고 강력하게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른바 인물 중심의 ‘3김 정치’ 시대를 종식하고 탈권위주의의 시대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 내부의 공고한 시스템으로 구축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봉하 마을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 아닌가. 양 극단의 사이를 채우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 특히 노동운동진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급변하는 흐름에 동요하거나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제대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수년간 민주노조진영은 상층부의 잇따른 비리와 성폭력 사건 등으로 말미암아 혁신해야 할 대상으로 부각되었고, 정부와 언론의 민주노조 죽이기 공세는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 집요한 공격이 일정하게 성공한 것일까, 현 시점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은 안타깝게도 노동자 민중의 희망이 아니며, 미래의 대안도 아니다. 이러한 때, 범국민적인 추도의 열기가 아무리 뜨겁더라도 노동운동진영이 그것에 편승하여 섣불리 부드러운 화해의 손길을 내밀다가는 악수와 공감을 얻기는커녕 내부의 상처를 헤집고 억울함에 사무치는 통곡소리를 더욱 크게 할 뿐이다.

“한 소중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늘, 그것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크게 진척시킨 전직 대통령인데, 애도 성명도 내지 말고 조문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혹여 이렇게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인 추모의 열기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민중운동진영이나 민주노조진영이 조직의 이름을 걸고 죽음에 대한 예의를 빌미로 자기 조직의 정체성을 해치는 행위를 합리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역대 정권에서 죽어간 수많은 혼백들을 일일이 불러대지는 않더라도, 용산참사로 숨진 시민들 5명의 비통한 외침과 정권의 탄압에 자결로 맞선 노동자 박종태의 처절한 절규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 온 국민의 애도에 둘러싸인 전직 대통령의 영전에 국화꽃 한 송이 더 바치는 것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외롭게 떠돌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영혼을 달래고 그 뜻을 기리고 이 땅 위에서 구현하는 일이다.

나는 민주노조운동의 간부들에게 ‘특별한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와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가 남긴 유서를 다시 읽어 보라고 감히 권한다. 온 국민이 애도하는 ‘특별한 사람’의 유서에는 한 개인의 상처와 고통만이 크게 차지하고 있지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유서에는 이 땅을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 민중의 상처와 고통이 오롯이 배어있다. ‘특별한 사람’은 국익을 내걸고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고, 비정규악법을 강제하고, 한미FTA를 밀어붙였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단이 국익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유서는 국익의 근본이 노동자 민중의 행복한 삶에 있음을 강조하고 그것을 죽음으로 실천했다. 나는 감히 주장한다. 유서를 통해서 나타난,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의 자세로 견주어 보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였지만 ‘특별한 사람’은 그저 평범한 개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난 이 땅 소수의 ‘특별한 사람’보다 다수의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이끌고 가는 것이라고 또다시 확인한다.

노파심에 한마디 더 하겠다. 혹시라도 민주노조의 이름으로 봉하 마을에 가거들랑, ‘특별한 사람’에 대해 남몰래 보냈던 경외심은 버리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그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투쟁에 대한 다짐과 각오를 단단히 벼리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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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

미디어충청(cmedia.or.kr)에 기고한 글...

민영화가 만사형통이라고? 이명박 정부의 고질병!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

2009-05-20 16시05분 이성우


조장(助長): 급하게 서두르다가 일을 망친다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힘을 도와서 더 자라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원래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모내기를 하고 나서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서 논에 나갔다.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농부는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잡아 빼올렸다.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벼의 순을 빼서 더 자라게 했노라고 얘기했다. 식구들이 기겁하여 논에 달려가 보니 벼는 이미 하얗게 말라 죽었다.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상(上)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급하게 서두르다가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GLP시험기관: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기능과 역할
안전성평가연구소(Korea Institute of Toxicology, KIT)는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에 속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안전성평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관련 분야 전문 시험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보건향상과 인류복지 증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02년 1월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센터를 모태로 하여 설립되었다. ‘안전성평가연구’라는 것은 ‘신약이나 화학물질 등이 인간의 건강이나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비임상적인 방법으로 시험 또는 연구하는 분야’로 풀어쓸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안전성평가연구소가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쉽게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하는 일을 간추려 보자.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약으로서 가능성이 있는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그 약효와 독성 등을 검증해야 한다. 미생물, 세포, 동물(쥐, 개, 원숭이 등)을 이용해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약효와 독성을 평가하는 시험을 비임상시험이라고 한다. 비임상시험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약효와 독성을 파악하기 때문에 신약개발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바로 비임상시험을 전문으로 하는 유일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또 신약 후보물질은 아니지만 새로운 농약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시험 등 안전성평가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안전성평가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GLP(Good Laboratory Practices, 우수실험실운영기준)를 준수해야 한다. GLP는 의약품, 농약, 화학물질 등의 안전성평가를 위하여 실시하는 각종 시험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운영체계, 인원, 장비 및 시설)을 규정함으로써 전반적인 시험과정 및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말한다. GLP기준을 충족하는 시험기관이 되려면 상당한 시설투자와 전문인력 양성과 운영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현실
정부가 2001년 12월 안전성평가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비록 늦었지만 GLP 시험기관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7년간 정부는 안전성평가연구소에 1천여억원의 연구자금을 지원해 왔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일본의 공인 GLP 적격시험기관, OECD 회원국 간 안전성 시험자료 인정기관, AAALAC Intl(국제실험동물관리인증협회)의 아시아 최초 적격시험기관 인증 등을 잇달아 받으며 국제적 안전성시험연구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2006년 현재 국내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안전성평가시험의 82.5%가 해외 시험기관에 위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전성평가연구소는 2005년 미국 FDA의 사찰을 받았으나 아직 보류 중이다(PENDING). 국제적인 GLP수탁기관만 보더라도 미국 80여개, 일본 40여개, 유럽 20여개 등이 존재하지만 국내에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전체 인력을 다 합쳐도 기껏 700여명으로, 미국의 코반스(9,000명)나 찰스리버(8,500명)의 7-8% 수준이다.

반면에 국내 연구개발비가 늘어나고 신약 등 신물질의 개발이 증가하고 있어서 국내 GLP 시험기관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GLP시험의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으로 3조원에 달하고 연평균 12.6%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국내 시장 규모는 1700억원에 달하고 연평균 34%의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무지와 비전문성: 갑작스런 민영화 논란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경제부가 갑작스럽게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크게 충격을 받고 있다. 2008년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KAIST의 강제통합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이후 전체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2010년까지의 중장기과제로 연구하기로 했는데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는 그러한 정부의 기존 방침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는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설립 당시부터 민간 GLP시험기관으로 발전한다는 전제를 갖고 출범했기 때문에 민영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민영화 문제는 특정한 기관의 입장보다 앞서서 그것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지 우선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차세대 동력산업으로서의 보건산업의 핵심으로 GLP시험기관을 주목하고 있는 반면 지식경제부는 국제적 수준의 유일한 GLP시험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를 민영화하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 부처끼리 엇박자를 내고 있다. 아직까지 GLP시험기관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마스터플랜조차 발표된 적이 없다. 지식경제부가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중장기 발전전망을 세우는 것을 갖고 고민하지 않고 민영화를 전제로 한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 자체가 자신들의 GLP시험기관에 대한 무지와 비전문성을 실토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당장 민영화된다면 이미 국내 시장에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인 GLP수탁기관과 최근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계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GLP기관에 의한 국내 시장의 잠식은 막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곧 정부가 지난 7년간 지원하여 성장해온 비임상시험분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국제 경쟁에서의 탈락과 아울러 수천억대 외화유출의 가속화로 나타날 것이다.

과학기술노동자들, 투쟁을 시작하다
그러나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사용자들은 단계적이고 점진적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민영화 추진을 방조하고 있다. 위기를 느낀 안전성평가연구소 종사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위원회(투쟁위원회, 위원장 김광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화학연구원지부장)>를 구성하여 투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와 사용자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가 촉발한 셈이다.

투쟁위원회는 5월 11일부터 출근투쟁을 시작했고, 5월 19일에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기자회견과 겸하여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위원회 출정식’을 개최하였다. 투쟁위원회는 지식경제부와 산업기술연구회가 GLP시험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독립법인화 추진 방향이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 강화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약개발 인프라 강화와 GLP시험 기술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국내 관련 산업에 대한 기술지원 역할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약개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GLP시험기관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현장의 과학기술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그것을 외면하고 이미 결정된 방침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를 끝내 밀어붙인다면, 지식경제부는 글머리에 인용했던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고사를 낳은 송나라 농부와 무엇이 다르랴. 한번 망친 농사는 내년 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한번 망친 과학기술정책은 10년, 20년을 노력해도 만회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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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신임 집행부에게 바란다

오늘부터 우리 연맹 새 집행부의 임기가 시작된다.

누가 쓰라고 해서 써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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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을 기억하라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보자들이 내세웠던 공약을 잊고 산다. 자신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두 개는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연맹의 선거에서 제시되는 공약은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온전하게 기억하고 늘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임기 2년은(그 임기를 다 채울 욕심도 없다고 했지만) 공약을 구체화하고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다만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현재의 연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버리고 잊어라.


제대로 된 총력투쟁을 조직하자

고용불안,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 확대, 연금제도 개악, 공공기관 사유화·통폐합·경영효율화, 그 어떤 투쟁과제라도 적당히 싸워서 지켜낼 것은 없다. 사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노동자들이 벌이는 모든 투쟁은 목숨을 거는 총력투쟁일 수밖에 없다. 총력투쟁은 기본이고 총파업투쟁은 여러 전술 중의 하나인데, 파업을 못하면 총력투쟁으로 포장하는 것이 고질이 되었다. 총력투쟁이든 파업투쟁이든 당위적인 결의와 획일적 지침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뼈저리게 경험했다. 연맹 집행부가 전국을 구석구석 누비면서 현장간부들을 만나고 직접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물론, 두 산업노조와 직할협의회로 나눠진 상황에서 효율적인 역할 분담은 필요하다.


통합산별의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자

올바른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투쟁은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행의 법과 제도는 산별노조의 교섭과 투쟁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도리어 발목을 잡는 형편이다. 게다가 복수노조 교섭창구 일원화에 대한 정부의 방침도 기업단위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서 산별노조는 그야말로 투쟁의 한 길로 가야 하는 처지이다. 직할협의회로 느슨하게 엮인 노조들이 안팎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산별 건설에 함께 하도록 새 집행부는 명쾌하고 설득력있는 전망을 조속히 만들어내야 한다.


작은 소리를 귀담아 듣자

연맹을 이루는 노동조합의 업종은 매우 다양하고 규모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모든 노동조합에 대의원을 배정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연맹까지 전달되기는 쉽지 않다. 연맹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려면 중앙집행위원회의 성원이 될 정도로 큰 조직이거나 투쟁을 아주 독하게(크게 또는 오래) 해야 한다. 현장에서 웅성거리는 작은 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연맹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예를 들면, 현장옴부즈만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에게 철저하자

연맹 집행부는 임기 중에 연맹이 벌이는 모든 사업의 공과에 대해서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성공은 남한테 넘기더라도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 실패한 사업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자. 실패가 두려워서 계획한 사업 추진을 머뭇거리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자기만족적이거나 평가만을 위한 사업평가가 아니라 다음 사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평가를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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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를 집대성한 특별법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3): 특례를 집대성한 특별법안


과학으로 포장한 종합선물세트

정부가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벨트)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총 3,000명 규모로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ABSI)을 설립한다. 대형연구시설로서 중이온가속기 설치를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지속성장 도시 조성을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구축한다. 과학과 문화예술이 융합된 국제적 도시환경을 조성한다. 기초과학 거점을 조성하고 지역연구거점과 네트워크화한다. 이만하면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 최대의 종합선물세트이다. 그런 까닭일까, 1월 30일에 열린 특별법 공청회에서는 ‘세계에 사례가 없다’, ‘모델이 없다’는 말들이 여러 번 나왔다. 공청회 발제자는 “1960년대에 박정희씨가 KIST와 KDI를 설립한 것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조치”라고 찬양했다.

문제는 내용이고 질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불도 되지 않던 시대에 정부가 했던 역할을 2만불 시대에 와서도 똑같이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선진국 중에서 어떤 나라가 불과 5년 만에 국제+과학+비즈니스를 모두 만족하는 도시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는가. 실리콘밸리, 보스턴클러스터 등 정부가 곧잘 인용하는 외국 사례들도 국가적 필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과학’과 ‘비즈니스’를 융합하겠다는 명분으로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던 대덕연구개발특구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대에 부응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특별법 중의 특별법

특별법안의 내용을 보자. ‘벨트’ 관련 계획은 다른 법률에 따른 보존 및 개발계획보다 우선하고, ‘벨트’에 대하여 규제를 완화하기 위하여 특례를 정하는 규정은 다른 법령에 우선하여 적용한다(제4조). 기초과학연구원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정출연법)’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제11조). 기초과학연구원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확정된 5개년 계획에 따라 안정적으로 연구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을 뿐만 아니라 이 예산을 다음 해로 이월할 수도 있다(제15조). 그야말로 특별법 중의 특별법이다.

‘정출연법’과 ‘공운법’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근거가 되는 법으로 원성을 사왔다. 다년도 연구예산지원제도는 오랫동안 출연연구기관에서 요구했던 제도이다. 연구현장의 오랜 희망과 숙원을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새로 설립하는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해서는 이렇게 특혜를 주겠다고 한다. 과도한 특혜는 기존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사기를 위축시킬 뿐이다. 한편, 계획대로 한다면 2015년 이후 기초과학연구원은 연구인력 3천명에 한해 예산이 6500억원에 이르러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같은 규모의 연구기관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인데, 그간 정부의 행태로 봐서는 이런 매머드급 연구기관에 무조건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스럽다.

앞의 특례들은 그래도 약과이다. 특별법안 49개 조항 중에서 25개 조항이 외국인과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무한특례를 보장하는 내용들이다. 국세와 지방세 감면, 임대 부지 조성과 임대료 감면, 의료시설·교육시설·주택 등 각종 편의시설의 설치와 자금 지원, 국가유공자나 장애인 우선고용 의무 면제, 유급휴일 대신에 무급휴일 부여, 근로자파견대상 업무 확대 또는 연장, 외국어 서비스 제공, 외국인에 대해 민영주택 우선 공급, 외국인 자녀 전용 보육시설 설치와 보육비 보조, 외국인학교 설립과 운영 지원, 외국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 외국인 진료병원 지정과 운영,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 개설, 이 밖에도 이루 열거할 수도 없는 많은 특례와 특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의 기초과학 연구역량을 대대적으로 확충한다면서 외국인 투자에만 매달리는 법안을 나열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과학기술 육성이 아니라 외국인투자유치법

결국 국제 수준의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한다는 취지는 퇴색되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을 등에 업은 국내 부자들을 대거 유치하려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의 판박이다. 공교롭게도 특별법 공청회가 열린 1월 30일은 경제자유구역법이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정 공포된 날이었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의 특별법 전환에 따라 경제자유구역이 ‘규제 없는 경제특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면서 ‘외국인투자 유치활동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보면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이후 6년간 정부의 갖가지 특혜 세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투자 유치가 미미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셈이다.

갖가지 특례로 화려하게 치장한 특별법을 보는 과학기술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태릉선수촌 짓고는 올림픽 메달 획득을 외치듯이 ‘벨트’를 내세워 모든 과학기술자들에게 노벨상을 향해 달려가라고 다그치는 격이니 말이다. ‘벨트’라는 낯선 이름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땅에서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과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선진화, 구조조정, 경영효율화, 그 어떤 이름으로든, 제발 더 이상 과학기술자들을 흔들지 마라. (계속됨. 2009. 2. 17)

-미디어충청에 기고하고, 조금 줄여서 <공공연구24시>에 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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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육성부터 제대로 하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2): 기초과학 육성부터 제대로 하라

 

- <미디어충청>에 기고하고 <공공연구24시>에 싣게 될 것...

‘과학’은 실종되고 ‘사업(비)’ 쟁탈전만

2월 10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가 공언한 대로 법안은 2월 13일 이전에 국회로 넘겨질 전망이다. 마치 아무런 저항도 없는 듯, 아니 있더라도 무시하겠다는 속전속결의 의지를 갖고 정부는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아직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벨트)를 공론화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고 ‘벨트’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2차례의 공청회를 비롯하여 형식적으로 진행한 의견수렴과정에서 과학기술계의 우려와 반발은 작지 않았다. 특히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본 회의를 앞두고 작년 12월 29일에 있었던 운영위원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보면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기초과학과 비즈니스벨트라는 이질적 계획의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사업화와 관계없는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이므로 녹색기술개발 연구를 포함해서는 안되며 기술지주회사도 설립할 필요없다’, ‘과학사업화는 개념상 오해 소지가 있으므로 빼는 것이 좋다’ 등의 지적은 한 마디로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관심있는 일반 국민들의 냉소적 반응들과 서로 통한다. ‘사업화(비즈니스)’를 목표로 하는 연구가 무슨 ‘기초과학’이냐고 하는!

정치권은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경험적으로 보면 ‘과학’이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정부의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서 국회에서 심도깊은 논의를 한 적이 그다지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입지 선정이나 예산 배정을 둘러싼 정치 현안으로만 접근할 뿐이다. 따라서 특별법안이 국회에 넘어가면 별다른 공방없이 수십 건의 법안 중의 하나로 처리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은 ‘벨트’에 2015년까지 투입되는 3조 5487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벌써부터 나서고 있다. 충청권 지자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충청권 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벨트’의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를 충청권으로 명기하지 않는다고 거듭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요컨대, 정부가 내세운 ‘기초과학’이라는 뿌리는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비’라는 열매만 갖고 쟁탈전이 벌어질 판이다.

기초과학은 속전속결로 되지 않는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안)’이 심의, 확정된 제29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본회의(1/13)에서 통과된 안건 중에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안)’이 있다. 기초과학연구진흥법 제5조에 따라 5년마다 정부가 기초연구 진흥을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인데, 2005년에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한 5년간의 계획(’06-’10)을 이명박 정부의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반영하여 이번에 전면 수정(’08-’12)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기초과학 육성 의지가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에는 ‘벨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과학연구원 설립과 중이온가속기 설치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에는 중이온가속기에 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에 관한 내용만 달랑 1쪽 차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중이온가속기 설치의 필요성을 구구절절 강조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과는 달리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에는 “초대형연구시설은 독자 건설보다 국제공동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기존의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성능향상을 지원하고 기초과학연구원에 틈새 또는 전략부문 대형연구시설 건설을 검토”한다는 단서는 붙어있다. 얼마나 졸속적으로 ‘벨트’를 추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학부터 지며리(차분하고 꾸준하게) 챙겨라

과학기술은 한 나라가 축적한 지식체계와 기술력의 총화이다. 단번에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전 분야에 걸쳐 차근차근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노벨상 수상’과 ‘기초과학 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완성했다고 풍선을 띄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불과 1달 전에 정부의 보도자료를 베끼다시피 하면서 ‘벨트’에 대해서 호들갑을 떨었던 언론들은 특별법안의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에도 그저 짤막한 반응들만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물불 가리지 않는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무관심과 이해 당사자들의 다툼, 그리고 과학기술계의 냉소 속에 ‘벨트’를 단기간에 맘대로 밀어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벨트’가 정녕 과학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과학기술계의 합의와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지 않는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속)  (200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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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트, 그게 도대체 뭐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만 갖고 벌써 세번째 글을 쓴다.

그 중에 미디어충청에 3-4번 연재하게 될 내용을 여기에도 올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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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1): 벨트, 그게 도대체 뭐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정부

정부가 ‘대덕연구단지 조성 이래 35년 만에 과학기술계 최대의 사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이 지난 1월 13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9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에서 확정되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충청권 공약으로 내세우고, 작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보고된 이후로는 이렇다 할 논의가 없이 표류하는 듯하더니, 불과 석 달 남짓한 논의를 거쳐 2015년까지 총 3조5천487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월 30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특별법(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국과위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이 확정되고 나서 불과 17일만의 일이다. 정부가 얼마나 다급했던지, 1월 23일에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나서 2월 2일까지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다. 공고일과 마감일, 설 연휴와 주말을 제외하고 나면 겨우 3일에 불과한데, 다른 법령의 입법예고기간과 견주어 보면 턱없이 짧다. 2월 초순에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서 2월 13일이면 국회로 이송한다고 하니,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고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이것이 과학기술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서 국민적 관심과 성원 속에 추진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단기적인 업적 부풀리기에 급급하여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낯선 이름

(거점지구) 기초과학, 녹색지식산업, 교육, 글로벌 정주환경 등을 확충하여 기초과학 거점으로 육성

 

(기능지구) 대학, 연구소, 산업단지, 응용개발, 생산기지, 물류기능과 연계하여 시너지 제고

 

<자료: 교육과학기술부>

‘벨트’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는데, 과연 무엇일까? 연구개발 기능을 담당하는 대학과 연구기관, 생산기능을 담당하는 기업, 각종 지원 기능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탈과 컨설팅 등의 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정보·지식의 공유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자 조성하는 것이라면 ‘클러스터(cluster)’라는 개념이 이미 있는데, 아마도 ‘클러스터’를 더 선정적으로 확장하고픈 욕구가 반영된 것이 ‘벨트’가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란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를 연계한 구역으로 ‘세계적인 기초연구시설과 우수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하고 과학기능·비즈니스기능이 복합된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거점지구는 기초연구분야의 거점을 구축하고자 집중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기능지구는 거점지구와 연계하여 기초연구, 응용개발연구, 산업화 등 일련의 시너지효과를 제고하고자 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결국 과학과 비즈니스(사업)를 융합하기 위해서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지역(신도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벨트’는 특정한 지역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거점지구에 설립될 기초과학연구원의 이른바 Site-Lab을 통해서 전국 각지와 연결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2015년부터 50개 연구단(Site-Lab)을 둘 계획으로, 그 중에서 25개 연구단은 교육·연구·산업기능을 갖춘 지역에 설치하여 국내의 다른 연구기관 또는 대학과 공동연구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입지 선정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Site-Lab 운영에 투입되는 연간 6,500억원의 예산을 둘러싸고 각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경제자유구역과 혁신도시를 놓고 벌였던 다툼보다 더 치열한 각축전을 예고하고 있다. (2009. 2. 3.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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