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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스터디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 보셔요^^.
근데 길어서 보시기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앞으로도 스터디 끝날 때까지 계속 정리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미술사』(E.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09)
12장. 현실성의 정복(15세기 초)
▲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 ▼
- 그리스 고전의 합리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그리스 시대에 유행했던 자연세계에 대한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사상이 다시 등장하였다. 이 사상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1460년 마케도니아에서 피렌체로 여러 그리스 문헌이 보내져서 코시코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그것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헤르메스 전집」(Corpus Hermeticum)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로 하여금 이것을 번역하게 했다. 피치노와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로 알려진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모세와 동 시대 사람인 이집트 신부로서 실제 인물이고, 기독교의 예언자이며, 플라톤과 플라톤주의도 이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역사적 실수는 르네상스 시대에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 (『과학사신론』(김영식,임형순 공저, 다산출판사, 2008), 71쪽)
- 헤르메스주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매우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의 한 지류로서 중세의 마술적, 연금술적 사조와 연관되어 우주에 존재하는 신비적인 힘을 인정하고 인간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연에 대한 근대적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헤르메스주의는 우주와 인간이 연관되어 있다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당시는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영향으로 ‘존재의 큰 사슬’과 ‘대우주-소우주 유비관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존재의 큰 사슬’ 이론은 이 사슬의 한 쪽 끝에 신과 천사들이 있고, 다른 한 쪽 끝에 인간과 지상세계가 있으며, 이 둘이 거대한 사슬로 묶여 있다는 이론이다. 당시 사람들은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여러 상관관계들을 설명함으로써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추구했고 점성술은 그 관계들을 기초로 발전하게 되었다.
- 헤르메스주의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우주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신성한 신의 영역이었다. 반면에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신비적 힘들의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되었고, 네트워크 한 부분인 인간과 대우주가 서로 영향을 미쳤다. 즉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인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무능력자였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무능력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제하고 변형시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인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 널리 퍼진 헤르메스주의는 동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는 신비주의 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16~17세기에 베이컨과 뉴턴은 신비주의 사상과 연금술에 심취했었다. 기존에 수용된 신비주의가 자연의 초월성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념이었다면, 헤르메스주의는 구사상 체계를 타파하는 새로운 지적 에너지로서 자연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연구하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 플라톤의 만물계(현상계)의 복잡한 현상들이 이데아 세계의 아주 단순한 구조로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신비화의 이면에는 복잡하게만 보이는 우주 현상을 단순한 우주 구조의 원리, 법칙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과학적인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헤르메스주의(또는 신플라톤주의)의 상호 영향과 관련된 신비함은 플라톤의 <관여 또는 분유>개념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관여 또는 분유 개념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당히 비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이 장에서의 현실성(또는 사실성)의 의미 ▼
- 이 현실성은 단순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다. 헤르메티시즘에 따르는 현실이다. 즉 중세 때처럼 신의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지상세계로서의 현실계가 아니라 신의 세계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현실이다.
▲ 르네상스가 서양 미술사에서 가지는 의미 ▼
-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 고트 족과 반달 족 같은 게르만 종족이 침입하여 로마가 멸망한 지 700년이 지나서야 고딕 양식이라고 부르는 미술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 고딕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인들에 의해 <야만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 이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은 야만적인 고딕 양식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인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 피렌체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계획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하였다.
▲ 젊은 피렌체 예술가 집단의 지도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lippo Brunelleschi:1377-1466) ▼
- 피렌체 대성당의 돔(dome) 구조의 완성(도판146, <피렌체 대성당의 돔>, 225쪽 참조)
- 중세 시대에는 픞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라서 지상계와 천상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운동의 형태로 볼 때, 천상계의 구조는 원 운동 구조(그리하여 천상계에서 원 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직선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로 지상계의 구조는 수직 자유낙하 운동으로서의 직선 운동 구조(그리하여 지상계에서 직선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원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다.
- 그러므로 중세 고딕 양식의 건축들은 거의 모두가 직선 형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 형태나 곡선 형태의 구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그러나 지상계와 천상계의 상호 결합과 영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브루넬레스키는 직선과 원형태가 결합된 곡선 형태의 돔 구조를 지붕(지상계와 천상계가 만나는 지점)에 적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아마도 17C 운동 역학의 포물선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Masaccio : 1401-28)의 원근법 ▼
- 원근법은 현실 세계, 즉 3차원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방법인데, 이는 수학적(이 당시까지만 해도 수학은 천상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으로서 주로 수적 비율과 연관된 기하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방식에 의거한 것이다.
- 이 원근법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적용한 것(즉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을 적용한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삼각형 구조이다.
(선의 이데아)
(이데아1) (이데아2)
** 이데아1과 이데아2는 대립쌍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삼각형 구조는 2차원적인, 즉 평면적인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이 삼각형 구조는 현실계에 <관여 또는 분유>를 통해 다양한 입체적 형태로 나타난다(플라톤은 우주의 물질 형상은 바로 정다면체의 기하학적 도형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불은 정4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공기는 정8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물은 정20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흙은 정6면체로 이루어져 …… 매우 안정적이다. …… 기하학에는 이 네 가지 정다면체 이외에 또 하나의 정다면체가 주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는 또 하나의 원소가 있어야 한다. 즉 제5원소는 정12면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둥글게 생긴 형태로서 하늘을 구성하고 있다).
- 그런데 이 3차원의 현실 세계는 2차원의 이데아 계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다.
- 도판 149(마사초 작, <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를 살펴보자. 예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 요한의 위치와 헌납자들인 상인들의 위치는 분리되어 있고, 상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지상계(현실계)이고, 그 뒤는 천상계(이데아계)이다. 그러나 천상계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손으로 만지면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 도판 149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비견되는 신(The One)과 예수, 그리고 그 밑에, 대립쌍에 비견되는 성모 마리아(여성)와 성 요한(남성), 그리고 더 밑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관여 또는 분유 형태로서의 상인 부부가 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2차원적으로도, 그리고 원근법에 따라 3차원적으로도 삼각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 이렇게 볼 때 원근법은 기하학적 도형상 삼각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각형의 2점의 지상계로부터 삼각형의 나머지 1점의 천상계에 이르는 모습이 바로 이 장에서 말하는 현실이고, 그 현실은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 성모가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단순한 제스처는 현실계(지상계)와 이데아계(천상계) 사이의 상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하고 할 수 있다. 현실계는 운동 변화하는 세계인데, 이 운동 변화는 대단히 현란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계늬 운동 변화가 이데아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이데아계가 현실계처럼 현란하고 복잡한 운동 변화를 겪는 세계는 아니다. 그러한 운동 변화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상호 영향성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데아는 가장 단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 도나텔로(Donatello : 1386?-1466) - 브루넬레스키 일파 중 가장 위대한 조각가 ▼
- 도판 151, 150(도나텔로 작, <성게오르기우스>)을 살펴보자. 여기에도 범신론적인 헤르메티시즘(헤르메스주의)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중세에서의 지상계와 천상계의 분리를 통해서 볼 때, 상인들은 거의 무표정한 고요한 아름다움(도판127 참조)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천상계의 성인들은 지상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희로애락 등의 감정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 게오르기우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결의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천상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과 힘찬 기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 도판 152(도나텔로 작, <헤롯왕의 잔치>)를 살펴보자. 도나텔로는 여기에서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헤롯왕이 있는 연회장과 악사가 있는 회랑,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의 위치를 원근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세 개의 방을 플라톤의 사회의 세 계급을 분리한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방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왕실의 연회실은 플라톤의 이데아 계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이데아 계는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날 수도 없거니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연회실 안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표현들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포와 갑작스러운 혼돈의 표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교황청과 중세 가톨릭의 권위 상실로 인한 그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살로메의 어머니와 연회석 사이에 <큰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큰 공백>은 곧 <빈 공간>을 의미한다. 중세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의 여향으로 이 세계 전체, 즉 우주 전체는 빈 공간이 없이 꽉 차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빈 공간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운동 변화는 곧 신분제 질서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5C 전까지의 모든 예술 작품에는 빈 공간(여백)을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헤르메티시즘의 영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빈 공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빈 공간은 나중에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알프스 북쪽의 조각가 클라우스 슬뤼테르(Claus Sluter) ▼
- 당시의 부유하고 번창하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 디종(Dijon)에서 1380년 경부터 1405년까지 일한 사람이다.
- 도판 154를 살펴보자.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예수의 수난을 예언했던 예언자인 다니엘과 이사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도판 151, 152)에서의 성 게오르기우스처럼 인상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 1390?-1441) - 북유럽에서 사실성(현실성)의 정복을 최종적으로 완수한 사람 ▼
- 얀 반 에이크 역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와는 달리 사실적이고 세속적인 표현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신플라톤주의의 범신론적 성격, 더 나아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 성격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은 개개의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인데, 개개의 사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세한 묘사는 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도판 155를 살펴보자. 일단 전체적으로 볼 때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들의 존재 구조가 선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대립 쌍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쌍으로 대비되어 이루어져 있다. 위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 그림도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범신론이 가지는 해방 성격에 따라, 아래 그림을 보면 영주 귀족들과 기사, 농노들과 같은 평민들이 수평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범신론의 성격에 따라 The One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세속 인간의 다양한 표정처럼 다양하다. 도판 141(p.219, 100년 전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제단화)와 비교해 보라.
- 도판 156도 마찬가지이다.
- 도판 157을 보게 되면 생생하고 구체적이면서 세부적인 묘사가 눈에 띄는데 이것도 다 범신론적인 성격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범신론에 의해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하는 것과 깊은 연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원근법도 사용하고 있다.
- 도판 158(<아르놀피리의 약혼>) 이 그림 역시도 얀 반 에이크가 아르놀피리와 그의 신부 잔느 드 쉬라리의 약혼을 기록화처럼 사실성에 기초해 그린 그림이다. 두 인물의 세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특히 강아지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도판 160 참조). 또한 거울에 반사된 모습 역시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거울 속에 얀 반 에이크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거울 속의 그림은 원근법에 의해 처리돼 있다(도판 158 참조).
▲ 스위스 화가 콘라드 비츠(Conrad Witz : 1400?-1446?) ▼
- 도판 161(<제자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 하신 기적>)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대단히 친숙해 보이는 느낌을 지닌다. 그 이유는 실제 제네바 호수와 살레브 산을 배경으로 그렸으며 실제 어부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성경에서 이 호수는 티베리아 해로 나온다). 중세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면 곰브리치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티베리아 해를 상투적인 몇 개의 물결 선으로 처리했을 것이며, 예수의 모습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이는 마사초의 도판 149(<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의 인물상을 연상시킨다)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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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는 이해와 대립하는 것입니다. 당위는 이런 것이죠.린도스 사람 에우아고라스의 아들 클레오불로스의 말
1. 적도가 최선
2. 아버지를 공경할 것
3. 신체와 혼을 유지할 것
4. 즐겨 듣는 자가 되고 말을 많이 하는 자가 되지 말 것
5. 무지보다는 박식을
6. 불길한 말 듣기를 삼갈 것
7. 덕과는 친하고, 악과는 남이 되라
8. 불의를 미워하고 경건을 지킬 것
9. 시민들에게 최선의 것을 충고할 것
10. 쾌락을 이겨낼 것
반면 이해는 이런 것입니다.
플라톤(DK10A2)
저로서는 바로 그것, 즉 '자신을 아는 것'이 절제라고 얼추 말하지요, 또 나도 그러한 잠언을 델포이 신전에 헌정한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와 "절제하라"는 것은 - 그 잠언이 의미하는 바나, 또 내가 주장하는 것처럼 - 사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아마도 어떤 이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저로서는 '무엇이든 지나치지 말라', '보증, 그 곁에 재앙'과 같은 후대의 잠언을 헌정한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잠언을 하나의 충고라고 생각할 뿐, 신전에 들어서는 자들을 위한 신의 인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들 역시 아주 유익한 조언들을 신에게 바치려고 그러한 잠언들을 새겨 바쳤던 것이지요.
카르미데스 16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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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등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문들이 지금의 학문처럼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을 이해해야하는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에 가는데, 당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강의와 토론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학자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플라톤 밑에서 학문을 정진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때문에 아테네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지만, <정치학> 집필과 강의를 통해 학문적 차원에서 정치에 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제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관심을 가지는 질문은 무엇을 탐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탐구하느냐입니다. 논리학은 탐구의 방법론입니다. 그의 논리적 분석은 실재(reality)를 개념적으로 재생산하는 사고에 대한 분석입니다. 논리적 분석은 궁극적으로 실재와 진리 인식을 목적으로 합니다.
자연학은 자연의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자기 속에 갖고 있는 실체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형이상학에서 규정합니다. 철학이 질료와 분리되는 실체를 다루는데 비해, 자연학은 질료와 분리될 수 없는 실체를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을 통해 자연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의 본질인 운동 또는 변화의 고찰을 중심으로 그 조건과 관계와 원인에 대해 논하고, 그것과 더불어 무한과 장소, 시간을 다룹니다. 사물의 생성 및 소멸과 질료적 구조를 다루는 학문이 자연학, 즉 현재의 과학입니다. 인간도 자연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모든 것이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목적 telos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은 본성 혹은 본질이라는 뜻도 있죠. 만사가 요행이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원인일 뿐 자체적인 원인에 앞설 수 없다고 합니다. 자연은 방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질료로 여겨지기도 하고 형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 생성, 변화, 운동은 질료가 그 목적인 형상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해석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자연은 단순히 세계에 내재하는 운동의 원리일 뿐 아니라, 세계와 사물의 목적을 위한 활동 원리이기도 합니다.
형이상학에서는 자연 다음으로 오는 것들, 존재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의 형이상학은 존재의 우선적인 범주인 실체와 관계합니다. 실체란 무엇인가. 그에게는 개별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실체입니다. 그러나 그가 개별자가 진정한 실체이자 유일하게 진정한 실체라고 말할 때, 그는 보편자가 그 자체로서 분리된 실체라는 플라톤주의적 독트린을 거부하는 것이지, 사물 안에 있는 형상적 또는 종적 요소라는 의미에서의 보편자가 실재적(real)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맨 처음을 좋음과 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놀랍게도 최고선과 정치학에 대해 말합니다. 윤리학인데 왜 정치학 얘기를 하느냐. 좋음에는 최상의 좋음이 있는데 그것이 정치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정치를 못했으면서도 정치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들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정치학이 규정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정치학은 실천적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입법을 하기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학의 목적이 인간적인 좋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상의 좋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윤리학은 무엇인가, 윤리학은 직역하면 품성, 성격에 관한 논의들입니다. 이것은 <윤리학>에서는 정치학으로, <정치학>에서는 거꾸로 윤리학으로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윤리학과 정치학은 같은 것입니다. 왜냐면 정치는 개인이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를 잘하려면 개인이 훌륭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윤리는 당위가 아니라 탁월함, aret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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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의 형성은 당시 그리스의 정치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시조인 에피쿠로스는 알렉산더 왕이 죽은 이후 권력투쟁이 벌어지면서 그리스는 피폐화되고 그리스를 지탱하던 중간층도 점차 빈민화됩니다. 따라서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함께 흔들렸고, 정치학이나 윤리학도 쇠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주의가 대두합니다.이것은 중국의 명말청초의 상황과 매우 비슷합니다. 명말청초는 격변기였습니다. 이민족인 청나라의 침략으로 명나라 말기의 정치 상황은 환관의 발호와 국가재정의 파탄, 격렬한 당쟁 등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이러한 비참한 정치현실과는 달리, 명대에는 상품경제의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간의 교류도 활성화되고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생활과 소비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달라진 물적 환경 앞에서 중국 봉건 통치의 기반을 떠받쳐오던 예교와 도덕 관념도 점차 변모합니다.
가치관의 변화는 명분을 상실한 유학의 교조적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을 둘러싼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성의 해방과 개성의 발견에 눈을 뜹니다. 여기에 암담한 정치 현실에 대한 환멸은 지식인들에게 염세적 은둔 풍조를 부추깁니다. 그들은 백성을 교화하고 임금을 보필하는 재도지기로서의 문학을 전면거부하고, 소품의 새로운 양식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제도의 질곡과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정면으로 고발 풍자합니다.
마찬가지로, 에피쿠로스 역시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그는 아테네에 있는 정원을 사들여서 학교를 세우고 죽을 때까지 '정원' 공동체에서 활동합니다. '정원'의 구성원은 여자와 노예는 물론 창녀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철학의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기존의 교육이나 공적인 일도 거부하고 개개인이 오로지 자신과 공동체만을 의지해서 살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아타락시아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는 외부의 자극은 적극적으로 차단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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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돌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중용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찾아봐야하는데 집에 있지만 관두고, 플라톤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절제로 해석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릴께요. 절제란 사람마다 달라요. 매달 백만원 버는 사람과 매달 천만원 버는 사람에게 절제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능력에 맞게 소비하는 것이 절제겠죠. 아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이 글을 직접 작성하셨는지, 아니면 어떤 글을 퍼오신건지, 퍼오셨다면 출처를 밝히셔야하고, 어떤 글을 읽고 그 글을 바탕으로 쓰셨다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철학사를 이해하는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급히 작성하신 것은 아닌지, 급하게 레포트를 제출해야한다면 큰 무리가 없지만 다른 사람도 보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려놓으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고요, 자신이 공부해서 아는 만큼만 말하는 것이 진보를 위한 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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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에 대한 설명도 그래요. 플라톤의 국가를 안 읽어봤지만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플라톤은 능력만 있으면 여자에게도 정치의 기회가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는 동등하지만 현실에서 여성의 본질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알고있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실제 폴리스의 정치가 여자를 배제했다고 해서, 바로 그런 점이 안타까워서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자도 능력만 있으면 정치를 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는데 저렇게 말씀하시면 혼동이 일어나죠. 그것은 공정하지 않아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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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가 금욕을 말한 것도 당시 그리스가 무역을 통해 얻은 상품과 노예들 때문에 극도의 사치와 방탕에 물들었고 그때문에 망했어요. 그래서 스토아학파가 이를테면 막대 구부리기처럼 금욕을 말했던 것이지 스토아 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비해 매우 실천적이고 도덕적, 규범적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들이었어요. 물론 그들의 한계는 시대의 한계이고 그들에게도 명백한 한계가 있지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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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는 고대 유물론자들의 영향을 받아 자연의 필연적 인과율을 거부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쾌락이란 말씀드린대로 고통의 적극적인 회피에요.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자연 현상의 구체적인 원인들에 대해서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어요. 특히 천문학에 있어서 동시대의 과학적 발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영향을 받는데, 맑스가 이 두사람 가지고 박사논문 쓰죠. 맑스도 젊었을 때는 고대 철학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그래요. 어떻게 다르냐.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크기는 무한히 다양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원자들의 모양이 무한히 다양하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원자도 존재할 것이라고 했어요.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수는 무한히 많지만, 원자의 모양은 매우 다양할 뿐 무한히 다양하지는 않다고 했어요.
그럼 이 사람들이 도구도 원시적인 상태에서 원자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요.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이 영원히 움직인다고 말할 뿐, 운동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어요.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이 자신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떨어진다고 주장했어요. 여기서 원자가 똑바로 안떨어지고 비스듬하게 떨어지는게 있는데 이것이 원자론의 엄격한 결정론을 깬다고 생각한거에요. 필연에 저항하는 자유의지.
이 정도면 소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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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님이 정리하신 규범윤리학은 당위, 이성, 남성, 필연으로 정리됩니다. 그렇다면 규범에 대립하는 것들은 당위(sollen)에 대립하는 그냥 있음(sein), 감성, 여성, 우연 등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정말 대립항일까요. 잘 생각해봅시다.당위는 그래야한다는 것입니다. 현존재가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다운 것이냐, 인간성이란 무엇이냐, 인식이 필요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밑에 있는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동등합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만나길 원합니다. 이것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람과 여자만 있지 남자와 여자가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 그 여자, 사람, 여인, 교수, 여교수, 등등
이성과 감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성도 이해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분노하는 것은 우리의 가슴에 또 다른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고대 철학자들이 이성을 강조했을까요. 당시 민중이 신화적, 종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무슨 죄목으로 극약을 먹고 죽었는지 생각해보시죠. 불경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똑같은 처벌을 받고 망명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필연과 우연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우연이란 있지 않고 단지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사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생각입니다. 사물에는 질서가 있다는것이죠. 그러나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신비로워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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