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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만 철학하는 뎌러운 세상의 철학도의 철학 취향은..ㅋㅋ..

풀소리님의 [나의 철학 취향은] 에 관련된 글.

 

 

- 철학자만 철학하는 더러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의 성향은 어떤 것인지 보았더니...

ㅋㅋ...

재미 있다^^...

 

 

** 동양 철학의 성향 **

 

 



 

무위의 실천가
| 실천, 해탈, 공空, 무위
'무위'한다고 하여, '실천'과 등지라는 법은 없다. '무위' 자체가 실천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타입의 사람들을 '무위의 실천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법칙은 없다. 세계는 변화무쌍, '변화' 자체가 천하의 도道이다. 그런 변화의 격랑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지고한 자유인은 바로 이 타입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존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라! 세계 만물, 각각에 우주가 들어있나니!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싯다르타, 장자, 원효, 장재
『철학 vs 철학』에서는?
  2장 자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지타와 싯다르타
  4장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노자와 장자
15장 깨달은 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원효와 의상
18장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장재와 주희
싯타르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두가 알다시피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즉 석가모니이다. 그를 철학자로 볼 수 있을까? 사상사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가'였던가?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 교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불교의 법을 설했던 이유도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실천'에 관한 사상이 겨냥하는 것은 사실 모두 이것에서 비롯된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싯다르타만큼 이 분야에 있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다.
[관련된 책]
장자
장자와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장자』 자체가 이야기들의 묶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장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싶다면 장자를 직접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워낙 알쏭달쏭한 말들이 많아서 그 속에 담긴 결을 이해하려면 좋은 해설서도 한 권쯤 필요할 것이다. 장자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흔히 그의 사상을 '도피적'인 것으로 알고 있거나, '신선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데, 이것은 그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동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무수한 이론들처럼 그 역시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켰다. 부, 명예, 권력 등 단일한 척도에 의해 좋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그것을 통해 무위의 삶, 자유롭게 벗어나고 재구성되는 삶을 말한 그의 철학은 삶의 적극적인 방식을 말한 것이지, 삶으로 부터의 도피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와 더불어 이 계열의 철학자들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된 책]
원효
이렇게 이름 난 사람이, 신라왕실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던 사람이 '무위의 실천가'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사상사적인 맥락에 봤을 때 그의 사상은 충분히 그럴만 한다. 원효가 종국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깊은 사유, 폭넓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과 논의조차 필요없을 정도의 실천'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알고,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고야 하는 그의 사상과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늘 민중들과 함께 춤추고, 희노애락을 나눴던 그의 면모를 만나보자!
[관련된 책]
장재
장재는 주희보다 약간 앞선 연대의 사람으로, 송나라 시대에 성립된 신유학에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는 유학자로서, 향후 유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주지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세력을 확장해온 불교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도가 사상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유학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오래전부터 중국에 전해진 전통적인 자연관, 즉 기의 흐름을 통해 세계의 유, 무가 나뉜다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 더불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상상력까지 ‘지성인’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췄다고나 할까?
[관련된 책]

 

 

 

** 서양 철학의 성향 **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
'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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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2월5일..

1.

개점 휴업한 지, 즉 포스팅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래도 이 보잘 것 없는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께 

먼저 너무 고맙다는 말쌈을 먼저 올립니다... 

어제가 입춘이었는데, 

여길 찾아주신 모든 분들 大吉하시라!!! 

 

1. 

어제가 입춘이었다는데... 

이건 봄이 살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인데... 

못내 겨울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겨울철엔 사람도 길거리에 많이 안 다녀서 

다른 계절보다는 좀 한산해서 좋았는데, 

봄이 오면 또 길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답답해진다는 느낌이... 

얼마 전 여행한 곳엔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해서 너무 좋았는데 

그곳이 자꾸 생각난다^^.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는데,

봄이 새로운 희망을 준다고들 생각하는데,

난 봄이 그닥 반갑지만 않다.

아니, 봄 자체라기보다는 서울에서의 봄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서울이 조금씩 낯설어지는 걸 보니 늙는가부다.

또 이렇게 생각하니 참 거시기하고^^...

어쩌랴 먹는 나이 인정해야지^^...

 

1. 

살살 배가 고픈데, 

또 식당 내려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가부다. 

근데 식당 내려가기 구찮다... 

날이 요렇게 좋은데, 

지난 주 놀러가서 먹고 마시고 하던 것이 자꾸 그립고나^^... 

또 언제 놀러갈꼬...^^

프랑스 사람들은 1년 일하고 돈 모아서 한 달간 뽀지게 놀러간다는데, 

나두 돈 좀 아껴 모아서 또 뽀지게 놀러가야겠다!!!^^ 

또 놀러갈 그 날을 아기다리고기다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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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에 대한 주저리 주저리...

이건 감비 님의 글(주례들)을 보고 생각이 나서 내 맘대로 주절주절대는 것이다.

 

난 평생 가야 주례 설 일이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싱글들에겐 주례 부탁이 안 들어오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고 아쉬울 것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꼭 결혼한 남자만이 주례를 서야 하는 것이다.^^ 

왜 결혼한 여성들은 주례를 서지 못하는 것일까... 

나이 지긋하신 결혼한 여성들이 주례를 서시면 

뭔가 판에 박힌 듯한 주례 말고 재미 있고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마구 전해줄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거 우리 진보넷 블로거들부터 여성 주례를 모시면 어떨까...^^? 

뭔가 색다르고 잼날 거 같다... ㅋㅋ 

 

한번 해 봅시다, 이거^^... 

 

뭐, 아님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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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유투브, 다음 등 동영상 넣기(펌글)

진보네님의 [블로그에 유투브, 다음 등 동영상 넣기] 에 관련된 글.

 

블로그에 유투브, 다음 등 동영상 넣기 추천

1. 동영상 소스 복사해오기 

 

1-1 유투브

 

유트브 사이트에 가면 왼편이 영상이고 그 오른편에 올린 사람, 파일 주소 등 여러 정보가 있죠. 그 중


 

 

URL 말고 소스 부분의 <★object 로 시작하는 걸 클릭하고 복사하세요. (★은 편의상 넣었으니 없다고 생각하세요)
 

유투브 사이트가 아니라 블로그나 까페에서 본 동영상을 퍼올 땐

 

동그란 부분을 누르고 네모난 부분의 <★object 로 시작하는 걸 클릭하고 복사하세요.

 

보면 더 좋지만 안 봐도 지장없는 내용

진보불로그에는 브라우저에 따라 object로 된 영상은 안 보일 수 있어서, object 말고 embed로 퍼오는 게 더 좋아요. 복사한 내용 중 object가 두 번 나오는데요, 맨앞에 <★object height="344" width="425">(숫자는 다를 수 있음)  라고 써있는 부분과 맨뒤에 라고 써있는 부분을 삭제해 주세요. 이 때 반드시 꺽쇠(< , >)도 삭제하셔야 해요. 자신 없으시면 그냥 놔두시고...;

 

 

 

1-2. 다음 플레이어

 

퍼가기 -> EMBED -> 복사하기 하시면 됩니당.

 

1-3 기타 등등

 

대체로 퍼가기를 누르고, HTML형식의 소스를 복사해 오는 것은 동일해요. object로 시작되거나 embed로 시작되는 것을 퍼오는 거지요.

 

 

2. 블로그에 넣기



"쓰기"를 누르면 글쓰기창 위에 회색 편집기 부분 맨 처음에 "소스"라고 있죠. 소스를 한 번 클릭하시고요, 글쓰기창에 1번에서 복사한 내용을 붙여넣으세요(오른쪽 마우스 클릭해서 선택하거나 키보드에서 Ctrl+V).



3. 다시 소스를 누르면 영상이 올라간 게 보입니다.

가끔 영상 아래에 글을 쓰려는데 안 써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소스부분의 마지막 뒤에 " <★br />" 이라고 써주시면 돼요.(별은 빼고)
 

 


동영상 많이 많이 올리시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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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

11월 한 달 내내 감기로 고생 중이다...

이렇게 감기와 오래 동거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감기가 걸려도 한 사나흘이면 됐는데,

신종 플루인지 뭔지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오래 간다.

내일 안에 감기가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왔으면 좋겠다.

 

1.

11월 돈만 25,000원 내고 학교 안에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10말에 야자한 후에 11월 1일부터 감기 걸린 후에 학교 체육관 내에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실 근처에도

못 가봤다.

내일 학교 가서 다시 25,000원 내고 12월 등록해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지금까지는 상체 위주로 했는데, 하체 위주의 훈련 프로그램을 다시 짜서

운동 시간을 줄이면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것이 좋겠다.

집에 와서는 밤에 텔레비전 보는 걸 왕창 줄이고 몸을 유연하게 하는 스트레칭을 해야겠다.

내년 상반기까지 다리를 일자(180도)로 쫘악 찢는 게 목표인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내년 11월에 아마추어 야구 심판 교육을 받고, 그 다음 해에 태권도를 다시 시작해서

꼬옥 사범 자격증을 따야겠다.

나중에 아이들 태권도 가르쳐 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아마추어 심판 교육 잘 받으면 프로야구 심판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왜 프로야구 심판 되려구 하냐!^^

먹구 살 길이 일단 보장되지 않냐! ㅋㅋ...

그리구 그거 하면서 야구 철학 공부를 같이 할 수도 있을 테고^^...

꿈보다 해몽이네...쩝...

--- 이거 모냐! 신년 계획두 아니구 말이쥐...

 

1.

운동 못 가면서 애들이 등산 가자고 해서 11월에 두 번이나 등산(등산이라구 하긴 뭐 하구,

산보 수준 정도)을 갔다.

처음에는 아차산, 두 번째는 북한산...

코스는 능동(어린이 대공원 후문 쪽)의 영화사 쪽으로 올라가서, 구기 쪽으로 내려올까 하다가

무리했다간 감기가 더 심해질 거 같아서 사가정(면목동 근처) 쪽으로 내려왔다.

아차산은 어디가 아차산인지도 모르게 1시간 반 정도 올라가보니,

아차산 옆의 용마산이더라...

아차 하는 순간에 산을 넘어간다 해서 아차산인가.. ㅋㅋ...

하여간 등반을 끝내고 학교 반달집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에다

두부 김치 먹으니 몸이 날아갈 듯 좋더라^^.

 

글구 북한산...

등반 시작이 2시 가까이 되었다.

코스는 구파발 쪽으로 올라가서 대성문을 정점으로 찍고 평창동 쪽으로 내려왔다.

5시쯤 노동영화제를 볼 요량으로...

어쨌거나 올라가기 전에 다들 배가 고프다구 해서,

칼국수 한 그릇씩 하고 오르는 시간이 1시 40분쯤 되었다.

대성문 코스로 올라가는데, 그 코스가 가장 험난한 코스라고

같이 갔던 울 애가 그러더라.

근데 뭐 그렇게 힘들지 않더만^^... 껌이더만^^ ㅋㅋ... 

그리고 대성문에서 평창동 시민공원 쪽으로 내려와서 

쨉싸게 김밥과 막걸리 한잔 하고 노동 영화제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평창동 부자 동네로 내려오게 되었네... 

내 머리털 나구 처음 보는 부자 동네인데, 

휘황찬란하더만... 

야, 역시 부자 동네는 다르더라... 

근데 평창동 부자 동네를 거쳐 차 다니는 도로 쪽으로 내려오는 시간이 1시간... 

산 위쪽으로 갈수록 부자들이고, 산 아래 쪽으로 내려올수록 덜 부자인 것 같더라. 

집 생김새를 보니... 

이건 뭐 상식을 뒤집더만... 

우리는 보통 산위로 갈수록 달동네라고 못사는 사람들이 살고, 

산 아래로 내려올수록 좀 더 잘사는 사람들이 사는데... 

어쨌거나 각설하고... 

김밥이랑 귤이랑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시민공원은 어디에 처박혔는지 보이지도 않고...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결국 김밥이랑 귤은 가방 속에서 편히 주무시고들 계시게 되었다. 

나중에 김밥은 쉬어버려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벌 받아서 감기 좀 나았다가 또 감기 걸린 거 같다. 

아까운 음식을 버렸으니... 

줸장! 

왜 하필 부자 동네로 내려 왔냐고! 

니가 무슨 부자라구 음식을 먹지두 않구 버리게 했냐구!!! 

노동 영화제를 6시 거의 다 돼 도착... 

영화가 막 시작되어서 보게 되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현대 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그거 30분 짜리였는데, 고것만 보고 나왔다. 

다들 배고프고 춥고 해서 

근처에서 저녁에다 막걸리 한잔 하려 했는데, 

먹을 데가 없더라. 

그래서 결국 학교로 가자고 해서 

학교앞 반달집 와서 막걸리에다  뜨끈한 두부김치 시켜 먹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감기가 도졌다.

ㅠㅠ...

 

1.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기본적인 전략과 실천 방향에 대해서

초안이라도 써 보자 했는데...

게으름과 감기로 인해서 결국 손도 못댔다.

12월에는 반드시 써 봐야겠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누가 당분간 내 게으름 좀 맡아 줄 사람 없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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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6

4. 여성의 의식과 혁명적 변화

 

 

끝내기 전에, 나는 내가 네 번째 비판적 관계로서, 즉 여성의 의식과 혁명적 변혁의 본성 사이의 관계로서 리스트에 올려 논 것에 관해 말하고 싶다. 맑스주의자-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우리가 역학적 사유 양태들에 대한 일종의 자연스러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치적 이해를 벗어나서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 자신이 어떻게 그들 자신의 상황들을 지각하고 그 상황들 속에 살아 남아 투쟁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엄격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성의 “재생산” 노동과 집단 의식에서 비롯되는 항의 조직 형태들, 예를 들어 생필품 가격 인하 운동(food riots;세계 1차 대전 기간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세금이 엄청 올랐고 노동자 계급 가족의 가계 생활비를 제한시켰다. 물론 임금이 전쟁 기간에도 오르긴 했지만, 노동자 계급 가족은 물가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1917년 2월 10일, 생필품에 대해 과도하게 요금을 인상하였던 손수레 행상인들과 대치한 후에, 수천 명의 여성들은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뉴욕시 청사로 행진하였다. “생필품 가격 인하 운동(food riot)”은 사실상 손수레 생필품 가격을 강제로 떨어뜨리도록 재촉하였다.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의 여성들이 비슷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집세 지불 거부 운동(rent strikes) (386) 학교 점거 운동(school sit-ins; 글래스고우 엄마들의 학교 점거 운동; 2006년 2월 1일 13:53, 스티븐 기자; 태그: 영국 교육 배움 학습 학교 스코틀랜드 지역사회 글래스고우 직업; 금요일 글래스고우의 Carnwadric 초등학교에서 엄마들이 학교 폐쇄에 맞서 학교 점거 운동을 조직하였다. 학생 수가 239명인 이 학교는 학생들이 걸어서 1.5마일 거리에 있으며, 그 옆에는 고속도로와 이동 전화 송신탑이 있는 새로운 곳의 다른 학교와 통합될 위기에 처해 있다. <더 이브닝 타임스>가 이 사건을 기록하였다. “격노한(ANGRY) 엄마들이 글래스고우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학교 점거 운동을 펼쳤다. 25명이 넘는 부모들이 폐교의 위기에 빠진 남부에 있는 Carnwadric 초등학교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위원회가 다시 생각하도록 투쟁을 계속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교육청 고위 관리들은 Capelrig가에 있는 239명 아이들의 학교를 폐쇄하고서, 이 학교를 360명의 아이들이 생활할 새로운 건물의 Arden 초등학교로 통합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새로운 학교가 고속도로와 이동 전화 송신탑 옆에 세워질 것이며, 또한 아이들이 학교까지 1.5마일이나 걸어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계획에 반대하여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1,600의 서명이 들어간 탄원서를 위원회에 지출하였다. 그리고 학교의 날 행사가 오후 3시에 끝난 어제, 근처에 있던 25명의 부모들이 슬리핑백과 베개를 가지고, 그리고 [우리 학교를 살리자]라는 포스터를 흔들면서 학교 건물을 점거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부모들은 체육관으로 향해 갔다. 오늘 아침 6시에 마지막으로 해산할 때까지 체육관에서 그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밤을 새웠다. 이 저항운동은 학교 위원회 여성 위원장인 Pauline Gilgallon이 조직하였다. 첫째 딸인 10살 Bronwyn, 둘째 딸인 8살 Charlotte, 막내딸인 7살 Romy가 이 학교에 다니는데, 그 딸들의 엄마인 Pauline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변화 양상에 대처해 왔다. 평화로운 분열이다. 우리는 학교 폐쇄에 대한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잘 되어 갈 것이라고 나는 낙관한다.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Carnwadric를 닫는 최종 결정은 돈이 될 것이다.” “만일 위원회가 강행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겠다.” 이전에 이 학교 학생으로 30살인 Lynn Wright도 이 저항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9살 된 아들 Dylan의 엄마는 “우리는 투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5살 된 학생 Gemma의 엄마인 Sharon Wallace(50살)는 오늘 학교를 떠나면서 “학부모들은 어제 3시에 학교로 이동하여 점거 농성을 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피곤했지만 마치 저항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Carnwadric 초등학교를 포함하여 폐교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십 개의 학교의 앞날은 목요일에 결정될 것이다. 시 위원회 대변인은 오늘 “협의 기간은 한차례로 끝났지만 위원회가 접수했던 모든 개별적인 대응은 앞으로도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Carnwadric는 또한 탁아소, 고아원 그리고 Langside 대학 캠퍼스가 있다.)와 같은 형태들은 원래부터 노동조합 조직과 같은 다른 투쟁 형태들보다 그리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이 두 경우에서, 그러한 형태들이 내용과 효과 면에서 혁명적일 수 있는 정도는 그 형태들의 역사적 문맥, 지도력의 특성, 대중 기반과의 연계성, 사회의 모든 것을 변형시키는 장기적인 전략의 채택 등등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특수한 물질적 조건들 때문에 특수한 투쟁 조직 방식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가 구체적인 혁명적 상황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가부장적 친족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급 관계와 같이 적대와 투쟁의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여성의 의식과 지배적인 친족 관계 구조에 저항하고 그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여성의 시대적인 시도들이 그 자체 계급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교회, 빈민법 담당 공무원, 도덕 개혁가들 등에 의하여 법적 결혼과 부르주아 법 규범을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전(前) 산업적인 노동 계급의 관습적인 성적 활동에 강제적으로 적용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를 예로 들어보자.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히 개별적인 여성들에 의해 엄청난 저항을 받겠지만, 1848년과 1871년 프랑스에서와 같이 혁명적 투쟁이 고양되는 시기에는 “자유 노조”의 법적 인정에 대한 요구와 그 노조에 속한 아이들에게 동등한 국민 보험금 지급이 노동 계급 여성 집회의 첫 번째 요구가 되었다. 맑스주의-페미니즘 분석은 앞으로 질병, 종교 그리고 노동 윤리를 둘러싼 도덕 캠페인과 같이, 섹슈얼리티와 친족 관계가 그 자체 계급 투쟁의 중요한 영역이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물론 이 영역이 여성이 자신을 위해 싸웠던 영역이라는 중요한 구분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의 고유한 투쟁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 돌봄, 출산 통제, 학교와 병원에서의 인원 축소, 가사노동, 그리고 성적 억압을 둘러싼 싸움들이 사회주의 혁명과정의 부분이라고 느끼는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정교화할 것이며, 또한 어떻게 실천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분리된 영역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혁명적 전략을 위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론적 분석을 위한 것이 된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면, 이러한 상호 연관들은 여성의 의식과 여성의 혁명적 활동을 위한 중요한 함축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장에서, 좀 더 폭넓게는 국가 제도 하에서,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 현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의 재생산 노동을 수행한다. 우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매개한다. 우리를 배제하고서는, 그리고 우리를 자본주의의 여성으로서 “생산하는” 섹스-젠더 체계에 대한 정면 공격 없이는,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를 혁명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운동은 사실상 근본적으로 패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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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마지막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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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5

3.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국가

 

 

우리는 바로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들의 폭넓은 정치적 함의들, 즉 그 이데올로기들이 어떻게 가부장적 가족 그 자체를 강화하고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일관된 정당성을 제공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러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오염과 타락 또는 순수함과 모성애 화신의 근원으로서 여성을 혐오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성적 이중 노동(sexual double standard)을 최상의 공공선으로 끌어올리려는 이데올로기가 국가 통합의 시기에 매우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러한 시기는 극심한 계급 분화와 사회적 불안 또는 엄청난 군국주의화와 전쟁이 있던 시기였고, 또한 중앙 집중화된 국가 기구들이 (엥겔스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 수단으로서 그리고 지배계급 헤게모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으로서 발전하던 시기였다. 서구 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들이 계급의 선을 추상적인 “시민”(citizenship)의 의미로 끌어들이면서 남성 집단들을 단일화시킴으로써 그러한 무질서들을 해결하려 했던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는 매우 한정된 가부장적 토대뿐만 아니라 계급적 토대 위에서도 발전하게 된다.

 

Pomeroy는 이런 패턴을 자신의 15세기 아테네의 성 정치학 분석 속에서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국가 소유의 매음굴을 설립하였고 (따라서 양가집 여인과 창녀 사이의 구별을 “제도화시키면서), 하위 계급 여성들의 지위를 하락시켰으며, 또한 상위 계급 (시민-양육자) 여성들을 엄격한 신체적‧법적 규제 속에 가두어 두었던 Solon의 법적 “개혁”을 예로 들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 반페미니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규제들은 실제로 남성들 사이의 다툼을 제거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 사이의 충돌의 영원한 근원지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Solon의 해결책은 그녀들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고 그녀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고대 세계의 깊은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양상과 유사한 양상이 (385) 현대 부르주아 국가 성립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 Christopher Hill과 Eli Zaretsky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영국 대내란(english Civil War) 이후에 나타난 “평등”, 계약 그리고 “자발적 동의”에 기초하였던 공화국은 가족 내에서의 남성 지배자들을 위한 승리를, “자유”로부터 대다수 남성들의 배제와 시민들 몸 자체 내에서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모순 이 둘 다를 모호하게 만드는 그 지배자들의 능수능란한 미사여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8세기 경 자코뱅 당의 이상적인 “덕”(virtue)이 극에 달할 무렵, 시민에 대한 정의는 견고하게 남성 일색이고, 그 남성의 침묵하는 파트너인 여성은 방어적이며, 온순하고 가정에 안주하는 자로서 정의된다. 그리고 또 다시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이러한 이데올로기 경향은 여성을 점점 더 신체적으로, 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부장적 가족 안에 가둬두려는 것에 의해 강화된다. 나는 지금 여성 혐오적인 이데올로기와 제도들이 모든 남성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부르주아 정치 이데올로기를 합법화시키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 가운데 민족의(남성의) 단결, 충성, 군 복무를 안전하게 유지하도록 기능한다.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데올로기 탄생 그 자체는 위에서 논의하였던 하나의 지지자 또는 재생산 수단에 대한 가부장적 통제의 기능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다운 의미를 부풀리거나 신비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공화국의 덕과 여성의 종속 둘 다에 관한 탁월한 이데올로그인 Jean-Jacques Rousseau가 여성이 자신으로서는 이중노동일이 될 그 노동일을 위반한다는 것은 “반역” 행위를 구성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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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4

2. 가부장적 권력과 재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

 

 

페미니즘 운동은 항상 뿌리 깊은 신념에 기초해 왔고, 종종 개인적인 저항 또는 폭넓은 사회적 요구 측면으로 나타났으며, 피임과 낙태 또는 “불법”으로 정의된 것들과 같은 그러한 것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인 것이다.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현실을, 즉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섹스를 하고 피임을 하며, 또는 아이를 낳는지 하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이슈들이라는 현실을, 또한 이런 이슈들과 관련된 고립된 “사적 영역”이란 결코 없다는 현실을 알리는 의미로 쓰였다. Linda Gordon과 Sarah Pomeroy의 연구 같은 최근의 페미니즘 연구는 이러한 슬로건에 역사적 내용을 부여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우리에게 재생산 통제와 가부장적 권력, 계급 권력 그리고 국가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토대를 제공한다. Pomeroy와 Gordon 이 두 사람(한 사람은 (382) (B.C.) 15세기의 아테네에 관해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에 관해 말하고 있다)은 예를 들어, 법과 사법적 판결의 의미를 반영한 것으로서 “합법”(legitimacy)과 “불법”(illegitimacy)과 같은 개념들의 의미가 국가의 인구 통제 정책들과 그 정책들을 지배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들의 변화와 관련하여 명백하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Pomeroy는 고대 아테네의 여성 지위가 시민 생산을 그녀의 첫 번째 의무 기능으로 삼았다는 데 있었음을 주장하면서, 합법성, 성관계, 낙태, 영아 살해, 시민과 이방인 사이의 결혼, 그리고 간음과 관련된 아테네의 법률들이 모두 직접적으로는 군사적인 남성권력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켰고 간접적으로는 국가 권력을 확고하게 만들었던 의도적인 재생산 통제 정책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또는 전자본주의) 국가에 (그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옮긴이) 상당한 인적 자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출산 형태와 수를 통제하는 정책은 수에 대한 통제권, 여러 계층 또는 신분 사이에서의 인구 분포에 대한 통제권, 잠재적 시장 변동 등과 관련한 잠재적 노동 또는 노예 풀(pools) 크기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와 지배 계급에게 부여한다. 비슷한 예로, 섹슈얼리티에 대한 합법적이고 불법적인 표현들을 규정하는 지배적인 규범들(예를 들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성적 강제의 법적인 처벌, 매춘을 규제하거나 지원하는 국가 법률, 남창에 관한 법률, 동성애에 대한 금지 등)은 단지 특정한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특히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성적 억압을 강화시키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 규범들은 가부장제 속에 살고 있는 어머니들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의 수중에 둠으로써, 그 통제권을 가족들, 즉 그녀들의 손에서 빼앗아 버린다.

 

Pomeroy와 Gordon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재생산 통제에 대한 분석은 그러한 의문들에 대한 “급진 페미니즘”의 관점과 동일시되는 분석들과 “맑스주의-레닌주의” 접근법과도 다르다. 한편으로, 맑스주의-페미니즘의 탐구 방법은 한 측면에서 볼 때 재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가 사실상 계급 문제임을 보여 주면서, 사실상 수많은 재생산 통제 정책이 가지고 있는 계급 기초를 인정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인적 자원을 통제하는 것이 모든 남자는 아니지만, (383)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 계급을 구성하는 남자들이다. 더욱이 Gordon의 책이 보여 주고 있듯이, (체계적인 국가 인구 통제 정책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개인들의 출산 통제권을 위한 자유주의자들의 운동은 그 자체 이따금 특정한 계급 편향들(예를 들어, 후기 “자발적 모성” 지지자들과 Margaret Sanger와 같은 20세기의 출산 통제 개혁가들에 의한 우생학 이론과 정책에 대한 지지)을 반영해 왔다. 마지막으로, 재생산 통제는 그 형태와 영향이 서로 다른 계급과 민족 그룹의 여성들에 대해 차이가 난다는 의미에서 계급적 문제이다. 이러한 계급-민족적 분리의 가장 노골적인 예는 물론,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 비배우자(非配偶者)간 인공 수정)와 푸에르토리코 여성, 미국 원주민 여성 그리고 그 외 제국주의 주변에 있는 제3세계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국가 인구 통제 기관들에 의해 강요된 체계적인 비자발적 불임이다.

 

비자발적 불임을 포함한 그러한 재생산 통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또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실행이 약 4,000년 동안의 가부장적 전통에 의해 점점 더 강화되었고 정당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계급 문제이다. Gordon이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있듯이, 단순하고 효과적인 출산 통제 수단들이 대부분의 기록된 역사를 통해 여성에게 잘 알려져 있었던 한에서는, 가부장 시대의 그러한 수단들에 대한 억압은 기술적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특히, 여성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여성의 시도에 대한 반페미니스트들의 응답)의 문제이다. 사실 비자발적 불임 프로그램들은 다른 계급과 민족 집단 여성들이 처해 있는 문제들과는 아주 다른 제3세계 여성들의 문제들을 값싸고 안전한 낙태와 출산 통제를 보장하려는 쪽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제들은 지배적인 남성 집단이 재생산 자체를 통제하고자 하는 데서 생겨난 문제들이다. 맑스주의-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인구 통제 형태들에 관한 분석을 재생산 수단, 여성의 몸 그리고 방법의 사항들과 물질적 조건들을 장악하고 있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보다 넓은 구조 속에 다시 배치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통제가 여성의 특수한 계급 그리고 민족 집단과 관련하여 특수한 형태들을 취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통제는 (384) 그러한 분리를 넘어서며 모든 지위의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이 통제는 명백하게 페미니즘의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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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3

여기서 앞으로는 man-male, woman-femail을 남성-남자, 여성-여자로 구분해서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이렇게 구분해서 썼습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인 여성-남성을 보통 male-female로 구분해서 쓰는데, 저는 이것을 한국말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 여자로 쓴다고 생각을 했고, man-woman이 젠더의 개념이 들어간 것으로 보았고 우리 말로는 남'성'-여'성'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페미니즘 전공하시는 분께 여쭤 보았더니 저처럼 그렇게 구분해서 쓰지는 않고 맥락에 따라 쓴다고 말씀하시고 또 adelitas께서도 지적하신 것이 있어서, 또 제가 그렇게 구분해서 쓰는 게 너무 자의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분해서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1. 친족관계와 계급 구조

 

 

맑스주의-페미니스트로서, 아마도 우리가 대체로 잘 공유하고 소통하였던 이해 과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a) 하나의 그룹으로서 여성의 특수한 물질적 사회적 조건들은 대체로 친족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b) 가족 그 자체(가족의 형태와 기능 둘 다)는 폭넓은 경제적 사회적 힘(force)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지금 많은 인류학적 증거, 즉 남성 지상주의가 어떤 형태로든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계급과 국가사회보다 일반적으로 앞서 있다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계급 이전 사회들(preclass societies)에 관한 연구들이 직접적으로 친족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연구들은 가부장 체계의 일정 유형들, 성별 노동 분업 그리고 여성의 저항 형태들을 전개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맑스주의-페미니즘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진 그러한 연구들은, 예를 들어 여성의 물질적 조건과 권력이 모계(matrilocal) 친족 관계 또는 부계(patrilocal) 친족 관계에 따라, (379) 안정과 평화 또는 군국주의와 위험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환경에 따라, 여성 공동체와 친족 네트워크가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있는지 등과 같은 것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류학자가 아닌) 나에게는 계급 이전 사회의 성별 노동 분업이 지배의 관계, 즉 가부장 관계 또는 남성 지상주의 관계가 될 때, 그리고 그 노동 분업이 단순히 분업이 될 때를 알기 전에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자로서 우리가 계급/국가 사회들에서의 권력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친족관계와 가족이 그러한 사회에서의 여성의 상황을 규정하는 특수한 방식들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른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이 거기서 어떻게 상호 침투하는지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화된 영국에서 노동하는 가족들에 관한 Laura Oren의 논문을 통해 우리는 특수한 물질적 측면에서 임금에 대한 남편의 통제가 어떻게 자본주의 경제와 부인과의 관계를 매개하고 또한 남편과 부인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지를 알게 된다. 가정 경제 안에서 차지하는 임금의 기여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노동 계급 가족 내에서의 남성(male) 지배의 한 가지 물적 토대에 관해 그리고 가정주부의 특수한 소외 형태에 관해 배우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임금 관계가 그 자체 가족 경제 내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에 관해 배우게 된다. Oren의 논문은 자본주의에 의해 생성된 특수한 가족 형태(여성은 일부일처제, 가사노동 그리고 경제적 종속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고, 남성은 집안을 먹여 살리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그 자체가 임금노동-자본 관계를 정당화시키고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 말로 해서, 위계적-가부장적 가족 관계는 남성 임금 노동의 필요조건이다. 임금이 어떻게 식료품, 보건 그리고 다른 편의 시설 등의 불평등한 분배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Oren의 분석은 우리가 줄곧 의심해 왔던 것들에 대한 경험적 증거들, 즉 노동 계급 남성이 가부장제를 통해서 단지 가공의 어떤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어떤 것을 얻어낸다는 증거, 또한 권력, 특권 그리고 여타 재원들을 소유하는 이러한 물질적 체계가 노동 계급 남성과 자본가 남성 사이의 실증적인 유대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 계급 남성과 “그들의” 여성 사이를 실재로 분리시키고 있다(이는 노동 계급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이중적 모순이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380) 또 다른 일련의 예들을 통해 친족 관계와 계급 구조 사이의 두 가지 관계 방식을 설명하고자 한다. 맑스주의-페미니즘에 바탕을 둔 여성 노동에 대한 많은 우수한 분석들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체계 안에 깊숙이 파고든 친족 관계 양상과 가족의 기능이 그 체계 안에서의 여성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대개 친족 지향의 풍습에 의해, (부부가 남편의 가족과 거주하는) 부계 거주의 주거 형태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 모성과 모성 기능에 의해 결정된 우리의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 노동력 상태, 우리의 직업 규정들과 노동 조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Judith Stacey와 Norma Diamond 같은 사람들이 현대 중국과 관련하여 보여 주고 있듯이, 가부장제는 부계 거주와 배타적인 여성의 자녀양육과 같은 가부장적 친족 관계 체계의 기본적 측면들이 여전히 여성의 삶을 지배하고 경제와 국가 안에서의 여성의 장소를 결정하는 한, 사회주의 사회 안에서도 규범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우리의 건강한 관점이 이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계급 구조 그 자체가 어떻게 친족 관계와 가족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러한 가족-사회 관계의 차원을 드러내는 두 가지 탐구 사례를 들어보겠다. 꽤 친숙한 첫 번째 사례는 결혼 형태들이 18세기 유럽 상류 계급의 정체성과 단결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Bloch와 Habbakuk 같은) 프랑스와 영국 역사가들의 연구는 상류층의 상업 금융 자본과 귀족 사회의 보다 기업적인 요소들 사이의 결합(exogamous) 형태들을 보여 준다. 이런 계급들의 남자들 사이에서 “여성 교환”(특히, 귀족과 신사계급(gentry)의 딸들)은 새로운 지배계급이 확정되어 가던 서유럽에서 산업혁명 이전의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던 시기의 첫 번째 동인(動因)이었다. 동족(同族) 결혼(endogamy) 이족(異族) 결혼(exogamy)의 형태들을 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전통 체계뿐만 아니라 계급 형성 과정과 계급의식의 본성에 관해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다. 맑스주의-페미니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분석들은 이른바 “재생산 영역” 또는 친족관계가 실제로 부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단지 계급의 개별적 구성원들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381) 가족의 영역과 정치경제학의 영역 사이의 분열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또 다른 사례는 현대의 문맥으로부터 취할 수 있다. Amy Bridges, Batya Weinbaum 그리고 Ruth Milkman의 저작들은 가족과 여성의 “소비 노동”이 인플레이션, 실업 그리고 사회 서비스 부문의 예산 삭감에 대비한 필수조건을 제공하면서, 경제 위기 시기를 잘 넘기게 한다는 사실을 분석함으로써 사적 영역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추상적 의미를 넘어선다. 여성이 가계 생활비를 절약하고 병원에서 일치감치 돌아온 나이 든 가족 구성원들, 데이 케어(미취학 아동·고령자·신체장애자 등을 주간만 돌봐주는 일) 센터에서 돌아온 아이들 그리고 대학 수업료를 낼 형편이 못되는 십대들을 돌볼 때, 그 가족(즉 여성)은 위기의 난관을 부드럽게 넘기며 그 위기를 인간적으로 견딜 수 있게 하는 국가의 일을 떠맡게 된다.

 

내가 마치 여러 종류의 사과와 오렌지를 이런 다양한 사례들과 섞어 놓은 것처럼 들리겠지만, 요점은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즉 가족 체계와 계급 체계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변증법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맑스주의-페미니즘이 효과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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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2

** 맑스주의 페미니즘 : “분리된 영역들”을 넘어서기 **

 

 

2년 전에 아주 흥미로운 원고가 맑스주의-페미니즘 “전위 운동 단체” 사이에서 회람되기 시작했다. 그 원고는 Gayle Rubin의 “여성의 교환”(The Traffic in Women)이었는데, 우리가 우리 고유의 순수한 맑스주의-페미니즘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었던 분석 양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루빈의 논문을 찬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루빈의 논문은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 성장의 한 지표였다. 그 논문은 『자본』의 각 권에서 확실하게 여성을 위치시키고자 하는, 또는 “개인”을 낱낱이 파헤쳐지는 (그리고 억압 받는) 존재로 꾸밈없이 묘사함으로써 그 개인을 정치화시키려는 우리의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전에 우리가 성취할 수 있었던 것보다 좀 더 풍부하고 좀 더 완전한 분석적 접근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Rubin은 “섹스-젠더(sex-gender)의 정치학”을 제안하면서, 섹슈얼리티와 젠더,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재생산되는 친족-가족 구조들이 “그 자체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점, 이런 것들이 역사적으로 결정된 관계들로, 다시 말해서 물질적 생산, 부, 교환, 권력과 지배뿐만 아니라 감정과 감성 모두를 직접적으로 아우르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진지하게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이러한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은 좀 더 분석적인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통찰은 “생산”과 “재생산”, 노동과 가족이 달과 태양 또는 부엌과 가게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는커녕, 실제로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양식들, 즉 서로 반향되고 동일한 사회적,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공간들 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양식들이다. 이러한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들 대다수가 여전히 “분리된 영역들”(생산, “공적인 삶”, 사무실 등의 남성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재생산”, “사적인 삶”, 가정 등의 “여성의 장소”)이라는 모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377) 분리된 영역이라는 모델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그 모델이 어느 모로 보나 “남자”(male)와 “여자”(female)라는 자체의 의미만큼이나 동일한 의미의 이데올로기 구성물임을 알아가고 있다. 재생산과 친족 관계, 또는 가족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자신만의 고유한 생산물, 물질적 기술, 조직 방식 그리고 관력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과 친족 관계 그 자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생산관계 그리고 국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든 시기마다 자신의 관계를 재형성한다. 이러한 이론의 진전(나는 이러한 용어가 아주 거창한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함축적 의미는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정치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전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학이건 간에)을 분석하는 이 두 가지의 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맑스주의-페미니즘 분석 양식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맑스주의 변증법을 심화시킬 것이며 세계를 바라보고 반영하는 분석 방식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맑스주의-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칭 나의 역할은 이러한 과정이 이미 어떻게 어떤 영역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당신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과 방법론이 더 이상 단순한 희망(또는 “불행한 결혼”)이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자신만의 토론 그룹뿐만 우리의 저작 활동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이론을 진지하게 정치적이고도 지적인 기획으로 만들고자 서로를 북돋았다. 우리가 이러한 지점에 서 있음을 보았을 때, 나에게는 우리가 이미 네 가지 비판적인 관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 속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역동적 상호연관성이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상세한 방식으로 표면에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관계들은 다음과 같다 :

 

(1) 친족 관계 또는 가족, 그리고 계급 구조. 나는 가족과 친족 체계 둘 다 가족 바깥에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그 관계들을 재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맘에 두고 있다.

 

(2) 재생산 수단들(특히 섹슈얼리티와 아이 출산)에 대한 통제와 남자 권력(male power) 사이의 관계. 이것은 아이 출산과 섹슈얼리티의 물질적 조건과 기술들에 대한 통제가 자부장적 지배와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의 중요한 수단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투쟁의 중요한 대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점점 커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378) (3) 가부장적, 또는 남자 지상주의자, 이데올로기와 국가, 국가의 형태와 그 합법성 사이의 관계. 엥겔스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가부장제와 국가 조직 형태 사이의 일치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국가 권력을 승인하였는지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것은 고대와 현대 부르주아 국가들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것으로서 “이중적 노동 기준”(double standard), 여성혐오주의자들이 말하는 타락의 금기, 모성 숭배와 같은 그러한 지배적인 반여성적 이데올로기 기능들을 수반하고 있다.

 

(4) 이러한 모든 것과 여성의 의식 사이 그리고 여성의 의식과 혁명적 변화 사이의 관계. 우리가 여성의 실제적 조건들을 이해하면 할수록, 물론 우리는 여성이 그러한 조건들을 변형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 내부의 혁명적 운동들을 변환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특수한 방식들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모든 관계들을 분석하거나 또는 그러한 관계들을 어떠한 식으로든 상세하게 묘사할 시간이 없다.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처음의 두 가지 영역으로 이끌어 나갔던 최근 몇몇 지적 작업의 예들을 제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영역에 관한 짤막한 몇몇 생각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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