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맛비가 온다고 하더니 해만 쨍쨍. 무더위가 기승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때문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 춘천으로 와 맞는 세 번째 여름인데. 어찌된 게 해가 갈수록 더위에 익숙해지기는커녕 헥헥. 이거야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어찌 좀 참을 수 있겠지만. 워낙 날이 더워. 꼭두새벽에 나가기도 하고. 햇볕이 사그라질 저녁나절에 나가기도 하지만. 밭에라도 나가 호미질을 할 때면. 큭. 거의 초죽음입니다.

 

2.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한 여름에 돌아가셨더랬습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어려서였겠지요. 그때도 무척 덥다고 느끼긴 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리고 조금은 더 커서. 한 여름 제사 음식 준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철없는 생각이었겠지요. 봄, 가을 좋은 날 두고 삼복더위에 돌아가신 두 분을 탓했습니다. 뻘뻘 땀 흘리며 전 부치랴, 나물 무치랴 정신없는 어머니 도와드릴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지요.

 

3.

처음 에어컨이라는 걸 접했던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그게 아주 오래된 일이어서인 것 같지는 않고. 가만 돌이켜보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실외기가 많이 보였던 건 아닌데. 지금은 자동차만큼이나 흔하게. 웬만한 집들은 다들 들여놓고 있지요. 그것도 거실에 하나, 방마다 하나씩. 지금 사는 아파트가 5층짜리에, 평수도 작은 데라 그래도 저번에 살던 곳보단 많진 않지만. 여기도 그리 만만치는 않습니다.   

 

4. 

요즘 풀로 뒤덮인 고구마 밭 때문에 품이 많이 듭니다. 웬만하면 해가 질 무렵이나 돼야 나가는데. 한창 자라는 고추며, 콩, 토마토를 손보느라 한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더니. 어느새 풀천지가 돼버렸더군요. 지금이라도 풀을 매주지 않으면 돌아오는 주말 장맛비에 난리도 아닐 것 같아 무리를 하고 있지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호미질 한 시간 만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그래도 그렇게 일할 땐 힘들고 덥고 빨리 집에 가서 시원한 것 마시고 싶고 배도 고프고 하지만. 해가 지고 금방 또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면. 또 그 시원한 바람을 자전거에 올라 한껏 온 몸으로 맞으면. 덥다는 생각, 금세 날아갑니다.

 

5.

여름을 맞아 에어컨 판촉이 치열합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뭐라나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겁니다. ‘올 해가 가장 더운 여름이다. 시원한 에어컨 들여놔라.’ 그리고 이런 문구도 있었던 것 같네요. ‘여름 날씨가 30도 미만이면 얼마를 돌려주겠다.’ 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네요. ‘7월 10일부터 8월 9일 최고 기온이 30도 미만인 날이 24일 이상일 경우 20만원을 되돌려 준다.’ 한참 더울 한 달 사이에 30도 미만인 날이 24일 이상이라. 뭐, 가만 생각해보면 되도 않는 조건이라 이런 거 보고 에어컨 살 사람이야 없겠지만서도.

 

6.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어느 날, 아마 그 날도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사를 지내러 중곡동엘 갔더니 어이쿠, 에어컨을 들여놓으셨더군요. 전에도 친척집이나 다른 친구 집에 다녀오신 후엔 에어컨을 사자는 말을 곧잘 하시긴 했지만. 곧 다가올 제사 때는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놓고 음식준비 하려고 샀다는 말씀에, ‘그거 일 년에 며칠이나 쓴다고 샀댜’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요. 헌데 그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음식 준비를 하니. 이리 좋을 수가 있을까요. 참 사람 마음 간사합니다. 

   

7.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특별히 에어컨과 관련된 것들만요. 조사는 2006년도 실시 된 것 같아 보입니다. 작년이나 재작년 통계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몇 가지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있으니 이만하면 됐습니다. 아무튼. 1985년에 에어컨 보급률은 가구당 0.02대였습니다. 그리고 TV가 가구당 1대를 넘어서던 1989년에도 0.09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 에어컨이란 게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1995년에 0.13대였던 것이 1997년에는 0.21대,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는 0.38대, 2006년에는 0.48대. 

 

8.

특별히 4,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에어컨은 연간 사용일수가 고작 55일(8월이 27일 차지하고 있네요)밖에는 되지 않는 걸로 나타납니다. 연간 사용시간은 255시간. 하지만 소비전력에 높아서일까요. 무려 439,591wh의 전기를 사용하네요. 반면 선풍기의 경우 사용일수가 거의 배(95일)에 가깝고 사용시간도 655시간이나 되는데도 고작 39,297wh밖에는 전기를 쓰지 않습니다.

 

9.

뉴스에 이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올 여름 최대 전력 수요 시간대, 흔히들 피크타임이라고도 하지요. 이 때 예비전력이 460만kw예비율 6.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전력 수요가 냉방 수요의 급증(17.5%)으로 지난해보다 11.8% 증가한 7천 70만kw 달하겠지만 공급은 3.7% 늘어난 7천 530만kw 그치기 때문이다. 

 

10.

앞서 살펴본 자료들을 가지고, 에어컨 사용 때문에 날이 더 더워지고 있다고 하면. ‘7월 10일부터 8월 9일 최고 기온이 30도 미만인 날이 24일 이상일 경우’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일까요. 그래요. 아직은 날씨가 더워져서 에어컨 사용량이 늘어난 것인지, 에어컨을 많이 써서 날씨가 더 더워지는 것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름을 앞두고는 에어컨 장만하라고 부채질, 여름이 다 지나가고는 싸게 들여놓으라고 또 부채질. 이만하면 굳이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아도 왜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텐데. 아무튼. 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올 여름에 또 제사를 지내러 서울에 가면 에어컨 없이 음식 준비 해볼랍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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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8 13:14 2010/07/0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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