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천근만근 진부령 고갯길에서 멈추다(2008년 9월 27일)

 
정말 천근만근이란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말이지 싶다.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고갯길 가운데 제일 낮다는 진부령 길을 오르는데 이렇게 몸이 무거워서야. 아무리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감기 기운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 암만 생각해도 몸도 몸이지만 오늘 걸어온 길이 최악의 길이어서 그런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말이다.
 
가을 가뭄이 오래 지속되다 겨우 이틀 그것도 아주 쬐끔 비가 왔는데 가뭄 해결은 고사하고 날씨만 갑작스레 추워졌다. 한낮엔 20도 가까이 오른다고는 하지만 산간지방에선 첫 서리가 내린다고 하고 춘천만 하더라도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져 쌀쌀함이 이만저만 하지 않다. 물론 아침, 저녁 이외엔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딱 가을 날씨를 보여주긴 하지만 밤과 낮 기온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엔 딱인 날씨다. 그래서인지 느닷없이 여행가자 마음먹긴 했지만 출발부터 걱정이 앞선다. 안 그래도 어제 저녁부터 재채기가 슬슬 나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출발한 덕에 한계삼거리에 일찍 도착했다. 원래는 중간에 한 번 군내버스로 갈아타야하지만 운전기사 아저씨께 부탁해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내릴 수 있어 더 빨리 도착한 게다. 그래봐야 20여분이지만 이 추운 날 표 다시 사고 버스 기다리지 않은 게 어디냐 싶고, 정말 그런 게 버스 바깥은 생각보다 더 춥기만 하다. 서둘러 휴게소로 들어가 인삼차에 생강차를 마셔보지만 잠깐뿐이다. 아무래도 좀 걸어야 몸에서 열이 나려나.
 
헌데, 출발부터 고약하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웬 차가 이리도 많은지. 것도 순 관광버스다. 거기에 걸으면서 안 거긴 하지만 곳곳에 길을 내느라, 혹은 넓히느라 공사장이 널려 있어 거기서 오고가는 웬 트럭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것도 순 츄레라에 덤프트럭이다. 또 길은 어찌나 좁은지. 갓길마저 거의 없다시피한 길이라 양쪽으로 트럭이나 버스가 지나칠라면 걷기를 멈추고 길 바깥으로 저만치 물러서야한다. 며칠 전 달리기 하던 이가 여기 이곳 진부령을 넘다 차에 치었다고 하던데 남 일 같지 않다. 신경이 곤두선다.
 
결국 한 시간도 채 걷지도 못하고 가드레일을 넘어 강가 소나무 숲으로 피신하고는 주섬주섬 아침과 점심때 먹을 요량으로 어제 밤 준비해 둔 감자며 김밥을 하나씩 꺼내든다. 날씨는 무쟈게 좋은데 길은 엉망이고, 코스모스에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데 눈은 함부로 돌릴 수는 없고. 아무리 봐도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곳까지는 가야 한 숨 돌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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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로 햇볕이 따가워질 무렵까지는 그렇게 질주하는 차들을 피하느라 어기적어기적 걷는데 그 와중에도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 줍기에, 길가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 씨 털기에 할 짓은 다 한다. 또 학교 안에 자그마한 공원까지 갖고 있는 용대초등학교에선 뒤늦은 밤 줍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니 이 재미라도 없었으면 무신 재미로 걸었을까.
 
솔직히 백담사는 그닥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백담사를 찾을지 모르겠지만.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는 되레 그 대가로 대통령까지 지낸데다 아직도 국가원로라고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신문이며 티비에서 난리를 치는 그 잘난 대머리를 덥석 받아준, 그걸로 마치 이승에서의 죄를 다 속죄 받은 양 고개를 뻗뻗이 쳐들 수 있게 만든, 그놈의 절이 대체 모하는 절이고 어떤 절인가 궁금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길부터 꼬였다. 입구에서 확인했을 땐 분명 칠백 미터만 가면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가도 보이질 않는데, 겨우겨우 도착해보니 여기저기 임시 주차장마다 관광버스가 그득그득. 걸어서는 2시간이고 차로는 10분이라는데 버스 값은 1,800원, 또 버스타려는 줄은 끝이 보이질 않네. 이럴 줄 알았다. 아까 입구에 길 물어보고 난 후 별 생각 없이 걸어 들어온 게 잘못이지. 애당초 별 구경할 맘 없다는 걸 이심전심으로 알았다면 여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괜스레 시간만 버리고 배만 잔뜩 고프다. 에라. 배나 채우자.
 
순두부와 콩비지로 맛나게 점심을 먹고 나니 아침에 그렇게 쌀쌀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후텁하다. 이제 뭐가 그리 바빠 멀쩡한 길 나두고 산허리를 뚫어내고 또 길을 낸 미시령터널길과 갈라지는 곳까지만 가면 한 시름 놓을 것이니 쉬엄쉬엄 따가운 가을 햇살을 피해 걷는다. 계곡가 바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나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길 이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길 저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길 이쪽에서 ‘컹컹’ 소리가 나면 또 길 저쪽으로 뛰어갔다 하기도 하고, 맑은 가을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한참을 쉬기도 하고, 그렇게 다문다문 걸으니 어느새 진부령 꼭대기다.
 
출발할 땐 내처 걸어 하룻밤 잔 뒤 간성까지 걷자 했는데 막상 진부령에 오르고 나니 아침 내내 그리고 백담사에서의 헛걸음에 오후엔 덩치가 산만한 개들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해서 때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 있는 원통행 버스에 오른다. 더 걷다가는 제대로 감기에 걸릴 것 같기에. 오늘 하루 종일 씨름하며 걸었던 길이 휙휙 순식간에 차창 밖으로 지나쳐간다. 아, 힘들다.
 
* 스물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한계삼거리에서 진부령까지 44번 국도를 따라 약 23km, 걸은 시간 약 8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원통을 거쳐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는 한계삼거리에서 정차하지 않지만 맘 좋은 기사분만 만난다면 내릴 수 있으니 시도할 만하다. 아님 원통에서 군내버스로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춘천에서 첫차를 타면 곧 한계삼거리를 거쳐 진부령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시간상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20여분 빨리 도착한다. 진부령에서는 반대로 군내버스를 타고 원통에 와서 다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긴 한데 진부령에서 정차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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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3:23 2011/03/10 23:23

첫째 날, 세상 밖으로 나온 길, 은비령(2008년 8월 26일)

 
춘천으로 이사 온 후 두 번째 걷기다. 서울이라면 강원도 산골짜기든 남도 바닷가든 쉽게 갈 수 있어도. 춘천과 같은 작은 도시에선 가깝던 멀던, 산이든 바다든 그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서울이나 대구, 혹은 대전과 같이 ‘특별’하거나 혹은 ‘광역’하거나 하는 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그래도 같은 도내라 그런지 지난 번 여행도 그렇고 이번 여행도 그렇고 산골짜기이지만 나름 버스 편이 있어 생각보단 어렵지 않게 끝마쳤던 곳으로, 시작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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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隱秘嶺)을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소설 은비령에서 ‘나’와 ‘선혜’가 눈 내리는 은비령(銀飛嶺)을 차를 타고 넘었던,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가는 길과 ‘나’와 ‘그’가 걸어서 한 시간도 더 걸렸다던, 우풍재를 인제 쪽에서 넘어서 가는 길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옛 길들이 그렇듯 언제든 깨끗이 포장된 채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그만큼은 덜 알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길을 알고 또 걸을 수 있으니 고마움도 또 생긴다.

 
   <은비령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은비령 길이 아니라면 한참 전에 대간을 넘어 동해 바다 쪽을 걷고 있을 테다. 오대산 구룡령 쪽도 그렇고, 또 오대산 진고개 쪽도 그렇다. 어느 쪽으로 걸었어도 산을 넘어도 진즉에 넘었을 거란 얘기다. 또 그렇게 산길을 걸었다면 이 걷기여행도 모르긴 몰라도 지난 번 혹은 지지난 번 걷기로 끝을 봤을 게다. 마음 한구석엔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지에 왠지 모를 서운함에 에둘러 대간을 목전에 두고 숲길과 옛길들을 걸어보자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좋은 길을 둘러, 둘러 걸을 수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아닌 가 싶고, 이번 은비령 길 역시 이런 핑계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리 걷기로 했다. 
 
우기인 마냥 여름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나 싶어 긴 옷을 꺼내 입었던 게 엊그제 인데 막상 길을 나서니 아직은 햇볕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될지 싶다. 홍천에서 한 번 버스를 옮겨 타고 현리에 도착해 길을 나설 땐 10시도 채 못됐는데도 목덜미가 따가우니 말이다.
 
집 잃은 개 한 마리가 무서워 갓길에 바짝 붙어 무서움에 뒤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고, 부실한 지도 덕에 난데없다 느껴진 기다란 포사고개를 넘기도 하고, 시골학교지만 제법 큰 귀둔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김밥과 삶은 감자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계곡 가에서 발도 담그고 쪽잠도 자기도 하면서, 또 오늘 하루 쉬어갈 필례약수를 코앞에 두고 다시 나타난 성난 개 두 마리 때문에 차를 얻어 타고 가야하나, 조금 전 지나쳤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나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그렇게 걸어, 걸어 은비령 아래 당도하니 짧아진 여름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둘째 날, 다시 2천 5백만 년 만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2008년 8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은비령이란 이름은 없었다 한다. 지금이야 은비령이란 이름이 더 알려졌지만. 그저 오색령의 저쪽을 가리키는 것뿐이었기도 하고. 약수 이름을 따 필례령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게 필례령이고 오색령이지 은비령인건 아니었단 얘기다. 글쓴이는 그렇게 예쁜 이름을 붙였지만 글을 쓴 후에나 그 곳엘 가보았다 한다. 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되는 길을 그는 그렇게 글을 다 풀어 낸 후에야 만난 것이다.
 
은비령 역시 은비령을 다녀온 후에나 봤다. 은비령 고개를 넘어야겠다, 마음먹은 후 줄곧 ‘이번엔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하다, 결국 은비령엘 다녀와서야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된 거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의 기다림, 그 이야기를.
 
어째 약수라 그런지 씁쓸한 맛이 나는 필례약수 물을 가득 채우고는 은비령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초봄, 늦은 겨울눈을 맞으며 은비령을 넘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 녹다 남은 겨울눈이 이슬비 되어 내리는 은비령을 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가 글의 주인공 들이 거슬러 갔던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우리는 반대로 되짚어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추어 선 듯 하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긴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쳐 쉬다, 가다를 반복하니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산꼭대기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더구나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더 거세진 데다, 이런 시간에 이런 길을 누가 걷겠냐 싶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한달음에 내려오는 차들을 피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으니 끝날 줄 모르던 오르막이 어느새 한 구비 너머 구름 속으로 두 갈래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를 뿌리는 구름이 아니었다면 멀리 푸른 바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은비령을 넘으면서 조금씩 내리던 비가 한계령 쉼터에 다다르니 제법 굵어졌다.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겨우 감자와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우고 오르막길을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기에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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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이른 점심에, 느긋하게 쉬지만. 어째 구름 모양새로는 조만간 비가 그칠 모양새는 아니다. 어제, 오늘 일기예보론 영서지방에 비 소식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장수대나 옥녀탕까지는 가야 비구름에서 벗어날 듯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비옷도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 가려니 막막하긴 해도 조금만 내려가면 비구름에서 벗어나겠지 싶어 빗줄기가 조금 가라앉은 틈을 타 길을 나선다.
 
  <한계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은비령과 한계령을 휘감았던 비구름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곧 벗어났지만. 호랑이 혼인하는 날 온다는 마른 비는 장수대를 지나서야 겨우 피할 수 있다. 혹여나 비가 더 거세질까 급한 데로 옷가지를 싸두었던 비닐들을 다 끄집어내 여차하면 머리에 뒤집어쓸까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한계리까진 쉬엄쉬엄 가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고, 해서 설악의 산세 구경에 자주자주 쉬어 가는데. 비구름 속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계령 고갯길 그리고 저 편 은비령 길을. 다시 2천 5백만 년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스물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인제군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 21km. 걸은 7시간.
- 둘째 날 : 필례약수에서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고 넘어 한계리까지 약 22m, 걸은 시간 약 8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터미널에서 현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들쑥날쑥하니 이편을 먼저 확인하고 기준으로 잡아 출발시간을 정해야 한다. 한계리에서 원통으로 나오는 시내버스는 꽤 자주 있는 편이며 원통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직통의 경우는 19시 50분 막차로 하루 여섯 차례 운행한다. 또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버스 편이 많아 참고할 만한 방법은 홍천에서 차를 한 번 갈아타고 오는 것이다.    
 
* 잠잘 곳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고 식당도 눈에 띄지 않고 드문드문 동네 가게들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필례약수까지만 가면 식당을 겸한 민박집이 꽤 있다. 필례약수를 지나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어 한계리까지는 역시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식당은 중간에 한계령 쉼터에서 해결할 수 있으나 자리 몫 때문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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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21:41 2011/01/28 21:41
첫째 날, 지나온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월둔마을에서 아침가리로(2008년 6월 19일)
 
밤새 또 가니, 못 가니 하다, 오랜만에 김밥 싸고 계란 삶고 벼락 준비에 정신없다. 그러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버스 편 확인하다 울고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까지 왔던 게 작년 5월이니 그새 1년이 지났고, 그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걷기를 했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거다. 농사짓겠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 마음먹고 춘천으로 오기까지 남들 눈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시간이었겠지만 그만큼 긴 시간이었던 거고 몸도 마음도 알게 모르게 물갈이 중이었나 보다.
 
같은 강원도면서도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세 시간이나 걸려야 달둔마을에 올 수 있으니 그만큼 외지긴 외진 듯하다. 그래도 군내버스 한 칸 가득 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의 모둠 노래자랑에 지루하지 않다. 또 차창 너머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이며 푸른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 덩달아 콧노래다. 올망졸망 아이들을 내려놓은 차는 그새 달둔마을에 다다라 잠시 멈춘 후 굽이굽이 구룡령 넘어 바다로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감록에 나온다는 삼둔사가리 가운데 삼둔 중 하나인 월둔마을에서 시작해 사가리 중 하나인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이름 없는 이 숲길은 지나온 흔적마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때론 거친 길을 질주하고픈 욕망도 어쩌면 저 끊어진 다리 위에 멈춰 세워야 할 것이고, 하룻밤 별을 헤며 세상사를 나누고 싶다 해도 길 위에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곤 월둔마을과 조경분교 근처 젊디젊은 부부 한 쌍 외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니, 부디 이 한 곳만이라도 조용히 그렇게 남겨둬야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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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덕봉 바로 아래 명지가리까지는 그래도 뒷산 산책하듯 오른다. 지천에 널린 야생화 구경에 문득문득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 또 조경동까지 이어진 긴 내리막길은 내내 이름 모를 새소리와 계곡 물 소리에 지친 몸과 마음이 맑아지기에. 헌데 다 내려왔나 싶은 그 순간, 길은 다시 끝없는 오르막으로 구절양장 돌고 도는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맛보기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데,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찔 하기만한 아스팔트 내리막길에 이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 누일 곳을 찾는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것인지, 미뤄뒀던 남은 길을 모두 걸을 것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더니 해는 지는데, 차 시간은 간당간당한데, 어찌할지 몰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외지긴 외진 데라 그런지 버스마저 일찍 끊기고 오가는 차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일기예보로는 주말에나 되어야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하루 정도 여유가 있긴 한데, 몸이 너무나 무겁다.
 
하룻밤 묵어가는데 이틀 치 방값을 내라는 그럴듯한 펜션을 뒤로하고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듯한 택시를 집어타고 현리로 나오니 이런, 홍천이고 인제고 버스 끊긴지가 이미 오래다. 사실 어제 밤 느닷없이 준비를 한 탓도 있었지만 혹여 하는 마음에 차 시간을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갑자기 바뀌어버린 버스 시간에 하루를 그냥 길에서 보내거나 아예 떠날 생각도 못할 뻔 했었는데 결국엔 예상치도 못한 현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찌어찌 잠잘 만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지만 가뜩이나 찜찜한 마음인데다 제법 괜찮다고 보여 들어간 첫 번째 모텔에서 방이 없단 얘기를 듣자 차라리 다시 택시를 타고 방동리로 돌아가자며 터미널로 나온다. 헌데, 천운인지 다행인지 진동리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 한 대가 이번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한차 가득 싣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다음부턴 50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버스 뒤로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정류장 바로 앞 민박집에 1만원을 깎아 방을 정하고는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방동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아주 잠깐 물소리를 듣기 위해 방을 나온 것 빼곤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데, 몸 피곤한 것과 달리 밤새 가위에 눌려 버둥버둥 대느라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둘째 날, 천근만근 지친 몸을 이끌고 현리로(2008년 6월 20일)
 
이렇게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다니, 어젠 정말 무리했나보다. 어찌어찌 눈을 떠 겨우 얼굴에 물만 묻히고는 썬 크림만 잔뜩 바른다. 뭐에 홀렸는지 모자는 잃어버리고 여덟시도 채 안됐는데 햇빛은 장난 아니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구나 아침도 거른 채 걸으려니 이거야 걷기도 전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충 머리에 수건만 두르고는 해가 머리위에 뜨기 전에 현리에 도착하길 빌며 길을 나선다. 현리까지야 두 시간이면 충분할 테고 어제 택시며 버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여겨보니 군데군데 민박집이며 밥집이 있는 듯 해 일단 아침은 건너뛴다. 하기사 어제 아침도 라면, 저녁도 라면으로 때웠기에 오늘 아침까지 라면을 먹긴 좀 그렇긴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제 저녁엔 그리도 많아 보이던 가게들이 어째 조롱고개를 넘기 전까지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걸까. 도중에 제법 큰 슈퍼가 한 군데 있긴 했는데 조금만 가면 뭐가 나오려니 하며  참고 걸었는데 시간 반이 넘게 걸어도 당체 요기할 만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지친 몸도 몸이지만 뭐라도 채워야 할 텐데. ‘도채동 옛길’로 빠져 길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당체 힘이 나질 않는다. 
 
결국 현리 가까이에 당도해서야 아침 먹을 곳이 나타난다. 오가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불러들이고는 이른 아침부터 해장술을 기울이는 나이 드신 농부님들 이야기를 반찬삼아 꿀맛 같은 아침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도 밥이 들어가서인지 힘이 조금 나는 것 같긴 한데 팔월 한낮에 뜨거운 햇빛이 벌써부터 등 뒤에 내리쬔다. 이거야 말로 땡볕에 뭔 고생인지. 
 
겨우겨우 기다시피 현리에 들어가니 이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고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한 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0분이면 너무 많고 그렇다고 10분이면 너무 짧은 동네 산책도 잠깐이고 결국 터미널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잠에 빠진다. 그렇게 삼십분을 졸다 홍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졸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나가는 시외버스 타고 또 졸고,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홍천군 내면 달둔마을에서 방동약수까지 약 30km. 걸은 9시간.
- 둘째 날 : 방동약수에서 인제군 현리까지 약 8km, 걸은 시간 2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을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에서 내면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6시 45분이고, 다시 내면에서 달둔마을을 거쳐 양양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9시 05분이니 반드시 6시 5분 첫차를 타야 한다. 다만 첫차보단 6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고속도로로 달려 오히려 첫차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니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둘 다 6시 45분 언저리에 도착하니 자칫하면 하루를 차 기다리며 보낼 수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져야한다. 또 현리에서 홍천으로 나오는 차편도 올 6월 1일부터 바뀌었으니 이 역시 전화로 꼭 확인해야 한다. 달둔마을이나 방동약수나 어느 쪽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수월치가 않다. 반드시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 잠잘 곳
월둔마을에서 명지가리를 거쳐 조경동, 조경령, 방동약수까진 숙박은커녕 매점하나 없다. 계곡물이 워낙 맑아 식수는 따로 준비하진 않더라도 반드시 먹거리만은 준비해야 한다. 방동약수 인근엔 민박이며 펜션이며 숙박할 곳은 꽤 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 외에는 밥 먹을 만한 곳이 딱히 없으니 하룻밤 묵어가는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방동약수에서 현리까진 두 시간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방동분교 앞 매점을 지나치게 되면 조롱고개를 넘기까지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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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1:34 2010/12/23 01:34

“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상원사에서 오대산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 앞머리까지(2007년 5월 26일)

 
당일치기가 가능할까? 새벽, 진부행 첫 차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한다. 오대산 상원사야 널리 알려진 만큼 쉬이 갈 수 있으나 오대산 넘어 명개리나 광원리쪽은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군내버스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출발할 땐 ‘까짓 못 나오면 하루 더 있다 오지 머’라며 가벼이 생각하기는 했어도, 일요일 아침 어중간한 시간에 서울로 오게 되면 애꿎게 하루를 그냥 보낼 수 있기에 어찌해서든 서울로 나오는 버스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연신 안절부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부에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에 오르니 우통수(于筒水)에서부터 시작된 한강 물줄기가 전나무 숲 사이로 시원스레 흐르는데 걸으면서 느끼는 맛과는 또 다르다. 하지만 차를 이용하게 되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맛볼 수 없으니 필히 차를 두고서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상원사 앞은 어제가 초파일이어서인지, 5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황사가 있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로 가득이다. 우리야 산을 오르는 게 아니기에 크게 개의치 않다지만 오대산이라는 이름값에 사람도 산도 몸살이다.
 
버젓이 446번 지방도로라는 딱지를 갖고 있으나 일년 중 절반 이상 차량 통행을 허용하지 않는 비포장도로가 눈앞이다. 분단의 상처를 안고 생겨났지만 이제는 오대산의 너른 품안에 안겨 길과 숲이 하나가 된 이 길은 상원사에서 시작해 명개리까지 50리 길이니 넉넉잡아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니 서붓서붓 걸으며 온 산을 오롯이 품을 수 있다.
 
북대사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초입길이라 다행이지 중도에 이런 길을 만났다면 꽤 시간이 들었을테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도 해야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숨이 턱 밑까지 올라와 잠시 발길을 멈추고는 서울에부터 짊어지고 배낭을 풀어 헤친다. 비록 찬도 없는 김밥 세 줄이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고 맛은 또 얼마나 꿀맛인가. 이렇게 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아 한가로이 밥 먹을 수 있는 지방도로가 몇이나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높이가 1,310m로 비로봉(1,563m)과는 불과 250여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두도령에 오르니 12시 40분이다. 상원사에서 10시 35분에 출발했으니 2시간이 걸렸는데, 북대사에서 15분 정도 김밥 먹으며 시간 보낸 걸 빼고 나면, 1시간 40분 걸린 셈이다. 오대산의 자랑인 전나무며, 소나무를 맘껏 볼 수 있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된 줄 모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이어 한참을 평지에서와 같은 길이 이어지더니 두도령을 지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또아리를 튼 뱀 마냥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쪽 구비를 지날 땐 멀리 점봉산이니 한계령이 머리를 내밀고, 이쪽 구비를 돌아설 땐 시원스런 계곡물과 마주친다. 상원사를 출발해 세 시간이 넘게 걷고 있지만 딱 한 팀, 것도 달랑 세 명의 산 타는 사람만 만났으니 오대산을 전세 낸 거나 다름없고, 오랜만에 매연 속에서 벗어나 산길을 걸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명개리쪽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네 시가 안됐다. 여기서 다시 56번 국도와 만나는 곳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렸고, 표지판을 보니 상원사까지 19.6km다. 구불구불 산길을 여섯 시간이나 걸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걸 보니 울창한 나무들이 내뿜는 숲 내음 덕이리라.
 
당초 광원리까지 무리라 판단했지만서도 달둔마을 앞머리에 이르니 어느덧 여섯시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이다. 명개리까지 거슬러 올랐던 군내버스가 저만치서 오는데, 막차는 아니지만 창촌에서 홍천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저 차에 올라야 한다. 아예 하루 머물면서 삼둔사가리 중 하나인 달둔마을 구경에 나설까도 싶지만 결국 떠나기 전 안절부절이 버스 안으로 몸을 디밀게 한다.
 
창촌에 도착하니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이 한참 남았다. 홍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해서 변변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이곳에 정착한지 이제 6년이 조금 넘었다는, 슈퍼인지 분식점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가게 집에 들어서는데, 나물향이 가득이다.
 
“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첨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돼지고기를 먹을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만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더니,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이번 기회에 끊기로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인 듯싶었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런데 여기 이 깊은 산골마을에 들어서 봄나물을 한가득 보니 어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요기를 할 만 것이라고는 달랑 떡볶이가 전부지만 아주머니의 마을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덩달아 우리도 오랜만에 수다를 풀어내는데 어느새 홍천 나가는 버스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 스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오대산 상원사에서 홍천 내면 달둔마을 입구까지 약 24km. 걸은 7시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시간이 8시 30분, 9시 40분이니 6시 30분 첫차나 7시 10분에 출발하는 다음 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명개리나 달둔마을, 혹은 인근 광원리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창촌과 홍천을 거쳐야만 하는데 하루 몇 차례 운행하는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사전에 창촌터미널, 홍천터미널 등지에서 버스 시간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상원사에서 명개리까지 50리 길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명개리에서 광원리까진 드문드문 민박집과 음식점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큰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봉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에서 하루 머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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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23:40 2010/11/10 23:40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쳐 상원사까지(2007년 4월 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초 날씨엔 봄철 입산통제가 아니라도 두도령을 넘는 일정이란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뭇가지들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지만 여기 강원도는 아직 녹지 않은 눈 구경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은 매섭고 해 떠 있는 시간은 짧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해서 요번엔 당일치기로 걷되, 다만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에 밥 한술 뜨지 못 하는 부산을 떨었는데도 진부에 도착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었다. 부족한 잠이야 차안에서 채우기는 했지만 어째 아침은 한 술 뜨고 가야 출발해야 할텐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원사로 향하는 59번 국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지난 해 수해 때문인지 도로 위에 온통 덤프트럭 천지다. 읍내엔 그래도 인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읍내를 벗어나니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시간 가량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을 피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더니 몸이 지치는 건 둘째고 길을 걷는 맛이나 흥이 당체 생기질 않는다. 심지어는 괜히 왔나 싶다. 게다가 잠시 허기진 배도 채울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상원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 할 만 한 것들을 찾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삶은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구운 계란이라 ‘비린 맛’ 때문에 다른 것을 고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삶은 것보다 덜 비리다며 까탈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어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저러시는 걸까? 대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온다.

 

투덜투덜 서로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푸른 잎의 전나무가 길 양옆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무 아래에 은하수처럼 깔려 있다. 어느 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겨우내 문을 닫고 있다 엊그제서야 다시 문을 연 자생식물원 구경은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 가봐야 꽃도 피어 있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식물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에 막혀 길을 돌아서면서 했을테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상원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명산’이란 음식점에서 맛나게 산채백반에 감자전을 곁들여 동동주를 한 잔 걸치니 마치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은 듯하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많이 잡아도 3시간이면 될 터이니 때 아닌 느긋함을 부리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전에 보았던 전나무는 맛보기였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 아래 일주문을 걸어야만, 그것도 차를 놓고 걷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쌀쌀한 바람과 차디찬 햇살과는 다른 파란 세상으로의 통로다. 한겨울의 추위 동안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이름 모를 새들이 긴 침묵을 깨듯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하늘 아래로부터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전나무 숲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적광전이며, 수광전이며, 성보박물관까지 절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직 해가 머리 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야 아무리 산길이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나 진부로 나가는 막차가 5시 20분인데다 이 차를 놓치게 되면 꼼짝없이 월정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 그런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겨울 분위기지만 절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흙 길을 옆에 두고 흐르는 계곡 물은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나근나근하다.

 

상원사에 도착하고 보니 월정사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서있는 버스를 보니 상원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까도 싶다. 하지만 오늘 하루 걸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두도령을 넘어 명개리를 지나야 하는 다음 번 걷기를 생각해보면 오늘 절 구경을 해두는 게 낫다 싶어 상원사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른다. 게다가 아직 막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상원사는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둘이 있는데, 목욕하며 만난 문수보살과 법당 앞에서 자객을 일러준 고양이가 그것이다. 보살은 후에 문수동자상으로 상원사에 남겨졌고, 고양이 역시 상원사 청량선원 앞에 석상으로 남았다. 재미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무튼 우리도 고양이 석상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는데, 우리 하는 짓이 궁금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쳐다본다. 해서 이래저래 해서 우리도 고양이를 만진다 했는데, 우리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 왈.

 

“열심히 만지세요”

 

찬바람이 쌩. 오전에는 슈퍼에서 까탈스런 목소리를 듣더니 오후에는 절에서 쌀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어째 오늘은 사람일진이 좋지 않다. 머 언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마음 상처가 크다.

 

절 구경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남았더라면 가까운 적멸보궁까지 둘러보겠지만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 아래 정류소로 일지감치 내려간다. 그새 해가 저만치 산 너머로 지고 바람이 조금 세졌다.

 

정류장에 분명 5시 20분이 막차시간이라고 써 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 때문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도 한참 동안이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꿍얼꿍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까지 약 21km. 걸은 6시간 30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상원사에서는 진부로 나오는 막차가 17시 20분이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며, 진부에서 동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역시 30여분 간격으로 막차 20시 45분이다.

 

* 잠잘 곳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에는 오대산장이 있으며, 월정사 부근에는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구룡령까지는 숙박할 곳이 따로 없으니 일정 잡는데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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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23:39 2010/10/20 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