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전작 <동물농장>과 마찬가지로 <1984> 또한 종종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나면. <동물농장>은 풍자와 해학이 섞여 있고 <1984>는 좀 더 어둡고 암울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전체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일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1984>나 <동물농장> 모두 미래 사회 혹은 상상된 사회에 대한 경고 정도로만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사회 모두 에서 분명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이라는 미명하에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CCTV만 보더라도 감시사회는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자의 의도를 왜곡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읽었나봤나 싶기도 하고. 보긴 봤어도 자기 좋을 대로만 읽었구나 싶은 게. 꼭 무슨, 무슨 신문과 방송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가 쓴 일련의 다른 책들, 이를테면 <카탈로니아 찬가>나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글들까지 함께 본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가 바로 오웰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이니. 무슨 말을 하던 그냥 그대로 내버려둬도 괜찮겠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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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10:52 2013/04/26 10:52
사용자 삽입 이미지1936년, 스페인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 정당들과 무정부주의자들, 자유주의 정당과 자치주의자들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를 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칠레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보다 앞선 것이지요. 그리고 또 잘 알고 있듯이 <인민전선> 또한 낡은 사회관계를 과감히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토지개혁을 단행했으며 지배세력과 함께 하고 있었던 가톨릭에 맞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또 또렷이 기억하고 있듯, <인민전선> 역시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들이 일으킨 반동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내전은 곧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이 군대와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하지만 파시즘에 맞선 이들은 같은 이름을 가졌던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도, 되레 프랑코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었던 영국도 아니었습니다. 소련은 무기를 팔아먹는 데만 급급했을 뿐만 아니라, 내전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만 있을 뿐이었지요.
 
스페인 동부의 대도시에서 “기관총 진지를 택시들이 시속 백 킬로미터로 달려가 부수어(「카탈로니아 찬가」, p.70)” 버리며 파시스트들을 물리친 노동자, 농민들은 “노동자 순찰대,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동자 의용군 등을 통해 거칠게나마 노동자 정부를 세워보려는 시도(「카탈로니아 찬가」, p.70)”를 합니다. 봉기에 우왕좌왕하던 <인민전선>을 대신해 혁명을 더욱 앞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은 이로 인해 더 복잡한 양상을 때게 됩니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솔직히 정치적인 소설(「동물농장」,, <나는 왜 쓰는가>, 민음사, 2005, p.142)”이라고 한 이유가 되는 제11장을 비롯해, 제5장에 쓰여 있듯 말입니다.
 
오웰,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등 전 세계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스페인 혁명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이들에게 “만화경 같은 정당과 노동조합들, 그리고 그 짜증나는 이름들 - P.S.U.C., P.O.U.M., F.A.I., C.N.T., U.G.T., J.C.I., J.S.U., A.I.T. - 은” 좀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오웰이 말한 바대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 또는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는 대의 앞에는 예상치 못했던 장벽이 놓여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혁명에 대한 약속은 너무 쉽게 깨졌고 배신과 좌절이 뒤를 따르게 됩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해 겪은 일을 기록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스탈린주의에 적대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책을 많이 내는 바람에 공산주의자들의 따돌림으로 운영도 어렵던 프레드릭 워버그의 출판사에서 1928년 4월”이 돼서야 나온 것만 보더라도. 또 공공연히 오웰 자신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썼다고 말했듯이 ‘소설’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니 <나는 왜 쓰는가>에서 말했던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의 동기를 가장 충실히 따른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동물농장」,, <나는 왜 쓰는가>, 민음사, 2005, p.141)” 쓴 글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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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 15:09 2012/11/25 15:09

1.

김흥국이 1인 시위에 이어 삭발까지 했답니다. 너무나 부당하다는 것인데요. 가만 보고 있으려니 너무 외롭게 싸우는 것 같습니다. 구원군이라고는 정몽준, 이 한 사람인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 양반은 되레 짐을 지우는 꼴이라. 차라리 뒤에서 코치나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뻔. 하긴 축구공으로 끈끈이 맺어진 우정이 오죽이야 하겠습니까. 절친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뭐, 정몽준이야 그렇다 쳐도, 대선에서 2MB 지지 선언까지 했는데. 우리 보수우익 ‘동지’들 코빼기도 볼 수 없으니, 참 이상합니다. 하다못해 조.중.동도 잠잠하고. 기껏 늘 뻘 소리로 일관하는 모, 모 인사들이나 지들끼리 모여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문화권력’ 운운하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이정도 사건이면 ‘가스통’이라도 굴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 
 
헌데 ‘불똥’이 딴 데로 튀었습니다. 이제 김여진을 방송에서 보기 어렵게 됐거든요. 진작부터 이런 걸 만들려는 속셈이었겠지만. 때는 이때다, 일명 ‘김흥국 사태’를 이용해 사규로 ‘소셜테이너’의 방송 출연을 금지 시키겠다고 나섰으니.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일개 사규로 막겠다는 것도 웃지 못 할 코미디이긴 하지만. 이 무슨 웃긴 ‘형평성’인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제 발등 찍는 짓거리밖에 되지 않는, 그 방송국 노동조합의 입장은 대체 뭐랍니까.
 
록그룹 YB밴드 보컬 윤도현은 모 방송국 인터뷰에서 록이 무어냐는 질문에 ‘저항’이란 말 대신 ‘에너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나가수’ 출연 이전 지난 2, 3년간이 그에게 ‘록’을 ‘에너지’로 바꾸게 한 것인데요. 어느 한 순간 모든 방송에서 사라져야 했던 YB가 돌아와 “광고주분들 때문에 부담”까지 갖게 되면서 할 수 있는 말이란. 그래, 딱 저만큼이구나 싶어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미선.효순 추모 집회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 윤밴이 맞나 싶었거든요.
 
2.
그룹 U2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헌정하는 곡을 썼습니다. 빈곤, 인권과 같은 사회문제에 늘 비판적인 가사로 노래를 만들던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U2는 이 노래로 인해 각종 인종차별단체, 특히나 KKK로부터 많은 협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선 보노를 죽이겠다는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Pride를 연주하면 죽이겠다.’ 그러나 U2는 끝내 그 노래를 부릅니다. 보노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안 베이시스트 아담이 연주를 하는 내내 방패막이로 선 채 말이지요. U2의 리더 보노는 2010년 4번째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2006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UN 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으로 날아왔습니다. 당시 미국 내 보수진영들은 차베스를 일컬어 ‘라틴의 후세인’이라며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차베스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정작 욕을 먹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손수 뉴욕 빈민가를 안내하고 베네수엘라 민중과 미국 빈민의 연대를 얘기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흔치 않게 등장하는 흑인 배우. 이전에도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를 목표로 한 세계사회포럼에도 모습을 나타내 미국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난한 적도 있고,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미국 내 흑인들의 단체인 ‘트랜스아프리카포럼TransAfrica Forum’의 의장을 맡았던. 바로 대니 글로버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블로 네루다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초대로 에스타디오 나시오날(국립경기장)에서 시낭송회를 가졌습니다. 일찍이 칠레 공산당원으로 상원의원까지 지냈고,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공화국의 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엔 반파시스의 전선에서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시를 쓰며 예술가들을 하나로 묶어냈던 그에게는 이 낭송회가 마지막 시낭송회가 됐는데요. 잔혹한 반공독재자 피노체트가 쿠테타를 일으킨 직후, 칠레 민중의 손으로 세운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가 전복된 뒤이지요.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겁니다.
 
미국 CIA의 후광을 뒤에 업고 대통령궁에 전투기까지 동원해 폭격을 퍼부었던 피노체트는 칠레의 좌파 시인인 이 네루다의 장례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칠레 민중들은 통행금지를 어기고 거리로 나섰고, 결국 네루다의 장례식은 독재정권에 대한 최초의 항거가 됐습니다. 이에 피노체트는 발파라이소의 네루다 자택과 시신이 안치된 산티아고의 자택을 약탈하고 파괴합니다.
 
4. 
2011년, ‘개콘’만도 못한 이 웃긴 일들에 쾌재를 부르고 있는 자들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직업이랍시고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과 ‘권력’을 가진, ‘권력’ 주위에 서성이는 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틈만 나면 “정치란 말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말이지”라며 거들먹거리고 싶은데.
 
‘네 까짓 게 뭘 안다가 그런 소리야’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정치를 하겠다고?’
‘교사, 공무원은 공복이므로 명령에 복종해야지’
‘연예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공공연하게 말해선 안 돼’
 
라며 훈계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젠 알아서들 편을 갈라 입 닥치고 있으니. 아니 물어뜯고 할퀴고 싸우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손 안대고 코푸는 격입니다. 
 
하지만 교사도 공무원도, 노동자도, 개그맨도, 가수도, ‘정치인’도, 화가도, 시인도, 모두 사람입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누가 누구를 억압할 권리나 의무가 없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 ‘정치인’과 ‘권력자’들이라는 자들은 늘 그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양 행세하고 있는 겁니다. 
 
뭔 일만 있다하면 외국에서는 어쩌구저쩌구, 미국에선 말이지요, 하면서 또 어쩌구저쩌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의 예를 들먹이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남들이 그렇다고 우리도 꼭 그래야 하는 법도 없고. 남들이 A라고 하는 걸 우리는 B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보편’이라는 잣대도 있는 것이고, 그 잣대란 걸 들이대면 이처럼 꼭 들어맞긴 하지만 말입니다.
 
호랑나비는 다시 날아올라 마이크 앞에 서야겠습니다. 김여진은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또 <시선집중>에서 봤으면 좋겠구요, 윤도현은 ‘나가수’말고도 다른 음악프로그램 섭외 1순위가 됐으면 합니다. 아, 김제동, 김미화, 김부선, 또 누가 있지요? 다들 어서어서 제자리를 찾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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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6 14:53 2011/07/16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