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구례벌이 내려다보이는 구릿재 넘는 길(2020년 4월 30일)
 
2년 만입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왔었던 것 같은데. 작년엔 뭐가 그리 바빴을까요. 달력을 보니 연휴가 없었더군요. 한 여름엔 걸을 수 없다는 걸 첫 걷기에서 배웠고. 겨울은 왠지 걷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가 않습니다. 요즘처럼 어린 나뭇잎이 파릇파릇 올라오거나 빨갛고 노란 색색 옷을 입을 때만 기다리려니 그렇게 됐더군요.
 
그래서일까요. 6일 연휴로 좀 잠잠해지려나 싶은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지는 않을까, 질병본부가 신신당부를 해서 가도 될까, 망설여지긴 했지만요. 어느새 주섬주섬 짐 싸고 기차에 시외버스까지 예매하고 있더라니까요. 이틀간 머물 곳 정하고 중간에 어디서 밥 먹을까, 저녁은 뭐 먹지. 참 사람마음 간사합니다. 마스크에 소독제까지 가져가니 괜찮을거야, 좀 더 조심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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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숙소에서 뭐를 주섬주섬 먹고 나왔는데도 탑동마을에 서니 배가 출출합니다. 꽤 구불구불 돌아 올라가는 길이 길기도 하고, 올라간 만큼은 다시 돌고 돌아 내려가야 밥 먹을 데가 나오니. 배를 든든이 채워야겠습니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바람에 손 흔드는 나뭇잎 보다가,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는 삼층석탑도 구경하고 나선 길. 구불구불 구불길입니다.

 
포장된 길도 걷다, 숲길도 걷다, 임도를 따라 조금은 재미없는 오르막도 오르다가 정자에서 잠시 땀도 식히고. 참 많이도 가져왔지 싶은 주전부리도 먹고. 재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송전탑만 아니면 시원한 편백나무 숲에서 놀다 갔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올랐을까요. 드디어 구릿재입니다. 발아래 구례벌이 펼쳐있어 눈호강을 하고는 싶은데 이런, 여기도 송전선이 머리 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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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분은 넘게 투덜투덜 내려왔나요. 그제야 쉴만한 곳이 나옵니다. 고압선도 없구요. 헌데 이번엔 뱃속에서 꼬로록 꼬로록.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럴까요. 가파르지 않아 이만하면 오르막도 걸을만하다 했는데. 그래도 힘은 부쳤나봅니다. 지도를 보니 한참은 더 내려가야 마을이 나올 것 같으니 마음이 급합니다. 잠깐 쉬었다가 가파른 포장길을 타박타박 걷습니다.

 
연휴라 문을 열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한 낮 땡볕도 피할 수 있었구요. 예년 이맘때와는 다르게 기온이 25 가까이 올라 걷는 게 쫌 힘들었거든요. 옷을 가볍게 입는다고는 했지만. 햇빛 가린다고 얼굴에 이것저것 쓰고 가리느라 땀이 목덜미에 송글송글.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 몰라 물도 목을 축이는 정도만 마시고. 한참을 쉬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쉬엄쉬엄 걸어도 됩니다. 머리가 반쯤 남은, 무릎 아래는 또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석불상도 둘러보고. 과수원 안쪽을 가로 질러도 가기도 하고. 시원한 대죽 숲길에선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방광마을을 지나서는 오랜만에 만난 찻길도 걷고. 둘레길을 걷지 않으면 이렇게 마을 안길을 걸을 수나 있을까. 돌담이 집들을 둘러싸고 있는 방광마을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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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잔치도 한 달 뒤로 미루기는 했지만 오늘은 석가모니께서 오신 날. 가까운 곳에 샘과 구렁이와 글씨가 어우러져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천은사(泉隱寺)가 있으니 가볼까도 싶지만. 축일까지 다음에 하겠다는 곳을 가는 것도 뭐하고. 괜한 차 한 대 놓치고 투덜투덜. 다음 차도 겨우 잡아타고 읍내로 오니 그제야 해가 제 일을 다 했나, 시원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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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10:50 2024/03/07 10:50

밤재를 넘으니 남도하고도 구례 땅이라 : <주천-산동> 구간 (2018년 5월 19일)

 

멀긴 멉니다. 어제 낮 3시에 출발했는데 남원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전 언저리에서 조금 막히긴 했지만서도 7시간이라니요. 강릉에서 전라도. 심리적 거리만큼이나 오가는 시간도 참 머네요. 그러니 노는 날이 4일이라도 온전히 걸을 수 있는 건 오늘 하루뿐입니다. 내일은 아침나절 여유 좀 부리며 놀더라도요. 점심 먹고부터는 또 부지런히 집으로 가야하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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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 옛길을 몰랐던 때 터널을 걸어 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긴 터널 속에서 달려들 듯 내달리는 트럭들. 목줄도 없이 사납게 짖어대던 산만한 개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길 위로 뛰쳐나온 개구리와 지렁이들. 끝내 터널을 나오자마자 지나는 차를 세워 태워 달라했지요.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입니다. 지금이야 왜 거길 지났을까 이유도 잘 떠오르진 않지만요.

 

주천에서 밤재를 넘어 구례 산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꽤나 깁니다. 주천 쪽에서 넘어가는 길은 그래도 한 두 시간만 오르면 산동까지는 쭉 내리막이긴 한데. 산동 쪽에서는 반대로 긴 오르막을 네 시간 이상 걸어야 하니요. 이럴 땐 반대쪽으로 걷기로 한 게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시작해도 중간에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요. 배를 채우는 건 물론이고 간식도 넉넉히 챙겨야 합니다.

 

남원에서 출발한 버스가 주천면사무소를 두고 산 위쪽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더니 주천-운봉 구간 출발점에 사람들을 내려놓습니다. 탈 때 둘레길 간다고 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면사무소라는 방송에 벨을 눌렀는데, 다들 주천, 운봉 구간을 걷는 사람들이었던가 봐요. 기사님도 의례 그렇게 알고 있고. 왔던 길을 돌아 면사무소 앞으로 갈 때야 겨우 겨우 내립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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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걸었던 길을 10여분 남짓 되짚어오니 다행히 밥 먹을 곳이 꽤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 조금 넘었네요.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어둡니다. 날씨야 어제까지 내렸던 비 때문에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하고. 햇볕이 조금 따갑고 자외선 지수가 높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고개를 너머 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겠다, 생각됩니다.

 

외평마을을 지나 30여분 쯤 지났을까요. 목덜미에 땀이 조금 찹니다. 좀 전에 버스타고 지났던 산 중턱 마을, 장안제라는 저수지네요. 출발할 때 봤던 돌로 된 효열비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봤었는데. 효자각 앞 배롱나무가 300년 됐다길래 그것도 구경하려는데. 왠 시커먼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걸까요. 아무리 목줄로 매어있다고 해도 무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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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따라 줄기차게 오르니 등이 흠뻑 젖습니다. 반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숨도 고릅니다. 아까부터 꽃망울이 하나, 둘 떨어졌는데 그것도 세어보면서요. 산길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지만 쉬고 나니 한결 낫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숨이 찰만하면 내려가기도 하고 완만하게 이어지기도 하네요. 유스호스텔을 두고 지하도를 두 번 왔다, 갔다 한 것만 빼면요.

 

올레길 6구간이라던가요. 모 재벌회장 부인이 길을 막아버렸던 곳이요. 때문에 올레길이 도로 쪽으로 우회하게 됐다던데요. 당연히 같은 이유는 아니겠습니다만. 얼핏 보면요. 유스호스텔을 통과하면 지하도를 한 번만 지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닌가요. 물론 매일 문을 열어야하니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좀은 아쉽습니다. 매점도 있다고 하니 그곳을 거쳐 가면 둘레꾼들에게 도움이 될텐데요.

 

길이 어느새 포장도로에서 임도로 바뀌었습니다. 계속 오르막이긴 하지만 경사가 크지 않아 숨은 가쁘지 않습니다. 좀 전에 지나왔던 거 아닌가 싶게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지만요. 그늘에 누워 잠깐 쉬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향도 흠뻑 맡아봅니다. 이제 3분의 1쯤 왔습니다. 1시가 조금 넘었으니 이만하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고 좋습니다.

 

밤재를 코앞에 두고 여느 고갯마루와 같이 오르막이 가파릅니다. 마지막 힘을 내기 위해 숨을 고르고는 힘차게 출발. 2시. 드디어 밤재에 올랐습니다. 올라온 쪽에서 보면 남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반대편 내려가는 쪽을 보면 19번 국도가 꼬부랑꼬부랑. 정자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한참이고 쉬었다 갔을텐데. 게다가 송전전까지 길을 가로지르고 있어 달음박질을 합니다.

 

산만한 개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어찌하나 난감합니다. 가만 보니 밭둑으로 돌아가면 될 듯합니다. 길을 내준 것만도 고마우니 길 가에 개 키운다고 뭐라 할 수 없지요. 무서우면 잠시 피해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비올 때 돌아가는 길로는 웬만해선 안 가는 게 좋겠습니다. 곧 펼쳐지는 대나무 숲을 볼 수 없으니까요. 또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이어진 시원한 숲도 지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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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억서억 대숲을 지나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뛰기도 합니다. 어제, 그제 비가 와 걱정했지만 물이 많이 빠져서인지 괜찮네요. 계곡물에 땀을 씻어냅니다. 바리바리 싸 온 간식도 챙겨먹고요. 커피향이 물씬 나는 편백나무 사이에서는 조금 가다 쉬고, 또 조금 가다 의자에 퍼질러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숲길을 다 빠져나오니 아까 개 때문에 돌아가려 했던 길과 만납니다.

 

밤재 정상에서, 아니 주천에서부터 국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송전선이 눈에 자꾸 거슬리네요. 게다가 둘레길 위로 여기저기 지납니다. 산수유 시목지가 있는 계척마을에서도 그렇고.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현천제를 지나 현천마을에서도 그렇고. 우연이겠지만요. 아까부터 머리가 그렇게 아픈데 혹시나 저 고압선 때문인 건가요. 점심 먹을 요량으로 점 찍어둔 식당이 문을 닫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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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천교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걸으니 원촌마을입니다. 산동면사무소가 있는 곳이구요. 주천-산동 구간 시작점이자 마침점입니다. 숙소를 탑동마을에 잡았으니 20여분은 더 가야겠는데, 아이쿠 뱃속이 요란합니다. 그도 그럴만합니다. 10시 반에 아침 겸 점심 먹고 11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지금이 다섯 시니. 꼬박 여섯 시간 동안 걸으며 밥 구경을 못했거든요.

 

마침 손수 기른, 채소는 물론 쌀농사까지 지었다고 합니다. 손맛 나는 밥집에서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술도 한 잔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럴 땐 해가 길어진 게 참 다행이지 싶습니다. 식당을 나와 잠깐 길을 헤매긴 했지만요. 서시천을 따라 효동교를 건너 민박집에 도착하니 아직도 날이 밝습니다. 이제 씻고 푹 자야겠습니다. 여기는 전라남도하고도 구례 땅입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주천에서 밤재를 넘어 산동까지 15.9km와 서시천 건너 탑동마을까지 1.4km를 더하면 17.3km를 걸었네요.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전라도 쪽으로 오고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도를 대각선으로 쭉 그어도 꽤 긴 거리인데다 고속도로나 기차마저 이리저리 돌고 돌아오니 그렇습니다. 승용차로도 5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고, 대중교통으로는 짧게 잡아도 7시간은 걸립니다.

 

* 잠잘 곳

주천에도 밥 먹고 숙박할 곳이 여럿 있는데 남원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오후 일찍 출발했는데도 밤 늦게서야 겨우 남원까지밖에 못 왔으니까요. 주천을 지나 밤재, 산동까지 유스호스텔에 있는 듯한 매점을 빼고는 밥집은커녕 물 사마실 곳도 없습니다. 그러니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간식을 충분히 싸 가져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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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5 11:37 2021/09/15 11:37
첫째 날, 쉬엄쉬엄 마저 걷는 인월-금계 구간(2017년 4월 29일)
 
긴 연휴입니다. 물론 노동절과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징검다리로 하는 3일을 쉬니 생기게 된 연휴입니다. 헌데 사람마음 참 간사합니다. 촛불에 쫓겨난 대통령을 다시 뽑는 9일과 일요일 사이 8일에도 놀았다면, 하는 생각이 다 드니 말입니다. 그런데요. 딴 나라에선 한 달 여름휴가 간다고 하던데. 어찌된 나라에선 며칠 쉬는 것 가지고도 사람을 이리 갈라서 서로 헐뜯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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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온 보람이 있습니다. 사흘 간 짐 맡기고 걸을 요량으로 잠 잘 곳도 미리 정하고 밥도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사실 처음 둘레길에 왔을 땐 더위 때문에 고생을 했고. 두 번짼 산행에 혀를 내둘렀더랬습니다. 해서 요번엔 하루에 딱 한 구간씩만 걷기로 하고 짐도 가볍게 하자 맘먹었던 겁니다.
 
장항마을 입구에 내리니 아직은 햇볕이 좀 따갑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인월에서 숙소를 잡지 않고 왔다면 일찍 더워진 날씨에 땀 좀 흘렸겠지만요. 버스 한 번 더 타고 시간 좀 지체했다 싶은 게, 마침 걷기 딱 좋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모내기 준비에 바쁜 농부님들을 뒤로 하고 당산소나무를 지나 가파른 산길로 바로 올라섭니다.
 
전해져오는 얘기일 뿐인지, 진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때 운봉은 호수였다고 합니다. 그때 배가 넘다들던 물길이었다는데서 생겨난 곳이 여기 배너미재인데요. 가만, 이곳까지 물이 들어왔었다구요. 그럼 대체 호수가 얼마나 크고 깊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촌이라 불리는 배마을, 배를 묶어뒀다는 고리봉, 배를 내려다보던 갈대밭이었던 노치마을까지 넓혀보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요, 여긴 좀 높은데요.
 
그래도 재를 넘고 나니 내리막길과 평지길입니다. 늦은 보리밥을 든든히 먹어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요. 산청, 함양 쪽에선 없었던 쉼터도 두 개나 있구요. 좀 더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황매암 쪽과 포장길을 따라 수성대를 지나 광천을 따라 가는 쪽이 갈리는 곳까진 말입니다. 그러니 처음 30여 분이 힘들지 그 뒤론 사뿐사뿐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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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에서 등구재를 넘어 왔으니 망정이지요. 인월에서 중군마을을 거쳐 아스팔트를 왔더라면요. 아마 열에 일곱은 왜 황매암쪽으로 왔을까, 했을 겁니다. 올라야 할 길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뭐 둘레길 걷는 재미를 산길이라고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정말이냐를 물을 정도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다행히 황매암을 지나고 긴 내리막길을 지난 후, 일 끝내고 돌아가는 트럭들이 오가는 중군마을부터는 평지입니다. 대신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걷기엔 좋지 않듯 발바닥이 아프네요. 더구나 인월교까진, 한가롭게 풀 뜯으며 놀고 있는 소떼들 아니었음 많이 지루했을 긴 제방길이 이어졌으니요. 그저 빨리 숙소로 가고 싶은 맘뿐입니다.
 
둘째 날, 걷고 또 걷는 제방길(2017년 4월 30일)
 
어제 중군마을을 지나면서 만났던 제방은 그야말로 세발에 피였습니다. 나중에 지도로 확인한 걸로는 부층탑이 조금 지난 곳부터 서림공원까지 대략 4km 이던데요. 나무가 심겨있긴 한데 키가 작아 그늘을 만들기 역부족인데다. 낮에 길을 걸어 해가 머리위에서 정면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좀체 속도가 안 납니다. <국악의 성지>가 아니었으면, 비전마을과 신기마을 앞 쉼터가 아니었으면 녹초가 됐을 겁니다.
 
아무튼 그건 길을 한참 걸은 후에 일이니까 조금 있다 얘기하구요. 지금은 인월(引月)부터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애초 인월에 머물기로 했던 이유는 산내 쪽 여기저기를 둘러볼 요량이었는데요. 다행히 다리 하나만 건너면 한집 건너 민박을 하는 월평마을이 있으니 싸고 괜찮은 집을 쉽게 구했습니다. 콘도만큼은 아니어도 뭐라도 해먹을 수 있는 부엌까지 딸린 방이 하룻밤에 3만원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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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점심을 푸짐히 먹었던 보리밥집은 둘레꾼이라면 한 번씩은 들렀을 곳이고. 순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선지로 만들었다는 순댓국집도 좋겠습니다. 손 맛 좋기로 소문난 전라도니 어디라도 밥 한 끼 먹는 데 빠질 수야 없겠지만요. 여기 인월도 들어가는 식당마다 어찌나 맛나는지요. 한 번은 외출한다고 또 한 번은 해 놓은 밥 다 떨어졌다고, 세 번 만에야 청국장찌개를 먹었던 곳도 그랬습니다.
 
산이 좋아 왔다 아예 내려와 자리 잡고 일까지 하고 있다던, 이것저것 묻는 말에 귀찮아하기는커녕 맞장구치고 깔깔 웃으시던 분, 서투른 문자지만 소홀하게 한 건 아닌지 연신 안부를 물어주셨던,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하게 쉬다 가시라며 지내는 동안 눈치 한 번 주지 않았던 민박집 아줌씨, 아자씨. 혹여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궁금해하고, 좋은 길 잘 다니라 격려해주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깁니다.
 
책장 속 책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니어링부부가 쓴 책이며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이 꽂혀 있는 책장 주인은요. 마을 한 복판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은, 여기가 월평마을이라며 환영한다는 고흐와 2코스는 끝났으니 3코스는 가든지 말든지 “힘들다 빨리 찍고 가라”는 할머니 벽화가 공존하는 곳. 어찌 차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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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출발이 많이 늦습니다. 분명 집에선 일찌감치 나왔는데요. 운봉까진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면 되겠지만요. 금방 아침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때입니다. 차라리 점심까지 든든히 먹고 한낮 더위 피해서 걸을까도 싶습니다만. 여유롭게 걷고 싶기도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걷기도 싶어 결국 길을 나섭니다. 다행이 여기 인월이나 운봉이 지대가 높아 햇볕만 따갑지 걷기엔 좋습니다.
 
언뜻 보면 목장 같은데 고사리가 잔뜩 자라고 있는 월평마을 뒷산은 산책길입니다.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던데 밤나무보단 바람에 흔들리는 전나무가 더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입니다. 그래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평상에 주저앉아 출출한 배를 시원한 열무국수로 채웁니다. 앞으로 운봉까진 식당은커녕 쉼터도 없으니 응당 쉬어가야지요.
 
수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길이 다릅니다. 흙길이다가도 자갈길이 나오고, 처음과 끝엔 포장길인걸 보면 모두 포장을 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휴양림부터 시작된 꼬부랑길이 옥계저수지 아래 람천까지 그렇게 이어지는데요. 하천변 제방도 그렇고 산길도 그렇고. 흙길보단 포장길이 갈수록 늘어만 가니. 덕분에 발바닥이 좀은 아픕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하천 정비한다고 하더니 여기도 그런가봅니다. 인월교에서도 탁한 물이 보이기에 어디서 공사하나 싶었는데요. 운봉까지 걸어야 하는데 물이 계속 흐립니다. 여기저기 강바닥에 돌 깔고 콘크리트치고 난리도 아닌 겁니다. ‘지리산생명연대’가 2011년에 낸 보고서에는 천연기념물 수달 서식지라던데요. 다 끝나진 않았겠지만 이래서야 있던 수달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날도 더운데다 그늘 하나 없는 제방길이라 걷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해서 더위도 피할 겸 볼일도 볼 겸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고자 길을 벗어납니다. 헌데 밖에서 볼 땐 큼지막한 건물이라 좀은 기대하고 들어가 봤는데요. 볼거리보다는 국악 하는 분들 연습하는 장소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판소리 열 두 마당부터 국악 성지 조성 경과를 친절히 설명해주신 어르신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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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구경한 것도 없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덕분에 한낮 더위는 피했으니 이 다시 제방 위로 올라서야겠습니다. 그늘 하나 없긴 하지만 비전, 신기마을엔 아름드리나무가 있어 잠깐씩 쉴 수 있습니다. 동학군을 막아섰던 박봉양을 기리는 비석을 큼지막하게도 세워 놓은 서림공원도 있지만요. 거긴 못마땅한 기분에 건너뜁니다. 곧 운봉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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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17:20 2020/05/04 17:20
첫째 날, ‘유두류록(遊頭流錄)’길?, ‘빨치산루트’길?(2016년 5월 5일)
 
여전히 반대방향으로 걷느라 들머리가 된 동강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합니다. 당체 오가는 사투리가 암호마냥 알아들을 수 없는 긴 했지만요. 그래도 재미난 얘기도 듣고 반대쪽 길 소식도 좀 듣고요. 오늘처럼 햇볕이 따가운 날이 아니라도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팽나무를 못보고 시작하긴 했지만요. 오르막길 내내 선선히 부는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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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금계-동강 구간은 김종직(金宗直)이 쓴 '유두류록'을 따라 걷는 길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만든 <관영차밭조성터>가 가까운 동호마을에 있는 것부터 그렇구요. 동강마을 팽나무, 운서마을로 넘어가는 구시락재, 송대마을 함양독바위들은 고증을 거쳐 찾아낸 곳들이라고 하니요. 그도 그럴만 합니다.  
 
앞에 그냥 지나쳤던 팽나무도 그렇습니다. 수령이 600년이나 됐다는데요, 계온(季溫)이 관아를 출발해 이곳을 거쳐 지리산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헌데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그걸 놓친 거였지요. 필시 해가 지기 전에 금계를 거쳐 창원마을까지 가야한다는 부담 때문이었겠지요.   
 
사실 동강에는 지난번에도 지나친 재미난 얘기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엄천사 스님들이 '중이 바랑을 메고 가는 형국'이라며 깨려고 했다고도 하는, 짚신을 삼는데 쓰는 나무틀처럼 생겼다는 신틀바위가 그겁니다. 나중에야 여간해선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일쑤라는 걸 알긴 했지만 말입니다.
 
구시락재까지는 아무리 오르막길이라 해도 뒤를 돌아보면 엄천강이 시원하게 보여 걸을만하지만요. 운서마을 쉼터를 지날 때까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힘을 뺍니다. 그것도 경사가 급합니다. 결국 자주 쉬어 가야겠는데, 어찌된 게 아무렇게나 앉아 쉬었다 출발하면 바로 앞에 정자(亭子)가, 의자가 있습니다. 조금 약이 오르지만 하는 수 없지요.
 
다음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송문교까지 가는 길에선 둘레길꾼들을 가장 많이 만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짝지어 오거나 단체로 때론 혼자서. 어색하지만 인사말도 건네 보고요, 커피까지 타 먹게 해 놓은 쉼터에서 급한 볼일도 보고요, 용을 닮아 와룡대라 불리는 소나무 바위도 너머보고요. 심심할 새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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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데도 세동마을서 모전마을까진 안내판이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면 되긴 하지만요. 난데없이 나타난 [지리산 둘레길 전설 탐방로]라는 표지가 헛갈리게 합니다. 뭐 뜨끈한 길에서 내려다보자면요. 농로로 이어지기도 하고 강가에 바짝 붙어 있기도 하니요. 그쪽이 훨씬 걷는 재미가 많아 보이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동강-금계 구간은 ‘빨치산루트’라고도 불립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이나 더 산속에 있었던 이은조가 죽었다는 선녀골과 그 주변 비트들 때문입니다. 또 가까운 벽송사 뒤편 능선을 따라서도 흔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물론 산청 쪽에도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사로잡혔던 고향 집이 있으며, 하동 쪽도 꽤 많은 자취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시간만 된다면야 그 길들을 되짚어 가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만. 송대마을까지 올라야 제대로 된 안내판을 만나게 되니까요. 갈림길인 모전마을에선 알 수가 없다는 핑계, 서둘러 걷지 않으면 숙소로 정한 창원마을까지 어렵겠다는 판단. 벽송사로 이어지는 산길 대신 둘러가는 길로 접어드니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그늘 하나 없던 딱딱한 길을 버리고 숲길로 들어서기 전 잠시 쉬어갑니다. 하지만 철모르게 일찍 나온 모기 때들이 어찌나 극성이던지요. 곧 만나게 될 급한 오르막과 너덜겅을 앞두고, 아홉 마리 용과 마적도사 얘기는 그렇다해도. 별 소용도 없는 댐 짓겠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용유담도 제대로 못봅니다. 첫 여행 때도 그랬는데 지리산 모기, 꽤나 성가십니다.
 
매번 그랬지만 안내 책자나 둘레길 홈페이지에 나온 거리에 따른 시간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또 겪습니다. 4시간이면 충분할 거라던데, 모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숲길을 지나 의중마을에 내려서니 벌써 6시 입니다. 급한 오르막길 이후 너덜겅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져 생각보다 오래 걸었다고 해도, 4시간 반이나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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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함양센터 앞에서 미리 예약한 민박집에 연락하니 40분이면 올라올 수 있을 거라 합니다. 후아, 40분이라. 줄기차게 올라야 하는 산길임을 감안하면 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헌데 무슨 깡인지 평상에 올라 대(大)자로 눕습니다. 아마 오르막길이 험하면 얼마나 험할까 얕잡아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산길을 한 번 제대로 쉬지 않고 내리 걸어 숲길에서 나오니 딱 40분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도착했지만요. 또 민박집 주인장 걷는 모양새를 보고나서야 왜 40분이라고 했는지 알게 됐지만요. 역시 지리산 둘레길은 순례길이란 생각에 고개가 절래절래. 밥이고 뭐고 또 팔다리 쫙 펴고 눕습니다.       
 
 
 
* 인민군 야전병원으로도 사용됐던 벽송사 뒷산의 선녀굴로 피한 마지막 빨치산은 이은조와 정순덕 외에 이홍이가 있었습니다. 휴전이 되고도 근 10년 가까이 은신했던 이들 가운데 1962년 이은조가 가장 먼저 사살됐습니다. 살아남은 정순덕과 이홍이는 고향인 산청으로 피신하게 되구요. 하지만 다음해 이홍이 역시 경찰에 피살됩니다. 정순덕만이 총에 맞은 채 붙잡히게 된 것이지요. 체포된 정순덕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넘게 옥살이 하다 1985년에야 전향서를 쓰고 출옥합니다. 하지만 이 전향서 때문에 미전향장기수들이 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은 2004년 인천의 한 병원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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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13:38 2017/07/26 13:38
핏빛 자락, 지리산을 걷다: <수철-동강> 구간(2015년 4월 24일)
 
지리산자락 어디 한 곳 가슴 아픈 사연을 품지 않은 곳이 있을까요. 조금 멀게 갑오년 농민군에서부터 가깝게는 한국전쟁 전, 후 '빨치산'까지. 또 이들 틈바구니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어야했던 무수한 이름 없는 이들 말입니다. 해서 지리산은 어느 노랫말처럼 "떨리는 비명 소리"에 숨죽어 있는 "죽음의 저 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 산길 따라 걷다 그 끝에 만나게 되는 방곡마을 역시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거창에서는 그래도 학살 당시 알려졌지만. 가현과 방곡, 점촌, 서주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은, 맞습니다. '민주화' 이후에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추모 묘역이 조성돼 있으니 이만하면 '명예회복'까진 이뤄진 걸까요.  
 
그래도 한 날, 남들 알까 모르게 제사상을 차려야했던 아픔이 어디 쉽게 치유되겠습니까. 묘역으로 오르는 저 높은 계단만큼이나 세상과 단절됐던 마음속 아픔들 말입니다. 그러니 이 구간을 걷는 동안만큼은 옷깃을 여미며 걸어야겠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고 말하기조차 그 아픔을 오롯이 알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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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에서부터 경호1교까지는 건너뛰고 시작합니다. 둘레길 걷기 첫 번째 여행 때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성심원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기 전이라 수도원 피정시설에 묵었었는데요. 저녁나절 살랑살랑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가뿐히 걸었더랬지요. 그러니 산청터미널에서부터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잠시 둘레길 산청센터에 들릅니다. 저녁에 잘 곳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사실 어제 낮 까지만 해도 길을 나설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해서 미리 예약을 못했습니다. 물론 방곡마을회관 전화번호를 챙겨오긴 했지만, 거기 말고도 다른 민박집들을 알아봐야 합니다. 휴일도 아닌데다 예전만치 둘레길 걷는 이들이 많지 않아 문 연 곳이 많지 않으니까요. 
 
다행이 바뀐 전화번호에, 몇 군데 민박집이 적힌 메모지를 받았습니다.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걱정을 했는데 조금은 안심입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따갑기는 하지만 이제 속도를 내서 걸어야겠지요. 수철마을까진 그래도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수월하지만. 고동재와 쌍재를 넘는 산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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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부터 꼬였습니다. 경호1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겁니다. 한참을 갔다 되돌아와 봤던 이정표는 분명 강 쪽으로 향해 있는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 그리됐는지요. 아니 뭘 보다 그리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만 마을 길로 곧장 갔던 겁니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싶었는데 여기서 다 까먹었습니다.
 
애초 둘레길을 역방향으로 걸으려 했던 이유는 해를 등지고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동에서 산청까지 길들이 대략 북쪽으로 난 길이니 말입니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아침에 걸을 때와 낮에 걸을 때, 해질 때 걸을 때에 따라 다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산청구간으로 오니, 그것도 오후에 걸으려니 해를 정면에서 마주보고 걷게 생긴 겁니다. 아, 어쩌지요. 
 
대장마을을 지나 평촌마을까지 땡볕에 내처 걷습니다. 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에 되돌아 걷기도 하고.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보이는 보(洑)를 보며 4대강 얘기도 하며. 줄줄이 이어지는 다랑이 논들에 놓여있는 모판들을 보며 그새 날이 이렇게 됐나, 하며. 머리 위 따가운 해 때문에 속도는 나지 않지만 간간이 부는 강바람에 힘을 내봅니다. 
 
수철마을 매점에서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 가버리면 뭐하느냐, 천천히 쉬었다 내일 아침에 가라’는 할머니 말처럼 쉬었다 가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선 길인데다 빠듯한 시간이 좀은 걱정되긴 하지만, 결국 길을 나섭니다. 곧 겹벚꽃나무에 홀려 길을 잃고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되돌아오면서도 말입니다. 
 
길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마치 지난 번, 두 번째 여행에서 올랐던 웅석봉과도 같습니다. 이런 걸 데쟈뷰라고 하던가요. 저 고개만 돌아서면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돌아서면 또 고개가 나오고 급기야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말입니다. 그런데 아차차, 같이 걷던 걸음이 서서히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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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기선 좀 나았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쌍재에 이르기까지는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떨어져 버린 겁니다. 길도 오르기만 했던 아까보단 훨씬 나은 능선길이었는데요. 산길이라 길을 잘 못 들어설 수도 있고,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뭐가 그리도 바빴던 걸까요. 소리치면 들릴 정도는 아니, 보일만큼은 거리를 뒀어야지요. 
 
아닙니다. 함께 길을 걷기로 나섰으니 좀 늦어 밤길을 걸으면 어떻고, 혹여 잘 곳이 없어 택시를 불러야 한다 해도 어떻습니까. 무조건 같이 갔었어야지요. 산길로 접어들기 전처럼,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경치도 보고 말입니다. 지난 번 여행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또 그랬습니다. 그것도 산길에서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쌍재부터는 길이 좁아지는 계곡 옆을 걸을 때만 빼곤 나란히 걸었습니다. 전처럼 도란도란, 소곤소곤. 내리막길이기도 했지만 훨씬 힘이 덜 듭니다. 다만 시간이 있었다면 계곡에 발도 담그고 쉬었다 가겠지만 민박집과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마음이 급합니다. 해서 조금은 서두릅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추모 묘역도 둘러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추모비에 들를 여유는커녕 마을 어디서고 잠 잘 곳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회관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회관에서 알려준 어느 할머니는 아들 집에 와 있다 하고. 또 다른 민박집은 2명은 안 된다고 하네요. 하는 수 없습니다. 늦기 전에 동강마을로 가야겠습니다.
 
배낭에서 후레쉬도 꺼내들고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진 길을 나섭니다. 여기저기서 개들이 짖고 난리도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었는데, 깜깜해지니 그치들도 경계를 하는 가봅니다. 더구나 멀리서보니 줄에 묶여 있지 않아 보이는 산만한 개도 보입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다행히 저 쪽 길 아래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입니다.
 
두릅을 따고 계셨던 두 분 덕에 민박집을 찾았습니다. "안 되면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집에도 방 있어"라고 하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어보이던 두 분이 아니었으면 어찌됐을까요. 깜깜한 밤도 밤이었지만, 그 덩치 크고 목소리도 무서운 개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막합니다. 게다가 버스는 진즉에 끊겼고 돌아가는 길은 어딘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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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걸었던 세 번째 여행 만에 처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또 계곡물에 귀도 기울여보구요. 그러니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동강마을까지 길은 동네 산보나간 정도였으니 딱히 소개할 것이 없네요. 한 30분이나 됐을까요, 금세 도착했거든요. 아, 어제 밤 그 줄도 안 묶여 있던 산만한 개요? 어째요. 그냥 논길을 빙 둘러 갔답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여전히 둘레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함양읍에서 수철마을과 방곡마을을 거쳐 동강마을까지 약 18.5km입니다. 
 
* 가고, 오고
거리가 먼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네요. 차 시간이 잘 맞아도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남짓 걸리니까요.   
 
* 잠잘 곳
수철마을이나 방곡마을, 동강마을에는 민박집이 많습니다. 하지만 둘레길 걷는 사람이 많을 때가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 곳이 꽤 됩니다. 그러니 출발하기 전에 확인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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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17:22 2017/06/07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