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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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6 14:56 2012/04/06 14:56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사를 했습니다. 내심 9월에나 발령이 나길 바랐지만.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고 산티아고 길도 걷고. 전세금 빼서 재미나게 한 6개월 걷기만 하자 마음먹었지만. 사람 일, 참 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연수 때부터 왠지 아슬아슬하다 싶었는데. 결국 막차를 타고 말았던 듯. 그래도 혹여 동해안 쪽으로 나지 않았을까, 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도 한 순간 꿈. 춘천하곤 정말 먼. 기차타고 지나만 갔을 뿐 둘 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태백.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사 준비하느라 왔다 갔다 한 이 주일 동안 이틀인가 해가 나온. 처음느낌이라곤 눅눅함과 잔뜩 찌푸림이지만. 또 몸도 마음도, 미리 갖추어 차리는 준비도 없이 왔지만. 푸근한 인심과 환한 얼굴들이, 곧 정붙이고 잘살만한 곳이겠구나 싶고. 춘천만큼이나 차타기가 쉽진 않지만 여기저기 볼 것도 많고 가볼 곳도 많으니. 함 재미나게 살아봐야지요.
 
차비없이 : 미리 갖추어 차리는 준비도 없이
 
방 빼기 무섭게 방 구하고. 방 구하자마자 도배며 장판하고. 도배, 장판하고 나서 서둘러 이삿짐 꾸려 옮겨왔지만. 비싼 월세도 아니면서 전세도 아닌. 좀 작다 싶긴 하지만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은. 어차피 버스는 포기하고 택시타고 다녀야 하니 학교랑 먼 거는 상관없고. 바로 앞에 산책길이며 체육관에 도서관도 있으니. 차비없이 한 이사치곤 꽤 잘한 듯싶습니다. 다만 너무 빨리 난 발령 때문에 놀질 못했고. 의정부랑 서울이랑 더 멀어졌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낯선 곳으로 가는 게 선뜻 내키질 않아. 또 물갈이를 하지나 않을런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왔으니, 또 정붙이고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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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20:27 2012/03/30 20:27
1.
기차는 괜찮겠거니, 하고 기차역으로 나갔답니다. 온통 길 막힌다고 난리들이어야지요. 택시라도 탈 요량으로 길을 나서니. 그 많던 차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길은 텅텅 비었는데. 이런. 차가 통 앞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서울 나들이는 새로 길이 뚫리고는 늘 버스였는데 이번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그래 기차역으로 향한 것이지요.   
 
평일 오후인데도 벌써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습니다. 길이 저 모양이니 다들 역으로 몰린 것이지요. 서둘러 표를 끊으니 12시 50분 차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택시가 거의 기다시피 했는데도 다행히 시간이 조금은 남았네요. 오늘은 편안히 눈 구경 실컷 하면서 가겠거니 싶습니다. 그런데..... 어째 출발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개찰구는 굳게 잠겨있고. 가야할 기차는 아직 플랫폼에 들어와 있지도 않네요. 그리고 역무원도 표만 팔뿐 문 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2시 50분에 출발한다던 기차가 서울에서 오는 도중에 계속 연착을 하면서 늦어져 결국 1시 30분이 되서야 출발을 했답니다. 그리구요. 겨우 한 정거장. 김유정역에 도착해서는 한 시간 가까이나 서 있기도 하고. 그래 성북역에 도착하고 나니 작은 시계바늘이 4를, 큰 시계바늘은 30에 가까워 있더군요. 12시쯤 집을 나섰으니. 아. 기차라고 다 빠른 건 아니네요. 하지만 한참을 머물렀던 김유정역에서는 눈을 밟으며 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는 모양새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백색으로 뒤덮인 산자락들을 보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해를 넘겨 붙들고 있던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책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을 다 읽어 내려갔답니다.   
 
3. 
18세기만 하더라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닥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략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채 10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여성에 대한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60여 년 전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청소’하는 일까지도 벌어졌더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 모든 ‘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돼서도, 용인해서도 안 될 일로 여겨집니다. 노예제도도, 아동노동도, 성․인종 차별도 말이지요. 하지만.
 
산란용 암탉들은 병아리일 때 뜨거운 칼날로 부리를 잘린 채 철사로 얽은 좁은 닭장 안에 밀어 넣어져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곳에서 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 역시 진통제도 없이 꼬리를 잘린 채 곧바로 성장-급식 시설(growing-feeding unit)로 보내져 도축 무게에 이를 때까지 몸도 돌리지 못하는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진 겨우 3일 또는 4일밖에 되지 않은 비일 송아지는 양동이를 통해 젖을 마시기 시작해 철분이 함유됐다는 이유로 반추(反芻 ruminate)하려는 욕구를 차단당한 채 몸집만을 불립니다.
 
두 마리의 코끼리가 사슬로 우리에 묶입니다. 암코끼리는 “LSD 투약 절차와 양을 결정하기위한” 범위-탐색(range-finding) 실험 대상이 됩니다. 코끼리에게는 입으로, 그리고 화살 총으로 약이 투입됩니다. 다음으로 실험자는 2달에 걸쳐 두 마리 코끼리 모두에게 약을 투여합니다. 환각제가 다량 투입된 암코끼리는 옆으로 넘어져 1시간 동안 전율을 일으키며 겨우 숨을 쉽니다. 수코끼리는 LSD를 다량 투입할 경우 공격적이 되었으며 이러한 반복적인 공격적 행위를 “온당치 못하다고(inappropriate)” 서술한 실험자를 공격합니다. 뇌 연구에 생생한 실험도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숭이의 두뇌를 몸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유체 내에서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머리만을 내밀고 고정되는 장치에 놓인 토끼는 실험자가 집어넣는 (표백제, 샴푸, 또는 잉크와 같은)실험 재료를 눈으로 다 받아내야만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화씨 113도까지 체온을 올려야 하는 개와 토끼. 한 물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강제로 목구멍까지 튜브를 주입당하거나 강제로 집어넣어지는 쥐와 고양이.  
 
싱어는 (극단적으로 장인하거나 냉혹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세금을 사용하여 다른 종 구성원들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희생시키는 데 참여하고, 이를 묵인 또는 승인하는, ‘종차별주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시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본적인 도덕 원리에 대한 호소를 통해, 동물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의 근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통해, 종차별주의라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을 선명하고도 분명한,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이는 방법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의 울림은 깊으면서도 크고도 강합니다.      
 
3.
온통 눈 천지입니다. 날이 추운 탓도 있겠지만. 서울은 1937년 적설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하니. 그친지도 열흘 가까이 되는데도 여적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길이 미끄러워 도통 밖에 나가가기 꺼려지기도 하고. 또 딱히 일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눈이 꼭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눈 구경하겠다고 따뜻한 남쪽에서 조카가 올라오고. 베란다 창밖으로 온통 하얀 나무, 산, 길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눈이 참 좋습니다.
 
꽤나 많은 눈이 오면 무엇보다도 찻길이며 사람길이며 항시 길이 문제지요. 하지만 길도 길 나름입니다. 서울은 강남 길과 강북 길에 차별이 있고. 모든 길은 찻길이 먼저 치워지고. 달동네 고갯길은 ‘거기까지 어떻게 제설을 합니까’. 하기사 먹고 살기 바빠 아빠, 엄마 모두 일 나가야 하는데 눈 안 치운다고 100만원씩 벌금까지 내라고 하니. 서해안에는 벌써 많은 눈이 내렸고 여기 춘천도 곧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그것 참. 곱게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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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2:22 2010/01/14 12:22

1.

춘천으로 온 지도 그새 2년이 다 되갑니다. 재작년 3월에 왔으니요. 벌써 이태 째 농사를 지었고, 길을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이젠 웬만한 곳은 알려줄 정도가 됐으니. 이젠 춘천 사람 다 됐다, 싶습니다. 그래도 여적 청평사니, 남이섬이니, 옥광산, 춘천 숲 등등을 거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사람 남산 구경 못하고, 부산 사람 태종대 안 간다, 는 말이겠지요.

 

<올 여름 아파트 옥상에서 본 모습입니다. 가운데 솟아있는 산이 봉의산이구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으로 소양호도 보인답니다. 그래도 이렇게 보면 여느 도시하고 다를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가끔 경춘선을 타고 구경 왔을 때도 그랬고, 이사 오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래요. 춘천은 정말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나 강과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뭔지 모르는 무언가가 자꾸만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 는 생각과 함께.  

      

춘천시 인구지도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립니다. 최근 들어 도시 개발이 동내면과 동면 등에 집중되면서 지역별 인구 증가 추세가 동남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동면 지역은 최근 한 달 사이에 천여 명이 넘게 늘었구요, 동내면과 동면 두 지역은 작년에만 무려 5천 명이 넘게 늘었답니다.

 

호호. 서울 사는 이들이 들으면 한참을 웃을 만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동네에 아파트 단지 하나만 들어서도 금세 일, 이천 명도 아니고 일, 이천 세대가 입주를 하는 곳이 대도시이니. 한 해에 5천명이 늘었다고 여기저기서 얘기들이 오가는 모습이란. 하지만요. 여기 이제 막 26만이 넘은 이 작은 도시에선요. 이것만큼 큰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치 중요한 일이랍니다. 

 

2. 

꾸리찌바CURITIBA는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인구 2백만이 넘는, 빠라나 주의 주도라고 하는데요.

 

버스를 땅 위의 지하철로 만들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용자들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요금제도를 도입한. 자동차로부터 해방된, 보행과 자전거 교통을 녹색교통으로 이해하고 실천한. ‘녹색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쓰레기 문제와 빈곤 해소, 잉여농산물 흡수에 적극적인. 다민족도시이면서도 문화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 역사.문화 유산의 보존과 재활용에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꾸리찌바에서 태어난 생명은 가치가 있다”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보육.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자조주택’, ‘실험주택마을’, ‘주상복합주택단지’ 등 소규모 주택 단지 건설을 통해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선. 고대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얻어 세운 ‘지혜의 등대’를 통해 주민들에게 ‘지혜의 길로 안내하는 도서관’을 제공하고. 공업단지를 세우면서도 “공단이 하나의 공원이자 정원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어이 그 목표대로 만들어 낸.


대전시보다 약간 큰 전형적인 대도시라고 합니다.

 

3.

사람이 늘면 지금보단 조금 낫지 않겠나, 싶은 게 여기 춘천에 많은 이들의 생각이겠지요. 그래서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에, 기차가 복선전절화 되는 것에 관심들을 갖겠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넉넉지 못한 시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또 기반시설이 미약한 걸 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늘고, 거기에 따라 이것저것 들어서면 아무래도 지금보다야 나아지겠거니 싶지만요.   

 

재개발한다더니 몇 년째 민둥산으로 방치되고 있는 효자동, 소양동 일대. 또 최근에는 주민-시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소양․약사 등 도심재정비사업 지역. 성냥갑을 일렬로 늘어세워놓은 듯 아파트로만 채워지고 있는 동면과 동내면.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 길 넓히겠다고 멀쩡한 건물들을 부수고 있는 남부로. 신호등이나 인도를 채 마련하지 않아 끝내 한 명이 주민이 숨지는 일까지 발생한 강촌IC 인근 도로.

 

<몇 년째 저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재개발을 하겠다고 집은 다 철거한 것 같은데....>

 

어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대충 훑어 본 거만 열거했는데도 이리 숨이 턱턱 막힙니다. 뭐 춘천이라고 다른 도시들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마는. 외적팽창과 아파트 중심의 개발은 좀 심하다 싶습니다.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딱히 내세울만한 특색도 없고. 아니 하다못해 유행이라도 타고 생색내기라도 해야지요. 남들 다 하는 ‘친환경’이니 ‘녹색성장’이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젠 뭔가 딴 방법을 생각해도 해야 할 터인데.

 

그래서일까요. ‘생태도시’ 꾸리찌바 얘기가 더 남달라 보이는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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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 15:13 2009/12/16 15:13

가을이 다 가고서야 낙엽을 밟습니다 그려. 그도 그럴 것이 농부에게 이 계절이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십분만 걸어 나가도 온통 붉고, 노란데 무에 그리도 일이 많은지요. 근 2년 만에 얼굴을 본 이도 ‘농부가 농부 같아야지’라며 도통 농사짓는 모양새가 아니라며 허허 웃는데도 말입니다.

 

<10분만 걸어나가도 가을을 볼 수 있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가요(공치전)>

 

춘천으로 오고 나니 꽤나 많은 이들이 사는 것, 농사짓는 것, 이런 저런 구경삼아 오겠다, 고들 하더군요. 또 어떤 이들은 강촌의 구곡폭포니, 가평의 남이섬, 그리고 이곳 춘천의 중도를 떠올리면서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들 합니다. 헌데 다들 사는 게. 그래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 오겠다던 사람들. 전화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네요. 주말도 아닌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오겠다는, 여기 춘천엘 놀러오겠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그래요. 좀 전에도 말했지요. 근 2년 동안이나 얼굴도 못 본(사실은 지지난주,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저녁 술 한잔 했으니 ‘통’이란 한 글자를 넣어야 하겠네요) 선배의 전화를 말입니다.

 

실은 누가 여기 춘천에를 온다고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모두들 알 듯 모를 듯한 어떤 뭔가에 이끌려오곤 하지만. 딱히 어딜 함께 갈만한 곳도. 함께 먹을 만한 것도 마땅치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아련한 뭔가가 떠오르긴 한데. 막상 가보면. 그래요. 뭐 별 거 없는 게 괜스레 미망하기만 하더라구요.  

 

<올 봄, 산책길에서 본 중도예요. 멀리 배가 보이지요?>

 

   <5분 남짓 배를 타면. 중도에 다 왔습니다>

중도. 

그래요. 중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배를 타고 건너진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러랬습니다. 그건 아마도. 짬짬이 산책을 다니던 길가에서 의암호 너머로 늘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거길 다녀왔다던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던 이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 뭐 볼 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근화동쪽 뱃터를 이용하면 차를 실을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 보통은 뱃터 혹은 삼천동쪽 선착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가벼이 몸만 싣습니다. 호수 이쪽에서는 섬이 꽤나 커 보이지만. 걸어서도 넉넉잡고 서너 시간이면 둘러보는데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답니다.

 

날 좋은 봄이나 가을, 혹은 여름 한철에는 배가 쉼 없이 오가지만. 바람 불고 낙엽 다 떨어진 요맘때. 것도 평일 아침이라면 배에 오르기 전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답니다. 대략 5분 남짓이면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데도 말입니다.

 

‘나오시려거든 미리 전화를 주세요. 언제 배가 들어가는지 확인하셔야 하니까요’

 

 

 

<어때요. 종일 걷고, 쉬고, 보며, 얘기하기에 딱이지 않습니까>

 

중도는 의암댐이 들어서면서 생겨났답니다. 쉽게 말해 물길을 막기 전엔 걸어서 다녔던 곳이란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섬은 크게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하중도가 흔히들 알고 있는 중도유원지이구요. 상중도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살고 있는, 여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는 딱히 볼만한 거리들이라곤, 딱히 즐길만한 놀이시설이라곤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천을 배경으로 찍은 ‘겨울연가’와 ‘와니와 준하’ 촬영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 과 자전거길, 선착장 바로 옆 선사유적지, 저렴한 가격의 통나무집과 민박, 들을 빼고 나면. 널따란 잔디, 사방에서 보이는 강, 나무와 조그만 숲이 다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중도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요. 이번 방문이 그런 느낌을 가져다 주었더랬거든요.

  

2년여 만에 봤기도 했지만. 배를 전세 낸 듯 둘이서만 타고서. 다 떨어진, 이제는 색까지 다 바랜 낙엽을 밟으며. 좀 세차긴 했지만 시원한 강바람도 맞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얘기들. 앞으로 살아갈 얘기들. 다른 이들이 사는 얘기들. 걷다. 가끔은 나무 아래, 호숫가에 쉬기도. 추위를 녹이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마시기도. 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니, 중도. 이 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니까요.    

 

이제 누군가가 또 춘천엘 온다면 함께 들를만한 곳으로. 그래요. 중도를 추가해야겠습니다. 다소 뱃삯이 비싸기는 하지만. 종일 걷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종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꽃망울이 터진 봄이면 어떻고, 낙엽이 다 진 이 가을이면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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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1:47 2009/11/11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