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덕유산에서 길을 잃다(2006년 6월 5일)

 

    <횡경재 오르는 길>

<횡경재 오르는 길>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시간이다. 4시 30분. 하지만 어제 저녁 부탁해 놓은 된장국에 아침을 먹고 나니 어느새 산 정상에서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마중이다.

 

덕유산은 처음인데다 준비한 등산지도들이 제각각 이어서 걱정이다. 게다가 너무 이른 시간 이어서인지 문 잠긴 매표소에는 안내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출발이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오르니 비구니 한 분이 내려오신다.

 

“저. 길 좀 여쭐게요. 혹시 송계사에서 백련사로 넘어 가는 길을 아시나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네요. 조금 올라가시면 오늘 산행을 하신다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 분들에게 한번 물어보시겠어요?”

“예”

 

대답만큼은 씩씩하다.

 

송계사 못미처 만나게 되는 철조망을 지나자 이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크게 급하지 않은 산길인데다 길옆으로는 계곡 물이 흐르고 있고, 햇살은 아직 나무들 틈 사이까지 비추지 않고 있어 오히려 뒷동산에 오르듯 걷기에 좋다. 어째 출발은 좋다.

                                                                                                                                                         

횡경재까지 오르는 길은 초행길이지만 지루하지도 힘이 들지도 않을 만큼 완만한 오르막길과 계곡과 나무들이 어울려있다. 아침을 든든히 먹기는 했지만 슬슬 배가 고파오는 것을 빼고는 정말 기분 좋은 산행이다. 하지만 곧 닥쳐올 힘겨운 산행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횡경재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산길을 나섰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등산로를 미리 확인해두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비구니의 말을 따라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아서였을까? 횡경재를 두고 무려 세 시간을 산 속에서 헤매었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등산로를 찾았는데도 아직 그 자리다. 별수 없다. 다시 처음 길을 나섰던 횡경재로 되돌아가 본다. 헌데. 이런 길이 두 갈래가 아닌가. 동네 뒷산의 산책길 같은 등산로를 놔두고 엉뚱한 길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산 아래에 있을 시간인데 이제야 길을 확인하다니.

 

향적봉과는 반대편 길로 30분쯤을 가니 지봉안이다. 여기서 다시 길을 확인하는데 어째, ‘등산로 없음’을 알리는 나무표지판과 계곡 아래쪽으로 난 방향표지판이 같은 것 아닌가. 어쩌라는 거지? 덕유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해보지만 이건 첩첩산중일 뿐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고 한다. 분명 나무표지판에는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는데. 준비해간 세 장의 지도와 여기 두 개의 표지판, 그리고 관리사무소 이야기가 모두 틀리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에 그리될 수밖에 없는 국립공원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등산로 표지판 정도는 잘 해놔야 하는 거 아냐?’는 생각에 조금은 화가 난다.

                                                                                                   

그렇게 한참을 어찌할까 씩씩대며 고민하는데, 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일단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믿기로 한다. 대신 조금이라도 길이 좁아진다거나 하면 다시 되돌아오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갈림길에 얼마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길도 좁아지고 숲도 울창한 것이 좀 전에 헤매던 상황과 비슷하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러다 정말 조난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다행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 보자’며 계곡 쪽으로 길을 잡으니 최근에 이 길로 산행을 한 듯 한 이들이 드문드문 이정표를 해놓은 리본들이 알록달록 보인다.

 

결국 오전 6시부터 산행을 시작해 반대편 백련사까지 내려오는데 무려 8시간이 넘게 걸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고 오늘은 더 이상 걷기 어렵겠다. 무주구천동에 있었던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백련사에서 잠시 쉬면서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이니, 원통전이니, 삼성각, 범종각, 천왕문 등등을 구경한다. 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꿀맛 같은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입에 물고는 ‘백련교’를 넘어 다시 1시간 30분 넘게 구천동계곡을 따라 내려와 점심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밥을 먹으니 파김치다. 에라, 남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누워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든다.

                                                                                         

넷째 날, 구천동계곡을 따라 무주군 설천면까지(2006년 6월 6일)

 

어제는 산 속에서 헤매는 바람에 백련사부터 시작되는 구천동 33경 가운데 사자담, 인월담, 월하탄 등 19경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해서 오늘은 남은 14경, 만조탄, 파회, 수심대, 세심대, 수경대 등등은 꼭 찾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어제 산에서 헤매다 늦게 내려 온데다 반가운 벗을 만나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여서인지 10시가 다되어서야 겨우 일어났고, 아침을 먹고 나니 벌써 11시가 훌쩍 넘어섰다. 땡볕에 걷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걷지 않으면 설천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 못하니 14경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 하다.

 

심곡마을에서는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평상에 누워 땀을 식히기도 했지만 낮 1시가 넘어가자 더 이상 걷기가 힘들 정도다. 갈 길은 멀지만 구천동 제11경과 제12경이 한 자리에 있는 파회와 수심대에 이르러서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자리를 펴고 누울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지만 굴하지 않고 번갈아 가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니 좋기만 하다. 그렇게 햇빛이 잦아들 때까지 한가로이 쉬어간다.

 

<왼쪽, 오른쪽으로 무주구천동 14경이 이어지는 걷기 좋은 길>

 

3시. 다시 출발이다. 설천면까지의 길은 몇 안 되는 정말 걷기 좋은 길임이 틀림없다. 오가는 차도 없는데다가 구천동의 절경을 따라 걷는 길이라 더욱 그렇다.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든 적송나무 길에, 전나무 길에, 벚꽃나무 길에, 모자까지 벗어들고 걷는다. 또 두길리 마을 입구에서는 맛난 라면에 발을 뻗고 누워 쉬기도 하고, 이름 모를 마을 입구에서는 입이 까맣게 되도록 버찌열매를 따먹으며 쉬어가기도 하니 한편으론 발걸음이 더디다.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오고가는데 관문 역할을 했던, 구천동 33경의 마지막 라제통문(羅濟通門)을 지나니 잠시 여행을 멈추어야 할 설천면 소재지인데, 때마침 지난 사 일간 우리를 괴롭혔던 햇살도 잦아들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 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함양에서 안의를 지나 장풍숲까지는 3번과 24번 국도를 따라 걷다가 장풍 숲에서부터 송계사까지는 37번, 1001번 지방도로로 바꾸어 걸었다. 송계사와 백련사를 이어주는 산길을 걸어 덕유산 자락을 넘었고 무주구천동 관광특구에서 설천까지는 37번 국도를 타고 구천동 33경을 훑어 내려갔다. 거리로는 첫째 날 대략 18km, 둘째 날 28km, 셋째 날 13km, 마지막날 20km이고, 시간으로는 첫째 날 4시간, 둘째 날 8시간, 셋째 날 10시간, 넷째 날 7시간이다.

 

* 가고, 오고

서울에서 함양까지는 동서울터미널과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거창, 안의 경유, 시외버스가 다수 있으며, 무주에서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이 많지 않은 편이므로 가까운 영동이나 대전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는 설천공용터미널에서 19시 05분에 출발한 시내버스를 타고 무주로 들어와, 무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9시 25분에 영동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했으며, 다행히도 영동역에서 20시 16분에 출발하는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탈수 있었다. 영등포역에 22시 50분 못미처 도착했으니 모두 3시간 40분 정도 걸린 셈이다.

 

* 잠잘 곳

안의 읍내에는 여관이 몇 있다. 우리는 여관보다는 민박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읍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교복민박에서 단돈 만원에 숙박을 해결했다. 송계사 인근은 송계산장 이외에는 전혀 숙박을 할 만한 곳이 없을뿐더러 음식점도 그 곳 한 군데뿐이다. 다만 수승대 인근에는 음식점과 민박이 다수 있다. 무주는 구천동 관광특구와 리조트를 중심으로 번잡스러울 정도로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매우 많다. 하지만 리조트를 지나 설천까지 이르는 길에는 음식점과 민박집이 뜨문뜨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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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21:15 2009/07/16 21:15

첫째 날, 함양에서 안의까지(2006년 6월 3일)

 

함양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벌써부터 뜨거운 햇살이 느껴진다. 요 몇 일 한여름 날씨가 지속될 거라고 하더니 한낮도 아니고 차안인데도 열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더위와 한바탕 해야할 듯.

 

함양에 도착하니 이런, 걷기는커녕 땡볕에 일분도 채 서있지 못하겠다. 배낭을 짊어진 등뒤로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무조건 쉬기로 하지 않았어도 이거야말로 쉬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날씨다. 다만 함양에 왔으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림에서 쉬어가야 할텐데 그곳까지 몸을 이끌지 못하는 게 다 저 뜨거운 햇살 때문이다.

 

결국 읍내 한 패스트푸드점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곳은 어린아이들의 놀이마당이다. 생일잔치를 하는 아이들이 벌써 두 팀이다. 첫 번째 팀은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섞여 한참 동안 매장안을 휘젓고 다니며 소란을 피우더니 두 번째 팀은 남자아이들만 대 여섯이 들어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서로 쑥스러운 모양으로 선물을 건네주고, 받고 한다. 어쩜 저리도 예쁠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4시가 넘어 출발했는데도 땅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 걷기 시작한지 이제 한 시간도 안됐는데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발바닥은 후끈후끈 하다. 땀도 식히고 쉬어갈 겸 부야마을 부야상회에 들어가는데, 인심 좋은 아주머니 덕에 비록 찬밥과 쉰 김치이지만 생각지도 않게 허기까지 달랠 수 있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함양에서 안의로 이어진 24번 국도변에는 정여창고택과 옥계신도비, 허삼둘가옥 등이 있는데 모두 지나쳤고, 그렇게 한 눈 팔지 않고 걸었는데도 안의에 도착하니 해가 완전히 저물어 사방이 어둡다. 읍내에는 여관이 몇 눈에 띄기는 하나 미리 준비해 둔 민박집에 전화를 걸고는 찾아 나서는데.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송계사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난 황산마을>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저만치서 마중을 나오시는데, 귓속말로 “집에 방이 없어. 어찌 마루에서라도 잘텨? 딴데 가서 야그하면 안 되는데. 다믄 만원만 주고 자”하신다. 우리로서는 마다 할 이유가 없다. 해서 오늘은 단돈 만원으로 숙박을 해결한다.

 

둘째 날, 안의에서 덕유산 아래 송계사까지(2006년 6월 4일)

 

땡볕에 걷는 것을 피하고자 오늘은 아침과 저녁나절에만 걷기로 했다. 해서 5시에 일어나 어제 저녁 준비해 둔 과일과 빵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는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인지 몸이 뻐근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길가에 앉아 스트레칭도 해보고 한참을 쉬기도 하나 여전히 몸은 무겁기만 하다.

 

바래기재를 넘어 고학리에 도착하니 예전 같았으면 이제 일어났을 시간인 7시 30분. 약수정 식당에서 맛난 청국장에 아침을 먹고 급한 화장실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 다르게 몸도 가볍다. 역시 사람은 먹고, 싸고를 해결해야만 하는가보다. 하지만 졸음은 먹고 나서인지 더 쏟아진다.

 

점심을 먹으면서 쉬기로 했던 수승대까지의 길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길을 내기 위해 여러 곳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공사차량까지 질주를 해 무척 걷기 힘들다. 그리고 중간중간 거창군에서 펴낸 관광안내도에 나온 명소들 구경을 잔뜩 기대를 했지만 그다지 볼거리들은 아닌 듯하다.

 

장풍숲은 길가에 있다는 것 빼고는 남도지방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적송 숲으로 이루어져있어 시시한데다 석재상, 기와공장, 기도원, 모텔 등이 제각각 주변에 몰려 있어 영 마뜩치 않다. 또 수승대는 국민관광지라는 요란한 이름으로 입장료까지 받고 있지만 어째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명색이 계곡이라지만 썩 맑지 않은 물도 그렇고 눈썰매장까지 갖춘 모양새도 그렇다. 하지만 벌써부터 아이들이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는 걸 보면 한여름 피서철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해서 우리는 수승대 못 미쳐 만날 수 있는 이름 모를 적송 숲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다가 책도 보다가 하면서 4시까지 쉬어간다.

 

햇볕이 한 숨 죽었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땡볕이다. 불볕더위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 땡볕에 황산마을 고가촌 돌담길을 걸었으이 고즈넉한 맛은커녕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라 아쉬움이 크다. 에둘러 마을길을 길게 돌고 또 논길을 따라 걸으며 눈으로 담아둔다.

 

 

<에둘러 둘러봐야 할 황산마을 돌담길>

 

황산마을을 지나 송계사 입구까지의 길은 오전에 걸었던 길과는 달리 오가는 차도 거의 없고 소나무 숲과 벚꽃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고 있어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게다가 햇볕도 많이 잦아든 데다 북상면 13경 몇 몇은 쉬엄쉬엄 둘러보며 눈요기를 할 수 있어 아침과는 다르다.

 

송계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다행히 며칠 전 새로 문을 연 송계산장이 있어 거창이나 낮에 지나쳐왔던 수승대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게다가 속리산 자락에 들어와서인지 하늘 가득 별이 반짝인다. 기분 좋은 밤이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 동동주로 목을 축이니 눈까풀이 자꾸만 내려앉아 오랜만에 하는 별 구경이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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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21:34 2009/07/07 21:34

둘째 날, 촉동마을에서 오도재를 넘어 함양까지(2006년 4월 30일)

 

<함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30분 넘게 쉬어갔던 간판도 없는 조그만 가게 앞 평상>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출발했는데도 벌써 등 뒤가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장난 아니다. 산장에서 조금 위쪽으로 오르니 당초 하루 머무르려고 했던 촉동마을이고, 왼편 산 아래쪽으로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원농원도 보인다. 사람이 살기 가장 좋은 곳이 해발 600에서 700미터라고 하는데 이 마을이 바로 그렇다. 언제고 다시 들렀으면 하는 마을이다.

 

오도재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있다고 하는 지리산조망공원까지 가는 길은 다시 걷기 싫을 마음이 생길 정도다. 가파른 길도 길이거니와 4월의 햇빛 같지 않은 따가운 햇살 때문에 연신 땀이 흐른다. 당연히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100 걸음 오르고 쉬고 또 100 걸음 오르고 쉬기를 반복한다.

 

산장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산책 삼아 30분이면 충분히 오른다고 했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어서야 ‘오도재휴게소’에 도착했다. 날씨가 흐려 또렷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천왕봉에서 시작해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그리고 발아래로는 계단식 논이며 밭이 이어져 있다.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인데 이곳까지 오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바람까지 마중 나오니 몸도 한결 가뿐해진다.

 

쉴 때는 몰랐는데 다시 걸으려고 하니 뱃속이 요란하다. 건너 띈 아침 대신 뭐라도 요기를 해야겠는데, 휴게소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가게 안을 살펴보니 불은 켜져 있고 음악소리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잠시 다른 일을 보러 가셨나? 좀 기다려볼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사람은커녕 차 한 대 지나지 않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대로 출발해야 하는지. 결국 큰 소리로 사람을 불러본다.

 

“사람 없어요. 배고파 쓰러져요”

 

한참을 그리 떠들고 나니 휴게소 2층 창문이 빼꼼이 열리며 아저씨 한 분이 우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덕분에 이제까지 맛보았던 그 어떤 라면보다도 맛난 라면을 먹을 수는 있었지만 우리가 그리 떠드는 통에 ‘얼마나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놀랬을까?’하니 마음 한 구석이 편치만은 않다. 엊그제 노고단에서도 산에서는 아무리 조그만 소리라도 자연에게는 폭풍우 치는 소리와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배고픔에 그새 잊어버린 것이니, 너무 한심하다.

 

그래도 겉표지에 박정희가 죽었다는 글이 큼지막하게 쓰인 ‘썬데이서울’에, 옛 물건들을 장식 삼아 오도산방이라는 찻집까지 함께 운영하는 오도재휴게소는, 꼭 한번 들러 찬밥이라며 내어주기 어려워하시는 주인 내외의 넉넉함을 느껴야 할 곳이니 빠뜨리지 말자. 다만 주인장이 보이지 않거들랑 조용히 2층 창문으로 돌맹이 하나만 던지도록 하면 될 듯하다.

 

오도재 정상에서 함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까지의 길은 반대편에서 걸어 왔더라면 십중팔구 포기했을 거다. 그만큼 오르막길도 길게 이어져있고 경사도 가파르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변변한 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거야 원. 단단히 준비하지 않고서는 정말 난감한 길이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 이쪽저쪽, 외설적이라고만 알려져 있으나 실은 봉건질서 속의 지배계급과 민중들의 삶을 풍자한 ‘변강쇠가’의 변강쇠와 옹녀를 상품화한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어 지루하지만은 않다.

 

가까운 백장암 계곡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놀았다고 전해지는 옹녀탕과 변강쇠가 기력을 보충했다는 득독골 등을 찾아 볼 수 있고, 변강쇠를 응징하기 위해 모인 8도의 장승들을 재현한 ‘변강쇠 쌈지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고 걷고 있는 이 길 주변에는 변강쇠 집터와 무덤자리도 있으니 참 재미나다. 마지막으로 마천의 벽송사는 팔도의 장승들로부터 응징을 받아 죽게 된다는, ‘변강쇠가’의 내용과는 다른 이유에서지만 머리 부분이 반쯤 타 있는 여장승이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니 이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구불구불 참 재미난 길이다. 지안재 고갯길>

촉동마을에서 시작해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찾아왔을 지안재 고갯길을 꾸불꾸불 돌아 내려오니 길은 24번 국도로 이어지는데 어째 슈퍼하나 보이지가 않다. 재를 넘으며 참았던 갈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조금만 가면 함양이겠거니 ‘참자’ 하며 걸으니 정말 고갯길 돌아 함양 읍내가 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간판도 달지 않았지만 평상 하나만은 커다란 동네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오니 쉬어가기에 딱이다.

 

이젠 평상만 보면 신발 끈부터 풀고 올라선다. 그리고 누가 보든 말든 대자로 누워 눈을 감고 10분이고 20분이고 쉬는 게 몸에 배었다. 그렇게 30분을 넘게 평상에 누워 바람에 날리는 봄 향기를 맡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서울행 시외버스 출발시간이 다가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몸과 마음 모두 가볍기만 하다.

 

* 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뱀사골에서 산내까지는 861번 지방도로, 산내에서 실상사를 지나 오도재로 오르는 길 입구까지는 60번 지방도로, 오도재 가는 길은 1023번 지방도로, 다시 함양으로 가는 길은 24번 국도다. 거리로는 약 30Km다. 첫째 날은 약 6시간, 둘째 날은 8시간 정도 걸었다.

    

* 가고, 오고

지리산 뱀사골은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시내버스는 시외버스보다 가격은 저렴하나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들쭉날쭉하니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서울에서 남원은 기차 편도 그렇고 고속버스도 그렇고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함양에서 서울은 거창을 경유해 남부터미널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가 하루 10차례 운행하고, 동서울터미널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는 7차례 운행한다. 다행히 밤 10시 이후에도 심야고속이 있으니 안심이다.

 

* 잠잘 곳

산내를 제외하고는 오도재 정상 아래 촉동마을까지는 민박은 전혀 없고 간간이 음식점만 보인다. 촉동마을에는 우리가 머물려고 했던 ‘아원농원’과 머물렀던 ‘물레방아산장’이 있다. 다만 ‘아원농원’에서 하루 쉬어가고자 한다면 미리 연락을 취해야 할 것이다. 촉동마을에서 함양까지는 오도재 정상 지나 계곡에 민박과 음식점이 몇 있으나 그 이외에는 함양 초입까지 변변한 슈퍼하나 없으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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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11:34 2009/06/26 11:34

첫째 날, 뱀사골에서 오도재 아래 촉동마을까지(2006년 4월 29일)

 

남원에서 출발한 뱀사골 행 시외버스는 지리산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거침없이 질주한다. 가만히 보니 오늘 오후 내내 걸어야 할 길이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것 같다.

 

뱀사골에서 산내까지는 지리산의 장대한 산세를, 그러면서도 푸근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길이다. 큰 산 만큼이나 큰 계곡, 큰 나무들이 있어 걷기 좋은데, 때마침 입산금지기간이라 인적마저 드물다.

 

<정말 소박하고 아담하다: 실상사 경내> 

 

산사라고 하지만 절 뒤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이 아니라면 산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너른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실상사는 여느 절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찌보면 아무렇겠나 버려 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절간 풍경도 그렇고,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특별하게 경계 삼지 않은 것도 그렇고, 여느 절의 일주문과는 다른 일주문이 보여주고 있듯이 공동체적 귀농의 중심에 있는 것도 그렇고, 절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불거진 눈이며, 뭉툭한 코, 투툼한 입을 갖고 있는 석장승 얼굴에서 우리네 민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다.

                                                                                                                               

절 구경을 마치고 오도재를 향하는데, 인월에서 시작해 이곳 실상사를 지나 함양까지 이어진 이 길이 느림의 상상력을 쏟아내고 있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얼마 전 실상사 인근 마을주민들은 국도건설을 반대하는 나섰으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땅을 무조건 파헤치는 방향으로 길을 내지 말자면서, 지금의 길을 조금만 폭을 넓혀 보행자와 자전거, 농기계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4차선의 길로 넓혀지거나, 산이 뚫리거나, 다리가 새로 놓이지 않고, 농군들을 위한 갓길만이 넓어지게 됐으니, 사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는 길을 내려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큰 발걸음이다.

 

오도재로 오르는 길은 1023번 지방도로는 오가는 차도 없어 무척 한적한 길이다. 오른편으로는 뱀사골, 백무동, 칠선 등에서부터 흘러온 물들이 모여 제법 큰 계곡을 이루며 따라오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랜만에 신발까지 벗고 물장난이다.

                                                                                                   

오도재로 향하는 길로 접어드니 그새 5시가 넘었다. 당초 오도재 정상아래 촉동마을에 자리잡은 ‘아원농원’에서 머물려고 했는데 그만 연락처를 가져오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더구나 농원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하루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볼 수라도 있으련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촉동마을까지 간다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한참을 지도를 보며 어쩔까 하지만 답이 없다. 결국 밤길을 걷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출발이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해는 점점 짧아지고 길은 점점 가팔라 오는데 촉동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버스정류장이 있어 다음 마을이 촉동인 거는 알겠는데 당체 끝간데 없이 오르기만 하고 마을은 보이지 않는 거다. 씩씩대며 또 한참을 오르는데 인심 좋게 생기신 아저씨 한 분이 차를 멈춰 놓고는 우리를 불러 세운다.

 

“어디꺼정 가는고? 날이 지는디. 타소”

“죄송한데요. 저희는 걸어서 여행하는 중이거든요. 혹시 이 근처에 민박할 만한 곳이 어디 없나요?”

“걸어서 여글 넘는다꼬? 어허. 어째쓰까나. 어. 민박이라꼬? 일단 타소. 저 위에 올라가면 뭐가 있긴 있거든”

“예”

 

모르겠다. 일단 트럭에 오르고 본다. 헌데 이런. 코앞에 민박을 겸한 식당이 있는 거 아닌가? 다시 내릴 수밖에.

 

“아저씨 고맙습니다”

 

여기가 촉동마을인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인심 좋게 생기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한다.

 

“저 죄송한데요. 여기 아원농원이라고 혹시 아시나요?”

“아. 알죠. 우리 마을 사람인디. 거그 갈라고 허요? 거그는 어떻게 아셨지? 요그 길 따라 쭉 올라가믄 마을이거든요. 그 마을 위쪽에 아원농원이 있어요. 마을 들어가기 전 다리에서 왼쪽 길로 쭉 올라가면 되는디”

“예. 감사합니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이다. ‘방 값은 하루 밤 묵으시는 건 3만원이며 갖고 계신 어떤 물건으로도 숙박 값 지불 가능하며, 하루 4시간 품앗이에 하루 숙식제공 등 모든 수단도 환영입니다. 진보 활동을 하시는 분은 무료로 쉬어 가시길 바라며 제가 담은 술로 대접도 해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손길을 기다리는 아원농원에 하루 머물며 살아가는 이야기와 술맛을 볼까, 이것도 인연인데 여기 물레방아 산장에서 하루 머물까. 이미 해는 지고 있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결국 나중 인연을 따르기로 한다. 다만 인심 좋은 아저씨 덕에 고갯길 100여 미터를 거꾸로 걸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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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00:08 2009/06/14 00:08

지리산을 넘다(2006년 4월 16일)

 

어제는 밤이 꽤 깊어서야 천은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 일정은 몸도 마음도 무척 피곤해 웬만하면 피하려했는데 오후 늦게 서야 “또 가자!”며 나선 바람에 그리된 것이다.

 

햇살이 창문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자마자 일어났는데도 7시 밖에 되지 않았으니 해가 길어지긴 길어졌나보다. 번갈아 가며 세수를 하고 아침 뉴스를 보니 낮은 기온에 바람까지 강하게 분다고 한다.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한다고 겉옷을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민박집을 나서니 정말 바람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 지리산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천은사 구경이라도 하고 갈 생각으로 산길로 접어드니 한결 바람이 가셔진다. 다행이다.

 

09:08 천은사

천은사를 둘러보고 나니 출출하다. 절 입구 슈퍼, 인심 좋은 아주머니 덕에 맛난 갓김치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비록 차를 위해 닦여진 길이지만 지리산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햇빛이 정면에서 얼굴을 내리쬐고 있어 무척이나 따갑다.

 

<지리산 하면 으례 화엄사나 실상사를 떠올리지만 천은사는 이에 견줄만 한 숨겨진 보물이다>

 

10:07 해발 600m

산 아래는 벚꽃이 이미 졌고 나무마다 파란 잎새들이 달려있지만 이곳은 이제야 새순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한참 올랐지만 아직은 거뜬하다.

 

10:35 해발 700m

바람이 거세진다. 아무래도 옷을 너무 얇게 입은 것 같다. 산행을 위해 두터운 옷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가파른 오르막에 이젠 숨도 조금씩 차 오른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다.

 

10:45 해발 800m

10분만에 100m를 더 올랐다. 그만큼 길이 가파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300m만 오르면 된다’며 힘을 낸다. 평지 길에서는 콧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지금은 둘 다 땅만 보고 걷는다.

 

10:58

아찔한 벼랑끝 굽이 길을 돌아서니 해발 900m다. 이런 길이 아니더라도 운전대를 잡는 게 무서운 우리들로서는 어찌 이런 길에 차를 끌고 갈 수 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곳곳에 ‘이곳은 올 해 추락사고로 0명 사망, 00명 부상’ 플랑카드가 걸려있고, 어떤 것은 사고 당시 사진까지 걸어놨는데도 말이다.

 

11:13 시암재 휴게소

두 고개만 돌아서면 시암재인데 바람이 점점 거세 진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 모자가 오히려 바람 때문에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시암재 휴게소에 도착하니 저만치 발아래 구례 땅이며 하동 땅이 보이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바람에 날려온 똥 묻은 알록달록한 휴지들 덕에 경치구경은 뒷전이고 모처럼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는다.

 

11:29 해발 1,000m

천은사를 출발한지 2시간 20여분만에 해발 1,000m에 도달하다. 하지만 기쁘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 높은 곳에까지 길을 내었을까?’라는 생각뿐이다. 남원~정령치~심원의 지리산 진입로와 달궁~성삼재~천은사의 일주도로 덕분에 노고단이 쉬이 열리기는 했지만 지리산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조용했던 인근의 마을들까지도 덩달아 세상을 향해 열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위는 시암재에서 성삼재를 향해 바라본 모습이고 아래는 반대로 성삼재에서 시암재를 본 모습이다>

 

11:44 해발 1,100m

천 미터를 지나고 나니 천백 미터는 그저 안내판에 적힌 숫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11:55 성삼재 휴게소

드디어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멀리 굽이굽이 지나온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헌데 이곳은 봄철 입산금지에서 벗어난 유일한 곳이라 그런지 노고단으로 오르려는, 화엄사계곡으로 내려가려는 등산객들로 매우 혼잡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요기만 하고 서둘러 달궁으로 향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13:25

일곱 번째 여행만에 드디어 전라북도로 들어선다. 작년 6월 첫 여행을 시작했으니 근 1년여만에 남도를 벗어난 셈이다. 그동안 사고 없이 이곳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해주고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이 아무 탈 없었으라는 기원도 해본다.

 

15:20 뱀사골입구 반선마을

구례에서부터 시작된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 지리산을 넘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20km가 넘는다. 평지 길이면 5시간으로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꾸불꾸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려오면서도 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참 장하다. 계곡물에 발까지 담그고 시원하게 주무르며 전주로 나가는 시외 버스를 기다린다.

 

*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구례에서 시작되는 861번 지방도로는 성삼재를 지나 전라북도로 넘어가면서 굽이굽이 돌아 실상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천은사에서 뱀사골입구 반선마을까지 약 20km를 걸었다. 걸은 시간은 약 7시간.

 

* 가고, 오고

구례까지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다니며, 뱀사골에서는 전주나 남원을 경유해야 서울로 올 수 있다. 뱀사골 차편은 뜨문뜨문 있는 것도 문제인데, 시간마저 제 멋 대로니 사전에 꼼꼼히 확인해야 함은 물론이고 웬만하면 버스정류장 한쪽 의자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잠잘 곳

천은사 인근과 성삼재 너머 ‘하늘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에는 민박이 몇 있으나 시암재와 성삼재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민박, 음식점이 전혀 없다. 다만 성삼재 넘어 심원마을, 달궁, 반선까지는 군데군데 휴게소를 겸한 매점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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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7:33 2009/05/31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