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1. 
심포항은 이제 겨우 대 여섯 살인 얼라가 혼자 걸어가긴 먼 곳이었지요. 그래서 얼라는 늘 막내 삼촌을 졸라야만 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에 대나무 낚싯대를 꼭 쥔 채 말이지요.  막내 삼촌은 넓디넓은 논 한가운데서 피를 뽑다가도. 무릎까지 자란 풀 더미를 낫으로 베다가도 허허 웃으며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화포리 집 뒷산 대나무 숲에서 장끼 잡는 일에 꼭 여섯 살배기 얼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대낮에도 짙은 녹음으로 햇빛을 보기 힘든 그 숲은 얼라에게 꽤나 무서운 곳이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고걸 어떻게 잡았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지만, 꿩 잡는 외할아버지와 떨어질 새라 연신 발뒤꿈치를 쫓아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답니다.
 
2. 
처음부터 새만금 사업은 낙후된 지역을 살려낼 구세주로 떠받들어졌습니다. 그러니 경제성이니 식량안보니 하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했지요. 또 갯벌이니 그 안에 사는 뭇 생명들, 망둥이, 도요새, 피조개 등은 처음부터 관심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개발로 인한 ‘돈 잔치’만이 중요했던 겁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목적도 바뀌었습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있으니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말도 나왔구요. 썩어가던 시화화가 해수와 만나자 살아났는데도 여긴 다르다고 강변했습니다. 결국 ‘세계 최대’라는 요란한 수식어만 남게 됐습니다. 바닷물은 들어올 수 없게 됐고 만경강, 동진강 물은 나갈 수 없게 된 겁니다.
 
3.
갯벌 가장자리에 장화를 신고 선 막내 삼촌은 밀물 때를 맞춰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망둥이는 낚싯줄에 줄줄 올라왔습니다. 거의 매번, 던지는 족족 잡혔단 말입니다. 익숙한 솜씨로 머리와 꼬리를 잘라낸 막내 삼촌은 어린 조카에게 된장을 듬뿍 바른 마늘을 올려 내밀었습니다. 얼라는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아직 꿈틀대고 있는 망둥이를 덥석 입에 넣었습니다.
 
잡아온 꿩을 할머니께 건네주고는 외할아버지는 썰물 때를 맞춰 수건을 챙겼습니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외손주의 발뒤꿈치를 아니, 손을 꼭 잡고 미쳐 다 빠지지 못한 바닷물이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갯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바닷물에 몸을 담근 아이는 또 놀란 눈입니다. 가만 누워 있으니 몸은 저절로 둥둥 뜨고, 발가락 사이로는 갯지렁이가 꾸물꾸물. 
 
4. 
새만금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서남해안 간척 자원 조사를 한 이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난도질당할 처지로 떨어졌습니다. ‘역사의 반동이며 집권 여당인 민정당은 노태우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p.37)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그야말로 ‘제가 대통령이 되면 새만금, 확실하게 밀겠습니다.’(p.174)가 반복되며 밀어붙였던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막내 삼촌 등 뒤에서 새근새근 잠에 빠졌던 아이는. 미끈한 갯벌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외할아버지 등에 업히지 않았던 아이는 삼심년도 더 지난 지금 그 심포항과 화포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막내 삼촌이 잡아줬던 망둥이, 외할아버지와 목간했던 갯벌에서 아직 살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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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23:18 2014/09/15 23:18

1.

처음 궁동 주말농장에서 5평 남짓한 밭을 빌렸을 땐. 작은 모종이 어느새 자라 토마토며 고추며 가지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해 연신 사진만 찍어댔지요. 

 

삼천동 밭 100평을 임대해 모양새는 좀 나는 밭농사다운 밭농사를 했던 재작년엔. 사진만 찍던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농사일지라는 걸 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무엇을 심었고, 언제 무엇을 수확했는지 정리한 것이지요.

 

올해도 농사를 짓게 된 만천리 밭을 만난 작년엔. 무엇을 심고 무엇을 수확한 것에 덧붙여 밭에 나간 날만큼은 날씨까지 적으면서 나름 농사일지 다운 일지를 써보겠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올해엔 재작년과 작년보다 더 꼼꼼히 적어야겠다, 마음을 먹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모양새에 절기의 변화에 따른 농사준비까지 말이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하다보면 어떤 땅에서 어떤 게 잘 자라고, 어떤 날씨에 어떤 건 잘 안 되는지. 작물별로 그 특성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2.

궁동 주말농장에선 써 놓은 게 없으니 정확치는 않지만.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4월 29일에 상추며, 고추 모종을 옮겨 심은 것 같구요. 춘천으로 와 처음 밭농사를 했던 재작년엔 4월 30일에 퇴비를 뿌리고, 5월 13일에 첫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엔 5월 7일에 감자를 시작으로 토마토, 가지, 오이, 애호박 등을 9일부턴 고추를 심었구요. 올해엔.

 

밭을 다시 구하고 어쩌고 하지는 않았다고 쳐도. 또 당장 뭘 심지는 않을 것이긴 하지만. 4월 7일에 퇴비를 뿌리고 엊그제 밭을 갈았는데도. 어찌된 게 빠르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으니요. 겨우 삼년 텃밭 수준의 농사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겠지만. 농사를 시작하는 날짜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는 게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엔 4월 초순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게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기도 하고. 예년에 비해 많았던 겨울눈과 비, 그리고 꽃샘추위 때문에 일조량이 낮아 꽃 피는 시기가 작년에 비해 좀 느리다고는 하지만. 평년에 비하면 개나리며, 진달래, 벚꽃 등이 빠른 건 열흘까지도 빨리 폈다고 하니까요.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요.

 

3. 

여기저기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만든다고 토론회다, 책이다, 벌이고 펴내고 있습니다. 또 무슨무슨 센터를 만드네, 부처를 새로 신설하네, 분주합니다. 그리고 날씨가 변하면 가장 많은 영향을, 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농업분야에서도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얘기들을 들어보고 있자니.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 해당했던 아열대 기후가 점차 충청도와 경기도로 확장될 것으로 예측”되니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품종개발과 농업용수 관리, 생산기술 개발 등이 절실하다”는 말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 속에는 벼 이모작 확대, 난대성 및 아열대 과일 재배기술 보급, 아열대 채소류 적응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따라 나오고 있구요.

 

사실 강원도로 이사를 가자, 결정하게 된 데에는 앞으로 농사를 짓는데 딱 이다, 싶은 판단이 들어서였지요. 벌써 사과는 물론이고 포도까지 재배가 가능한 걸 보면.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땅이 척박하고 산지 지형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따뜻해지는 날씨 덕에 그동안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러 작물들을 길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물론 변화하는 기후에 발맞춰 새로운 작물을 심기도 하고 그러면서 적응력을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농업용수 관리라는 이유를 들어 자연스런 물길을 막거나 부러 곧게 펴는 것은 옳은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갯벌을 메워 만든 새만금에, ‘녹색성장’이란 되도 않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농업부문 전진기지를 개발하자고 하는 건 그야말로 혹세무민일 뿐입니다.        

 

4. 

언제부터인가 날이 좀 추워진다 싶으면 그새 겨울이고, 풀린다 싶으면 금방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봄, 가을이 짧아진 게지요. 또 눈이든 비든 내렸다하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쏟아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다 언론에선 하루는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또 하루는 바로 이웃 동네에서 일어난 이상 기후 현상들을 토해내고 있지만. 

 

어느새 한여름엔 창문을 꽁꽁 닫아두고는 전기로 찬바람 만들고. 겨울엔 여름에나 입을 반팔 옷을 입으면서도 또 전기로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데 무척이나 익숙해져만 가고 있는 모습에. 

 

가만두면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강물에 삽을 들어 생채기를 내고. 기껏 발전 기업에 부과된 ‘신재생 에너지 할당’을 채워주려 또 갯벌을 막으려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곡물가격의 상승에 대비해 GMO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하는 이 나라 국책농업연구기관의 연구관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빨라지는 봄을 걱정하는 건. 하늘을 보며 내일의 날씨를 점치고.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들판의 농부님네들만일런지요.

 

* 영종도, 용유도, 장봉도와 강화도 남부의 갯벌과 해류를 틀어막는 '인천만 조력발전소', 강화 본섬과 석모도, 서검도, 교동도를 북쪽으로 이어 역시 그 일대의 갯벌과 해류를 막는 세우는 '강화 조력발전소'가  2012년부터 전체 발전량의 10퍼센트'까지 이른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벌금 액수가 상당해 발전 기업마다 태양력이니, 풍력, 소수력, 지력, 조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답니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 무분별한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게 작금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입니다.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416030004   4월 16일자 서울신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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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17:40 2010/04/16 17:40
1. 
아무래도 2MB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동안엔 심심치만은 않겠습니다. 만날 짜증나는 얘기만 들리다가도 ‘피식’ 헛웃음만 나오게 하는. 어이없는 짓거리들을 가끔 터뜨리니 말입니다. 최근엔 난데없는 ‘강도론’으로 집안싸움도 하고. 또 며칠 전에는 잠깐 9시 뉴스에도 나왔는데. 글쎄. ‘어감이 좋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노동관련 용어’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란 용어를 퇴출시키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나, 참.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아마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문제’를 떠들어대는데. 막상 어찌 해야 하는지 답은 나오지 않고. 골머리는 썩는 마당에. 여기저기 언론사에 보도 자료까지 배포한 걸 보니. 참말로 기가 막힌 해결책을 만들 어 냈다고 자평하는 것 같던데. ‘비정규직’이란 말이 없어지면 ‘비정규직 문제’라는 것도 한 순간에 ‘펑’하고 함께 사라지리라 믿나 봅니다. 
 
2. 
혹 ‘아리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물을 의미하는 ‘아리(ari)’와 터전을 뜻하는 ‘울(ul)’을 결합한 순 우리말로 물의 도시를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생명의 근원인 물과 인간 문명의 상징인 도시의 만남이라. 어떤가요. 그래요. 정부가 2011년부터 2030년까지 20년간 21조원을 투입, 첨단 산업․관광레저․농업 등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명품(名品) 복합도시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 도시가 들어서는 곳이 바로 ‘아리울(Ariul)’이랍니다. 꽤나 근사해 보이지요. 하지만요.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33.6km를 축조해  4만 100ha의 해수면을 2만 8,300ha의 토지와 1만 1,300ha의 담수호로 만들려는 국책사업(<새만금,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풀꽃평화연구소 엮음, p16)'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죄 없는 광주의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살인마들이 ‘국토확장’과 ‘농지확보’라는 헛구호를 앞세워 민심을 되돌리고자 시작된 일이 끝내 ‘민주화’된 정권들마저 이를 넘지 못하고(‘정치야합과 탐욕이 빚은 새만금 비가(悲歌)’, 박병상) 갯벌과 그 갯벌과 하나로 이어져 있던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만(‘새만금 갯벌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윤박경) 것에 다름 아닌 ‘새만금 간척사업’이 ‘아리울’이란 이름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라면. 어떤가요. 아직도 근사해 보이는지요. 
 
3. 
‘아리울’은 외국인에게 '새만금'이란 발음이 어렵다는 불편이 나와 새로 만든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뭐, ‘새만금’이 얼마나 발음하기 어려운지는 알고 싶지도 않지만. 갯벌과 그 갯벌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들을 싹 죽여 가며 만든 다는 것이 고작 ‘물의 도시’라니. 참 우습지도 않네요. 그래서일까요. 단순한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나온 지 6년도 더 지난 책을 이제와 다 읽고서도 한참이나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요. 그리구요. 아무래도 ‘비정규직’ 퇴출이란 발상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 설마, 그렇게 하면 뭐가 뭔지 모를 거야, 뭐 그런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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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7 16:29 2010/02/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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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 저 세상으로 간지 그새 60일이 됐네요. 믿기지 않았던 그 토요일의 아침이 엊그제 같기만 한데 말입니다. 세상사는 일이 다 그런가봅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 뒤엔 곧 잊힘이 있고.

 

사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를 세상에 알렸던 청문회와 김영삼을 향한 삿대질, 안될 줄 알면서도 또 부산으로 향하던 모습들을 기억하지만 어찌 된 게 그런 일들이 있었기나 한 것 마냥 통 기억이 없으니까요. 또 그를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던 돼지저금통과 노란색의 물결도 그저 잘 찍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기의 꿈을 이루어가는 세상 .....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가야 할 세상을 그려보세요. 행복한 변화가 시작 됩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믿게 만들었던 걸까요. 동창회 모임 때 말고는 얼굴보기 힘든 동기들 전화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12월의 몹시도 추웠던 그 날, 마지막 유세를 위해 종로를 거쳐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 미 대사관 근처까지 가는 길에 말이죠. 온통 북새통에 목소리도 들리지도 않는데 이쪽에 뭐라 하든 상관없이 연신 ‘2번’을 외치던 전화를 말입니다.

 

2.

“그러므로 미국의 줄기찬 호전성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우리의 운명이고, 파병을 결정한 우리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왜 우리가 그에게 허락한 국가권위를 이토록 쉽사리 남용하는지 알 수 없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p.297 「피 묻은 국익 (2003)」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까지 포함된 서민들의 평화집회에 부안 군수를 위해 정부수반이 보내준 경찰은 특수진압 전투경찰들이었다. 어떤 정권도 이룩하지 못한 핵폐기장을 자발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군수가 나타나자 그토록 갸륵했을까.” p.242 「‘핵’ 깡패들 (2003)」

 

“농부들이 논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를 내건 열강들의 시장개방 압력에 정부가 너무나 쉽게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쌀농사를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이 땅에서 이 땅의 산물을 취하며 오래오래 살겠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 허구입니다.” p.29 「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2006)」

 

“집회가 절정에 이르던 오후 녘, 조용히 밀물이 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금(生金)밭’ 갯벌이 진짜 보석처럼 햇살에 반짝거렸다. 에루아 에루얼싸, 눈물났다. 에루아 에우얼싸. 우리가 부른 노래와 춤은 새만금이 그냥 죽도록 포기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싸움을 다짐하는 결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p.108 「에루아 에루얼싸, 새만금 (2006)」

 

글을 쓴 이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책을 몇 장만 넘겨봐도 영락없는 자연 평화 생태 환경 산문집일 뿐이건만 읽는 내내 왜 ‘바보 노무현’이 자꾸만 떠오른 걸까요. 애초 기대라는 것조차를 하지 않았기에 큰 실망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명분 없는 전쟁에 나서고, 그 전쟁에 우리 젊은이가 죽어가도 꿈쩍하지 않고, 농민이 맞아 죽어도, 노동자가 제 몸에 불을 살라도 FTA는 꼭 해야 한다, 하고, 핵쓰레기를 파묻을 곳은 찾고 또 찾고, 기어이 갯벌을 도룡뇽의 숨통을 끊어 놓는 데는 당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또 129일이라는 시간동안 그 높은 크레인 위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다 끝내는 제 목을 매달고 만 한 노동자와 그런 그이가 몹시도 보고파 크레인이 굽어보는 도크에 몸을 던진 또 한 노동자에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연민의 눈조차 건네지 않았던 데는 마침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까닭이요.

 

3.

‘바보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 토요일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새벽, 여기 춘천에도 시민분향소가 세워졌더랬습니다. 헌데 급작스레 만들어진 탓도 있었겠고, 아직 출근 전이라는 시간 탓도 있었겠지만, 분향소엔 두 어 사람만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분향소 주위엔 ‘바보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란색 메모지가 수십 장 걸려있었지만 정작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았구요. 아무튼 조촐하다 못해 썰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이었기에, 또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저 웃고 있는 ‘바보 노무현’을 한참 바라보다 왜 담배를 끊었을까, 뜬금없는 자책 아닌 자책 후에 조용히 자전거에 올랐더랬습니다. 아, 바람에 팔랑거리던 그 노란 빈 종이에 한마디 적은 후에 말입니다. ‘그래도 노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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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4:13 2009/07/23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