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시인 송경동에게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꼬리표가 달렸습니다. 희.망.버.스.기.획.자. 

 
2003년이던가요. 민주노총이 사무실이 있던 동네, 영등포경찰서장이라는 작자가 잇따른 노동자들의 분신을 두고 “거기 위쪽에서 기획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망발을 내뱉은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뒤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비수를 꽂았구요.
 
그 보다 앞선 1991년, 명지대 1학년 생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이후 학생, 노동자,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잇따라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이란 자가 나타나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며 ‘분신 배후설’을 퍼뜨렸습니다. 심지어 제비뽑기를 해서 분신순서를 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들도 들려왔구요.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후배들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했습니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는 “배후조종한 선배들에 이끌려 시위 도중 도망가다 맞아 죽은 것일 뿐”이라며 철없는 학생의 하찮은 죽음으로 내몰았지요.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이 의심되는 미국 산 쇠고를 수입하려는 정부에 항의하던 촛불시위가 탄핵 요구로까지 번지자. 2MB이 친히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파악해 보고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서경석 목사는 “지도부를 구성하는 대책회의 인사들이 좌파이기 때문에 변질될까 우려하고 있다.”며 필요도 없는 걱정까지 하고 나섰는데요.  때맞춰 황색 언론들이 ‘촛불 배후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거짓 선동에 순수한 청소년들이 이용당한 것”이라며 말이죠.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기 전, 기.획.자. 송경동 시인은 <작은책>에서 주최한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시의 현장을 찾게 되죠.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은 꽃과 자연만을 찾아다니잖아요. 왜 그러냐면 자기 시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니는 거예요..... (중략) ..... 자기 문학의 현장은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런 현장, 그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동안 내 문학이 나올 거다’ 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시인보다 전문 시위꾼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삶과 예술에서 언제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 섰으며, 수탈당하는 사람들의 진보적 투쟁(<케테 콜비츠, 천재 여류판화가의 사랑과 분노의 자화상>, 실천문학사, 2000. p.21)’을 그려냈던 케테 콜비츠는 1922년 어느 날, 에르나 크뤼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요 다음번에는 더 작은 작품들만 할 생각이다. 국제 노동조합 총연맹으로부터 전쟁을 반대하는 포스터를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일을 생각하면 나는 즐거워진다. 어떤 목적을 지닌 작품은 순수한 예술일 수 없다고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작업할 수 있는 한 나의 예술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같은 책, p.82)
 
검찰이 붙인 건지, 보수 언론들이 덧씌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왜 그 기.획.자.라는 말이 자꾸만 맴도는 것일까요. 기.획.자. 시를 쓰기 위해 크레인을 찾아간 시인 송경동. 역사도 그를 기.획.자.로 기억할까요.

 

혜화 경찰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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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앤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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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14:56 2011/08/11 14:56
사용자 삽입 이미지1.
17세기 자크 갈로로부터 고야, 도미에, 콜비츠, 루오, 리베라, 피카소, 샤갈을 거쳐 20세기 달리, 마그네트, 뷔페, 에로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반전그림들을 작가별로 두루 살펴보고 있는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반전과 평화의 미술>이라는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자면. 참 오랜만에 눈이 호강을 합니다.
 
물론 소개된 그림들이 하나의 주제, ‘반전과 평화’여서 보기에는 다소 암울하고 칙칙한, 어둡고 절망적일 수 있겠지만. 또 미술관이나  화집에서는 대게 구경하기 어려운 색체와 구도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언제나 잠들지 않는 정신으로 전쟁이라는 지옥의 심연을 표현하고 평화를 갈구(p.278)’한 화가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2.
클래식이라고 얘기하는, 모차르트나 바하, 비발디, 브람스와 같은 이들이 만든 음악은 여전히 우아함, 품격, 귀족 등과 연결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더불어 인상주의니 야수파니, 입체파, 표현주의와 같이, 고갱, 피카소, 클림튼, 마네,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들 역시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미술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는 결코 노동자들이 사는 곳, 민중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곳과 가까이 있지 않은 것과 같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디외가 <재생산 (La)Reprouduction : elements pour une theorie du systeme d'enseignemen>이란 책에서 문화자본으로 개념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구별짓기’를 사회학적 개념으로 탁월하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중언부언하자면 많은 시간과 함께 거금의 돈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이런 류(類)의 예술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는 경계선 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거란 얘깁니다.  
 
3.
책을 낸 이가 전에 썼던 글들에서 심심치 않게 풍겼던,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서양화가를 중심으로(p.8)’란 말에서 그 냄새의 정체가 의심되는 계몽주의 혹은 ‘세계미술사에서 이미 그 작품의 예술성이 충분히 인정된 화가들의 작품만 엄선(p.8)’했다는 말 속에 숨은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 그도 저도 아니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친절하지 못한 개념들에 대한 나열들에 자칫 지적유희에 빠지게 될 위험을 갖고 있어 조금은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이 있다고 해도 박홍규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p.278)’라는 외침은 묻히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과 같이 여기저기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때엔 되레 그 울림이 더 크게 퍼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두고두고 감상할만한 책이지요. 더군다나 피카소, 고야, 샤갈, 달리와 같이 주류 미술계에서도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린, 그러나 결코 주목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그림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데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눈을 뜨게 하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4.
책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 가운데 멕시코 혁명을 벽화로 작업한 이들의 작품이야 말로 켜켜이 마음에 남는 그림들입니다. 아니요. 꼭 한 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과 무관하고, 그림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미술을 거부한다. 민중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볼 수 없다면 전시회를 도로에서 열자. 작업장에서 술집에서 열자. 거리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노동조합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그림을 그리자.” (p.205.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멕시코혁명과 반전화가)
 
는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드는데요. 그건 아마도.
 
예술이 예술가에 의해서만,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으로만 남는 다는 것 때문일까요.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 그림, 음악들이 미술관에 오페라하우스에 책에 담겨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럴 때야만 오롯한 반전평화의 예술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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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2:02 2010/12/06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