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막아보겠다고 나선 지율 스님은 “저를 보지 말고 제 뒤의 천성산 생명붙이를 봐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바위를 깎는 포크레인 소리에 묻혀 그 목소리는 아주 가느다랗게 들렸습니다. ‘누구 없나요? 살려주세요...’라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어머님의 신음 같기도 한 이 소리’는 꼬리치레도롱뇽만이 울부짖는 소리가 아니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뭇사람들은 스님만 쳐다보며 하루, 하루 날짜만 샜습니다. 또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혈세(血稅) 낭비라는 얘기는 그나마 양반이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뜻도 모르는 말도 갖다 붙였지요. 스님이 하는 일은 ‘에코파시즘’이라나 뭐라나. 재판관에서부터 대선후보로까지 오르내리는 전(前) 청와대 수석까지. 사실 왜곡은 기본, 그나마 한 약속마저 손바닥 뒤집듯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님이 한 말, 아니 간곡한 호소에는 좀체 귀를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스님이 말씀한 대로 ‘천성산 생명붙이’는 외면하고 제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지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지 250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들 전태일 곁으로 가신 이소선 어머니마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꼭 살아 내려오라며 울부짖었지만. 또 김 지도위원 역시 여전히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 이상, 내려오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하루, 하루 날짜만 꼽습니다. 희망버스며 희망비행기가 아무리 떠도. 현대자동차노조가 조합원 대신 식당 여성노동자를 버렸던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자본이 갈라놓은 정규-비정규가 노동자들을  옥죄고. ‘미래경영상의 이유’라는 기가 막힌 논리도 스스럼없이 말해지고. ‘귀족노조’니 ‘노조이기주의’란 공격에 꼼짝 없이 당해야 하는 현실이. 바로 그 정리해고 때문임을 보려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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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8 18:35 2011/09/28 18:35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인 송경동에게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꼬리표가 달렸습니다. 희.망.버.스.기.획.자. 

 
2003년이던가요. 민주노총이 사무실이 있던 동네, 영등포경찰서장이라는 작자가 잇따른 노동자들의 분신을 두고 “거기 위쪽에서 기획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망발을 내뱉은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뒤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비수를 꽂았구요.
 
그 보다 앞선 1991년, 명지대 1학년 생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이후 학생, 노동자,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잇따라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이란 자가 나타나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며 ‘분신 배후설’을 퍼뜨렸습니다. 심지어 제비뽑기를 해서 분신순서를 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들도 들려왔구요.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후배들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했습니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는 “배후조종한 선배들에 이끌려 시위 도중 도망가다 맞아 죽은 것일 뿐”이라며 철없는 학생의 하찮은 죽음으로 내몰았지요.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이 의심되는 미국 산 쇠고를 수입하려는 정부에 항의하던 촛불시위가 탄핵 요구로까지 번지자. 2MB이 친히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파악해 보고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서경석 목사는 “지도부를 구성하는 대책회의 인사들이 좌파이기 때문에 변질될까 우려하고 있다.”며 필요도 없는 걱정까지 하고 나섰는데요.  때맞춰 황색 언론들이 ‘촛불 배후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거짓 선동에 순수한 청소년들이 이용당한 것”이라며 말이죠.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기 전, 기.획.자. 송경동 시인은 <작은책>에서 주최한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시의 현장을 찾게 되죠.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은 꽃과 자연만을 찾아다니잖아요. 왜 그러냐면 자기 시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니는 거예요..... (중략) ..... 자기 문학의 현장은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런 현장, 그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동안 내 문학이 나올 거다’ 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시인보다 전문 시위꾼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삶과 예술에서 언제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 섰으며, 수탈당하는 사람들의 진보적 투쟁(<케테 콜비츠, 천재 여류판화가의 사랑과 분노의 자화상>, 실천문학사, 2000. p.21)’을 그려냈던 케테 콜비츠는 1922년 어느 날, 에르나 크뤼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요 다음번에는 더 작은 작품들만 할 생각이다. 국제 노동조합 총연맹으로부터 전쟁을 반대하는 포스터를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일을 생각하면 나는 즐거워진다. 어떤 목적을 지닌 작품은 순수한 예술일 수 없다고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작업할 수 있는 한 나의 예술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같은 책, p.82)
 
검찰이 붙인 건지, 보수 언론들이 덧씌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왜 그 기.획.자.라는 말이 자꾸만 맴도는 것일까요. 기.획.자. 시를 쓰기 위해 크레인을 찾아간 시인 송경동. 역사도 그를 기.획.자.로 기억할까요.

 

혜화 경찰서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앤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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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14:56 2011/08/11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