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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되기란 힘들더군

지난 목요일이었어.

지방으로 출장을 가있던 터에 전화가 왔지. 곧 아이를 출산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어.

 

사실, 이번 출장은 사죄로 점철된 것이었기에 금방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었어.

 

어렵사리 이야길 꺼내 서울로 향하는 도중... 태어났다더군.

차라리 마음이 편했어. 이 놈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효를 하는 군... 투덜되면서 병원에 도착한 것이 밤 11시.

 

아내는 아파죽겠다고 하고....밤새도록 팔다리를 주물렀지. 아기 얼굴을 면회시간이 안되서 보지도 못하고 말야.

 

다음날... 아침에 이런 저런 검사를 받는다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올해 3살이 되는 딸애가 왔어. 난 딸애와 아내를 보느라 기진맥진. 오후가 될 때까지 아이 얼굴도 못봤지... 나중에 병실로 올라온 주먹만한 아이를 보면서...그제야 실감이 나더군.

 

그런데 왠일... 아이에게 이상이 있다며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더군. 아내는 놀란 눈치고 난 애써 태연했지. 그래야 감정의 균형을 겨우 겨우 맞출 수 있었거든.

 

요지는 이래. 누구나 알다시피 똥꼬는 하난데, 이 아이는 똥꼬로 보이는 구멍이 두개가 있는 거야. 단순히 똥꼬 문제면 두 군데로 나오고 편하겠다 하겠지만, 똥꼬하고 연결된 신경들과 장기가 문제인 거지.

 

결국 퇴원하는 날, 세브란스로 갔어. 1시간이 넘게 막 출산한 아내와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데 만감이 교차하더군. 의사는 입원을 시키자고 하더라.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면서.

 

감정의 균형이 깨져버린 아내는 울기 시작했어. 겨우겨우 참아왔었는데.

난 괜실이 아내에게 짜증을 냈어. 왜 울고 그래, 아이에게 나쁜 기운이 갈거야, 그러지 마!!

 

그런데 왜 모르겠어? 나도 아이가 이런 걸 보니, 내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더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는데, 아내는 오죽했겠어. 결국 아내나 나나 다 죄인이 되어버렸지 뭐.

 

그러고나서 3일 째. 난 집에서 첫째를 보다가 조리원에게 가서 아내를 들여다 보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기위해 신촌을 향해. 그리곤 다시 집에 와서 첫째를 보다가, 아내에게 가서 모유 짜는 것을 도와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집에 다시 오고...

 

사실,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 그런데, 내가 울면, 아내도, 영문도 모르는 첫째도 울거라는 걸 너무 잘알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더라고. 수술때문에 몇일째 금식을 해서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이를 보고 와서, 건강하게 잘 있더라며 아내에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걸, 그 외엔 무얼 할 수 있겠어.

 

결국,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퇴원할 것이라 믿어. 아내도 첫째 낳을 때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골골 댔던 몸을 제대로 간수하고 조리원을 나오게 될 것이고. 내 딸은 어렵게 집에 도착한 동생을 많이 아껴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 그렇게 믿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아빠가 되는 것. 죄인도 되고, 바보도 되야 하더라.

그러면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아빠의 자식들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

참. 이제서야 철이 든다.

 

아빠가 된다는 것. 참 무서운 일이야. 하지만, 그 아이의 눈망울을, 아빠가 아니면 누가 볼 수 있겠어.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아빠가 아니면 이렇게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암튼,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 뜨거운 동지애를 전하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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