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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백의종군' 주장에 대해

심상정, 노회찬 의원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단병호 의원에 대한 훈수가 줄을 잇고 있는 모양이다.

 

우스운 것은 대부분의 훈수가 '고언'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런 저런 말들로 '백의종군'을 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우스운가?

 

첫째. 고언이란, 같이 하는 자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충고와 고언의 사전적 의미는 다르다. 그 다름의 핵심에는 말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 즉, 말의 대상이 서있는 자리와 말하는 자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느냐 혹은 다른 자리에 서 있느냐로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같이 하지도 않으면서 고언이랍시고 지껄이는 말들은 짜증난다. 일종의 같은 판에 있지 않냐고?

 

그렇게는 연결되겠다. 그렇다면, 그런 고언과 연결되는 백의종군의 내용을 보자. 백의종군의 유명한 사례로는 이순신의 것과 근래에 박근혜의 것이 있겠다. 이 둘의 백의종군이 가지는 특징은 '신분보장'이다, 이순신의 경우에는 정치적 백의종군에 가까웠다. 당시 조정 내부에서는 유성룡 등 이순신의 중용을 위해 몸을 던지 이들이 있었다. 박근혜의 경우, 더 말할 것이 무엇인가.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에 대해 백의종군을 이야기하는 하는 것은 쉽다. 일순간 그렇게 말하는 자는 순결한 도덕성의 화신이 되어 버리고, 예의 백의종군을 하지않는 이들은 한 줌 권력의 아집에 사로잡힌 이가 되어버린다. 얼마나 확실한 선인가?

 

하지만 나는 반대다. 여기서 백의종군은 알량한 전략가들의 자기만족에 다름아니다. 내가 정치가로 이 세명을 여전히 신뢰하는 것은 스스로 정치의 바닥에서 몸을 망칠 각오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지방의원의 임금이 노조 전임자의 임금보다 적다는 이유로 선거에 나서지 않는 소위, 노동 활동가들을 보면서 짜증에 앞서 연민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이런 자들은 나름 노동현장에 복무한다는 위치만으로 아무 말이나 해도 괜잖은 것인가?

 

노동정치는 노동자 정치와 다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정치인 만들기와 다르다. 상식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장에서 좀더 영약해지는 것이다. 정치에서는 인파이터만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는 안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전 국회의원의 상징을 이용하고 언론플레이를 열심히 해주길 빈다.

 

누구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수한 것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글쎄,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세상의 때에 더렵혀 있다. 그것이 정상아닐까.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주저앉히기 위해 노력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맞다. 그들이 지난 4년간의 정치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용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체의 것으로 전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별개다.

 

때 아닌 훈수쟁이들과, 고고한 척하는 이야기들이 판을 치는데 우스운 일이다. 무슨무슨 파라는 이유로 칼을 휘두르고, 사민주의-의회주의라는 말로 깔아뭉게는 초딩 수준의 말들이다. 아무리 싸움을 못해도 링안에서 싸우는 선수에게 욕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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