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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8
    이강국과 프락치
    평발

이강국과 프락치

오늘 일간지엔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공간이 있을까 싶다. 한국판 마타하리라...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기사하나를 보자.
“여간첩 김수임 사건 조작 의혹”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지며 6·25전쟁 직전 간첩혐의로 처형된 김수임(1911∼1950)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AP통신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1950년대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김수임 사건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16일 밝혔다.

특히 이 문서에는 그동안 김수임이 월북시킨 것으로 알려진 ‘독일유학파 공산주의자’ 이강국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 당국이 ‘미국 간첩’으로 처형한 것으로 나와 있다.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도 이강국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조직인 ‘JACK(한국공동활동위원회·Joint Activities Commission,Korea)’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란 이화여전을 졸업한 미모의 인텔리 김수임이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중요 기밀을 빼내 북측에 넘기는 등 간첩활동을 하다 1950년 3월 붙잡혀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그러나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또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은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이에 따라 김수임은 한국 경찰의 고문을 받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허위자백한 것으로 미군 관계자들이 결론내렸다고 AP는 전했다


내가 이 기사에 눈이 간 것은 이강국 때문이다.


1. 이강국

내가 이강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강국연구와 출간되고, 그의 저서가 나오면서다. '민주주의 조선의 건설'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때가 2006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국내 정치학 문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런 관심은 편집증으로 발전하고 있는 차다.

박치우, 신남철 등의 인사들도 이런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강국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경성제대와 독일베를린대학을 나온 인텔리 출신 공산주의자로 박헌영과 함께 남한 공산주의운동을 이끈 장본인 중 한명이다. 1930년대엔 원산 등지에서 적색노조 건설운동을 하였고, 해방 후엔 건준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북으로 가서 초대 외무장관을 하곤 박헌영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적어도 난, 박헌영과 이강국의 처형을 정치적 살인이라는 견해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김일성 등 소련파가 박헌영 등 국내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공작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활동가인 박헌영과 이강국의 문헌은 중요하다고 보았다.

2, 프락치

그런데, 최근 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강국은 미국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난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도 남쪽도 아니고 북쪽도 아닌, 미국의 스파이를 택한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참 소심한 인간인지라, 내중 안하던 블로그에 들어와 쓴다는 글이 이강국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괜히 쓸쓸해 진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3. 일종의 가설: 이상의 이념화가 빚은 참상

사람에 대한 일반론을 참 싫어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의 특수성이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인텔리 출신의 엄격한 이론가인 이강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탄압에 이어 해방된 남한과 북한의 현실이 너무 '헐겁다'고 느꼈을 수 있겠다 싶은 거다.

유연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여유는 고사하고 자신의 신념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원칙으로, 원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그런 선택이 현실에서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라 현실부정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원하는 사회의 반정립인 미제국의 스파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난 개량보다 원칙을 숭상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리고 주변의 평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원칙이 힘들어지면 개량보다는 전향을 선택하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자각한다.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최근 촛불정국에서도 그렇고, 진보신당 내의 전진논쟁도 그렇지만 나의 원칙이 '무행동의 전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강국을 보면서, 그에 깜도 안되는 주제인 내가 심란한 까닭을 다소 억지스럽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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