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되는 기존의 국공유지와 용적률 상향으로 확보되는 공중 공간에서도 두 유형을 위주로 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옳다. 단, 토지임대부 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우에는 환매 조건을 붙여야 한다. 5년·10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허울뿐인 공공임대주택은 더 이상 공급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정책 수립 시에 국토 균형발전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해 두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사실상 방기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임기가 끝나간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이 정책을 착실히 추진했더라면 수도권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악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투기 수요가 기승을 부리는 시장에 집을 더 지어서 공급하는 것은 한창 타오르는 불더미에 땔감을 더 갖다 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법은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투기수요를 잠재우고 실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데서 찾았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부동산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가 클 뿐 아니라 급속히 쇠퇴하고 있는 지방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으므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두관 후보와 양승조 후보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으로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두 후보의 공약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근본 대책을 국민 앞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경고
두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윤석열 두 사람은 수도권에 대대적으로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불로소득 환수와 투기 억제를 강조하고 기본주택 공급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후보와 차별성을 보이지만, 공급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청년층을 우선 공급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두 후보의 주택 공급 공약은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와 토건족이 오랫동안 주창해온 공급 확대론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고 짐작된다. 수요 분산론이 자취를 감추고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론이 득세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걱정과 염려를 금할 길이 없다. 사실 두 사람 외에도 공급 확대론에 인지 포획된 정치인들은 여야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그들에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경고가 죽비소리 같이 들리기를 바란다.
과도한 대출금을 짊어진 가구들과 필요 이상의 부동산 공급은 …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되면서 실업과 막대한 자원 낭비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 산업 거품은 꺼진 뒤에라도 그나마 유용한 것을 남겼다. 그러나 주택시장 거품이 가라앉은 뒤에 남은 것은 …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조악하게 건설된 주택들이었다.<br />- 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 열린책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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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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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한마디로 규제와 세제의 전방위적 완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평가할 생각이라서, 여기서는 윤 후보의 공약이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혁파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의혹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는 개발이익 환수를 무척 강조한다. 최근에는 부동산 개발이익 공유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선명한 정책과 기발한 발상으로 발등의 불을 끄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알겠으나, 그 와중에 그가 오랫동안 주창해온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슬쩍 뒤로 물리자는 심리가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에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브랜드 공약을 뒤로 물리는 어설픈 행보를 보이다가, 다른 예비후보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이 후보는 자신의 원래 스탠스를 회복하며 안정을 되찾았고 마침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본선이 시작되면서 이재명 후보는 경선 초기 때와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근본 정책은 말하지 않고 특정 계층에게 직접 이익이 될 정책만 발표한다.
그때도 지금도 명분은 중도 확장이라는 정치 공학이다. 공학이 철학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인데도 이재명 후보는 자꾸 공학에 집착하는 것 같다. 지지율이 뒤처지니 초조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미 우리 국민은 달콤한 말이나 약속에 속아서 표를 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니 하는 말이다.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최선의 정치 공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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