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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이재명, 그래도 공학이 철학 이길 수는 없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부동산 불로소득 해소 방안

21.11.10 06:58l최종 업데이트 21.11.10 06:58l전강수(gsjun)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지난 11월 3일 <오마이뉴스> 칼럼(다시 생각해도... 문재인 정부 참 순진했다 http://omn.kr/1vufq)에서 필자는 최신 통계자료를 활용해 한국 부동산 불평등의 실상을 밝혔다. GDP 대비 땅값의 배율은 이미 OECD 국가 최고 수준이고, 토지 소유의 불평등도는 개인과 법인을 막론하고 엄청나게 높은 수준임이 드러났다.

최근의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했는데, 이 소득은 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와 투기꾼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어야 함에도, '핀셋 대책'으로 일관하다가 역대 정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 최다의 풍선효과 유발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했으므로,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혁파하려는 의지가 없었음을 확인해 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중요한 점은 앞으로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어떻게 혁파할 것인가이다. 이를 그대로 두고는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될 수 없고 지속적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니, 투기 공화국 혁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부동산 투기 공화국 혁파는 정책 철학을 올바로 수립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선 국면이니만큼 많은 이들이 기발한 정책 공약을 발굴하느라 애를 쓰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책 철학이다. 철학 없이 정책을 펼치는 것은 마치 어디를 가는지 모르는 채로 열심히 노를 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한 것도 철학 없이 마구잡이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이 채택해야 할 부동산 정책 철학으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주창해왔다. 토지·자연자원·환경은 인류에게 거저 주어진 자원으로서 모든 사람의 공공재산이라는 성격을 갖는 만큼, 그것을 차지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그 가치에 비례해 사용료를 공공에 납부하도록 하고 그 수입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혹자는 토지공개념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이념적 정체성을 의심하지만,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적 토지이념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회주의적 토지공유제는 토지의 사용권·처분권·수익권을 모두 공공이 갖고서 토지 관련 활동을 계획으로 통제하는 반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은 시장원리를 존중하면서 토지이용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이를 두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큰사진보기싱가포르 공공아파트(HDB) 단지.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HDB에 산다.
▲  싱가포르 공공아파트(HDB) 단지.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HDB에 산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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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로소득을 부정하고, 땀과 노력, 그리고 모험심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이 철학은 불로소득 경제 시스템을 타파하여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시장경제를 시장경제답게 만든다. 싱가포르, 핀란드, 헬싱키, 그리고 미국 뉴욕시 배터리 파크(Battery Park)의 사례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대만 등의 국가는 아예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규정해 두고 있다. 

대한민국도 헌법에 토지공개념 조항이 있는 나라다. 다만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애매해서 관련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위헌 논란이 발생하기 때문에 헌법의 토지공개념 조항을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와 추미애 후보가 토지공개념을 좀 더 분명히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한국 부동산 정책의 근본 방향을 좌우할 중대 공약이므로, 두 후보가 경선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그냥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 장치

한국 정치권을 뒤흔든 LH 사태와 대장동 게이트는 공기업 직원들과 부동산 부패 카르텔의 부정과 비리 때문에 발생했지만, 그 배후에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근본 원인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투기가 빈발하고 부동산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데 기인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려면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 수요 면에서는 토지보유세를 강화해 부동산 불로소득의 발생을 막는 동시에, 양도소득세를 정상화하되(주택 수 기준의 차등 과세를 폐지한다는 뜻이다) 최고구간을 신설하고 더 높은 최고세율을 적용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지금보다 더 많이 환수해야 한다. 전자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라면, 후자는 이미 발생한 불로소득을 사후적으로 환수하는 조치다. 토지보유세 강화에 수반하는 조세저항은 세수 순증분을 국민 주권에 상응하는 배당으로 지급함으로써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물론 토지보유세와 양도소득세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완전히 차단·환수할 수는 없다. 두 조세가 강화되더라도 국지적으로 불로소득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명무실해진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원상 복구하고, 1990년대 말에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를 수정·보완하여 재도입하는 것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토지초과이득세를 재도입하는 경우, 과거에 이 세금이 유휴토지만을 대상으로 삼는 바람에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지보유세 강화, 양도소득세 정상화 및 강화, 국지적 불로소득 대책 마련, 이 세 가지는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혁파할 '삼중 장치'다. 여기에다 공기업 직원이나 공무원, 부동산 부패 카르텔이 불법과 비리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는 당사자를 확실히 처벌하고 부당이득을 철저히 환수하는 제도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이다.
 

큰사진보기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토지거래 조사 결과를 발표한 1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에 최근 사회단체가 던진 계란 자국이 남아있다. 2021.3.11
▲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토지거래 조사 결과를 발표한 1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에 최근 사회단체가 던진 계란 자국이 남아있다. 2021.3.1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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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면에서는 종래의 부동산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국가의 주택 공급역량을 장기 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의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의 토지·주택 관련 공기업은 민간의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한 다음 땅을 매각하거나 아파트를 지어서 땅과 건물을 매각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공공이 분양주택을 공급해야만 하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땅장사·집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한다는 교차보조의 논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2019년 현재 4.4%에 불과한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은 교차보조의 논리에 근거가 없음을 방증한다. 또 토지·주택 관련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땅장사·집장사의 목적이 서민 주거복지 향상이 아닌 공기업 구성원 이익의 극대화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국가가 땅장사·집장사를 벌이는 것은 토지 강제수용이 전제하는 높은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공공 분양주택 공급은 가능한 한 줄이고 분양주택 공급을 민간 건설업체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제수용으로 조성하는 공공택지에서는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얼마 안 되는 기존의 국공유지와 용적률 상향으로 확보되는 공중 공간에서도 두 유형을 위주로 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옳다. 단, 토지임대부 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우에는 환매 조건을 붙여야 한다. 5년·10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허울뿐인 공공임대주택은 더 이상 공급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정책 수립 시에 국토 균형발전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해 두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사실상 방기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임기가 끝나간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이 정책을 착실히 추진했더라면 수도권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악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투기 수요가 기승을 부리는 시장에 집을 더 지어서 공급하는 것은 한창 타오르는 불더미에 땔감을 더 갖다 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법은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투기수요를 잠재우고 실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데서 찾았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부동산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가 클 뿐 아니라 급속히 쇠퇴하고 있는 지방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으므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두관 후보와 양승조 후보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으로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두 후보의 공약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근본 대책을 국민 앞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경고

두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윤석열 두 사람은 수도권에 대대적으로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불로소득 환수와 투기 억제를 강조하고 기본주택 공급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후보와 차별성을 보이지만, 공급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청년층을 우선 공급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두 후보의 주택 공급 공약은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와 토건족이 오랫동안 주창해온 공급 확대론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고 짐작된다. 수요 분산론이 자취를 감추고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론이 득세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걱정과 염려를 금할 길이 없다. 사실 두 사람 외에도 공급 확대론에 인지 포획된 정치인들은 여야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그들에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경고가 죽비소리 같이 들리기를 바란다. 
 
과도한 대출금을 짊어진 가구들과 필요 이상의 부동산 공급은 …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되면서 실업과 막대한 자원 낭비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 산업 거품은 꺼진 뒤에라도 그나마 유용한 것을 남겼다. 그러나 주택시장 거품이 가라앉은 뒤에 남은 것은 …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조악하게 건설된 주택들이었다.<br />- 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 열린책들, 198쪽.
 
큰사진보기왼쪽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  왼쪽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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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한마디로 규제와 세제의 전방위적 완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평가할 생각이라서, 여기서는 윤 후보의 공약이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혁파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의혹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는 개발이익 환수를 무척 강조한다. 최근에는 부동산 개발이익 공유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선명한 정책과 기발한 발상으로 발등의 불을 끄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알겠으나, 그 와중에 그가 오랫동안 주창해온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슬쩍 뒤로 물리자는 심리가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에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브랜드 공약을 뒤로 물리는 어설픈 행보를 보이다가, 다른 예비후보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이 후보는 자신의 원래 스탠스를 회복하며 안정을 되찾았고 마침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본선이 시작되면서 이재명 후보는 경선 초기 때와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근본 정책은 말하지 않고 특정 계층에게 직접 이익이 될 정책만 발표한다. 

그때도 지금도 명분은 중도 확장이라는 정치 공학이다. 공학이 철학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인데도 이재명 후보는 자꾸 공학에 집착하는 것 같다. 지지율이 뒤처지니 초조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미 우리 국민은 달콤한 말이나 약속에 속아서 표를 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니 하는 말이다.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최선의 정치 공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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