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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경, 감경, 감경…성범죄 ‘깃털같은 처벌’ 계속되는 이유

등록 :2021-11-10 04:59수정 :2021-11-10 08:07

 
10건중 4건이 감형 받아
반성문 썼다고, 합의했다고…
‘감형 컨설팅’ 시장도 성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범죄 사건의 41.8%가 법정형보다 가벼운 형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불원 등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진 결과로,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 등이 추가되면 형량은 더 준다. 이 과정에서 법률시장이 적극 개입해 있다. 막상 법정형보다 더 무거운 선고는 4.3%에 불과했다.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아졌지만 실제 양형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간 지적이 일정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실태는 지난 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젠더폭력 범죄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처음 알려졌다. 이날 소개된 ‘2019 대법원 양형위원회 연간보고서’를 보면, 대법원 양형기준이 적용된 한해 전체 성범죄 4824건 가운데, ‘감경영역’ 안에서 형이 선고된 사건만 2016건(41.8%)에 달했다. 반면 가중영역은 207건(4.3%), 나머지 2601건(53.9%)이 기본영역으로 구분됐다. 대법원 양형위는 성범죄 행위별로 기본형량 범위(기본영역)를 정하고, 양형에 참작할만한 별도 사유가 있을 때는 형을 감경 또는 가중하도록 한다. 이때 △처벌불원(피해자와 합의) △피고인의 자수 △피해 정도 경미 등의 ‘특별양형인자’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으면 기본형량보다 가벼운 ‘감경영역’ 범위 안에서 형이 결정된다.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의 ‘일반양형인자’에 해당하는 요인이 추가되면 선고형량은 더 낮아진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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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지원단체 등 여성계에서는 여러 양형기준 가운데 특히 ‘처벌불원’과 ‘진지한 반성’은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적 요소라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이날 심포지엄 토론자로 양형위 보고서를 분석한 김재남 여성가족부 법률자문관(의정부지검 부부장검사)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혹은 처벌이 경미할 경우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에 노출될 위험성 때문에 할 수 없이 합의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처벌불원의 배경을 충분히 심리해 양형사유로 반영할 것인지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지한 반성’ 역시 무분별하게 감경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9 성폭력 범죄 감경 사유’에 따르면, 전체 성범죄 사건 가운데 3420건(70.9%)이 감경사유로 ‘진지한 반성’을 채택했다.

 

법정에서 ‘진지한 반성’ 등이 통하도록, 각종 감형 팁을 구상해 매뉴얼화하고 컨설팅하는 성범죄 전담 변호시장도 크고 있다. ‘반성용’으로 여성단체 기부를 하거나, 심리상담 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하도록 ‘맞춤 법률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다른 양형인자인 ‘사회적 유대관계 원만’은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하며 마찬가지로 재판부에 ‘승인’될 수 있는 다양한 팁이 양산, 활용되는 중이다. 이에 최근 성범죄 전담 법인들은 가해자의 ‘정상성’을 입증하기 위해 초·중·고교 생활기록부, 대학 성적표, 헌혈증, 장기기증 서약, 심지어는 군 사격 포상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젠더 이해나 기준이 부족한 사법체제와 모호한 양형기준, 가해자 카르텔, 그리고 잇속 밝은 변호업계가 맞물려 성장한 성범죄자 지원 산업의 현주소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18656.html?_fr=mt1#csidx101547880caf4ddad85460726c92a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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