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오전 경상북도 포항시 외곽 조사리와 화진리 해안가.
저 멀리 바다에서 위용을 자랑하듯 멈춰있던 전차상륙함(Landing Ship, Tank)에서 수륙양용 상륙돌격장갑차(KAAV)가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하늘에는 상륙기동헬기가 굉음을 울리며 연신 낙하산을 탄 해병대를 뿌리듯 내려놓는다.
돌격장갑차들은 수중에서 포를 쏘아대며 회색 포연으로 몸을 가린 채 해안가로 불쑥 모습을 나타내더니 조사교 아래로 진격하듯 달려와 강하 해병대가 모여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곧 이어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속 공기부양정 2척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육지에 상륙해 궤도 전차를 배출했다.
전날 밤 서울과 지방 각지에서 출발해 이날 아침부터 포항시 조사리에 모여든 '정전70년 한반도평화행동' 회원단체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훈련 현장에서 '전쟁연습에 반대하는 평화행동'을 벌이며 "막상 직접 훈련 모습을 보니 섬뜩하다", "'어린이날' 잠실운동장에서나 보던 낙하쇼도 아니고 '국군의날' 행진도 아니다. 전쟁 위기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압도적인 전쟁무기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현실'때문이었을까. 조사교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외치는 '전쟁반대' 구호에선 가슴 답답한 쇳소리가 섞여 있다.
전국에서 동원된 약 2,000여명의 경찰 기동대과 경찰버스가 차벽으로 막아 세웠지만 참가자들은 '탄식'속에서도 준비해간 피켓을 들고 '위험천만 상륙훈련 지금 당장 중단하라', '전쟁날까 불안하다 상륙훈련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안간힘을 다해 평화의 의지를 밝혔다.
화진리 해안에서는 부산지역에서 올라 온 참가자들이 평화행동을 벌였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오늘 우리가 두눈으로 본,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이 무시무시한 각종 무기와 훈련은 침략하고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며, "우발적 충돌과 국지전을 비롯해 언제 어느 곳에서 전쟁의 위기가 현실화될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패권이 무너지는 미국은 더욱 한미일 군사·경제동맹에 매달릴 것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에 호응하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북을 적이라 하고 그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손잡고 미국의 가랭이 밑으로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대통령을 그대로 두고서 이땅의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보니까 더 많이 섬뜩하다.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나겠다"며 "북한 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까지 적으로 돌려세우면서 한반도를 신냉전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박석진 활동가는 "한미연합사령관과 합참의장은 각각 '순수한 방어적 훈련이다'. '북한을 적대하는 훈련아니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렇게 보이나"라고 반문하고는 "전쟁을 막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 이 훈련의 위험성을 널리 알려 적대적 상륙훈련이 중단될 수 있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조승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군축팀장은 "상륙훈련은 대표적인 공격훈련이며, 이번 상륙훈련은 한미연합군의 대북 선제공격 전략과 작전계획에 따라 시행되고 F-35를 비롯해 대북 선제공격이 가능한 무기체계가 동원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더욱 격화시키는 역대급 공격훈련임을 이곳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또 "상륙돌격장갑차와 수많은 헬기에서 강습이 동시에 진행되는 '입체 고속기동 상륙작전'은 많은 인명피해를 낳게 된다는다는 것이 입증된 작전"이라며, "북이 전술핵무기를 실전배치하고 수중 핵폭파 시험까지 한 상황에서 1만3,000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상륙훈련을 하는 것은 해병대 장병들의 목숨을 사지로 내모는 무모한 작전"이라고 지적했다.
경남에서 온 진보대학생넷 노예진 학생은 "현장에 와서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훈련은 더 공격적이고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하면서 "전쟁이라는 신제국주의적, 반평화적 방법은 절대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평화행동 참가자들이 밤새 달려 온 포항시 조사리는 2018년 이후 5년만에 사단급으로 규모를 키워 실시하고 있는 한미 연합상륙훈련 '쌍용훈련' 현장이다.
한국군 사단 지휘제대 및 해군 상륙함정이 최대 규모로 참가했고 유엔사령부 전력제공국으로서 영국군 해병대 특수부대가 처음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병력규모만 한미 해군과 해병대 약 1만3,000명 규모.
이날 포항 앞바다에서 진행된 훈련은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쌍용훈련' 중에서도 대규모 상륙군이 일제히 해안으로 상륙하여 목표지역을 확보하는 '결정적 행동단계'인 상륙돌격 현장.
이날부터 '23 쌍룡훈련, 결정적 행동'(decisive action)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훈련은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군 설명에 따르면, 대형수송함(LPH) 독도함, 강습상륙함(LHD) 마킨 아일랜드함 등 함정 30여 척, F-35,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등 항공기 70여 대, 상륙돌격장갑차 50여 대 등이 동원돼 하늘과 바다, 땅을 뒤덮으며 진행됐다.
'연례적'이라거나 '방어적' 훈련이라는 수식어도 생략됐다. '3차원 입체 고속기동 상륙작전'이라는 이름을 별칭처럼 붙이고는 '적 종심 신속투입과 전쟁승리의 결정적 역할'이 목표인 공세적 훈련임을 감추지 않았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이날 훈련 현장에서 "이번 한미연합상륙훈련은 강화된 '전사의 방패(Warrior Shield, WS)' 연합 야외기동훈련의 일환으로 5년 만에 재개되는 의미 있는 훈련"이라며 "국가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적의 종심지역에 신속히 투입되어 전쟁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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