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 이튿날인 12월 4일부터 서연씨의 광장 생활은 시작됐다. 이후로 파면 선고가 나기까지 123일간, 거의 모든 토요일에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 나가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실감이 나질 않아서,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광장에 나갔다.
"'한 명이라도 더 나가면 빨리 끝나겠지' 싶어 가지고 꾸준히 나갔어요. 특히 그때가 12월 초반이었잖아요.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마침 저는 학기가 끝났고 백수 상태라서, 그냥 '될 수 있는 사람이 나가자' 싶어서 갔던 것 같아요."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던 2022년 3월, 서연씨는 투표권이 없던 고등학생이었다. 뉴스에서 윤석열의 당선 소식을 보고 '조졌네' 하면서 잠이 들었던 선거 다음날, 학교 전체를 휘감았던 '초상집' 분위기를 기억한다. (속칭) '조졌다'는 의식의 기원에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는 전형적인 남성 엘리트의 등장이 있었다. 그는 윤석열을 두고 '남성주의자'라는 표현을 썼다.
"서울대 나왔고, 사법고시 9수했고, 집안이 엘리트고, 거기에 여성가족부 폐지까지 외치는 남성이 대통령이 되니까… 대한민국이 바라는 '워너비' 남자에 고등교육을 거친 법조인, 남성주의자까지 합쳐지니까 '와, 저 사람은 편견 덩어리구나' 싶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서연씨는 이주민 혐오와 함께 여성 혐오 또한 예민하게 느낀다. 여성을 향한 성적 폭력 또한 자주 겪었다. 올해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대중교통에서 성적 피해를 경험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타고 집에 가는데, 너무 졸려서 (자리에 앉아) 졸았어요. 중간에 잠깐 일어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제 목을 감싸더니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해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기대서 자도 안 혼낼 테니까 그냥 자'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당황스러웠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눈 감고 멍때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일어났거든요. 근데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거시는 거예요. 막 다리를 쓰다듬으면서…"
일상적으로 겪었던 성차별을 상기하면서 그해 겨울, 서연씨는 스스로가 뽑지도 않은 대통령을 쫓아내려 자꾸자꾸 광장으로 나왔다.
'짱깨'라는 말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다
12월 21일 밤, '남태령 대첩'의 서막이 열렸던 그날 밤 서연씨는 경복궁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했었다. 광장 구석에 쭈그려 앉아, 커미션(서브컬처 플랫폼에서의 작업 의뢰 보수를 의미하는 말)에 따라 곧 마감을 앞둔 그림을 그리다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을 했는데 트위터에 뭐가 올라와요. '지금 남태령으로 가야 된다' 하면서. '뭔 일이지' 싶어서 계속 봤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 큰 일이겠어' 싶어서 유튜브로 생중계를 봤는데 계속 일이 커지는 거예요. 차는 끊긴 시간이라, 그래서 그냥 같이 날밤을 새웠죠."
세간에 널리 화제가 된 그날의 시민 발언은, 미리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그날 누군가 발언을 하던 도중 '중국'이나, '일본'에 관한 얘기를 했고, 청중들 사이 '짱깨'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짱깨'라는 말은, 밤을 꼬박 샌 데다 추위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서연씨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남태령 때면 슬슬 사람들이 자기 성 정체성 얘기, 젠더 얘기하면서 막 이것저것 얘기하던 시기잖아요. 여기서 한 명쯤은 외국인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있는데… "
그렇게 오른 단상에서, 서연씨는 중국인 부모를 둔 자신의 뿌리와 자신을 살게 해준 이 땅에 대한 사랑을 설명하며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이 자신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염원했다. 이날 전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사망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이야기는 남태령으로 향하기 직전, 엄마가 들려준 얘기였다.
"(남태령에) 경찰차가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으니까… 저도 외할아버지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겹겹의 혐오를 뚫고, 발언대에 오른 서연씨에게 많은 이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쏟아지는 악플들… 실은 괜찮지 않았다
남태령 이후에도 서연씨는 광장에서 혐오 사회를 향한 발화를 멈추지 않았다. 12월 24일 광화문 집회에서도, 1월 18일의 비정규직노동자 집회에서도 연단에 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집회에서는 혐오로 인해 놀림 받던 자신의 중국식 이름과, 중국어를 하는 스스로를 숨겼던 과거를 밝혔다. 노동자 투쟁에서는 오늘은 일하다가 내일은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며 '인간다운 최저선의 근로환경 보장'을 부르짖었다.
"저희 아버지가 건설 쪽에서 일을 하시거든요. 중국 이주 노동자들로 꾸린 팀의 팀장이신데, 그러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삼촌들을 자주 만나 뵀거든요. 근데 삼촌들이 매번 바뀌어요. 누구는 잡혀갔고, 누구는 일하다가 죽었고, 누구는 다쳤고… 불법 체류도 있지만 사실 비자가 한 번 살짝 까딱하면 바로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리잖아요. 그걸 만날 보니까… 그것에 관해서 말했어요."
남태령 이후부터 서연씨에게는 혐중 정서에 기반한 악플이 쏟아졌다. 서연씨의 X 계정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신고하겠다는 얘기부터, 중국 국가 주석인 시진핑의 얼굴을 태우는 사진 등이 '인용'과 댓글로 달렸다.
괜찮을 줄 알았고 괜찮은 줄 알았지만, 실제론 괜찮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2일 'PD수첩' 방영 이후 '남태령 동지'인 '향연'('X' 닉네임) 김후주씨를 통해 전해온 메시지로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가끔은 집 밖으로 나가기 벅찰 정도의 공황장애가 올라와, 스스로를 극단적인 선택에서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망쳐야 했다"라고. 그렇게 그는 3월 1일, '위아더해군' 계정을 삭제했다.
'혐중'이라는 이름의 혐오와 미세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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