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마친 권 후보는 여수산단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와의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간담회 전, 권 후보는 화섬노조 조합원들과 빵을 나눠먹으며 가벼운 얘기를 나눴다. “실물이 더 나은데요.” 한 조합원의 말에 “화면으로는 별로라는 이야기냐”며 권 후보가 우스갯 소리를 했다. 모인 이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김성호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이 여수산단의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구조조정 계획을 하는 사업장들이 많고 원청도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취약한 사내하청부터 구조조정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에요.”
최진만 화섬식품노조 엘지(LG)화학사내하청지회장도 말을 보탰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 여수산단 위기라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어떤 해결 의지도 없는 거고. 권 후보에게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습니다.”
조금 전 웃음기는 오간 데 없이, 자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30분 간 이어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권 후보가 어렵게 입을 뗐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이 먼저 폭탄을 맞게 될 텐데, 내가 당선되면 당장 협의체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요. 일단은 이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것부터 해서 저희도 고민을 같이 해보겠습니다.”
권 후보 말 끝에 김 지부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총선이나 대선 때 후보자들이 한번 와서 아픔을 듣고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경험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희 아픔만 위로하고 가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 후보에게 이 말은 “뼈아픈 이야기”였다. “사실 제가 이번에 대통령 될 수 없다는 건 다 아실 거 같아요. 이번엔 어렵겠죠. 저를 만나는 게 무슨 의미 있을까 하는 분도 많을 거예요. 제가 당장 문제를 해결할 만큼 힘과 권력이 있진 않습니다.” 권 후보는 “그래서 이번에 필요한 건, 우리의 목소리를 함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사표는 없어요. 제가 5% 득표하면 민주당도 저를 함부로 못합니다. 제가 하는 얘기를 정책에 반영할지 고민하게 될 거예요.”
이준석의 기자회견, 그리고 한 통의 전화
화섬식품노조와의 간담회를 마치고 광주로 이동하는 차 안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서울의 선거대책위원회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던 이은주 실장이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시각,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티브이 토론에서 했던 여성혐오 발언이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후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단계적 검증”을 위한 절차였다고 주장했다.
차 안에서 조용히 대화가 오가는가 싶더니 잠시 후, 기자들의 휴대폰엔 ‘이준석 후보 티브이 토론 여성혐오 발언 관련 입장 발표 예정’이라는 공지 문자가 일제히 떴다. 좀 더 확실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차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준 건, 한 통의 전화였다. 통화하던 권 후보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졌다. 여수산단 내 남해화학 파견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소송 1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업체는 40여년 전부터 협력업체를 두고, 여러 제품 생산공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입해왔다. 권 후보는 정의당 대표로 취임하기 전 이 소송의 변론을 맡은 바 있다.
“불법파견 소송은 노동자 입장에선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변호사로서도) 책임감이 크거든요. 이겼다고 하니 당연히 기쁘죠. 이분들의 삶이 다시 밀려나지 않게 된 것 같아서 너무 다행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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