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75년을 맞은 오늘,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위원장이 대전 산내 골령골을 기습 방문해 유가족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헌화에 사용된 “고귀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국가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에게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전에서는 이날 국가보훈부 주최로 ‘6.25전쟁 제7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국가보훈부는 이번 행사를 대전에서 개최하는 이유로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대전의 상징성과 ‘대전 전투’의 기여를 들었다.

그러나 전쟁 중 군인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6.25 행사에서 부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대전이 임시수도였던 기간과 골령골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던 기간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전골령골대책회의 임재근 집행위원장이 박선영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대전골령골대책회의 임재근 집행위원장이 박선영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진화위 박선영 위원장은 6.25 기념식에 참석한 후 골령골을 방문하였다. 유족들 또한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가해자가 국가였고, 국군이었는데, 하필 6.25 기념식에 참석한 후에 골령골에 올 수 있느냐”며 이는 유족들을 기만하고 두 번 죽이는 가해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골령골 학살사건 위령제에 박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두고 유족들의 고심이 있었으나, 박 위원장이 위령제에는 불참하고 6월 25일 기습 방문으로 일정을 변경하면서 유족들과 대전골령골대책회의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대책회의 임재근 집행위원장은 “진화위원장이 6월 25일에 6.25 기념식에 참석한 후 골령골을 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고 규탄할 일”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박선영 위원장이 보낸 화환에 “고귀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박선영 위원장이 보낸 화환에 “고귀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더 큰 문제는 박선영 위원장이 헌화에 사용한 “고귀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라는 문구였다. 유족들은 “국가에 의한 희생이 어찌 ‘고귀한 희생’이란 말입니까?”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박 위원장은 ‘고귀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희생이 아닙니까?”라며 반문해 공분을 샀다.

유족과 대책회의는 ‘고귀한 희생’이라는 표현은 ‘국가를 위한 희생’에는 사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에 의한 희생’에는 절대로 쓸 수 없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희생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그들의 희생을 왜곡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국무회의에서 파초선을 언급하며 공직자의 작은 관심과 판단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박선영 위원장의 이번 방문과 부적절한 문구 사용은 유족들에게 심대한 상처를 주고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파초선(芭蕉扇)’이 되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 유족들의 항의에도 박선영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희생자 유족들의 항의에도 박선영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골령골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희생자 두 번 죽이는 박선영 진화위원장, 골령골 꼼수 방문 웬 말이냐!”, “유족의 피눈물 외면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자격 없다!”, “진실화해위원회 박선영 위원장은 지금 당장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박 위원장이 현장을 떠날 것과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오늘 골령골을 방문하여 공분을 산 박선영 진화위원장은 윤석열이 12.3 내란 직후인 12월 7일에 임명하였고, 그간 극우적 역사관과 역사 왜곡 발언으로 여러 번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5.16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하는가 하면, 12.3 계엄 직후에는 SNS에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판치는 대한민국, 청소 좀 하고 살자”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지난 4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중 ‘5.18 북한군 개입 음모론’에 “진실 모르겠다”며 답변해 진화위원장으로서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박선영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과 오는 27일 위령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사진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박선영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과 오는 27일 위령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사진 – 통일뉴스 정성일 통신원]

과거사를 올바르게 정리하여 국민을 위해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에 가장 앞장서야 할 진화위원장이 연거푸 진실을 왜곡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국가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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