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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기자단, 없앨 때 됐다

오태규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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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거부하는 기성 언론 독점 체제 유물

오태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실장

기자실과 기자단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권력의 힘이 막강했던 군사정권 시절입니다. 그때는 기자들이 뭉치지 않으면 권력에 부담되는 사안을 취재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사자 한 마리에 맞서려고 얼룩말 수십 마리가 스크럼을 짜고 뒷발질해야 하는 동물의 세계와 흡사한 환경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언론사의 기자가 홀로 반독재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돼 온 학생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하면, 경찰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 출입기자단이 떼를 지어 서장실로 몰려가 요구해야 마지못해 선심 쓰듯 알려 주곤 했습니다. 기자들은 그렇게 기자실과 기자단의 효능감을 맛봤습니다.

기성 언론의 독점 체제 무너지는 인공지능(AI) 시대 아닌가

그러나 세상이 확 달라졌습니다. 언론 환경도 크게 변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요 몇 년 새 기자단이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언론탄압에 저항하려고 집단행동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 없습니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 때 대통령실이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응징으로 <문화방송>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못 타도록 했지만, 대통령 기자실의 ‘1호 기자’들은 항의는커녕 침묵으로 동조했습니다. ‘집단의 힘으로 권력의 횡포에 맞선다’라는 기자실과 기자단의 중요한 존립 논리가 파탄 났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성화로 이미 언론 환경이 급변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까지 가세하면서 언론사와 기자의 앞날이 1년 뒤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기성 언론사와 기자의 독점 체제는 급격하게 무너질 것이고 소통 방식은 더욱 쌍방향·수평화·공유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정보를 발신하는 환경이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및 가족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3일 조 장관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조 장관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소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 바닥에 설치된 포토라인. 2019.9.24. 연합뉴스

권력기관 접근조차 못하는 1만 3천여 개 인터넷 매체들

이것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21세기 언론 환경이라면, 기자단·기자실로 대표 되는 주류 언론의 취재 방식은 ‘20세기의 유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6·3 대통령 선거를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권의 이름은 ‘국민 주권 정부’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잘 포착한 이름짓기입니다. 이를 언론에 대입하면 ‘소비자 주권 언론’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한국 언론의 모습을 대표하는 ‘기자실-기자단 체제’는 구리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거꾸로 달리고 있습니다. 출입처와 편을 먹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소비자는커녕 공급자 시각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운 언론환경 아래서 1만 3천여 개의 인터넷 매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 대다수 매체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출입처가 수두룩합니다. 대통령실과 검찰·법원 등 권력기관이 대표적입니다.

검찰 기자실, 권언유착·시대착오의 상징

검찰을 예로 들어봅시다. 신생 매체가 검찰에 출입하면서 취재하려면 기자단에 먼저 가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 출입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가입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관점에서 보면, ‘귀찮은 매체’의 진입을 기자실과 기자단을 앞세워 ‘이이제이’, ‘차도 살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검찰로서는 당연히 통제하기 어려운 다수의 기자보다 주무르기 쉬운 적당한 규모의 기자를 상대하길 원할 겁니다. 한정된 출입 기자들과 농밀한 관계를 활용해 자신들의 의도를 반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언론으로서도 ‘기자실-기자단 체제’가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검찰이 선별해 흘려준 독점 정보를 ‘단독’ ‘특종’의 문패를 달아 크게 보도함으로써 클릭 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회사나 개인의 민원 통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장동 사건의 주범 격인 김만배 씨가 검찰 출입 기자를 하면서 기사 쓰기보다 검찰 고위층과 인맥 쌓기에 힘썼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입니다. 최근 출간된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메디치, 송요훈 이도경 전지윤 지음)라는 책에 잘 나와 있듯이, 기자실과 기자단을 매개로 유착관계에 있는 검·언 공동체는 2019년 조국 몰이와 2020년 윤미향 마녀사냥과 같은 기득권 수호 합동작전을 때때로 벌이기도 합니다.

이제, 시대 흐름과 맞지 않을뿐더러 언론 소비자의 관점에서 이익보다 폐해가 큰 기자실-기자단 체제를 혁파할 때가 됐습니다. 국민 주권 정부를 자임하는 이재명 정권 초기야말로 바로 그 적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2024.5.24 [대통령실]

기자실 해체로 ‘국민 주권 정부’ 걸맞은 ‘소비자 주권 언론’ 돼야

그동안 기자실-기자단을 없애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5월, ‘취재 선진화 방안’이라는 개혁안이 나왔습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독점해 온 기자실을 모든 기자가 사용하는 브리핑룸으로 바꾸고, 각 부처의 브리핑 내용을 동영상으로 송출하는 ‘전자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투명·공평하게 개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쉽게 이 방안은, 기득권 언론이 언론자유 탄압, 취재 방해라고 생떼를 쓰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추진하는 바람에 정쟁으로 번지며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 언론계와 교감이 부족했다는 점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또 권력이 위에서 밀어붙이는 하향식으로 추진됐고, 시민들의 지지도 약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릅니다. 무엇보다 기자실-기자단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언론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큽니다. 인터넷 시대의 롱테일 상품 판매 방식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작은 매체를 합치면 소수 기득권 매체를 압도할 정도로 언론 지형이 달라질 것입니다.

기득권 언론의 반발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합니다. 이재명 정권의 대통령실이 브리핑 때 대변인뿐 아니라 질문하는 기자도 비출 수 있는 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예고했는데도 언론계의 공식 반발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라면 ‘기자를 압박해 까칠한 질문을 봉쇄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난리를 부렸을 터인데 말입니다. 정권 초기라는 점도 기자실-기자단 제도를 혁파하기에 적절합니다. 일본의 서민 재상 다나카 가쿠에이가 말했듯이, ‘정권은 정권을 잡았을 직후 가장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취재 선진화 방안’ 발전적 계승 필요

이재명 정권은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지만 언론 분야에서도 점수 따기가 매우 쉽습니다.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임 대통령 윤석열의 악행을 바로잡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후퇴했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 멈추지 말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언론개혁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저는, 노무현 정권 때 시행하려다 실패한 취재 선진화 방안을 대통령실부터 발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질문하는 기자를 비추는 카메라 설치 건도 이런 큰 그림 속의 작은 조각이 돼야 더욱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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