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우리 동네 도서관 북클럽에서 선정한 책은 <We Do Not Part(작별하지 않는다)>였다. 후다닥 저녁을 먹고 도서관 2층 콘퍼런스 룸에서 하는 모임에 자리를 잡았다. 비트윈 커버(Between Cover)라는 제목의 이 북클럽은 도서관장 크리스(Chris)가 직접 진행하는 일반 성인 독서 모임인데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한다. 지난 9월엔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Small things Like These(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고, 11월엔 서맨사 하비(Samantha Harvey) <Orbital(궤도)>를 읽는다.
"좀 많이 어려웠어...."
대부분의 참가자가 과거와 현재, 생과 사의 교차가 수시로 드러나는 시적인 산문 글이 낯설고 쉽지 않았다 고백한다. 한국어 원서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작가 한강에 대해 꽤 소상히 알고 있는 나는 진행자 크리스보다 더 많은 말을 해야 했다.
한국어 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신청해 하루 만에 받았다. 내가 사는 카운티의 78개 공공도서관은 협력 도서관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약 13만 권 이상의 자료를 보유 중이다. 그중 10%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책인데, 최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책들이 많이 들어와 웬만한 베스트셀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된 덕이다.
전에는 몰라도 상관없던 한국이란 나라의 현대사와 그 속에 숨어있는 미국 정부의 역할,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까지 책을 통해 함께 나눈다. 하드커버 표지에 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황금색 스티커가 그 권위를 더해주면서 말이다.
크리스가 준비한 오늘의 질문 11번째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얘기였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라는 말의 의미를 물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다른 멤버들을 대신해 내가 답해야 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작년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어. 최초의 아시아 여성이고 최초의 70년대생으로. 일주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렸고 한국인들은 폭력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다시 한 번 학습했지. 그리고 두 달 후 계엄이 발생했어. 본능적으로 <소년이 온다> 속 인물들을 자신에게 투영한 한국인들은 국회로 달려가고 거리로 나가 계엄에 저항했어. 그리고 현재, 그 대통령은 탄핵돼 감옥에 있어.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한국인은 위 말의 의미를 100% 체득했지. 폭력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저항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믿음을."
가장 열심인 북클럽 멤버인 안드레아는 부럽다고 했다. "아, 너네는... 대통령을... 탄핵했구나"하며. 바바라는 그게 문학의 힘이 아닌가 말한다. 그들은 젊은 작가들과 능동적인 독자들이 존재하는 한국 출판계를 더 알고 싶어 했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나라
'K'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한국 관련 콘텐츠는 확실히 큰 흐름을 타고 있다.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음식과 문학 작품 등등에서. 군사력이나 경제적 강압이 아닌, 나라 자체에 대한 매력과 호감이라는 소프트 파워가 더 큰 기세로 세계인들에게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그 정점은 지난 18일 미국의 2700여 곳에서 700만 명을 거리로 나오게 한,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이다. '세계'라는 무대에서 조명받고 있는 한국의 선택들 하나하나가 그래서 지금 더 중요하다.
전쟁으로 부서지고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울며 분노하는 나라, 불합리한 요구의 강압적 외교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의연한 나라. 정책과 행정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늘 모색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한류도 더 융성하면 좋겠다. 세계가 불안하고 위험한 2025년에 그걸 제대로 실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건 우리 국민들,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 같아서다. 아직 진정한 우리의 매운맛을 보여주진 않았다 싶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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