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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가자에서: 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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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는 살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포위된 작은 면적에 인구는 넘쳐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친절하다. 또 먹거리가 일품이고 해변이(약간 지저분하지만) 있어서 자유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민에게 준다. 또 이스라엘의 전투함이 앞바다에 수없이 떠 있는 사이로도 석양의 아름다움은 부인할 수 없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주로 아이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행상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택시를 한 번 탑승해보라. 아마 하차하기 전에 새로 만든 친구, 즉 택시기사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이다.

시장은 완전 카오스인데 실로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통혼잡시간이라고 해 봤자 UNRWA(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학교)나 바르셀로나 또는 레알마드리드 로고가 붙어있는 티셔츠를 입은 어린 학생들이 하교 후에 집에 가기 위하여 길에 쏟아져나오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난 가자의 인구가 얼마나 젊은지 깨닫는다. 밤거리도 대낮만큼 활발하다. 해변이나 카페에서 물담뱃대를 물고 시샤를 피우는 모습 아니면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쉬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즉, 가자인도 보통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해변도 삭막 그 자체다. 학교는 죽음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는 수많은 난민의 임시처소로 변하였다. 아름다운 삶의 음향이 끔찍한 사망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무인 항공기는 공중에서 감시하고 제트 전투기는 큰소리로 허공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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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몸에 국기를 두른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한 지역을 지나고 있다. ⓒAFP

 

늘 저만치에 폭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저만치'라는 말은 매우 상대적인데 바로 집 앞의 폭발로 창문이 깨지고 내 심장도 자신의 놀란 고함에 깨질 수 있다. 순간적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죽었다는 소리 아닌가. 이런 일이 하루에 수없이 반복되고 결국은 지쳐서 집안 한 어두운 구석에 몸을 구겨 부근에 계속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이 자신을 못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가자의 주민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다시 한 번 받고 있다. 6년 사이에 세 번째다. 미사일이 민간인의 집을 맞추면서 온 가족이 단번에 사라진다. 한꺼번에 식구 25명이 죽은 사례나 또 다른 가족에서 18명이 비슷하게 사망한 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이유도 없이 가장 가난하고 사람이 들끓는 지역에 퍼붓는 끊임없는 폭탄 세례와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구급차나 민간보호단체의 접근을 막는 그런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민간인은 겨냥하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측은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만약에 정상인이라면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군."이라고 말이다. 이스라엘은 최첨단의 정교 무기로 현재까지 약 1,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중에 80%가 민간인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추측한다. 그 중에 약 200명이 어린아이인데 그들 일부는 목이 잘리고 내장이 터지고 완전히 까맣게 탔다. 또 한 NBC 기자 아이먼 모헤딘은 이스라엘 전투함이 쏜 미사일을 맞은, 해변에서 놀던 바쿠르 가족의 어린이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또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대학살의 현장 알 슈자이예(Al Shujayah)에서는 사건 후 잃어버린 사촌 형제를 그 잿더미에서 찾겠다고 헤매며 돌아다니던 젊은이 하나가 저격수의 총알을 맞고 죽는 비극에 비극을 더 하는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무인 항공기는 아침 식사로 요거트를 사러 나온 아리프 가족의 두 형제를 미사일로 죽였다. 또 닭과 비둘기 먹이를 주러 자기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어린아이 셋도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수천 톤의 폭탄을 떨어뜨린 이스라엘의 무력에 희생된 사람들은 아래 또 있다. 한 번의 공습으로 아부자메 가족의 26명이 죽었다. 알 나자 가족은 20명을 잃었고 알 바치 가족은 18명알 카사스 가족은 9명, 알 케일라니 가족은 7명, 카와레 가족은 8명, 하마드 가족은 5명, 등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안락한(?) 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거다.

휴전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마스 쪽에서 대포 발사를 중단한다면 이스라엘도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지속적인 폭력을 중단할 것인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말로는 뭐라고 하던 현실은 팔레스타인 측에서 무력항의를 중지한다고 이스라엘이 이 지역 점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포위되었던 유대인들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다 죽겠다."고 하였었다. 현재 게토에 포위되어있는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보편적인 개념을 참 잘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정복을 반대하는 자세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고 또 존엄성 속에서 죽는다.

우린 전쟁에 지쳐있다. 적어도 나는 피의 장막과 죽음, 그리고 온갓 파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뿌리 깊은 부당한 예전의 상태로(Status quo) 돌아간다는 것은 더 받아드릴 수 없다. 더는 이 야외 감옥에 존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두 죽음의 사이에.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한 죽음과 이스라엘이 가자를 가로막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말이다.

아무 때나 가자를 들락거릴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 학생이라고 왜 원하는 해외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없느냐 말이다. 가자 바깥에서의 치료를 막는 이스라엘 때문에 주민들이 죽는 게 말이 되는가? 어업 종사자들은 총에 맞아 죽임당할 걱정 없이 바다에서 일하고자 한다. 물과 전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의 땅만 점령한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운명까지 점령하려고 한다. 이런 불합리는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 이 글은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Mohammed Suliman가 허핑턴포스트US에 기고한 블로그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 From Gaza: I Would Rather Die in Dignity Than Agree to Living in an Open-Air Prison

가자지구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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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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