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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유사시의 사드기지훼멸까지 언급하는데

[정문일침99] 중국은 유사시의 사드기지훼멸까지 언급하는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8/02 [00: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중국 둥펑-21D, DF-21D 대함 탄도미사일,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정밀도와 요격회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중국에서 자랑하는 미사일이다. 실제 미국에서 이 미사일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자주민보

 

 [위 동영상은 둥펑-21D DF-21D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미 항공모함을 타격하는 장면이다. 우주공간까지 올라갔다가 중력가속도를 더해 매우 빠른 속력으로 항공모함의 다층방어체계를 모두 무력화시키고 타격할 수 있는 무기라고 중국은 자랑하고 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 사드와, SM3 요격미사일 회피기동과 저고도 진입시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위의 동영상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래픽이기는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실제 이 미사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런 미사일을 사드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런 미사일로 사드 기지 자체를 타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 현재 중국의 군사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자주시보 편집국]

 

한국 국방부가 성주군민을 상대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놓은 자료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음을 국민의당이 1일 지적했다 한다. 국방부가 성주군 사드대책위가 박지원 비대위원장에게 전달한 사드 전자파 관련 책자에 “현재 국내에서 사드레이더와 유사한 출력으로 운용 중인 2종류(그린파인, 패트리엇)의 레이더에 대한 인원통제 구역 내 전자파 강도 측정(2016. 7. 14.) 결과는 인체 보호기준의 약 3~5% 수준으로 매우 낮게 측정돼 레이더의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기재돼 있다는 게 문제로 되었다.

 

내용자체야 사드안전성타령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희한할 것 없는데, 문제는 7월 13일에 내준 책자에 “측정(2016. 7. 14.) 결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가 시간여행기계를 만들지 않은 이상 엄연한 오류지만 글쎄 이런 정도는 오타나 실수로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떤 기사들은 읽다가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상해질 지경이라, 한국의 교육상황과 언론계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예컨대 이런 기사제목이 최근 나왔다.  
“물에 빠진 아들 구하다 아버지·큰아버지 숨져” 
아들과 아버지는 물론 관계가 성립되지만, 아들 뒤에 큰아버지가 붙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아들”을 “아이”나 “소년” 혹은 “소녀”로 바꾸면 말이 된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쓰는지 잘 모르겠다만, 중국에서 우리글을 배우고 쓰는 필자로서는 누가 위의 식으로 글을 쓴다면 빵점을 줄 것이다. 하기야 대통령부터 “박근혜 번역기”라는 것이 나와서 제법 인기를 끌 지경으로 한글파괴자 역할을 톡톡히 하니까, 어느 언론의 어느 기자들이 이상한 제목을 만들고 편집들이 그런 제목을 통과시키는 것 쯤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러다가는 논술시험의 채점기준자체가 바뀌지나 않을까? 공연히 걱정스럽다.

 

어찌 보면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개념의 오류와 논리의 빈약함, 그리고 역사지식의 빈곤에 뿌리가 있다. 한국군의 장성이었고 무슨 박사칭호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본 적 있다. 사드배치지역이 정해지기 전에 그 사람은 사드를 백령도에 배치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면 평양에서 쏘는 미사일을 손금 보듯 하고 즉시 요격하여 평양상공에서 미사일들을 떨어지게 할 수 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이 미사일을 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리라는 게 골자였다. 
그 글만 보면 참으로 신통방통한 아이디어다. 혹시 그 사람은 지금도 성주배치결정이 불만스러워 백령도에 배치한다면 공연한 쟁의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간과한 게 참 많다.

 

우선 백령도는 6. 25전쟁시기부터 대북감시와 정보활동의 중요한 기지로서 상당수 인원들과 장비들이 투입되었는데, 전쟁기간에 빼앗겼다. 단 휴전담판을 하면서 백령도와 근년에 조선(북한)에서 최고지도자들의 방문으로 굉장히 유명해진 초도를 맞바꾸었던 것이다. 쌍방이 전략상 필요해서였다. 수비자의 심리로서는 한 번 빼앗겼던 곳은 다시 지키기 어렵고, 공격자의 심리로서는 한 번 빼앗았던 곳을 다시 빼앗기는 쉽다.

 

둘째로 1950년대의 보병무기를 위주로 하던 여건으로도 북측에서는 백령도탈환을 성사시켰는데, 이제 와서 방사포를 비롯한 수두룩한 무기가 즐비한 상황에서 사드가 감지할 수 없는 저공비행무기로 백령도를 초토화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다. 사드배치지점을 결정하면서 북의 신식방사포사격거리를 벗어나는 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던 걸 그 사람은 잊었는가 아니면 몰랐는가 아니면 무시했는가?

 

셋째로 백령도에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간단한 밥이라는 걸 홀시했다. 반도의 어느 위치에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중국의 반격능력으로는 얼마든지 초토화할 수 있지만 바다 속의 섬 하나는 육지의 목표보다 훨씬 다루기 편한 목표가 아니겠는가?

 

8월 1일 중국은 《인민일보》 해외판에서 이름난 반도문제전문가(한국 매체들이 가끔 올리추는 듣보잡이 아니라 진짜로 이름난 전문가) 푸단대학 국제문제연구원 부원장, 교수 선딩리(沈丁立)의 글 “한국의 사드 배치는 종당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韩国部署“萨德”终将得不偿失)“을 발표하였는데, 관점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 없으나, 당보가 국내전문가의 견해를 내보내는 건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날 《인민일보》 산하의 한국식으로 말하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지상토론을 발표했으니 제목은 “사드 때문에 중국은 어떻게 한국에 ‘보복’해야 하나(因为“萨德”,中国应如何“报复”韩国)“였다. 《환구시보》가 중국언론들 가운데서 지금까지 사드와 관련하여 제일 멀리 앞질러 나갔음은 필자가 어느 글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전문가들에게 지면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군대신문인 《해방군보》보다 훨씬 강한 주장들을 쏟아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연구사 양시위(杨希雨), 푸단대학 국제문제연구원 상무부원장 우신버(吴心伯), 푸단대학 조선한국연구센터 주임 정지융(郑继永), 군사과학원 중미방어사무관계연구센터주임 짜오샤오줘(赵小卓), 이렇게 네 사람이 사드문제를 놓고 왜 반드시 “보복”해야 하는가, 필요할 때에는 사드훼멸타격을 가한다, 한국이 경제무역징벌의 아픔을 맛보게 해야 된다, 엄하게 한국과 미국을 비판하는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합쳐서 사드를 반대할 수도 있다 등등 주장을 밝혔다. 시간과 정력 때문에 전문을 옮기지는 못하고 원문을 아래에 첨부하는데, 군사전문가로서 짜오샤오줘가 한 발언만 옮겨본다.

 

“사드에 대해 중국은 반드시 여러 가지 수단으로 경계하고 역제압(反制, 거꾸로 제압)한다. 예컨대 전자전을 발동하여 사드의 조기경보와 미사일유도레이더에 강력한 전자장애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 스텔스기술 등을 이용하여 미사일의 방어돌파능력을 제고하고 중단이나 말단에서 기동적인 궤도변화 등 방식을 취하여 사드의 운동에너지요격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때에는 순항미사일을 사용하여 사드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위에 말한 것은 현역무기장비의 사용법에 제한되었을 뿐인데, 만약 발전의 시각으로 보면 사드를 역제압할 수단은 더욱 많아진다. 중국은 지금까지 이미 7차례 10마하 초고음속미사일시험에서 성공했다. 그와 비슷한 신형무기들이 실전배치되면 사드를 포함한 현존 미사일방어체계들이 하룻밤 사이에 시대에 뒤떨어지고 만다.”

 

▲ 둥펑 21-D 미사일이 우주공간에서 고고도 요격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보조 로켓을 가동하여 비행 궤도를 변경하는 모습     © 자주시보
▲ 고고도 미사일을 빗나가게 하는 중국의 탄도미사일 회피 기동     © 자주시보


 

▲ 대기권에 진입하여 종말 단계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자 둥펑-21D 미사일이 궤도 변경 보조로켓을 점화하여 방향전환을 하는 모습     © 자주시보
▲ 패트리어트 미사일 회피에 성공하는 둥펑21-D     © 자주시보

 

중국을 깔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허풍이라고 여기겠다만, 짜오샤오줘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으며 전망이 있다. 그의 신분을 참조해보면 개인적인 돌출발언만으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국방장관은 사드가 잠수함발사미사일까지 발견하여 요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말을 고스란히 믿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혹시 중국이 고성능레이더를 무력화시키는 전자탄실험을 직접 한국인들에게 보여줘야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발언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나서는 언론매체 급도 올라가는 추세다. 한국인들도 정세변화를 정확히 알기를 바라서 일부 사람들이 반감을 가질 수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중국관영매체의 보도를 그대로 전한다. 중국은 한국과 수교한 국가로서 반국가단체가 아니고 지금까지 한국의 공식서류에서 적으로 규정하지도 않았으니까, 필자의 이런 소개가 “이적행위”에 꼽히지는 않을 것 같고, 국가보안법에도 걸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첨부: 因为“萨德”,中国应如何“报复”韩国

 

为什么必须“报复”韩国

 

杨希雨(中国国际问题研究院研究员):韩国政府接受部署“萨德”,无视过去长时间以来中国政府从官方外交和公共外交等多渠道苦口婆心的劝告与磋商。部署“萨德”并非韩国所谓的保护自身安全问题,而是一个完全倒向美国的战略选择。事实上,美国在韩部署“萨德”的真正目的是保护美国驻韩军事基地以及美军未来在朝鲜半岛登陆地带的安全。韩国政府明知这个事实,但它欺骗本国民众,搪塞中国这个战略合作伙伴,损人而不利己。
吴心伯(复旦大学国际问题研究院常务副院长):第一,韩国只考虑自身所谓安全利益,没能适当顾及中国安全利益。第二,它没有顾及中韩关系大局。最近几年中韩关系发展良好,中方为此付出巨大努力。另外中国在朝鲜半岛问题上也做出重要贡献,韩国显然也没把这一点考虑进去。第三,韩国此时决定部署“萨德”有乘人之危嫌疑,有点“从背后捅中国一刀”的意思。在东方文化中,乘人之危是让人厌恶的小人行为,韩国这样做不仁不义。作为主权国家,韩国声称出于所谓国家安全考虑做出部署“萨德”的决定,那么同理,中国也有基于自身国家安全考虑对“萨德”做出反应的权力。
郑继永(复旦大学朝鲜韩国研究中心主任):韩国接受部署“萨德”反导系统的危害极大:一、打破中美俄之间的战略平衡,引发东亚秩序重新布局,这个过程将把东亚带入大国对决的悲观局面。二、朝鲜半岛“无核、不战、不乱”局面与目标将不复存在,战争风险高度上升。朝鲜半岛本来就是“停战”,而部署“萨德”可能“扰醒”这种战争休眠状态。三、对中国而言,韩国如此无视中国安全利益,以美国“枪头”的身份恣意部署“萨德”,如果不对其行为给予严厉惩罚和制止,则未来周边国家对中国国家利益的挑战或将变本加厉。出于以上考虑,中国必须对韩国的行为予以强力反击。

 

必要时对萨德进行摧毁性打击

 

杨希雨(中国国际问题研究院研究员):既然韩国我行我素危及中国国家安全,那么中国在军事上也不能软,至少要针对“萨德”做好以下工作:一是加强对“萨德”反导系统配套的X波段雷达的干扰和监视;二是加强自身反导能力建设,同时加强战备,保证能在战时的第一时间打掉美韩前沿反导系统的雷达系统。到那时候,我们无须再顾及中韩关系,因为保护自身国家安全是每个国家必须做的,这也符合国防透明度规律,即当对方挑起对抗,我必有所回应。
吴心伯(复旦大学国际问题研究院常务副院长):“萨德”一旦在韩部署,中国就需重新评估来自朝鲜半岛的对中国国家安全的威胁。在军事上反制“萨德”入韩,中国需把平时和战时都考虑进去。平时,要把“萨德”尤其是其雷达监视和情报收集对中国的影响降到最低限度,对雷达对我覆盖范围内的军事部署和战略目标做出相应调整和保护。战时,则要考虑在必要时对“萨德”本身进行摧毁性打击,不能让它成为威胁中国安全的平台。
赵小卓(军事科学院中美防务关系研究中心主任):对于“萨德”,中国必以多种手段予以防范和反制。比如,可发动电子战,对“萨德”的预警和制导雷达实施强烈电子干扰。再如,借助隐身技术等提高导弹突防能力,采取中段或末端机动变轨等方式,欺骗“萨德”的动能拦截器。又如,必要时可使用巡航导弹对“萨德”部署基地进行打击。以上说的还只是如何使用现役武器装备。若从发展的角度看,反制“萨德”的手段还会更多。中国至今已7次成功试验10倍音速的超高音速导弹,类似新型武器若服役,将使包括“萨德”在内的现有反导系统一夜过时。

 

让韩国尝到经贸惩罚的苦头

 

郑继永(复旦大学朝鲜韩国研究中心主任):对韩发起经贸惩罚可以直接影响韩国民众和社会,进而让韩国政府尝到苦头。“萨德”问题关乎中国国家安全利益,我们要向韩国表明不惜让中韩经贸“硬着陆”也要反制“萨德”入韩的意志和决心,直接在游客入韩、技术性壁垒限制等领域采取行动,让韩国民众感受到经济不景气带来的寒意。而若韩国未来在“萨德”问题上采取有诚意的举动,相应措施将会放松或解除。
同时,还要在地方层面对韩国进行定向制裁,将双边友城、经贸关系、人文交流暂时搁置。另外韩国的财阀政治与大企业对政治影响明显,因此对相应企业与团体也须做出制裁。对与“萨德”总承包商洛克希德·马丁公司有关联的韩国退役将军及其企业,以及三星、现代等军工企业,均可进行定点制裁,限制这些企业在华经营活动并将这些压力传导至韩国政府。
吴心伯(复旦大学国际问题研究院常务副院长):经济反制首先会从民间层面体现出来。比如,现在韩国是中国游客最重要的海外目的地之一,但“萨德”进入后将引起中国民众不满,中国游客可以“用脚投票”的方式抵制韩国游。事实上,这个事情已在慢慢发生,这是民间自觉行为。再如,韩国现在非常看重中国市场。但以后韩国化妆品甚至韩剧等门类产品出口到中国后,很可能遭到中国消费者抵制,这也将是民间自发行为。
而在政府层面,虽然暂时不会对中韩自贸协定做出重大调整,但中国一定会放缓或搁置经贸领域一些重要磋商,甚至包括韩方与“一带一路”对接的一些重大项目都将面临重新评估。

 

在国际舆论上严厉揭批韩美

 

杨希雨(中国国际问题研究院研究员):韩国既不顾及中国这个战略合作伙伴也对本国安全弃之不顾,完全输了道义,中国有必要在国际舆论上严厉揭批韩国这种逆道义而行的做法。事实上,韩国过去曾考虑引入以色列“铁穹”反导系统,鉴于以色列与韩国在防务方面的相似性,“铁穹”系统对韩国的适用度高达90%。但就是为追随美国,韩国弃“铁穹”不用而选择根本不能保护自身安全的“萨德”,这真可谓“司马昭之心路人皆知”。
“萨德”问题已经无可避免地摧毁中韩互信、伤及双边关系。既然如此,中国可以切断与韩国在朝核问题等方面的合作。坦白来说,中国完全可以承受不与韩国在地区问题上合作,但对韩国而言,这种代价则将不可承受。这种状态持续时间越长,韩国遭受的损失也将越大。
郑继永(复旦大学朝鲜韩国研究中心主任):韩国现在貌似突然做出部署“萨德”决定,但实际上它早已确定部署方针,只是在等待时机。这种外交欺诈严重损害中韩外交互信与默契。朝核问题的根源与起点在美国、朝鲜和韩国,中国在此问题上承担大国责任,在历次会谈中与各方坦诚相见,积极提供方案。朝鲜第四次核试后,中国完全履行联合国对朝制裁相关决议,有效阻止朝核问题进一步发展。而韩国却将部署“萨德”的原因归结于中国在阻止朝鲜核计划方面行动迟缓,这种转嫁责任的做法令人无法接受。朝鲜半岛无核化是一个目标和过程,而不是前提条件,对此需有耐心与智慧。中国必须向国际社会重申这个道理,并让韩国的外交欺诈大白于天下。

 

不排除中俄联手应对“萨德”

 

杨希雨(中国国际问题研究院研究员):在韩部署“萨德”是美国下的大棋,表明它正试图以所谓朝核问题为借口,把在欧洲对俄罗斯做的事情在中国周边再做一遍。对此,我们首先要在中美相关渠道对话中旗帜鲜明、先发制人地提出美国不能在东亚复制一套欧洲反导体系。其次,以法律形式对有关“萨德”系统的问题作出严格限制。再者,通过加快军事科技创新来缩小同美国的军事差距,比如发展自己的超高音速打击武器,或是另辟蹊径发展更加智能化和具备远程攻击能力的无人机系统,让美国耗时耗资建立的全球反导系统沦为21世纪的“马奇诺防线”。
吴心伯(复旦大学国际问题研究院常务副院长):美国在韩推进部署“萨德”不可能不影响中美在朝鲜半岛问题上的协调与合作,中国今后会更多从自身国家安全利益的角度衡量并制定半岛政策。另外,由于“萨德”对俄罗斯也是一种战略威胁,因此不排除中俄未来联手应对美国在东北亚地区战略举措的可能。美国自上世纪90年代后期开始就在全球推动部署导弹防御系统,这对中俄来说都是重要战略威胁。
赵小卓(军事科学院中美防务关系研究中心主任):在中美关系上,美国犯过一系列战略错误。比如1996年台海危机,美在附近部署两艘航母,本想威慑中国,但却“提醒”中国大力发展“反介入/区域拒止”能力,使危机期间美国航母进入第一岛链冒越来越大风险。可以肯定地说,这次美国又在犯战略错误,可能“提醒”中国将武器装备发展重心转向中美脆弱的战略力量平衡,最终将使美国不仅在半岛、而且在西太平洋的整个导弹防御系统都形同虚设。美国每次“提醒”的过程,都是中国找准“撒手锏”突破口的过程,也是中美军力差距不断缩小的过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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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평화도 없는 정전협정 63년, 대성동마을 63년

[친절한 통일씨] 비무장지대 유일 민간인 거주지, 대성동마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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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1  1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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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동마을에서 본 개성, 기정동마을, 개성 송악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생겨나 2016년 1월 기준 49세대 20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비무장지대 남측 유일의 마을인 대성동마을.

마을에서 군사분계선까지의 거리는 400m에 불과하다.

한 여름 땡볕이 내려쬐는 7월, 육안으로 보이는 제방 너머에는 과거 인삼농사 지어 팔러 다니던 개성도, 마실 다니던 기정동도 여전하다.

조금만 눈길을 멀리 하면 넘실대는 머릿결처럼 낮은 산자락이 이어지면서 고려 황성을 품었던 개성 송악산도 볼 수 있다.

비록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긴 해도 대성동 마을회관 옥상에서는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기정동 젊은 처녀와 논두렁에서 참을 먹고 있는 농군들의 모습도 선명하다.

평범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이 마을에서 아쉬운 건 건너편 동음을 멈춘 개성공단 만이 아니다.

99.8m에 달하는 국내 최고 높이의 대성동마을 국기게양대(태극기 크기 가로 19m, 세로 12m)와, 맞대결하듯 올라간 건너편 기정동마을 165m 높이의 북한 국기게양대(국기 크기는 가로 30m, 세로 15m)는 모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과는 거리가 먼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대남 확성기 방송 소리, 남쪽을 등지고 북쪽을 향해 지어진 주택들, 논농사를 지으러 나갈 때마다 유엔군사령부 소속의 민정반 군인들과 함께 나가야 하는 특이한 모습 등은 대성동마을에 드리워진 63년의 휴전상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엔 전쟁도 없지만 평화도 없고 승리나 패배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대성동마을 63년은 정전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분단 63년의 역사와 닮은꼴이다.

지난 1960년 지어진 마을 ‘공회당’을 리모델링해 지난 4월 개관한 대성동 마을기록전시관의 문을 열면 첫 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다.

“대성동마을은 강릉김씨 집성촌으로 우리나라 여느 마을이 그러하듯 특별하거나 대단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삶과 기억을 공유하고 마을 공동체의 문화와 가치를 소중히 가꾸어온 전통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인삼 농사 지어 개성으로 팔러가고, 이웃 마을 기정동으로 마실가던 평범한 대성동마을은 1950년 6.25전쟁 이후 ‘DMZ 비무장지대’라는 낯선 분단의 공간속에 갇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특별한 마을’이 되어 버렸다.”

   
▲ 김동구 이장이 대성동마을기록전시관 내 공회당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53년 7.27 정전과 대성동마을의 시작

1950년 한국전쟁은 개전 후 3년 1개월, 회담 시작 후 2년 17일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그 마침표를 찍었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 ‘사민(私民)의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협의’를 근거로 DMZ내 남측 대성동마을과 북측 기정동마을을 각각 ‘자유의 마을’과 ‘평화의 마을’로 명명하고 존속시킴으로써 대성동과 기정동은 DMZ내 남과 북의 유일한 민간인 마을로 남게 되었다.

1953년에 30세대 160명을 시작으로 1972년에 31세대 195명, 1980년에 38세대 236명에 이어 2016년 1월 현재 대성동 마을에는 총 49세대 207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총 948필지(4,800km2)의 농지에서 벼, 콩, 고추 등을 재배하는 농업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고 있으며, 지금은 마을공동사업으로 인근 임진강에서 잡히는 참게장과 청국장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의 수에 큰 변화가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성동마을은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 부분에 대한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지도록 한 정전협정 제10항에 따라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는 유엔사의 관할 하에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이 때문에 외지 여성이 대성동마을로 시집은 올 수 있는데 남성이 이 마을로 장가오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 대성동국민학교 교사와 학생-1966년. [사진출처-대성동마을기록전시관]

또 대성동마을은 거주권 심사가 까다로워서 주민들은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타지로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연 8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주민 자격이 상실된다.

대성동마을에 유일한 교육시설인 대성동초등학교는 인가 이듬해인 1969년부터 최근까지 47회의 졸업식을 거행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불편이 적지 않다. 민정중대가 매일 저녁 7시에 가구별 인원을 점검하고, 주민들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고 한다. 외부인들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과거 대성동마을 주민들의 외부 출입. [사진출처-대성동마을기록전시관]

과거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DMZ 사령관이 발행한 패스를 발급받은 후 매주 목요일 미 제1기병사단에서 제공하는 트럭 2대를 이용해 파주 금촌시장에 나가 농산물을 팔아 생활용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 트럭은 매주 목요일에 나가서 다음 주 목요일에야 다시 대성동에 들어왔기 때문에 주민들은 한번 파주로 나가면 일주일이 지나서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을 듯 싶다.

   
▲ 대성동마을 개발사업 공사-1981년. [사진출처-대성동마을기록전시관]

최근 노후 주택 개보수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대성동마을은 1959년 조성된 이래 1972년과 1979~1980년 1,2차에 걸친 종합개발을 통해 건축물들을 신축했는데, 당시 건축물들을 대장에 등재하지 않아 거주 주민의 주택 소유권이 없어서 주택을 보수할 수 없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통일맞이 첫마을 대성동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노후 주택 개보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민통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남과 북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이 그어지고 이를 경계로 남북으로 각각 2km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가 설정되었다.

군사분계선에는 한글과 영어로 ‘군사분계선, MILITARY DEMARCATION LINE’이라고 쓰인 푯말이 1,292개 세워져 있다.

서쪽 임진강 하구 정동은 군사분계선 표지물 제 0001호가 꽂혀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시작된 군사분계선의 마지막 표지물 제 1,292호는 동해안 고성 동호리에서 끝이 난다.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적대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정전협정 제1조 1항)

   
▲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의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표식. [사진출처-위키피디아]

DMZ는 폭 4km(남쪽 후방 2km, 북쪽 후방 2km), 길이 155마일(248km), 면적 약 6천4백만평(한반도 전체의 0.5%)의 광대한 구역으로,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출발해 6개의 큰강과 1개의 광야, 2개의 산맥을 넘어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의 동호리까지 이어진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2km 위의 비무장지대 경계선을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2km 아래 경계선을 ‘남방한계선’(SLL)이라고 한다. NLL과 SLL에는 철책이 처져 있고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북측은 '민경대'(民警隊), 남측은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양쪽 모두 무장 군인들이다.

1963년부터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북 양측의 무장 군인들이 상시 주둔하는 전방 감시 초소(GP)가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일부 GP와 GP 사이에는 '추진철책'이라는 이름의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사민이나 비무장지대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정전협정 제1조 9항)

시간의 흐름과 함께 NLL과 SLL은 각각 북과 남으로 이동해 지금의 DMZ 실제 폭은 4km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면적도 적어졌다. 그러나 DMZ보다 두터운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이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10km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민간인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 CCL, 민통선)은 DMZ 남방한계선 남쪽 5~20km되는 지역에 설치한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선이며, DMZ 남방한계선과 민통선 사이의 지역(바다 제외)을 따라 띠처럼 형성된 지역을 민간인통제구역이라 한다.

민통선은 1954년 2월 미 8군이 군사시설 보안 등을 목적으로 민간인의 경작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설정한 귀농선(歸農線)에서 시작되었으나, 1958년 6월 한국군이 휴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면서부터 군 작전 및 보안상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이 허가되었고, 귀농선은 민간인통제선(민통선)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에서는 군사 작전 및 보안 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민간인의 영농을 위한 토지 이용이 허용되지만, 경작권을 제외한 토지소유권의 행사, 지역 내의 출입과 행동 등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국가안보상의 필요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2008년 9월 군사기지 및 시설보호법에 의거 민통선은 ‘군사분계선 10km’ 이내로 축소되었다.

인천 강화, 경기도 김포·파주·연천,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3개 시·도, 8개 시·군, 213개 리가 민통선 띠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는 파주 2곳(통일촌, 해마루촌), 연천 1곳(황산리), 강원 철원에 6곳(철새마을, 이길리, 정연리, 통일촌, 생창리, 마현리) 등에 정착촌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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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를 만나랴거든 공부를 통하야 한울길로 오라”

<홍암 나철 100주기 ①> 도제사언문을 찾아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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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1  08: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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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 100주기 연재를 시작하며

홍암 나철과 대종교, 항일무장투쟁 외에 우리 사회에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민족종교지만 우리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큰 인물과 중요한 종교다.

국조 단군과 국시 홍익인간, 국기 단기, 국전 개천절을 재정립한 홍암 나철과 대종교는 우리의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판과도 같다. 서일, 김좌진의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항일무장세력의 본거지로 10만의 순교자를 낸 것은 물론 주시경, 이극로, 신채호, 박은식 등 국어와 국사 운동의 출발도 홍암 나철과 대종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과정에서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살아있다) 기치 아래 외교, 테러, 교육, 종교, 무장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웠고, 마침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았다.

1916년 추석인 음력 8월 대보름, 홍암 나철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교한 지 100주기, 독립운동의 아버지이자 국학의 스승, 민족종교의 중흥자인 그의 발자취를 따라 벌교에서 서울, 도쿄를 거쳐 화룡, 영안, 밀산 등을 순례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군국주의화, 미국의 노골적 패권 재구축이 맞부딪치고 있는 격변의 시기에 홍암 나철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할 이유는 충분한다. 구월산 삼성사에서 이 순례를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필자 주

 

   
▲ 홍암 나철 100주기 첫 순례길 벌교 생가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딸에게 남긴 친필 유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열네해동안 네 얼굴을 못 보고 오늘 천고영별은 네 마암에 매친 한이 잇슬듯 하고 내눈에 항상 걸일듯 하나 이 길은 곳 영생하는 한울길이니 부대애회를 두지 말고 아비를 생각커든 대종교 큰 도를 정성으로 밋고 아비를 만나랴거든 공부를 통하야 한울길로 오라 임종에 두어자 유탁 잇지 말라. 친부 자필”

스스로 ‘한오리 목숨을 끊음’에 앞서 딸에게 보내는 유서에는 아비로서의 ‘애회(哀懷)’가 묻어나지만 ‘한울길로 오라’는 큰 당부도 담겼다.

홍암 나철(弘巖 羅喆, 1863~1916),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 음력 8월 보름,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제천의식을 가진 뒤 시자들을 물리치고 ‘절식수도(絶食修道)’에 들어가 유서 여러 장을 남기고 스스로 숨을 멈췄다.

다섯 아들에게 준 유서에 “너의 무리 가운데 혹시 내 뜻을 이어서 몸을 종문에 바치는 자가 있으면 참으로 내 아들이다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마지막 바람은 실제로 1942년 임오교변으로 중국 목단강 액하감옥에서 순교한 임오십현(壬午十賢)에 맏아들 정련, 둘째아들 정문이 포함됨으로써 실현됐다.

최후의 항거수단 자결, ‘스스로 숨을 멈추다’

   
▲ 1916년 음력 8월 초 닷새, 경성역을 출발해 사리원역에 도착한 홍암 나철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미 순명을 결심한 상태였으리라. [사진출처 - 대종교]
   
▲ 사리원역 앞 대기사진관에서 시자들과도 사신을 남겼다. 앞줄 왼쪽이 김두봉.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홍암 나철의 죽음을 되돌아보는 것은 단지 그의 비감한 가족사를 떠올리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대종교를 위하여, 한배님을 위하여, 천하를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해 순명(殉命)했기 때문이다.

“순명하신 자취를 살피면 (북쪽을 향하여) 곧바로 누워서 두 손을 드리웠으니 시체(尸體)를 거두지 아니하였으되 머리로부터 발까지 곧기가 먹줄을 놓은 것 같은지라. 어리석은 생각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얼이 되시지 않고는 이렇게 될 수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일본헌병대 의사가 와서 살피고 저희끼리 말하기를 『그 목숨 끊음을 연구하건대 아무런 물건도 쓰지 않은 것을 증변(証辨)할 수가 있으니 참으로 선생님, 참으로 선생님이시다』라고 공경하며 탄식하더라 합니다.” (홍암신형조천기, 96쪽)

대종교(大倧敎)에 대한 일제의 극악한 탄압에 맞선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自決)을 선택한 것도 한 인간으로서 결행하기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폐기 절식(閉氣 切息)’이라는 자결 방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폐기 절식은 쉽게 말해 숨을 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한다. 대종교의 삼법수련 중 호흡법에 해당하는 조식법(調息法)이 높은 경지에 이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종교의 항일무장투쟁 책임자였던 백포 서일 역시 폐기 절식으로 자결했다는 것이 대종교의 입장이다.

우리 전통 수련법에 조예가 깊은 한 인사는 “숨을 참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도록 하는 근원적인 기관을 닫는 것”이라며 “우리 역사상 그 같은 경우는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방문을 잠근 뒤에는 먹(墨)가는 소리밖에

   
▲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삼성각. 2003년 개천절, 남북해외 대표단은 평양 단군릉에서 천제를 지낸 뒤 삼성사를 찾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863년 전남 보성군 벌교읍(당시는 순천시 낙안면) 금곡부락에서 태어난 나철은 과거에 급제해 공직생활을 하다 스스로 물러나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4차례 일본을 방문해 외교활동을 벌이고, 을사5적 처단투쟁을 벌이다 실패한 뒤 1909년 단군교(2010년 ‘대종교’로 개칭)를 중광(다시 일으킴)한 뒤 8년만인 19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단통치의 도를 더해가던 일제는 191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3호 ‘포교규칙’을 공포해 대종교를 철저히 불법화하고 탄압했다. 일본 신도(神道)를 퍼트려 식민통치를 완성하려는 일제에게 우리민족 고유의 신교(神敎)와 단군을 내세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는 대종교는 그야말로 양립불가능한 눈엣가시였던 것.

대종교의 도사교(교주)인 홍암 나철은 1916년 음력 8월 4일 김두봉, 엄주천 등 시자들을 대동하고 수백 교우들의 환송을 받으며 경성역을 출발해 사리원역에 도착했고, 사리원역전 대기(大崎)사진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자결을 결심한 행동이었으리라.

구월산 삼성사에 도착한 홍암 일행은 쇠락한 삼성사를 수리했다. 단군이 승하한 곳으로 알려진 상섬사(三聖祠)는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사당이지만 돌보는 이가 없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홍암은 추석인 음력 8월 대보름에 천제를 지낸 뒤 시자들을 물리치고 수도에 들어갔다.

“말씀을 마친 종사는 사당옆 언덕에 올라서 북쪽과 남쪽을 향해 망배한 후 곧 수도실로 들어가시어“자(自)금일 상오3시위시 3일간 절식수도 절물개차문(切勿開此門)”의 21자를 써서 문중방에 붙이고 안으로 방문을 잠근 뒤에는 먹(墨)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익(翌) 16일 상오 5시경 겹친 피로에서 깨어난 시자들은 늦잠 잔 것을 걱정들 하면서 수도실에 나아가니 고요하고 아무 동정이 없거늘 의아하게 생각 하고 “선생님”을 네번이나 불렀으나 응답이 없는지라 불안한 예감에 급히 문 을 떼고 들어가 보니 종사께서 미소를 띠운 얼굴로 손, 발을 펴시고 반듯 하게 누우시어 조천하신지 이미 오랬고 책상에는 여러개의 봉한 글월과 봉하지 않은 유서 두장이 있었다...” (홍암신형조천기, 44~45쪽)

“날이 저물고 길이 궁(窮)한데 인간이 어데메뇨?”

   
▲ 홍암 나철이 순명 조천한 삼성사 삼성각 내부. 지금은 단군을 가운데 모셨고, 좌우에 환인, 환웅을 모셨다. 당시 홍암은 환인을 가운데 모셨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홍암 나철만큼 극적인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이도 드물겠지만, 그만큼 많은 유서를 남긴 이도 거의 없을 것이다.

대종교의 법통을 이을 무원 김종헌 종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비롯해 따로 봉하여 신규식에게 전달케 한 <순명삼조> <전수도통문> <밀유> <공고교도문> <유계장사칠조>가 있고, <이세가> <중광가> <일본총리 대외에게 준 글> <조선총독 시내에게 준 글>이 있다.

또한 개별적으로 <집안에 준 글> <소운 황병욱에게 준 글> <보본 엄주천에게 준 글> <유증: 무원종사에게 보낸 유서> 등이 있다.

홍암 나철은 <순명삼조(殉命三條>에서 “한 오리 목숨을 끊음은 대종교를 위하여 죽는 것이다”, “한 오리 목숨을 끊음은 한배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한 오리 목숨을 끊음은 천하를 위하여 죽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신도들에게 준 <공고교도문(恭告敎徒文)>에서는 “나라 땅은 유리쪽으로 부서지고 티끌모래는 비․바람에 날렸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窮)한데 인간이 어데메뇨?”라고 한탄하고 “내가 간 뒤에 대종교의 일은 오직 여러분 형제자매의 힘씀으로써 이 세상에 행복될 것을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밀유(密諭)>에서는 “삼법(三法)을 힘써 행하여 욕심 물결의 가라앉음을 도모하며, 한 뜻을 확실히 세워 스스로 「깨닫는문」이 열림을 얻게 하라”고 지감, 조식, 감촉의 삼법수련을 통한 깨달음을 권유했다.

<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에는 “지금 조선에 이 몸을 묻을 곳이 없으니 반드시 화장(火葬)으로써 깨끗하게 할 것”과 비단과 상여, 부고, 상장 등을 금하는 청빈한 장례절차를 미리 못박아두었다.

홍암의 유서에는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게 보내는 글도 포함됐다. 일본 총리에게는 “슬프다. 대종은 온갖 교의 조종이어늘 도리어 무리한 업신여김을 받아서 우리 한님께 욕됨은 철의 허물이요... 철이 마땅히 한님-한배의 곁에 모시어 인간의 선악부를 살피고 천하 만대의 공론을 기다리리니 빌건대 각하는 짐작하라”고 경고했고, 조선총독에게는 “각하가 우리 대종인을 학대하려 하는가. 철의 머리는 가히 끊을지언정 三十여만 무리의 믿는 마음을 가히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30만 신도를 내세워 압박했다.

대종교는 일제의 집중적 탄압으로 2014년 음력 5월 총본사를 백두산 북쪽 기슭인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옮기고 만주지역에 동도본사(책임자 서일), 북도본사(이상설), 서도본사(신규식.이동녕)를 설치하고, 한반도에 남도본사(강우)를 둬 세를 확대했고, 이는 이후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가 됐다.

본격화되는 대종교 무장투쟁의 전통

   
▲ 중국 화룡시 청파호 인근에 백두산을 향해 안장된 대종교 3종사 묘역. 홍암 나철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가운데가 홍암 나철, 왼편이 북로군정서 총재 백포 서일, 오른편이 대종교 2대 도사교 무원 김교헌 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종교 서도본사 책임자 예관 신규식은 추도만장을 통해 “조선조 5백년 간 둘도 없는 선비요. 대종교 4천년 이후 제일의 종사다”라고 기렸고, 육당 최남선은 나철의 순교를 육신제(肉身祭)로 표현하고 이로 인해 지리멸렬하던 민족전선이 비로서 통일된 정신적 지주 또 구심점을 갖게되었다고 평가했다.

나철의 구월산 순교야말로 우리 민족혁명사상 최대결정이었고(이규성), 근대 한국의 지식인 저항운동사의 시조인 나철의 순교로 인해 우리의 독립운동이 들판의 불처럼 번져나갔다(이현익)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결코 과장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은 “나철의 자결을 통해 본격화되는 대종교 무장투쟁의 전통이, 그 집단의 오랜 전통이었다”며 “일제하 대종교의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대내외에 천명한 일대사건으로써, 항일운동 본산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총제적 저항의 사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홍암 나철의 자결 이후 대종교 무장투쟁 책임자 백포 서일(白圃 徐一, 1881.2.26~1921.8.28)이 이끄는 북로군정서는 1920년 김좌진 장군의 지휘아래 청산리대첩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종교적으로도 홍암의 자결은 각별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대종교는 홍암 나철이 조천한 음력 8월 대보름을 ‘가경절’(嘉慶節), 즉 ‘아름답고 경사스러운 날’로 부르고 3대 경절(개천절.어천절.가경절)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

백포 서일은 당시 애도사를 통해 홍암의 순명을 신선들의 우화등선에 비유 우화(羽化)했다면서 ‘성통(性通)하여 하늘에 오른’ 조천(朝天)이라고 기렸다. 조천은 깨달은 이의 하늘과의 만남을 뜻한다. 슬픈 날이지만 기쁜 날로 기념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00년을 기다려온 도제사언문(悼祭四言文)을 찾아서

   
▲ 순례의 출발지 벌교 생가. 한여름 생가는 한적하기만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홍암 나철이 순명삼조를 비롯한 유서를 남기고 조천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추모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미군정과 이승만, 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는 남쪽에서 대종교는 발을 제대로 붙이지 못했고, 일제 후반기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 무장투쟁 세력이 주류를 이룬 북쪽에서 일제 전반기 민족주의 계열 무장투쟁 세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극복된’ 비주류에 불과했다.

심지어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독립유공자 등급에서도 홍암 나철과 백포 서일 등 대종교 핵심지도자들은 6등급 중 3등급 서훈에 해당하는 ‘독립장’을 받았을 뿐이다.

대종교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중화 사관’(中華 史觀)을 넘어서 ‘대륙 사관’을 펼칠 수 있었던 단재 신채호는 100년 전 홍암 나철의 자결 소식을 베이징에서 전해듣고 ‘도제사언문’(悼祭四言文)을 지어 애통한 심경을 남겼지만 아직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위당 정인보가 「잔억(殘憶)의 수편(數片)」이라는 글에서 단재 신채호의 도제사언문을 격찬한 대목이 남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셈이다.

“그 뒤 상해서 고(故) 나철(羅喆) 선생을 도제(悼祭)한 사언문 일편을 보니까, 그야말로 웅기(雄奇)·연아(淵雅)의 치(致)를 다하여 우리네의 조예로는 도저히 그 온오(蘊奧)를 엿보기 어려울 만한 대가임을 놀랬다.”

도제사언문은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된 단재 신채호 유고자료에 포함돼 있음이 김병민 전 연변대학 총장이 펴낸 『신채호 문학유고선집』(1994)에서 확인된 바 있다.

역사적 재조명을 기다리고 있는 홍암 나철의 100주기를 맞아 단재 신채호의 도제사언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기를 고대하며, 남북관계가 개선돼 올해 개천절에는 평양 단군릉 천제는 물론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홍암 나철 100주기 남북해외 합동추도식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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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하라!”


[현장보고]NCCK 평화협정 대표단 워싱톤 일지(7/26~28)

[NCCUSA]

지난 18일부터 로스앤젤레스로부터 미 대륙을 횡단하여 7월26일 오후 5시가 다되어 워싱턴DC 남쪽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 Quality Inn에 도착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평화협정 캠페인 대표단 24명은 미국교회협의회(NCCUSA)가 주최하는 저녁 만찬에 참여함으로 3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교회협의회가 사무실을 갖고 있는 이곳 미감리교 건물에는 7, 8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한 코리아 사무실도 상주했었다. 이 감리교 건물은 위치부터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바로 정문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길 하나 건너 국회의사당이 있고, 정면으로는 길 하나 건너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만찬에서 미국교회협의회 총무인 Jim Winkler 목사가 환영사를 하였고 미국감리교단 교회와 사회위원회 이사회의 General Secretary인 Susan목사께서 기도를 하였다. Winkler목사는 이 시간부터 끝날 때까지 3일 동안 모든 일정을 우리와 함께 하였다.

 

[The Senator's Office]

오늘은 휴전협정 체결 63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27일이다, 오늘 우리 대표단은 미국 정계의 여러 관계자들과 회담을 갖는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날을 기해 모든 회담 일정을 잡았지만, 7월 마지막 주는 휴가가 시작하는 때이고 특히 올해는 미국의 공화당 전당대회와 민주당 전당대회가 연이어 있어 정치인들은 모두 자리에 없는 기간이었다. 안타까웠지만, 할 수 없이 주어진 여건 아래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오늘의 첫 회담은 미국상원 국제관계위원회의 동아시아소위원회 위원장직을 갖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공화당 상원위원 Gardner 사무실에서 한반도담당 보좌관인 Trent Bishop과 한 시간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점을 많이 깨달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와 같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는 사람보다는 북을 제재하기를 원하는 보수그룹들이 더 많이 온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질보다는 양에 의존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모은 수만 명이 참여한 평화협정 서명 복사본과 이번 캠페인 과정에서 모은 수천 명의 서명용지를 전달하였다.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바로 이어 우리는 건너편 하원의원 건물로 가서 동아시아 법률 담당 보좌관과 함께 한 시간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그는 지금 북한 인권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우리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함이 왜 적절하지 못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평화협정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얘기를 했다.

첫째, 인권문제는 미국과 달리 북한에게 있어서는 생존문제 다음의 문제이다. 1951년부터 시작되어 70년 이상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봉쇄정책과 1년에 절반 이상 북한 침공을 위한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이라는 압박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 내에서의 인권문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목숨이 먼저이고 그 후에 인권이 존재하지 목숨이 없는데 어떻게 인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경제봉쇄와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 둘째, 북한(조선)보다 더 열악한 사우디아라비아(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다)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북한만 문제를 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또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쿠바와 이란과는 대화를 통한 외교관계를 진행하면서 유독 대화를 원하는 북한과는 인권문제와 핵을 빌미로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분쟁을 통해 남한과 일본을 대(代)중국 견제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남한과 일본은 미국의 군사무기 주요 수입 국가들이다. 남한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권이 목적이 아닌 적대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변명이다.(이 얘기는 안했지만, 지금 미국은 흑백 인종차별로 인해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남의 나라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일과 같다.)

넷째, 북한의 내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탈북자들의 얘기에 의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만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남북에는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있고 그리고 남한은 세계 제1의 자살률 국가로서 이 또한 분단으로 인한 인권침해인데 이런 점은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대북압박정책은 70년 동안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북한을 더 강경하게 만들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우리는 미국이 북한 인권상황을 문제 삼는 적대정책을 버리고 대화와 상호공존을 향한 평화정책에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압박이 아닌 대화만이 북한의 인권을 증진하는 길임을 설명하였다. 이어 어떤 과정을 거쳐 법안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어 평화협정 서명용지를 전달하였다.

 

[Dr. John Merrill]

점심을 피자로 때운 다음 우리는 바로 택시를 타고 존 홉킨스대학 건물로 가서 John Merrill 박사와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제주 4.3민중항쟁을 주제로 석사학위, 그리고 한국전쟁의 기원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역사에 매우 밝은 사람이었으며 젊은 시절에는 한국어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려 30년 동안 미국무성에서 한반도문제를 다루어온 한국통이었다. 그는 미국이나 남한 정부가 얼마나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특히 국정교과서에 대해 심히 우려하는 입장을 얘기했다. 그중 하나 그는 탈북자들이 미국에 와서 의회나 교회 등 여러 집회 장소에서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증언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증언으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지금 그들이 행한 대부분의 증언들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어 그는 우리에게 군산에서 온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다음 70년대 군산 미군기지에 핵탄두 300개가 있었다는 사실도 말하면서, 우리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나 하였다. 그건 몇 년 전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안내로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해군제독을 지냈던 분을 직접 만나 한국전쟁 전 남한의 해안경비대가 마치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듯이 북한의 몽금포 해군기지를 기습 습격하여 이를 초토화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역사에는 감추어진 진실이 많다고 말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주고받는 전쟁사에 있어서 한국전쟁의 하나의 기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천안함 사건 또한 그보다 6개월 전에 있었던 남한 해군의 포격에 의해 북한군 경비정이 크게 부서지고 북한군 12명이 죽은 사건을 거론하면서 이것이 북한의 군사적 대응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래 나는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 얘기를 다시금 언급하면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비유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천안함 침몰은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북한의 소행이 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는 결론으로 이제 대북적대정책은 실패했고, 대화만이 지금의 막힌 난관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성에서 30년을 일한 사람으로서는 너무 솔직하고 매우 특이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The State Department]

이어 바로 택시를 타고 오후 3시에는 국무성으로 가서 북한인권대사인 Amb. Robert King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로 불참하게 된 Shaun Casey, US Special Representative for Religion and Global Affairs를 대신하여 그의 보좌관과 함께 한 시간의 회담을 가졌다. 킹 대사와 NCCK와의 만남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3년 전 내가 NCCK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김영주 총무, 노정선 교수, 그리고 당시 감리교 사회부 총무였던 Jim Winkler 목사와 함께 국무성에서 처음 만났었고 2년 전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NCCK 통일위원회 대표단과 NCCUSA 그리고 UMC가 주도했던 백악관 평화행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 있었다. 이때 나는 백악관 한반도 안보담당관인 사일러를 만나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지는 아니했다. 3년 전 첫 번째 만남에서 나는 한국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의 선언 곧 한반도가 미국의 방어에서 제외되었다는 발언을 지적하자 그는 두 번이나 “It was a mistake”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킹 대사의 직임 자체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문제시하고 이를 확대하는 일이었으니 처음부터 우리와는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말에 이어 바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였다. 특히 우리가 목사들이다 보니 종교의 자유가 없음을 주장함으로 우리를 곤경에 몰아넣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언 직후 곧바로 이런 물음을 그에게 던졌다. '20년 전 브리태니커사전에서 세계종교를 설명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세계종교의 하나로 다루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론 그는 전연 생각하지 못했던 이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노정선 교수께서 북한이 미국이나 남한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도 교회, 성당, 절이 있고, 우리 남한 기독교 대표단이 평양에 가면 언제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과 김 주석 자신이 어렸을 때는 교회를 다녔고, 그리고 칠골교회는 주석의 어머님의 이름(강반석)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를 기념하는 이름임을 상기시켰다.

이어 서보혁 교수가 인권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북에 대한 인권문제 거론이 부당함을 학문적으로 역설하였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비판적 발언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킹 대사가 끝까지 북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며 일어나려고 하자 전용호 목사께서 “잠깐만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며 그를 자리에 앉힌 뒤 이전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발언 곧 “인권문제를 거론함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막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외교에 있어 더 중요하다”를 언급하자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이어 김영주 총무께서 백악관에 보내는 평화협정 서명카드와 부채를 선물로 전달하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제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상호 존중의 정신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외교정책에서 대화를 통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고 이를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북한(조선)과 미국의 평화협정이다.” 이전 두 번의 모임보다 오늘 킹 대사는 우리들의 계속되는 날카로운 질문과 반격으로 매우 곤혹스러운 시간을 가졌고, 그는 속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Peace Committee in United Methodist Church]

나는 국무성 입구를 걸어 나오면서 거기에 걸려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들과 함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가 당당히 걸리는 그날을 기도하면서 나왔다.(우리는 북한을 국가가 아닌 하나의 적성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남한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180여 개국이고 북한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160여 개국으로 세계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9시부터 진행된 4개의 연속된 중요한 회담을 우리는 잘 마쳤다. 이후 우리는 미국감리교단의 평화위원회 고문인 정희수 감독과 위원장 장위현 목사께서 베푸는 저녁 식사를 가지면서 당일의 회담에 대한 회고를 다 같이 나누었다. 보스턴에서 미국감리교회를 목회하는 장 목사는 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아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으로서 남북화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셨던 장기천 감독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인 것 같다. 지금 미국감리교 내 평화위원회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전담할 사역자를 두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 전체 한인 목회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Consultation with Ecumenical Leaders]

셋째 날 28일 오전 9시 감리교빌딩에 다시 모인 우리는 미국교회협의회와 함께 일하는 평화일꾼들이 북한을 위해 일하는 저들의 사역 얘기를 들었다. 두 총무의 인사말이 있은 다음 우리 측에서는 노정선 교수께서 대표발언을 하였고, 이어 이 건물에 함께 사무실을 갖고 있는 미국장로교(PCUSA) 사회국에서 총무로 일하다 미국장로교 총회 교단본부 총무(the Stated Clerk)로 지난달에 선출된 넬슨 목사(그는 첫 번째 흑인이었고, 공교롭게도 당일 오후 그를 환송하는 파티가 있었다), 감리교를 대표하여 Levi Bautisa(co-chair of East Asia Forum)와 정희수 감독, American Friends Service(퀘이커)의 Dan Jasper, Episcopal Church의 Lacy Broemel, Pax Christi International(가톨릭)의 Judy Coode, Mennonite Central Committee의 Charissa Zehr 그리고 Maryknoll Office for Global Concerns(가톨릭)의 Gerry Lee 등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이 속한 기관들이 어떤 일들을 하여왔는지를 발표하였다.

흥미로웠던 발표는 American Friends의 Dan이 직접 저작한 <Engaging North Korea>란 제목의 책자였다. 이전 쿠바나 베트남, 라오스 등등의 적대 국가들과의 정상외교 전 미국의회의 지도력과 재정 도움으로 민간인들의 만남과 문화 교류가 먼저 있었던 사례들을 쭉 나열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었다. 그리곤 북한에 대해서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는데, 현재는 많은 의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였으며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했다. 물론 미국보다 남한이 먼저 북한과의 민간교류에 앞장 서야 할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Presbyterian Church(USA)]

쉬는 시간 나는 넬슨 목사에게 가서 나를 소개했다. 왜냐하면 내가 한때 몸담았던 미국장로교단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총회의 총무로 부임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이곳 워싱턴에서 사회국 총무로 6년간을 일하였을 뿐더러 흑인이라는 점에 상당히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에게 나는 이곳 수도노회 회원 출신으로 16년간 이곳에서 한인교회를 섬겼고, 노회장을 역임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수도노회에 참석을 해도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6월 중순 포틀란드에서 진행된 총회에서 결의한 한반도 평화협정안에 따라 평화협정 서명운동을 막 시작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창피스럽지만, 나는 다음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그가 앞으로 겪을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넬슨목사님, 당신이 그간 여기서 사회국 총무로 있으면서 세계 정의와 평화운동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 활동한 일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당신이 앞으로 총무로 부임하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건 부끄럽게도 교단 내의 한국교회이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란다.

 

[Korean Church Leaders in Presbyterian Church(USA)]

사실 나는 작년 6월과 7월 미국의 United Church Christ(오바마가 소속된 매우 진보적인 교단)와 Disciple 교단 총회에 기장 대표로 초청을 받아 이 두 교단이 한반도평화 헌의안을 통과시키는 일에 참여하여 세미나도 인도하고 총회에서 발언도 하였다. 물론 이 한반도평화통일방안은 두 교단에서 절대 다수로 통과가 되었고, 이번 대륙횡단 시에도 적극 환영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올해 미국장로교 총회에서도 이러한 한반도평화통일 안건이 상정되어 통과되는 것을 희망하여 내가 소속했던 수도노회에 접촉을 했고, 몇 달간의 자체 논의를 거친 후에 수도노회에서 이를 담당하겠다고 하면서 한인교회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한인총무 목사님을 통해 한인교회연합회(약 350개 교회) 총무 임원단에 이를 안건으로 내놓았는데,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이때 나는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일어났다. 아니 미국교회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당사자인 한국교회가 이를 거부한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30년 전에도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90년대 남북관계가 한참 어려울 때에도 북의 종교정치지도자들을 초청한 것은 미국장로교회였다. 이를 주도하셨던 이승만 목사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일이 너무나 아쉬웠다. 남한 정부가 그렇듯이 미국 내의 한인장로교회 또한 오히려 뒷걸음을 친 것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감리교단의 한인목사님들 가운데 한반도 평화문제를 위해 일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사실 조선일보는 이번 우리가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협정 서명운동을 친북이라고 비난했다. 평화협정을 반대하면 전쟁을 하자는 입장인데, 그들은 전쟁을 하나의 소꿉장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이 북한이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쪽에 있는 24개의 핵 원전 가운데 서너 개만 폭탄을 맞아 터진다면 한반도 전체는 100년 동안 사람이 살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난 평화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평화협정을 반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목숨이 두개이든가. 하여간 백보 양보하여 친정부 종미의 조선일보는 그렇게 우리를 비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어떻게 목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일꾼이 되라고 하셨고, 그럴 때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친북/친남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이 어떻게 평화를 반대하는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은 무엇을 갖고 설교하는지 알 수가 없고, 누구를 향해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말하고 실제는 자기를 믿고 세상을 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Press Conference]

휴식이 끝나고 나서 며칠 전에 공고한대로 SNS를 통한 기자회견이 약 40분 동안 진행되었다. 대상은 미국 전체의 2천개 언론기관의 기자들이었다. 물론 당일 참여한 기자들은 약 90명이었고, 다수는 종교계 기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자회견을 핸드폰을 통해 SNS로 하는 것을 보면서 시대와 나라의 격차를 느꼈다. 사실 남한에서 기자회견은 한 자리에 모여서 한다. 기자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넓다. 그리고 지금 모든 언론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가있다. 그러니 이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화면을 통해 먼저 미국교회협의회 총무 Jim Winkler 목사의 인사말 이어 노정선 교수께서 위원장으로서 이번 평화협정문의 취지 발언을 하였고, 이어 Nelson 목사, Levi Bautista, 이문숙 목사, 서보혁 교수가 각각 발언을 하였다.

분단 71년 정전협정 63주년을 맞이하며 남북이 겪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얘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길은 평화협정임을 모두가 동의하고 이를 위한 길에 모두가 나서줄 것을 요청하였다.

발표가 끝나자 트위터를 통해 질문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교회 교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답변으로

- 교단의 관련 책임자나 미국교회협의회의 도움을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

-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미 상원/하원 지역 의원들에게 전화하기

- 평화협정 백악관 청원 서명하기(카드 혹은 SNS)

두 번째 질문은 이전에도 많은 남북 평화운동들이 있어왔는데, 이번 평화운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 남쪽 교회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선언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구체적인 평화협정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북의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인식하고 있다. 이는 이미 세계교회협의회가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백악관 청원을 위한 10만인 직접 서명을 받고 있는 일이다. 이는 전쟁을 막는 구체적인 행동으로서 사드(THAAD)가 도입이 되면 평화협정이나 핵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큰 어려움이 예상됨을 역설하며 이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White House]

화상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고 일부는 백악관 안으로 들어가서 Allison M. Hooker, Director for Korea, National Security Counsil과 Melissa Rogers, Executive Director of the White House Office of Faith-based and Neighborhood Partnerships와 회담을 갖고 나머지 일행은 백악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였다. 나는 3년 전 당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이후 6자회담 차석대사로 있다가 지금은 미8군으로 자리를 옮긴 사일러(그는 한국말에 매우 능통한 미정보국에서 30년을 일한 대북정보관이다)와 2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에 오늘은 백악관 시위를 책임지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약 20분에 걸쳐 기도로 시작하여 “We Are Peacemakers!”, “End the Korea War!”, “Korea Peace Treaty Now”, “No THAAD in Korea” 등등의 피켓과 구호를 외치고 ‘We shall overcome’ 노래를 반복한 다음, 약간의 행진을 하고 다시 백악관을 향해 서서 내가 “Mr. Obama, In the Name of God, I Demand Your Repentance!”라고 외친 다음 20초간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이런 과정에서 백악관 관광을 왔던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평화협정 안내용지도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조금 그늘에 앉아 쉬고 있자 백악관 안에 들어갔던 팀이 나왔다. 우리는 다시 모여 구호를 외치고 모두가 빙 둘러서서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다같이 부른 다음 Jim Winkler 총무목사의 기도로 모든 공식적인 순서를 마쳤다.

Winkler 목사는 백악관 앞에서 이렇게 구호를 외치는 피켓 시위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고 말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국 교회를 위해 3일을 꼬박 함께한 그의 헌신과 정성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백악관 회담에 참여했던 분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회담은 잘 진행이 되었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수천 개의 핵은 정당시 여기면서도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적대시 정책을 바꿀 의도가 별로 없어보였다.

[Holocaust Museum]

일부는 펜실베이니아의 퀘이커본부가 있는 펜들힐로 가고 나머지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으로 갔다, 나는 여기 방문이 세 번째이고 이스라엘과 독일, 폴란드의 여러 홀로코스트 수용소들을 다녀본 관계로 많이 아는 얘기이자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을 들어갈 때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랄한 동물인지 그리고 이념에 한번 사로잡히면 인간은 쉽게 악마로 변하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우리도 물론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이념갈등으로 인한 수많은 동족 학살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단지 군인들만이 동참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여기에 동조했다. 사실 히틀러는 유대인만 학살한 것이 아니다. 지체장애인들과 정신장애인들, 집시인들, 동성애자들 모두를 학살했다. 어떻게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시 이 일에 앞장선 게시타포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었다. 도대체 배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위가 무슨 소용이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년에 여기에 드나드는 관람객이 180만이라고 한다. 지금 이 근처에는 스미스소니언이라는 유명한 박물관들이 줄지어 있고 조금 있으면 개장할 Afro-american 박물관이 있는데 이 모든 박물관들의 관람이 무료이다. 우리도 이런 인간의 의식을 새롭게 깨우칠 박물관들을 만들고 이를 무료화해야 한다. 우리는 무료는 없다. 그리고 있다는 것도 평화박물관이 아닌 전쟁박물관이다. 거기에는 거짓의 천안함을 설치해 놓고 있다. 역사는 진실을 알고 있다. 히틀러의 동조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으로, 그리고 모든 거짓은 감춰질 줄 믿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

 

[성찰과 감사]

3일간의 워싱턴 일정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는 왜 우리의 통일문제를 남과 북 우리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이곳 미국까지 와서 이들에게 호소를 해야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약소민족으로서 깊은 서러움을 느꼈다. 물론 미국이 남북분단에 직접 책임이 있고, 북을 계속 적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에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 우리 남한은 전시작전권도 없는 허수아비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해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동아시아의 평화를 더 어렵게 만들어가는 사드(THAAD)를 도입하는 미국의 하수인 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렇게 될 경우 남북간의 평화협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제는 중국과 미국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는 중국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우리는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전체 노동자의 반수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계조차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는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 주머니는 주인이 챙긴다고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남한은 최고의 군사비 지출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상당부분이 미국산 무기 구입과 미군 주둔비용으로 소요되고 있으며 주식과 채권을 통한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 또한 미국의 소수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결국 통일이 되지 못하면 미국 예속은 단지 정치와 군사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부분에까지도 임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남한은 진정한 독립국가가 될 수 있으며 언제나 우리 남북한이 통일된 국가로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내 생전에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끝으로 나는 급한 사정으로 대륙횡단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여기에 참가한 이들은 하루도 쉼 없이 매일 밤 10시가 다되어 호텔에 도착하여 잠만 자고 다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빡빡한 일정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들 가운데는 캐나다연합교단의 선교동역자인 캐더린 목사는 나이도 많거니와 몸도 그리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으며 미국장로교 선교동역자인 커트 목사는 운전은 물론 다른 잡일까지도 기쁘게 감당해 주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

조헌정 목사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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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 반민특위처럼 좌절되지 않는다”

[인터뷰] ‘단식농성’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 반민특위처럼 좌절되지 않는다”

“지금이 특조위 살릴 골든타임, 국민과 국회가 힘을 달라”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6-07-31 19:33:32
수정 2016-07-31 19: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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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사 활동 보장을 위한 단식 농성을 5일째 진행하고 있다.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사 활동 보장을 위한 단식 농성을 5일째 진행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탄압 속에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침몰하고 있다. 이에 맞서 장관급 인사인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은 특조위 조사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 27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일 30도가 웃도는 더위와 장대비 속에서도 이 위원장은 “특조위가 처한 현실이 더 엄중하다”며 꿋꿋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금이 특조위를 구할 골든타임”이라며 국민들과 국회의 힘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민중의소리’는 31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 5일차에 접어든 이 위원장을 만났다.

“지금이 침몰하고 있는 특조위 살릴 골든타임”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 위원장은 단식농성에 나선 배경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에 의해 만들어진 특조위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조사활동을 못 하게 된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다”며 “국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특조위가 처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의 출범과 진상규명 활동을 갖가지 수단으로 방해해 왔다.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반년이 넘도록 특조위는 제대로 출범도 못 했다. 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특조위를 파견 공무원으로 장악하려는 정부의 시행령 탓에 이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애초 계획에서 반토막이 난 예산은 지난해 8월에 들어서야 지급됐다.

특조위에 조사관이 채용되고 예산을 배정받은 2015년 8월을 활동 기산점으로 본다면 현재 특조위의 조사활동은 채 1년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특조위에 예산도 인력도 배정되지 않은 2015년 1월1일(특별법 시행일)을 특조위 활동의 개시일이라 주장하며 1년 6개월의 조사기간이 끝났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특조위 조사활동 예산 지급은 전면 중단됐으며 특조위 조사관들의 신분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현재 특조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점점 침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정부는 지난 6월30일자로 특조위 조사활동을 강제로 종료했다. 7월1일부터 예산 배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특조위는 사무실 내 복합기 카트리지를 교체할 예산도 없어 자료 복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조사관들 사이에서는 갹출해서 사무품을 구매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러한 특조위의 위기는 과거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의해 '친일파 청산'이라는 목표가 좌절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 위원장은 “많은 국민들이 특조위를 지지하고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반민특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저희가 하는 것이 올바르고,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단계에서 반민특위처럼 좌절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금이 특조위의 골든타임이라며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밝혀지기 위해 국회와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특조위를 구성하고 있는 조사관들이 벌써 5명이나 떠났다. 앞으로도 그만큼 떠날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특조위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들이 바라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며 “특조위는 가라앉고 있다. 국회에서도 특조위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 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사 활동 보장을 위해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사 활동 보장을 위해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김철수 기자

질문 어떤 절박함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됐나.

답변  박근혜 정부에서는 특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지난 6월30일자로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강제 종료시켰다. 7월1일부터는 예산 배정도 전혀 안 된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종합보고서와 백서를 작성하라고 하지만 한창 조사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같은 주문에 응할 수 없다.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오는 9월30일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 끝난 후 특조위 해산조치에 들어가게 된다. 국회에서도 특별법 개정안 발의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으나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여야 합의를 통한 조사활동 보장 역시 불분명한 상황이다.

특조위가 현재 조사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국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특조위가 처한 난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질문  현재 특조위가 처해있는 상황은 어떠한가.

답변  조사활동을 위한 예산이 전혀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다. 가령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면 특조위 조사관들이 사비로 충당해야 한다.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진행할 수 없다. 조사관들의 자발적인 의지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까지 5명의 조사관들이 특조위를 떠났다. 앞으로도 그만큼 떠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특조위는 현재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는 인양이 되고 있는데 특조위는 점점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특조위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질문  특조위의 현재 상황이 정권의 철저한 무관심과 방해 속에서 친일파 청산이라는 목표가 좌절됐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유사한 상황인 것 같다. 이 때문에 특조위가 제2 반민특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답변 특조위 역시 상당한 좌절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특조위를 지지하고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반민특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희가 하는 것이 올바르고,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단계에서 반민특위처럼 좌절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순간에도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규명될 거라고 본다.

질문  특조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회의 도움도 많이 필요해 보인다.

답변  현재 특별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다. 그러나 발의만 된 상황이고 언제 상정이 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여야 합의 역시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상할 수 없다. 특조위는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특조위는 가라앉고 있다. 국회에서도 특조위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질문  무엇보다 국민들의 힘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답변  많은 시민들이 밤 11시까지 계속 농성장에 찾아온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목이 다 아플 정도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란다, 힘내시라, 응원하겠다는 격려의 말들을 해준다. 지금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이를 통한 안전한 사회의 건설을 위해 특조위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의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단식농성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의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단식농성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조사활동 보장을 위한 세월호 특조위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지방문을 하고 있다.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조사활동 보장을 위한 세월호 특조위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지방문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 농성장을 방문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 농성장을 방문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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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10억 뇌물수수 검사'로 찍혔다"

 

김광준 전 부장, 본지에 편지... "제일저축은행 수사 이후 청와대가 뒷조사"

16.07.31 18:13l최종 업데이트 16.07.31 18: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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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그룹으로 부터 6억여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광준 부장검사가 2012년 11월 특임검사팀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 피의자신분으로 출두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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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10일 대검찰청은 '김수창 특임검사팀'을 꾸렸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최측근과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광준 당시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랜저 검사'(2010년 11월)와 '벤츠 여검사'(2011년 12월)에 이은 검찰의 세 번째 특임검사팀이었다.

당시 김수창 특임검사팀의 구성을 두고 '대검 중앙수사부를 능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원석(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밀양지청장과 정순신(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남원지청장 등 두 명의 지청장을 포함해 총 13명의 검사로 팀을 꾸렸던 탓이다. 최근 진경준 검사장의 '126억 원 주식 대박' 의혹을 수사했던 '이금로 특임검사팀'에는 5명의 검사만 참여한 것에 비하면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매머드급'이었던 셈이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특임검사팀을 구성한 지 9일 만에 김광준 부장검사를 구속했다(11월 19일). 1심과 2심, 3심은 일관되게 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현재 의정부구치소에 수감돼 3년 8개월의 수형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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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준 전 부장검사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보낸 편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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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특수1부장, 특임검사팀 때 불법적인 압수수색"

 

 

하지만 김 전 부장검사는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최측근 강태용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 등을 근거로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강씨로부터 받은 2억 원은 '알선수재 뇌물'이 아니라 '여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린 돈'이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김광준 검사에게 준 2억, 여자문제 풀라고 꿔준 돈"). 

김 전 부장검사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보낸 편지(7월 25일 작성)에서 "부적절한 여자관계에 책임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금전으로 무마하려다가 공무원으로서는 과다한 금전 차용을 하게 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점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라며 "그래서 징역 7년형이라는 살인자에 버금가는 중형을 선고받고도 운명이려니 체념하면서 거의 4년 가까이 구금생활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부장검사는 "저의 부적절한 처신에 비해서는 (징역 7년은) 너무 가혹한 처벌이었고 그로 인해 저는 모든 것을 잃었다"라며 "검사가 집으로 쳐들어와 말기암 판정을 받고 투명중인 저의 처를 조사해 그 충격으로 암이 악화되어 몇 달 간 치료받다가 병원에서 객사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특히 김 전 부장검사는 "2012년 11월 특임검사 수사 당시 강태용에게 돈을 차용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김수남 (현) 총장에게 그 사정을 다 말하고 사의를 표하였다고 하니 검사가 확인한 후 총장이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당시 내연녀의 협박문제로 시달리던 김 전 부장검사는 김수남(현 검찰총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이러한 상황은 명동성(현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장검사는 "그때 (김수남) 총장이 제가 사의를 표한 사실만 밝혀주었더라도 강태용 부분은 기소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부하 검사가 부적절한 행위로 사의를 표하면 사표를 받거나 상부에 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을 밝히지 않으려고 그렇게 얘기한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20여 년간 '특수부 검사'로 근무했던 김 전 부장검사는 편지에서 한때 친정이었던 검찰의 "불법, 부당한 수사와 기소"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김수창 특임검사팀에서 활동했던 이원석 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부장검사가 특임검사팀에서 활동할 당시 불법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원석 부장검사는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꾸려진 다음날(2012년 11월 11일) 오전 10시부터 김 전 부장검사가 사용하고 있던 서울고등검찰청 703호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런데 검찰이 압수수색의 일시와 장소를 미리 통지하지도 않았고, 압수조서도 작성하지 않고, 압수목록을 교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김 전 부장검사의 주장이다. 

형사소송법 제122조(영장집행과 참여권자에의 통지)와 제129조(압수목록 교부) 등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따라 당시 서울고등검찰청 703호실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김 전 부장검사는 "그 압수수색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적인 압수수색이었다"라며 "(그래서) 그때 수집한 증거를 법정에 제출할 수 없는 증거인데도 유죄의 증거로 채택됐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당시 검찰이 압수한 '명함 사본'과 '2009년 업무일지', '휴대폰 저장 문자' 등은 재판에서 유죄 인정의 중요한 증거로 채택됐다.   

서울지검 분장사무에는 '전국적인 기업.금융비리' 문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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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분장사무(예규, 위)와 김광준 전 부장검사 공소장 중 일부(아래). 공소장에 기재된 "전국적인 공직비리, 기업.금융비리"라는 문구가 분장사무에는 없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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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 전 부장검사는 검찰의 증거조작 의혹까지 제기했다. 자신의 뇌물수수가 '직무'(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서울중앙지검 분장사무(예규)를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공소장(2012년 12월 7일)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3부 소속 검사는 전국적인 공직비리, 기업·금융비리, 법조·언론 주변 부조리 관련 사범(감사원 고발·수사의뢰 사건 포함)의 수사 및 처리에 관한 사항과 그 정보·자료 수집을 담당"한다고 적시했다. 특임검사팀은 각주를 통해 이러한 내용의 출처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분장사무(서울중앙지방검찰청 예규 제99호, 2007. 6. 1 시행) 제14조'라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분장사무(예규 제99호)는 특수3부 검사의 직무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소속 공직자 비리, 법조·언론 주변 부조리 관련 사범 등의 인지수사 및 처리'로 규정해놓았다.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전국적인 공직비리, 기업·금융비리"는 직무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김 전 부장검사는 "따라서 서울 외 다른 지방에서 발생했던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범행이나 유진그룹 관련 형사사건 수사를 원칙적으로 특수3부의 직무범위로 볼 수 없어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웠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강태용씨와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빌린 수억 원을 '알선수재 뇌물'로 엮기 위해 검찰이 검찰 예규에도 없는 "전국적인 공직비리, 기업·금융비리" 문구를 끼워넣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김 전 부장검사는 김수창 특임검사 등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 관할 내 사건만 한정하여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성격에 따라 그 관할구역 외에도 전국적인 사건을 수사하기도 하고, 공직자 비리, 법조·언론 비리사건 외에 기업·금융 비리사건도 수사한다"라며 불기소('고소 각하') 결정을 내렸다(2014년 1월). 

앞서 2심 재판부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제3부 부장검사로서의 피고인 김광준의 직무범위를 의도적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검사가 공소장에 직무범위를 임의로 조작하여 기재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현직 부장검사의 지위에서 직무 대상자들과 무분별한 금전적 관계를 가져온"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전 부장검사는 편지에서 "(검찰이 예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라며 "검찰이 예규를 조작한 부분의 진실을 밝혀 달라"라고 촉구했다.  

"제일저축은행 비리대출 수사 이후 청와대에서 뒷조사"

원래 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은 경찰에서 먼저 인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내부감찰에 이어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등 '부장검사'가 연루된 사건의 수사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 전 부장검사가 편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법대 동기인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김 전 부장검사에게 연락해 "지금 경찰에서 조사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에 해명하는 진술서를 작성해 보내주면 검찰총장에게 보고해 결과를 알려주겠다"라고 요청했다. 이에 진술서를 작성해 최재경 부장에게 보냈고, 며칠 뒤 최 부장으로부터 "감찰조사를 받고 적절한 징계를 감수하라"라는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의 지시를 전해들었다고 한다.

김 전 부장검사는 "다음 날 대검 감찰본부에 출석해서 감찰조사를 받았는데 이것을 알게 된 경찰이 온갖 유언비어성 내용을 각 언론사에 배포해 저를 천하에 몹쓸 놈으로 만들면서 경찰에서 먼저 수사 단서를 포착했으니 경찰에서 저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전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이에) 한상대 검찰총장은 검사가 경찰에서 조사받는 선례를 남기기 않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특임검사를 임명하고 검사 13명을 차출해 저를 대상으로 먼지털이식 전방위 수사를 해서 중형을 받게 하라고 지시했다"라며 "(이러한 지시가) 검찰이 온갖 불법·부당한 행위를 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자신이 '10억 원대 뇌물 검사'로 찍히게 된 계기가 '제일저축은행 비리대출 사건' 수사였다고 주장했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2010년-2011년)로 근무할 때 제일저축은행의 거액 불법 대출을 확인하고 유동천 회장과 유병국 전무 등을 구속하자 유동천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 등에게 로비해 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뒷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유동천 회장의 범죄사실 중에 이상득 의원 보좌관 등 측근에게 금품을 교부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간접적인 정황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날 제일저축은행에서 일부 예금 인출 현상이 벌어지자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대검 대변인을 통해 '제일저축은행 전무 개인비리 차원의 수사였고, 제일저축은행 대출수사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제일저축은행 수사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라고 전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제가 그냥 총장의 개인 부탁인지 직무명령인지 확인해 달라고 하니 (총장의) 직무명령이라고 확인해줘서 그 명령(수사 중단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 후로 청와대 민정팀에서 제 뒷조사를 계속 했고, 다음 인사 때 불이익을 받고 공정거래위 파견을 명령받아 사실상 수사권을 박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그 이후에도 청와대 민정팀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이 꾸준히 제 뒷조사를 했고, 그런 와중에 강태용에게 2억 원을 차용한 것이 제 계좌에서 확인되니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고 범죄정보과, 지능수사대에서 저를 내사해 이 지경에 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MB정부 출범 직후 법무비서관 추천... 여자문제로 거절"

한편 김 전 부장검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08년 2월 MB정권 출범시 저에게 '법무비서관에 추천되었으니 계좌 추적 등 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하라'는 인수위 직원의 연락을 받았다"라며 "뒤이어 검증을 담당하게 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라고 술회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검사라면 거의 전부가 맡고 싶은 직책이지만 저는 당시 부적절한 여자관계가 있어 양심상 도저히 그러한 직책을 맡을 수 없었고, 조만간 공직을 사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그 후 박영준씨가 전화해 '재산검증은 필요없으니 바로 와서 합류해 일하면 된다'고 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것이 제가 표적사정의 대상이 된 이유라고 전해들었으나 확인은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과 부산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 등을 지냈다.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사건과 정윤재 청와대 의전비서관 뇌물수수 사건, 전군표 국세청장 뇌물수수 사건, 제일저축은행 대출비리 사건 등을 수사했고, 옷로비 특검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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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는 '한국의 미국 MD 참여'다


<연속기고②>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고영대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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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31  19: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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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는 한국 또는 한국 MD(미사일방어체계)의 미국 MD 전면 참여를 의미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이래로 한국 역대 정권은 기술적․재정적 한계와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미국 MD 참여를 거부해 왔다.

김대중 정권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천용택 전 장관은 “TMD(전역미사일방어) 전력화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아니며,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한국은 TMD에 참여할 경제력과 기술 능력이 없다”며 한국의 미국 MD 참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연합뉴스, 1999. 3. 5).

한국 자체의 MD 구축과 미국 MD 참여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막는 데 군사적으로 효용성이 없는 반면, 주변국들의 반발만 불러와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MD 반대 입장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성명(2001. 2. 27)에도 반영되었으나 미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공동성명 5항에서 “ …‘대탄도미사일 조약(ABM Treaty)’은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데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당시 MD 강화 정책에 나선 부시 정권은 이 공동성명을 한국이 미국 MD를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김대중 정권에 압력을 행사, 외교통상부 장․차관이 사퇴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방문 길에 여러 차례 유감 표명을 하는 등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한국의 미국 MD 불참 입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만큼 한국의 미국 MD 참여는 한국이 국방예산을 군사적 효용성도 없는 MD 구축에 소모하게 하고 미국에 군사적으로 더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시 정권은 2002년 MD를 미국 핵전략의 한 축으로까지 자리매김하였다. 나아가 한국의 미국 MD 참여는 냉전 와해 이후 우호관계를 회복한 대중․대러 관계를 다시 악화시키고, 또한 2000년 6.15 공동성명으로 분단 이후 최초로 공존․공영 관계로 탈바꿈한 남북관계를 다시 적대적 대결 관계로 되돌리게 하는 등 국방․외교정책과 남북관계를 후퇴시킴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진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중대 사안이었다.

이런 문제점은 사드 한국 배치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권의 미국 MD 불참 입장은 사드 한국 배치를 확정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종말을 고할 위기를 맞고 있다.

   
▲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가 미국 MD 참여 또는 편입이 아니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사진출처 - 국방부]

하지만 한민구 국방장관은 여전히 “(사드 한국 배치가) 미국 MD 참여 또는 편입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국회 속기록, 2016. 7. 20)고 강변하고 있다.

사드 한국 배치가 미국 MD 참여가 아니라는 박근혜 정권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자 그동안 미국의 압박에도 미국 MD 참여를 거부해 온 역대 한국 정권의 고심에 찬 노력을 휴지조각 버리듯 내팽개치고 있는 짓이다.

이에 사드 한국 배치가 박근혜 정권의 기만적 주장과 달리 왜 한국의 미국 MD 참여로 되는지 그 근거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사드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하면 한국 MD가 미국 MD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은 한국 국방부가 스스로 제시한 기준이다.

국방부는 2012년 10월 28일, 한국 MD의 미국 MD 참여 기준으로 (1)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기지 제공 (2) Ⅹ-밴드 레이더 설치 (3) MD 공동연구 비용 지불 등 세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앞서 2012년 9월 24일 미 국방부 캐슬린 힉스 정책 담당 수석 부차관도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MD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미사일을 사용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드) 레이더망을 통해 기여할 수도 있다”며 레이더 기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한국의 미국 MD 참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기지 제공이다. 부시 정권이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두 곳에 배치되어 있는 GBI 기지 외에 제3 기지를 폴란드와 체코에 각각 요격 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분산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관련국들과 협정을 맺어 추진했다.

그러나 관련국들이 국회 비준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 데다 러시아의 반발로 오바마 정권 들어 폐기되었다. 이후 공화당이 미 하원을 장악하면서 제3의 GBI 기지를 구축하자는 주장이 되살아나 이를 미국 동부 연안에 배치하기로 하고 4곳의 후보 지역을 선정해 추진했으나 오바마 정권은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2015. 7. 14) 후 제3의 GBI 기지를 구축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이는 폴란드처럼 미국에 GBI 기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한국이 미국 MD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 미국이 운용 중인 사드. X-밴드 레이더가 핵심고리다. [사진출처 - 록히드마틴]

두 번째 기준은 X-밴드 레이더 설치다. 사드 X-밴드 레이더의 한국 배치는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동북아 지역 MD, 나아가 전 세계 MD 구축의 핵심 고리다.

미국은 이미 2012년에 당시 이명박 정권에 중국으로부터 불과 186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백령도에 사드 X-밴드 레이더의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이때는 미국이 일본 사리키에 사드 레이더를 배치(2006)한 데 이어 교카미사키에도 사드 레이더를 설치하기로 결정(2012)했으며, 터키 말랏탸(Malatya)에도 사드 레이더를 배치(2011)해 지역 MD와 지구적 차원의 MD 구축을 위한 센서(지상조기경보레이더) 배치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터기 말랏탸는 이란으로부터 불과 640여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2011년 9월 15일자 보도에서 터키 배치 사드 레이더를 미국의 제3 GBI 기지를 대신해 새롭게 구축 중인 미국의 유럽 MD(EPAA)의 초석(cornerstone)이라고 불렀다. 반면 러시아는 이 사드 레이더를 러시아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하기 위한 위장물(stalking horse)로 규정하였다.

경북 성주에서 중국과의 거리는 불과 530여km로 터키 배치 사드 레이더와 이란과의 거리보다도 100km나 더 가깝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는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하려는 미․일 중심의 동북아 지역 MD를 구축하기 위한 초석인 것이다.

이렇듯 사드 X-밴드 레이더의 한국 배치는 국방부와 미 국방 관료가 밝힌 대로 기지 부지 제공만으로 곧바로 한국이 미국 MD에 참여하는 것으로 된다.

세 번째 기준은 MD 공동연구 비용 지불이다. 이는 일본과 이스라엘처럼 MD 무기체계를 미국과 공동으로 연구, 개발하고 비용도 분담하는 관계를 말한다. 미국과 일본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해 제한적으로나마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SM-3 Block ⅡA라는 이지스 요격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미국과 비용을 분담해―대부분 미국의 비용과 기술로 진행되고 있지만-애로우 요격 체계 등을 개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MD 투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그 실상이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국 MD에 가입하게 되면 한국도 일본이나 이스라엘처럼 미 MD 공동 연구와 개발에 발을 담그고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둘째,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전략지휘를 받게 되며, 태평양 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 X-밴드 레이더는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분류되며, 미국 전략사령부의 전략지휘를 받는다(「AN/TPY-2 FORWARD BASED MODE(FBM) RADAR OPERATIONS」, 23쪽. 2012. 4. 16).

터키나 일본에 배치되어 있는 사드 레이더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드 레이더가 생산하는, 미국을 겨냥한 중국과 러시아 등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조기 탐지, 추적 정보가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사드 레이더가 탐지, 추적할 ICBM이 여러 전역과 지역을 통과하여 미 본토에 이르기 때문에 각 전역과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 전투사령부를 전략사령부가 통합 지휘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드 X-밴드 레이더가 제공하는 조기 탐지, 추적 정보에 의거하여 미국은 미 본토를 겨냥해 날아오는 중국과 북한의 ICBM을 1~2 차례 더 요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총 4~5회의 요격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 ICBM은 동북아 전역, 태평양 지역, 미국 본토 지역을 지나 미국 본토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들 ICBM의 추적과 요격 작전을 각 지역 전투사령부가 수행하고, 이 과정 전체를 전략사령부가 통합 지휘한다.

따라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면 주한미군이 운용하든 한국군이 운용하든, 이는 미국 본토에 배치되어 있는 GBI나 SM-3 Block ⅡA가 실전 배치될 경우 이지스 BMD함이 미국을 겨냥한 ICBM을 상승단계와 하강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도록 탐지, 추적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미국 MD의 한 구성 요소로 되는 것이다.

즉 앞서 캐슬린 힉스 미 국방 부차관이 제시한 대로 사드 레이더를 배치할 부지 제공만으로도 한국은 미국 MD에 전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사드 배치로 한국 MD가 종말 하층단계 방어에서 종말 상층단계, 중간단계 요격으로 그 성격과 임무가 전환되어 미국 MD에 참여하게 된다.

노무현 정권에서 최초로 소위 한국형 MD를 구축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한국 정권은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는 데는 종말 하층방어 체계가 효과적이라며 종말 상층방어 체계는 구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박근혜 정권도 “한국은 종말단계 하층방어 위주로 독자적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상층방어 체계인 사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한국군 KAMD와 미국 MD는 별개 체계”라고 강조했다(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2014. 5. 29).

그러나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게 되면 한국 MD는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기 위한 종말 하층방어 체계에서 북한과 중국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종말 상층방어 체계, 나아가 중간단계 방어 체계로 바뀐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는 미.일 본토와 오키나와, 괌, 하와이 등을 향해 날아가는 북.중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한 조기경보를 미.일에 제공해 미.일이 이를 요격하도록 지원하게 된다.

이때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의 탐지, 추적 범위는 남한을 겨냥한 북한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종말 하층방어에 필요한 탐지, 추적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미.일을 겨냥한 북.중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부스트 단계부터 종말 상층단계와 중간단계에 이르기까지 탐지, 추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한국 배치 사드의 주된 요격 대상은 남한을 겨냥한 북한 탄도미사일이라기보다는 중국 탄도미사일이다. 한.중, 미.중 교전 시 한국 배치 사드는 중국 동북부 등에서 주한미군 기지나 한국군 기지 등을 겨냥해 날아오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게 됨으로써 한국 MD의 요격 범위를 종말 하층단계 방어에서 종말 상층단계 방어로 확장시킨다.

게다가 한국 국방부와 합참이 입질하고 있고, 2015 회계연도 미국 의회 국방수권법안의 첨부 보고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이 SM-3 요격미사일을 도입(노컷 뉴스, 2014. 5. 30)하게 되면 한국군이 미일 본토와 오키나와, 괌, 하와이 등으로 날아가는 북한과 중국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상승단계에서 요격하는 임무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한국 MD의 역할이 종말단계에서 상승(중간)단계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SM-3 요격미사일까지 도입하게 되면 한국 MD는 요격미사일과 레이더에서 미국의 동북아 MD와 유사한 구성 체계를 갖추고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PAC-3의 종말 하층방어 체계, 사드의 종말 상층방어 체계, SM-3의 상승단계 요격을 아우르는 소위 다층방어체계를 구축하게 됨으로써 미국 지역 MD 체계와 구성 무기 체계, 임무, 역할 등에서 유사한 체계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면 한국 MD는 미국 MD에 편입되고 미일 본토 방어에 가담하게 되는 등 남한 방어 위주의 한국 MD의 성격과 임무가 미일 방어 위주로 바뀌게 된다.

넷째, 한국 MD 지휘통제체계(TMO-Cell)와 주한미군 지휘통제체계(TMO-Cell)를 연동하면 한국 MD가 미국 MD에 참여하게 된다.

   
▲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모습. 사드 배치는 한국의 미국 MD 참여로 예속적 한.미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사진출처 - 청와대]

한.미 양국군은 한국군 MD의 지휘통제체계(C2BMC)인 TMO-Cell과 주한미군 MD의 지휘통제체계인 TMO-Cell을 2016년 말까지 연동시킬 계획이다. 올 상반기까지 연동시킬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동아일보, 2016. 1. 23).

한.미 양국군의 지휘통제체계가 연동되면 한국은 굳이 사드를 배치하지 않더라도 미국 MD의 지역 체계로 통합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다. 주한미군의 TMO Cell은 미 태평양 사령부의 C2BMC(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와 미 본토의 북미사령부와 전략사령부의 C2BMC에 연동된다. 이에 주한미군 TMO-Cell과 연동되는 한국군 TMO-Cell도 미 태평양 사령부와 북미사령부, 전략사령부와 연동되어 미 전 세계 MD 체계 예하 70여 곳을 상회하는 C2BMC workstation의 하나로 편제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자국 MD 체계의 C2BMC와 동맹국이나 동반자 국가들의 C2BMC를 연동시켜 “미 본토 방어를 위한 모든 방면의 BMD 구조를 통합시키는, 단절 없는, 지구적 차원의 MD 체계를 구축”(미 국방성, 「BMDR」, 2010)하려는 미국의 전 세계 MD 체계 구축의 일환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군의 MD 지휘통제체계를 연동시키는 것은 패트리어트나 SM-3 요격미사일 등 특정 MD 무기체계의 도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한국 MD가 미국 MD에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휘통제체계의 연동은 예하 모든 MD 무기체계를 운용할 정보와 작전의 연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한.미 간 MD 정보와 작전에 대한 지휘통제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군의 MD 작전에 대한 지휘통제권을 주한 미7공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어 MD 작전에 대한 통합 수준은 미.일, 미․나토(유럽국가) 간 MD 통합 수준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미.일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독자적으로 MD 작전을 수행하며, 나토 회원국들도 전․평시 회원국들이 나토사령관(미군)에게 예속시킨 일부 전력을 제외한 자국군 전력 대부분을 직접 지휘한다.

이제 한국 MD는 미국이 제공한 무기체계로 미국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미군의 지휘통제 하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국의 전 세계 지역 MD 체계 중에서 미군에 가장 많이 예속된 하위 체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국 배치 사드는 주한미군 TMO-Cell로만 연동된다?

최근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이 사드 체계는 한국군 TMO-Cell로는 연동되지 않고 주한미군 TMO-Cell로만 연동되어 미군 독자체계로 운용된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또한 이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는 일본이나 미 본토와도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연합뉴스, 2016. 7. 25).

이러한 언론 보도 내용은 일단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는 미 본토 방어를 위해 주한미군 TMO-Cell을 경유하든 태평양 사령부의 C2BMC로 직접 전송되든 미 전략사령부와 북부사령부로 전송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미 본토와 아태 지역 미군을 지키는 데 기여하지도 않을 사드 체계를 한국에 배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가 남한을 겨냥한 북한 탄도미사일에 대한 정보에 국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 MD 지휘체계상 주한 미7공군 사령부를 지휘하는 태평양 사령부와 미국 전략사령부에 전송될 수밖에 없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를 미 본토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한국 국방부의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또한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가 미 태평양 사령부의 C2BMC나 주한미군 TMO-Cell로 전송되면 이는 미.일 통합 MD 지휘체계인 통합작전조정센터(BJOCC)로 전송된다. 미국과 일본은 2007년 체결한 ‘미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의거해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한국 배치 사드가 생산한 정보를 일본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한국 국방부의 주장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크다. 일본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가 자위대의 MD 지휘통제체계인 항공자위대의 항공총대 작전센터로 직접 제공되는 것에 비해 굴욕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하는 정보가 미 본토와 아태 지역 미군을 방어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물론 일본을 방어하는 데도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를 한국군 TMO-Cell로 직접 제공하지 않고, 한.미 양국군 TMO-Cell의 연동을 통해서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 정보가 한국을 방어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미 본토나 아태 지역 미군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는 정보일 개연성을 높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만약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생산한 정보가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정보라면 한국 TMO-Cell로 직접 제공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MD 체계가 이 사드 레이더 정보를 이용해 한국군 MD 자산으로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요격을 시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정보 제공이 지체되는 한.미 양국군의 연동체계가 아닌 한국군 TMO-Cell과 직접 연동할 필요성을 미국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군도 부지와 시설 등을 제공한 사드 레이더의 정보를 보다 빨리 이용해 남한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이런 사실로부터 한국 배치 사드 체계를 미군 단독 체계로 운영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혹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한.미.일은 이미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을 체결(2014. 12. 26~9)함으로써 미국을 경유해 한.일 간 MD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주한미군 TMO-Cell은 주일미군 TMO-Cell과 연동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뉴스 1, 2014. 12. 26).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 체결로 주한미군은 확보한 한국군 북한 핵미사일 정보를 주일미군을 경유해 자위대와 실시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한.미 MD 지휘체계의 연동은 이미 통합 MD 지휘체계(미일통합작전조정센터, BJOCC)를 구축한 미.일 MD 체계와 연동되어 한국 MD 정보가 일본에 실시간으로 제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를 다투는 MD 작전의 속성상 정보 공유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일 MD 지휘체계의 직접 연동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한.일 간 MD 정보 등의 제공을 법으로 구속하기 위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는 미.일 양국의 밀어붙이기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한.미.일 3국이 동북아 MD의 정보 및 작전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군사적․제도적 장치를 속속 정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김종대 의원의 한국의 미 MD 가입에 대한 자의적 해석

최근 김종대 의원은 국회 질의를 통해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더라도 한국이 당장 미국 MD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며(JTBC, “우리가 편입된다기보다는, 그거는 먼 훗날 얘기겠지만”), 2020년 이후가 되어야 미국 MD에 참여하게 된다고 주장(국회 속기록, 2016. 7. 19)하였다. 일부 매체들은 그의 발언을 인용해 “성주 사드, 2025년까지 미 MD에 편입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 의원의 이런 주장은 그가 인용한 2건의 미 행정부의 의회 보고서 내용과 다르며, 기본 팩트에도 어긋나는 내용으로, 사드 성주 배치로 한국 MD가 미국 MD에 편입된다고 여겨왔던 많은 언론과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그가 인용한 두 문건은 오히려 성주에 배치될 사드 1.0도 미국 중앙 메인 컴퓨터(전략사령부 C2BMC)에 연동되어 미국 전 세계 MD 체계 단말기(C2BMC workstation)의 하나로 되리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실제로 성주에 배치될 사드도 주한미군 TMO-Cell과 연동되어 당장 태평양 사령부(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와 미 본토 전략사령부의 C2BMC와 직접 연동된다. 또한 성주 배치 사드도 이미 2014년에 이 사드 레이더가 조기 탐지한 정보를 다른 사드 레이더(일본 등)에 전송할 수 있는 연동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GAO, 「Missile Defense」, 2015. 5).

따라서 사드 2.0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만 한국이, 한국 MD가 미국 MD에 편입된다는 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잘못된 주장이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한국이 먼 훗날(2020년 이후)이나 미국 MD에 참여하게 된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올해 한.미 양국군의 TMO-Cell이 연동되더라도, 2017년에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한국이, 한국 MD가 당장은 미국 MD에 편입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된다. 이는 사드 한국 배치에 따른 한국 MD의 미국 MD 참여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희석시키고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더라도 한국 MD가 미국 MD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한미 당국의 주장을 사실상 거들어 주는 셈이다.

<참고> 국회 속기록의 김종대 의원의 국회 질의 내용과 두 문건의 관련 내용과의 비교

김 의원의 주장은 위 문건을 곡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들은 “사드 1.0은 한 지역에서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초기 형태의 통합 방어를 제공”하며, “사드 2.0은 주로 소프트웨어를 강화하여 여러 지역에서 사거리를 달리하여 탄도미사일 위협을 방어할 수 있도록 사드 능력을 확장”시킨다고 밝히고 있다(GAO, 「Missile Defense」, 2015. 5).

또한 사드 2.0의 능력으로 “다른 BMD 자산이 제공하는 센서 자료로 사드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것”, “사드 발사대의 원거리 작전을 통한 방어 지역 확대”, “이지스와 패트리어트와 지역 차원의 P2P 방식의 교전 조정, “다른 BMD 구성 요소들과의 연동을 유지하기 위한 업그레이드“ 등 9가지를 들고 있다. 사드 2.0 능력은 2.0, 3.0, 4.0, 5.0 등의 독립적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달성되며, 2021 회계연도 2분기까지 5.0의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4분기에 성능을 테스트한다는 것이다(미 국방부, 「2016 회계연도 대통령 예산안」, 2016. 2).

이러한 문건 내용에 비춰볼 때 “투 익스팬드(to expand), 즉 확장한다”는 그의 주장은 “여러 지역에서 사거리를 달리해 탄도미사일 위협을 방어할 수 있도록 사드 능력을 확장시킨다”는 내용을 “7개 포대가 다른 모든 미사일 방어 자산과 연동되는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라고 곡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링크 16이라는 데이터 통신체계를 통해 외부 소스에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통합 미사일 방어체계로 통합된다”는 그의 주장은 “링크 16에 기반한 BMD 체계 트랙에 의거해 발사함으로써 사드 포대 외부의 BMD 자산이 제공한 센서 자료를 사용해 교전을 시작하고 사드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능력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곡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의 요격미사일 발사를 이른바 ‘원거리 발사(LOR)’, ‘원거리 교전(EOR)’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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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도 떨어져, 유가족들이 출장 기차표 끊어주기도

세월호 참사 직후 트위터 상에서 인위적으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유가족들을 폄훼하는 게시 글이 늘어난 사실도 조사 대상이다.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1~2개의 ‘조장’ 계정이 글을 올리면 수십 개의 ‘조원’ 계정이 이를 리트윗하며 퍼트리는 방식의 여론조작 정황이 세월호 특조위 용역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런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하려 했는지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세월호 특조위에 충분한 활동기간을 보장하고 특조위 조사활동에 적극 지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세월호 유족비난 트위터 여론, ‘팀 플레이’ 흔적 발견 

마지막 키는 국회에

정부가 조사 종료를 통보한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국회의 손에 달려 있다. 야당 의원들은 20대 국회 들어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4건 발의했으나 정부·여당의 반대와 여러 현안에 묻혀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조위 관계자는 “제일 우려되는 상황은 한 9월 쯤 가서 여야가 ‘올해 12월까지 하자’고 절충하듯 합의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예산이 배정되지 않는 7월부터 9월까지 사실상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선심 쓰듯 3개월을 보장받으면 어떤 조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린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은 특조위를 진짜 세금도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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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사드배치, 최저임금 국회서 결정하라”

 
원외지만 국민속으로 들어가는 정치를 지향…기성정당들은 좀 배워
 
임두만 | 2016-07-31 10:56: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미 군 당국은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 방어책으로 한반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시스템 배치를 확정하고, 사드 배치지역을 경북 성주의 성산포대로 정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 같은 발표가 나온 즉시 전 국민은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 목소리들을 내면서 국론은 분열을 넘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이들 목소리는 ‘한반도에 사드는 원천적으로 필요없다’며 반대하는 원천 반대, ‘사드 배치는 반대하지 않으나 그 지역이 성주는 안 된다’는 조건부 반대, ‘성주만 아니고 다론 곳은 좋다는 것은 님비’라는 공격성 대립 등이 그것이다.

▲민주당(대표 김민석)이 전국 순회 홍보용으로 제작한 트럭… 사진제공 : 민주당 공보팀

하지만 이런 국론 분열에 대해 정부도 정치권도 거의 속수무책이다. 야권은 사드 배치 같은 문제는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사드 배치 문제는 국회비준 사항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으면서도 여야 모두 국론 분열에 대한 해결책이나 치유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이 같은 무능은 비단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특히 최근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박준성)가 정한 2017년 적용 최저임금(안)에 대한 국론분열도 무시할 수 없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전년대비 440원(7.3%)이 인상된 시급 6,470원으로 의결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이를 월 단위로 환산(주 40시간 기준 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하면 1,352,230원으로 전년대비 91,960원 인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발표는 어디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둔 극한 대립은 올해도 같은 모습이다.

특히 이 결정이 나올 당시 노동계 위원은 모두 불참했다. 따라서 말만 위원회의 결정이지 실상 정부와 사용자만의 결정이다. 노동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차체에 이름만 위원회인 최저임금위원회를 폐지하고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민주당(대표 김민석)은 이런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공격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비록 국회 의석이 없는 군소야당이지만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매우 울림이 있다.

민주당은 29일부터 전남 영암의 월출산 자락에서 핵심 당직자 워크샵을 갖고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와 최저임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전 및 국민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30일 목포 평회광장에서 그 첫 행사를 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홍보용 탑차를 제작, 양 옆면에 ‘사드배치 국회비준, 최저임금 국회결정’ 표어를 붙이고 전국을 순회하며 홍보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오는 8월 1일부터 21일까지 20일간 연령 학력 성별 구분없이 전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한 ‘사드 반대 스마트폰 영화제’를 개최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드반대 영화제 홍보 포스터 © 임두만

이 영화제는 누구라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라는 목적을 담아 제작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 즉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최소 15초 최대 5분짜리 영화를 유투브에 업로드하고 민주당 사무처로 알리면 응모하는 것으로 하여 1등 상금 100만 원을 지불하는 영화제다.

한편 이 같은 행사를 기획한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성주에 살지 않은 ‘외부인’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정부 측 입장에 대해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주참외’라는 현수막을 단 과일행상 트럭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는 ‘jurisdiction(관할권 또는 법정지)’이란 단어를 말하면서 ‘성주에서 태어났어도 외지에 나가 살면 외부인’이라고 말한 강신명 경찰청장의 말을 “거의 부모도 몰라보는 수준의 패륜을 부추기는 이들의 통통 튀는 무식과 무도의 한심함”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쟁범죄 등 반인륜적 범죄는 통상적 이론을 뛰어넘어 어디서든 언제든 기소할 수 있는 universal jurisdiction(보편적 관할권)이란 것이 있다”면서 “우리 모두는 공동체의 장래가 달린 사드 문제에 보편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특히 그는 “이런 문제에 관할권이 어디 있고 외부인이 어디 있나. 성주가 대한민국 외부에 있나? 성주군민이 대한민국 외부인인가?”라며 “나라와 민족의 장래, 이웃의 고통과 항변에 관심과 연대를 표하는 지극히 정상스런 인지상정에 외부인 어쩌고 하는 것은 헛소리”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울림 있는 행사와 정치행위, 원내정당이라는 주류 정치권은 눈여겨 보아야 할 것 같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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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장관, ‘8월 한미군사연습 강행’ 확인

미 육군장관, ‘8월 한미군사연습 강행’ 확인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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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31  0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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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30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고위당국자가 오는 8월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강행 방침을 확인했다.  

30일 <AP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조바루를 방문 중인 에릭 패닝 미국 육군 장관은 ‘28일 한성렬 북한 외무성 미국국 국장이 한.미의 8월 군사연습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예고’한 데 대해 질문을 받고 “그 군사연습은 현재 계획한대로 진행 중”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비롯한 지역 내 다른 많은 나라들과 수십년간 군사연습을 실시해왔다”면서 “그러한 군사연습들이 부분적으로 2차 대전 이후 우리가 목격하는 안정을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닝 장관의 공보관인 크리스 오파드는 “(UFG는) 통상적이고 방어적인 연습으로,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지역을 보호하며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은 22일부터 26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지난해(8.17~28)에 비해 대폭 단축됐다. ‘평화의 제전’인 리우올림픽이 현지시간 5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에 따르면, 패닝 장관은 미국이 육군을 축소하고 있음에도 아태 지역 주둔 미군과 군무원은 2012년 7만명에서 2016년 7월 현재 10만명으로 늘였다고 강조했다. ‘아태 재균형’ 정책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패닝 장관은 지난 5월에 현직에 취임했다. 연합군사훈련 참관차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뒤 30일 일본으로 이동했으며,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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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본관 공권력 투입, 학생들과 충돌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이화여대 총학생회
 

30일 오후 1시경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경찰은 학교측과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중이던 학생들을 방패로 밀어내고 일부 학생들을 이동시킨 후 본관 내부에 있던 교수와 교직원등 4명을 건물 밖으로 빼낸 후 현재는 모두 학교 밖으로 물러난 상황이다.

경찰 병력이 투입되자 학생들은 "대화를 원한다, 폭력 경찰 물러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치했다. 경찰은 방패로 학생들을 밀어내고 통로를 만들었다. 여경들은 일부 여학생들을 끌어내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학생 십여명이 타박상 등 부상을 당했다.

교내에 투입된 경찰병력은 여경 1개중대를 포함 800여명이었다. 병력 투입당시 이화여대 본관에는 200여명 남짓한 학생들이 농성중이었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학교측에서 시설 및 요인 구조요청으로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출동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중이던 이화여대 학생 십여명이 30일 교내에 투입된 경찰과 충돌에서 부상당했다.
농성중이던 이화여대 학생 십여명이 30일 교내에 투입된 경찰과 충돌에서 부상당했다.ⓒ독자 제공

앞서 이화여대 학생들은 지난 28일 오후 2시에 열린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폐기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학 본관 1층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학 법대 교수인 김모 대학평의원회 간사, 신모 교수, 서모 교수, 교직원 1명 등이 회의실에 남겨졌다. 학교측은 학생들의 농성을 이들에 대한 감금 행위로 보고 경찰측에 보호 요청을 했다.

농성을 진행중이었던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교에 경찰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사회적 통념이 있는데 그걸 무시한 채 많은 병력을 데려오면서까지 대응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학생들은 총장과 대화를 촉구하며 평화적 농성을 벌이고 있었는데 총장은 오지 않고 경찰이 투입된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이화여대 총학생회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 본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이화여대 총학생회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농성 중인 학생을 끌고 나가는 경찰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농성 중인 학생을 끌고 나가는 경찰ⓒewhasavesave 인스타그램
30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 중인 본관 건물로 진입하는 경찰
30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 중인 본관 건물로 진입하는 경찰ⓒewhasavesave 인스타그램
30일 이화여대 교내로 들어온 경찰
30일 이화여대 교내로 들어온 경찰ⓒewhasavesave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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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다시 보자" 참외밭 뭉개버린 농심

 

[현장] 성주 참외밭, 쑥대밭 되던 날

16.07.30 20:27l최종 업데이트 16.07.30 20:49l

 

참외가 뭉개졌다. 자식처럼 키워온 참외밭을 갈아엎은 농민들의 가슴도 뭉개졌다. 

동틀 무렵,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초록빛 참외도 트랙터 바퀴에 깔려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세상 고요하던 성주 땅에서 '사드 기염'을 보았다. 

참외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린 날, 시간순으로 사진을 배열한다.
▲ 동트는 '성주 참외' 마을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마을에 30일 새벽 동이 트고 있다. '성주 참외' 짓는 비닐하우스가 빼곡한 마을 뒤편 정상에는 성산포대가 위치하고 있다. ⓒ 남소연
▲ 깊어지는 참외농가의 '시름'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성산포대가 위치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이 지역 특산품인 '성주 참외'를 내는 농가에선 "전자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남소연
▲ 새벽부터 밭일 나선 노부부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이 마을 비닐하우스에선 새벽부터 참외 수확이 한창이다. ⓒ 남소연
▲ 수줍게 눈짓하는 초록빛 참외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전국적으로 유명한 '성주 참외'가 이 마을에서 자라고 있다. ⓒ 남소연
▲ '성주 참외'로 유명한 초록지대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성주 참외'를 생산해내는 이 마을은 대표적인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 남소연
▲ 세상 고요하던 성주 땅에... 사드?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성산포대(왼쪽 산 정상)는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마을에 인접하고 있다. ⓒ 남소연
▲ 트랙터 동원한 성난 농심 성주 농민들이 30일 오전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참외밭에 트랙터를 끌고 삼삼오오 모여 있다. ⓒ 남소연
▲ 자식같은 참외밭을... 사드(THAAD)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농민들이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트랙터로 참외밭을 갈아엎고 있다. 참외밭 너머 오른쪽 뒷산에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성산포대가 위치하고 있다. ⓒ 남소연
▲ 내동댕이쳐진 '성주 참외' 사드(THAAD)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농민들이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트랙터로 참외밭을 갈아엎고 있다. ⓒ 남소연
▲ 참외가 토한 '사드 기염'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참외밭에 수확을 앞둔 노란 참외가 짓뭉개져 있다. 성주 농민들은 이날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동원해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남소연
▲ 빨간 트랙터 앞에 노란 참외 사드(THAAD)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농민들이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트랙터로 참외밭을 갈아엎고 있다. ⓒ 남소연
▲ 하얀 속살 드러낸 성주 농심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참외밭에 수확을 앞둔 노란 참외가 짓뭉개져 있다. 성주 농민들은 이날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동원해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남소연
▲ 그 시절 표어도 상기시킨 "박근혜도 다시 보자"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박근혜도 다시 보자"고 적힌 플래카드가 보인다. ⓒ 남소연
▲ 초록마을 붉은물결 사드배치 부지로 결정된 성산포대가 위치한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마을에 '사드배치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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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는 한계…"특검으로 법조 비리 밝혀내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7/30 12:11
  • 수정일
    2016/07/30 12:1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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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부 못 찌른 檢…진경준·홍만표 모두 '개인비리'

검찰 수사로는 한계…"특검으로 법조 비리 밝혀내야"

진경준 검사장 사건을 수사해온 이금로 특임검사가 2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진 검사장을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제3자뇌물수수·위계공무집행방해·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전·현직 검사장이 연루된 '법조 비리' 사건이 모두 '개인 비리'로 일단락됐다. 검찰은 진경준(49) 검사장과 검사장 출신 홍만표(57) 변호사를 모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행했지만, 정작 검찰 조직 내부로는 칼을 찌르지 못했다.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지난 29일 넥슨 창업주 김정주(48) NXC 회장으로부터 넥슨 주식과 차량, 여행경비 등 모두 9억 5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진 검사장을 구속기소했다.

특임검사팀은 "진 검사장이 김 회장에게 구체적으로 법률 자문을 해주거나, 넥슨 관련 사건을 알아봐준 정황이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사건이 부당하게 처리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06년 넥슨은 불법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의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의 지분 55%를 갖고 있었지만 수사에선 비껴갔다. 당시 진 검사장은 법무부의 요직인 검찰국 검찰과 소속으로 근무했다. 

진 검사장이 김 회장으로부터 주식 매입 자금 4억 2500만원을 공짜로 받아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매입한 시점은 2005년 6월이었다. 넥슨이 수사선상에 오를 뻔 했을 때 진 검사장은 이미 김 회장과 '주식 뇌물 거래'로 묶인 특수한 관계였다. 

진 검사장이 바다이야기 수사 담당 검사 등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왔지만, 특임검사팀은 '비리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담당 검사를 조사하고 여러 기록 등을 검토해봤지만,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0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관련 내사를 무혐의 종결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당시 진 검사장은 무혐의 처분을 내린 후 한 달이 지나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서용원(67) 한진 대표를 만났다. 진 검사장의 요청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진 검사장은 서 대표에게 자신의 처남 강모씨의 청소용역업체에 한진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달라고 요구했고, 서 대표는 높은 직위를 가진 검사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아래 진 검사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특임검사팀의 설명대로라면 진 검사장이 아무런 대가성 없이 한진 사건을 적법하게 처리한 후 제발로 한진 측을 찾아가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인데, 진 검사장이 어떤 근거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어 의구심만 증폭되고 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앞서 검찰은 지난달 20일 정운호(51)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검사장 출신 홍 변호사를 구속기소하면서도 '실패한 전관 로비'라고 판단했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상습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정 전 대표의 사건을 맡으면서 당시 최윤수(현 국가정보원 2차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사무실을 두 번 찾아가고 최소한 6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러나 최 차장이 엄정 수사를 지시해 홍 변호사의 로비가 통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검찰은 홍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고 62건을 '몰래 변론'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지만, 홍 변호사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애당초 검찰이 제 식구를 수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잘 봐달라는 식으로 청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를 받은 검사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드러나기 어렵다"며 "내부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특임검사가 법조 비리를 밝혀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정 전 대표와 홍 변호사, 진 검사장,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 모두 칼끝이 검찰 내부를 향하는 일인 만큼 법조 비리를 밝혀내려면 특검(특별검사제도)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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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까지 1년5개월, “모든 절차 중단하고, 원점서 재논의해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에 열린 주민들과의 의견청취 자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에 열린 주민들과의 의견청취 자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정부·여당이 사드배치 발표 후 ‘성주안전협의체’ 구성 등 사드 관련 대책을 제안하며 성난 성주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부는 내년 말까지 사드배치를 완료하겠다는 목표로 추진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성주 민심을 달래며 사드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배치와 관련된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드배치 완료까지 남은 기간 1년 5개월
앞에서 달래고 뒤에서 밀어붙이기

한미 군 당국은 지난 13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방부와 정부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군 당국은 사드배치지역 발표 후 성산포대를 미국 측에 공여(供與)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 부지에 대한 설계도를 만들고 이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도 시행한다. 설계도 작성과 환경영향평가 과정이 각각 수개월이 걸리는 것을 고려해서 내년 말까지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 가급적 빨리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국방부는 어떤 단계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한미 군 당국이 SOFA 시설 구역 분과위원회를 열어 우리 방공 기지인 성산포대를 미국 측에 이전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하려는 단계로 보고 있다.

사드 발사대 1기 모습(자료사진)
사드 발사대 1기 모습(자료사진)ⓒ미 미사일방어국 공개 사진

다른 한편에서 정부·여당은 성주 지역주민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안전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사드 배치 전·기지 공사 중·배치 후까지 3단계에 걸친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고, 새누리당은 주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미군·새누리당·성주군 등이 참여하는‘성주안전협의체’ 구성과 국회 청문회를 제안하는 등 사드배치 관련한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1인당 1만 원씩 성주 참외를 구매하자”는 내용의 성주 돕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여당의 제안 또한 사드배치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사드철회를 촉구하는 성주군민들에게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주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 백철현 공동위원장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놓은 대책들은 모두 사드를 배치하고 하겠다는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플레이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사드배치 철회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주군민은 어떠한 정부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일방통행’ 정부, 사드배치 철회 방법은?
“모든 절차 중단하고, 원점서 재논의해야”

성주 주민들이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사드배치와 관련한 긴급현안 대정부질문을 참관하고 있다.
성주 주민들이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사드배치와 관련한 긴급현안 대정부질문을 참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정부·여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드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역할과 법적대응이 필요성이 강조된다. 국가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사드배치 여부를 재결정하자는 요구와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드배치를 결정한 상황에 대한 법적대응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헌법 60조에 따르면 국가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 주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명기하고 있다”면서 “북한 미사일 방어에 무용지물이고 중국과의 외교마찰로 인한 문제, 사드 레이더로 인한 건강상의 위해성 등을 우려가 있는 사드배치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국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위해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사드배치에 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국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대 의원은 “사드배치 발표 후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특위구성과 비준동의를 추진하는 것이다. 여소야대인 상황이기 때문에 더민주의 협조만 있다면 사드 논의 중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6일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새누리당 장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근조 개누리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26일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새누리당 장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근조 개누리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성주군민과 법률단체 등은 향후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과정에서의 행정절차 위법 여부 등을 따져 물을 계획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사드배치 발표 과정에서 국방부 등은 공청회 등의 주민동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이는 행정절차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성주투쟁위는 법률자문단 함께 사드배치 과정의 위법사유 등에 대한 법적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성주투쟁위 정영길 공동위원장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인 사드배치 결정을 성주군민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여당은 사드배치를 전제로한 회유책을 그만 내놓고, 사드배치와 관련해 원점에서 재논의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주군청에서 매일 저녁 주민 1000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사드배치 철회 촛불집회’가 16일째 이어지고 있다. 또 사드 반대 상경집회 등 성주군민의 반대 입장을 전하기 위한 공동행동과 사드 철회를 위한 백악관 서명운동 등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관련기사:[카드뉴스] ‘사드배치는 사형선고’ 성주군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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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터키쿠데타 실패는 미국 패권붕괴 상징

브렉시트와 터키쿠데타 실패는 미국 패권붕괴 상징
 
 
 
정기열 칭화대 교수 
기사입력: 2016/07/30 [01: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원제: 브렉시트(Brexit), 터키쿠데타, 무너지는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I부

                           정기열(중국칭화대학 초빙교수, The 4th Media 발행인 겸 편집인)

 

▲ 쿠데타 탱크를 에워싸고 꼼짝 못하게 하는 터키 시민들     ©자주시보

 

 

들어가는 말 

 

2016년 7월 15일 터키에서 발생한 군부쿠데타가 일일천하(一日天下)로 막 내린 지 열흘이 지났다. 지구촌엔 그간 “실패한 터키쿠데타”(이하, 실터쿠) 관련 형형색색의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터쿠가 정확히 뭔지 여전히 모르는 이유일 것이다. 정확한 상황파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5년 2차세계대전 뒤 워싱턴시각을 앵무새처럼 전하는 서방주류언론매체들 덕이다. 70년 워싱턴대변인 노릇하는 서울, 일본 주류매체들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던 쿠데타 관련 상황 파악은 그러나 사건 발생 열흘 쯤 지나며 대강 전모가 드러났다. 쿠데타 배후가 누구며 전후 사정이 무엇인지 거의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할 이 소고는 실터쿠 관련하여 주로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쿠데타 관련 전후 사정을 상세히 다룬 글은 아니다. 대신 주류언론매체들이 거의 다루지 않는 터키의 국제지정학적 중요성과 직결된 격변하는 오늘의 지구촌 정세를 주로 다뤘다.

 

쿠데타 관련 복잡한 이런저런 잡동사니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나면 실터쿠 관련 대강 아래와 같은 하나의 큰 그림이 드러난다.

 

 

무너지는 미국의 세계지배질서: 브렉시트, 터키쿠데타 모두 미국에겐 ‘실패한 쿠데타’

 

서구제국주의세력의 500년 세계지배를 상징하는 미국의 ‘제국적 세계질서’(Imperial World Order)가 무너지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미소냉전시대가 1990년대 초 종말을 고한 뒤 존재한 “세계유일초강국” 시대 곧 워싱턴의 일극적(Unilateral) 세계지배시대가 붕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소련방/동구권 붕괴 뒤 더욱 확대, 강화된 듯 보인 미국의 대표적인 유럽지배군사조직 나토(NATO)의 운명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경에 달했음을 뜻한다. 미국의 또 다른 유럽지배조직인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경각에 달리게 만든 2016년 ‘브렉시트’(Brexit)와 약 3주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실터쿠는 오늘 워싱턴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500년 세계지배질서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웅변하는 대표적 실례들이 아닐 수 없다. 

 

향후 21세기 지구촌정세 관련 브렉시트, 실터쿠가 갖는 국제정치경제군사전략적 의의가 자못 큰 이유다. 앞이 주로 정치경제문화적 측면에서라면 뒤는 주로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그렇다. 두 사건 다 향후 지구촌정세의 대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일극적 지배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지하듯 미국은 마지막까지 발버둥쳤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오바마는 런던까지 날아가 당시 카메론 총리를 압박 그의 기존 입장을 바꿨을 정도다. 과거 ‘대영제국’ 영국도 결국 ‘미국 식민지’에 다름 아니었음을 영국민은 물론 온 세상에 결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브렉시트 또한 워싱턴이 마지막까지 “올인”(All-in)했던  또 하나의 ‘미국 주도 쿠데타’가 실패한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 붕괴를 시작한 워싱턴의 세계지배구도는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미국에게 “실패한 쿠데타들”에 다름 아닌 브렉시트, 실터쿠는 미국의 유럽과 중동지배전략에 결정적 균열이 발생했음을 뜻한다. 회복이 결코 쉽지 않은 전략적으로 대단히 치명적인 실패다. 브렉시트가 유럽대륙에 대한 워싱턴의 지배질서구도에 결정적 균열을 발생시킨 것이라면 실터쿠는 중동 특히 이슬람권에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라 정의해서 틀리지 않다. 물론 후자는 전자와 달리 주로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다.

 

핵심은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곧 분열이간책 혹은 각개격파전략이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결정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 실터쿠 두 사건은 그러나 어제 오늘 끝없이 무너지고 있는 미국의 세계지배질서를 극명하게 조명하는 지난 몇 년 거듭 발생하는 미국의 숱한 ‘실패한 쿠데타들’ 가운데 하나다.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 시리아, 중남해 그리고 오늘 한(조선)반도 사드배치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 계속되는 미국의 실패한 쿠데타이야기는 II부에서 좀 더 자세히 다시 짚어볼 것이다. 
 

 

브렉시트, 실터쿠(실패한 터키 쿠데타)는 근본에서 같은 문제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무너지고 있다는 차원에서 브렉시트, 실터쿠는 따라서 서로 다른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둘은 근본에서 같은 문제다. 그것들을 조미대결, 러미대결, 중미대결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하는 이유다. 오늘 더욱 확대강화되고 있는 21세기 지구촌반제자주전선을 대표하는 세 대결은 주지하듯 미국의 일극적 세계지배구도를 끝없는 위기에로 내모는 핵심 주체들이다. 브렉시트, 실터쿠는 따라서 앞에 언급한 세 대결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둘 다 우크라이나쿠데타(이하, 우쿠), 시리아, 이란, 실터쿠 등으로 세계핵대전 일보직전까지 몰려가 있는 러미대결, 그리고 화폐전쟁, 중일분쟁, 중남해, 사드 문제 등으로 역시 일촉즉발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중미대결과의 상호 연관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예를 하나 들자. 중러 주도의 BRICS, SCO, EEU, AIIB는 미국의 세계지배질서를 허물고 있는 (박근혜표현법에 의하면) 소위 ‘불순세력’들이다.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가 그중 좋은 예다.

2015년 3월 미국의 열화 같은 반대에도 영국이 창립발기인으로 AIIB에 먼저 뛰어든 사건을 말한다. 물론 독일, 프랑스도 뒤따랐다. 미국 눈치 보던 그들도 영국이 뛰어들자 뒤질세라 참가한 것이다. 따라서 2015년 영불독의 AIIB 참가, 2016년  브렉시트 역시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 또한 근본에서 모두 같은 문제들이다. 미국의 세계지배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차원에서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이다. 그것도 제3세계 나라가 아니라 유럽 한복판 그 중에도 유럽 핵심 맹방 중 하나인 영국에서 발생한 브렉시트가 갖는 인류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브렉시트는 한편 2차세계대전 직후 탄생한 “영미제국”(Anglo-American Empire)이 사망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미국, 영국 두 나라 모두에게 일종의 사망선고 같은 것이었다. 브렉시트가 미국의 세계지배질서가 근본에서부터 붕괴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21세기 최대 국제정치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한편 1945년 영미제국 탄생으로 잠시 생명이 연장됐던 대영제국이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미래 운명을 놓고 영불독 AIIB참가, 브렉시트, 실터쿠 등 그들 모두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마련할 지구촌반제자주전선의 확대강화란 측면에서 그들 모두 다 대단히 의미가 큰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이슬람권의 대표적 친미국가 터키에서 왜 난데없이 “정권교체”를 시도했나?

 

미국의 세계질서 붕괴라는 큰 그림 무엇인가를 붙들고 씨름한 I부를 끝맺기 전 실패한 터키 쿠데타 관련하여 간단하게라도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이슬람권 대표적 친미사대국가인 터키에서 “미국은 왜 난데없이 정권교체를 시도했을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핀잔 들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실터쿠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소리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반세기 넘게 이슬람권에서 대표적 ‘미국충견’ 노릇한 터키가 난데없이 적진(敵陣: 러시아, 시리아, 이란)으로 도망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결정적 순간에!

 

6월 27일 에르도안 터키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2015년 11월 말 발생한 러시아전투기격추사건 뒤 처음으로 공식사과를 했다. 격추사건 뒤 미국을 등에 업고 마치 러시아와 전쟁이라도 벌일 듯 의기양양했던 터키가 갑자기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하였고 시리아침략전쟁이 ‘미국패배’로 귀결되어가면서 터키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즉, IS(이슬람국가)로 대표되는 국제테러세력을 앞세워 벌인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미국 대신 총대 메고 앞장섰던 터키가, 러시아는 무섭게 압박하는데 미국은 시리아 등 중동에서 맥을 추지 못하게 되어 진퇴양난에 빠졌고 그때 쿠데타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푸틴은 사과를 표하고 도움을 호소한 에르도안에게 무엇보다 먼저 시리아 아사드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 에르도안의 ‘공식사과’ 사건은 5년 차로 접어든 미국 이스라엘주도로 시리아 내부 붕괴를 노린 전쟁이 2015년 9월 러시아,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의 전격적인 군사개입으로 벽에 부딪히며 교착상태에 빠진 결정적 순간 핵심 주체 중 하나였던 터키가 적진으로 투항한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푸틴이 미국 주도의 시리아전쟁을 단번에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푸틴이 터키 에르도안에게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도록 주선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푸틴의 이러한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은 나토 연합세력의 패권전쟁을 단번에 궤멸시키려는 회심의 수였다. 푸틴은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던 것이다.

 

결정적 순간 터키를 적진으로 투항케 만든 배경엔 그러나 에르도안 자신의 현실인식 또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 영,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정보조직들인 CIA, MI6, Mossad가 주도해 만든 IS 같은 다국적 수니파이슬람테러조직들 앞세워 벌인 ‘대리전쟁’(Proxy War)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미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수족 같이 쓰던 터키, 사우디를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터키를 적진으로 투항케 만든 결정적 배경이었다. 미국의 보복이 따를 것을 익히 알면서도 에르도안이 푸틴 권고를 피하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이것이 급조된 터키쿠데타 발생의 핵심 배경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미국의 터키에 대한 보복은 ‘사과 사건’ 정확히 3주 뒤 돌아왔던 것이다.

 

쿠데타 발생 이틀 직전 7월 13일 일드림 신임 터키 총리는 시리아와 관계개선에 나설 것을 온 세상에 선포했다.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와 함께 수니파이슬람근본주의에 기초한 극단적 형태의 국제테러조직 만들어 4년 넘게 시리아를 ‘피바다’로 만든 핵심 나라 중 하나였던 터키가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러시아,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을 선포한 터키를 워싱턴이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답은 자명하다. “터키쿠데타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는 분석은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닌 것이다.

 

쿠데타가 하루도 못 가 끝난 배경이 속속 밝혀지면서 ‘미국배후설’은 부동의 진실처럼 됐다. 쿠데타 직전 관련 정보를 러시아가 터키에게 건네줬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실터쿠 직후 푸틴은 에르도안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무운과 성공을 빌었다. 이란정부도 에르도안 정부를 지지하고 나섰다. 실터쿠는 시리아침략전쟁의 끝이 보이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 터키 쿠데타군을 순식간에 제압한 터키 시민들, 하지만 서방 주류언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자작극이일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자주시보

 


“언제나처럼 배후엔 미국이 있었다”

 

한국전쟁을 대표적 사례로 2차대전 뒤 70년 넘게 발생한 세상 주요 국제문제 속엔 ‘언제나처럼 미국이 배후에 있었다’는 점은 수없이 사실로 확인되었고 미국도 스스로도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국제문제의 심판자로 행동해왔다. 2016년 실터쿠 배후에도 언제나처럼 미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터쿠 관련 세상주류매체들은 핵심 사안에 속하는 미국배후설은 대부분 굳이 애써 비껴갔다. 본질은 덮는 대신 주로 지엽적 문제들에 대부분 지면을 할애했다. 
재미있는 점은 진보독립언론매체들이 9/11테러와 같은 제국주의자들의 자작극 범죄를 폭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데 사용했던 “거짓깃발”(False Flag)이란 용어를 친미진영 주류매체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 주류매체들이 대부분 이번 사건이 “에르도안 자작극”이라며 거짓깃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쿠데타 발생 뒤 반대세력에 대한 ‘대규모 숙청작업’이 증거라며 에르도안이 “정적 제거를 목적으로 벌인 거짓 쿠데타 곧 거짓깃발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국제진보매체들의 용어(거짓깃발)까지 사용하며 자작극이라 주장하는 주류매체들의 분석은 과연 옳은가?


글쎄 하난 맞고 둘은 틀리다 답해야 할 것 같다.


왜? 어떻게? 무슨 근거에서? 그러면 실제 배후는 누구란 말인가? 
터키쿠데타에 가담한 2명의 공군기조종사들이 단추만 누르면 손쉽게 없애버릴 수 있었던 대통령암살에 왜 실패했는가? 
미국에 망명한 훼툴라 굴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터키 에르도안 진영에서 그와 함께 CIA가 쿠데타 핵심배후로 지목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쿠데타는 어떻게 하루 만에 진압될 수 있었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러나 한편 간단하다. 미국 배후 쿠데타 정보를 러시아가 앞서 밝힌 것처럼 쿠데타 직전 터키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실터쿠 관련 에르도안은 일종의 도박을 한 것이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쿠데타를 막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쿠데타가 발생하도록 내버려뒀다. 마치 범을 잡기 위해 범의 굴로 뛰어든 격이랄까. 그는 한편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쿠데타는 실제 발생했다. 서방주류매체 대부분이 주장하는 자작극으로서의 거짓쿠데타가 아니었다. 실제 쿠데타였다. 그러나 터키정부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면서 2016년 군부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가 예견된 쿠데타였던 셈이다.

 

실터쿠 관련 그러나 세상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터키를 도운 사실이다. 누구도 선뜻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 사건이 미국-터키 관계에서 발생한 지난 70년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는 메가톤급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친미사대국가로 중동지역 유일의 나토회원국이자 2차대전 뒤 줄곧, 특히 냉전시기 내내 미국, 이스라엘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한 터키가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 위기 속에서 거꾸로 러시아에 의해 되살아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미국과 터키 사이에 지난 한 두 달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등등에 대한 이야기는 II부로 미루자. 
그러나 I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이 있다. 앞에서 누차 언급한 것처럼 실터쿠가 약 한달 전 발생한 브렉시트와 함께 오늘 급격히 무너져내리는 미국의 세계지배질서를 대표하는 시대 상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오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II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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