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 관계자는 “부정선거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되고, 이들 세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고 최근의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김, 검찰 수뇌부와 비화폰 통화 후 '셀프 출석'..."검찰, 경호처 수사 그래서 막나"
25.02.07 22:13l최종 업데이트 25.02.07 22:20l 김성욱(etshiro)
검찰이 비상계엄의 스모킹건인 '비화폰(보안 핸드폰)'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비화폰을 써온 계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향한 경찰의 강제수사가 임박하자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나서 김 전 장관의 신병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서 확보하려 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방부 차관 "12월 6일 심우정 총장이 전화, 김용현 전 장관 연락 방법 문의"
국회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의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6일 경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찰에 신청하자, 심 총장이 당일 저녁 김선호 국방부 차관에게 직접 전화해 김 전 장관에게 연락할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김 차관은 6일 국회 국조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심우정)검찰총장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해달라고 해서, 제가 (김용현)전 장관께 전화를 드렸다"라며 "전화번호를 주시면 제가 (심 총장에게)알려주겠다고 했고, (김용현)장관께서 번호를 알려주셨다"고 했다.
이때 김 전 장관이 일러준 번호는 그가 갖고 있던 비화폰 번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5일 면직됐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비화폰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이 번호로 김 전 장관에게 문자를 보냈고, 김 전 장관이 이 차장에게 전화를 걸면서 둘 사이 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김 전 장관은 검찰 쪽과 통화 후 하루 정도 뒤인 12월 8일 새벽 1시 30분께 검찰에 돌연 자진 출석했다.
이진동 차장은 6일 국회 국조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당시 김 전 장관 신병 확보가 제일 중요했다"라며 "수사팀에서 김 전 장관 설득이 잘 안 된다고 해서 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웠던 친윤 검사로 꼽힌다.
일각에선 이 차장과 김 전 장관간의 통화가 성사되기 전 윤 대통령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조특위에서 "(이진동·김용현 통화가 이뤄지기 전에)심 총장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소속)이찬규 부장검사에게 얘기해서 이찬규와 김용현과 통화가 됐는데, 김용현은 '대통령과 통화 후에 얘기하겠다'고 했다"라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에게 '김주현 민정수석과 협의하라'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국조특위에 출석한 김주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은 윤 의원 질의에 "김 전 장관의 출석과 관련해 전화 통화하거나 한 일은 없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출신인 김 수석은 비상 계엄 다음날 저녁인 12월 4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열린 '법조 4인 회동' 참석자 중 한 명이다. 계엄 수사 대응 작전을 짠 것 아니냐고 의심 받는 이 회동에는 김 수석 외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이 참석했다. 판사 출신인 이 전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검찰 출신이다.
"윤석열, 검찰 출석 김용현에 '민정수석과 협의하라' 했다" 주장 나와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셀프 출석' 하기 전 검찰 고위층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검찰이 최근 경찰의 비화폰 수사를 일부러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더 커지고 있다. 검찰은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두 번 연속 반려한 바 있는데, 비화폰 통화 내역을 포함해 계엄 수사가 확대될 경우 검찰 수뇌부에게 그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직 경찰은 7일 통화에서 "김용현 출석 전 상황을 보면 정황상 김용현 쪽이 아닌 검찰 쪽에서 먼저 움직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라며 "아무리 엄중한 사건이라 해도 검찰총장까지 등판해 피의자의 전화번호를 구해다 주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국회 국조특위 관계자는 "검찰이 김용현 수사 때부터 이미 수사 범위를 관리하고 있었음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라며 "김성훈 차장 구속이 뭉개지고 늦어지는 것도 비화폰 수사가 본격화되는 걸 검찰이 꺼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김성훈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서, 비화폰 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 전 장관 등 계엄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이 사용해온 비화폰은 경호처에서 관리하는데, 김 차장이 이끄는 경호처가 군사 비밀 등을 이유로 경찰의 비화폰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회 국조특위 관계자는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 공소장을 쓸 때도 '검찰'을 굳이 '수사기관'으로 표현해 애써 연관성을 차단하기 바빴다"라며 "검찰 입장에선 계엄 수사를 통제 관리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현재 김 전 장관이 비화폰을 사용해 검찰 쪽과 통화했던 부분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측은 김성훈 차장에 대한 세 번째 구속영장 신청 계획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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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들 사이에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선거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국민의힘에선 의원들 일부가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은 있지만, 당은 공식적으로 부정선거 주장과는 선을 그어왔다.
권 위원장은 6일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시스템에 대해 국민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투표 절차나 방법, 투표 제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민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부정선거 주장에 편승해 제도 변경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이 ‘부정선거 논란 해소 특별법’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선거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여론이 많고 부정행위를 우려하는 분도 많기 때문에, 선거 제도 자체를 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취지로 알고 있다”며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고 힘을 실었다. 박 의원은 ‘특별점검위원회’를 꾸려 최근 5년간 실시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투·개표 시스템을 점검하는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부정선거론자들이 폐지를 요구하는 사전투표와 관련해서도 “선거(운동 개시부터 투표일까지)가 2주 정도인데 사전투표를 하게 되면 10일 이내에 그분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과연 유권자들이 깊이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인지 의문이 있다”고 권 위원장은 말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부정선거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되고, 이들 세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고 최근의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6일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트럼프의 ‘가자지구 점령’ 구상을 규탄하는 시민사회. [사진-팔레스타인긴급행동]](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2/212724_106689_5229.jpg)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점령’과 ‘강제 추방’ 계획 강력히 규탄한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팔레스타인긴급행동)이 6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주한 미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힌 ‘가자 지구 점령’ 구상을 비판했다.
“가자 지구는 미국이 점령(take over)하고 소유(own)하겠다”거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다른 지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옹호하는 것이자, 미국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이라고 규탄했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은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원해온 미국이 바로 그 미국산 무기로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쫓아내겠다고 을러대는 것은 “제2의 나크바이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행한 집단학살을 완성하는 반인류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인권이사회(UNHRC)와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비난하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옹호하며 행위에 공모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은 무도하고 국제법의 종말을 고하는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의 평화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종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면서 “미국이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이스라엘이 하루빨리 불법 점령을 끝낼 수 있게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법조
입력 2025.02.06 21:35
수정 2025.02.0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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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부하에 책임전가 넘어 덮어씌우기 나서
곽종근 "요원 아니라 의원 빼오라는 게 정확해"
윤, 곽 증언 끝나자 발언권 얻어 "탄핵공작"
윤 쪽 증인 김현태 "'봉쇄'는 국회 보호하려고"
박춘섭 "비상계엄 선포 일방적 입법 등의 이유" |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답변을 들은 뒤 발언을 하고 있다. 2025.2.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6차 변론기일에서 자신의 잘못을 부하들에게 떠넘기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빼라고 한 것이 맞다'고 증언한 뒤, 윤 대통령은 "곽종근과 홍장원이 내란 프레임"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궤변을 한 것이다. 6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온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을 제외한 김현태 육군 특수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과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윤 대통령 측과 입을 맞춘 것으로 보였다.
내란죄 수사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6차 변론 기일이 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은 오전 9시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헌재에 도착해 9시 5분에 헌재 대심판정으로 들어갔다.
이날 대통령 대리인단은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국회 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는 오전 9시 30분 탄핵심판 6차 변론에 출석하면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바, 계엄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계몽령'이었다, 평화적 계엄이었다, 라는 말들은 형용모순의 궤변"이라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책임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며 "신속한 파면 결정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헌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변론을 열고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곽 전 사령관은 국회 대리인단이 '윤 대통령이 당시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한 대상이 국회의원이 맞냐'라는 질문에 "정확히 맞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요원'을 빼라고 한 것이라고 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답변을 반박한 것이다.
국회 측에서 곽 전 사령관의 검찰 신문조서를 읽으며 "12월 4일 밤 12시 30분 윤 대통령이 직접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아직 국회 내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들어가서 의사당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라'라고 (말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증인이 진술한 게 사실인가"라고 묻자 곽 전 사령관은 "그렇다"라고 했다.
이어 "당시 707특수임무단 인원이 국회 본관으로 가서 정문 앞에서 대치하는 상황이었고, 본관 건물 안쪽으로 인원이 안 들어간 상태였다"며 "그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말씀하신 부분들, 의결 정족수 문제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끌어내라는 부분이 본관 안에 작전 요원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회의원이라 생각하고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청구인인 국회 측 대리인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2.6. 연합뉴스
"국회 봉쇄, 의원 데리고 나오라는 지시 받아"
곽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으로부터도 국회의원 150명이 되지 않도록 국회의사당 출입을 봉쇄하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의원들을 데리고 나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 대리인단은 곽 전 사령관에게 이상현 1공수여단장과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유리창을 깨고서라도 국회 본관 안으로 진입하라. 국회의원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며 '대통령님 지시다'라고 지시했다는 공소장 내용이 사실이냐고도 물었다.
곽 전 사령관은 "여러 사항이 혼재돼 있다. 분명한 건 제가 이걸 하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지시한 내용을 참모들, 현장 지휘관과 논의한 내용이 그대로 (공소장에) 쓰여 있다"며 "결론적으로는 제가 국회의사당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는 것을 하지 말라고 지시해 중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알았지만 전투통제실에서 화면을 보면서 지휘했는데, 마이크가 켜져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를 받고 얘기한 내용이 전체 인원에게 생방송됐다"고 했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곽 전 사령관이 계엄 당시 윤 대통령과의 통화 횟수에 대한 진술을 번복해 왔다며 '끌어내라'는 지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고 캐물었다. 송진호 변호사는 곽 전 사령관의 국회 증언 영상을 재생해 윤 대통령과의 통화 횟수를 1회라고 말했다가 이후 "3회 전화 왔는데 두 번 통화했고 한 번은 통화가 안 됐다"고 진술을 바꾼 게 아니냐며 물었다.
송 변호사는 "만약 대통령의 지시가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행하지 못한다고 얘기했을 것"이라며 "당시 요원이 15명밖에 국회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 비춰보면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말이 없었던 게 아니냐. 어떻게 15명으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하냐"고 곽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또 "어떻게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행 가능 여부를 얘기하지 않고 묵살할 수 있냐"며 "장관과 사령관의 지시도 복명·복창하는데 대통령의 지시에 대답하지 않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냐"고 하기도 했다.
곽 전 사령관의 자수서와 국회 진술 내용을 비교하며 "'사람'이 '인원'으로, '데리고 나와라'가 '끄집어내라'로 바뀌었고, 검찰 진술에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말도 나중에 추가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곽 전 사령관은 묵살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자수서에 '열고 들어가라. 데리고 나가라'고 적은 이유는 33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차마 쓸 수 없었다"며 "그래서 그 용어를 순화해서 자수서에 적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의 증언을 듣고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제가 그저께와 오늘 상황을 보니까 12월 6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의 공작과 곽 전 특전사령관의 '김병주TV' 출연부터 바로 이 내란 프레임과 탄핵 공작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다시 궤변을 시작했다.
홍 전 차장은 지난해 12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전화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말했다"며 체포 의혹을 처음 폭로했고, 곽 전 사령관도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유튜브 인터뷰에 출연해서 "장갑차 등은 일체 출동시키지 않았다"고 통제한 것 등을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에 대해 "무슨 대통령을 생각해서 감추는 척한다"며 "벌써 이미 전날 검찰에 가서 대통령에 관련된 얘기를 다 해놨다는 것은 다분히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잘못을 덮어씌우려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곽 전 사령관에게 "현장의 상황, 안전 문제 이런 것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며 "보고를 좀 받다가 '우리 사령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까 '저는 지금 지휘통제실에 있습니다'(라고) 해서 '그러면 화상으로 보는 거군요' 하고 수고하라고 (한 뒤) 전화를 바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인원이라고 얘기를 했다는데 저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의원이면 의원이지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곽 전 사령관이 이날 헌재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취지로 지시하면서 '인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에게 '간부 위주로 인원이 얼마나 되나' 등의 지시를 한 것이 기록돼 있다.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이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2025.2.6.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또 "만약에 지시했다면 투표가 끝날 때까지 한두 차례라도 저나 장관이 어떻게 된 거냐고 확인하는 게 상례"라며 "방법이 있겠냐고 상의하고 어떻게 해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상식이지 다짜고짜 전화해서 의결정족수 안 되게 막아라, 끄집어내라, 이런 지시가 공직사회에서 상하 간에 가능한 얘기인지, 재판관들께서 상식선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비상 계엄령 선포'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 태도였다.
국회에 출동한 것이 '적법한 출동'이라고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은 윤 대통령 측 신청으로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제가 받은 임무는 (국회의) 봉쇄 및 확보였다"며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을 봉쇄해 건물을 확보하라고 (부대원들에게 지시를) 했다"고 했다. 여기서 '봉쇄'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입을 전면 차단하는 게 아니라 '매뉴얼에 따라 외부로부터 오는 테러리스트 등 적의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김 단장이 병력 23명과 함께 국회의사당 후문으로 가 봉쇄를 시도했으나, 국회의사당 경비 인력 등 10여 명이 제지해 10분간 몸싸움을 벌여 봉쇄를 포기한 것이 기록돼 있다.
그는 "본회의장에 들어갈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말하며, '적법한 출동이었냐'는 윤 대통령 측 질문에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전형적으로 윤 대통령이 유리한 답변을 했다.
김 단장은 "최근 다른 정보를 많이 입수하고 있어서, 현재 이해하는 것은 국회에 임무를 받고 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고 국회의원의 국회 의정 활동을 방해했을 때 문제가 된다(는 것) 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눈을 감고 증언을 들었고 가끔 표정을 찌푸리고 김 단장을 쳐다봤다. 신문 도중 대리인단에 귓속말하거나 손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0시 17분 곽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받았고 "(곽 전 사령관이) 테이저건, 공포탄을 사용하면 방법이 있느냐고 의견을 물었고 그건 제한된다, 불가하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이후인 오전 0시 36분 두 번째 통화에서는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데 들어갈 수 없겠냐는 식으로, 강한 어조는 아니고 부드러운, 사정하는 느낌으로 (곽 전 사령관이) 말했다"며 "안 된다,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 답변하고 끝냈다"고 덧붙였다.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데'라는 지시의 출처에 대해서는 "상급 지휘관이라고만 생각했고 누군지 명확하게 특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단장은 출동 당시에는 150명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나중에 국회의원의 숫자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공소장에는 김 단장이 '국회의원 150명'을 정확하게 지시받은 바가 나와 있다.
그는 국회의 출입문을 모두 잠그려 외곽을 돌았는데 정문에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걸 보고 당황해 자신의 판단으로 창문으로 깨고 들어갔다며 곽 전 사령관이 지시한 건 아니라고 했다. 당시 국회에 최초 투입된 707특임대원은 자신을 포함해 총 97명이었는데 1차로 도착한 25명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후문을 지키고, 다른 한 팀은 창문을 깨고 들어가 정문 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게 김 단장의 설명이다. 특임대원은 이후 곽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100명이 추가로 투입됐다.
김 단장은 이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곽 전 사령관으로부터 철수 지시를 받았고, 이후 버스 도착과 최종 승인을 오전 3시 12분 철수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느냐'라는 질문에는 "그런 지시가 없었고 제가 기억하기에는 있었다고 한들 안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곽 전 사령관과 반대되는 말을 한 것이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 9일 기자회견에서는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였다"고 말했는데, 이날 헌재에서는 자신의 말을 뒤엎은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 당시엔 취재진의 질문을 오해하고 그렇게 답했다는 입장이었다.
김 단장은 출동 당시 가져간 케이블타이는 문을 봉쇄하려던 것이고 대인 용도가 아니라고 했다. 대원들이 1인당 10발씩 챙긴 공포탄은 훈련용으로 지급된 것이고 실탄으로 무장하거나 저격수를 배치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청구인인 국회 측 대리인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2.6. 연합뉴스
국가비상사태인지는 '헌재'가 판단한다고
마지막 증인은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그는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한 이유에 대해 "탄핵, 재정 부담이 되는 일방적 입법, 예산의 일방적 삭감이 종합적으로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국회 측이 '헌법 제77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 사태가 존재할 것이란 요건이 있다. 전시나 사변은 아니었고, 국가비상사태라고 볼만 했느냐'라고 묻자, 박 수석은 "그 부분은 헌재가 판단해 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박 수석은 국회 측의 계엄 선포 이후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계엄 관련된 대화를 나눈 게 있냐는 질문엔 "없다"고 했으며 '경제를 책임지는 사령탑들이 이런 얘기를 안 하시냐'고 묻자 "직접 한 적 없다"고 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최 부총리에게 전달했다고 알려진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에 대해선 "계엄 선포 전이나 후에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박 수석은 여야 합의 없는 정부 예산안을 단독 처리는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체 금액은 4조 1000억원 규모로 낮아 보이지만 구체적인 항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수석은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기획재정부에서 30년 넘게 공직생활하며 정부 예산안을 여야 합의 없이 야당이 단독 처리한 경우가 있었나'라고 묻자 "헌정사 처음"이라고 했다.
박 수석은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감액 내용이 문제가 된다"며 "예비비 절반을 2조 4000억원 삭감하는 등 내용의 문제가 있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은 변론 마무리 발언 중 예산안 삭감 문제를 두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헌법에 예산 편성권은 정부, 국회는 편성된 예산에 대한 심의 의결권이 있다. 국회에서 심의·의결된 예산이 맘에 안 들 수 있다"며 "마음에 안 드는 예산이 의결됐다고 해도 그때마다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면 매년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계엄 선포한 이유가 예산 삭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줄탄핵, 방탄입법 문제가 있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지 예산 문제 하나로 계엄을 선포한 것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린다"고 했다.
어제 내란 피의자 윤석열의 자백에 이어, 국조특위에서도 이번 계엄이 불법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계엄 직전 국무회의에 제대로 된 의안 번호도 부여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6일 열린 내란국조특위(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계엄 전 국무회의에 대해 “워낙 절차적, 실체적 흠결이 많으므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부승찬 민주당 의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다. 계엄을 해제했던 국무회의록에는 2123호라는 의안 번호가 붙었다. 그러면 계엄 직전 회의록은 2122호라는 의안 번호가 붙어야 한다. 그러나 부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의안 번호 2122호는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었다.
계엄 직전 국무회의는 의안 번호도 부여받지 못해 절차적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 거다. 어제(5일) 윤석열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는 윤석열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인을 보낸 것은 자신”이라고 자백했다. 이번 계엄이 불법이었다는 정황이 연이어 드러난 셈이다.
한 전 총리도 “정상적인 국무회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부 의원은 “계엄 선포와 관련한 국무회의는 실제적으로 없던 것”이라며 “계엄이 애초에 불법이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조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 전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상계엄에 찬성한 국무위원도 있었다”는 김용현 전 장관의 주장에도 “국무위원 전부 반대했다”며 반박했다.
‘계엄은 불법적이었고 반대했다’며 뒤늦게 거리 두는 모양새인데, 납득되지 않는 해명으로 동조했다는 의심은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최 대행이 출석하자, 계엄 당시 윤석열에게 받은 문건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최 대행은 윤석열에게 받은 문건을 확인하지 않고 차관보에게 줬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해당 문건에는 국회 예산 완전 차단, 국가 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45년 만에 비상계엄인데, 대통령이 준 지시 문서를 부총리가 안 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며 “만약에 안 봤다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도 “문건에 담긴 내용대로 비상입법기구가 국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국회를 대체하는 기구라면 위헌적 기구”라고 비판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문건을 어떻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나"라며 "세로로 접었나, 가로로 접었나” 물었다. 최 대행은 “가로로 세 번 접혀있었다”고 답했는데, 박 의원은 “최 대행이 검찰에 제출한 문서에는 접힌 흔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건을 펴 가지고 검찰에 제출한 것이냐”고 묻자 최 권한대행은 “내가 제출하지 않았고, 펴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문 인지 시점에 대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당시에는 제가 전혀 인지를 하지 못했고, 비상계엄 해제 국무회의를 마치고 그리고 사무실로 출근해서 제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학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본디부터 정해진 길은 없다. 방향을 정하고 가다보니 없던 길이 뚫렸던 것이다. 길 위에 있더라도 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길을 잃었다고 한다. 방향을 정했더라도 그 방향으로 길을 뚫지 못하면, 또 길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길을 잃었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여 다시는 돌아가면 안 되는 길로 뒷걸음치기도 하고, 방향을 정했더라도 길을 뚫지 못하여 오고가던 길들 사이로만 하염없이 헤매고 다니기도 한다.
공동체가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 학술이다. 수많은 논란으로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충돌과 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담론을 정리하고, 대안이 나오지 않을 때 정체되지 않도록 논리를 펼치고 새로운 문명의 지평을 제시하여야 하는 임무가 학술에 주어져 있다. 공동체도 그런 임무 수행에 대한 기대로 역사 이래 학술 영역을 배려하고 지원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학술은 공동체와 더불어 길을 잃었다. 연구 논문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동체에 대한 학술적 기여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공동체로서도 학술 영역을 배려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원이 적어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연구자는 공동체의 여타 구성원과 다를 바 없이 각자도생을 자연법칙처럼 수용하여 무한경쟁 체제를 가속화하게 되었고, 학문후속세대조차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하여 학술생태계의 여러 영역이 붕괴되고 있다. 제 살 길도 찾지 못하는 학술에 공동체가 무슨 미련을 남겨두겠는가.
그렇다고 연구자들이 논문의 계량적 평가 체제에 완전히 투항한 채 각자도생에 노심초사하면서 골방 문을 닫아걸고 공동체의 고통에 무심한 작금의 현상을 관습으로 아주 굳혀버린다면, 학술이 오히려 공동체의 우환거리가 될 것이며 학술 자체의 길마저 완전히 끊길 것이다. 공동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뚫는 데에 기여해온 지적 전통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복원해야 한다.
독립 열망으로서의 의실구독(依實求獨)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실학(實學)은 본디 있던 학문이 아니다. 공동체의 고통과 마주하고 공동체의 현실을 돌파하려는 지식인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온 학문이다. 실학은 20세기 초반 민족적 독립과 학술적 독립의 필요에 의해 구성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중후반 근대화와 민주화의 필요에 의해 정립되었다. 실학이 구성되고 정립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서 공동체의 고통과 마주했던 지식인들의 지적 전통을 이을 길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학술에서 귀중한 것은, 작고 은밀한 것을 뚜렷하게 밝혀내고 본말과 시종을 드러냄으로써 인민의 삶을 보좌하는 것이다."(정인보, 성호사설 서문, 이익, <성호사설 유선>, 문광서림, 1929, 5면)
정인보(鄭寅普, 1892~1950)가 1929년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 유선>을 간행하면서 서문에 적은 말이다. 은밀한 것을 드러내고, 본말을 파악하는 등의 모든 학술 활동의 가장 고귀한 목표는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명제로서, 학술이 나아갈 방향을 정리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인보가 이 서문을 적어가던 시기는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병탄한 지 20년가량 지난 식민지시기였다. 10년가량 지났을 때 3.1운동이 민족적 저항으로 끓어올랐고, 곧이어 임시정부도 수립되었다. 그러나 다시 10년이 지나도록 독립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있었다. 양심적 지식인의 노선을 견지하고 싶어도 길을 잃지 않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통 지식을 활용하여 국학의 범주를 확장하며 근대화 계몽의 동료로서 한몫을 담당하던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조선총독부 부설 조선사편수회에 합류하여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해가 1928년이었다.
이 대목에서 정인보는 학술과 공동체의 관계를 숙고하며 지식인의 자세를 다잡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선언 뒤에 이어지는 대목에서 정인보는 학술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학술은 실제에 기반하여 독자성을 추구해야 하고, 그렇게 하여야 학술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핵심 이치를 터득할 수 있으며, 핵심 이치의 효능이 다시 인민과 만물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인보는 공동체의 현실에 기반하여 핵심 이치를 터득하고, 다시 핵심 이치가 공동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과정으로 학술의 전체 순환 활동을 설정해본 것이다. 이 전체 과정을 달성한 학문으로서 실학자 성호 이익의 학문을 내세우며 정인보는 "의실구독(依實求獨)의 학문"이라고 지칭하였는데, 그 말 자체가 실제에 기반하여 독자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이니 학문이 기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각하는 것으로 전체 과정을 제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체와 학술의 관계에 대한 정인보의 선언은 간단한 듯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야 할 맥락을 담고 있다. 민족의 학술이 추구해야 할 민족적 독자성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통해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쪽에 담으며, 그 공정을 통해 확보되는 이치의 효능이 삶을 개선해주는 대상은 인민과 만물이라 하여 민족의 범주에만 갇힌 것이 아니라 세계와 우주까지 포괄한다는 주장을 다른 한쪽에 담으려 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지향하는 민족적 독자성이 세계 문명의 보편성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맥락화한 것이다.
정인보는 이 글에서 의실구독의 맥락을 실현하는 논리를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을지문덕에 대한 평가 문제를 보면 맥락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고구려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을 통해 수나라 양제의 침공을 완벽하게 물리쳤고, 수나라는 침략 실패의 결과로 나라가 망하는 지경까지 초래하였다. 조선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이 행위 자체가 중화 문명을 존중하는 존화(尊華)의 의리를 배반한 것이므로 비난받을 행위라는 것을 전제한 후, 다만 수나라 양제는 아비를 죽이고 아비의 후궁을 간음한 흉역한 자였으니 을지문덕의 행위는 도덕 문명을 바로잡은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송시열, 평양부(平壤府) 을지공(乙支公) 사우기(祠宇記))
정인보는 발끈하였다. 수나라 양제의 도덕적 하자가 없었다면 고구려 침공 자체는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인가, 토지와 인민이라는 주권적 실체가 있는 고구려가 자기의 정치적 독자성을 부정해야 했는가, 수나라도 존화의 대상인 중국 민족이니 그들의 침공을 환영해야 했겠는가 하고 되묻는다. 게다가 공자가 존화의 의리를 주장한 것은 자기의 민족적 독자성에서 나온 자각을 뿌리로 하는 것인데, 각자가 자기의 실체에 기반하여 독자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실구독의 그 뿌리는 무시하고 공자에게서 말단으로 발현된 존화의 의리만 따르는 성리학자들은 몽매한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였다. 송시열은 자신의 의실구독을 추구할 생각을 못하고 중국인들의 존화사상이라는 말단에 부화뇌동하여 타인의 의실구독에 투항한 것이니 몽매하다는 것이다. 존화는 중국 민족의 경계 안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우리 민족은 별도의 가치를 갖는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고, 각자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의실구독의 학문들로서만 국제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조선이 독립해야 할 학술적 근거와 독립될 조선의 학술이 세계 문명의 보편에 기여할 바를 함께 제시하려 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의 실학(實學)
정인보를 위시하여 식민지시기 일군의 지식인들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서세(逝世) 100주년을 전후하여 정약용을 재발견하고 각종 강연회 및 학술연구를 활발히 전개하며 식민지 조선의 현상을 돌파할 담론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의 정약용을 비롯한 양심적 지식인의 계보를 구상하고 학술 담론을 정비하여 대중적 계몽에 나섰던 일련의 사업 전체를 "조선학운동"이라고 부른다.
이 조선학운동의 핵심은 바로 조선후기 양심적 지식인 계보에 대한 연구였다.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후기의 걸출한 양심적 지식인들이 역사에서 아주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1930년대 식민지 지식인들이 요구하는 인상을 고스란히 갖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황현(黃玹, 1855~1910)은 19세기말까지 정약용의 저술 중에 <흠흠신서>와 <목민심서>가 지방 행정과 형사 소송에 절실한 실용적 가치가 있어서 수백 본의 이본이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기록하였다.(황현 저, 임형택 외 역, <역주 매천야록> 상, 문학과지성사, 2005, 108면) 조선왕조 행정 체계 아래에서 활용할 만한 실용적 가치만 부각되고 있었으며, 진보적 개혁의 가치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식민지 상황에 의미 있게 적용할 만한 해석을 새로이 수행해야 했다.
정인보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의 문일평(文一平, 1888~1936)과 안재홍(安在鴻, 1891~1965) 등의 지식인들은 다산 정약용에게서 조선후기 현실을 돌파할 개혁가 이미지를 찾으려 하였고 그것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돌파할 에너지를 얻으려 하였다. 특히 현상윤(玄相允, 1893~?)은 다산 정약용의 개혁이 "성공되었다면 필연적으로 구미 물질문명이 훨씬 용이하게 또는 일찍이 조선에 수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현상윤, 이조 유학사상의 정다산과 그 위치, <동아일보>, 1935.7.16.)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 내재적 원인을 쇄국주의로 인한 조선의 지연된 개화에서 찾았던 당시 지식인의 현실 인식에서 나온 주장이다. 정약용의 개혁을 수용하지 못한 조선후기의 실패로 인해 식민지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니, 식민지 현실에서라도 정약용의 개혁 정신을 공부하고 계승해보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도에서 정인보는 다산 정약용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서 찾아내어 "널리 탐구하는 것이 하나에 집중되기를 목적으로 하고, 한 몸을 큰일에 바치기를 결심"하자고 하였다.(정인보, 다산선생의 생애와 업적, <동아일보>, 1935.7.16.) 여기서 집중해야 할 하나는 민족공동체이며 몸 바쳐야 할 큰일은 공동체의 고통을 구제하는 일이다. 공동체를 구하자는 양심적 지식인의 주장은 당시 큰 호소력을 얻는다. 1935년 9월 8일 '다산 정약용 선생 서거 99주년 기념회'에서 학술발표를 들은 청중들은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는 보도 기사가 남아 있다. "각 지방에서 온 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한국의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회상하니 감개무량하였다. 강연자의 열렬한 웅변에 상하 2층에 모인 천여 명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모두 눈물을 머금었다."(<신조선> 1934.9.) 천여 명의 시민이 학술 강연장에 모여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이 시기 민족주의 계열의 지식인들은 다산 정약용 등을 조선후기 개혁사상가로 재해석해내고 그것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돌파할 에너지를 얻고자 하였기에, 조선후기 개혁사상을 품은 양심적 지식인의 계보를 구상하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익․정약용 외에도 남인 계열의 안정복․윤동규․신후담․이병휴․이중환 등이 소환되었고, 소론 계열의 정제두․최명길․이이명 등이 부각되었으며, 노론 계열의 홍대용․박지원 그룹 등이 거론되면서 당파도 다르고 활동 양상도 달랐던 이들을 묶어줄 하나의 개념이 필요하였다. 처음에는 현실학파․경제학파․실증학파 등 다양한 개념어가 경쟁하다가 20세기 중반 실학(實學)으로 정리되었는데, 원래 유학 이외의 학문을 허학(虛學)으로 지칭하며 유학의 가치를 강조할 때 사용되던 개념이었다. 20세기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실학에는 실용․실천․실증․실심 등의 내포가 담기게 되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론을 내포의 핵심으로 제시하기 위해 '실사구시설'을 지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20세기 중후반 실학자로 포함되어 부각되기도 하였다.
20세기 후반기의 실학(實學)
해방 이후 실학 연구는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본격적인 학술장의 영역을 확보하였다. 당색과 지향 등을 고려하여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실사구시파(實事求是派)로 실학의 계보를 정리하고, 현재 우리가 실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 대부분을 완성하였다. 공동체의 현실에 깊이 참여하려는 식민지시기 양심적 지식인들이 구축한 실학 연구를 계승한 해방 이후의 연구자들은 현실에 필요한 담론을 찾아내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았다.
"조선후기 실학은, 첫째로 전근대의식에 대립되는 근대의식 내지 근대지향의식, 둘째로 몰민족의식에 대립되는 민족의식을 척도로 하여 재구성된 조선후기 유학의 개신적 사상으로서 '조선후기에 일어난 개신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그 두 척도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존립 번영을 전제로 한 근대지향, 근대지향을 전제로 한 민족의 존립 번영이라는 일체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천관우, 한국실학사상사, <한국문화사대계> Ⅵ,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0, 1044면)
20세기 중후반 실학 연구를 담론적으로 주도하던 천관우(千寬宇, 1925~1991)는 근대주의-민족주의 결합 담론을 실학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서구적 근대화에 뒤쳐서 식민지를 겪게 되었다는 결핍감과 침략적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로 독립을 추구했다는 자부심이 결합한 근대주의-민족주의 결합 담론은, 일부 개발독재정권의 주장과 겹치기도 했지만 1960~70년대의 상황에서 일정하게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전근대 조선의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의 계보를 완성해 놓고 근대주의를 찾으려는 20세기 후반 당시 실학 연구의 경향은 "자본주의 맹아론" 혹은 "자생적 근대론" 등으로 불리는데, 제국주의 일본의 개입 없이는 근대를 이룰 수 없었다는 "정체성론"에 대한 비판 이념을 제공하였다. 전근대 지식인에게서 매우 근대적인 개념인 민족주의를 찾으려는 당시 실학 연구의 경향은 친일파 세력과 그 비호 세력인 당시 정권을 비판하는 감성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는 근대주의와 민족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파괴적 속성에 대한 각성과 더불어 침략과 차별의 깃발인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감각으로 훑어보면 이 시기 실학 연구는 학술의 공과 과가 착종된 느낌이다. 다시 그러나 개혁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의 전통으로서 실학자의 상을 구현한 실학 연구는, 개혁과 양심의 가치를 연구 현장에서 완전히 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시기 실학 연구의 정점이 근대주의-민족주의 결합 담론에 머물러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정한 '분단시대 사학'에 있어서의 실학자는 근대지향적 사상가나 민족주의자일 것이 요청되었지만, '분단시대 이후의 사학'이나 그것을 지향하는 사학에 있어서는 민중의 편에 서서 그 권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실학자, 민중에게서 진정한 민족의 주체를 구하고 민족 내부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이론 전개에 앞장섰던 사상가로서의 실학자가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회사상이나 경제사상이 한층 더 빛을 내게 될 것이다."(강만길, 실학론의 현재와 전망, <창작과비평>, 1974 겨울호, 1139면)
실학사상에서 민족주의와 근대지향성을 탐색해온 연구 경향이 분단시대 사학의 특징이라면, 분단시대 이후를 지향하는 사학은 그 특징을 발전시켜서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의 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화의 필요에 의한 담론을 완성한 동시에, 1970년대에 민주주의의 필요에 의한 담론을 제출한 것이다. 지금은 당시보다는 소홀히 여기는 개념이 되었지만, 당시 분단은 남한 사회의 모든 모순과 질곡을 설명해줄 만한 고통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실학을 통해 분단시대의 극복과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민족국가 수립의 과제를 제기하여, 시대에 대한 대응으로서 실학의 이념을 다시 천명한 것이다.
21세기 양심적 지식인의 지적 전통을 되살리는 길
1970년대 실학연구자들은 양심적 지식인의 지적 전통에 따라 공동체의 필요에 대한 대응으로 학술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그들의 주장이 산업화 세력의 구호와 일부 맞물리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남한 사회의 비인간적 퇴영에 저항하였다. 양심적 지적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학문적 자부심으로, 식민지시기의 잔영인 식민사관과 해방 후의 후진국 변방 의식 및 군사정권시대의 개발독재주의와 싸우며 학술 담론을 생산하였던 것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담론 층위는 이제 퇴적물 아래 깔렸고, 우리는 21세기의 지층 위에 서 있다. 21세기 우리 공동체의 동료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20세기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경제규모와 문화수준에서 세계 일류를 넘보는 사이에도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약자들의 지옥은 한없이 깊어졌다. 멀쩡해 보이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무한경쟁의 연옥에서 혹독한 단련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너덜거리고, 그 좌우에서 멀쩡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한 시간 일해서 햄버거 1.8개를 콜라 없이 먹을 돈이 생긴다. 아예 착취당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고, 자식에게 차마 노예 이하의 삶을 물려줄 수 없는 사람들은 진작에 연애도 결혼도 포기했다.
학술연구자들도 이 지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인보의 말처럼 내가 받는 이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마음 깊이 느낄 때 공동체와의 간격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겠는가.(정인보, 양명학연론, <담원정인보전집> 2, 238면.) 간격 없는 학술 담론이야 말로 의실구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은 전통적으로 문명의 최첨단에 놓여 있었다. 1차적 감각과 욕망을 넘어 인위적으로 구성해온 문명의 힘으로 인류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 학술은 문명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이제 학술연구자들 자신이 공동체의 고통 받는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공동체가 한 단계 높은 문명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학술이 살고 공동체가 사는 길이 거기서 뚫릴 것이다.

[CNN]에 따르면,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5일 “(팔레스타인 주민) 강제 이주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모든 강제 이주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당한 열망에 대한 공격”이라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도 “서안 및 동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가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속한다”고 일축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가자 지구에서 추방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제법에 위배되고 새로운 고통과 증오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은 “우리는 두 국가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을 늘 분명히 해왔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국가 해법으로 가는 길에서 (가자 지구) 재건도 함께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부에노 스페인 외교장관도 “가자는 가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이고 그들은 가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뿐만 아니라 중동권 수니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트럼프의 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통신사 [와파]에 따르면, 5일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우리는 수십년 동안 고군분투하고 큰 희생을 통해 달성한 우리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노력을 계속할 것이고 이것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5일 뉴욕에서 ‘팔레스타인’ 행사에 참석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해법을 찾는 중에 문제를 더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트럼프 구상을 비판한 셈이다. “국제법의 근간에 충실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어떠한 형태로든 인종 청소를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과정 등에서 ‘12·3 계엄 사건’은 “부정선거 의혹을 확인하고 야당의 입법 독주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윤 대통령 쪽의 주장이 강조되고 있다. “구국을 위한 결단”, 과연 계엄의 본질적 동기가 그것일까.
그러나 ‘김건희 공천개입’ 사건을 수사해오던 검찰이 명태균 휴대폰 등에서 결정적 증거 등을 확보하자 윤 대통령이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언론 <뉴탐사>와 권력감시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공동취재팀은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 사건’의 중요 당사자와 이들 변호인 등을 접촉해온 끝에 최근 이와 관련해 중요한 증언을 확보했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명태균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280개 내용이 확인된 검찰 수사보고서가 상부에 전달된 뒤부터 수사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문자 메시지가 확보되어 수사에 활력이 붙기보다, 되레 수사가 멈추는 느낌이었다. 12·3 계엄 내란이 무산된 뒤 그런 분위기는 더 짙어졌다. 계엄은 검찰의 수사보고서가 윗선에 보고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석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타임라인이 있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의 공소장 내용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은 2024년 12월 3일이었지만 앞서 계엄준비가 직접 실행되기 시작한 때는 2024년 11월 초이다. 2024년 11월 4일 창원지검은 ‘윤석열과 김건희가 명태균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280개 내용이 확인된 검찰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2024년 11월 9일 노상원 전 육군 정보사령관은 안산의 한 음식점에서 문상호 육군 정보사령관 등에게 ‘조만간 계엄이 선포될 것이고 합동수사본부 수사단 단장은 내가 맡을 것이다’고 알렸다. 같은 날인 11월 9일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방장관 공관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시국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2024년 12월 2일 명태균 쪽은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의사를 보냈다.
2024년 11월 4일 창원지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 내용은 적나라했다. 2021년 7월 김건희 씨가 대선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전송한 명태균에게 “충성” 이라고 보낸 메시지뿐 아니라, 2021년 7월 윤석열 후보가 명태균에게 언론 인터뷰 방향을 직접 묻는 문자메시지, 2022년 11월24일 김건희 씨가 명태균에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관련한 자문을 구하고 명태균이 답변하는 메시지, 2022년 12월 31일 명태균이 윤 대통령과 신년인사를 주고받으며 창원 국가산단 지정 기원문 이미지 파일을 전송한 내역 등이 담겼다. 강혜경 씨의 컴퓨터에서 나온 ‘명태균-김건희-윤석열 메시지’ 내용만 이정도라서 만약 추가로 더 공개되면 특검은 피할 수 없다고 윤 대통령 쪽은 판단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한편 이런 의문도 들어야 한다. ‘왜 검찰은 명태균-김건희-윤석열 문자메시지 내용에 대해서만 급히 수사보고서를 만든 것일까?’ 그간 쏟아진 ‘명태균 게이트’ 관련 의혹은 단순히 ‘명태균 문자메시지’ 확인 차원이 아니었다. 수사의 시발점이 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대가로 전해진 돈 거래 흔적,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도 연루된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 창원 산업단지 지정 관련 국정 농단 의혹 등에 대한 수사 경과는 보고서에서 모두 빠졌다.
수사가 안 돼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워치독>이 창원지검에 피의자 및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명태균 게이트 관련자들, 법조계의 설명을 두루 들어보면 창원지검에서는 이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수사가 이뤄졌다. 오세훈, 홍준표 관련해 명태균이 진행한 여론조사 자료와 비용 대납 관련 자료가 검찰에 제출됐고, 창원 산단 국정농단 의혹 관련 검찰이 별도로 확보한 녹취록만 수백 건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창원지검이 2024년 11월 4일 작성한 수사보고서는 유독 ‘명태균과 김건희 윤석열 사이 문자메시지’ 분석에만 집중했다. 일상적인 수사보고서가 아니라 명태균과 강혜경 씨에게 윤석열 정권에 타격을 줄 만한 자료가 있는지 윗선에 보고하려는 보고서로 비칠 정도이다. ‘검찰 수사보고서’가 아니라 ‘대통령실 민정수석 보고서’로 의심된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워치독> 취재에 따르면, 보고서가 작성된 11월 4일까지 검찰은 제보자 등에게 “포렌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포렌식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급히 ‘명태균-김건희-윤석열 문자메시지’ 내용만 추려서 윗선에 보고한 것이다. 검찰에 이런 보고서가 왜 급하게 필요했던 것일까. 이 보고서는 박성재 법무장관을 거쳐 김주현 민정수석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강진구 <뉴탐사> 기자가 대검에 질의 했지만, 대검은 답변하지 않고 있다.
명태균 게이트 주요 관련자들은 “계엄 실패 이후 창원지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어떤 진술을 해도 이전과 달리 검사와 수사관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했던 질문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변호인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수사 초기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겠다고 해서 진술을 열심히 하고 자료도 적극 제출했는데, 검찰의 속내는 명태균 게이트를 그들 선에서 덮을 수 있는지 견적을 보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이제 보니 속은 느낌까지 든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22일 이른바 ‘명태균과 창원지검장 충성맹세’ 관련 보도가 나오자 창원지검 내부는 발칵 뒤집혔고 검사들이 주요 제보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명태균씨를 수사한 창원지검의 검사가 ‘왜 휴대폰을 전자렌지에 넣고 돌려버리지 처남에게 맡겨두었냐’ 고 말했다”는 의혹 사건도 이즈음 벌어졌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내란 특검법’을 거부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기소됐다”는 이유를 댔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달 31일 “현재는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진전돼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군·경의 핵심인물들이 대부분 구속기소되고 재판절차가 시작돼, 앞으로의 사법절차 진행을 지켜봐야 하는 현 시점에서 별도 특검 도입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수사팀에 출석도 하지 않은 채 가까스로 기소했고, 애초 논란이 됐던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 사건 등은 모두 공소장에서 빠졌다. 내란의 동기가 대통령 부부 개인 비리를 덮기 위한 것인지, 부정선거 의혹 확인과 야당을 경고하기 위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검찰에 출석해 ‘11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감사원장, 국방부 장관 탄핵 등을 이야기하며 명태균 사건도 언급했다’ 고 두 차례나 반복해 진술했다”고 <JTBC>가 5일 보도했다. 그러나 윤석열 공소장 등에 이러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렇게 수사를 끝내선 안 된다. 내란 특검법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이유다.
뉴탐사·워치독 공동취재팀 (강진구, 허재현, 김성진, 조하준, 김시몬 기자) watchdog@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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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용현·노상원 등 증인들 모두 불참 통보…野 "불출석 증인들 고발할 것"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등을 찾아 현장 청문회를 실시했지만, 윤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증인들의 불출석으로 청문회는 결국 불발됐다.
국조특위는 5일 오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감된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이어 오후엔 윤 대통령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이 수감된 경기 의왕의 서울구치소를 찾아 현장 방문조사 형태의 '구치소 청문회'를 실시했다. 그러나 오전과 오후 일정 증인들은 모두 불출석했다.
동부구치소의 김 전 장관은 재판 준비와 변호인 접견 등을 사유로 증인 출석에 불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이날 오전 동부구치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증인인 김 전 장관이) 현장조사에 부담을 느낄 수 있어 비공개로 인원도 5명으로 줄여서 하겠다고 했다"며 "구치소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렸는데 (김 전 장관이)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위는 이어 이날 오후엔 서울구치소로 자리를 옮겨 윤 대통령 등을 증인으로 채택한 청문회를 실시하려 했으나, 핵심 증인인 윤 대통령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대령 역시 모두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문태 서울구치소장은 "증인 출석 요청 사항을 전달했지만 3명 수용자 모두 출석 요청을 본인 의사로 거절했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김병주·민병두·백혜련·추미애 의원이 구치소 내 접견실을 직접 방문해 증인들을 만나려 시도했지만, 이 또한 거부당해 성과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특위는 불출석 증인 3인(윤석열·노상원·김용군) 모두에 대해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민주당 소속 안규백 특위 위원장은 "위원회는 (증인들에게) 고발 및 재출석 요구 등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있다"며 "(증인 3인에 대해) 간사 간 협의를 통해 증언 등에 관한 법률 제12·13조에 명시된 '국회 모욕죄'로 고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위는 앞서 이날 오전 동부구치소 조사에서 출석을 거부한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해서도 고발 및 재출석 요구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동부·서울 구치소 현장 방문을 마친 국조특위는 수도방위사령부 미결수용소로 이동해 증인으로 채택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만나 청문회를 시도할 예정이다.
한편 국조특위 내 여당 측 위원들은 윤 대통령 증인 채택 등 특위 결정 사항에 반발, 오전 동부구치소와 오후 서울구치소 현장 조사 모두에 불참했다.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두 번 연속 반려..."검찰, 비화폰 서버 드러날까 두렵나"
25.02.05 19:54l최종 업데이트 25.02.06 06:12l 김성욱(etshiro)
12.3 비상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을 해온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최근 국회에서 마주친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으로부터 '좀 그만하시죠'라는 말을 들었다고 헌법재판소에서 증언했다. 검찰이 김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반려하면서, 김 차장이 자유롭게 윤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하도록 방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홍 전 차장은 전날인 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지난번 국조특위에서 만났을 때 김 차장이 증인(홍 전 차장)한테 '이제 거짓말 좀 그만하시죠'라고 물어보니까, 증인(홍 전 차장)이 '미안하다. 가르마를 잘못 탔다'라고 대답했죠"라는 윤 대통령 측 송진호 변호사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홍 전 차장은 즉각 "새빨간 거짓말이다"라며 "김 차장이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아 좀 그만하시죠' 그렇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문답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이 언급한 '국조특위'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시 국조특위에는 홍 전 차장과 김 차장이 함께 출석했다. 홍 전 차장은 이때 정치인 체포 지시가 있었음을 재차 확인하면서 "체포 명단을 보니까 그건 안 되겠더라",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있다. 어디? 평양. 그런 거 매일매일 하는 기관이 있다. 어디? 북한 보위부"라는 등 작심 발언을 쏟아내 주목 받았다. 앞서 홍 전 차장은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인에 대한 체포 지시가 있었다고 처음 폭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은 김 차장과 홍 전 차장 사이에 오간 대화를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헌법재판소 변론기일에 출석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밀착 경호하고 있다. 홍 전 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한지난 4일 5차 변론기일에도 윤 대통령 옆에 있는 김 차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 측 관계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윤 대통령 측과 김 차장이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라며 "홍 전 차장 입장에서도 대통령 측의 압박이라 느끼지 않았겠나"라고 했다.
"김성훈 구속 두 번이나 막은 검찰... 비화폰 서버 '역린' 얽혀있나"
대통령경호처 내 핵심 실세로 통하는 김 차장은 지난 1월 3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을 받고도 아직까지 구속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이 중간에서 구속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1월 15일 두 번째 시도 만에 윤 대통령 체포에 성공한 이후 2번 연속 검찰에 김 차장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지난 1월 18일과 1월 31일에 걸쳐 모두 반려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통화에서 "중대 혐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검찰 선에서 계속 반려되는 것은 이례적일뿐더러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이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먼저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고, 이를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뒤 법원에서 발부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법원에서 나온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들고 한남동 관저로 들어가고도 경호처에 가로막혀 그냥 돌아오는 장면이 전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됐었다"라며 "이를 주도했던 피의자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경호처를 지휘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경호처가 관리해온 비화폰(보안 핸드폰)과 그 서버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경찰의 김 차장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나온다. 비화폰은 도감청과 녹음이 안 되는 전화로 경호처가 관리한 것들이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과정에서 주요하게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약 김 차장 구속으로 비화폰 서버가 경찰로 넘어갈 경우 검찰에게도 '역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경호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경찰은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윤석열 정부 내내 비화폰이 비정상적으로 쓰였다는 게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것"이라면서 "검찰이 유독 김 차장 구속에 머뭇거리는 걸 보면, 검찰 내 일부 고위급 인사들까지도 비화폰 문제에 얽혀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실제 경찰은 지금까지 모두 5번에 걸쳐 경호처에 있는 비화폰 서버 등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한 바 있다. 김 차장이 이끄는 경호처가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라는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훈 , 민간인 노상원에게 비화폰 지급 의혹..."비화폰 불출대상 삭제도 지시"
문제는 김 차장에 대한 강제수사가 하루하루 지연될수록 증거 인멸의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전날인 4일 국회 국조특위에선 김 차장이 계엄 후인 지난해 12월 13일 자신의 부하인 김대경 경호처 지원본부장에게 비화폰 불출대장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됐다.
윤 의원의 거듭된 사실 확인 요구에 김대경 본부장은 부정도 긍정도 못했다. 윤 의원은 김 차장이 계엄 선포 전날인 지난해 12월 2일에도 민간인 신분이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게까지 경호처 비화폰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만일 사실이라면 김 차장이 단순 경호 업무를 넘어 내란에 연루된 공범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건희 여사와도 가까운 것으로 거론돼왔다. 김 차장은 지난달 10일 박종준 전 경호처장의 자진 사퇴로 경호처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경찰은 지난 3일 김 차장의 전화를 압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경찰 측은 김 차장에 대한 3차 구속영장 신청 계획에 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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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2.04. ⓒ뉴스1
12·3 비상계엄 당시 지휘부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 사건을 담당한 군판사들의 신원을 파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박 대령 재판에 압력 행사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나승민 방첩사 신원보안실장(대령)은 4일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특정 군판사의 신원 파악을 개인적으로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증언 내용에 따르면, 여인형 전 사령관은 대령 한 명, 중령 두 명, 소령 한 명 등 4명의 인적 사항을 불러주며 신원 파악을 지시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해당 군판사들이 박 대령 재판이 진행되던 중앙지역군사법원의 법원장(대령), 주심판사(중령), 부심(소령), 구속영장 담당 판사(중령)였다고 밝혔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 대령은 계엄 한 달여 뒤인 지난달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에 앞서 지난 2023년 9월에는 박 대령에 대한 군검찰의 구속영장이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기각됐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을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여긴 나 실장의 판단에 따라 이행되지 않았지만, 특정 군판사 신원을 들여다보려 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의 소지가 크다. 여 전 사령관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정확히 4명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기억이 불분명하다"면서도 군판사 신원 파악 지시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여 전 사령관은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을 것"이라며 "합동수사단장으로서 임무 수행이 예상돼 군사법원이 어떻게 되는지 다음 절차를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령 사건과의 연관성은 명확히 하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군판사 신원 확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 사건의 배경인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은 'VIP 격노설'로, 윤 대통령은 외압 행사의 정점으로 지목된다. 여 전 사령관은 '충암파'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 대통령과 함께 계엄을 모의한 혐의를 받는 내란 사태 핵심 가담자다.

“ 김도희 기자 ” 응원하기

전직 육군첩보부대(HID) 부대장 출신이 12·3 내란 모의·실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한테 과거 “임무가 끝나면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현재 육군 제2군단 부군단장인 박민우 준장은 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 신변보호요청 증인으로 출석해, “경험 때문에 (노 전 사령관의) ‘계엄 수첩’에 적힌 (‘북 공격 유도’ ‘사살’ 등의) 용어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노 전 사령관이 현직 때인 2016년, 육군첩보부대장이었던 자신에게 북한 관련 특수 임무를 지시했다며 “(임무를) 6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노 전 사령관 지시 중 하나가 임무가 끝나면 요원들을 제거하라는 지시였다”고 했다. 그가 “어떻게 제거하느냐”고 묻자 노 전 사령관은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서 임무 끝나고 들어오기 전에 폭사시키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 준장은 노 전 사령관이 “상황을 보고 (요원들이 북한에) 포획될 것 같으면 내륙에서 (원격으로) 제거하고, 무사히 와도 오기 전에 (폭파 조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준장은 이 대북 특수임무가 실행되지 않아 노 전 사령관의 ‘폭사 계획’도 실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이건 같이 하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제가 (지시 이행을) 안 하면 되고, 저는 100% (요원들을) 안전하게 살려서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며 “(노 전 사령관) 그 사람의 잔인한 면, 반인륜적인 면을 봤기 때문에 ‘계엄 수첩’에 적힌 용어가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국회 봉쇄’, ‘사살’, ‘(정치인·언론인 등은) 수거 대상’이라는 용어가 적혀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준장은 ‘수거’란 용어에 대해 “특수부대에서 쓰는 용어는 아니다. 노 전 사령관만의 용어 같다”며 “계엄 수첩에 나오는 용어는 다른 사람은 (노 사령관만의) 상상일 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제 경험 때문에 노 전 사령관이라면 (실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목 차
(1) “유엔사”는 유엔기구가 아니다 - 한‧미의 공식 확인
1) “유엔사” 명칭
2) 유엔기
3) “유엔사”충혼시설
4) “유엔사”해체
5) 일본 “유엔사후방기지”
6) 작전계획 5015, 프리덤 쉴드 연습
7) 아시아판 나토
(2) 결론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등이 지난해 9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부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유엔사’ 해체를 촉구했다. 마이크 든 사람이 필자인 이시우 사진가. [통일뉴스 자료사진]](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2/212712_106641_328.jpg)
(1) “유엔사”는 유엔기구가 아니다 - 한‧미의 공식 확인
“유엔사”해체운동은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님을, 미국이 유엔의 가면을 쓰고 호가호위하고 있음을 계몽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왔다. 그런데 2023년부터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더니 2024년 한‧미당국에 의해 이같은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한‧미당국의 입장변화에 대한 신중한 검토 끝에 이것이 “유엔사”해체운동의 중요한 승리임을 확신하여 이글을 쓴다. 우선 그 과정을 살펴보자.
2023. 4. 18일 하원군사청문회에서 폴 라 캐머러 유엔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유엔사령부는 유엔평화유지기구가 아니며 미국지도하의 다국적군 사령부이다.’(주1)
2024년 3월 20일 하원군사청문회에서 폴 라 캐머러 유엔사령관은 다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유엔사령부는 미국지도하 다국적군사령부 중의 하나이다. 유엔사령부는 유엔평화유지기구가 아니다.’(주2)
2024년 9월 5일 가짜“유엔사”해체국제캠페인등 60여 시민단체는 대통령실에 질의서를 제출했다. 10월 25일 대통령실 민원(1BA-2409-0310192)에 대한 답변에서 국방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미는 유엔사가 미국의 행정적 통제하에 있는 별개의 법적·군사적 존재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엔사 존속 및 해체는 유엔군사령관을 임명하고 유엔사를 지휘통제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유엔사 주둔국인 대한민국 정부와 협의하여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입니다. 현재 유엔사 홈페이지는 유엔사의 지위 및 운영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엔사령부는 미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지시아래 운영되고 있으며 뉴욕 유엔본부나 유엔의 어떤 산하기구의 지휘나 통제 하에 있지 않다.”’(주3)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유엔사홈페이지를 인용하여 이미 동일하게 답변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유엔사는 유엔본부나 그 하부조직의 지휘나 통제 하에 있는 것은 아니며 미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음.’(주4)
“유엔사령관”에 이어 한국국방부와 국회입법조사처도 “유엔사”가 유엔의 기구가 아닌 미국의 지휘통제 하에 있는 군사기구임을 드디어 공식확인한 것이다. 1994년 유엔사무국과 유엔사무총장, 2003년 유엔사무총장, 2004년 7월 27일, 2006년 3월 6일 유엔대변인은 “유엔사령부”는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군대라고 확인하였다.(주5) 유엔의 공식입장표명으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미국의 공식입장이 변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유엔의 입장에 굴복한 것이다. “유엔사”해체운동은 2020년 유엔사무국의 유엔기법 개정을 이끌어냄으로서 첫 번째 승리를 쟁취한 바 있다. 이번 한‧미당국의 “유엔사”유엔기구부인론은 “유엔사”해체운동이 거둔 두 번째 거대한 승리이다. 유엔기법개정으로 “유엔사”가 유엔기를 사용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유엔과의 관계정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은 “유엔사”가 미군사령부임을 인정하며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놓았다. “유엔사”홈페이지에 이 같은 고심이 표현된 문장을 보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결의 83호와 84호는 회원국이 한반도에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한을 제공했으며, 우리가 유엔사령부라고 알고 있는 통합사령부의 지도자로 미국을 지정했다.’(주6)
‘유엔사령부(UNC)는 해당 지역의 국제적 평화와 안보를 회복하라는 유엔의 위임을 받은 다국적 군사조직이다.’(주7)
즉 “유엔사”가 유엔기구는 아니지만 유엔으로부터 국제법적 권한과 위임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유엔안보리결의 83호는 한국의 상태가 헌장39조가 명시하고 있는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 중 ‘평화의 파괴’를 구성한다고 했다. 유엔헌장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설자로 인정받은 켈젠에 의하면 ‘평화의 위협’은 예방해야하고, 평화의 파괴는 회복되어야 하며, 침략은 진압되어야 한다.(주8) “유엔사”가 평화의 회복을 언급한 것은 평화의 파괴에 대응하므로 그 설명까지는 정당하다. 그러나 평화의 회복은 침략의 진압이 아니다. “유엔사”가 한 행동은 평화의 회복이 아닌 침략의 진압을 위한 군사조치였다. 안보리결의는 침략을 구성한다고 하지도 않았고, 침략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강제조치를 결정하지도 않았다. 결정을 한 적이 없기에 위임한 적도 없다. 따라서 안보리결의 83호와 84호에 따른 “유엔사”의 행동은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국의 조치였을 뿐이다.(주9)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닌 미국통합사령부임은 인정하면서 유엔안보리에 책임은 전가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술이 성공할지는 의심된다. 논쟁여부는 별도로 하고 미국정부는 분명히 기존입장에서 후퇴했다. 미국의 희망과는 달리 이 후퇴가 몰고 올 파장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1) “유엔사” 명칭
“유엔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1950년 7월 7일 안보리결의 84호는 미국통합사령부의 창설을 권고했다. 이는 결의초안을 제출한 미국 자신의 강력한 의지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이 미국은 통합사령부창설식에서 “유엔사령부”라는 명칭을 도용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유엔사”라는 명칭을 도용한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언젠가 문제가 될 것을 염려했다. 1966년 11월 29일 주한미대사가 국무성에 보낸 전문에는 이 같은 근심이 짙게 배어있었다.
‘우리는 ‘통합사령부’만 요구한 유엔결의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유엔사령부’라는 문구는 어떤 유엔결의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유엔사령부’는 한국전쟁이 시작될 때 미국의 일방적 조치로서 ‘통합사령부’의 이름 대신 채택된 것이다.’(주10)
1966년 당시 미국은 “유엔사”란 명칭 자체가 유엔총회에서 문제가 될 것임을 알고 미리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1975년 유엔총회의 “유엔사”해체결의 B에서 그 명칭은 인용부호가 처리된 “유엔사령부”로 명기되었다. 미국이 “유엔사”명칭을 도용했음이 유엔총회결의에서 확인된 것이다. 미국은 “유엔사”해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유엔사”명칭을 사용했지만 유엔사무국 법률과는 명칭도용에 대해 명확하게 성명하였다. 1994년 6월 유엔사무국법률과는 『유엔법률백서』의 「주한유엔사의 상태」란 글에서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님을 성명함과 동시에 “유엔사”란 명칭이 ‘잘못된 이름’(misnomer)임을 명확히 했다.(주11) 이 문서와 정확히 같은 입장으로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님을 명확히 시인한 이상, 미국이 “유엔사”란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 유엔기
유엔기를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유엔사” 홈페이지의 자주하는 질문 항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엔사는 왜 유엔기를 사용합니까?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는 유엔사령부가 작전과정에서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것이 우리의 모토인 “한 깃발 아래”의 출처이다.’(주12)
안보리결의 84호에서 유엔기사용을 허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안보리가 유엔기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한국전쟁기간 중 이 문제를 예리하게 제기한 것은 켈젠이다.
‘총회의 167(Ⅱ)호 결의에 따르면, 깃발사용을 승인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유엔기구는 사무총장이었고, 새 깃발법은 이 권한을 유엔의 다른 어떤 기관들에도 위임하지 않았다.’(주13)
즉 유엔사무총장이 자신의 권한인 유엔기사용승인권을 유엔안보리에 위임하지 않았으므로 안보리는 유엔기사용을 승인할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엔사무국법률과의 1994년 6월 13일자 각서는 다음과 같이 확인했다.
‘대한민국에서 유엔기의 게양은 유엔조치나 프로그램과 관련이 없다.’(주14)
주한“유엔사”의 유엔기게양이 유엔과는 무관한 것임을 성명한 것이다. 또한 2020년 개정된 유엔기법 6조2항(a)목은 ‘(유엔)깃발을 게양하는 것이 유엔과 그 기를 게양하는 단체나 개인이 어떤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즉 “유엔사”와 같은 단체가 유엔기를 게양하면서 유엔과 관련된 기관처럼 암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기구가 아님을 스스로 확인한 “유엔사”가 이 법에서처럼 유엔기를 게양함으로서 유엔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불법이다. “유엔사”의 모토인 “한 깃발아래” 역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유엔사”가 말하는 유엔깃발은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그 사용이 승인된 바 없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하나의 유엔깃발 아래 모일 수 없다.
3) “유엔사”충혼시설
참전비, 전쟁기념관등 국내외의 “유엔사”충혼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전쟁시 “유엔사”에 배속된 16개 참전국과 6개 지원국의 희생이 전국도처에 유엔참전비등 충혼시설로 기념되고 있다. 이곳들에는 유엔기가 대부분 게양되어 있다. 이국의 땅에 와서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대한민국정부가 감사를 표하고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유엔의 군대도 아니고, 유엔의 조치에 따라 참전한 군대도 아니다. 유엔은 한국전쟁에 대해 유엔헌장에 입각한 ‘조치’를 결정한 적이 없다. 단지 권고했을 뿐이다. 권고에 의해서는 유엔군사강제조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켈젠을 비롯한 다수학자는 이것이 유엔조치가 아닌 그저 각국의 조치일 뿐이라고 규정한다.(주15) 결정적으로 유엔사무국 역시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국의 조치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주한 통합사령부는 유엔의 지휘와 통제하에 있는 강제조치라기보다는 개별국가에 의해 허가된 무력사용이라는 점에서 걸프전에서 설립된 연합군과 유사하다.’(주16)
“유엔사”가 유엔과 무관한 다국적군대라는 것은 현재 “유엔사령관”과 한국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같다. “유엔사”란 명칭이 도용되었고 유엔기사용이 잘못 허용된 이들 다국적군은 유엔과 무관한 군대들이다. 1959년 11월 6일 유엔시설로 인정된 부산“유엔군”묘지는 1973년 유엔과 무관한 시설이 되었다. 유엔기념공원 측은 이를 다시 유엔산하기구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님을 “유엔사”스스로 인정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또한 매년 외국참전군인들을 “유엔사”의 이름으로 초청하는 행사나, 전국도처에 설치된 “유엔사”참전비의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 참전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이 논쟁거리가 되지 않도록 “유엔사”와 보훈처가 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4) “유엔사”해체
“유엔사”해체를 위한 주체논쟁이 사실상 종식되었다. 국방부는 “유엔사”해체가 미국정부결정사안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의 “유엔사”해체 결의 이후 이를 약속하고도 실행하고 있지 않은 미국정부는 언제부턴가 “유엔사”해체가 안보리결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웨인 에어 “유엔사”부사령관은 2019년 3월 18일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유엔사”해체가 미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 문제임을 인정하면서도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돼야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다고 했다.(주17) 그의 발언은 1994년 이후 유엔사무국이나 유엔사무총장의 공식입장과는 분명히 배치된다. 안보리결의 84호는 미국통합사령부 창설을 권고했을 뿐이다. “유엔사”는 유엔안보리에 의해 창설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사”해체의 주체는 이 다국적군을 지휘하는 미국정부일 뿐이다. 이점에서는 한국국방부의 입장이 가장 정확한 것이다. 미국은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유엔사”해체에 대한 결정권도 유엔과 분리시킨 것이라고 본다. 국방부의 입장대로라면 “유엔사”해체에 있어 새로운 안보리결의를 추진할 가능성은 배제되었고 미국정부에 의한 해체라는 단일경로만 남는 것이 된다.
5) 일본 “유엔사후방기지”
일본에 있는 “유엔사후방기지”사용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유독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두 번이나 강조해서 눈길을 끌었다.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입니다.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 곳입니다. 유엔사령부는 ‘하나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히 지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국제연대의 모범입니다.’(주18)
윤석열 대통령이 흥미를 가지고 몰두한 “유엔사후방기지”에 대한 인식은 올바른 것인가?
첫째, 전쟁발발시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은 안보리결의 83호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침략의 진압을 위한 유엔군사강제조치 결정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된 조치를 재반복하는 것은 헌장위반을 구성할 뿐이다. 또한 정전협정체결과 함께 안보리결의 83호 84호의 효력이 종료되었다고 봄이 현대 국제법의 해석에서는 다수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주19)
둘째, “유엔사후방기지”에 유엔군 전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다는 것도 오인이다. 현재 일본에서의 “유엔사”회원국병력은 철수한지 오래고 오직 미군병력만이 주둔해있다. 따라서 현재형으로 “유엔군”병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다는 표현은 오인이다.
문제는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근거가 자체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일본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 근거는 1951년 9월 8일 체결된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이다. 이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유엔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 있으므로 본 장관은 평화조약효력 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를 할 때 그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할 것…을 일본정부를 대신해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주20)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 따라 일본-유엔군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체결되어 있다.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대전제는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조치(UN Action)이다. 그러나 앞서 확인하였듯 한국에서의 유엔조치는 없었고 각국의 조치만이 있었을 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사령부의 성격은 유엔기구와 무관한 다국적군에 불과함을 이제 미국과 한국정부도 확인하였다. 미래에 있을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는 유엔안보리가 새로운 결의에 따라 유엔헌장 제7장의 군사강제조치를 취할 때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유엔조치는 결정되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유엔조치는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조치와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교환공문에 의해 일본정부가 제공하는 시설이 곧 “유엔사”의 후방기지가 될 수는 없다.
한국전에서의 유엔조치는 불성립하므로 교환공문 역시 조약으로서 불성립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교환공문을 기반으로 한 ‘일본-유엔군지위협정(UN SOFA)’ 역시 연쇄적으로 불성립‧부존재 한다. 따라서 “유엔사”의 7개 후방기지의 법적지위는 부존재 한다. 자위대의 역무지원의무도 부존재 한다.
‘일-유엔군지위협정’ 제24조에 따르면 ‘모든 유엔군이 조선에서 철수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모든 유엔군은 일본에서도 철수해야 한다.’ “유엔군”이란 유엔결의에 따른 조치에 종사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유엔조치는 없었으므로 “유엔군”의 지위는 불성립한다. 한국의 “유엔군”은 미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수했다. 미군이 “유엔군”, “유엔사”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모든 “유엔군”이 철수한 것이 되므로 일본의 “유엔군”도 자동 철수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유엔사후방기지”사용권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유엔군”임을 증명하기 위해 1957년 “유엔사령부”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유엔사”가 유엔과 무관한 군대임을 자인했다.
“유엔사”는 “유엔군”이 아닌 미군 혹은 다국적군인 것이다. 한‧미당국의 입장변화와 함께 현재 한국에는 ‘일-유엔군지위협정’에서 규정한 “유엔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의 “유엔군”도 90일 이내에 철수해야 하고, “유엔사후방기지”도 폐쇄되어야 한다. 미국의 심오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논리적 귀결은 “유엔사후방기지”폐쇄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또한 현재 일본에 방문‧기항하는 “유엔사”회원국 군대의 법적지위 역시 부존재 한다. 2018년 밴쿠버“유엔사”외무장관회의를 기회로 결성된 밴쿠버그룹은 캐나다, 호주 등을 중심으로 북핵 관련 유엔제재를 실행하기 위해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하고 있다. 지지와 야스아키 일본 군사연구소 국가안보정책과 선임연구원은 「한국전쟁의 ‘종전’, 유엔군의 ‘해체’와 일본에 미치는 영향」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사례를 서술하고 있다.
‘유엔SOFA 체결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1970년대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본 내 유엔기지 활용, 즉 다자안보협력의 허브로 활용하는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 우발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유엔 SOFA 당사국 중 비미군에 의해, 예를 들어, 2018년 4월 호주군과 캐나다군 초계기는 카데나 기지를 활용해 유엔 제재를 회피할 목적으로 북한의 선박 간 이동, 즉 해상 밀수를 감시했다.…일본 내 유엔사기지는 한반도 유사 상황에서 발생하지만, 이 기지의 다자적 성격은 일미 양국의 맥락을 넘어서는 불가피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주21)
이제 ‘일-유엔군지위협정’의 취지와 달리 한반도 전시와 무관한 평시의 유엔제재에 대해서도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지의 성격을 아예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유엔제재와 관련한 “유엔사”의 공식입장을 보자.
‘유엔사는 유엔제재를 집행합니까?
아니요.’(주22)
“유엔사”는 북핵에 대한 유엔제재결의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유엔사”도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캐나다, 호주 등이 유엔제재를 이행한다면 그것은 “유엔사”와는 무관한 단지 유엔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유엔제재 실행을 목적으로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다른 근거라면 몰라도 ‘일-유엔군지위협정’을 근거로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 만약 대북유엔제재 등 다른 목적으로 “유엔사”회원국이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한다면 명백한 협정위반이 될 것이다.
6) 작전계획 5015, 프리덤 쉴드 연습
작전계획과 연합연습의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앞의 “유엔사후방기지”문제와 연관하여 살펴보자.
1983년 「미합참의장의 유엔사령관을 위한 위임사항」은 ‘유엔사로 예속된 모든 부대에 대하여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했다.(주23) “유엔사”예속부대에는 국군과 미군만이 아니라 “유엔사”전력제공국 혹은 참전국이라 불리는 제3국군이 포함된다.
1993년부터 개칭된 연합전시증원연습(RSOI)은 수용(Reception), 대기(Staging), 전방이동(Onward Movement), 통합(Integration)의 약어로 미증원전력의 한반도 전개과정에 대한 연합연습이다. RSOI는 2008년에는 키리졸브(KR)로, 2023년에는 프리덤 쉴드(FS)로 개칭되었다. 이 연습은 미군전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유엔사”의 이름으로 제3국군까지 포함된다. 이미 “유엔사”회원국들의 병력이 참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유엔사후방기지”이다. 벨 “유엔사령관”은 2007년 ‘유엔사의 전시와 같은 조직구성 필요성’과 ‘미래 한반도 유사시 병력지원을 위한 일본 내 기지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내 유엔사후방기지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 한국이 필요로 하는 다국적군의 한반도 전개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며, “동맹국의 신속한 지원을 위한 메커니즘은 억제력에 기여하기 때문에 유지돼야 하며 이는 유엔사를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 내 “유엔사후방기지”는 “유엔사”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주24)
그러나 “유엔사후방기지”사용의 법적근거인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 ‘일-유엔군지위협정’이 불성립‧부존재하므로 “유엔사후방기지”사용을 전제한 UNC/CFC작계 5015와 프리덤 쉴드 연습의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더구나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니라고 자인했다.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작계5015와 프리덤 쉴드 연습을 유지하겠지만 그것이 “유엔사”를 전제하는 방식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7) 아시아판 나토
“유엔사”재활성화에 이어 “유엔사”‘유엔기구부인’론을 아시아판 나토와 연관시키는 관측이 있다. 미국은 “유엔사”가 유엔집단안보론에 입각한 군대로 보이길 원했다. 그러나 ‘아시아판 나토’란 세력균형론에 입각한 동맹군을 가정한다. 20세기의 집단안보적 군대와 19세기의 세력균형적 동맹군은 전혀 다른 구성원리를 갖는다. 전자가 ‘규범에 근거한 질서’라면 후자는 ‘힘에 의한 평화’로 상징된다. 전자가 유엔안보리 결정과 특별협정에 의해 조직되고 유엔군사참모위원회의 지휘통제를 받는다면, 후자는 공동의 적을 전제한 국가간 동맹으로 유엔헌장에서는 51조 집단적자위권으로만 합리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유엔사”는 이 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자.
‘UNC는 유엔체제 하에서 세계 최초의 집단안보 시도를 의미합니다.(주25)
유엔사령부(UNC)는 해당 지역의 국제적 평화와 안보를 회복하라는 유엔 위임을 받은 다국적군사조직입니다.’(주26)
미국이 집단안보를 통한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면 형식상으로도 유엔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꾸며야 한다.(주27) 집단안보 대신 세력균형을 통한 패권을 추구하려면 집단적 자위권을 활용하여 거추장스러운 유엔의 간섭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을 비롯한 많은 전쟁에서 유엔을 경유하지 않았다. “유엔사”의 유엔기구부인론은 집단안보보다는 세력균형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91년 걸프전에서 유럽국가들은 다국적군의 성격을 유엔집단안보조치로 주장했으나 미국은 미국주도의 집단적자위권행사임을 분명히 했다.(주28) 유럽국가들에겐 미국이 걸프전의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미국의 “유엔사” 유엔기구부인론도 걸프전에서 보인 미국의 의도와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아시아판 나토’구상은 2020년부터 미국이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2013년 신선호 주유엔북한대사의 기자회견에서 이미 등장했었다.
‘미국이 유명무실해진 《유엔군사령부》를 법률적으로 해체할 대신 《다국적련합기구》로 둔갑시켜 아시아판 나토창설의 모체로 삼으려 하고 있는 여기에 문제의 위험성이 있다.’(주29)
북은 2013년에 미국이 정확히 10년 후인 2023년 공식화한 입장변화, 즉 “유엔사” 유엔기구부인론을 예측하고, 이와 함께 등장한 아시아판 나토라는 단어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였다. 북이 이러한 관측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구체적 정보보다 논리에 따른 판단이었을 것이다. 10년 전인 2013년 북의 예상과는 달리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유엔사”를 해체하지 않고 미국통합사령부임을 시인하는 선에서 거론되고 있다.
“유엔사”재활성화가 유엔의 권위를 빌어 20개 전력제공국을 재조직한 것이라면, 유엔기구부인론은 “유엔사”재활성화가 종료된 상태에서 이젠 유엔과 절연하고 이미 조직된 군대를 미국주도로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미국의 의도가 그런 것이라면 이는 야바위다. 유엔을 참칭하여 호객행위를 하고 정작 미국만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하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미국은 ‘아시아판 나토’구상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다. “유엔사”의 유엔기구부인론과 ‘아시아판 나토’론을 현상적으로만 관찰해보면 ‘아시아판 나토’론의 등장과 함께 “유엔사” 유엔기구부인론 ‧ 다국적군론이 병렬적으로 등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현재 상황에서 아시아판 나토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극동사령부를 어렵게 새로 구성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ready-made)(주30) “유엔사”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추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극동사령부와 “유엔사령부” 중 다국적군인 극동사령부를 선택한다면 미국패권의 핵심요소였던 유엔의 외피가 벗겨지는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패권의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2) 결론
미국과 한국은 “유엔사”가 유엔기구가 아닌 미국의 다국적군이라는 사실을 공식확인했다. 유엔의 외피를 쓰고 국제법적‧ 군사적‧ 외교적 논쟁을 일으켜왔던 미국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미국은 1975년 유엔총회의 “유엔사”해체 결의가 일방적 패배로 귀결되지 않도록 여러 선제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결국 유엔회원국도 아니었던 북한의 제3세계유엔외교 앞에 굴복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사”해체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유엔외교실패의 멍에를 지고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2023년 이후 나타난 한‧미당국의 입장변화는 1975년 유엔외교실패를 모면하려던 여러 선제조치의 하나를 연상시킨다. 미국의 불가피한 입장변화는 이후에 예상되는 더 큰 패배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선제조치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변화에 따른 조치가 외교실패로 귀결되지 않게 하려는 대책마련을 위해 미국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진 않겠지만 이후에 벌어질 후퇴의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해 보인다. 나는 미국이 숨기고자 하는 부분적 후퇴가 바로 “유엔사”해체운동의 두 번째 승리임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유엔사”해체운동의 주체는 유엔사무총장, 유엔사무국, 유엔총회를 필두로 한 전 세계 시민단체를 망라한다. 50년 전인 1975년 “유엔사”해체 결의를 이행하지 않고 버텨온 미국은 2020년 유엔기법개정에서 의문의 일패를 맞보고 이제 스스로 두 번째 퇴각을 결정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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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United Nations Command is not a UN peacekeeping organization, but a multinational military command under U.S. leadership.’ “HHRG-118-AS00-Wstate-LaCameraP-20230418”, p.8
2) ‘United Nations Command is a one-of-a-kind, multinational military command under U.S. leadership. The UNC is not a United Nations peacekeeping organization.’ “HHRG-118-AS00-Wstate-LaCameraP-20240320”, p.9
3) ‘UNC operates under the direction of the U.S. Secretary of Defense and Chairman, Joint Chiefs of Staffs and does not fall under the command and control of UN Headquarters in New York or any of its subordinate organizations.’ http://www.unc.mil/Resources/FAQs/
4) 김도희(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 「미 합참의 유엔 안보리 보고 내용-입법조사회답」, (2021.12.22.), p.4
5)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신선호 상임대표의 기자회견 발언문」, (2013년 6월 21일)/ http://www.615europa.de/chunzegisa%202011/2721-22062013.html
6) https://www.unc.mil/About/About-Us/
7) https://www.unc.mil/Resources/FAQs/
8)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p.13-14참조
9) Hans Kelsen, “The Recent Trends i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with Supplement, (Steven & Sons, 1951), pp.936-937
10)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should also be aware that the UN resolution called only for a “Unified Command” and the phrase “United Nations Command” does not appear in any UN resolutions. “UNC” appears to have been adopted at the beginning of the Korean War as a name for the “Unified Command” solely as a unilateral action by the US and, though unchallenged over the years, is, nevertheless, without UN sanction.’ “Telegram From the Embassy in Korea to the Department of State,” November 29, 1966,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4–66, POL 27–14 KOR/UN
11) 원문은 다음과 같다. ‘...which it clearly emerges that the so-called “United Nations Command” is a misnomer.’ UN Office of Legal Affairs, “STATUS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IN KOREA — SECURITY COUNCIL RESOLUTION 84 (1950) OF JULY 1950”,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501
12) https://www.unc.mil/Resources/FAQs/
13) H.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939
14)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15) 이들 안보리결의가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개별국가의 조치라는 입장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이한기, 「한국휴전협정의 제문제」, 『국제법학회논총』제3호, (1958), pp.37-85; 김대순, 『국제법론』(제9판), (삼영사 2004), p.988; 정태욱, 「주한 유엔군사령부(UNC)의 법적 성격」, 『민주법학』34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07), p.213등이 있고, 국외에서는 Hans Kelsen, “The Recent Trends i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with Supplement, (Steven & Sons, 1951), pp.936-937; Peter Malanczuk, Akehurst’s Moder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Law, (Routledge, 1997), pp.389-390; Julius Stone, Legal Controls of International Conflict: A Treatise on the Dynamics of Disputes and War Law, (Stevens and Sons, 1954), p.231등이 있다. 반대로 그것을 유엔의 조치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로는 국내에서는 김명기, 『주한국제연합군과 국제법』, (국제문제연구소, 1990), pp.52-62; 제성호, 『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 (지평서원, 2002), p.15; 이병조·이중범, 『국제법 신강』(제9개정판), (일조각, 2003), p.959의 각주3; Chee, Choung II, Korea and International Law, (Seoul Press for 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Legal Studies, Korea University, 1993), p.88, 강병근, 「주한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에 관한 법적문제」, 『한림대학교민족통합연구소총서』제2권, (2000), p.207; 배재식, 「한국휴전의 법적제문제」, 『법학』(서울대) 통권33호, (1975), p.52등 있고, 국외에서는 Rosalyn Higgins, United Nations Peacekeeping: 1946-1967(Documents and Commentary II. Asia),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178; D. W. Bowett, United Nations Forces: A Legal Study, (Frederick A. Praeger, 1964), pp.45-47; Finn Seyersted, United Nations Forces: In the Law of Peace and War, (A.W. Sijthoff-Leyden, 1966), p.41; Danesh Sarooshi, The United Nations and the Development of Collective Security,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p.110, 169이하; Christine Gray,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 2nd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p.199 등이 있다.
16)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17) 이연철, 「유엔사 부사령관 “유엔사 해체, 미국의 정치적 결심 없이 불가능”」, 『VOA뉴스』, (2019.4.22); https://www.voakorea.com/a/4885840.html
18) 윤석열,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
https://m.khan.co.kr/politics/president/article/202308151114001#c2b
19) Jules Lobel, Michael Ratner, “Bypassing the Security Council: Ambiguous Authorizations to Use Force, Cease-Fires and the Iraq Inspection Regime”, AJIL, vol.93, (1999), p.144.참조
20) Joyakushu, 30-6. Japan's Foreign Relations-Basic Documents Vol.1, pp.446-448
21) Yasuaki Chijiwa, “The “Termination” of the Korean War, the “Dissolution” of the United Nations Forcesand Their Influence on Japan”, (Senior Fellow, National Security Policy Division, Center for Military History) No. 80 July 11, 2018; http://www.nids.mod.go.jp/
22) https://www.unc.mil/Resources/FAQs/
23) “US CJCS Terms of Reference for Commander UNC”, (19 January 1983)
24) 최승범,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 유엔사에 관한 연구: 한국군의 대응과제 도출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석사논문, 2012), p.23-24
25) https://www.unc.mil/About/About-Us/
26) https://www.unc.mil/Resources/FAQs/
27) 「합참의장지시 2021년 12월 15일 최신지침 ‘유엔사에 병력을 제공하기 위한 절차’」에 의하면, 미국에 의해 “유엔사”전력제공국으로 최종 승인되면, ‘합참의장은 유엔주재 미국대표부에 통지하여 유엔사무총장 또는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적절하게 전달한다는 것의 의미는 전달이 의무사항이 아님을 의미한다. shall이 아닌 may를 사용한 것은 책임이나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은 증거이다. 여기에서도 “유엔사”와 유엔의 관계는 극히 형식적임을 알 수 있다.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INSTRUCTION Directive Current as of 15 December 2021. PROCEDURES TO MAKE FORCES AVAILABLE TO THE UNITED NATIONS COMMAND”, CJCSI 2015.01, (1 April 2019), p.4 참조
28) 김석현, 「걸프전의 법적 성격-집단적자위권행사인가 유엔의 강제조치인가」, 『國際法學會論叢』Vol.37 No.2, (大韓國際法學會 1992), p.105 참조
29)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신선호 상임대표의 기자회견 발언문」,(2013년 6월 21일)/ http://www.615europa.de/chunzegisa%202011/2721-22062013.html
30) “HHRG-118-AS00-Wstate-LaCameraP-20240320”, p.9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지난 1월 25일, J.D. 밴스 부통령은 “귀중한 자원(해외 주둔 미군)을 배치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끼면서 조금씩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변화를 줄 것이라는 뜻이다.
크리스토퍼 존스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 국장도 지난달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검토를 재개할 것이란 점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1월 28일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주한미군 병력 감축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에 이견이 있다면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미국 우선주의’에서 더 노골적인 ‘거래적 동맹’으로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에 대한 압박은 방위비 분담금 갈등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 감축을 카드로 추가적인 부담을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 1기는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는 “한국이 방위비를 5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엄포했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은 주한미군 철수만은 안 된다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대선 시기부터 한국을 압박했다. 지난해 10월 15일, “한국에 미안하지만 우리 군대 비용을 당신들이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16일 타운홀미팅에서 “우리는 한국에 4만2천 명의 군인이 주둔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행정협정으로 간주해 대통령이 파기할 수 있다. 작년에 합의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이 트럼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란범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혼란스러운 시기, 민주당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으로 흔들면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 기세다.
2019년,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에 대해 국회의원 47명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면 ‘갈테면 가라’는 자세로 자주국방의 태세를 확립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을 이겨낼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한 결기로 5배 인상을 막아낸 바 있다.
트럼프의 강탈적인 요구에 맞선 한국의 자주적인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 자립 전략을 통해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깨진 물독 신세를 평생 면치 못할 것이다.
[기고] 중도층과 함께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민주당의 대선 승리는 불법 계엄과 서부지법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대선에서 패배하면 역사의 죄인이 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지난 3년을 돌아본다.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만능주의가 윤석열을 스카우트했다. 손바닥에 王을 쓰고 나와도 당선됐다. 그런 후보에게 민주당은 패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됐던 그는, 권력을 무한정 휘두르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 '야당 잘못'이라며 불법 계엄을 일으켰다. 국민에게 국회에서 저지당하고, 국민에 의해 체포된 뒤에도 헌법재판소를 우롱하고 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윤석열은 책임을 회피하고, 측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국민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이 서부지방법원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참담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대한민국 재설계가 필요하다. 정당은 선거에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떴다방'이 됐다. 국가는 망신창이가 됐다. 정치 IMF가 도래했다. 낡고 무능한 정치를 끝내야 한다.
51:49의 피투성이 선거가 아니라 70:30의 국민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국민연대 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필요하다. 대선에서 70:30으로 승리해야 새로운 나라를 만들 힘이 생긴다. 다수의 지지가 없으면 승리할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 재설계'는 추진하기 어렵다. 지난 2022년 대선과 윤석열 정부 3년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집권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협치 없이 운영되는 국정은 결국 파멸을 부를 뿐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민주당은 탄핵 찬성이 70%에서 59%로 하락한 원인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한다. 중도층, 서울, 2030의 지지는 회복해야 하고, 65세 이상의 절대적인 비토를 줄여야 한다.
정치철학의 기초를 형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폴리스(도시국가)의 정치 체제를 연구하며 150~190개의 헌법을 분석했다. 그는 정치 체제가 타락하는 방식을 분석하며, 군주제는 쉽게 참주정(독재정)으로, 귀족제는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흐르다 과두정으로, 민주정은 선동가들에 의해 중우정(우민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건강한 국가의 공통 요소로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튼튼해야 하며, 정치적으로는 극단이 아닌 중도층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산층이 많을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존재할 경우 국가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중도층과 함께 가려면 넘어야 할 산
'국가 재설계를 해야 한다.' vs '야당 국회 의석수가 190석인데, 대통령까지 되면 나라를 마음대로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진보, 보수 양 지지층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우리의 길은 앙시앙레짐의 극복과 국가 재설계로 향해야 한다. '나라를 마음대로 할 것'이라는 불신을 주면 안 된다.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신뢰를 어떻게 줄 것인가? 국민의힘은 집요하게 이를 공격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슨 나라를 만들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첫째,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의해 통치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명확한 비전과 인물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국민의힘에서 이탈자를 막기 위해 100% 국민경선을 도입한다면? 국민의힘에서 당원의 지지도는 떨어지지만, 국민지지도가 높은 후보(예: 유승민 등)를 끌어안기 위해 경선룰 개편 논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100% 국민경선제를 밀고 가는 것이다. 과거 2021년 부산시장 경선에서도 국민지지도가 높았던 박형준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100% 국민경선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5명~6명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를 제외하고는 2등부터 5등까지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치열하게 경선을 치르고 국민적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추대하는가? 그렇다면 국민의 지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민주당 내 경선은 형식적인 절차로 끝낼 것인가?아니면 경선 전략을 새롭게 설정할 것인가? '민주당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려면 적극적인 경선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이재명 대표의 리스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재명 대표가 억울한 면은 보호해야 한다. 민주당이 함께 싸우고 보호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DJ는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타협과 눈물겨운 변화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IMF를 극복했다.
넷째, 개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민의 60%는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한길리서치) 대체로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통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190석+대통령제' 조합이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초래할 것이라며 개헌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개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무조건 반대할 것인가? 수동적으로 맞이할 것인가? 능동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예측 가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헌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대선 승리를 위해 개헌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
먼저, 계엄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70%, 80% 이상이 찬성할 개헌 조항이다. 현행 헌법에는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尹은 이를 악용해서 북에 위험천만한 도발을 생각하게 됐고, 비상상황을 조작하려 했다. 따라서 계엄을 완전히 폐지하거나, 전시에만 한정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것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인 '민주당이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
둘째,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갈치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이다. "희망이 있어 투표를 하면 실망하고, 또 희망을 갖고 투표를 했는데 사는 게 나아지질 않는다. 정치, 대체 뭐가 잘못된 거요?" 이 물음이 수년간 떠나질 않는다.
국민의 4대 의무는 명확하지만, 국민의 권리는 불분명하다. 유럽처럼 노동권(일자리), 주거권, 보육권, 교육권, 건강권을 보장하고, 노후연금 확대, 문화 향유 등 '행복 추구권'의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앞으로 정치와 국가와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 추구가 7가지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정권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을 위한 승리에 있지 않다. 국민의 삶 개선에 있다.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국민행복 7공화국을 선언하자.
셋째,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을 제어해야 한다. 이번 불법 계엄 사태와 권한대행 과정을 지켜보며 헌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특히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 제한이 필요하다.
넷째, 여의도를 국제 금융지구로,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서울이 홍콩, 싱가포르와의 경쟁할 수 있는가? 경제는 서울, 정치는 세종.서울을 국제금융 중심지로 만들고, 국회는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제조업을 지키면서 금융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단, 대통령실은 청와대와 세종2집무실을 병행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 대선 승리와 성공한 정부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 역대 대통령들은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도 번번이 국민을 속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선 당시 최소한의 개헌 조항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합의되지 않은 개헌사항은 부칙에 넣어 다음 대통령 임기부터 적용할 수도 있다. 40일이면 할 수 있다.
개헌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드는 논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국민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 중, 일, 러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헌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 대선 승리도, 성공한 나라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 외 사면권 등등은 <악당으로부터 대한민국 지키기> 책에 언급해 놓았다.
중도층은 공정함을 묻고 있다
내로남불 정치를 끝내야 한다. 민주당에서 콩이면 국민의힘에서도 콩이어야 한다. 경상도에서 콩이면 호남, 충청, 수도권에서도 콩이어야 하고, 전라도에서 팥이면 경상도 등 전국 어디에서도 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재, 내로남불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야당일 때 주장하다가 여당이 되면 뒤집는 수많은 거짓정치를 바로잡자. 대선 전에 법률로 약속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주요 쟁점을 찾아서 대선 전에 정리하자. 예를 들어 예산 준칙, 정부의 부채 통계를 여야 합의로 하나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야당일 때 여당이 되면 달라지는 부채 규모, 기초 통계를 바로잡자. 불필요한 논쟁에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모전을 끝내자.
둘째,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도덕적인 검증과 정책적인 공개 검증이 분리되는 제도를 정착시켜서
훌륭한 인재가 공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전리품 정치인, 전리품 인사를 끝내야 한다. 산하 기관장 임기와 정권 임기를 같이 하는 곳과 달리하는 곳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수많은 낙하산 인사 시비를 끝내야 한다. 민주당이 이를 주도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선거 후에 '논공행상'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은퇴 세대와 함께해야 국가가 안정된다. 노후의 가난은 누구에게나 슬픈 현실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노후를 위해 더욱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60대 이상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56%에 달한다. (한국갤럽. 1. 17.) 이들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지만,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 노인 자살률은 OECD 1위다. 노인 빈곤율은 40.4%, OECD 1위다. (OECD 평균 14.2%) 자녀 교육과 부모 부양에 힘쓰느라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세대다. 이들에게 어떻게 안정된 삶을 보장할 것인가?
집 한 채가 재산 전부인 중산층 은퇴자들이 있다. 팔면 세금이 많다. 살던 집을 집 없는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높은 세금 때문에 그대로 물려줄 방법이 없다. 상속세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점에서 논의한 이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상속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2030에게 미안한 일이 많다. 2030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집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도 어렵다. 그러니 결혼도 어렵고, 결혼해도 보육‧교육이 힘들어 아이 낳기가 두렵다. 부모 부양은 엄두도 안 난다. 일자리 주택, 보육‧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AI 혁신도시 2.0을 제안한다. AI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이 기반이 돼야 한다. 지식이 없으면 기술이 없고, 기술이 없으면 창업도 어렵다. 전국의 대학교를 AI 교육의 근거지로 만들자. 대학에 기업, 연구시설, 숙소, 그리고 우수 인재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을 조성하자. 대학이 중심이 되어 퍼져 나가게 하자.
노선도 중요하지만 태도도 중요하다. 윤석열이 대통령일 때 민주당 의원들의 거친 발언은 용인됐다. 그러나 윤석열이 구속되고, 탄핵이 인용된 후에는 민주당의 집권능력이 더 중요한 평가요소가 될 것이다. 절제된 언어와 태도가 필요하다. '190명이나 되는데 돌출발언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바른 의견 내는 목소리는 살리고, 국민에게 거슬리는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스스로 절제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절제된 언어와 태도는 집권세력으로서의 안정감을 줄 것이며,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어떻게 이를 만들어 갈 것인가?
민주당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길, 그리고 중도개혁 정당의 길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균형 속에서 일관된 길을 걸어야 한다. 핵심은 경제와 외교‧안보로 요약된다.
먼저 경제에서 성장전략은 무엇이고, 복지전략은 무엇인가로 압축된다.
혁신성장전략은 무엇인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공업 시대를 열었다. 미국, 일본만 따라하면 됐고 미국, 일본에 팔 수 있으면 됐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IT의 시대를 열었다. 중국의 부상으로 뭐든지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였다. 2025년은 미‧중 기술패권전쟁으로 인해서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와있다. 우리는 과연 AI, 기후 위기, 인간 수명 100세 바이오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맞는 성장전략은 무엇인가?
복지 국가 전략은 무엇인가? 박정희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만들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주택 200만 호로 주택 안정 시기를 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 제도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만들었다. 2025년 우리는 주택, 보육‧교육, 노후연금의 3대 과제를 국가책임제로 해결해야 한다.
그 다음, 외교 안보 측면에서 봤을 때 한미동맹은 어떻게 할 것이며, 중국, 일본, 러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떤 전략을 가질 것인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에 핵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평화를 유지할 방안은 무엇인가? 핵 억제력과 안보전략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국민의힘은 '친중·종북세력'이라 공격할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전략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협력하는 전략은 무엇인가?
성공한 정부를 만들려면?
성공한 정부의 공식은 간단하다. '성공한 정부=정상적인 국가+더 나은 국민의 삶+강하고 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70%의 굳건한 지지를 바탕으로 국민연대의 틀에서 최고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첫째, 70%의 굳건한 지지를 갖는 정치연대가 필요하다. 둘째, 선거연대 → 정치연대 → 국민연대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의 틀이, 정치연대의 틀로 이어지고, 정치연대의 틀이 국민연대의 틀로 이어지고, 그 틀에서 최고의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셋째,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과 정당, 그리고 국민이 모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넷째, 계획과 조직과 인물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계획에서 시작된다. CFO, 즉 '기획재정부의 나라'에서 이제 '기획부'를 신설해야 한다. 계획이 중요하다. 기획 기능과 예산 기능을 분리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산업과 정책 집행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미래를 설계하자. 대한민국 정치는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첫 번째, 꿈이 부족하다. 꿈이 강렬하면 작은 일로 싸우지 않는다.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열망하는 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 운명은 반도 국가다. 주변 강대국이 등장할 때마다 고통받고 분열되는 역사를 끝내자. 그리스, 로마, 네덜란드처럼 반도 국가이면서도 신문명을 개척했던 길을 가자. 세계 1위의 지능 국가, 인재 강국이 모든 것의 기초다. 교육혁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혁신경제로 해방 후 100년, 2045년에는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경제와 안보 능력이 탄탄해야 동북아 평화가 정착된다.
이제 아시아의 시대가 온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싱가포르나 네덜란드처럼 개방국가가 돼야 한다. 동양과 서양,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핵심국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아시아에서 NO.1 문화플랫폼 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홍콩, 싱가포르, 도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중심이 돼야 한다. 우리는 '매력국가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광개토대왕, 장보고, 이순신, 세종대왕의 역사는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둘째, 계획이 부족하다. 국가의 10년, 20년 계획은 누가 세우는가? 국민의 삶은 누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셋째, 실행할 사람이 부족하다. 꿈과 계획을 실현할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함께 지혜를 모아 대한민국을 재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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