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권의 단독 저서와 여러 권의 공저가 번역되어 있는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름난 일본 영화 연구자며 아시아 대중문화 연구자다. 지은이는 1979년 도쿄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 과정에 있던 중에, 서울에 있는 건국대학교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사로 한국에 1년 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 2022년에 발표되고 작년 10월에 번역된 『계엄』(정은문고,2024)은 그때의 체험을 적은 것으로, 지은이는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논픽션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난 세노 아키오이지만, 그는 지은이의 스물일곱 살 적 분신이다.
1970년대의 풍경. 동아일보 1970년 3월 14일자 기사.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과밀 억제 대책에 관한 기사다. ⓒ자료사진
이 책은 1970년대 말 외국인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대학가와 도시의 풍속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를 흥미롭게 재현해 준다. 세노 아키오가 관찰한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별도의 의미가 필요 없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록하지 않는 사이에 그 익숙한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려, 이제 우리는 외국인의 눈에 포착되고 기록된 것을 통해 우리를 다시 보게 된다.
“식당에서 계산할 때면 항상 누군가가 다 계산했다. 비록 학생들끼리라도 각자 낸다는 습관은 없었다. 습관이라고 하지만 학생이 결코 풍족하게 생활비를 받을 리 없다. 여러 명의 밥값을 내다니 상당히 부담이 될 텐데. 하지만 그들은 마치 밥값을 신경 쓰는 일 따윈 하찮다는 듯이 화제에 올리기를 피했다.”(46쪽)
“이 학생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녀가 상경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그는 무서운 얼굴로 호통쳤다. 그런 천한 패거리가 쓰는 말을 최고 학부에서 배우다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녀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침내 입학 허락을 받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신만 이렇게 허위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54쪽)
“만원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거나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든 주부나 학생이 있으면 좌석에 앉은 승객이 가만히 손을 뻗어 짐이나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일본인은 만원 버스에 타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입구 쪽에 몰려 있기 십상이다. 한국인은 버스에 타자마자 일단 맨 뒤로 가서 다음 사람을 위해 충분히 공간을 마련해두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어디서 이런 상부상조하는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어쩌면 한국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한국인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게 아닐까.”(62쪽)
세노 아키오의 기록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그 이튿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갑작스레 막을 내린다. 지은이는 이후 21년 만에 서울 중앙대학교 객원교수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 사이에 한국은 몰라보게 바뀌었는데, 20년 넘는 변화를 증언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지은이는 1979년 8월 중순, 한국 여행을 온 대학교 동문 여학생으로부터 일본에서 막 출간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건네받아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리고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 “이 중편소설은 재미었었다.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 아닐까 판단했다.”(196쪽) 군사 문화와 최루탄으로 매캐한 한국에서는 하루키 소설 속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한 달관(쿨) 따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가족, 민족,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재치 넘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할 리 만무하다.”(198쪽)라는 것이다.
우리 속담으로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민주화와 동시에 완전한 대중 소비 사회가 실현”(297쪽)되었고, 한국인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은이의 단언과 달리, 하루키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이 일으켰던 12·3 내란은 40년도 넘은 대한민국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폭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정보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계엄을 사전에 기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4.12.24 ⓒ뉴스1
1979년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한 세노 아키오는 광주 출신 복학생 홍기철과 친해졌는데, 세노를 서울로 부른 한국인 조교수로부터 “저 학생은 우수하지만 전남이니 조심하는 게 좋아요.”(124쪽)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었다. 지은이는 이후 여러 경로로 호남에 대한 역사적·체계적 차별의 실체를 듣게 된다. 그런데 2024년 9월, 12·3의 주요 하수인이었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정보사 소속 김아무개 대령과 정아무개 대령에게 중·소령급 내부 인원 35명을 선별하라면서 이렇게 지시했다. “820(정보 전문) 특기자 가운데서 선별하되, 호남 지역 출신은 배제하라.”
아가리를 찢을 노상원의 지시는 작년 12월 21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재까지 그 의미가 동결된 채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윤석열과 국힘 일당들은 12·3 내란을 ‘자유민주주의’니 ‘국가 위기’와 같은 헛소리로 옹호하거나, ‘부정 선거’, ‘친중’, ‘종북’에 원인이 있는 듯이 둘러댄다. 하지만 저 거창한 단어들이야말로 ‘체계적인 호남 혐오’를 은폐하고 있는 속임수가 아닌가. 저 내란범들에게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어떤 의미일까. 12·3 내란범들의 의식 구조는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훑어봐야 할 것이다.
지난 20일 일론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취임식 날 워싱턴의 캐피털 원 경기장 내부 연단에서 오른팔을 비스듬히 치켜세우는 손짓을 하고 있다, 극우 성향 머스크의 이런 제스처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독일 시대 인사 '하일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는 억측과 비판을 받았다. 2025.1.20. 로이터 연합뉴스
“아이들이 조상들이 진 죄를 짊어져선 안 된다”
세계 최고갑부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가 지난 25일, 총선을 앞둔 독일 극우정당 ‘독일의 대안’(AfD) 선거유세 집회장의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서 한 말이다. 머스크는 AfD가 “독일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독일의 위대한 미래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오는 2월 23일로 예정된 독일 총선에 총리후보로 나선 알리스 바이델 AfD 당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기를 바란다”며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Make Germany Great Again)라는 구호로 호응했다.
“100년 전 일로 일본을 무릅꿇게 해선 안된다”
AfD는 지금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서 약 20%로, 보수세력인 기독교민주연합(CDU)사회연합(CSU)의 약 30%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정당이다. 2013년 유럽 부채 위기를 계기로 2013년에 ‘유로 반대’를 앞세우며 창당한 AfD는 점차 이민 반대 등의 배외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나치 시절의 구호를 외치는 등의 과격한 극우 언동 때문에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의 ‘우익 과격파’ 감시대상으로 지목됐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한 적어도 당분간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수 없는 정당이다. 모든 정당이 과반수 의석 미달일 경우 정당끼리 협의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다른 어느 정당도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대상인 AfD와 손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AfD 선거집회의 4000여 명 당원들을 흥분시킨 연설에서 머스크가 “아이들이 조상들이 진 죄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고 외친 것은 그냥 덕담 같은 게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발언이다. 그것은 연임을 노리는 사민당(SPD)의 올라프 숄츠 총리 등 진보 ‘좌파’를 깎아 내리고 우파를 치켜세우기 위해 계산된 발언이다. 나치의 전쟁범죄 등 독일이 비극적인 과거사 옹호를 막기 위해 설립된 연방헌법수호청이 문제삼을 만한 머스크의 그 발언은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을 무릎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사람의 사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주요 후보인 앨리스 바이델을 보여주는 선거 포스터가 1월 28일 프랑크푸르트의 가로등 기둥에 높이 고정되어 있다. 2025.1.28. AP 연합뉴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1월 28일 베를린에서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과 함께 성명에 참여하고 있다. 2025.1.28. AP 연합뉴스
독일의 우경화?
AfD 지지율 20%는 그런 구호에 환호하는 독일 유권자가 적어도 20%는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돼 있던 일본군 위안부 희생 ‘소녀상’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내려진 건 극우세력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독일의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다. 미테구에서 소녀상이 철거될 경우 다른 구에서 그것을 옮겨가겠다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결정에는 일본 외무성과 베를린 주재 일본대사관 등이 독일 정부와 베를린 시를 상대로 집요하게 벌여 온 소녀상 철거 공작에다 이러한 독일 내 정치변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25일 문제의 발언을 한 머스크는 일개 민간인 사업가가 아니다. 지난 20일 트럼프 정부는 머스크가 맡기로 했던 정부 외곽조직 ‘정부효율화부’를 정부내 조직인 ‘정부효율화서비스부’로 격상했다. 백악관 내 인터넷 메일 독자 계정도 배정받았다. 트럼프는 원래 정부 세출 삭감을 위해 정부 바깥에 조언(고문) 기구로 정부효율화부를 설치하고 머스크를 그 책임자로 앉혔다. 그러나 지난 20일 이를 백악관 산하 기구 USDS(미국 디지털서비스)를 개조해 정부 내 ‘미국 정부효율화서비스’부로 개조하고 머스크와 사업가 비벡 라마스와미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하지만 라마스와미가 머스크와의 견해 차이로 사직해 머스크가 단독 수장자리를 꿰찼다.
백악관 산하 정부효율화서비스부 책임자 머스크의 AfD 선거집회 발언은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방침과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파 포률리스트적 성격이 강한 트럼프 정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파 포퓰리스트 “과거사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
“현대적인 테크놀로지와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정부의 효율과 생산성을 최대화한다”는 대통령령에 입각해 설치한 머스크의 그 부서는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경쟁과 능력 제일주의 정책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과 능력 제일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구호 중의 하나는 ‘과거는 잊어라, 이제 미래를 향해 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한미일 준동맹 결성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게 강조하고 종용해 온 구호이기도 하다. “과거사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 일본에게 더 없이 유리한 그 구호를 윤석열 정부는 앞장서 받들었다.
극우 포퓰리스트 머스크, 숄츠 독일 공격 극우정당 지지
머스크는 그가 2022년 트위터(지금의 엑스‘X’)를 매수했을 때 했던 것처럼 직원 채용에서 준용해 온 미국 연방정부의 기존 ‘좌파적’ DEI(다양성, 공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종업원 70%를 해고했듯이, 정부 각 부처의 직원들을 대량해고 해 세출을 줄이는 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의해 트럼프 정부는 이미 정규직 공무원은 줄이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정무직 직원들을 크게 늘렸다.
주로 좌파를 겨냥한 ‘과거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는 구호는 좌파 내지 진보세력에 대한 혐오와 우파, 극우파 지지, 나아가 그들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 몇주일에 걸쳐 AfD지지 발언을 계속해 왔다. <벨트 암 존타크>지 기고문에 AfD가 “독일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라고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X를 통해 반이민을 내세운 AfD 알리스 바이델 당수와 장시간 대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독일 극우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반이민은 지금 트럼프 정부가 취임 초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전시적 정책이기도 하다.
미국 국익 위해 독일 약체화하려는 것?
반면에 머스크는 자신의 X에 올린 글에서 숄츠 총리가 “무능한 바보”라며 사임하라고 요구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CEO(최고경영책임자)로 있는 전기자동차(EV) 테슬라가 독일에 투자하고 있다는 걸 이유로 그런 식의 독일 내정에 개입하는 걸 정당화했다.
숄츠 총리는 “냉정하게 얘기하자. 선동행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며 직접 대응하려 하지 않고 있으나,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베크 당수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손대지 마시오, 머스크 씨”라며 반발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자민당(FDP) 당수는 머스크에 대해 “독일에 경제적 손해를 끼치고, 정치적으로 고립시켜야 할 정당에 투표하라고 촉구” 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으로 귀결될 독일의 약체화를 의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1월 28일 런던 중심부에서 연 기업 리더들과의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1.18. 로이터 연합뉴스
좌파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총리도 공격
머스크는 영국 집권 노동당 당수이자 총리 키어 스타머에 대해서도 근거 불확실한 소녀 성착취문제 개입을 이유로 줄기차게 비판하며 “사임하라”고 요구해 왔다. 스타머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검찰총장 재직 시절,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트 맨체스터의 올덤에서 파키스탄계 범죄 혐의자가 백인 소녀들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충분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며 그를 “영국역사상 최악의 집단범죄에 가담한 죄로 고발돼야 한다”고 머스크는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스타머 정권의 다른 고위관리도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공격했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6일 머스크를 직접 지칭하지느 않았지만, “허위정보를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주목받기를 바랄 뿐”이라며, 자신은 검찰총장 시절 그 사건 혐의자를 기소하고 정면으로 대처했다고 반박했다. “그런 수법은 몇 번이나 봐 왔다. 그들은 위협을 부채질해서 언론이 그것을 증폭시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9일 머스크가 노리는 것은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노동당을 약체화시켜 자신들이 지지하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 ‘개혁 영국’(Reform UK)의 세력 확장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9일 머스크가 영국의 다음 총선거 이전에 스타머 총리를 사임으로 몰고 갈 방책을 관계자들과 협의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기사는 머스크가 영국 소녀 성폭행 사건을 자신의 X에서 계속 거론하면서 스타머의 사임을 요구하고, 2월 총선을 앞둔 독일 극우정당 AfD를 지지하는 글도 계속 올리고 있다면서, “머스크가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권을 어떻게 하면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안을 강구하면서 노동당을 대체할 정치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머스크가 서양문명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전했다.
우파 머스크는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방의 좌파를 혐오하고 비판하면서 우파의 집권을 바라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본노선과도 합치한다. 게다가 백인 우월주의, 서방 우월주의의 인종차별적 양태를 보이고 있는 점도 닮았다. 아시아계 범죄 혐의자의 백인 소녀 성폭행 사건에 대한 머스크의 유별난 반감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유럽 주요국 정치인들 머스크의 내정개입 우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10년 전에 세계 최대급 소셜 네트워크(X) 오너가 새로운 국제적 반동운동을 지지하고, 독일 등의 선거에 직접 개입한다고 했다면 누가 믿었겠나”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는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큰 영향력을 기지고 있고, 엄청난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 타국의 내정에 이토록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스페인의 정부 대변인 피라르 알레그리아는 X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는 “절대적인 중립성, 무엇보다 어떤 간섭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조르쟈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등 우파 정치인들은 머스크의 행보를 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우파 연립정권을 이끌고 있는 극우 멜로니 총리는 머스크를 “천재” “뛰어난 혁신가”로 칭송하면서 그가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의 좌파 공격을 옹호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머스크의 우주사업체인 스페이스X와 1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이 이탈리아 정부에 암호화된 인터넷과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골자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야당들이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중도파 리더 카를로 카렌다가 “머스크가 유럽에서 극우세력을 지원하고, 페이크뉴스(가짜 뉴스)를 확산하면서 각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민감한 기능을 그에게 넘겨 준다는 선택지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지난 8일 <BBC>는 보도했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유명한 금융투기꾼이자 대규모 자선사업가인 자국 출신 조지 소로스를 혐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머스크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지난 달 트럼프의 플로리다 사저 마라라고에서 만났다.(<아사히신문> 1월 8일)
극우 전략가 스티브 베넌 “머스크는 진짜 악당”
이에 대해 같은 우파 포퓰리스트로 트럼프 1기 정권 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베넌은 지난 14일 머스크를 “진짜 악당”이라고 비난했다. 베넌은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데라세라>와의 언터뷰에서 “IT(정보기술)업계는 HIB비자(높은 기술력을 지닌 전문직 취업비자)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벨리 기술자의 76%는 외국인”이라며 HIB비자를 활용해 외국의 고급인재를 불러들이자고 주장하는 머스크를 비판했다.
베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머스크를 향해 남아공의 예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염두에 두고 “남아공의 백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종차별적인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들이 미국 일에 참견을 하나”라며 불만을 표시한 뒤 “머스크는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진영에) 거액을 냈으니까 참으려 했는데, 더는 참을 수 없다. 남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고 질타했다. 베넌 자신이 트럼프 1.0 시절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말썽을 빚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언쟁은 트럼프 진영 ‘이너 써클’ 내부의 마찰이 표면화 된 것으로, 트럼프와 머스크의 밀월이 얼마나 지속될지와 관련해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1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마사요시 손(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겸 CEO, 래리 엘리슨(그 왼쪽) 오라클 전무 이사, 샘 올트먼(맨 오른쪽) 오픈 AI CEO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루스벨트 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1월 27일 중국 경쟁사 딥시크(DeepSeek)의 최신 인공지능 R1의 최근 데뷔를 칭찬하며, "특히 가격 대비 인상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2025.1.21. AFP 연합뉴스
머스크와 올트먼의 AI 선점 경쟁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가 밀고 있는 샘 올트먼의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등을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타게이트를 위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먼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트럼프에게 약속했으나, 머스크는 지난 21일 X에 “그들은 실제로 그만큼의 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 소르트뱅크가 확보하고 있는 것은 100억 달러도 안 된다. 확실한 소식통한테서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오픈AI의 CEO 올트먼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이미 진행중인 초기 현장을 방문해 보고 싶은가?”라며 반박했다. 이 둘은 견원지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함께 시작한 오픈 AI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인 끝에 머스크가 뛰쳐나와 AI기업 xAI를 따로 세운 뒤, 비영리 목적으로 시작한 오픈AI가 계약을 위반해 이익 추구로 내달리고 있다며 제소해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의 불화는 머스크의 xAI가 오픈AI, 그리고 스타게이트와 실질적인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에 이권 지닌 머스크 행보 한국엔 어떤 영향?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는 중국 정부의 전면적인 지원 아래 2019년에 상하이 시에 공장을 세웠다. 외국자본 자동차 생산업체로서는 중국 업체와의 합작사업이 아닌 첫 현지 단독자본 진출이었다. 테슬라는 지금 전 세계 전기자동차 출하 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EV생산업체가 됐다. 대형 베터리공장도 상하이에 완공해 조만간 생산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머스크는 중국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한층 더 강화하려는 트럼프 정권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예전 미중 국교 정상화 길을 연 리처드 닉슨 정부 때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존재로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만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트럼프의 취임식에는 머스크 외에도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메타(예전의 페이스북) 설립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마크 저크버그 등도 귀빈으로 참석했다. 이들 모두 거액의 기부금을 트럼프 취임위원회에 낸 갑부들이다. 트럼프 자신도 갑부다.
거대 IT기업들의 독점을 규제하려 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머스크 등 갑부들을 염두에 두고 “극소수의 초부유층으로의 권력 집중”에 대해 경고했다. “내게 큰 우려를 안기고 있는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 매우 한정된 초부유층 인사들에 권력이 집중돼 체크(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권력이 남용되면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과두정치가 민주주의와 기본적 권리, 자유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중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테슬라의 머스크,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대형 IT 프로젝트의 당자자인 머스크가 트럼프 정부 주요 공직을 맡고 있을 경우 피할 수 없는 이해충돌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미국은 정말 중국과 정면대결을 벌이려 할까? 머스크와 트럼프 정부의 극우적 정책 지향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2016년부터 10년 동안 공개된 대통령 설 선물들. 2017년과 202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로 설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매년 설을 맞이해 국정철학과 시대상황 등이 담긴 대통령 설 선물이 국가유공자와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각층에 배달된다.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을 제외하고 대통령 설 선물이 공개됐다.
2017년 설에는 대통령 설 선물이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박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8년 뒤인 이번 설에도 비상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로, 대통령실에서는 설 선물을 발송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설을 맞이해 충북 보은 대추와 전남 장흥 표고버섯, 경남 통영 멸치 등 각 지역 특산물을 설 선물로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설에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 소비를 촉진한다는 취지로 충남 공주 차례용 백일주와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횡성 소고기 육포 등으로 설 선물 상자를 채웠다.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사진으로 모아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설 명절을 맞아 보낸 설 선물 세트.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설에 보낸 선물 세트.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평창 감자술을 비롯해 경기 포천 강정, 경남 의령 유과, 전남 담양 약과, 충남 서산 편강 등 지역별 한과로 구성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보낸 설 선물 세트. 경남 함양 솔송주, 강원 강릉 고시볼, 전남 담양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 유과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식품 5종이 담겨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설 선물로 전북 전주 이강주, 강원 양양 한과, 경남 김해 떡국떡 등 지역 특산물 3종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설 명절을 맞아 준비한 설 선물세트. 안동 소주와 김제 약과, 여주 강정, 무안 꽃차, 당진 유과가 들어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임기 마지막 설 선물로 김포 문배주와 충남 부여 밤, 전남 광양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등 각 지역 특산물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취임 뒤 첫 설날을 맞아 농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각 지역 화합을 바라는 의미에서 경북 의성 떡국 떡, 전남 신안 곱창김, 강원 인제 황태채, 충북 청양 표고채, 경남 통영 멸치, 인천 옹진 홍새우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충남 공주 백일주,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횡성 소고기 육포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불교계 등을 위해서는 충남 논산 아카시아꿀,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양양 표고채가 준비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선물은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와 보호재를 사용해 포장을 간소화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기간 연장 불허(24·25일) 및 검찰의 구속기소(26일)를 놓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이 검찰·공수처에 "불법"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법원 결정 취지나 심지어 윤 대통령 측 자신들이 앞서 했던 주장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25일 법원이 두 차례에 걸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불허하자,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는 지금까지 수사권이 없음에도 수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을 즉시 석방하라"라고 요구했다.
이어 26일 검찰이 윤 대통령을 구속기소하자 변호인단은 "거대 야당의 '하명 수사기관'을 자임한 공수처가 조기 대선을 위해 대통령 내란 몰이에 앞장섰고, 검찰은 각본대로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과 공수처가 모두 민주당의 하수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므로 검찰의 기소 또한 불법", "직권남용 수사를 근거로 내란을 수사한 별건수사"라며 "검찰은 공수처의 위법 수사에 눈을 감고 기소 대행청, 지게꾼 노릇을 자임했다"고 주장(27일)했다.
그러나 법원의 구속기간 연장 불허 취지는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공수처만이 적법한 수사권을 갖고 있으며, 검찰은 수사권이 없다는 취지에 가깝다.
법원의 불허 이유는 "고위공직자 등의 범죄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하도록 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한 공수처법의 입법 취지,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이를 공수처와 검찰청 사이에도 적용시키는 공수처법 제26조의 규정취지, 검찰청 소속 검사의 보완수사권 유무나 범위에 관하여 공수처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공수처 검사가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수사한 다음 공소제기요구서를 붙여 그 서류와 증거물을 검찰청 검사에게 송부한 사건에서, 이를 송부받아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청 검사가 수사를 계속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고위공직자인 윤 대통령에 대한 범죄혐의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해야 하는 것은 공수처이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수사는 공수처가,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하고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에 넘긴 이상 검찰은 추가 보완수사를 계속하기보다 바로 기소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라는 입장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26일 윤 대통령 기소 결정 이전 전국 고·지검장 회의를 열어 법원 결정에 대해 "서울교육감 사건 등 공수처가 송부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확정한 전례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기소여부 결정을 위한 보완수사와 공소제기, 공소유지 등 검사의 책임과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등 형사사법체계에 반하는 부당한 결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법원은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은 보완수사권이 없다'고 결정했고, 검찰은 '기소여부 결정과 공소유지를 위해서는 추가·보완수사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 상황은 모두 공수처의 1차 수사권 자체는 적법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즉 '공수처 수사=불법'이라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검찰 모두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즉 법원 결정의 취지에 따르면 공수처의 수사는 적법했고, 그렇다면 공수처 수사를 철저하게 거부한 윤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로 공수처 수사를 '불법'이라고 주장해온 국민의힘의 대응이 비판받아야 하는 셈이다. 공수처가 결과론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면 오히려 피의자가 수사를 거부하고 그 옹호세력이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신병 확보 후 조사에 소극적으로 임한 점, 검찰이 보완수사를 하면 되리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겨버린 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공수처의 수사가 '엉터리 수사'였음이 사실상 법원에서 입증된 것"(24일 신동욱 수석대변인 논평),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불법수사, 불법체포를 했다는 점이 점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헌을 문란하게 한 내란"(24일 김기현 전 대표 페이스북)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권영세), 원내대표(권성동) 등 이른바 당 '투톱'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권 원내대표는 그럼에도 지난 25일 밤 발표한 메시지에서 "구속영장 기한 연장이 최종 불허됐다. 모든 혼란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위법적 체포영장 집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 모든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즉각 사퇴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26일 윤 대통령 구속기소에 대해서도 "공수처의 불법체포·불법수사를 기반으로 이뤄진데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없는 잘못된 부실 기소"(신 수석대변인)라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도 페이스북에 글을 또 올려 "부실하고 부당하고 부정의한 기소"라며 "공수처와 검찰은 적법절차의 원칙을 내던져버렸다", "법률 대신 정무로 판단하는 사람을 어떻게 법률가라고 할 수 있겠나", "권력에 따라 눕는 검찰"이라고 검찰을 비난했다.
윤 대통령 측은 지난 8일 "증거가 확보돼 있으면 기소하든지, (아니면) 조사가 필요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기소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작 구속영장이 발부(지난 19일) 이후에도 공수처 수사에는 불응했고, 기소가 이뤄지자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므로 기소 또한 불법"이라고 하고 있다.
야당은 "국민의힘은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공수처도, 검찰도, 법원도, 헌재도 부정해 왔다. 이렇게 대한민국 사법 체계를 통째로 부정하면 도대체 무엇이 남느냐"(27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라고 꼬집었다.
조 수석대변인은 "끈질긴 현실 도피에도 달라질 건 없다"며 "내란 우두머리는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공범과 비호 세력들도 따박따박 단죄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대해서도 "저질 코미디", "궤변 집대성"(25일 황정아 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변인은 "공수처,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까지 모두 다 부정하는 자들이 법치를 운운하고 적법절차를 따지다니, 소도 비웃을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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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니 삶이 단순해서 좋다. ⓒ zoltantasi on Unsplash
'외로움'의 다른 말은 '자유'
몇 달 전 나는 수십 년 만남을 가져왔던 모임을 탈퇴했다.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친구가 섞여 있는 모임은 즐거움 대신 스트레스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음에도 몇 년을 참다가 결국 탈퇴한 셈이다. 그동안에는 멘탈이 강해서 잘 견뎠으나 점점 모임 후에 오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 없었다. 노년의 모임은 친목 이상의 수준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되도록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마음이 편하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어떤 대화나 토론으로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는 분야이니 감정을 상하기 쉽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고집으로 변모되니 조심해야 한다. 선을 넘는 지경으로 가서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쪽이 피하거나 양보를 해야 한다. 마음 편하게 만나 담소를 나누고 간단한 식사와 차를 마시는 자리가 오히려 부담이 된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워본 경험이 없는 나는 불편한 자리는 내쪽에서 피하며 살아 왔음을 상기하고 미련 없이 미리 피하는 선택을 했다.
학창 시절이 몇 년 되지 않은 탓에 동창 모임도 적었기 때문에 수십 년 모임을 탈퇴하기는 쉽지 않아서 몇 년이 걸렸다. 최소한 일흔 살까지는 만나자고 했었는데 앞당겨진 셈이다. 탈퇴의 변을 조심스럽게 알리면서 그간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문자로 대신했다. 그 뒤 몇 번의 전화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으니 그대로 끝났다.
하나 둘, 모임을 없애가면서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가 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홀가분해졌다. 외로움도 따랐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움이 더 컸다. 오고가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경청만이 강요되는 만남은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불러왔는데 참 많이도 참고 견뎌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자유를 원한다면 외로움은 부수적인 것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자유인의 다른 말이다. 관계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니 삶이 단순해서 좋다
2024년의 단어, '뇌 썩음'(brain rot)
2022년에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를 뜻하는 '고블린 모드'(Goblin mode)를 선정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2024년의 단어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꼽았다.
이 단어는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잉 소비로 초래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자료를 과도하게 소비한 결과, 정신적 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현상이란다. 특히 '뇌 썩음'이라는 표현은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에서 사용되었다니 그는 선견지명이 대단한 지성인이다.
며칠 전 뇌 썩음을 뜻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날부터 의식적으로 짧은 영상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뇌가 썩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주로 고양이나 강아지 영상, 정치 관련 숏폼을 즐겨 보곤 하는 편이다. 시간을 빼앗아 가는 주범인데 남는 것은 별로 없으니 뇌에 피로감을 안겨주고 생각 없이 보게 하니 퇴화되는 건 당연하다.
예전에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로 부르며 되도록 멀리 하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나 신문과는 달리 주어진 정보를 무분별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과도한 영상 매체는 인간에게 바보 상자를 선물하여 왔다. 한술 더 떠서 휴대전화의 편리함과 신속함은 인간 자체를 서서히 바보로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 연합뉴스
요즈음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모습들은 바로 '뇌 썩음'의 증거가 아닐까. 내 생각이나 이성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 대신 나보다 우월해 보인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거나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종속되는 현상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그들이 시키는대로, 선동하는대로 광신도들처럼 몰려가서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법적인 제재나 처벌을 받고서도 반성은커녕 합리화 하며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큰일이다.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면서 거액의 돈을 버는 일부 유튜버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며 선동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현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정치와 종교는 가족 간에도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분야임을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하다.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대신 남들이 먹고 배설한 찌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추종하는 것도 모자라서 시키는대로 원격조종되는 좀비인간이 등장한 세상은 '뇌 썩음'의 증거가 분명하다.
인류 역사의 괴물인 히틀러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여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 ~ 1962)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그는 독일을 떠나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되어 9일 후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그는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 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악의 평범성'은 어디에나 있다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히틀러의 부하들처럼,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저지하기는커녕 반대도 못하고 입을 다문 국무위원들과 군 장성, 경찰 수뇌부는 한국판 악의 평범성을 지닌 아이히만이 분명하다.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전문적 지식과 일반상식이 풍부하여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이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부당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한 일을 벌인 책임은 모두 그들 몫인데 피해는 국민들이 당하고 있다.
권력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 영상에 매우 심취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대통령이라면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한 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사고력의 결여가 분명하다. 믿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주장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여 신념화한 그는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통치수단이라는 궤변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댄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자리에 가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거짓말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사고력이 결여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미 그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말바꾸기를 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사고력과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사죄는커녕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애국하라며 선동하기를 서슴지 않으니 얼마나 두려운 현상인가! 맹목적으로 폭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애국자라 자처하며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이렇게 뇌가 썩어가는 사람들을 교화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중독되면 스스로 빠져 나오기는 힘들고 특단의 조치로 치료를 받거나 교정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설득하고 교정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불확실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구속되었어도 '뇌 썩음'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이다.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반발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의 극우 세력, 폭력적인 수단을 합리화 하면서 준동하는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되도록 어려서부터 불건전한 유튜브 영상이나 스마트폰의 역기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부모와 학교, 국가의 노력이 절실하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편리함 속에 숨겨진 무서운 역기능이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게 진리인가.
▲설을 맞은 나의 다짐은 두 가지다. ⓒ averey on Unsplash
설을 맞은 나의 다짐은 두 가지다. 첫째, '뇌 썩음'을 예방하는 일이다. 되도록 중요하지 않은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기, 특히 소셜 미디어를 과잉 소비하지 않는 것. 소셜 미디어에 구속되어 함부로 시간을 내주는 대신 책을 더 많이 읽는 것, 귀찮더라도 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둘째, 조금 더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불편한 관계에 집착하지 않기, 물건과 사물에 연연하지 않고 정리하며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최소한의 관계, 적정한 소비로 쓰레기를 줄이고 생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영혼에 더 많은 '자유'를 선사하리라. 더 맑고 투명하게 이 세상과 자연에 감사하리라. 설날의 다짐을 쓰고 나니 내 마음에는 벌써 새봄이 와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 전인 2024년 12월2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국무위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에 대한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뒤 우리는 ‘관료’ 두 명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과 관련한 두 권한대행의 선택은 12·3내란 사태 수습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방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가진 관료라는 ‘정체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부 부처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여권 관계자는 “두 권한대행의 결정들을 보면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권자나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관료의 전형적인 특성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출간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노한동 지음·사이드웨이)은 이러한 공무원들의 모습에 돌직구를 날립니다. 10년간 정부부처에서 일하다 2023년 4월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둔 저자는 “지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공직사회의 무능한 일상과 좌절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이자 르포”라고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펼치면 두 권한대행의 행보와 저자가 관찰한 공무원들의 초상이 겹쳐 보입니다. 저자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과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의 최근 행보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관료’라는 이름 아래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24년 12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갑과 을의 두 얼굴’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로 빛나던 젊은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논리에 길든다. 공직사회의 수많은 헛짓거리 때문에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어서기도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하면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료는 두 얼굴을 갖는다.평소에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26일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며 당시 공석이던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고, 다음날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2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도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선 “여야의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며 임명을 보류했습니다. 대부분의 헌법학자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후보자를 임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최 권한대행의 2명 임명, 1명 보류 결정에선 한 총리의 ‘여야 합의’ 논리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고집도 엿보입니다.
헌법재판소가 8인 재판관 체제가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상화가 됐습니다만, 두 권한대행 모두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거나 보류한 것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관료는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관저 구역에 진입한 체포팀이 2차 저지선을 넘어 관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체포영장 집행 ‘뒷짐’=부작위와 책임회피
“정부의 일 처리는 언제나 국민의 요구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에 명시된 절차를 준수해야 하고,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선의의 이유로 정부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일부러 처분을 부작위(不作爲, 법률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하며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다. 축구 경기 후반전 막판,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볼을 돌리는 것처럼, 관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교묘히 시간을 끄는 방법을 안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언론, 국회 등 '시어머니의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특별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속성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의 완충지대이다. 이런 완충지대는 논의와 검토의 과정을 길게 끌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적합하다. 즉,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호막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는 경호처에 협조를 지시하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야당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수사기관과 이를 불법적으로 막아서는 경호처의 관계를 ‘두 기관 간 갈등과 충돌’로 동일 선상에 올리며 ‘충돌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대통령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경호처를 지휘할 권한과 그 근거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최 권한대행의 방관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둘러싼 무력 충돌 우려와 여야 갈등, 사회적 혼란은 계속됐습니다.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부작위하며 결정을 최대한 미룬다’는 책의 지적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서진 건물 외벽.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6개 거부권 행사: 권한과 의무와 책임의 불일치?
“‘정치권’을 단순히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 등 집권 세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책 결정 권한이 정부 관료들에게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관료가 겪는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료의 정책 결정 권한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부와 관료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묻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 이는 정책 결정 권한의 대부분을 휘두르는 정치권조차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의 문제 중 많은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관료가 가진 권한은 약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신세이니 자연히 업무에 무기력해진다.”
“어쨌거나 세상은 공무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월성원전 자료삭제 사건’이나,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에선 국장급 이하 공무원부터 구속했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의 책임이 징계 등에 머무르지 않고 형사 처벌 등 법적 책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일단은 나중에라도 책임질 만한 소지가 있는 일은 최대한 맡지 않으려고 하고, 맡더라도 책임 소재를 남기는 일에 열성을 다한다. 예를 들어 국·과장이 보고서를 수정하면 실무자는 ‘과수원’(과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국수원’(국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등을 파일명에 추가하여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남긴다. 몰래 휴대폰을 사용하여 회의를 녹음하는 사례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업무수첩에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빼곡히 적는 것은 이제 공직사회에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통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26일 현재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6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여야 합의가 없었다’거나, ‘위헌적 요소가 있다’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준다’ 등의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모두 정부·여당이 반대해온 법안입니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법안들 대부분은 행정부가 안 하려는 ‘무언가를 새로 하겠다’는 것으로 관료들에게 현상 유지 대신 부담과 책임을 증가시킵니다. 책은 권한은 줄어드는데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정도가 커지는 것도 공직사회의 무기력을 야기한다고 지적합니다.
최 권한대행 쪽 관계자들은 ‘권한대행의 권한의 범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이 없고 명확하지 않아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야는 각각 최 권한대행에게 정반대의 시각으로 권한을 행사하라고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권한이 없고, 그래서 책임을 최소화하겠다’는 최 권한대행의 선택은 여야 뒤에 숨어 정치 현안에 대한 개입과 결정은 피하되, 거부권 행사는 이어가겠다는 거로 보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서 재의결 절차를 한 번 더 거치고, 여야가 한 번 더 협상할 여지가 있다 보니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당장 최 권한대행은 설 연휴 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일을 걷어내고, 관료가 본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관료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공직사회의 자기방어적인 거짓말을 들춰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저자는 책 막바지에서 공직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12·3내란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과 혼란을 수습 해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주는 말 같습니다.
극우 유튜브 채널인 '신의 한수'에 올라온 전광훈 찬송가인 '애국자 전광훈' ⓒ유튜브 캡쳐 윤석열 탄핵심판과 내란재판이 시작되면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각종 집회를 이끄는 이는 이른바 ‘광화문 최고 사령관’이라 불리는 전광훈이다. 극우 개신교 신자들과 함께 각종 거리집회를 주도하며 ‘아스팔트 극우’의 선봉이었던 전광훈은 어느새 국민의힘과 국힘이 배출한 대통령인 윤석열을 쥐락펴락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국힘 소속 의원들은 앞장서 전광훈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윤석열도 이제는 전광훈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광훈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 극우집회엔 전광훈을 찬양하는 노래까지 등장했다. 바로 ‘애국자 전광훈’이라는 노래다, 전광훈 찬송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노래는 신혜식이 운영하는 ‘신의한수’라는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해 12월 27일 공개됐다. ‘애국자 전광훈’이라는 노래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자여. 전광훈, 당신의 이름을 외친다”, “영원히 기억될 그 이름 전광훈. 애국자의 자부심” 등 전광훈을 구원자처럼 찬양하는 낯 뜨거운 가사들로 가득하다. 1983년 사랑제일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전광훈은 42년 만에 어떻게 극우 권력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 분석해 봤다.
비인가 신학교 출신이지만
부흥사로 이름을 날린 전광훈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광훈은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목사로서 내세울 만한 경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광훈은 전도사 시절이던 1983년 사랑제일교회를 세웠고,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소속 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의 전신) 신학과를 중퇴한 뒤 교육부 비인가 신학교인 대한신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편목 과정 등을 수료했지만, 일반 신학대 석사 과정과 다른 특별 과정이다.
물론 지금도 개신교단 가운데는 단기 교육 또는 비인가 신학교를 통해 목회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육부 인가 신학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 하지만, 전광훈은 이런 과거 때문에 학력 위조 의혹 등 목사 자격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 2019년 7월 3일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개신교 교단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맡았던 전광훈은 초대되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에 초청된 주요 교단은 제대로 인가된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목회자로 있는 교단을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광훈과 한기총은 이런 기준에 못 미쳤다.
이뿐만 아니라 전광훈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그가 예장 대신교단 총회장으로 있을 당시 백석교단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통합에 반대한 대신교단 잔류 목사들이 반발하면서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을 제외하고 예장 백석대신 교단을 세웠다. 하지만 전광훈은 2019년 7월 여러 논란 때문에 백석대신 총회에서 면직 및 제명당했다. 전광훈은 스스로 새로운 교단인 예장 대신복원을 만들어 독립하면서 징계를 피했다.
전광훈이 지난 2005년 개최한 전국목회자부부 청교도영성훈련 안내 광고 ⓒ인터넷
2000년대 초반까지 전광훈은 부흥사로 이름을 알렸다. 개신교계 신문들엔 전광훈이 부흥사로 참여한 부흥회 광고가 자주 실렸다. 그는 1998년 청교도영성훈련원을 설립하고 원장직을 맡은 이후 목회자 초청 영성훈련을 진행했고, 각 교회를 돌며 부흥회를 이끌었다. 이런 전광훈이 이름을 알린 건 그의 스승이라 불리는 금란교회 담임목사인 고 김홍도 목사 때문이다. 김홍도는 전광훈이 세운 청교도영성훈련원 총재를 맡았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인 금란교회에서 전광훈의 청교도영성수련회를 열도록 지원했다.
금란교회 김홍도 통해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극우개신교 집회 주역으로
전광훈은 김홍도와 정치적으로도 통했다. 북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월밤한 김홍도는 극우성향이 강했다. 2000년대 초반 각종 극우집회를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전광훈은 그런 그와 함께 지난 2007년 6월 북핵 완전폐기와 대선음모용 남북정상회담 반대 등을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열었다. 극우개신교계와 재향군인회 등이 중심이 돼 열린 이날 집회엔 박근혜를 비롯한 보수정치인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선 지금의 윤석열 옹호 집회와 마찬가지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렸다.
극우개신교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같이 들고 집회에 나서기 시작한 건 2004년 무렵이다. 이들은 2004년 6월 25일 극우단체와 연합해 ‘한미 동맹강화와 경제 살리기를 위한 6·25 비상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선 성조기와 태극기가 휘날렸다. 당시는 2004년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획득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사학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개혁입법을 추진 중이었고, 미군 범죄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반미여론이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이날 비상구국기도회에서 김한식 목사는 “하나님이 미군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미군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우개신교 신자들에게 ‘미국’은 우리와 동등한 ‘동맹’이 아니라, 고난받는 대한민국을 구원하기 위해 온 ‘구원자’다. 미국을 ‘구원자’로 믿는 신앙은 이승만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워온 개신교가 이후 반공의 기치를 들고 독재정권과 함께 성장하며 계속됐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이고, 우리나라를 구원한 나라임을 강조하는 신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옹호 집회에서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출해 줄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미국 구원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미국 구원론’의 가장 충실한 전파자가 바로 전광훈이다.
‘미국 구원론’ 전파자 전광훈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으로
기독교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국가
극우개신교는 이후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중심이 돼 각종 극우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함께했다. 근데 당시까지만 해도 전광훈은 집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극우집회는 신도 동원 능력이 뛰어난 대형교회들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07년 북핵 관련 극우 집회부터 전광훈은 김홍도와 함께 집회 전면에 나서며 ‘미국 구원론’을 본격적으로 전파했다.
대한애국당과 박근혜대통령 구명총연합회 등이 지난 2018년 1월 20일 오후 서울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대형 성조기를 들고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개신교 신자들은 ‘기독교입국론(基督敎立國論)’을 주장한다. 이 주장의 핵심은 미국의 지원으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됐고, 대한민국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북한 공산주의를 무찔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광훈은 지난 2019년 대표회장 취임식에서 “미국의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와서 한 가장 위대한 사건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미국에 데려가서 박사 학위를 받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 장로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세웠다. 또 한미동맹도 세웠다. 그리고 또 하나가 기독교 입국론이다. 이런 4대 기준으로 국가를 운영했더니 전 세계 10대 대국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광훈은 이어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예수가 세운 나라다. 결단코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 고려연방제로 갈 수 없다. 성도 여러분, 이 나라를 지키자”며 “유튜브 1천만 조직을 완성해 모든 악의 세력과 맞서 이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광훈 등 극우개신교에게 북한은 절대 악이다. 북한이라는 절대 악이 하나님이 세운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걸 해석한다.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도, 목회자를 비롯한 종교인들에 대한 세금 부과도,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도, 경제정의 실현도, 노동권 보장 요구도 모두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악의 세력이 벌이는 일로 몰아갈 수 있다.
2007년 대선 앞두고 발언 논란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전광훈이 ‘미국 구원론’의 전파자로 나설 수 있었던 건 거침없는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전광훈의 거친 입은 그에게 최고의 무기였지만, 동시에 최대의 약점이기도 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05년 전광훈은 목회자 부부세미나에서 “이 성도가 내 성도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또 하나는 인감증명을 끊어 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발언해 비난이 쏟아졌다.
제25대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취임식 ⓒ한기총 홈페이지 2007년부터는 각종 정치 발언으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는 그해 4월 경남 마산에서 열린 청교도영성훈련원 집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10월 3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개천절 국민대회’에선 “하나님의 나라를 왜 북한에 갖다 바치려 하느냐”며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했다.
이후에도 전광훈의 발언 논란은 계속됐다. 2012년엔 전북 전주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전교조 안에 성(性)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1만 명 있다”고 주장했고, “전교조는 대한민국을 인민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전교조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독자유당, 자유통일당 등
극우개신교 원내진출 시도
선봉에 섰던 전광훈
전광훈은 거침없는 발언뿐 아니라 극우개신교의 정치세력화를 주도한 인물로도 주목을 받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는 지금도 극우개신교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이끌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부터 전광훈은 극우개신교 정당 결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전광훈이 만든 기독사랑실천당은 2.59%(약 45만 표)를 득표하면서 원내진입 일보 직전까지 갔다. 비례대표 의석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3%에 0.41%(약 4만 표)가 모자란 수치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기독당으로 원내진출에 도전했지만 1.2%를 득표해 실패했다.
지난 2016년에도 극우개신교 세력은 원내진출을 시도했다. 창당을 주도한 건 역시 전광훈이었다. 기독자유당을 만들고 ‘동성연애법·차별금지법·이슬람저지를 위한 100만 서명’을 여러 대형교회와 함께 벌였다. 한기총 대표회장이던 이영훈 목사와 극우개신교 성향의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연합의 대표회장 조일래 목사는 긴급 목회서신을 보내 전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기독자유당 지지 광고를 해 달라’는 등 측면 지원했다. 기독자유당 등 극우개신교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를 시도해온 전광훈 ⓒ뉴시스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기독자유당은 2.63%의 득표율로 62만 표를 얻었다. 극우개신교 정당 가운데에는 역대 최고 득표율이었다. 또 다른 보수개신교 성향의 정당인 ‘기독당’이 0.54%(12만9871표)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이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출마했다면 3% 이상 득표해 최소 비례대표 1석을 확보했을 것이다.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뒤 거리투쟁
2020년 총선을 앞두고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광훈은 한기총 조직을 극우개신교 정치세력화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2019년 6월 5일 그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전면전을 선언했다. 전광훈은 시국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화, 공산화돼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 운운하며 “문재인 대통령 하야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를 위해 한기총이 지향하는 국민운동에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한기총 시국선언이 ‘성령의 불러주는 대로 쓴 것’이라는 신성모독 발언도 했다.
이후 전광훈은 한기총을 통해 ‘253개 지역 연합’이라는 전국적 지역 조직을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 하야 서명’을 받았다. 253개 지역은 국회의원 지역구로서 서명운동은 사실상 선거운동이었다. 여기에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며 시작된 태극기 부대가 대거 동참했다. 이때부터 전광훈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극우개신교 거리집회의 중심이 됐다.
뜨거운 광화문 극우집회 열기에
자유한국당도 동참
황교안 대표 극우세력과 함께
국회 난입해 극우 불법집회
당시 극우개신교의 기세는 대단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던 당시 집회 열기는 지금의 윤석열 옹호 집회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열기에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도 동참했다.
김진태 의원은 2019년 10월 9일 광화문광장에서 ‘조국 문재인 퇴진, 대한민국바로세우기 2차 국민대회’에 참석해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을 10월 항쟁으로 부르자. 4.19 때보다, 6.10 때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모였다. 힘을 모아 싸우자”고 말했다.
2019년 10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촉구 집회’ 에 참석한 전광훈이 발언하고 있다. 2019.10.09 ⓒ민중의소리
전광훈이 10월 22일 청와대 앞 '광야교회' 저녁예배 설교에서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산다.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과 친하다(는) 말이야, 친해.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산다(는) 말이야”라고 발언하는 바람에 신성모독 논란이 일었지만, 자유한국당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황교안도 함께했다. 10월 2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5 문재인 퇴진 철야 국민대회’에 참석한 것이다. 두 달 뒤 황교안은 당원들과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광화문광장 한쪽을 차지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황교안은 극우개신교의 지지를 받는 거리의 투사로 우뚝 섰다. 12월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엔 자유한국당·우리공화당 당원과 극우단체 회원들이 함께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돼 있다. 국회 내부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날 황교안은 마이크를 들고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저희가 앞장서겠다. 저희와 함께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 시위대를 이끌었고, 곳곳에서 ‘아멘’이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전광훈과 손잡았던 미래통합당
2020년 총선서 103석으로 참패
전광훈에 코로나19 확산 관련 비판 일자
뒤늦게 거리두기 나선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전광훈은 ‘기독자유통일당’을 만들었고, 미래통합당과 함께한 거리투쟁의 열기에 힘입어 원내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개표 결과 기독자유통일당의 득표율은 1.8%로 4년 전 총선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거리투쟁에 함께했던 미래통합당도 103석에 그치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결국, 황교안은 1년 2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이 2019년 3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예방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총선 참패 이후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한 가운데 전광훈이 정부의 집회금지를 어기고 연 8.15 집회에서 대량으로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미래통합당에도 불똥이 튀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랴부랴 “전광훈 목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또 함께 한 적도 없다”라며 선 긋기에 나섰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소위 사회에서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저희와 다르다”라며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같은 보수 계열 아니냐?’ 이렇게 뭉뚱그려서 보는 경향이 있다”라며 전광훈과 자신들은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광훈 교회 예배 통해
“이재명이 되면 대한민국 망한다”며
22대 대선서 윤석열 노골적 지지
이후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엔 전광훈과 관련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관계를 쉽게 끊어내기 힘들었다. 22대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전광훈과 밀착했다. 전광훈이 오래전부터 윤석열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전광훈은 윤석열이 검찰총장 시절 자신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하자 “하나님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내려줬다”며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 내려준 사람이다. 절대 기죽지 말라. 문재인을 현장 체포하라”라고 응원한 바 있다.
윤석열이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전광훈의 윤석열 지지발언은 더욱 화끈해졌다. 전광훈은 2021년 12월 5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시간에 “이재명이라도 덜컥 되어버리면 대한민국 망해 버리잖아”라고 발언했고, 2020년 1월 2일엔 “왜 윤석열을 대통령 세우려고 합니까. 윤석열을 통하여 정권교체 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 있으면 가져와 봐”라고 발언했다.
노골적인 윤석열 지지운동을 펼친 전광훈은 국민의힘과 조금씩 밀착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 국민의힘은 전광훈을 경계했다. 선거 때는 극우개신교 표심 결집을 위해 전광훈을 가까이 했지만,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김재원 최고위원, 전광훈 교회 예배서
5.18 헌법 수록 반대 발언 등으로 징계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광훈의 영향력
전광훈과의 관계를 두고 국민의힘의 고민이 계속되던 2023년 3월 김재원 최고위원이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수록에 반대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연이어 한 보수단체 강연에서도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 했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김재원 최고위원을 징계했다. 과거 거리투쟁에 함께했던 황교안까지 전광훈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황교안은 2023년 3월 인터뷰를 통해 과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시절 전광훈으로부터 공천 청탁이 있었음을 언급하며, 전광훈 추천으로 입당한 이들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국힘이 전광훈과 손절에 그토록 애를 썼다는 것은 전광훈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광훈의 추천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한 당원들도 많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극우성향 당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각종 극우 발언과 전광훈과 관계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을 보면 전광훈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여러 논란에도 김재원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1·2·3기 지도부 선거에서 모두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3연속 최고위원으로 뽑힌 건 김재원이 유일하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국민의힘은 전광훈과 관계를 끊겠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지만, 완전히 끊어내긴 힘들었다.
전광훈은 2024년에도 자유통일당을 만들어 극우개신교 세력의 원내진출을 노렸다. 여전히 당헌에 기독교 정당임을 밝혔지만, 예전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옅어졌다. 보수 성향의 목사들 위주에서 불교 신자로 알려진 황보승희 의원과 권투선수 홍수환, 탤런트 임동진을 입당시키는 등 나름대로 외연도 넓혔다. 보수세력 사이에서 인기를 끈 영화 ‘건국전쟁’의 후광을 얻기 위해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선거 전략도 펼쳤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자유통일당은 비례대표 지지율 4.2%를 기록하는 등 기대감이 컸다.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사랑제일교회 주최로 열린 성탄 축하 예배에서 전광훈이 연설하고 있다. 2024.12.25. ⓒ뉴시스
하지만, 국민의힘과의 관계에선 불협화음이 일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과거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는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아 도태우 변호사의 대구 중남을 공천을 취소하는 등 선거를 앞두고 극우적 모습으로 비치는 걸 경계했다. 이런 행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피아를 구분 못 하는 한동훈 위원장은 즉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대통령 윤석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당내 인사들의 극우적 행보를 경계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고, 원내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전광훈의 자유통일당도 2.26%를 득표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2024년 총선 참패 뒤
윤석열-국민의힘-전광훈이 찾은 접점
부정선거, 중국, 북한, 반국가세력
그렇게 극우세력 우두머리된 전광훈
국민의힘과 자유통일당 모두에게 처참한 성적표를 남긴 22대 총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리고 전광훈이 다시 접점을 찾는 계기가 됐다. 그 접점은 바로 ‘부정선거’, ‘중국’, ‘북한’, ‘반국가세력’이었다.
윤석열은 총선 참패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았다. 중국과 북한이 국내 반국가세력과 연계해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장악해 일으킨 부정선거를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반중국 정서는 이런 주장이 퍼지는 데 한몫했다. 전광훈도 마찬가지였다. 자유통일당의 원내진출이 실패한 것이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달랬다.
윤석열과 전광훈 모두 2020년 총선 이후 부정선거 주장을 접하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의혹 제기 수준에 그쳤던 부정선거 음모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화됐다. 22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윤석열이 부정선거가 비상계엄의 주요 배경이라고 밝히면서 부정선거 주장이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전광훈 중심의 극우개신교 세력이 윤석열 옹호 집회에 대거 결합하면서 윤석열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렇게 전광훈의 존재감이 커지자, 국민의힘은 또다시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부정선거 주장에 휩쓸렸다. 법원에 폭도들이 난입해도 이를 옹호했다.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의 뒷배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전광훈과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의 행보와 언어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전광훈은 ‘국민 저항권’ 운운하며 극단적 행동에 나서는 극우 세력에게 그럴싸한 명분까지 심어주며 강력한 배후가 되었다.
전광훈이 국민의힘과 윤석열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져만 갔다. 전광훈의 한마디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좌지우지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전광훈은 이렇게 극우 권력의 사실상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가 또 다시 '메신저'를 공격하고 있다. 이번 표적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다.
27일자 이 신문은 <尹 탄핵소추에 결정타 날리고는… 말 달라지는 '국정원 넘버2'>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이 야당의 공세에 맞춰 '윤 대통령의 체포지시'에 관한 발언을 조금씩 바꿨다고 보도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6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대통령에게 한동훈 대표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가 12월 7일 KBS 인터뷰에선 "대통령이 저에게 직접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고, (체포) 명단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밝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또 홍 전 차장이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윤 대통령의 체포 지시를 보고했다가 묵살당한 상황을 두고도 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선 "조 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에서 "(내가) 목소리를 높였더니 조 원장이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렸다"로, 지난 22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오전회의에선 "정무직 회의가 열리는데 어떻게 말씀 안 드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정무직 회의 때는 (정치인 체포 지시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 정무직 회의가 끝나고 보고했다"로 말이 바꿨다는 것이다.
'단독' 제목 바꿨지만… 홍장원 진술은 일관
▲조선일보 페이스북이 12월 6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 대통령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의 자사 단독보도를 홍보하는 게시물. ⓒ 조선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그런데 홍 전 차장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최초 보도한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22일 국회에서 "홍 차장이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제가 12월 3일 밤에 들었던 얘기는 '대통령이 전화하셨다.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셨다' 보고했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대통령 지시로 보고한 게 없다"며 "12월 6일날 오전에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홍장원 차장을 소스로 해서 보도가 났다"고 말했다. 네이버 검색 기준, 12월 6일 오전 10시 44분에 나온 <[단독] "尹,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한동훈 체포 지시… 거부하자 경질"> 기사 얘기였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인사의 체포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한 자사 기사의 제목을 '홍장원 전 차장이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로 변경했다. 화면은 네이버에서 확인한 해당 기사. ⓒ 네이버 갈무리
이 기사는 현재 <국정원장 "1차장 '이재명에 상황 설명하자' 제안… 정치 중립 어긋나 인사 조치"란 제목이 달려 있다. 수정 시각은 12월 6일 오후 11시 6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X(옛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 등에는 해당 기사를 소개하는 게시물이 여전히 존재한다. 매체 스스로 단독보도라고 했던 기사를 사실상 오보 취급하는 셈이다. 또한 홍 전 차장 진술은 큰 틀에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매우 상세하다. 다음은 국회 회의록시스템에서 확인한 홍 전 차장의 '윤 대통령 체포 지시' 관련 발언이다.
홍장원 전 차장 : (12월 3일 오후) 8시 22분에 통화를 한 이후에 대통령께서 대기하라고 한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에 국정원 청사로 돌아가서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중에 10시 23분에 비상계엄이 일어난 부분을 TV로 보고 그 이후에 한 30분 정도가 지난 10시 53분 정도에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비상계엄을 발표한 사실을 확인했는가 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아까 윤건영 위원님께서 질문했던 내용과 동일합니다. 중요한 요지는 방첩사령부를 적극 지원하라는 부분이 요지셨습니다.
전화를 받으니까 비상계엄 발표하는 걸 확인했냐라고 물으셨고 그다음에 조금 강한 어투라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하여튼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목적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를 그렇게 해야 되는지까지는 잘 몰랐고 그렇다고 대통령께 누구를 체포하라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여쭤보기도 뭐해서 잠깐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께서도 약간 말씀에 포즈(pause)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주시겠다는 건지 아니면 향후에 주시겠다는 건지는 말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이번에는 일단 방첩사를 적극 지원해라.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 무조건 지원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10시 53분에 대통령님 전화가 끝나자마자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부분이 방첩사를 지원해라라는 부분의 지시였기 때문에 이어서 바로, 기억하기로는 11시 6분에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머뭇머뭇해서 제가 '어떻게 된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계속 이야기를 안 하길래 'V께서 전화하셨어. 대통령께서 너희들을 도와주래'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이후에 아마 정보위에서 말씀하신 그 관련된 내용들을 저한테 얘기했던 겁니다.
김병주 의원 : 그러니까 여러 명 정치인 체포해라, 이재명……
홍장원 전 차장 :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중간에 일일이 세지도 않았고 당시 밤중에 전화로 메모지에 막 메모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14명 정도로 기억합니다.
홍 전 차장은 오히려 조 원장이 계엄 당시 비상국무회의에 다녀온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12월 3일 밤 조 원장을 찾아가) '대통령께서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합니다'라고 하니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조금 놀라시라고 '그런데 방첩사에서 지금 이재명하고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답니다'하니까 다소 의외의 답을 받았다. '내일 아침에 얘기하시죠'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그래서 '원장님, 그대로 최소한의 업무 방향이나 지침은 주셔야죠' 했더니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서 가버리셨다"라며 '보고 묵살' 상황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내란 혐의 흔들렸다?' 비상계엄 위헌성은 명백
그런데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구속 기소 다음날인 27일 전면적으로 윤 대통령 수사와 탄핵심판 등을 '논란'으로 만들며 사실상 그를 비호하고 있다. <국회 마비·정치인 체포… 尹의 핵심 내란 혐의, 탄핵심판서 흔들려>라는 기사의 경우 제목만 보면 마치 큰일 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홍장원 전 차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부인했다는 내용일 뿐이다. 이 신문은 또 검찰의 구속 기소를 문제 삼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에 맡겨야 했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평가를 다뤘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복원과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속내가 담긴 보도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 사실은 홍 전 차장의 진술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흠집내기'로 국회 탄핵 소추의 정당성을 흔들려고 하지만, 성공하기 힘든 작전이다. 12.3 내란사태는 온 국민이 목격자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에서만 확인되지 않는다.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란 차원에서 질서유지, 상징성 측면에서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고 인정한 윤 대통령 본인의 말이 뒷받침한다. 선관위 군 투입 지시 또한 부인하지 않으며 "(부정선거 의혹의)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던 해명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학자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일 토론회에서 "계엄의 본질은 한시적인 군정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헌법은 정상적인 헌정상황을 중단시키고서 군정통치가 행해지는 계엄의 중대성과 그 오·남용 위험성을 고려하여 여느 국가긴급권과는 달리 발동요건, 이른바 '준법요건'을 추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 역시 "12.3 사태의 경우 담화와 포고령, 그 실행행위를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꾀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이미 집권자의 자기쿠데타(Self-Coup)의 가장 최신 사례로 학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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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회에 군을 투입한 데다 포고령 1호로 국회 활동을 전면 금지한 대목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조선일보조차 지난해 12월 6일 <헌법학자들 "野 견제 위한 계엄 헌법 어디에도 그런 내용 없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선 이후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배보윤 변호사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감사원장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탄핵대상이 되는 상황은 국가 기능의 마비 상태인 것은 명백하다"면서도 "계엄은 속성상 국회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평가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상계엄 선포 당일 당 대표 명의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기자들에게 직접 "국민과 함께 잘못된 계엄 선포를 반드시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국민들은 안심해달라. 반드시 저희가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조선일보는 <홍장원, 尹대통령 탄핵소추에 영향 미쳤나>란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의 '제보'가 한 전 대표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게끔 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 자체는 처음부터 명백했다.
홍장원 죽이기, '정의실현·불편부당'에 부합할까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는 조선일보의 나쁜 습관은 오래 됐다. 이 신문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에는 이 사건 제보자인 전직 국정원을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가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고비마다 '메신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내란 사태에서도 역할은 변함없다.
조선일보는 최근 '법은 왜 짓밟혔나'라는 기획을 진행하며 '입법부의 위인설법'과 '여론에 휘둘리는 판사' 등을 다루며 '국회와 법원이 법을 짓밟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회와 법원도 잘못했으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수사기관의 난맥상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법을 잔인하게 짓밟은 자는 누구인가. 바로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리고 헌법을 짓밟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이 社是(사시)라는 매체는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양비론'으로도 부족해 '홍장원 죽이기'는 아니지 않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내란계엄 상태가 빚어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한국경제와 민생이 더욱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과 압박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2025년 한국경제와 민생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주가폭락
비상계엄 직후 지난 12월 3일부터 12월 9일까지 한국 증시의 시가 총액 144조원이 증발했다. 현대자동차(42조 원) 같은 대기업이 3개 이상 사라진 셈이다. 시총이 비상계엄 직전의 2390조원에서 2246조원으로 폭락한 것인데, 코스피 시가총액은 2046조원에서 1933조원으로 113조원, 코스닥 시가총액은 344조원에서 313조원으로 31조원 줄었다. 12월 4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투자자는 국내 상장주 약 9630억어치를 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는 패닉셀에 빠져 약 2조526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윤석열 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극복한다면서 크게 주창한 것이 밸류업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외국인과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를 떠나고 있다. 가상화폐도 급락했다. 계엄령 선포 직후 비트코인은 33.4% 급락했고, 리플은 56.7%, 이더리움은 38.2%가 빠졌다. 글로벌 코인 가격과 정반대현상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석열을 ‘대한민국 GDP(국내총생산) 킬러’라고 칭하며, 스스로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비상계엄으로 발생한 경제적 부담을 “5100만 한국민들이 남은 기간 동안 할부로 갚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율폭등
비상계엄으로 원화가치 역시 폭락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계엄직전 1403원에서 1,436원으로 급상승했고, 12월 4일에는 1,450원까지 치솟았다가 12월 26일 급기야 1,464원을 기록했다(표2). 결국 원/달러환율이 1460원선을 넘었는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머지 않아 1,500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도 나온다. 환율폭등은 사실상 경제위기 수준으로 다가가면서 경제계에 신음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내수 제조업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하고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원화폭락을 막지 못했다.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와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 회사채 CP매입 프로그램을 즉시 가동하고, 외화 RP 매입과 환율 안정화 조치를 강화했으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환율방어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환율방어에 실패하면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소진되어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얼어붙은 실물경제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연말 특수가 크게 위축되어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실시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상공인 경기전망 긴급 실태조사'에서 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8.4%에 달했다. 사업체의 매출이 50% 이상 감소한 곳은 36%였고, 30~50% 감소 25.5%, 10~30% 감소 21.7%, 10% 미만 감소가 5.2% 순이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업장 방문 고객이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은 89.2%였다. 지난 16일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긴급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단체 예약 취소 등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46.9%였다.
중소기업중앙회의 513개 수출기업 조사 결과, 26.3%가 비상계엄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고, 63.5%는 향후 피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주요 피해 유형은 계약 지연·취소(47.4%), 해외 바이어 문의 증가(23.7%), 수발주 지연·취소(23.0%), 고환율 문제(22.2%) 순이었다. 해외 투자자들과 논의 중이던 투자 계약 역시 중단되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일부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본사 이전을 검토하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윤석열 자신이 공을 들여온 '대왕고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같은 국가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고, 체코 신규 원전 수출 사업 동력이 약화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의 출범이 무기한 연기되고, 고환율로 인한 원료의약품 수급의 차질이 우려된다.
불확실성의 위험 확산
2006년, 2016년 탄핵정국 당시에는 한국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탄핵정국에는 경제상태가 매우 안 좋은 조건에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의 시간끌기와 버티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계엄 이후의 경제적 충격을 수습하지 못하고, 경제와 민생위기가 날로 가중되고 있다. 경제성장 둔화, 금융시장 불안, 외국인 투자 감소, 소비심리 위축, 기업투자 위축,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험, 민생경제 악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가 확대재생산되는 형국이다.
섬의 모양이 '물에 떠 있는 연꽃같다'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하여 그렇게 불린다.
능산도가 머리쪽 맨 앞에 있고 꼬리쪽으로는 상태도와 하태도(신의면) 등 크고 작은 여러 섬을 두고 있는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의 본 섬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나 11살까지 살았던 생가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은 무려 380여년간 토지탈환 투쟁을 벌여 끝내 자신들의 땅을 찾은, 세계농민운동역사에 빛나는 기념비적 땅이다.
인물에 가려 위대한 역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거꾸로 위대한 역사가 큰 인물을 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내 땅 되찾겠으려 한 당당하고 완강한 역사
하의도 토지반환투쟁은 소작료 삭감이나 소작권 보장을 요구하는 수준의 소작쟁의가 아니라 자신들이 개간한 땅을 돌려 받겠다는 당당한 투쟁이었다.
봉건 왕조의 세도가, 식민지주, 미군정청 등 시대를 바꿔가며 새롭게 등장하는 지주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개간한 토지는 끝내 지켜내겠다는 물러서지 않은 완강한 투쟁이었다.
온 섬 주민이 똘똘 뭉쳐 법정투쟁과 투지유상매수운동, 집단시위, 농민조합결성 등 적시에 필요한 방법으로 흔들리지 않고 함께 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역사적 성취였다.
근 4세기에 걸쳐 산맥처럼 펼쳐진 하의3도 토지탈환 투쟁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엿보인다.
(사)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가 지난 21일 오전 신안군 하의면사무소 강당에서 '하의도 토지탈환 운동-어느 조선농민쟁의기록'을 주제로 '신안군 항일농민운동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천우)가 그 일환으로 지난 21일 오전 신안군 하의면사무소 강당에서 '하의도 토지탈환 운동-어느 조선농민쟁의기록'을 주제로 '신안군 항일농민운동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고승재 상임이사는 "신안군 농민운동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하의도 토지탈환운동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첫 시발점"이라고 이날 강좌에 의미를 부여했다.
강좌에 참석한 주민들에게는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기록물들에 대해 주의깊게 살펴보아 줄 것을 당부했다.
강사로 나선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은 하의3도 토지탈환운동에 대해 △380여년에 걸친 장기투쟁 △조선시대 세도가, 일제시기 식민지 지주, 해방 이후 미 군정의 신한공사를 상대로 토지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하면서 △동아시아 농민운동사의 금자탑 △토지탈환운동의 본보기라고 총평했다.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 센터장은 특히 1928년 1월 하의도 농민조합 결성에 깊숙이 관여한 일본 노동농민당 집행위원 아사히 겐즈이(朝日見瑞, 1898~1988)의 활동에 집중하면서 하의3도 주민들이 다양한 세력과 연대를 모색했다는데 주목했다.
1919년 9월 이후 하의3도 대부분의 토지소유권을 쥐게 된 도쿠다 야시치(德田彌七)가 1924년 이후 벌어진 소작료 불납투쟁에 친일폭력조직과 일제 경찰을 동원해 하의소작인회 간부들을 검거하고 테러를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이 일본인 지주와 식민권력이 결탁된 사실을 깨닫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1927년 11월 일본 노동농민당 파견 변호사인 후루야 사다오(古屋貞雄)가 신간회 동경지회 대표인 강소천과 함께 하의도를 방문하고 한달 뒤에는 아사히 등이 하의도에 들어와 하의도농민조합 결성을 지원했다.
조선농민총동맹은 하의도농민조합 결성을 지원하기 위해 박복영을 파견하고 신간회를 비롯해 경성변호사단, 조선기자동맹 등에서도 특파원을 파견하는 등 하의도농민조합은 국내 민족운동진영과의 연대도 강화해 나갔다.
하의도농민조합은 국내외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반지주투쟁을 전개했으며, 그해 5월 10일 오사카에서 결성된 '하의도 토지회수동맹'은 '전체압박 피정복대중의 공동문제'라는 인식 아래 하의3도 토지탈환 투쟁을 항일민족투쟁으로 완전히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이 센터장은 훗날 원산총파업 응원연설회 연사로 참석하기도 한 아사히 겐즈이가 남긴 회고록인 '어느 조선농맨쟁의 기록'에 담긴 삽화와 증언기록 등을 설명하며, 참가 주민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제 하의3도의 토지탈환 투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380년의 세월동안 이어져왔는지 살펴보자.
하의3도 토지탈환 투쟁 380년 약사(略史)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탑 [사진-이규수]
이 장구한 투쟁의 서막은 선조의 딸이자 인조의 고모인 정명공주(1603~1685)가 뒤늦게 풍산 홍씨 홍주원(1606~1672)과 혼인한 16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복 오빠인 광해군의 즉위와 함께 폐서인과 인조반정 후 복권되는 수난사를 겪은 정명공주를 위해 조선 왕실은 하의3도(하의도와 후에 신의로로 하나가 된 상태도와 하태도)의 개간지 20결(약 8만평)을 4대에 걸쳐 무토사패지(無土賜牌地, 농작권은 농민에게 주고 국가가 받을 토지세는 가문에 내도록 한 토지)로 하사했으나, 문제의 토지는 왕실이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섬에 처음 들어와 지금까지 혈맥을 이어온 '입도조'(入島祖)의 자금과 노동력만으로 개간된 것이었다.
섬에서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황무지를 맨몸으로 개간하거나 개펄에 둑을 쌓아 밀려드는 바닷물을 막아야했다. 둑이 터지기라도 하면 다시 쌓기를 반복해야 했고 다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짠물이 빠질데까지 10여 년 이상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만들어 낸 이 땅은 섬주민들이 농사를 지은 경작지이고 자식들에게 세습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매도 하며 내려온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왕조는 고려의 정책을 이어 받아 왜구의 빈번한 침탈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는 섬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철저히 금지시키다가 임진왜란 이후 규제를 풀었을 정도였으니 섬 지역 경작지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매화도 청년들 [사진-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
매화도 민가 [사진-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
피땀을 흘려 비로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만들어지자 왕실, 세도가들이 토지경작권을 내놓던지, 토지세를 납부하라고 윽박지르자 토지 개간 주체이자 경작자인 하의3도 주민들의 끊질긴 저항이 시작됐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개간된 하의도 전답을 150결로 늘려, 이 모든 전답이 '사패지'라고 주장하며 1결당 쌀 40두를 도조(賭租, 소작료)로 징수했다.
경종 원년(1720년) 왕실세력인 정명공주방에서 하의3도의 토지는 소작인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절수지'(折收地)라는 주장을 앞세워 '소지'(所志, 청원서명)을 내자, 하의3도 주민들도 한성부에 '소지'를 접수해 왕실의 면세전은 20결 뿐인데 사유지인 민전(民田)에도 부과하는 세금은 납부할 수 없다고 맞섰다.
당시 민전에 부과되는 조세인 전세(田稅)와 지방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해 바치게 한 대동미를 납부하던 경작 농민들은 홍씨 집안의 도조 징수로 인해 동일 토지에 두번 세금을 내는 이른바 '일토양세'(一土兩稅)를 부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것.
명쾌하게 처리되지 않은 이 소송은 영조 44년(1768) 영의정 김치인이 하의3도에서 발생한 궁방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이중 과세에 따른 원망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 되었다.
하의3도 주민들은 직접 뽑은 농민대표를 한양으로 보내 정조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1870년 전라감사가 홍씨 집안의 도조 징수를 금지시키고 20결에 대해서는 1결에 백미 20두로 인하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20결을 제외한 나머지 120결에 대해서는 하의3도 주민들의 소유권을 인정한 첫번째 승리였으나 처음의 20결도 농민들의 것이었기에 절반의 승리였다.
이후 하의3도 토지문제는 왕실 내장원에서 실시한 국유지 조사사업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1901년 문제의 20결을 포함해 하의3도의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기로 한 궁내부의 조치에 따라 주민들은 토지세를 내장원에 납부하게 했다.
이에 홍씨 집안의 홍우록이 하의3도 토지를 사유지인 것처럼 꾸민 허위 문건을 토대로 1908년 하의3도 토지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그들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하급증'을 교부받아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하의3도 주민들은 1909년 경성공소원에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홍씨 집안이 강제징수한 소작료를 반환하라는 명령을 받아낸다.
이번엔 완벽한 승리였다.
그런데 1911년 경성고등공소원이 하의3도 주민이 승소했다는 판결을 내리기 직전 홍우록은 하의도 토지를 한일은행장 조병택과 백인기에게 팔아넘겼다.
이들은 다시 목포의 정병조에서 매도하고 정병조는 일본인 지주인 '우콘 곤자에몽'(右近權左衛門)에게 넘겨주는 일이 벌어졌다.
하의3도 주민들의 토지반환 투쟁 대상이 왕실과 세도가인 홍씨 집안에서 일본인 지주로 바뀌게 된 순간이다.
우콘은 식민지 권력인 조선총독부를 이용해 토지분쟁은 '화의'에 의해 처리하도록 규정을 만 든 뒤, 주민 대표 박모를 매수해 주민 위임장을 만들어 제출함으로써 하의3도 토지에 대한 법률적 소유권을 확정했다.
강요당한 '화의' 절차에 주민들의 저항이 멈추지 않자, 우콘은 3.1운동 이후인 1919년 9월 하의도 토지소유권을 소작제 농장경영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려는 오사카의 도쿠다양행(德田洋行, 대표 도쿠다 야시치, 德田彌七)에 전매한다.
도쿠다 야시치가 목포의 친일 폭력조직인 상애회를 동원해 하의도를 침탈하는 장면을 묘사한 아사히 겐즈이의 회고록 [사진-이규수]
도쿠다 야시치는 목포의 친일 폭력조직인 상애회를 동원해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는 주민들의 가산을 압류하고 위협하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르지만, 주민들은 1924년 5월 하의도 토지소작권 보장을 위한 소작인회 창립, 1928년 1월 하의도 농민조합 창립을 끝까지 이뤄냈다.
당시 오사카에 거주하던 최용도, 고장명 등 하의도 출신 121명이 재오사카하의농민회를 결성해 이들의 투쟁을 지원했다.
조선 왕실과 세도가에 이어 일본인 지주들에 맞선 하의3도 주민들의 토지반환 투쟁은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미 군정청이 들어선 이후에도 지속됐다.
해방 후 일본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미 군정청이 갖고 일제의 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대신할 산하 독립기관으로 '신한공사'가 설립되어 미곡을 수집하고 소작료를 징수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일본 적산농지를 경작하면서 미군정청이 정한 '3.1제 소작료'(일체의 소작료는 수확량의 3분의 1일 초과할 수 없다)를 납부해야만 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감금되었다.
하의3도 주민들로서는 비록 3.1제 소작료가 나은 것이긴 했지만 조선왕실과 홍씨 집안, 그리고 도쿠다에서 신한공사로 지주가 바뀌었을 뿐 소작료를 납부한다는 것 자체가 토지소유권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한몸처럼 소작료 불납동맹으로 맞섰다.
1946년 8월 신한공사에서 목포경찰서 경찰관 50명을 동원해 소작료 징수작전에 나섰다가 충돌이 벌어졌다. 일부 주민들이 총경상을 입고 청년들이 지서로 연행되었다.
연행과정에서 25살의 젊은 농부 김지배(또는 김전배)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다. 이에 분노한 상태도와 하의도 주민 1천여명이 하의지서와 신한공사 하의지부에 불을 지르고,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음력 칠월 칠석(1946.8.3)에 벌어졌다고 해서 '하의도 7.7농민폭동'으로 불린다.
구 목포경찰서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8월 4일 미 군정청은 하의도에서 200여명의 주민을, 5일 무장경찰관들을 증원해 다시 200명을, 6일에는 청년 청년 15~16명을 체포했다.
하의3도 주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1949년 7월 국회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원했고 8월 1일 국회 조사단이 현지에 파견되어 1950년 2월 2일 만장일치로 하의3도 주민들에게 '소유권 무상반환'할 것을 결의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결의 이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54년 3월 다시 국회 탄원서를 제출해 1956년 6월 국회는 '평당 200원 가격에 적산을 구입하는 형식'으로 명의 이전 등기를 승인했다.
이후 뒤늦게 도쿠다 명의의 분배농지 9,167필지 중 미등기 토지 600필지가 확인되었으며, 1999년 10월 31일 현재 456필지(76%)가 실질 소유자에게 등기되었고, 등기 미신청 상태인 144필지(24%)도 2006년 12월 5일 현재 84필지가 추가 등기되고 60필지는 국가가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세계사적 가치는 충분...자료는 다방면 보완 필요
하의도와 상태도·하태도(신의도). 하의3도가 하나의 그림에 들어있는 지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현재 한국이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이산가족을 찾습니다(2015) △4.19혁명기록물(2023) △동학농민혁명기록물(2023) 등 18건이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으로 세계적 가치, 신빙성, 유일성, 영향력 등을 꼽고 있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 : 역사적 중요시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역사발전에 기여한 장소나 지역관련 정보 (Place) △세계사의 주요 주제 (Subject/Theme) △사회적, 정신적, 문화적 중요성 (Social/Spiritual/Community Significance) 등의 기준에 접합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의3도의 토지탈환투쟁 기록물이 이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추가적인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고, 앞으로 그에 필요한 작업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등재를 위해서는 우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유산청장이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해야 한다. 이어 등재신청 서류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고 2년마다 열리는 국제자문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승인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
최근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슷해졌다는 결과를 두고 문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왜 탄핵 정국인데도 이처럼 여당 지지도가 높은지 묻는 내용인데,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총선 직전으로 돌아간 보수 성향 지지자의 적극성
이번 주 1월 4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40% 대 국민의힘 38%, 지난주 1월 3주에는 더불어민주당 36%-국민의힘 39%로 두 당의 지지도는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탄핵 정국인데 왜 이렇게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냐면서 혹시 '판이 바뀐 것인지'를 묻는 분들이 많다.
특히 ARS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지지도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국민 대표성은 약하지만 고관여자 중심 표층 여론을 보여줄 수도 있는 ARS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특이사항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무선 RDD 응답률이 ARS에서조차 상당히 높아졌다.
② ARS에서 보수 성향자의 응답 적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③ ARS에서는 중도 성향자의 보수 동조화 현상까지 나타난다.
공통적으로 보수 성향자의 여론조사 응답 적극성이 진보 성향자 대비 매우 강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선관위를 통해 통신 3사로부터 제공받는 가상번호보다 무선 RDD번호의 응답률이 나쁘지 않다. 아마도 통신사에 가상번호 전환을 거부했던 사용자까지 RDD에서는 응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추정된다.
이번 글에서는 ARS 조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히기보다는 보수 성향자의 응답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강해져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최근 보수 성향자의 비율은 2024년 국회의원 선거 직전인 2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2월 5주 보수 성향자는 363명이 응답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3%, 국민의힘은 40%였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률은 39%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4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번 1월 4주 조사에서 보수 성향자는 362명이 응답했다. 총선 직전과 비슷하다. 그럼, '왜 이렇게 보수 성향자가 마치 여론을 좌지우지 하듯 상대적 응답 적극성이 강해진 걸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봐야 한다. 몇 가지 주요한 이유 각각을 살펴보자.
불모지로 변한 제3지대, 보수 대안 정당 부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 기각 등 현안 관련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남소연
첫째, 지지자 이탈이 최소화 될 수 있는 정당 경쟁 구도를 생각해볼 수가 있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외에 국민의당이 있었다. 같은 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이나 얻은 큰 정당이었다. 교섭단체를 단독으로 구성할 정도였고, 신생 정당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더군다나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됐던 2017년에는 바른정당도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탄핵에 찬성했던 유승민 전 의원이 중심이 돼 만든 정당에 대한 보수성향자의 지지도가 상당했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지점이다.
▲정당 지지도 비교(2017년과 2025년 1월)두 번의 탄핵 정국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도를 한국갤럽 조사결과에서 가져와 비교해봤다.한국갤럽
이처럼 대안적 정당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상황은 매우 다르다. 지금은 보수 성향자가 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개혁신당 정도인데, 전체 지지도가 높지 않아서 바람을 일으키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2017년 1월 분산된 보수성향자들의 지지도를 합산한 결과와 비교를 해도 지금 국민의힘 지지도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이고, 무당층 규모는 더 적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스캔들과 애국심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열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유성호
둘째, 이번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의 성격을 보면 과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6년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이유는 직권남용 등이었고 이번에는 비상계엄 선포이니 이번이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하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스캔들성 내용을 담은 주장이 언론과 뉴미디어에 많이 쏟아졌다. 심지어 외신에서도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내용을 다룰 정도였다. 이런 이슈에서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같은 편이라고 목소리 높일 사람이 얼마나 됐겠는가. 대선 때 지지했던 유권자의 지지 철회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철저히 이념의 문제가 됐다. 물론 비상계엄을 선포한 측이 제시한 이유가 그렇다는 거다. 근거가 있건 없건 그런 주장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일관되게 '애국' 프레임에 호소하고 있고, 그에 따라 대선 시기 지지했던 유권자가 지지를 표명하는 데 심리적 부담감이 낮아졌다. 또한 대통령이 어떻든 간에 보수 성향자 자신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애국심에 불타오른다고 주장하는 게 문제될 게 없으니, 여론조사 응답 적극성도 덩달아 매우 강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같이 이념에 호소하는 애국심 프레임은 갈등 상황을 만들기 충분한 것 같다. 스캔들의 경우 한쪽 진영에서 터진다고 해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세력을 탓하거나 공격하기 어렵지만, 이념에 의한 갈등은 다른 진영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만들기 충분한 것이다. 보수 성향자들의 적극성이 여론조사 응답에만 그치지 않고 폭력행위로도 이어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프레임 설정과 이슈 파이팅, 그리고 민주당의 대응
보수 성향자의 여론조사 응답 적극성이 강화된 이유 중 셋째로 생각해볼 문제는 비상계엄 선포와 윤 대통령의 구속까지 일련의 상황에서 보수 성향자와 진보 성향자의 관여도가 상반된 방향으로 달라져 왔을 수 있다는 점이다.
크게 흐름을 훑는다면, 비상계엄 선포→국회의 계엄 해제→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후 가결→한덕수 총리 탄핵소추안 가결→탄핵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 철회→윤 대통령 체포 및 구속의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 성향자들은 긴장감이 풀릴 수 있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보수 성향자들은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속담에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 생각이 달라진다'라고 하는데, 진보 성향자가 화장실을 다녀온 심리상태라면, 보수 성향자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일 수 있는 것이다. 간절함이 다르기에 여론조사를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를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넷째로는 행위자 측면에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의 대응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내란 프레임'이 갖는 중요성이 너무 커 오히려 하위 프레임 개발과 이슈 파이팅을 진척시키는 데 속도감 있게 대응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내란'이라고 하면 사실상 전면전을 연상시키고 절박감이 대단히 고양된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느끼는 다급함을 정치권에서 받아들이면, 조급함으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 다수는 '내란의 종식'과 민생에 미칠 '악영향 최소화'에 관심이 가기 마련인데, 이런 다급함이 정치권으로 오면 정당 간 갈등 양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관련 우려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렇지만, 언론은 오히려 정치적 갈등 양상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여권은 야권의 민생 행보를 두고 '벌써부터 대통령처럼 군다'라는 등의 지적을 하고 나섰지만, 정작 눈에 띄는 민생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미래 권력은 중도가 선택
▲2025년 1월 6일,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으로 달려간 '찐윤' 의원들의 모습. 김기현 대표 오른쪽 뒤에 김석기 의원이 서있다.김석기 의원 블로그 갈무리
한국갤럽의 이번 1월 4주 조사결과처럼 보수 성향자가 많이 잡혔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40%의 지지도를 보였다. 심지어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이재명 대표는 31%로 횡보하는 등 강세가 여전하다. 중도 성향자 중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30%이고 2위인 김문수 장관이 4%다. 국민의힘 인물 중 가장 높은 선호도인 11%를 보여준 김문수 장관의 중도 확장력을 확신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초고관여 보수 성향자의 주장에 발목 잡힌다면, 정권 말기 일부 '순장조'가 대통령실에 잔류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의 구성원 모두가 '순장조'가 되려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 언제쯤 과거와 단절하는 결단을 내릴지 궁금해진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몇몇 ARS 조사결과에 지나치게 놀라 여론조사 기관을 압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데, 과연 그럴 일인가 싶다. 그 조사는 그것대로 이해를 하고 대표성이 더 높은 조사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이 더욱 힘써야 할 영역은 '민생 관련 프레임 전술', '당의 포지셔닝 전략' 등이라고 본다. 분명한 것은 중도 성향 유권자의 민생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치 세력도 다가올 큰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 인용 여론조사
한국갤럽이 의뢰처 없이 자체적으로 1월 21~23일 3일간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다.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브릭스는 2024년 1월부터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가 새로 가입하여 기존 5개국에서 9개국으로 확대되었다. 브릭스+는 2023년 말 기준 세계인구의 45%인 36억명, GDP(PPP 기준) 규모의 36%를 차지하여 G7(GDP 규모 30%)을 추월하였다.
브릭스는 2024년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16차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서구 중심의 일극 체제의 마감과 다극화 세계질서로 지향점을 분명히 했고, 단순한 경제협력체를 넘어 남반구 국가들이 경제적 자율성과 정치적 자주성을 보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
카잔회의는 36개 국가 정상과 유엔 등 6개 국제기구 대표를 비롯해서 총 5,255명의 공식 대표단이 참가하였고, 134개 합의사항을 채택하였다.
카잔회의 주요 결정을 보면 첫째 13개국을 준회원국으로 지정하여 브릭스(9+13)는 세계 최대 경제블록으로 부상하였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30개국 이상이 브릭스 가입을 신청했는데 이 중 13개국(튀르키예,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알제리, 나이지리아, 우간다, 볼리비아, 쿠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이 파트너국(준회원국)으로 지정되었다.
둘째 브릭스는 ① 미국 주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을 대체할 플랫폼으로, 브릭스 회원국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브릭스 브릿지를 구축하고, 외국 방문 중인 개인이 달러 환전 없이 QR코드를 통해 자국 화폐로 지급하는 결제 플랫폼인 브릭스 페이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회원국들은 SWIFT 송금 수수료 연 300억 달러가 절약되며 비자나 마스터카드 없이도 외국에서 수 초 만에 제로 비용으로 결제할 수 있다. ② 브릭스 회원국 간 무역은 자국통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위안화 등의 유동성이 부족하여, 이를 보완하고자 달러 대신 암호화폐를 무역통화로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런 흐름에서 11월 러시아는 암호화폐 채굴을 합법화 시켰다. ③ 곡물, 상품 등은 브릭스 회원국이 대부분 생산하는데, 유통은 서방의 시카고나 런던의 상품거래소가 장악하고 있어,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서방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브릭스 곡물거래소 설립이 제안되었고 이를 원자재거래소로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④ 브릭스 공동통화(유닛)로 금 40%와 브릭스 9개국 통화바스켓 60%를 기반으로 하는 금본위 디지털화폐를 내년에 도입할 것을 논의하였다. 자국통화를 쓰면서 국가 간 교역통화로 브릭스 유닛을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4조 달러(약 5,800조원) 상당의 공동통화를 신개발은행이 보유하여, 새로운 국제통화의 안정성을 담보할 예정이다(홍익희, 글로벌 경제전쟁과 비트코인의 미래).
셋째 브릭스는 유엔과 WTO(다자간 자유무역)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를 강화하고 공정하고 포괄적인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유엔과 IMF 기구에서 남반구 국가들의 대표성 확대를 강조하였다. 반면 미국과 서구가 주장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비판하고, 이들의 일방적인 제재가 대상 국가의 인권과 취약계층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브릭스는 미국의 반대로 기능이 마비된 WTO 상소위원회의 정상화를 촉구하였다. 상소위원회는 국가 간 무역분쟁의 대법원 역할을 하는 최고기구인데, 임기가 끝난 상소위원 선임을 미국이 반대하여 수년째 상소기구를 정상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내란 정당 국힘당, 잘가라! 저승길로!”, “내란 정당 국힘당은 해체하라!”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강원촛불행동이 주최한 ‘내란정당 국민의힘 장례식’이 26일 오후 3시 강원도 원주 강원감영 앞에서 진행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연인원 2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함영기 윤석열정권퇴진 원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조사를 낭독했다.
함 상임대표는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에 국민을 대변해야 할 그대들은 국민을 철저히 배신하고 반란 수괴를 결사옹위하고 있으니, 그 길은 살길이 아니라 반드시 죽는 길임을 몰랐더냐!”라며 “(국힘당) 그대들의 정체는 국민의 암이고 공공의 적이고 내란의힘이 아니더냐!”라고 일갈했다.
이어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국민의힘이여. 영원히, 아주 영원히 미련 없이 꺼져주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그대들이 속죄하는 길임을 깨닫고 한시바삐 얼른 떠나라!”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저승사자 복장으로 온 여성은 강원도 삼척이 고향이라면서 “강원도는 정말 누구 못지않게 빨간 당이 아주 그냥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런 곳”이라며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서 끝까지 투쟁하자”라고 호소했다.
최재영 목사는 “(국힘당을) 화장해서 아주 그냥 가루를 만들고 DNA 원석까지 깡그리 멸절시키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그러한 국힘당 장례 절차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국힘당! 아이고 잘 죽었다!”라며 “국힘당은 반성은커녕 ‘윤석열을 석방하라’하고 윤석열을 다시 대통령직으로 복귀시키라고 음모, 조작을 도모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선전물을 밟아서 부순 후 상여를 따라 박정하 원주시갑 국회의원 사무실 앞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사무실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한 후 다시 강원감영 앞으로 향했다.
강원감영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살풀이와 회다지 행사를 진행한 후 축제를 벌였다.
축제는 ‘삼가JOY축제’라는 명칭으로 흥겨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축제에 앞서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가 발언했다.
김 공동대표는 “내란세력들의 발악이 만만치 않다. 이자들은 법원을 때려 부수는 폭도로 돌변해 대한민국을 공격하고 있다. 국힘당은 이들의 정치적 배후”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자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야 내란이 진압된다. 국힘당을 정계에서 몰아내야 대한민국이 비로소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이) 남의 나라 정치 상황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훈수를 두고 비난하는데 이게 내정간섭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국이 우리나라를 도대체 무엇으로 보길래 이러는 것이겠는가? 그러니 국힘당, 전광훈 등 극우세력들이 더 기가 살아서 날뛰는 거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세력들을 권력의 자리에서, 정계에서 완전히 몰아내자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요구다. 이것을 거스르고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우리 국민들이 탄핵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후 강원도에 사는 청소년들의 율동 공연과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가수 백자 씨의 노래 공연이 진행됐다.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5.01.26. 20:58:13 최종수정 2025.01.27. 00:37:02
대통령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화요일 밤, TV에는 '긴급 속보' 자막이 떴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한파'에서 '계엄'으로 바뀌었다. SNS 타임라인은 '계엄이 뭐예요?' '어디 전쟁 났어?' '실화냐?'는 반응으로 요동쳤다.
윤 대통령은 역사 속 박제됐던 '비상계엄'을 1979년 이후 무려 45년 만에 꺼내 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친위 쿠데타'로 불리는 1972년 10월 유신 이후 5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54일 만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기소됐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피고인' 신분으로 전환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지금도 지지자들 사이에 살아 있다. 서울서부지법이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1월 19일, 그의 극렬 지지자들은 폭도가 돼 법원 청사를 넘어들어가 폭동을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사법부 테러를 가했다. 민주주의 권력을 삼분하는 최후의 근간이 수십 명의 폭도에 의해 무너지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오히려 치솟는 불가사의한 일이 현실화하는 요즘이다.
21세기 최고의 정치적 격동기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1월 19일 법원 폭동 사태 및 1월 26일 윤 대통령이 구속기소되기까지 일지를 정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3일 그날 6시간
윤 대통령은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오후 10시 30분 10여 명의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해 서버를 촬영하고 당직자 휴대전화를 압수했으며, 추가 병력 100여 명이 3시간 20여분 동안 선관위를 점거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주변에는 경찰 기동대가 배치됐으며 오후 11시 4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오후 11시쯤 우원식 국회의장이 1미터(m) 높이의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수많은 국회의원이 불법적인 계엄령 해제를 위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 당직자들은 장애물을 쌓아 계엄군의 의사당 진입을 막았다.
오후 11시 23분 비상계엄 포고령 1호가 공포됐다. 15분여 뒤 경찰이 국회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이윽고 오후 11시 40분쯤에는 계엄군이 헬기 등으로 국회 경내에 진입해 국회 본청 출입문을 봉쇄했다.
윤 대통령은 12월 4일 오전 0시 30분쯤 계엄군에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오전 0시 45분 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2층 사무실 창문을 깨고 본청에 난입했다.
오전 0시 47분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본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오전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에 비상계엄은 약 2시간 40분 만에 무효가 됐다.
오전 1시 15분 국회 본청에 난입했던 계엄군이 물러갔다.
오전 1시 59분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과 국방부에 계엄 해제 요구 통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0분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 12월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 '탄핵' 열흘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6개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 바로 다음날인 12월 4일 오후 2시 40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어 5일 0시 48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7일 오전 10시 계엄 사태 이후 첫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 회피하지 않겠다", "제2의 계엄과 같은 일은 결코 없다",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국회는 12월 7일 오후 9시 27분 대통령 탄핵안 1차 표결을 진행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투표 참여를 거부해 정족수 부결로 불성립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12일 오전 사전 녹화된 29분가량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이번 비상 조치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와 국헌을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드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국회는 12월 14일 오후 5시 탄핵안을 재표결했다. 국민의힘은 1차 표결 당시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해 비난받자, 이번에는 당론 지정을 포기했다. 이에 재표결 결과, 재적 300명 중 204명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이날 오후 6시 15분 국회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됐으며, 사건번호는 '2024헌나8'로 정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2월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의 '몸 풀기' 한 달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12월 8일 계엄 사태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 체포하고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16일, 21일 세 차례의 검찰 소환 조사에 불응했다. 검찰 출석 요구서에는 윤 대통령 혐의로 '내란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적시됐다.
공조수사본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방부 조사본부 등)도 윤 대통령에게 18일, 25일, 29일 세 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 역시 불응했다. 공수처 검사 명의로 작성된 출석 요구서에는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적시됐다.
헌재는 윤 대통령의 잇단 문서 수취 거부에 '송달 간주'를 결정하고, 12월 27일 첫 변론준비기일을 시작으로 탄핵심판 절차에 들어갔다.
법원(서울서부지법)은 12월 31일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 체포 영장 및 관저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공수처와 대통령의 '추격전' 보름
1월 3일 아침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를 처음 시도했다.
이날 오전 7시 19분 공수처와 경찰 체포조 150명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오전 8시 2분 공수처는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시작해 바리케이트·차벽 등 경호처의 저지선을 뚫고 관저 앞 150미터(m)까지 접근했으나 경호처 직원들의 인간벽에 막혔다.
오후 1시 30분 공수처는 영장 집행 시작 5시간 30분 만에 집행을 중지했다.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시작된 1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초소로 경호처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월 15일 새벽 공수처가 2차 윤 대통령 체포 집행에 나섰다.
오전 4시 20분 1차때 보다 8배 이상 늘어난 약 1000여 명이 윤 대통령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체포조는 오전 7시 30분쯤 경호처 차벽을 우회해 관저 경내로 진입했으며 오전 8시쯤에는 관저 철문 앞 초소를 통과했다.
오전 10시 33분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집행했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체포됐다.
오전 11시 공수처는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영상조사실에서 윤 대통령 조사를 시작했다. 이날 공수처 조사는 10시간 40분가량 진행됐으나, 윤 대통령은 묵비권을 행사한 채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체포된 뒤 사전 준비한 영상 메시지를 내고 "수사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서 국민을 기만하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며 수사기관의 공식 수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 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며 계엄 선포로 인한 탄핵심판도 부정했다.
1월 16일 법원(서울중앙지법)은 전날 윤 대통령이 낸 체포적부심사 청구를 기각했다.
1월 17일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계속해서 조사에 불응하자 법원(서부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월 18일 오후 2시 윤 대통령은 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비상계엄이 정당하며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월 19일 오전 2시 59분 서부지법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도들의 법원 폭동·사법 부정 1박2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18~19일 구속영장 심사 법원인 서부지법과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담을 넘고 집기를 파손하는 등 사법부 결정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1월 18일 오후 4시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서부지법 앞 집회에 참석해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서울구치소로 들어가 강제로라도 대통령을 모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경찰 비공식 추산 4만4000명 운집)
1월 18일 오후 6시 50분 영장심사 참석 후 복귀하던 공수처 차량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훼손됐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10여 명을 체포했다.
1월 19일 오전 3시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들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서부지법 담을 넘었다.
오전 3시 21분 지지자들은 경찰 방패 등으로 서부지법 정문과 유리창 깨고 법원 건물 안으로 진입, 민원실과 영장판사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CCTV·컴퓨터 등 사무 집기를 파손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수색했고 법원에 방화를 시도했다.
오전 3시 32분 경찰이 법원 건물 안 지지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시작해 오전 5시 15분 지지자들을 건물 안에서 몰아냈다.
오전 7시 28분 지지자 대부분이 해산했으나 일부는 경찰과 대치를 이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내부가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같은 날 오후 윤 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헌재 쪽으로 이동해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재동초등학교 인근에서 미신고 불법 집회를 열었다.(경찰 비공식 추산 1300명)
오후 2시 20분쯤 헌재 인근에서 남성 1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오후 3시 30분 헌재 담을 넘어 경내 진입을 시도한 남성 1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오후 4시 50분 헌재 인근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일명 '빠루'를 지닌 남성이 흉기 은닉 휴대 등 혐의로 체포됐다.
1.19 법원 폭동 사태로 총 90명이 체포됐으며, 이들 중 56명이 구속됐다. 서부지법 판사실 출입문을 손괴하고 침입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사랑의교회 특임 전도사·유튜브 채널 운영자)도 구속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4차 변론기일인 12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과 헌재의 시간
윤 대통령은 결국 1월 26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현직 대통령 최초로 '피고인' 신분이 된 그는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제 윤 대통령 앞에 놓인 것은 법원과 헌재의 시간이다. 그는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계엄 사태 이후 조사 불응과 관저 칩거처럼 버티기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최근 헌재 변론기일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기 정당화에 적극 임할 것인가.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지금 중요한 것은 사법 절차 순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치적 내전이 확대 심화하느냐 아니냐"라면서 "법원과 헌재에 응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평화적 쇄신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이날 대통령 윤석열을 구속한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위헌위법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 54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 구속에 이어 기소까지 모두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지난 2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다시 신청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허가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구속기간 만료를 하루 앞두고 이날 기소했다.
석방하지 않고 구속을 유지키로 한 것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구속 이후 사정변경이 없어 여전히 증거인멸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2025.1.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검찰은 "특수본은 법원의 납득하기 어려운 2회에 걸친 구속기간 연장 불허 결정으로 인해 피고인 대면조사 등 최소한도 내에서의 보완 수사조차 진행하지 못했으나 그동안 수사한 공범 사건의 증거자료, 경찰에서 송치받아 수사한 사건의 증거자료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피고인에 대해 기소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기소 결정 전 전국 검사장을 소집해 사건 처리 방향을 놓고 회의를 가졌다. 심우정 검찰총장 주재로 2시간 45분가량 진행된 이 회의에선 윤 대통령을 구속 기소할지, 석방한 뒤 추가 수사를 거쳐 기소할지 여부를 놓고 논의가 오갔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 회의에선 구속 기간이 만료되기 전 윤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단 석방한 뒤 검찰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회의에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 심우정 총장이 구속 기소키로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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