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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의 진실과 ‘2주 휴전’의 이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4/09 08:44
  • 수정일
    2026/04/09 08: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6.04.08 11:48
  •  
  •  댓글 0
 
   
 

군사적 목표 달성이라는 트럼프 수사의 허구성
‘파키스탄 중재’라는 외교적 보호막
정보 왜곡을 통한 국내 여론 통제
가려지지 않는 전장의 진실

중동 전운이 기묘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란에 대한 공격을 2주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파키스탄 지도부의 요청과 군사적 목표 달성을 휴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발표는 이란 국가안보최고위원회(SNSC)가 공식화한 ‘미국의 10개조 수락’ 성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화려한 수사 뒤에 은폐된 전황의 실체와 트럼프의 굴욕을 분석한다.

군사적 목표 달성이라는 트럼프 수사의 허구성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적 목표를 이미 초과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 수행의 일반적인 논리에 비추어 볼 때, 승기를 잡은 교전국이 적대국의 요구안을 ‘협상의 기초’로 수용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란이 제시한 10개조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미군 전투병력은 중동지역 내에서 완전 철수한다.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를 전면 해제한다.

▲미국은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이란에 지불한다.

▲이란의 핵농축 권리를 인정한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권을 유지한다.

만약 미국의 주장대로 압도적인 군사적 타격이 관철되었다면, 이러한 굴욕적인 양보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정밀 타격 능력을 과시한 이란의 군사적 저항에 직면하여, 미국이 전략적 한계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승전보를 울려야 할 시점에 2주간의 휴전을 선택한 사실 자체가 이미 타격력을 잃었다는 자백이다.

‘파키스탄 중재’라는 외교적 보호막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의 동기로 파키스탄 지도부의 요청을 언급한 것은 어설픈 출구전략이다.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후퇴가 아닌, 제3국(파키스탄)의 간곡한 요청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군사적 좌절이라는 인상을 지우고 ‘관대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다.

과거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황망한 철수 당시에도 미국은 ‘동맹의 요청’과 ‘평화의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본질은 패배한 전장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번에 파키스탄의 중재를 언급하며 '2주 휴전'을 선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보 왜곡을 통한 국내 여론 통제

CNN 보도를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나이지리아발 유령 사이트를 언급한 대목은 트럼프식 정보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란 SNSC의 성명은 이란 관영 타스님(Tasnim) 통신을 통해 세계 전역에 공식 배포된 문건이다. 이를 ‘사기’로 몰아붙이는 행위는 이란의 승리 담론이 미국 본토 내로 확산되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 기제다.

정확한 사실관계의 반박보다는 ‘가짜 뉴스’ 프레임을 선제적으로 씌워 대중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전황의 불리함을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을 때 동원되는 고전적 전술이다. 그러나 이란 외무장관의 성명을 직접 인용하며 10개조 제안을 ‘협상 가능한 기초’라고 시인한 트럼프의 발언은 오히려 이란의 승리를 입증하는 근거다.

가려지지 않는 전장의 진실

전쟁의 성패는 SNS의 수사적 기록이 아니라, 전장의 실질적인 통제권이 어느 편에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유지하며 미국의 해상 패권에 균열을 냈고, 이를 바탕으로 자국의 요구안을 관철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2주 휴전’ 선언은 전쟁 패배를 가리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화려한 언변으로 전장의 물리적 실체를 바꿀 수는 없다. 역사는 이번 사태를 미국의 군사적 패권이 중동 민중의 저항 앞에 멈춰 선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 아니다. 2주 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든 호르무즈의 물길을 장악한 실질적 힘의 균형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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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실이 초대형 국정농단? 경향 “합리적 의심” 조선 “정치용어”

[아침신문 솎아보기] 쌍방울 대북송금 尹대통령실 개입 의심

“초대형 국정농단” 특검에 조선일보 “수사도 하기 전, 정치하나”

장동혁·정청래 악수 이끈 이 대통령에 경향 “협치 ‘시동’은 켰다”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 57조 ‘신기록’ 글로벌 빅테크 기업 규모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6.04.08 07:34

▲ 3대 특검(내란·김건희·해병) 이후 남은 의혹을 수사하는 권창영 종합특별검사팀 진을종 특검보가 7일 경기도 과천시 종합특검 사무실에서 수사 관련 사항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차 종합 특검팀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의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엇갈린 사설을 냈다. 특히 특검팀이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초대형 국정농단 의심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경향신문은 “합리적 의심”이라 했고 조선일보는 “정치 용어”라고 비판했다.

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팀은 지난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달 초순경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의 개입 시도를 확인했다”며 “이에 따라 서울고검에 사건 이첩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은 “특검팀의 수사 대상 역시 특정 사기업이나 연어·술파티 의혹이 아닌 수사기관 오남용 등 국정농단”이라며 “특검팀은 이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초대형 국정농단 의심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쌍방울 사건, 석연치 않은 대목 적지 않아”

경향신문은 8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용산’ 개입 의혹 철저 규명해야> 사설을 냈다. 경향신문은 이종석 국정원장이 ‘수사 당시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대북 정보 관련 보고서 목록 66건 중 13건의 원문만 제출했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 뒤 “근래 국정조사특위 등을 통해 나오는 증언을 보면 이 사건 수사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원 감찰부서장에 임명된 유도윤 부장검사가 압수수색에 대비해 13건을 비닉하라고 지시했고,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해 이 문건들만 가져갔다는 것”이라며 “다른 문건들에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해외 불법도박 정황 등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첩보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고 했다.

▲ 8일자 경향신문 사설.

이종석 원장은 또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김성태 전 회장으로부터 이 대통령 방북비용 300만달러 중 70만달러를 받았다는 북한 공작원 리호남은 당시 필리핀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사실이라면 검찰의 공소사실은 근본부터 흔들린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검찰이 쌍방울의 주가조작 관련 조사를 요청해놓고 100억 원대 시세조종을 밝혀낸 자료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김 전 회장,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에게 특정 방향의 진술을 회유·압박한 정황도 한둘이 아니다”라며 “이런 점들을 보면 대통령실을 배후로 검찰은 물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동원돼 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특검팀이 ‘국가권력에 의한 초대형 국정농단 의심 사건’으로 규정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는 정반대의 논조다. 조선일보는 8일 <수사도 하기 전에 “초대형 국정농단”, 특검이 정치하나> 사설을 내며 특검팀이 ‘초대형 국정농단 의심 사건’이라고 한 것을 두고 “‘초대형 국정농단’이란 말은 정치 용어다. 수사기관은 수사 결론을 내려도 이런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8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2차 특검은 아직 이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하지 않았고, 대통령실 관계자 등도 입건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사 시작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초대형 국정농단이란 말부터 썼다. 현 정권은 과거 정치 검찰이 수사도 하기 전에 결과를 예단한 뒤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고 비판해 왔는데 현 정권이 임명한 특검이 그 행태를 똑같이 반복한 것”이라고 했다.

특검이 사건을 맡은 배경도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내란·김건희·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의 잔여 의혹을 수사하라고 출범시킨 2차 특검이 수사 대상과 무관해 보이는 수사를 갑자기 하겠다고 나선 배경도 의심스럽다”며 “특검이 검찰에서 이첩받은 진술 회유 의혹은 윤석열 정부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북 송금 공범으로 엮기 위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를 회유했다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 전 부지사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조작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동혁·정청래 악수 유도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모인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가 지난 7일 열렸다. 추가경정예산, 조작기소 의혹 등 대부분 사안에서 이견만 확인할 뿐 구체적 결실은 없었지만 이런 협의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야 대표에 “두 분이 요즘 손 안 잡고 그런 것 아니죠. 연습 한 번 해보세요”라며 악수를 유도했다.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협치 가능성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경향신문 1면 제목은 <이 대통령 “위기 땐 내부적 단합 중요” 추경·개헌 이견… 협치 ‘시동’은 켰다>이다. 반면 중앙일보는 1면에 <각자 할말만 하다 빈손으로 끝났다>라고 했다.

▲ 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장동혁 대표는 추경에 소득 하위 70% 민생지원금이 포함된 것을 두고 “물가와 환율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잠깐의 기쁨으로 긴 고통을 사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현찰 나눠 주기’라고 하는 것은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공동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내부적 단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장 대표는 국정조사 중단도 요구했다. 장 대표는 “경제 챙기고 민생 살피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 같은 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들 사이에선 ‘공소 취소한다고 물가가 떨어지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국가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작기소, 이것은 범죄”라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가 다 드러나고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

협의가 이뤄졌던 부분도 있다. 국민의힘이 생계형 소규모 운수업자 지원 등 이른바 ‘국민 생존 7대 사업’을 제안하자, 민주당은 “긍정 검토하겠다”고 했다. TBS 지원 예산 49억 원이 ‘전쟁 추경’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도 정 대표는 “저희도 그것은 추진할 생각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를 “다행인 건, 이런 이견 속에서도 시급한 추경안 처리와 관련해 여당이 야당의 지적을 일부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 점”이라고 평가했다.

TBS 예산 지원이 무산된 것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은 “‘TBS 정상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의지를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강력한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노조는 “TBS 지원이 “수도권 시민의 알 권리와 안전망을 지키고, 벼랑 끝에 몰린 방송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절박한 예산”이라며 “벌써 무임금 19개월째다. 윤석열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의 탄압에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일터를 떠난 상황에서, 160여명의 구성원들이 1년 7개월째 무임금으로 버티며 오로지 TBS를 살리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57조, 중앙일보 “양극화 경계”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50조 원 고지에 올랐다. 7일 연결기준 올해 1분기 매출이 133조 원, 영업이익이 57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힌 것이다. <분기 영업익 ‘50조 시대’ 연 삼성전자>(경향신문), <석달간 57조 번 삼성전자 한국기업 실적 ‘새 역사’>(동아일보), <삼성 영업익 57조 세계 1위 넘본다>(세계일보), <삼성전자 영업익 57조 ‘세계 톱3’>(조선일보), <57조, K반도체 초격차의 힘>(중앙일보),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익 ‘57조’ 韓기업 새역사>(한국일보) 등의 1면 제목이 나왔다.

▲ 8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8일자 <기업사 새로 쓴 삼성전자 영업익 57조…경제양극화는 경계를> 사설에서 “이런 이익 규모는 애플·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상위 5개 기업에 들어갈 정도”라며 “세계 최대 메모리 생산 역량을 갖춘 데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은 로직 반도체부터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까지 모두 갖춰 원스톱 솔루션이 가능한 세계 유일 반도체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강점이 이번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서 더욱 빛났다”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반도체는 잘 나가는데 일반기계·철강·자동차부품·가전 등 나머지 분야와 내수 소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고환율·고유가로 내수기업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더 커졌을 것이다. 경제의 양극화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취약계층은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라도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한겨레는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만 ‘57조’, 혁신 게을리 말아야> 사설에서 “불과 3년 전만 해도 연간 적자를 기록했던 반도체 부문에서만 5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은 놀라운 반전”이라며 “이런 거대한 수익은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일군 성과인 건 분명하지만, 그 배경에는 인공지능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시장 팽창이 크게 작용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몸집을 키워왔으나, 인공지능 전환에는 한발 늦은 모습을 보이며 고전을 해온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삼성전자에 “이제는 축적된 자본과 기술력을 디딤돌 삼아 진정한 기술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단기 호황에 기대기보다,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 새로운 칩 구조와 시스템 아키텍처에 과감히 투자하고, 기존의 성공 공식을 스스로 깨뜨리는 ‘파괴적 혁신’에 부단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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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2주 휴전"…트럼프, 종전안 10개 항 사실상 수용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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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4.08 09:32

  • 댓글 0

'이란 문명 파괴' 위협 트럼프, 몇 시간 후 "2주 연기"

호르무즈 2주간 개방, 10일 파키스탄서 종전 협상

트럼프 "이란과의 장기 평화 최종 합의 단계 진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완전한 파괴" 작전을 2주 연기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이란 문명 파괴"를 위협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통첩 시한을 1시간 여 앞둔 7일 저녁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려 대이란 군사 공격 연기를 발표했다.

 

8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전쟁의 2주간 휴전이 발표된 후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26. 04. 08 [WANA=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중재국 파키스탄과의 협의에 따른 것이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한 개방을 조건으로 한다"면서 "2주간 이란에 대한 폭격과 공격 중단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밤 파괴적 군대의 이란행을 중지시켰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란도 공식 성명을 통해 2주간 휴전 에 동의했으며, 이란 군과의 협의를 통해 2주간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은 오는 10일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나 추가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양측이 합의하면, 2주간 휴전을 연장할 수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최후통첩 시한인 7일 오후 8시(미 동부시간, 한국 시간 8일 오전 9시)까지 이란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이란의 모든 다리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고, 이란의 모든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고, 불타고, 폭발해 다시는 사용 못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뒤이어 트루스 소셜에 "오늘 밤 한 문명 (civilization)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란 글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6일 워싱턴 DC 백악관 제임스 S. 브래디 브리핑룸에서 이란 관련 브리핑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6.4.6.UPI 연합뉴스

로이터와 뉴욕타임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란 최고 국가안보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란이 미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이란이 제시한 10개항의 종전안을 미국이 전부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종전안 10개 항을 보면, ▲ 이란이 다시는 공격받지 않을 것이란 보장 ▲ 단순한 휴전이 아닌, 영구적 종전 ▲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중단 ▲ 미국의 모든 대이란 제재 해제 ▲ 이란의 동맹 세력에 대한 역내 전투 종료 ▲ 그 대가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 이란은 선박당 200만 달러의 호르무즈 통행료를 부과 ▲ 통행료는 오만과 배분 ▲ 이란은 호르무즈의 안전한 통행 규칙 제공 ▲ 전쟁 배상금을 대신해 통행료를 재건에 사용 등이다. 특히 재침공 보장과 관련해선 중동 지역 내의 모든 미군 기지에서 전투 병력 철수을 요구하는 것로 알려졌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란에 대한 공격이 중단되면 이란도 공격을 중단할 것이며 이란 군과 조율을 통해 2주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해가 저무는 가운데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향해 아라비아만을 항해하고 있다. 2026. 03. 23 [AP=연합뉴스]

이날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이중적인 휴전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모든 군사적 목표들을 초과달성했고, 이란과의 장기적 평화와 중동의 평화와 관련한 최종 합의 단계가 아주 많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란에게서 10개 항 제안을 받았고 그것들이 함께 협의할 만한 실행가능한 기초라고 생각한다"며 "과거 논쟁의 거의 모든 다양한 사항들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 합의가 됐지만, (향후) 2주는 이 합의를 확정짓고 완벽하게 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대신해, 중동 국가들을 대변해 이런 해묵은 문제를 해결에 이르게 만들게 된 게 영광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욕설과 극언을 섞어가며 이란을 위협했지만, 트럼프는 승산 없는 확전보다 외교적 출구를 찾은 걸로 풀이된다.

그동안 이란은 시종 일관 완전한 종전이 아닌, 일시적 휴전은 '2·28 불법 선제공격'을 벌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략적 수세를 만회해 추후 다시 공격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차제에 가부간 매듭을 짓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고, 결국 관철시킨 것로 보인다. '불법 강요된 전쟁'(아라그치 외무)에 대한 이란의 승리라고 평가해도 무방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대이란 군사 작전 개시 직전 "2주 연기"를 발표했다. 2026. 04. 07 [트럼프 트루스 소셜 계정]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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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하는 북한? 김정은의 "李 대범하다"는 평가 하루만에 "한국, 참으로 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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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4/08 09:35
  • 수정일
    2026/04/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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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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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남북 정상 간 신속한 상호 의사 확인"에 의미 부여했지만…장금철 "희망섞인 해몽" 일갈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4.08. 04:04:26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 유감 표명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솔직하고 대범하다고 화답한 것을 두고 정부는 남북 정상 간 간접적 소통이 이뤄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북한은 그러한 판단이 '희망섞인 해몽'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7일 장금철 북한 외무성 제1부상겸 10국 국장은 '가장 적대적인 적수국가인 한국의 정체성은 변할수 없다'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청와대를 포함한 한국 내 각계의 분석은 참으로 가관"이라며 "한국측이 우리 정부의 신속한 반응을 놓고 '이례적인 우호적반응', '정상들사이의 신속한 호상의사확인'으로 받아들이며 개꿈같은 소리를 한다면 이 역시 세인을 놀래우는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섞인 해몽'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부상은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총무부장의 담화에 대해 "담화의 주제의 핵은 분명한 경고였다. 아주 짤막한 점잖은 문장과 표현으로써 한국을 향하여 재치있는 경고를 날렸다"며 "말귀가 어두워 알아듣지 못하길래 내가 읽은 담화의 속내를 일깨워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너희가 안전하게 살려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죄를 인정할줄도 알아야 한다, 뻔뻔스러운것들 무리속에 그래도 괜찮게 솔직한 인간도 있었는데…? 안전하게 살려면 재발을 막아라,계속 앞에서 까불어대면 재미없다, 편하게 살려면 우리에게 집적거리지 말아!"라는 것이 김 부장 담화의 기본 줄거리라고 주장했다.

장 부상은 "오늘도 김여정 부장은 며칠전 유엔인권리사회에서 조작된 그 무슨 '결의'에 대한 언급을 하는 와중에 한국을 동네개들이 짖어대니 무작정 따라 짖는 비루먹은 개들이라 평하면서 어제 밤 자기의 담화가 재미있었는가를 나에게 물었다"며 "물론 나는 그에게 한국측의 ‘희망섞인 해몽’이 매우 재미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장 부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가장 적대적인 적수국가인 한국의 정체성은 당국자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결단코 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6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비록 우리 정부의 의도는 아니지만, 일부의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이 유발된 데 대해 북측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이날 김여정 부장은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대통령이 직접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재발방지조치를 언급한것은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우리 정부는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부장은 "우리 국가수반은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였다"라고 밝혀 김정은 위원장도 이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이번 남북 정상 간 신속한 상호 의사 확인이 한반도 평화 공존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정부는 한반도 평화 공존을 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7일 기자들과 만나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고조 행위 중단에 대한 남북 양 정상의 의사가 신속하게 확인되고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한반도 평화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 평가를 하고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써서 예우했다는 부분에 주목하면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으나 여전히 남한과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 3월 23일 평양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회의 2일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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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500원 위기 아니다, 돈의 흐름이 바뀐 시대다"

[김종철의 더토크] 33년 한은맨,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의 한국 경제를 향한 충언

26.04.08 06:43최종 업데이트 26.04.08 08:28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숭실대 교수)가 19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그 부분에 대해선…위기는 결코 아니라고 보죠."

그의 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기자가 원-달러 환율에 대해 물었을 때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1500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시장에선 위기라고 한다"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이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들어가며 현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외화가 부족해서 빚을 갚기 위해 달러를 사야 했던 구조였지만, 지금은 투자를 위해 달러를 사는 구조"라고 했다.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숭실대 교수). 한은에서만 33년을 일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은에 들어와서, "처음 몇년 동안 (한은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라면서 "대학에서 준비한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라고 했다. 국제금융시장과 정책 기획에 정통하다는 평가와 함께 지난 코로나 위기 때 선제적인 금리 인상과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숭실대 경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를 지난달 19일 만났다.

"조금 전까지 강의하고 왔다"라며 기자를 맞이한 그는 1시간 30분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갔다. 그와의 대화는 숫자를 놓고, 확인해 가는 경제 인터뷰가 아니었다. 돈의 본질에서 시작해 환율, 부동산, 한국 경제의 구조, 중앙은행의 역할 그리고 이재명 정부 경제팀에 대한 평가까지, 그의 답변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33년 한은맨의 진심어린 충고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숭실대 교수)가 19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이정민

연구실의 탁자에 앉자마자, 기자는 최근에 그가 펴낸 <돈의 변신>(연합인포맥스북스 출간)이라는 책을 내보였다. 이어 "금융과 화폐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풀어쓴 책은 드문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하자, "30여 년 전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핵심은 하나"라고도 했다. "화폐는 고정된 게 아니라 변하는 것이고, 그 흐름을 이해해야 경제를 볼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경제학도, 기자, 정책 실무자, 심지어 한국은행 신입 직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를 공부했어도 막상 돈의 전체 그림은 잘 안 잡힌다. 그래서 전체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환율 얘기가 나왔다. 요즘 시장과 정치권 모두 민감하게 바라보는 원-달러 환율 1500원대 문제였다. 질문은 단순했다. "지금의 1500원 환율, 위기인가?"라고. 이 전 부총재의 답은 단호했다. "두 가지 포인트인데, 하나는 위기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선상에 놓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당시에는 외화가 부족했고, 단기외채를 갚기 위해 달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했던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은 달러가 없어서 사는 게 아니라, 투자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했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270.91포인트(5.36%) 오른 5,323.37이다. 2026.4.1연합뉴스

다시 말해 과거의 환율 급등이 '부채 상환의 공포'에서 나왔다면, 지금의 달러 수요는 '자산 배분과 노후 준비'에서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었다.

"한국의 50대, 60대는 지금 경제의 중추이고 동시에 은퇴를 준비하는 세대예요. 연금을 비롯해 개인투자 등 노후의 현금 흐름을 만들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한국 주식만 갖고 있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험 관리 차원에서도 미국쪽 자산을 담을 수밖에 없어요."

그는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 확대를 두고 일부 정치권에서 "고환율의 원인"이라고 몰아가는 시선을 사실상 반박했다. "그건 투기라기보다 포트폴리오 투자"라는 것이다. 이미 시장은 열려 있고,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자산 비중이 큰 현실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려운 경제학 용어를 늘어놓기보다, 한국 사회의 저축 구조와 은퇴 세대의 현실을 먼저 꺼내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원-달러 환율 1500원 시대 위기라고?

물론 그는 지금 환율 수준을 아예 정색하고 "정상"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배경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그의 판단으로는 한국의 저축 초과 구조, 국내 투자 부진, 미국 자산 선호 같은 흐름만 놓고 보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 정도가 하나의 기준선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트럼프 변수, 관세 압박, 지정학적 전쟁 위험, 유가 상승 같은 외부 충격이 얹히면서 1500원대까지 뛴 것이라는 분석이다.

"1500원 이상은 펀더멘털에 비해 좀 높은 수준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위기라고 볼 일은 아니에요. 시장은 늘 오르내리며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동산으로 옮겨갔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 '한국 경제의 돈의 질적 변신'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지금 한국 경제가 은행 중심, 부동산 중심의 자금 흐름에서 조금씩 생산적 금융과 미래산업 투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돈은 항상 이동한다"라면서 "문제는 그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가느냐, 아니면 비 생산적인 곳에 머무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숭실대 교수)가 19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기자가 "책에서 마지막 제언이 지금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과 닿아 있다"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축은 많은데 국내에서 그 돈을 받아 생산적으로 투자할 곳이 부족한 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돈이 부동산에 머물거나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문제도 단순히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자금이 어디로 흐르느냐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그의 말도 귀에 걸렸다. 현직에 있을 때는 "말 한마디가 곧 시장 개입으로 읽힐 수 있어서 뻔한 얘기밖에 못 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시장이 과열된 해석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율이 오르면 곧바로 위기론, 투기론이 쏟아지고, 유튜브와 정치권이 이를 증폭하는 상황에서, 전직 중앙은행 인사로서 구조적 배경을 설명하는 게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 방향? "민생중심으로 정책 설계는 맞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웠다. 특정 정책의 디테일까지 평하는 것은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거시적 방향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했다.

"지금 정부 경제팀이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매크로적(거시경제적)으로 단단하고, 마이크로적(미시경제적)으로도 잘 아는 분들이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제는 부동산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고, 국민들도 직접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시대죠. 또 재정을 확대하고 민생 중심으로 정책 자체를 설계하는 방향도 맞다고 봐요."

책에서 강조했던 생산적 투자, 미래 산업으로의 자금 이동, 환율 변동성에 대한 시장 구조 보완 같은 제언이 지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그는 끝까지 신중했다. "디테일은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라면서도, "큰 방향 자체는 맞다"고 평가했다.

인터뷰 말미,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돈의 변신>은 단순히 화폐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돈이 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한국 경제의 위기와 기회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숭실대 연구실에서의 긴 대화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환율도, 부동산도, 중앙은행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모였다. "돈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라고.

이승헌 전 부총재는 그 질문 앞에서 "서둘러 '위기'와 '공포'를 말하지 말자"라고 했다. 위기라는 말보다 먼저 구조를 보자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지금 한국 경제를 읽는 가장 차분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변신

이승헌 (지은이), 연합인포맥스북스(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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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합중국의 귀환, 이란에서 멈출 것인가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4.08 08:00
  •  
  •  댓글 0
 
   
 

2006년 10월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이 한 세미나에서 미국을 두고 “세계에서 전쟁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즉각 외교 경로를 통해 해명을 요구했고, 그를 ‘반미 인사’라 비난하면서 외교장관 기용을 막으려 압력을 가하기까지 했다. 비록 그의 발언이 맥락을 자른 왜곡 보도의 결과물이었다 해도, 미국과 전쟁의 문제를 정면으로 연결하는 것 자체가 당대의 금기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문제 제기는 미국의 대외 행태를 꿰뚫는 진실이었다.

데이비드 바인의 저서 『전쟁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War)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체계적으로 증명한다. 미국의 전쟁은 9·11 테러 이후의 일시적인 탈선이 아니라 콜럼버스 이래 지속된 팽창과 정복, 해외 기지 건설과 군사 개입이라는 긴 구조적 흐름 속에 있다. 미국은 가끔 전쟁에 휘말리는 나라가 아니라 전쟁을 반복적으로 생산해내는 국가다. 특히 전 세계에 퍼진 해외 기지는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전쟁을 가능케 하고, 그 전쟁이 다시 더 많은 기지를 낳는 자기증식의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군사 행동은 미국의 체제적 습성이 된 셈이다.

그 구조적 모순이 대형 파열음을 냈던 첫 사례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은 압도적 무력으로 전장을 지배했으나, 정작 지키려 했던 남베트남의 정치적 정당성과 국가적 자생력은 세우지 못했다. 미 국무부 내부에서조차 대규모 파병이 내전의 성격을 변질시키고 승리를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으나 무시되었다. 미국은 수차례 전술적 우위를 점하고도 결국 전략적 패배를 안았다. 강대국이 무력으로 전장을 누빌 수는 있어도 현지 사회의 정통성까지 대신 창출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교훈을 얻었지만, 미국은 이를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는 그 재연이었다. 9·11 테러의 충격에서 시작된 전쟁은 어느새 테러 응징을 넘어 국가 재건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떠받친 정부는 부패했고 선거는 신뢰를 잃었으며 정권은 국민과 괴리된 채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만 머물렀다. 부패와 약한 정통성이 내부를 잠식하는 사이 미국이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과 군 훈련은 정치적 기반 없이는 무용지물이었다. 카불의 허망한 함락은 돌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20년에 걸친 구조적 실패가 응축된 결말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그 오만함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대량살상무기라는 허술한 명분 아래 정권 교체의 속도만 믿고 기존 국가 체제를 해체해버린 전형적인 실책이었다. 바트당 체계와 군 조직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뒤 그 빈터에 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종파 갈등과 테러,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채워졌다.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경험한 전쟁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전은 형식이 조금 다르다. 대규모 점령전이 아니라 공습과 전략 시설 파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국은 당초에 미사일 능력 해체와 핵무장 저지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그 목표는 계속 흔들렸다. 전쟁은 이미 충분히 장기화되었고 미국은 추가 화력 투입과 전비 부담,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은 4월 2일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대로 화풀이 마지막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조건대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제로다. 앞으로 절묘한 정치적 해결 없이 군사력에만 의존해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을 떠안게 된다면 이 전쟁 역시 ‘장대한 분노’는커녕 ‘장대한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과거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사실 자명하다. 첫째, 전쟁은 무력으로 시작되나 결국 정치 질서의 문제로 끝난다는 점이다. 둘째, 현지의 정당성을 외부 군사력이 대신할 수는 없다. 셋째, 기지와 정밀 타격이 점령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 해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워싱턴의 정치 일정과 현지의 시간표는 다르며, 선거와 여론에 묶여 서둘러 끝내려는 전쟁일수록 현지에서는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또 놓친다면 이란전 또한 베트남과 아프간의 뒤를 잇는 이름만 바뀐 패배가 될 것이다.

이란전이 미국의 패배로 끝난다 해도 미국이 곧바로 몰락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다른 국가로 변모할 것이 분명하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의 권위와 정권의 정당성이 타격을 입고, 중간선거의 참패 후 미국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성사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불신하게 되고, 미국은 이전보다 더 거래적인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패배 후의 미국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급하게 동맹에 부담을 떠넘기려 할 것이다. 유럽은 독자 생존을 꾀하고, 중동은 불안해지며,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위협이 커질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의 또 다른 전쟁을 관망하는 일이 아니라 국제 질서 회복을 위한 연대다. 힘의 우위가 곧 법의 우위라고 착각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한국 역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의 동맹이지만 미국의 전쟁 충동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하청 국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쟁 반대와 국제법 존중, 위기관리와 다자주의 복원을 위해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의 무력에 기대어 안보를 맡긴다는 이유로 그들의 무도한 전쟁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종속일 뿐이다. 세계가 미국을 멈춰 세우고 한국이 그 연대의 한 축을 담당할 때 비로소 국제 질서 회복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20년 전 송실장의 그 한마디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를 목도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침묵할 것인가. 동맹은 범죄의 공범이 아니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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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민주당 경선서 대리투표 정황 발각…마을방송 녹음까지 확보

이장이 주민 휴대폰 17대 수거해 마을회관에 대기, 경찰 수사 착수…호남·서울 곳곳서 공천 논란 확산

신안군 대척리 이장, 경선일에 주민 휴대폰 17대 수거 정황 포착

마을방송 "칼국수 먹으러 가는 날, 핸드폰 가지고 나오라" 녹음 확보

정원오 서울시장 예비후보, 선관위에 고발장 접수…성공버스·지지율 혼동 논란

구례·영광·함평서 공천 불복 삭발 잇따라…합동연설만, 토론은 전무

2026-04-07 06:52:24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지역 기초단체장 후보를 뽑는 권리당원 ARS 경선을 실시한 6일, 전남 신안군에서 마을 이장이 주민 휴대폰을 대량으로 수거해 대리투표를 준비한 정황이 포착됐다. 뉴탐사가 입수한 사진과 마을방송 녹음 파일에는 경선 당일 주민들에게 "휴대폰을 가지고 나오라"고 안내한 뒤 마을회관에 휴대폰 17대를 줄지어 놓고 ARS 전화를 기다린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즉각 수사와 조사에 착수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둘러싼 불복과 저항이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구례에서는 시민 감시단이 발족했고, 영광과 함평에서는 예비후보가 삭발 시위에 나섰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정원오 성동구청장에 대해서도 선관위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정청래 당대표가 "억울한 컷오프를 없애겠다"며 내세운 공천은 현장에서 공정도, 혁신도, 토론도, 감동도 없는 '4무 공천'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마을회관에 줄지어 놓인 휴대폰 17대

6일 낮 12시 57분쯤 신안군 안좌면 대척리 마을회관. 신안군수 경선에 출마한 한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이곳을 방문했다가 이례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마을회관 바닥 위에 휴대폰 17대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한 남성이 그 앞에 서서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휴대폰마다 하얀색 종이가 붙어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로 추정된다.

권리당원 ARS 투표는 전화가 걸려오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뒤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본인이 직접 투표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제3자가 대리투표를 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휴대폰마다 일괄적으로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는 점에서 대리투표를 위한 준비였다는 의혹이 나온다. 촬영 사실을 알아챈 이 남성은 마을회관 밖까지 쫓아와 촬영자의 옷깃을 잡고 삭제를 요구했다. "젊은 사람이 다음 기회도 있는데 이래서 손해 보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칼국수 먹으러 가는 날, 핸드폰 꼭 가져오라"

사진과 함께 뉴탐사에 제보된 마을방송 녹음 파일은 의혹을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녹음 속 남성은 "오늘은 두리로 칼국수를 먹으러 간 날"이라며 "각 댁에 계시는 주민 여러분께서는 한 번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가지고 경로당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다. "사람 수를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칼국수를 먹는데 왜 휴대폰으로 인원을 파악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안내였다.

마을방송의 목소리 주인공과 마을회관에서 휴대폰을 관리하던 남성은 동일인으로 확인됐다. 뉴탐사가 대척리 인근 두리 마을 주민과 통화한 결과, 이 주민은 "대척리 이장이 칼국수 먹으러 우리 동네로 오자고 했다"며 마을방송 속 목소리와 마을회관의 남성이 같은 사람이라고 확인해 줬다. 이 주민은 대척리 이장이 "박우량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박우량은 현재 신안군수 경선에 출마한 후보 중 한 명이다. 다만 박우량 후보가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마을회관에서의 장면을 촬영한 후보 측은 같은 날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조사까지 마쳤다. 선관위도 조사에 착수했다. 뉴탐사가 대척리 이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해명을 요청했으나 방송 시점까지 응답이 없었다. 두리 마을 주민에 따르면 신안군 비금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정황이다.

호남 지역 민주당 경선에서 공천은 곧 당선이다. 그만큼 경선 자체가 사실상 본선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달 광양에서는 특정 후보를 위한 콜센터 운영 현장이 적발돼 최고위원회가 긴급 소집됐고, 해당 후보는 즉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신안군 사건은 광양보다 더 노골적인 대리투표 시도라는 점에서 최소한 같은 수준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삭발과 눈물, 호남 곳곳의 비명

신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6일 '공정선거를 위한 시민 감시단'이 발족했다. 뉴탐사가 전날 보도한 김순호 구례군수의 성비위 의혹이 도화선이 됐다. 시민들은 "나 부끄러워 못 살겠다"며 김순호 후보의 사퇴와 민주당 중앙 공심위의 재심의를 요구했다. 다른 후보 5명도 연합해 기자회견에 나섰다. "개선되지 않으면 버스를 조직해서 중앙당에 직접 가겠다"는 결의도 밝혔다.

영광에서는 예비후보 김혜영씨가 삭발했다. 김씨는 "자격 없는 영광군수 후보가 되는 것을 제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시작이며,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했다. 장세일 영광군수를 겨냥한 발언이다. 장 군수는 국가보조금 사기 전과가 있고, 최근에는 돈봉투를 전달한 업체에 수의계약을 몰아준 의혹으로 광역수사대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경선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함평에서는 조성철 전 더민주혁신회의 전남 상임대표가 컷오프됐다. 30년 전 친구에게 면허를 대여해 준 전과가 문제였는데, 지난 지방선거 때는 이미 후보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씨가 탈락한 자리에는 2007년 바다이야기 사행성 도박 전과를 가진 정청래 당대표 특별보좌역이 무감점으로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조씨는 "농사를 지으시면서 손가락이 다 굽어 있는 분들을 위한 정치를 꿈꿨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에서도 금천구청장 경선에서 밀려난 조승현 예비후보가 삭발·단식 투쟁에 돌입했고,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직접 자신의 머리까지 깎았다.

토론 없는 경선, 불복하면 10년 출마 제한

호남 5개 지역 경선 가운데 후보 간 토론을 실시한 곳은 목포뿐이다. 나머지 신안·무안·해남·영암은 합동연설만 진행했다. 합동연설은 각 후보가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는 자리에 가깝다. 질문도 없고 상호 검증도 없다. 전남도당 유튜브 채널로만 중계돼 시청자도 제한적이었다. 지난 선거까지는 지역 지상파 방송이 생중계했지만 이번에는 그마저 사라졌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공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후보에게 10년간 출마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후보 자격 심사에 이의를 제기할 법적 권리마저 봉쇄하겠다는 엄포다. 국민의힘도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본선 참여를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일 잘하는 지방정부"를 6·3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발표했다. "억울한 컷오프를 없애고 당원들의 선택에 맡기겠다"고도 했다. 불과 며칠 전 박구용 교수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당사 앞에서 삭발 시위가 한 건도 없다"며 공천이 순조롭다고 자평한 직후에 삭발 시위가 연이어 터졌다.

5명의 당대표 특보, 5곳의 의혹

이번 호남 공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후보 다섯 명은 모두 정청래 당대표 특별보좌역 출신이다. 영암 우승희, 고흥 공영민, 신안 박우량, 무안 김산, 영광 장세일. 이들은 공심위 심사에서 감점 없이 경선에 올랐다.

장세일 영광군수는 국가보조금 사기 전과에 더해 돈봉투 전달 업체에 수의계약을 몰아주고, 선거 로비스트의 땅을 군비로 고가 매입해 준 의혹을 받고 있다. 광역수사대가 압수수색을 집행했고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공영민 고흥군수에게는 선거 브로커로부터 3억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있고, 같은 브로커와 연결된 4개 업체가 재임 3년간 1,061건, 약 100억 원 넘는 수의계약을 수주한 사실도 확인됐다. 김산 무안군수 재임 기간 군비 약 400억 원이 투입된 무안 MRO(항공정비) 산단은 3년째 텅 비어 있다. 영암 우승희 군수에게는 특정 업체에 축제 수의계약을 몰아준 의혹이 있다.

정청래 대표는 "일 잘하는 지방정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호남 현장에서 들려오는 건 공정도 혁신도 토론도 감동도 없다는 한탄뿐이다.

서울시장 후보도 검증 사각지대

후보 검증의 허점은 호남에만 있지 않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정원오 성동구청장에 대해서도 지난 1일 서울특별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고발 내용은 세 가지다. 선거운동복을 입고 버스·지하철을 이용하며 사실상 지지를 호소한 의혹, 성동구가 운영하는 무료 '성공버스'가 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에 저촉된다는 의혹, 구정 만족도 조사를 여론조사 지지율로 반복 표현한 의혹이다.

정원오 캠프는 "선거운동복을 입고 이동한 것일 뿐 명함을 나눠 주거나 지지를 호소한 적은 없다"며 "에너지 5부제를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성공버스에 대해서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과 교통약자법에 따라 적법하게 운영 중"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성공버스는 장애인 휠체어 탑승이 어려운 일반 버스 형태이고, 4개 노선이 기존 노선버스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이용자도 교통약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정 만족도와 지지율 혼동도 반복됐다. 정원오 후보는 여러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진행자가 "지지율 90% 이상"이라고 표현했을 때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한 방송에서 뒤늦게 "구정 만족도"라고 정정하긴 했으나, 정정되지 않은 영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원오 캠프는 "후보가 직접 지지율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유사 조사에서 동작구 98%, 광진구 97% 등 다른 구가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도 "전국 최고 만족도"라고 강조한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서울시장은 6·3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다. 이재명 대통령이 조작된 골프 사진 한 장으로 대법원까지 갔던 선례를 떠올리면, 캠프 차원의 선거법 점검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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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통항료와 무너진 국제질서의 대가

  •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4.06 08:00
  •  
  •  댓글 1
 
 
 

호르무즈 해협에 통항료를 매기겠다는 이란의 구상이 국제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란은 오만과 함께 해협통과 선박 관리 프로토콜을 만들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이해하지 못할 맥락은 아니다. 전쟁과 제재에 맞서 해협을 전략적 지렛대로 삼겠다는 얘기다. 지금의 테헤란은 평시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공격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전쟁 피해국이다. 배상은 막막하고 제재는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복구비용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에게 호르무즈는 유일한 실효적 카드다. 이를 활용하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계산이다.

사실 좁은 해협을 장악하고 통행세를 받는 행태는 역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고대 비잔티온(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물려 로도스와 충돌했다. 덴마크는 15세기부터 1857년까지 외레순드 해협에서 이른바 ‘사운드 톨(Sound Toll)’을 거두어 국부를 쌓았다. 요충지를 점유한 국가가 지리적 이점을 권력으로 변환하고, 그 권력을 다시 경제적 이득으로 바꾸는 행위는 오래된 지정학적 상식이었다. 따라서 이번 구상은 갑작스러운 광기라기보다 국제 질서가 흔들릴 때마다 고개를 드는 오래 된 논리의 귀환이다.

국제사회는 바로 이러한 구시대적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 해양법 체계를 구축해 왔다. 1958년 제네바 해양법 체제가 관행을 성문화했다면,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해협을 연안국의 사유지가 아니라 세계 교역의 공적 동맥으로 정의했다. 특히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모든 선박과 항공기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보장하며, 연안국이 이를 방해하거나 정지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현대 국제법의 잣대로 볼 때는 이란의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호르무즈 통항료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이란과 오만 측의 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란은 협약에 서명만 했을 뿐 비준하지 않았기에 해협 통과 규칙은 협약 당사국들 사이의 계약적 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만 역시 안보와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국제 해협의 본질적 성격을 뒤집지는 못한다. 호르무즈처럼 공해와 공해를 잇는 해협에서 연안국의 주권은 반드시 자유 통항의 원칙 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만약 통항료를 무력으로 강제한다면 이는 해양법 위반을 넘어선 또 다른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화살을 이란에게만 돌리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근원적인 책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다. 다수의 법률가는 미국의 대이란 공격이 과연 유엔 헌장상의 자위권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란 내 인명 피해는 급증했고 의료물자 부족 등 인도적 위기도 심각해졌다. 결국 지금의 사태는 이란의 갑작스러운 탐욕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파괴한 국제법의 시신이 병목지대의 무기화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원인 제공자를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면 해법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호르무즈 통항료와 봉쇄의 직접 피해자는 미국과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평상시 호르무즈는 세계 석유와 LNG 흐름의 약 5분의 1을 떠받치고 있다. 전쟁과 해협 차단 우려가 커지자 4월 2일 하루에만 WTI는 11% 넘게, 브렌트유는 8% 가까이 뛰었다. 40개국이 해협 재개 방안을 논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호르무즈가 선례가 되면 언젠가 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유혹도 더 커질 수 있다. 병목을 쥔 국가가 안보와 피해 회복을 명분으로 통행의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면 세계 해상교통의 규칙은 급속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전개도 대체로 읽힌다. 이란은 통항료 부과를 더 제도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선별적 통과 허용과 무력에 의한 강제집행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인도, 필리핀, 일본 등 선박에는 안전통과를 허용했고, 러시아는 자국에는 해협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모두에게 닫는 봉쇄보다 누구에게 열고 누구에게 닫을지를 정하는 방식이 더 강한 지렛대가 된다. 국제사회는 군사행동만으로는 해협을 다시 열기 어렵다는 현실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무력에 의한 해협 개방은 비현실적이라고 한 말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통항료를 합법화함으로써 해법을 찾으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전쟁의 막심한 피해국 이란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한 일도 없이 극도로 피폐해진 이란 국민의 삶을 복구할 방안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이 통항료와 해협 무기화를 포기하고 완전 개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과 국제사회는 전쟁 이후의 현실을 인정하는 큰 거래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단계적 제재완화, 재건지원, 추가 공격 금지에 관한 정치적 보장, 그리고 항행안전을 위한 다자 감시 체제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이란에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협을 다시 국제공공재로 돌려놓는 비용을 국제사회가 분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전쟁을 저지른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더 큰 부담이 지워져야만 한다.

물론 제재 해제는 한 번에 끝날 수는 없다. 유엔 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는 층위가 다르고 핵, 미사일, 해운, 금융 제재가 한데 얽혀 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안은 단기적으로 일부 제재를 풀어 숨통을 틔우고, 중기적으로 재건지원을 시작하며, 장기적으로는 포괄적 제재해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 통항료를 둘러싼 또 다른 전쟁보다 제재 해제와 복구 지원이 국제사회 전체의 비용을 훨씬 줄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할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통항료 원칙에 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이란을 끝없는 제재와 고립 속에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해협의 정상화도, 지역 안정도 얻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호르무즈 수입국이자 중견국 외교의 공간을 가진 나라다. 한중일 3국이 최소한 “호르무즈의 자유통항 회복, 이란의 단계적 제재완화, 전후 재건지원”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낸다면, 미국 일변도의 군사적 해법과 이란의 해협 무기화 사이에서 현실적인 중간지대를 만들 수 있다. 동북아의 생존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이스라엘로 인해 법이 무너진 자리에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사일과 군함으로 가격표를 떼어낼 수는 없다. 남는 길은 하나뿐이다. 해협을 다시 여는 대가를 전쟁과 봉쇄가 아니라 협상과 복구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란만을 탓하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가진 쪽에 합당한 해법을 촉구하면서 이왕 흐트러져버린 국제질서를 다시 돌리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결단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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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개발하려고 주민 등골 빼먹는다? '핵 무장 효과'로 먹고 사는 것이라면?

[정욱식 칼럼] 조선(북한)의 '경제·핵 병진노선'의 당혹스러운 성과 (중) 불일치 문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6.04.07. 08:42:49

조선(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하순과 3월 하순에 각각 열린 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지금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건설 위업은 모든 방면에서 한 단계의 발전을 이룩하며 다음 단계에로 이행하는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섰다"가 자평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다년간의 발전계획을 성과적으로 완수하고 생산장성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2025년 말에 가서 2020년 수준보다 국내총생산액은 1.4배 이상"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2023년 연말에 2023년 국내총생산액이 2020년에 비해 "1.4배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2년 앞서 2021년에 정한 5개년 경제발전 목표를 달성했고, 5년간의 성과를 종합해본 결과 이를 초과달성했다는 뜻이다.

한국 추정치와 조선 발표치의 '불일치'

우리는 대개 조선의 경제와 식량 사정을 한국은행과 농촌진흥청의 '추정치'로 판단한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치는 조선이 공개한 내용과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조선의 매년 경제성장률을 –1.1, 3.9, -3.5, -4.1, 0.4%로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이 시기 조선의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9%이다.

그런데 조선은 2021년 7월에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위급 정치포럼'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VNR)>를 통해 "2015-2019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라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은행의 추정치보다 6% 포인트나 높다.

이와 비슷한 기간에 농촌진흥청과 조선의 발표 사이의 간극도 매우 컸다. 농촌진흥청이 추정한 조선의 식량작물 생산량 추이를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차례로 451만톤, 482만톤, 455만톤, 464만톤, 440만톤, 469만톤으로 나온다. 이러한 추정치를 근거로 외부에선 조선이 매년 100만톤 안팎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조선은 2021년 7월 유엔에 제출한 <VNR> 보고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알곡 생산량을 각각 585만톤, 550만톤, 485만톤, 665만톤, 552만톤이라고 밝혔다. 연평균 차이가 약 105만톤에 달했는데, 이는 외부에서 추정한 조선의 식량 부족분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러한 차이와 더불어 "북한이탈주민"을 상대로 실시된 설문조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8년에 탈북한 주민 116명을 대상으로 2019년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하루 식사를 몇 회 했냐'는 질문에 87.9%가 "하루 세끼 이상"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2015년 이후 결식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한 2021〜2025년은 어떨까? 한국은행은 조선의 GDP 성장률을 2021년 –0.1%, 2022년 –0.2%, 2023년 3.1%, 2024년 3.7%로 추정했는데(2025년 추정치는 2026년 하반기에 발표 예정), 이에 따르면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약 1.6%이다. 그런데 조선은 국내총생산이 2023년에 2020년에 비해 1.4배가 늘어났다고 밝혔는데, 이를 연평균으로 계산하면 약 11.9%에 달한다. 이후 2년에도 이 수치를 적용하면 한국은행 추정치와의 차이는 10% 안팎으로 벌어진다.

또 농촌진흥청은 2021~2025년 조선의 연간 식량 생산량을 400만톤 중후반으로 추정했는데, 5년간 평균치는 474만톤이다. 이에 반해 조선은 2021년 알곡 생산량이 550만톤이었고, 2023년에는 목표치의 3%를, 2024년에는 7%를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수치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2025년에도 "만풍년"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의 추정치와의 차이가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인민의 먹거리가 알곡뿐만 아니라 고기, 수산물, 다양한 가공식품과 기호식품, 채소와 과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을 던져준다. 조선이 간간히 경제 및 식량에 관한 정보를 공개함에 따라 이를 1차 자료로 삼으면서 그 타당성을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이를 무시·외면·불신하면서 자체적인 추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선의 경제와 식량 사정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합리적인 대북정책 수립과 국민의 객관적인 대북 인식에 큰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

핵무장 덕분에 먹고 산다고?

그렇다면 조선의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은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김정은 정권은 그 비결(?) 가운데 하나로 '핵무장의 효과'를 뽑는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핵방패의 굳건한 구축은 비단 군사분야, 안전보장분야 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를 비롯한 나라의 모든 분야의 발전과 인민생활개선을 확고히 담보하고 추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포기가 없으면 번영이 없을 것이라던 적대세력들의 억지스러운 요설과 궤변을 과학적인 현실로써 여지없이 분쇄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핵무력으로 "안전담보를 마련"하고 "경제발전에 큰 힘을 돌려온 우리식의 발전전략"이다. 이러한 발전전략에 따라 "주요 경제분야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를 2.4배, 이 가운데 핵심부문에는 8배 이상"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또 인민 생활과 복리 증진, 그리고 지방발전 등에 있어서도 "지난 시기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국가적인 역량과 재원이 돌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선이 공개한 최근 5년간 국가예산의 항목별 추이를 보면 국방비는 15% 후반대로 유지한 반면에, 경제건설 예산의 비중은 40%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건설뿐만 아니라 교육·보건·과학기술·농업 등의 예산 비중도 꾸준히 높아져왔다. 이는 흔히 외부에서 묘사하는 '군사 우선, 민생 희생' 구도가 또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조선은 이러한 자심감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전년보다 국가예산을 5.8% 늘리기로 했다. 2021∼2025년의 연평균 증가율이 2% 수준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상당한 증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금"으로 전체 예산의 43.8%를 배정키로 했다. 이에 반해 국방비는 15.7%를 배정했다고 밝혔다. 또 2026〜2030년 5개년 경제건설의 목표로 2025년 대비 국내총생산을 1.5배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연평균 8.45% 수준의 경제성장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물론 조선은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민생 측면에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조선이 간혹 공개하는 통계가 완전하다고 보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이 고도의 기술과 많은 소재·부품·장비가 들어가는 최신형 무기 개발에 자체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과학기술력과 민간 산업으로의 파급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계 작성과 보고 체계 정비도 꾸준히 추구해 발표 수치의 신뢰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북 제재의 강화로 외화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환율과 물가가 크게 올랐다는 진단도 있지만, 국가 배급 체계의 빠른 정상화와 현물 경제의 비중 확대, 그리고 수입대체 산업화로 이를 극복하고 있는 상황도 주목해야 한다. 내부 순환 경제의 토대가 구축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2월 26일 "김정은 동지께서 20~21일 역사적인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를 했다"라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병진노선이 품고 있는 '경제 논리'

기실 핵무장을 통해 '안보의 경제성'과 경제발전을 추구한 사례들은 더러 있다. 재래식 군비의 비중은 줄이면서 핵전력의 대폭 증강으로 이를 상쇄하고 경제 회복을 시도했던 미국 아이젠하위 행정부의 '뉴룩(New Look)',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을 조속히 완성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던 중국의 덩샤오핑,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을 동시에 추구했던 박정희 정권이 비밀 핵개발 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핵무기였다"고 진단한 바 있다. 냉전 시대에 "서구 국가들이 재래식 무기로 그들(소련과 동유럽)과 같은 수준에 다다르려 했다면, 아마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철회하고 영구적 전시 상태에 놓인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라며 한 말이다.

이는 김정은이 말한 '핵무력을 통한 국가발전론'과 매우 흡사하다. 이와 관련해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앞서 말한 '자원 투입의 조정'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둘째는 '군민융합'(軍民融合)이다. 이는 병력에서부터 군수산업에 이르기까지 군사 부문을 경제건설에 적극 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군사 부문의 민수용으로의 전환이다. 군복무기간을 단축해 경제건설에 젊은 노동력 투입을 확대하고 여러 곳의 군 비행장을 온실농장으로 바꾸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핵과 경제의 관계에 관한 조선의 셈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정일 시대에는 '양자택일'의 성격이 강했었다. 핵무장을 선택하자니 경제가 망할 것 같았고, 경제를 선택하자니 핵 억제력의 부재에 따른 안보가 걱정이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이러한 딜레마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까지는 좌고우면도 하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도 시도했지만, 2020년부터는 확실한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보는 자체 완성주기를 갖춰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판단한 핵과 미사일 중심으로 해결하고, 국가적 역량의 상당 부분을 경제건설과 민생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성과가 마땅치 않다면 재검토라도 하겠지만, 상당한 성과가 나오면서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충만한 상태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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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삼성전자 1분기 잠정 영업이익 57조2000억 ‘역대 최고치’···AI·반도체 슈퍼사이클 타고 연속 신기록

수정 2026.04.07 08:26

삼성전자는 7일 올해 1분기 잠정 매출이 133조원, 영업이익이 5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기업 중에서도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연결 기준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8.1% 증가한 133조원,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55% 증가한 57조2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4분기 매출 93조8374억원, 영업익 20조737억원으로 세운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운 것이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익(43조6011억원)을 1개 분기 만에 넘어섰다. 분기 기준 매출 100조원, 영업익 50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기업 역사상 최고 기록도 세웠다.

역대 최대 실적은 인공지능(AI) 확산을 타고 이어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반도체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가격이 모두 크게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양산 출하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삼성전자가 연결 기준 2025년 4분기 매출이 93조원, 영업이익이 20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힌 8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6.1.8.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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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영업이익 1위 했지만…중앙일보·한국경제에 매출 역전 당해

SBS, 2022년 매출 1조 찍은 뒤 매해 900억 이상씩 줄어

종편 영업익 1위는 TV조선, JTBC 영업익 냈지만 중계권 변수 커

YTN, 尹 때 유진기업 인수 초반부터 3년 내내 적자 상태

기자명박서연, 윤수현, 윤유경 기자

  • 입력 2026.04.07 06:11

  • 수정 2026.04.07 07:48

▲ 중앙일보와 한국경제 사옥.

2024년 12월3일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시작된 한국 정치 상황의 혼란이 2025년 상반기까지 계속됐다. 2025년 한 해는 경제 상황의 혼란도 가중됐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대부분의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비용을 줄여가며 운영했다.

주요 신문사들 다수는 비용을 줄여가며 운영해 대부분 영업이익을 냈다. 2025년 신문사 중 영업이익 1위는 조선일보(212억 원)가 차지했다. 다만 2023년부터 3년간 지속적으로 매출액을 키워온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신문과 달리 조선일보는 3년간 덩치를 줄여 매출액 부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큰 반전을 꾀한 건 중앙일보다. 지난해부터 KT 자회사 KTis의 디지털 광고사업 부문 ‘타운보드’ 주식을 532억 원을 주고 전량 매입해 엘리베이터TV 광고사업에 나서 매출액을 키웠다.

방송광고 시장 규모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KBS(-996억 원)와 MBC(-276억 원)는 큰 폭의 적자를 냈다. 반면 SBS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하게 132억 원의 흑자를 냈으나, 3년 전인 2022년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2025년에는 운영비용을 대폭 줄여 매출액이 6767억 원을 기록했고, 2024년과 비교해도 900억 원 넘게 줄여 매출액 측면에서 MBC에 밀렸다. 지상파 방송사 상황이 어렵다 보니, 적지 않은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는 JTBC가 단독 확보한 북중미 월드컵 등 중계권 구매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자체 취재를 종합해 지상파 3사(KBS·MBC·SBS), 종합편성채널 3사(TV조선·JTBC·MBN), 9대 일간지(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국민일보), 경제신문(한국경제신문) 등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매출을 집계했다. 지난 6일 기준 TV조선과 채널A,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은 전자공시시스템에 감사보고서를 올리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일보, 영업이익 1위 했지만… 매출액 1위 자리 중앙일보에 빼앗겨

2024년 주요 신문사 가운데 매출액 1위(2965억 원)를 기록했던 조선일보가 2025년 매출액 2894억 원을 기록해 매출액 3위에 그쳤다. 2025년 신문사 매출액 1위 자리에는 중앙일보(3210억 원)가 올랐고, 이어 한국경제 신문이 2위(2970억 원)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점은 중앙일보는 지난 3년간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2023년 2736억 원, 2024년 2822억 원, 2025년 3210억 원이다. 다른 매체들이 매출원가를 100억~200억 원 줄여 긴축경영에 나선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오히려 매출원가를 2024년보다 늘렸다. 신문매출액과 기타매출액도 모두 증가했지만, 매출액 증가의 핵심 요인은 지난해 8월 ‘타운보드’ 주식을 532억 원 주고 전량 매입해 시작한 엘리베이터TV 광고사업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상가 건물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The JoongAng’ 이름의 광고판이 설치되고 광고와 동시에 중앙일보 기사헤드라인이 나오는 디지털광고 사업이다.

▲ 2024~2025년 주요 신문사 영업이익.

▲ 2024~2025년 주요 신문사 매출액.

중앙일보 관계자는 지난 6일 미디어오늘에 “중앙일보는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수년간 수익 플랫폼 다변화와 영업망 확충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기존 사업의 안정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옥외광고·행사·이벤트·콘텐트 사업이 본격적인 수익화 단계에 진입하며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또한 지난해 인수한 타운보드 사업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반으로 실적에 기여하고 있으며, 디지털 유료구독 역시 의미 있는 수익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를 통해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매출액과 달리 주요 신문사들의 영업이익을 보면 조선일보가 212억 원을 기록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앙일보 175억 원, 한국경제신문 130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도 중앙일보처럼 지난 3년간 매출액이 꾸준히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130억 원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3~4년 전부터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를 개최해 문화사업에서도 유의미한 수익을 내고 있다.

한국경제 관계자는 지난 6일 미디어오늘에 “<빈필하모닉>·<로열콘세르트헤바우> 내한공연, <우스터> 전시회 등 문화예술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매출이 늘어났다. 2024년 10월부터 본지 신문 구독료를 월 2만 원에서 2만5000원으로 인상했는데도 부수가 전년보다 늘어난 영향도 컸다. 한경이 만든 지수(KEDI)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순자산이 올 1월 1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지수사업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면서 지수 사업 매출도 증가했다”며 “2023년 9월 수주한 인천국제공항 광고사업권 관련 매출도 적극적인 영업 활동에 힘입어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매출액 규모를 보인 경향신문(774억 원)과 한겨레(761억 원), 한국일보(759억 원) 중에서는 경향신문이 가장 많은 영업이익(60억 원)을 냈다. 2024년 –11억 원의 적자를 냈던 한겨레는 지난해 5억4000만 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지난해 6월에 있었던 대선 기간 선거 관련 광고 수익과 지면 토요판을 완전히 폐지하면서 매출원가를 줄여 적자 위기를 면한 것으로 보인다.

SBS, 2022년 매출액 1조 찍고 해마다 900억 이상씩 줄어

지상파 방송사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영업이익을 낸 곳은 SBS(132억 원)였다. 그러나 2022년 매출액 1조126억 원을 기록한 뒤, 2023년 8666억 원, 2024년 7684억 원, 2025년 6767억 원을 기록하며 매해 900억 원 이상씩 매출액이 빠지기 시작했다. SBS 대주주인 태영건설이 2023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그 여파가 SBS와 관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영업이익이 –259억 원인 걸 감안했을 때 흑자 전환했지만, 방송제작비용을 900억 원 이상 대폭 줄여 얻어낸 결과다.

SBS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비용을 줄였고, 재작년에 맺은 넷플릭스와 제휴가 아마 지난해 재무제표에 반영됐을 것”이라면서 “올해도 지난해 1분기 대비 광고비가 10~20% 빠졌다. 방송 쪽은 올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SBS는 2024년 지상파 방송사 3사가 주주로 있는 웨이브를 이탈해 넷플릭스와 전면 제휴를 선언했다.

▲ 2024~2025년 주요 방송사 영업이익.

▲ 2024~2025년 주요 방송사 매출액.

MBC는 지난 3년간 매출액 규모를 7000억 원대 초중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23년(77억 원)과 2024년(66억 원)에는 영업이익을 냈으나, 지난해에는 –27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방송광고수입이 2650억 원에서 2435억 원으로 215억 원 줄어들고 여러 편의 드라마를 제작했으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이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기순이익은 215억 원에서 1777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으나, 이는 부산MBC 사옥 판매에 대한 수익으로 일회성이다.

MBC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지난해 드라마가 부진했다. ‘노무사 노무진’, ‘달까지 가자’ 같은 드라마가 흥행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약 2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상파 방송이 흑자를 기록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우려했다. 또 이 관계자는 “올해 1월과 2월 약 13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KBS도 올해 적자가 적지 않은 수준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고 상황이 좋아질 순 있지만, 올해 상반기 큰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MBC는 올해 적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책협력국·마케팅영업국·혁신성장본부 등이 참여하는 정부광고TF를 꾸려 4월 중 정부광고주 통합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전사적인 노력에 나선 상황이다.

KBS는 매년 매출 하락은 물론 영업손실, 당기순손실 폭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KBS의 지난해 매출은 1조2117억 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857억 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881억 원에서 -996억 원으로 늘었으며, 당기순손실 역시 -735억 원에서 -818억 원으로 11.2%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TV수신료 수입이 6516억 원에서 6196억 원으로 320억 원 하락했으며, 방송광고 수입도 1677억 원에서 1375억 원으로 302억 원 감소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위기 상황은 밀라노 동계 올림픽과 북중미 월드컵 단독 중계권을 확보한 JTBC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JTBC가 지상파를 향해 중계권 재판매를 시도하고 있지만, 특히 KBS와 MBC 같은 경우에 지난해 큰 폭의 적자가 났고 올해 상반기 역시 광고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중계권을 구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JTBC도 2023년(-584억 원)과 2024년(-287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엔 32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다만 지난 2월 열린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중계권과 오는 6월 예정된 북중미월드컵 중계권 손실이 반영되고, 광고 판매 수익이 저조할 경우 2026년 실적은 전례없는 위기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JTBC는 중계권 재판매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재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TV조선(170억 원)과 MBN(167억 원)은 지난해 주요 방송사 영업이익 1위·2위를 기록했는데, 영업이익 차이가 크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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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그룹 체제 YTN, 3년 연속 적자 행진

보도전문채널 YTN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93억 원) 유진그룹이 YTN 인수에 나섰고 2024년(-267억 원) YTN 최대주주는 유진그룹으로 변경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경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13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방송시장이 침체됐다는 측면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유진그룹이 대주주가 된 뒤 사기가 꺾였다”며 “유진그룹이 대주주가 된 뒤 조직 경쟁력이 하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TV의 경우 지난해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합뉴스TV 매출은 853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85억 원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38억 원 증가한 21억 원이다. 당기순이익 역시 2024년 3억4000만 원에서 36억 원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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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 대통령 “이란에 인도주의적 지원하고, 선박 빼올 방안 검토하라”

서영지기자

  • 수정 2026-04-06 09:21

호르무즈에 한국 선박 26척 발묶여

이란, ‘아랍에 무기수출’ 불편한 기색

호르무즈해협 인근 걸프 지역의 한 선박.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에 한국 국적 선박 26척이 묶여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이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 우리 선박을 빼 오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말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참모와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비공개 특별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호르무즈해협에 한달 이상 발이 묶인 우리 국적 선박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이런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이날 한겨레에 “이 대통령이 ‘이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이란에 이해를 구해 한국 국적 선박을 빼 오는 방안도 강구해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이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 우리 선박 26척을 빼 올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국제법상 보장된 항행의 자유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도주의적 ‘우회로’를 모색해보라는 취지의 지시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민 생명과 안전 최우선 원칙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던 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총동원해보라는 것이다. 정부는 그간 한국 선박만의 통행 자유를 위해 이란과 개별 접촉은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지금 호르무즈해협에는 한국 국적 선박 26척과 한국인 선원 180여명이 한달 넘게 발이 묶인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국회에서 2026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란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물자 부족 때문에 인도주의적 물품을 실은 선박의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일부 허용하는 기류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 농업부 부장관이 생필품이나 가축 사료 등 인도주의적 물품을 싣고 이란 항구로 향하거나 오만만에 있는 선박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이란 해운항만기구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란 쪽과 접촉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쪽은 한국 정부가 아랍 국가에 무기를 수출한 점을 거론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방공무기 천궁-Ⅱ 10개 포대 수출 계약을 체결해 현재 2개 포대가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비적대국’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한국 국적 선박이 미국과 거래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대신 단독으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장기화 탓에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는 데 대한 대책도 모색하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난 1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다들 기름 구하려고 난리인데, (일단) 보험료는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적정한 선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다만 다 열어놓고 검토해보라는 취지지,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란 쪽과 접촉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쪽은 한국 정부가 아랍 국가에 무기를 수출한 점을 거론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방공무기 천궁-Ⅱ 10개 포대 수출 계약을 체결해 현재 2개 포대가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비적대국’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한국 국적 선박이 미국과 거래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대신 단독으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장기화 탓에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는 데 대한 대책도 모색하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난 1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다들 기름 구하려고 난리인데, (일단) 보험료는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적정한 선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다만 다 열어놓고 검토해보라는 취지지,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지난 2~4일 일본 선박 2척, 프랑스 선박 1척이 각각 해협을 통과한 것에 관해 “일본과 프랑스 선박 통과에 정부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일본 선박 2척의 경우, 선사국이 각각 오만과 인도였고, 이들이 이란과 소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장예지 기자, 도쿄/홍석재 특파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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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1주년에 윤석열 “예수님, 고난 후 부활”…동아일보 “해괴한 망상”

[아침신문 솎아보기] 동아일보 사설 “자신의 처지 예수에 비유, 정치적 부활 꿈꾸는 망상”

‘전쟁 추경안’ 오는 10일까지 심사 마치고 처리…편성 취지 관련 갑론을박

추경예산 TBS 증액에 조선일보 “전혀 무관한 항목 넣은 것” 주장

기자명정민경 기자

  • 입력 2026.04.0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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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한덕수 전 총리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사진=MBC 생중계 화면 갈무리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4일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이하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한 지 1년이 지났다. 주말 동안 서울 도심에서는 ‘탄핵 1주년’ 관련 찬성과 반대 양쪽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6일 주요 일간지들은 윤석열 파면 1년을 다루면서 동시에 윤석열이 부활절 관련 옥중 메시지를 낸 것을 전달했다. 부활절에 예수가 고난을 받은 후 부활했다는 메시지에 대해 주요 일간지들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윤석열이 지난 5일 부활절을 맞아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시고 부활하셨다”며 “지금의 시기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고난에 순종하며 구원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고 그의 변호인이 전했다. 국민의힘은 4일 탄핵 1년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결의문에서 국민께 혼란과 실망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렸다”고 전했다.

▲6일자 경향신문 2면.

이와 관련해 주요 일간지들은 윤석열이 ‘부활’을 꿈꾸는 것이냐며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나 사설을 배치했다. 경향신문 2면 <참회 안하는 윤석열 “구원의 소망 품자”> 기사는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재수감된 이후 각종 기념일마다 옥중 서신을 내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며 “그는 지난해 12월3일 내란 1년을 맞아 ‘12·3 비상계엄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자유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체제전복 기도에 맞선 것’이라며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나 망국의 위기를 초래한 대의 권력을 직접 견제하고 주권 침탈의 위기를 직시하며 일어서달라는 절박한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 <윤석열 탄핵 1년> 관련 기획기사를 배치하기도 했다.

다음은 탄핵 1년 관련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1년 지났지만 완성 못한 탄핵, 재판과 수사 속도내야>

국민일보 <尹 파면 1주년, 여전히 ‘탄핵의 늪’에 빠져 있는 국힘>

동아일보 <탄핵 1년… 尹 “구원의 소망 품자” 국힘 “이미 사과했다”는 거나>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핵된 지 지난 4일로 1년이 됐다. 하지만 내란 세력들에 대한 부실한 수사와 더딘 재판으로 인해 탄핵은 완성되지 못한 상태나 다름없다”며 “‘예수는 고난의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고 부활했다’는 윤석열의 5일 옥중 메시지와 지난 주말 윤석열 석방 촉구 집회는 사법적 단죄가 늦어질수록 내란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란 세력들을 신속하게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내란의 실체와 성격을 제대로 규명해야 탄핵이 완성될 수 있음을 특검과 재판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짚었다.

▲6일자 경향신문 사설.

동아일보 사설 “자신의 처지를 예수에 비유, 망상에 사로잡혀”

동아일보 사설도 “윤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에는 여전히 자신의 위헌·불법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라곤 전혀 없이 오직 자신의 지지층 ‘윤 어게인’을 향한 정치적 호소만 담겼다”며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도, 군대를 동원한 국회 침탈도 모두 대국민 호소용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던 그는 1년 전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의 파면 결정을 받고도, 한 달 반 전 1심 법원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도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런 윤 전 대통령이 이젠 감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비유하며 정치적 부활을 꿈꾸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며 “기독교에서 예수의 고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한 것이고, 인간의 고난은 스스로 지은 죄의 결과다.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도 없이 도대체 무슨 구원을 소망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해괴한 망상에 사로잡혀 벌인 권력의 망동, 그에 따른 사법적 단죄를 받고도 여전히 미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6일자 동아일보 사설.

국민일보는 관련 사설에서 “갈등이 가라앉기는커녕 극단적 주장만 득세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세력 척결을 앞세운 ‘특검 정국’과 독선적인 검찰·사법부 개혁 강행으로 국민통합을 외면했다”면서도 “그러나 더 큰 책임은 계엄선포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유권자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진 집권여당이 지방선거에서마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 독선·독단의 정치가 강화되고 진영싸움에 따른 사회갈등 역시 더욱 심해질 것”이라 했다.

‘전쟁 추경안’ 오는 10일까지 심사 마치고 처리…편성 취지 관련 갑론을박

‘전쟁 추경안’(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해 국회가 오는 10일까지 사업별 증액과 감액 등 추경안 심사를 마치고 본회의를 열어 처리할 계획에 있는 가운데, 편성 취지에 맞느냐 등의 논란이 오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70%에게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 지원금으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 분석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고 5일 직접 반박했다. 예정처는 4조8000억원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 사업과 관련해 “지방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발생한다”며 “이 사업의 지자체 분담분은 1조3000억원에 달하는데 지자체별 재정력과 소득 계층 분포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국고 보조율이 설정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지자체별 재정력 등을 고려해 국고 보조율을 다층화하고 인구 감소 지역 추가 지급분에 대한 국고 부담 비율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 추경에서 지방정부 재정 여력 보강을 위해 지방정부에 주는 돈(지방교부세)은 9조7000억원이고, 지원금 사업에 드는 지방정부 부담금은 1조3000억원이니 지방정부 재정 여력은 8조4000억원 늘어난다”고 반박했다.

▲6일자 조선일보 4면.

그 외에도 한겨레 17면 <‘전쟁 추경’엔 ‘전쟁 예산’만? 체납관리단 채용 갑론을박> 등에서도 전쟁 추경안에 포함된 2134억원 규모의 국세청 체납관리단 증원 예산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야당과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이를 추경안 편성 취지에 맞지않는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징수 효과 등이 있다는 입장을 다뤘다.

▲6일자 한겨레 17면.

이날 사설에서도 ‘전쟁 추경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사설이 실렸다.

서울신문 <‘전쟁 추경’ 무색… 어물쩍 쪽지 예산부터 싹 걷어내야>

조선일보 < ‘전쟁 추경’에 끼워 넣은 정권 민원 예산들>

한국일보 <‘전쟁 추경’, 선거용 정쟁 말고 여야정 힘 모아야>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이번 추경은 이재명 정부 들어 두 번째다. 지난해 6월에는 내수 침체 대응을 명분으로 30조 5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집행했다. 여야는 오는 10일 처리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며 “중동전쟁 발발 한 달여 만에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번지는 현실에서 재정 대응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정밀도다. 국회 심의가 본격화한 상황에서 과연 취지에 걸맞게 편성되고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울신문은 평시 사업 증액분이 눈에 띈다며 관광두레 예산, 독립영화 제작비, 문화예술인 지원금, 햇빛소득마을 대폭 확대, TBS 운영 지원 등에 추경이 가는 것을 비판했다.

관련기사

추경예산 TBS 증액에 조선일보 “전혀 무관한 항목 넣은 것” 주장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전쟁 추경’에 끼워 넣은 정권 민원 예산들>에서 “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에서 중동 전쟁 대응 추가경정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TBS 운영 지원금 49억여원을 끼워 넣었다. 외국어 라디오 방송에 35억원, 교통방송 제작 지원에 14억원을 증액했다. 전쟁에 따른 고유가 대처와 민생 안정을 위한 ‘전쟁 추경’이라더니 전혀 무관한 항목을 넣은 것”이라며 “TBS는 김어준 씨 등의 정치 편향 방송 논란 때문에 서울시 출연 기관에서 제외됐고 서울시 지원이 끊긴 상태다. 민주당이 TBS 예산을 추가한 것은 친민주당 성향이던 TBS를 복원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라 전했다. 조선일보는 “6월 지방선거용 추경이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전쟁 추경’의 목적과 무관한 정치성 예산들은 오는 10일까지 계속될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 삭감해야 한다”고 했다.

▲6일자 조선일보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 <‘전쟁 추경’, 선거용 정쟁 말고 여야정 힘 모아야>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추경을 ‘현금 살포, 선거용 추경’으로 규정하고, 5조원에 이르는 고유가 피해지원금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예산 등의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고유가로 인한 충격과 민생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소득 하위 70% 이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피해지원금마저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와서야 납득할 국민이 많지 않다. 중국 기업 배만 불린다며 태양광 등 사업 예산을 칼질하겠다는 것도 극렬 보수층의 ‘혐중’ 정서에 편승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야당 지도부가 이번 회동에선 정략적 반대를 넘어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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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석유파동 넘어서는 5중고 사태가 덮쳤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4/06 10:04
  • 수정일
    2026/04/06 10: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홍종학 경제스케치북

haas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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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원 환율·유가 100달러 ↑ ·고물가·고금리

공급망 붕괴까지 겹쳐 ‘초대형 인플레이션’ 위기

유동성 함정 속 환율 압박에 힘 못쓰는 한국은행

국가 운영 거버넌스, 위기 맞자 마비상태 드러나

칸막이 허문 강력한 비상 컨트롤 타워 구축해

중장기적 위기 돌파구 마련의 골든타임 삼아야

국가 복원력 높이고, 에너지 체질 개선의 기회로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거리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하며 완연한 봄이 찾아왔지만, 대한민국 경제는 매서운 한겨울의 한파 속에 갇혀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에 더해 공급망 붕괴까지 겹친 사상 초유의 '5중고(五重苦)'에 직면해 있다. 1970년대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국민소득 수준은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경쟁력 있는 산업도 꽤 늘어났다. 하지만 1970년대 전 세계가 석유파동으로 겪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이상의 엄청난 충격이 예견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 인식과 대응은 너무나도 태평해 보인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위기 앞에 서 있으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중동에서 시작된 전쟁으로 인해 세계 석유 물동량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데 있다. 벌써 한 달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발이 묶였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의 정유 시설과 카타르의 나프타(Naphtha) 생산 시설이 피격을 당하면서,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제품의 국내 공급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우리는 원유의 70.7%, 정제 석유 제품의 66.2%를 중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 당장 우리 집 쓰레기봉투 대란이란 가짜뉴스의 소재가 되고, 50%나 급등한 페인트 가격으로 직결되는 것이 바로 공급망 붕괴의 무서운 민낯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2∼3주에 걸쳐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인 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 안내문이 놓여 있다. 2026.4.2 연합뉴스

1530원 환율, 100달러 이상의 유가가 만든 '초대형 인플레'

공급망 붕괴는 필연적으로 물가 폭등을 부른다. 현재 두바이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선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초 60달러 수준에서 70% 이상 상승한 수준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은 1530원까지 치솟았다. 우리가 수입하는 물건의 가격 자체가 올랐는데, 그 물건을 사 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달러의 가치마저 폭등했으니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기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IBK경제연구소의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500원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3개월 뒤 소비자물가는 최대 7% 치솟고, 9개월 뒤 수출은 오히려 9%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우리 산업 구조상, 수입 원가가 너무 높아져 수출 경쟁력마저 갉아먹기 때문이다. 결국 수입 물가 상승은 바나나 등 먹거리 물가부터 시작해 서민들의 장바구니를 텅 비게 만들고 있다.

거품 꺼지는 주식시장과 고금리의 역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마저 요동치고 있다. 전쟁의 여파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은 사라졌고, 장기 금리가 서서히 오르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4.4%까지 치솟았다. 이는 가계 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연명하던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빚을 진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은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할 위험이 커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청년들과 서민들이 뛰어든 주식 시장의 붕괴다. 한때 6300선까지 치솟았던 코스피는 AI와 반도체 거품이 꺼지며 5000선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최근 구글에서 AI 모델의 메모리 사용량을 6배나 압축하는 '터보 퀀트' 기술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우리 주식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두 기업이 국내 주식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빚을 내어 투자(빚투)했던 개인 투자자들의 반대매매가 속출하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을 이용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린 채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고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

 

4월 3일 환율과 주가. 연합뉴스

금리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금융 당국

더욱 절망적인 것은 우리 경제가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삼성전자가 그 대금을 국내로 들여오려 했으나, 놀랍게도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 막대한 예금을 받아주기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있어 시장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금융권이 오랫동안 가계 대출이나 부실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치중하다 보니 생산적인 곳으로 자금을 융통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처럼 치명적인 유동성 함정과 고환율의 압박 속에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무력화되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도피를 막고 환율을 방어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막대한 가계 부채를 안고 있는 서민 경제와 중소기업들이 무너질까 봐 금리를 올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릴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다. 돈을 푼다 한들, 주식 시장이나 투기 자산으로만 몰렸다가 거품이 꺼지며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어 정책 수단은 사실상 증발했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함에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국가적 경제 위기에 대한 절박한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딜레마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경제가 위기다"라고 외치는 순간,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영업자와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 등 진짜 경제 붕괴가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 있는 주체는 절제된 용어만을 사용하며 침묵하고, 서민들은 그저 영문도 모른 채 쓰레기봉투를 사재기하는 등 거대한 경제 쓰나미를 맨몸으로 맞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11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에서 유조선들이 항해하고 있다.2026. 03. 11 [로이터=연합뉴스]

위기 대응 거버넌스 마비로 복원력 잃은 국가 경제

미국은 지난 2월 항공모함을 중동에 파견하면서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오래 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대비해 육상 송유관을 만들어 우회 수출로를 확보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5중고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다시는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국제금융센터와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하고, 금융위원회를 강화하고,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제고하는 한편 6개월에 한 번씩 금융안정보고서를 만들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수많은 제도와 기관을 신설했다. 그럼에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해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런 기관이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 국가 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힘을 '복원력(Resilience)'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경제의 복원력은 일본 등 이웃 국가들에 비해서도 현저히 취약하다. 한국은행조차 우리나라가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매우 약한 국가라고 공식적으로 경고했을 정도다.

우리의 복원력이 이토록 약해진 근본 원인은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한국 정부의 거버넌스(국정 운영 구조)가 사실상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국가경제회의(NEC)'와 같이 대통령과 핵심 경제 장관들이 좁은 원탁에 모여 즉각적이고 치열하게 비상 대책을 논의하는 컨트롤 타워가 존재한다. 반면, 우리는 수십 명의 인원이 넓은 국무회의장에 멀리 떨어져 앉아 마이크를 잡고 상명하복식의 형식적인 보고만 나누는 낡은 관료주의에 머물러 있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확대하는데 집중하는 대신, 내 임기 중에만 문제가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책임 회피(NIMTOO)와 부처 간 '칸막이(Silo)'에 갇혀 협업을 외면한다. 대통령이 반도체나 AI 같은 특정 산업만 강조하면 모든 부처가 그곳으로 맹목적으로 달려갈 뿐, 정작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 중동 석유 의존도를 줄이거나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당장 표가 나지 않는 궂은일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결국 위기가 터지면 문제의 본질을 수술하기보다는, '급한 불부터 끄자'며 대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거나 단기적인 건설 경기 부양책만 쏟아내 양극화만 더 부추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4.1 연합뉴스

전면적 개혁의 골든타임: 에너지 독립과 구조 전환을 향해

지금은 단순히 주가 하락이나 일시적인 물가 상승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를 억누르는 저성장, 막대한 민간 부채, 양극화라는 부실한 펀더멘털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위기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이 사상 초유의 위기를 국가의 복원력을 높이고 낡은 체질을 뜯어고치는 대대적인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첫째로 낡은 거버넌스를 타파하고, 칸막이를 허문 강력한 비상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여 중장기적인 위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경제 관료들로 구성된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나 국무총리를 위한 비상경제본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료주의의 병폐가 심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아무리 위기를 강조해도, 다른 부서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고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는 경제 관료들의 복지부동 자세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둘째, 위기를 맞아 속도감 있게 중동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 늦게나마 구조개혁을 통해,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제품의 무분별한 사용을 멈추고 친환경 종이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소비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 또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교통 체계를 개편하여 대중교통 요금은 파격적으로 낮추고 개인 차량의 운영 비용은 높이는 장기적인 수요 관리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무엇보다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하여 앞으로 지어지는 모든 새로운 공공 건축물은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하는 '제로 에너지 건물'로 짓도록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모두 석유파동 당시부터 수십 년간 대책으로 제시된 것인데 정부 캐비넷에 먼지가 쌓여있는 자료들로만 남아 있다. "벼락을 맞았다"며 피할 수 없었던 외부 요인 탓만 하며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서는 이 혹한기를 결코 견뎌낼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의 복원력을 튼튼히 다지고, 과감한 에너지 체질 개선을 밀어붙일 때 비로소 대한민국 경제에 진정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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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피크타임'만 피하면 지하철이 공짜? 여기선 가능합니다

[이봉렬 in 싱가포르] 출퇴근 시간 혼잡 줄이는 더 좋은 방법... 한국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26.04.06 06:44최종 업데이트 26.04.06 06:44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승강장 입구 모습. 2025.3.6연합뉴스

지난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의 피크타임 제한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고 출퇴근 시간의 혼잡을 줄이겠다는 명분이라더군요.

지하철이 혼잡하니 노인들은 나오지 말거나, 노인들이 꼭 필요하면 돈을 내고 타라는 게 에너지 위기 대응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설령 그렇게 해서 지하철 혼잡도를 덜 수 있다손 치더라도, 특정 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까요?

에너지 위기에 대응한다는 정부가 법 제정 이후 29년 만에 석유 판매 가격 상한제를 전격 실시한 것도 함께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이는 냉정하게 말해 에너지 절약이라는 국정 과제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입니다.

기름 가격을 억지로 눌러놓으면 사람들은 차를 계속 끌고 나옵니다. 나라 곳간을 털어 자가용 운전자의 기름값을 보전해 주면서, 정작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는 혼잡하니까 피크타임엔 돈 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요?

한국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경우 승객이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피크타임을 피하면 공짜로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이봉렬

제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우리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피크타임을 피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기로 한 겁니다.

승객이 몰리는 지하철 피크타임은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9시까지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북동선(NEL) 6개역과 셍캉-풍골 경전철(SPLRT)의 모든 역에선 평일 7시 30분 이전에 타면 공짜입니다. 피크타임이 지난 후인 평일 오전 9시에서 9시 45분 사이 역시 공짜입니다. 다른 노선 역시 오전 7시 45분 이전에 타면 최대 50%까지 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왜 이러는 걸까요? 이건 철저히 계산된 수요 관리 전략이자 국가적 에너지 절감 대책입니다.

평일 오전 시간 '비 피크타임' 무료 탑승에 대한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의 설명. 위에 설명된 노선들에서 평일 오전 7시 30분 이전과 9시~9시 45분 사이에 지하철을 타면 무료다.LTA 홈페이지 캡처

피크타임에 승객 수요에 맞춰 열차 운행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사고 위험이 따릅니다. 반면 승객을 분산시키면 기존 열차로도 충분히 쾌적하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추가 투자 없이 기존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니 지하철 공사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입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고유가 시대에 공짜 지하철은 자가용 운전자를 대중교통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유인책입니다. 차를 집에 두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가 전체의 에너지 소비는 줄어듭니다. 싱가포르에서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전체 승객의 약 8%가 피크타임을 피해 무료 시간대로 이동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옆에 서 있는 사람 10명 중 한 명만 사라져도 숨통이 트이는 법입니다.

피크타임 피하면 지하철 무료, 한국은 왜 안 되나

피크타임 전후로 지하철 이용을 무료로 했더니 피크타임의 승객 수가 8% 가량 줄어들었다는 싱가포르 교통청의 보고서 내용싱가포르 교통청 (LTA)

이 제도 덕분에 기업들의 유연 근무제 도입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직원이 일찍 출근해서 교통비를 아끼겠다는데, 회사가 출근 시간을 조정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장려만 하던 유연 근무제가 요금 혜택이라는 실질적인 보상을 만나 꽃을 피운 셈입니다.

한국이 특정 세대의 특정 시간에 대한 혜택을 박탈하는 규제와 제한을 선택했다면, 싱가포르는 특정 시간에 혜택을 부여하는 보상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한국의 방식은 자칫 세대 간의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습니다. 노인들 때문에 출근길이 힘들다는 식의 비난 말이죠. 하지만 싱가포르처럼 일찍 타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면, 이는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부지런함과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한국과 싱가포르 두 나라 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노인들의 이동권 보장과 그로 인한 비용 부담에 대한 고민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지하철 이용과 관련한 세대 간 갈등은 없습니다.

한국은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공짜라서 수시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으로 인한 교통 혼잡과 비용 부담, 세대 간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거나,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노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60세 이상을 노인의 기준으로 정하고, 지하철이나 버스 등 교통비의 절반을 감면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노인의 교통비 부담을 줄여 주면서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요금 일부를 부담하게 함으로써 노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건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에너지도 아끼고, 지옥철도 해결하고, 시민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챙길 수 있는 길. 싱가포르는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손해 보기 싫으면 나오지 말라는 것과 일찍 나오면 돈을 아껴준다는 것 중 어느 것이 실제로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기본 태도 하나만큼은 싱가포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크타임을 피하면 지하철 이용이 무료, 노인 일괄 무료가 아닌 교통비 감면을 통한 수익자 일부 부담 등 싱가포르에서는 이미 적용해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정책을 우리나라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 정부의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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