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배터리공장에서 미 이민당국의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 명이 대거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10여일 만에, 한국 울산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풍경이 연출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전 정의당 대선후보)는 24일 소셜미디어에 쓴 글에서 조지아주 사태를 언급하며 "우리 국민들은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와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인권적인 취급에 모두 충격을 받았고 격분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데 지난 16일 오전 울산의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던 최소 5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체포되고 수갑으로 결박당한 채 보호소로 이송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권 대표는 "조지아주 사건을 연상시킨다. 공장으로 진입한 것도 같고 손에 수갑을 채운 것도 유사하다"며 "우리나라 법무부도 미국 당국처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등록 체류를 단속한다며 공장을 급습하고, 이주노동자를 체포해가는 일들은 이미 너무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한국에서) 체포된 이주노동자들은 말이 좋아 '외국인보호소'이지 감옥과도 같은 매우 열악한 공간에 구금된다"며 "우리나라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적인 단속과 반인권적 구금을 해왔고, 우리 국민들 또한 무관심했다"고 자성했다.
그는 "미국의 반인권적 단속과 구금에 격분했던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작 내로남불이지 않은가?"라며 "이번 조지아주 공장 구금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봤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금속노조는 전날(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울산출입국사무소가 울산 자동차 부품회사 M사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최소 50명을 강제 체포하며 인권을 침해한 일이 지난 16일 발생했다"며 M사 입구 쪽에서 사복 경찰들이 대기하고 이주노동자를 집단 체포했고, 약 50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서로 수갑으로 결박됐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며 "인권을 탄압한 출입국사무소뿐만이 아니라 무권리 상태의 이주노동자를 중간착취한 기업 또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법무부는 최근 한 달간 이주노동자 등 4617명을 단속하고 강제퇴거 등 조치를 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며 "실제 현장에서 대규모 집단단속이 확인돼 이주노동자의 생명 안전과 권리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2018년에도 당국의 단속으로 미얀마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바 있다"고 우려하며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노동자 사망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특히 "집단 단속이 일어난 M사는 현대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모여있는 모듈화단지에 위치해 있고, M사는 자사 홈페이지 기준 노동자 수가 175명으로 비교적 큰 규모의 공장"이라며 "현대차 모듈화단지 내 대규모 공장 이주노동자 단속은 처음"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집단 단속은 명백한 인간사냥이자 인권탄압"이라며 "미 구금사태에 이어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정부가 노동자를 단속과 추방의 대상으로 삼으면 금속노조는 이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지난 24일 "울산출입국사무소가 울산 자동차 부품회사 M사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최소 50명을 강제 체포하며 인권을 침해한 일이 지난 16일 발생했다"고 밝히며 "이주노동자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서로 수갑으로 결박됐다.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24일 북한연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북한의 제기한 두 국가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통일부제공]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25일 통일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과 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라고 언명했다.
남북은 국제법상 멀게는 노태우정부의 1991년 남북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로부터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까지 두 국가로 교류하고 협력해 왔다고 하면서 "실용적, 현실적 관점이고,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풀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국가성을 인정하는 두 국가라는 것이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은 통일포기"라는 주장은 흑백논리, 냉전시대적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남북기본협정'도 두 국가성을 전제로 한 것이며,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말하는 화해협력 단계, 국가연합단계, 그리고 최종적 통일단계 중 2단계, '두 국가'로 가자는 것이라고도 했다.
전날 북한연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지금은 남북 관계에 대한 실용적 접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는 변화의 초점을 ‘적대성 해소’에 둬야 한다. 즉,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실 남북은 오랫동안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로 존재해 왔다"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국가성 논쟁을 소모적이고 갈등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어떻게 남북 대화와 교류를 복원하느냐, 그리고 오래된 꿈인 4강의 교차 승인을 완성해서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를 만들어내느냐 이것이 실천적 과제로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실행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 정부에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천명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못박은 마당에, 변화된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당국자의 고뇌로 이해한다.
문제는 장관 스스로 숙제라고 표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풀어가기 위한 창의적 실행방안'의 방향과 초점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
2024년 정초에 이어 1년 9개월만에 김 위원장이 "가장 적대국가라고 하는 것은 그들(한국)이 가장 적대적인 반공화국적대행위의 력사를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대목에 유의한다.
'미국의 3대 전략자산을 비롯한 방대한 첨단 무장장비는 물론 서방의 무력을 끌어들여 무분별한 반북 군사행동을 함으로써 '조선(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없는 항시적 전쟁위험지역'이 되었다는 북의 우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한국의 태생적 야망은 변한 적이 없다"는 북의 평가를 바꿀 수 없다면, '중단-축소-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비핵화론'을 비롯한 어떤 조치도 남북을 관계정상화의 길로 인도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가장 적대적인 반공화국 적대행위'가 아니라 '평화와 안전을 위한 행동조치'를 선행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게 상식적인 판단 아닐까?
정 장관은 "50~60%의 국민이 북한을 국가로 본다"며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소 30년 이상 국민 다수가 인정하고 남북이 합의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남북기본합의서 서문)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 격변의 세계가 펼쳐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인식이지만 어렵더라도 시간을 갖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관계는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하는 남북기본합의서 입장에 서 있다"며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정 장관의 입장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북 두 국가론'을 둘러싼 정부내 이견 노출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정작 중요한 관계정상화는 사라지고 소모적 논쟁만 하기엔 모두의 평화와 안전이 너무 위험하다.
▲중국동포이주민(중국동포단체 공동대응협의체)과 노동·교육·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대림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혐오 선동 시위를 규탄하며 정부의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대림동 힘내라!"
극우 세력의 대림동 '중국인 혐오' 집회에 맞서 100여 명의 시민들이 대림역 앞에서 '대항 집회'를 열고 "혐오를 멈추라"고 외쳤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중국 동포들이 극우 세력의 '혐중 정서'에 맞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목소리를 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5번 출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인근 학교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이자 중국 동포인 김예화씨(CK여성위원회 회장)도 목소리를 냈다. 김씨는 "오늘 이 거리에서 벌어지는 혐오 집회는 단지 이주민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들과, 미래를 향한 공격이다"라며 "우리는 아이들의 눈앞에 차별이 설 자리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주민과 외국인이 함께 웃고, 배우고, 살아가는 세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림동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다고 밝힌 한 중국 동포는 일부 발언을 듣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대림역 4번 출구 앞에서 극우 단체의 '혐중 집회'도 열렸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반대편('혐중' 집회)에서는 '한미동맹' 만세를 외치는데, 여기서는 연대의 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시민들은 "대림동 주민 만세!" "환대가 이긴다!"라고 외쳤다.
정 집행위원은 "평일 저녁임에도 많은 분들이 이곳 대림역 5번 출구 앞을 가득 채웠다. 그만큼 절박한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집회는 '반중' 집회가 대림동을 떠나 행진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 됐다. 구로 주민 홍진숙씨는 <오마이뉴스>에 "(자녀들이) 인근 초·중학교를 졸업하며 이주민들이 많은 배경 속에서 살게 됐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만나서 이해하는 자리 없이 배척하는 모습만 보여 안타깝다"면서 "그 어떠한 차별과 혐오도 허락되는 세상은 안 된다는 취지에서 오늘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중국 동포들도 나서서 열린 첫 집회... "동포 사회의 문제만이 아냐" 목소리 내
▲극우 대항 집회 연 시민들 "혐오의 사슬은 대림동에서 끊어져야"유성호
▲중국동포이주민(중국동포단체 공동대응협의체)과 노동·교육·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대림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혐오 선동 시위를 규탄하며 정부의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중국동포이주민(중국동포단체 공동대응협의체)과 노동·교육·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대림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혐오 선동 시위를 규탄하며 정부의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중국동포이주민(중국동포단체 공동대응협의체)과 노동·교육·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대림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혐오 선동 시위를 규탄하며 정부의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7일 극우 단체들은 명동에서 '혐중 집회'를 진행하려다 제한 통고를 받고 중국 동포 등 이주민들이 많은 대림동으로 향했다. 인근 A중학교 교장은 해당 집회가 주민과 학생에게 심리적 상처를 줄 수 있다면서 구로경찰서장과 구로구청장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집회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관련 기사 : [단독] '대림동 극우 집회'에 현직 교장 편지 "혐오 막아달라" https://omn.kr/2fctb)
이어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집회에 앞서 A중학교를 찾아 "학생들을 더 이상 혐오 시위에 시달리게 해선 안 된다"고까지 밝혔으나, '혐중' 집회는 일주일 만에 다시금 열렸다.
이날 '혐중' 집회에 대항하는 집회에 모인 이들은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김호림 전국동포총연합회 회장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서, 주민과 상인이 생활하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차별은 지역 사회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다. 우리 동포들은 한국 사회의 이름으로 성실히 일하고 세금을 내며 이웃과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주민과 동포를 향한 차별 선동을 즉각 중단할 것 ▲정부와 지자체는 이주민 안전 보장과 인권 보호에 더욱 책임 있게 나설 것 ▲언론은 사실에 기반해 보도하고 혐오 조작에 공조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동욱 대림동 중국동포상인회 대표는 "대림동은 수많은 상인과 주민들이 땀 흘려 일구어낸 생활의 터전"이라면서 "그러나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집회가 열릴 때마다 손님들은 발길을 끊고 지역 이미지마저 훼손되어 상인들의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이상 대림동, 구로동과 같은 중국동포 밀집 지역을 특정하여 혐오 집회를 여는 일을 자제해달라. 중국 동포 이웃들은 우리 지역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다"라고 호소했다.
구로·영등포 지역에서 20여 년을 교사로 살고 있다고 밝힌 한 발언자는 "('혐중' 집회에) 아이들을 걱정하는 내게 우리반에 한 녀석은 시위하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일갈하더라"라면서 "이 지역의 아이들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낯선 이웃을 환대하는 것이 미래의 나와 우리를 환대하는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먼저 조금 다른 이웃들을 만나 서로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잘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들이 어떤 혐오를 키우려 해도 우리 아이들은 당신들을 보고 쫄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잘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초결사대 등 극우 성향 단체 소속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대림역 앞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윤석열·김건희를 석방하라",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민초결사대 등 극우 성향 단체 소속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대림역 앞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윤석열·김건희를 석방하라",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민초결사대 등 극우 성향 단체 소속 시민들이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대림역 앞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윤석열·김건희를 석방하라",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지금은 이재명 정부 지원해야 할 때”
“실패 바라는 썩은 정치 멈춰” 국힘에 경고
윤종오 의원 제안, 짧은 시간에 65명 모여
진보당 23일부터 미대관 앞에서 농성 중
미국이 이재명 정부에 일방적인 투자를 강요하자, 국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여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소속 65명의 국회의원이 미국의 투자요구 철회를 촉구하며 결의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잘못된 요구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며 입법부가 정부에 힘을 실어준 거다.
국회의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치적 메시지는 강하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정부의 ‘승인 가능 범위’를 좁혀, 정부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명분이 되어준 셈이다. 이번 결의안 발의는 윤종오 진보당 의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국은 한국에 3,500억 달러(한화 487조) 투자를 강요하며 90%의 수익을 가져가겠다고 비합리적인 압박을 거듭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에 대응 수위를 고심하는 듯하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4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거절 의사를 내비치는 듯했다가, 이후 미국을 의식한 듯 추가 보도자료를 냈다.
국무총리 비서실은 김 총리 발언에 대해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미국 입국을 굉장히 꺼리는 상황임을 설명한 것일 뿐, 투자를 유보한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을 아니”라고 수위 조절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진보 진영 의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정부의 3500억 달러 대미투자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이에 25일, 국회 로텐더홀 앞에 진보4당이 모였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에 “관세 협상에서 당당히 맞설 것”을 요구하며, ‘미국의 3,500억 달러 대미투자 요구 철회 및 한국 노동자 인권보장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금 국회와 국민이 대통령을 지지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맹을 흔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라며 “한미 간 혈맹과 규약, 약속들이 있음에도 비합리적인 압박을 할 때는 우리는 단호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투자를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다음은 안보 압박”이라며 “전략적 유연성, 방위비 증가, 국방비 증가를 밀어붙일 것이며, 여기서 우리가 버텨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3,500만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게 되면 한국은 심각한 외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며 특히 “우리가 투자한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것은 전례도, 상식도 없는 요구”라고 일갈했다.
또한, “조지아주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던 한국노동자들이 이유없이 구금당했다”며 “국가 간 평등한 관계는 강요와 차별이 아닌, 상호 존중과 협력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보당은 23일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약탈적 대미 투자 저지 투쟁 주간을 선포했다”며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맞서, 국민의 권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하라” 요구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경고했다 “사이비 종교 세력, 극우세력과 결탁한 장외투쟁을 빌미로 한미 관세 협상과 대미 투자 실패를 들먹이는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즉각 중단하라”며 “비현실적 대책을 요구하면서 상대가 실패하기만 바라는 썩은 물 정치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국회의 일치단결한 목소리야말로 우리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라며 “국회가 앞장서 동맹으로서의 규범을 스스로 내팽개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이자40대 후반 늦은 나이에 리포액트 시민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해 민들레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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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9.25 12:00
수정 2025.09.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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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최재영 목사. 2025.09.20. 사진촬영 정숙 시민기자
<시민언론 민들레>는 김건희 씨에게 명품 가방을 전달하는 영상을 손목시계로 촬영해 공개했던 최재영 목사를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디올 백' 영상 취재 과정과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김건희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통일 운동가로서 바라본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김건희 씨의 명품 가방 수수장면을 폭로한 일로 7번의 출국 금지를 당하며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재판을 받고 있다. 최 목사는 다음 달 30일 열리는 결심 공판에서도 출국 금지가 연장될 걸로 예상한다며,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전태일 실록의 저자이기도 한 최 목사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정치, 사회, 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책을 써 왜곡된 북한의 모습과 실상을 알린 통일 운동가 목회자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왜곡된 북한 실상 확인하려 직접 방북
15년 동안 북한 바로 알리기 운동 펼쳐
-'통일운동가'로 알려졌습니다. 언제부터 통일에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나요?
"신학교 다닐 때부터 준비를 하며 활동을 해왔습니다.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설립한 '북한선교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매월 한두 차례씩 태릉에 있는 일명 '시내산 기도원'에서 기도회에 참석하거나 훈련을 받기도 하면서 북한 선교에 관해 처음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
신학교를 입학하던 1983년부터 목회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제 연령에 비해 너무 오랫동안 했고, 지역교회 일반목회는 제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평소에 사명으로 알던 관심을 대북사역과 통일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통일 운동을 한 이유가 있나요?
"미국에 살면 한반도가 같은 시선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남한에서 접할 수 없는 북한에 관한 고급 정보들이 많이 입수되고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는 남한 동포들보다는 더 자유롭게 방북할 기회가 많습니다.
통일정책이나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도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걸 가지고 정책을 만들기도 하고 개신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계들도 북한을 왜곡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선교정책과 포교정책을 세우더라구요. 일단 철저하게 사실관계 확인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방문 교류하며 자료를 채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종교, 농업, 공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직접 교류하면서 정보와 자료를 정리하고 교차 검증해 20권 정도 책을 썼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강연을 해왔고 한국에서는 지자체 초청을 비롯해 각급 학교, 각종 종교단체, 통일운동단체, 사회단체, 전국농민회 등을 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북한 바로 알리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AI 활용 설정
2014년 4월 17일 평양 문수거리 종합재활치료센터 '문수기능회복원' 운동치료실 농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 2025.09.20.사진제공 최재영 목사
평양 곳곳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놀라
분단 이후 최초 북한 국립묘지 탐방 해
-북한에 대해 왜곡이 된 부분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장애인들은 평양 밖으로 내보내서 따로 살게 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평양 시내에 장애인들이 많이 다녀요. 하루는 지방 견학을 갔다가 버스 안에서 피곤해서 눈을 감고 쉬고 있는데 누가 버스를 막 두들겨서 보니까 목발 짚은 장애인이 무슨 이유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발로 걷어차고 목발로 막 때리는데 어느 누구도 제재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곳곳에 장애인 시설도 엄청 많습니다.
평양시내에 장애인 재활 실내농구장이 있어서 참관을 갔는데 마침 미국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도 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농구공을 바스켓에 넣는 연습을 했는데 그가 재미삼아 저를 코치해 주기도 했습니다.
고아 문제도 그렇습니다. 남한은 자국의 전쟁고아들을 홀트아동복지회나 서구의 여러 고아원들을 통해 외국으로 '수출'했지만 북한은 소련, 중국, 몽골,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에 전쟁고아들을 위탁교사들을 딸려보내서 집중관리를 하면서 교육을 시켰고 전후 복구를 마친 후에는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북으로 복귀했지요. 그들중에서 연형묵 총리 등 인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에 있는 국립묘지를 탐방했다면서요?
"6.15 TV(주권방송)에서 저를 주인공으로 삼아 '남북의 국립묘지를 찾아 역사 화해를 모색하다'라는 다큐멘터리 세 편을 찍었어요. 동일한 제목으로 책도 출판을 했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3년 동안 제가 남북의 국립묘지를 모두 탐방하고 쓴 책인데 특히 북측 국립묘지를 탐방한 내용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했는데 국가보안법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고 남측 국립묘지를 탐방한 것만 세 편을 찍은 것이지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항일 투사나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하는 것 등은 남과 북이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의 입지적인 인물인 양세봉 사령관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분의 묘가 북한에도 있고 남한에도 있어요. 그러니까 북쪽은 진묘고 남쪽은 가묘입니다. 양측이 모두 존경하는 분이라 서로 묘지를 만든 겁니다. 이런 분들이 20여 명 정도 됩니다. 남한과 북한이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는데는 이의가 없다는 것도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국립묘지가 남한은 10개, 북한에는 60개가 넘는다면서요?
"남한에는 광주5·18 민주국립묘지, 수유리 4·19 민주국립묘지, 마산 3·15 민주국립묘지 등 세 곳의 민주국립묘지가 있어요. 그리고 동작동 국립현충원, 대전 국립현충원 그리고 지금 조성 중인 경기도 연천의 현충원 등 세 곳의 현충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현충원을 대체하는 묘역으로서 6·25 전사자뿐만 아니라 최근에 돌아가신 참전군인들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안장하는 국립호국원이 이천, 임실, 산청, 괴산, 제주, 횡성(조성예정) 등 6개가 됩니다(산청과 괴산은 제2묘역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실제 숫자로는 8개).
북한도 신미리 애국열사능이 점점 포화 상태가 되니까 묘지 양쪽에 날개 모양처럼 땅을 확장했는데 거기도 만장이 되어 김정일 위원장 시기에 각 시도마다 애국열사능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측은 대성산혁명열사능, 혜산혁명열사능과 조국해방전쟁참전 인민군열사묘를 비롯해 60여 곳이 됩니다. 이중에서 중요한 묘역들은 대부분 탐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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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5일 평양재북인사묘역을 둘러 보는 모습. 2025.09.20. 사진제공 최재영 목사
-문재인 정부 때 국립묘지 재구조화를 주장했다면서요?
"대구 국립신암선열공원은 국내 최대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입니다. 다른 묘역들은 정치인, 군인, 경찰 등이 섞여 있지만, 대구 국립묘지에는 독립운동가들만 안장했습니다. 남측에 산재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지는 충북 제천, 서울 삼각산과 4·19묘역 부근, 망우리 묘지 등에 흩어져 있어요. 특히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 세 분의 묘와 백범 김구의 묘는 용산구에서 관리하는 효창공원에 조성돼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제가 분노해 그동안 역대 보훈처에 건의를 해왔는데 당국에서는 많이 참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친일파들은 양지바른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데 진짜 항일운동과 독립운동하신 분들은 아직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 아닙니까? 심지어 망우리에는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만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우여곡절 때문에 온전한 시신과 유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백범 김구와 삼의사의 묘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묘가 아직도 국립묘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전국에 흩어진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것은 이를 가로막는 적폐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전현충원에는 전직 국가원수의 묘역 10개가 조성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 분의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안장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현재 최규하 대통령 부부만 묻혀 있습니다. 이제 동작동에 안장된 대통령들의 묘는 이장해서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전용묘역에 모시든지 이를 거부하는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선산으로 모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일파는 유가족에게 돌려줘 선산에 모시든지 아니면 파묘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묘지의 재구조화'를 주장해온 것입니다."
'인사청탁' 뇌물받는 김건희 보며 폭로 결심
사회 정의, 공공 이익 위한 처벌 두렵지 않아
-김건희 디올 백 수수를 폭로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당시 대선기간에 제가 한국에 강연을 하러 방문했는데 윤석열 후보가 '대북선제타격' '북한에 본 떼를 보여줘야 된다' 등의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대북정책 발언들을 많이 쏟아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강연을 들으러 온 청중 중에는 '윤석열 때문에 불안합니다. 목사님은 미국 국적자이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니까 객관적으로 윤석열한테 조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윤석열 부부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당시 강연일정으로 바빠서 연락을 못하다가 연말에 미국에 돌아가 통일정책과 대북 정책을 조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건희와 메신저로 접촉하기 시작한 것이죠. 김건희를 만났을 때 '통일문제와 남북문제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도 받기도 했지요.
결정적으로 김건희의 비리를 폭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1차 접견 대화를 하는 도중에 김건희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금융위원을 임명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다음에 접견할 기회가 생긴다면 증거를 채집하리라 마음을 먹었지요. 그 후 2차 접견이 성사되어 나는 카메라가 장착된 손목시계를 차고 들어가 디올 백을 건네는 장면을 찍었고 접견을 마치고 복도를 나가는데 선물이 든 백화점 종이가방 두 개를 들고 복도 대기실에 앉아 있는,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처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취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쓴 '전태일 실록 1~2권을 보면 아시겠지만, 기독교인들이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미국 이민생활 중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상을 알리는 담당목사로서,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한국과 동시에 장례식 예배를 집례하는 등 위안부 운동도 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공히 동맹국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대표와 각 종교의 성직자들과 함께 '인권' 문제로 미국인들에게 호소하니까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 그렌데일 소녀상을 비롯해 각 지역에 소녀상이 설립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렌데일 소녀상 건립 때 함께 사역한 성공회 신부님과 조계종 스님과 함께 캘리포니아 상원, 로스앤젤레스(LA) 시장과 시의원에게 감사장도 받았습니다. 평소 사회 정의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사안이든 물불 안 가리고 열정을 가지고 뛰어드는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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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9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캘리포니아 클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곽예남 할머니 추도 기도를 하는 모습. 2025.09.20. 사진제공 최재영 목사
김건희 사무실 천정 신문(神門) 추정 구멍
공개 영상엔 뇌물 추정 목걸이, 시계 찍혀
-실제로 만나 본 김건희는 어땠나요?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부친이 죽고 혼자 남은 모친이 2남 2녀 자식들을 키우려고 돈 버는 일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까 올바른 가정 교육을 못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건희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많은 학위를 받았지만, 대부분 인맥을 쌓거나 헛된 욕망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했잖아요. 꼭 완벽한 화장에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으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일국의 영부인이라면 단아함이 있어야 됩니다. 최고위공직자의 배우자라면 마음가짐과 외모에 있어서 단아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합니다.
사람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공개된 영상을 찍을 때 의도적으로 김건희가 착용한 '그라프 목걸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이웃 엄마들이 빌려준 거라고 얘기하잖아요. 저한테 한 거짓말을 포함해서 목걸이에 대해 거짓말을 여덟 번 했습니다. 결국 특검에서 김건희가 통일교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인정을 했잖아요. 거짓말을 너무나 진지하게 하니까 상대방들은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심리학 쪽이나 정신의학과 쪽에서 김건희 정신세계를 다루는 특별한 연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기억나는 다른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통으로 돼 있는 천정에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더라고요. 놀라서 뭐냐고 물어봤더니 장마 때 비가 새서 그렇다고 했어요. 실제로 서초동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무속연구자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무속을 믿는 사람들이나 무속인들은 신령의 기운을 통하게 하거나 막힌 기운을 뚫어 주는 의미로 굿당이나 천정에 '신문(神門)'이라는 구멍을 뚫는다고 합니다. 혼령이 굴뚝으로 들어와서 부뚜막을 통해 아궁이로 나와서 점괘를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혼령이 나갈 때도 아궁이와 부뚜막을 통해 굴뚝으로 나가고요. 요즘은 현대적 건축물이 많아져 천정에 구멍을 뚫는 일은 없지만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일부러 구멍을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좀 웃기는 얘긴데, (대통령실) 제2부속실이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 영부인이 품위 없게 행동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김건희는 제가 가면 항상 직원들한테 다방도 아닌데 '목사님 쌍화차 드려라'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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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김건희는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300만 원 상당의 디올(Dior) 명품 파우치를 선물 받았다. 김건희가 받은 쇼핑백에 디올 글자가 보인다. 2023.11.28. 서울의 소리 영상 갈무리
-몰래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좁쌀보다도 작은 렌즈가 달린 손목시계로 촬영을 했는데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 촬영을 하기가 힘들어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면담 자리에는 김건희와 저 그리고 비서관 두 명도 함께 있었고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촬영까지 해야 했기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날 김건희가 손목시계를 차고 나왔는데 단순한 악세사리인 줄 알았는데 그 시계가 바로 서희건설에서 받은 '바쉐린 콘스탄틴' 시계였어요. 제가 그 영상을 찍은 시간이 오후 3시 5분인데 김건희의 시계는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비싼 시계는 원래 과시하기 위해 차는 거라서 안 가는 시계를 찬다고 들었어요."
건진법사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김대남 사건
김건희 '프로포폴' 투약 여부 확인은 검·경 몫
-영국 BBC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제의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김건희 주변에) 백재권, 천공, 건진법사, 남산 도깨비, 숟가락 도사 등 주위에 셀 수 없이 많은 역술인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서울의 소리>에 출연해서 '윤석열 정권의 무속 열전(列傳)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한편 만들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어느 정당 대변인께서 저에게 급히 연락을 해와 '영국 BBC 다큐멘터리에서 무속과 관련해 최 목사님과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이 왔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병원에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기다리던 상황이라 거절했습니다. 그때는 못했지만 취재를 많이 해 놓았기 때문에 언젠가 반드시 만들겁니다."
-건진법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작은 단서가 마침내 김대남 녹취록 사건이 되었다면서요?
"어느 날 건진법사가 이권사업에 개입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심층취재하는 도중에 취재 대상들과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대통령실 초청을 받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 앉아서 찍은 사진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봉사했던 사람들과 보수 매체 유튜버들을 초청해서 기념품을 주고 사진을 찍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일식집에서 채집한 영상자료를 이명수 기자에게 넘겨줬고 그 후 이 기자가 심층 취재해 보니 그 일을 담당했던 용산 대통령실의 담당자가 바로 김대남 행정관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기자의 끈질긴 취재의 결과로 녹취록이 폭로가 된 것이지요.
"
-천공도 만나셨죠?
"건진법사가 김건희의 직접 주문을 받아 일하는 실세라면 천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돋보이려고 충성하려는 사람입니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대선 과정에서 천공을 접촉하고 공부를 한 것도 확인됐는데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그다지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했어요. 스스로 떠들어 자신들의 몸값을 높인 거죠. 윤석열과 김건희는 종교가 아니라 돈에 관심이 있는데 통일교나 서희건설 등 기업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능력이 천공에게는 없었던거죠.
천공도 사실은 통일교 본부(가평 천정궁)에 가서 통일교 산하 재단 이사장과 만난 사진도 공개가 됐어요. 천공은 이미 10년 전에 박근혜한테 접근한 적이 있었는데 딱 한 번 만나긴 했구요. 반기문한테도 접근을 했었는데 대권 도전과정에서 중도 하차를 하는 바람에 천공의 꿈이 무산됐죠. 그러고는 드디어 윤석열과 김건희가 걸려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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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여사가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9.24. 연합뉴스
-여러 가지 특검 사안 중 꼭 밝혀져야 할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마약 사건이죠. 정부 당국과 행안부 등에서는 백해룡 경정을 총경으로 진급시키고 직접 수사팀을 꾸려 전천후 수사를 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경정을 좌천시키고 아무 일도 못 하게 한 것은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어느 누가 사건을 덮고 수사를 못 하게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아울러 수천억 원의 돈이 오고 가는 마약거래를 어떤 세력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그리고 윤석열과 김건희가 어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밝혀야죠. 김건희 막내 동생이 말레이시아에서 마늘 같은 농산물 속에 마약을 섞어 평택항으로 가지고 왔다고 많은 유튜버들이 추론만 가지고 방송을 하던데 근거나 확증 없이 함부로 얘기하면 정말 위험합니다.
김건희 프로포폴 투약 문제도 수사를 해야 하는데 수사를 안 하고 있어요. 경찰이 관련 기관이나 고객으로 출입하는 성형외과 병원 등을 압수수색만 하면 다 드러나는데 왜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찰 조사 때 밝혔지만 주류 언론사 기자들 중에는 김건희 프로포폴 투약 혐의만을 집중 취재한 기자들도 있어요.
현재 저는 프로포폴 관련 명예훼손으로 두 건이 송치된 상태입니다. 김건희가 영부인이 되기 전 어느 병원에서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의 양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했는지 취재한 기자가 있는데 항상 저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관련된 인물을 특정하면 해고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공개를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취재 과정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서 더 이상 진행이 안 되기도 했습니다."
출국 금지 연장에도 사건 본질 훼손될까 인내
한국 교회, 해외선교 허영보다 통일운동 해야
-출국 금지가 7번이나 연장됐다면서요?
"10월 30일 결심 공판이 있는데 아마 또 연장될 걸로 예상합니다. 지금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 병합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검찰에 송치된 4건이 있고 별도로 극우단체가 저를 고발한 건 등이 기각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건은 이재명 정부 들어서 국가보안법 사건이 기각돼 불송치됐어요. 극우단체가 사주를 받고 고발한 <TV조선> 사건도 기각이 돼 불송치됐습니다."
-가장 속상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말할 기회가 올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무언가를 폭로하거나 얘기를 하게 되면 디올 백 사건의 본질 자체가 훼손될 염려가 있어서 참고 있어요. 윤석열과 김건희가 제대로 수사받고 감옥에 가고 마무리가 되면 그때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응원하는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기독교를 뜻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단어는 저항하라는 뜻입니다. 저항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고 저항을 함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인격이 완성되는 겁니다. 대한민국 대다수가 저항 정신이 좀 약한 것 같습니다. 촛불 집회도 하고 있는데 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제가 말하는 저항의 본질은 자기 정신세계와 인생 가치관 모든 걸 통틀어서 저항 정신을 갖추자는 겁니다. 저항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고찰하고 점검하는 데서 시작되거든요. 저항의 깃발이 더 높아져야 대한민국이 더 발전되고 통일도 앞당겨 진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가 디올 백 사건을 폭로하니까 가장 먼저 한국 교회가 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저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속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약칭 기하성)가 교단 차원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전광훈 집단이 저를 세 번이나 고발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천공이나 건진법사 같은 사람들한테 기성 종교인들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청문회에서 했던 발언이지만 원래 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선지자와 예언자는 앞날을 점치는 게 아니라 왕이나 부자들 같은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에게 쓴소리를 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질책을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 목사들은 하나의 카르텔이 형성돼 섬김의 위치가 아니라 지배하고 통치하는 위치가 되니까 부패한 겁니다. 전광훈이나 손현보 같은 자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자정 능력도 없는 한국 교회는 이제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 들어야 되고 새롭게 거듭난 기독교가 태동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많은 인적 자원과 재정 자원을 가지고 해외 선교나 국제 선교를 하는 허영을 떨게 아니라 통일에 앞장섰다면 벌써 통일이 됐을 겁니다. 오히려 개신교가 북한을 적대시하고 반통일 세력이 됐습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통일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종북타령에서 벗어나 통일된 국가에서는 어떤 교회가 돼야 하는지 모두가 힘을 합해 '디자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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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4일 김건희씨 스토킹 혐의로 서초경찰서 출두 인터뷰 모습. 2025.09.20.사진제공 최재영 목사
인터뷰 말미에 최 목사는 기득권이 된 한국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최 목사는 "대통령·영부인이 되면 안 될 사람이 검찰 간부 시절부터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후원과 협찬의 명목으로 불법적 이익을 취한 리스트가 이미 언론에 공개가 되었는데도 수구 기득권 언론들이 오히려 그들과 협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디올 백을 폭로했다"며 "오죽하면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서 '나는 재미교포다. 재미교포인 내가 봐도 윤석열과 김건희의 부정부패가 보이는데 왜 제도권 기자들 눈에는 안 보이냐?'고 책망을 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언론의 사명과 역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건데 오히려 권력의 애완견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저는 오늘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의 미래를 논의할 이 유엔총회에서, 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힙니다."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이라는 한반도의 새 시대를 향해, 그리고 '함께하는 더 나은 미래'(Better Together)의 새 길을 향해, 우리 대한민국이 맨 앞에서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5.9.24 연합뉴스
이재명, 유엔총회서 '민주 대한민국 복귀' 선언
"내란의 어둠 맞서 대한국민 '빛의 혁명' 이뤄"
제80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행한 20여 분간의 기조연설의 '핵심'으로 청중의 박수를 받은 대목들이다. 첫 번째는 12.3 친위쿠데타를 이겨내고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한 것이고, 두 번째는 지난 8.15 광복절 80주년 경축사의 대북 3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며, 세 번째는 북한과 국제사회와 '더불어' 한반도와 세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민주 대한민국이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약속과 다짐이다.
먼저 이 대통령은 식민 지배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거쳐온 지난 80년의 대한민국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됐다"라고 회고한 뒤 "한때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기에 처했지만, 대한민국은 그때마다 불굴의 저력으로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임 윤석열 수구보수 정권의 친위쿠데타를 소환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국민들의 강렬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었다.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었다"라고 역설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피는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란다"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말을 인용한 이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면서 '민주주의 선도 국가' 역할을 자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5.9.24 연합뉴스
"자유·인권 수호" 글로벌 책임 강국 자임
'팔 국가 승인' 유보…민주 대한민국 '한계'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방안으로 '다자주의적 협력'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제안한 뒤 "대한민국은 유엔이 표방하는 자유와 인권, 포용과 연대의 가치를 굳건하게 수호하는 글로벌 책임 강국의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권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또 주도해 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유엔 무대에 데뷔한 이 대통령은 이렇듯 민주 대한민국의 복귀 선언, 민주주의 선도 국가와 자유·인권을 수호하는 글로벌 책임강국 자임, 인권 존중의 가치 실현을 위한 다자협력 강화와 주도 등을 역설했지만, 한국이 프랑스와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과는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의식해 현시기 인류 최악의 고통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고 '유보'에 그침으로써 복귀한 민주 대한민국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 기조와 충돌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자격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고위급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국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열망을 깊이 이해한다...우리는 두 국가 해법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유일한 실행 가능한 경로라고 생각한다"라면서 "한국은 두 국가 해법 실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시점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뉴욕 존 F.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미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2025. 09. 23. [AP=연합뉴스]
'E.N.D' 구상 통해 평화공존·공동성장
남북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3단계'
다음 키워드는 남북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이었다. 무너진 남북 간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의 자세를 그 첫걸음으로 규정한 이 대통령은 △ 상대 체제를 존중하고 △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 일체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다는 대북 3원칙을 재확인했다. 취임 직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선제적 조치를 거론한 이 대통령은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앞으로 우리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의 길을 일관되게 모색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틀 전인 2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을 통해 "흡수통일 야망에선 오히려 반공화국 정책을 국시로 정했던 이전의 악질 '보수'정권들을 무색케 할 정도다"라며 "민주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도 '달라진 게 없다'고 비난하고 "한국과는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이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 △ '교류(Exchange) △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3단계 'E.N.D' 이니셔티브(구상)를 제시했다. 그는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해야 한다"면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반도와 주변의 정세추이를 엄정히 분석하며 공화국정부의 원칙적인 대미·대한 입장을 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5.9.22 연합뉴스
"북미 관계 정상화 노력 적극 지지, 협력"
한반도 평화 '페이스메이커' 역할 재확인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남북 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해 8.25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가 되어 달라면서 자임했던 '페이스메이커'(조력자) 역할을 다시 강조했다. 당시 트럼프가 '화답'한 데다가 김정은 또한 트럼프에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면서 비핵화 목표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 용의를 밝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라면서 '일단'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한 △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 축소의 과정을 거쳐 △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자주통일평화연대 주최로 한미일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5.9.15 연합뉴스
하지만,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김정은이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핵화 절대 불가'와 함께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교전 국가'로 재차 규정해 전망은 밝지 않다.
그리고 남북 관계와 비핵화에 대한 이런 이 대통령의 연설 기조와는 달리 조현 외교부 장관은 22일 뉴욕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뒤 △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DPRK)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대한 대북 제재 체제 유지,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 증가하는 북한-러시아 군사협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 3자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의 정기적 시행을 포함해 강력한 안보협력 증진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참석,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9.23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유엔총회 연설과 한미일 외교 성명 '엇박자'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 재검토 고민 필요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전인 지난 4월 3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가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채택한 공동성명과 비교해 보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문구가 들어가고, "북한 내에서, 북한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중대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빠진 반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려 표명은 그대로고, 3자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의 정기적 시행은 추가로 명시하는 등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그 이전과 '달라진 게 없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김정은이 주장하는 핵보유 논리의 '근거'가 날로 강화되는 핵전력을 포함한 한미, 한미일 연합군사훈련 대응에 있는 만큼,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이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하지 않고는 남북 대화나 북미 대화의 재개는 당분간 어렵거나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연설에서 김정은은 "미한, 미일 군사동맹, 미일한 3각 군사 공조 체제가 보다 공격적이고 침략적 실체로 변이"되었다면서 "예전엔 3월과 8월 두 차례 진행됐던 미한의 대규모 연합훈련이 지금은 연이은 양자, 다자 합동군사연습과 잦은 전략자산 투입으로 "지속적이며 만성적인 정세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극단적 남북 군사 대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이재명 정부는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중단을 넘어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스틸컷.
이 대통령은 "국경과 언어, 문화적 차이를 넘어 K-컬처가 전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K-컬처의 성공과 확산은 모든 배경의 차이를 넘어 인류 보편의 공감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면서 "평화란 단순히 무력 충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들었던 오색 빛 응원봉처럼, 국제사회와 유엔이 인류의 미래를 밝힐 희망의 등불을 함께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아직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남은 가족들이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지방세연구원에서 벌어진 직장내괴롭힘, 갑질 등은 너무나도 끔찍하여 아직 어린 말단사원을 삶의 끝으로 몰았다고 생각합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이 잘못된 것들이 바로 잡히고, 지방세연구원이 꼭 일하기 좋은 곳, 또 청렴한 곳으로 꼭 거듭나고 가해자들이 서둘러 적합한 처벌을 받기를 원합니다." - 지난 10일 숨진 한국지방세연구원 직원 A씨의 형.
한국지방세연구원에서 근무하던 29살 A씨가 직장내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다 세상을 등진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이 '특별근로감독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고인이 생전 상급자의 폭언에 시달리는가 하면, 연구자 평가점수 조작 의혹을 공론화해 "기관의 적"으로 몰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최근 3년 입사자 86명 중 33명이 퇴사하고, 지난 1년여 간 회사와 노동청에 22건의 직장내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는 등 연구원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A씨 유족과 공공연구노조 등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지방세연구원에서 일하던 29세 청년 노동자가 지나 10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며 "고인은 2023년 9월 입사한 후 직속 상사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3월 직장내괴롭힘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괴롭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연구원 간부들이 특정 연구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평가 점수를 조작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A씨는 공론화를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괴롭힘 가해자와 비리 의혹 당사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어려움에 처했다.
참석자들은 그 과정에서 "연구원의 대응은 처참했다"며 "부정 평가 의혹 피해 연구자들이 노동청에 제기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돼 시정조치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따르지 않았다. 비리 의혹으로 보직 해임됐던 간부들도 연구원의 부실한 대응 속에 노동위원회 구제를 받아 돌아왔다"고 했다.
아울러 연구원에서 "2022년 이후 입사자 86명 중 33명이 3년도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계약만료로 퇴사한 인원까지 합하면 47명이 떠났다"며 "지난 1년여 간 22건의 직장내괴롭힘 신고가 있었다"고 했다. 연구원의 조직문화로 어려움을 겪은 이가 A씨만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고용노동부는 연구원 내에서 벌어진 직장내괴롭힘과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 즉각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며 "고인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다 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A씨의 동료 B씨는 "고인은 정말 밝고 생기있는 신입직원이었고 어디 있어도 존재감 있고 솔직했던 동료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였던 말단 직원인 고인을 기관의 적으로 간주"했다며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정확한 처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마정화 공공연구노조 한국지방세연구원지부장도 "부디 관계기관이 명명백백히 진상을 규명하고 진실이 밝혀져 잘잘못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묻고, 고인의 원통함을 풀게 하며,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도움을 간절히 구한다"고 호소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난 2024년 2월 한국지방세연구원 윤리헌장 선포식. 한국지방세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유엔 연설 평가는? “이재명 대통령 연설은 유엔 정신에 더 가까웠다. 다만 비핵화 대신 ‘평화’에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것”
■대미 대응 기조 “미국 의존을 ‘끊는’ 게 아니라, 전적인 의존을 줄이는 다변화가 핵심—인도·CPTPP·한중일 FTA 같은 우회·연결 전략이 필요”
■트럼프 시대의 관세·동맹수탈 “바이든도 ‘중산층 외교’를 내세웠듯 미국 내 구조 변화가 근저에 있다. 트럼프는 그 흐름을 더 거칠게 밀어붙인다”
■비핵화 프레임 “북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실상 핵보유국 현실을 인정하되, 합법화는 아니다—위험을 줄이는 관리가 우선”
■북미/남북 대화의 전제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가 대화의 선결 목표가 아니다’는 신호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그나마 트럼프가 가장 가능성”
■동맹 현대화 vs 평화공존 “두 과제는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한국형 ‘현대화’와 미측 ‘전략적 유연성’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김준 기자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 이제는 핵 위협을 낮추는 ‘위험관리’와 단계적 대화가 현실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 “유엔의 본령인 평화에 가까웠다. 다만 비핵화보다 ‘평화’에 더 방점을 찍었으면 했다”고 평가했다.
대미 전략과 관련해선 “미국을 끊자는 게 아니라 전적인 의존을 줄이는 다변화가 핵심”이라며 인도·CPTPP·한중일 FTA 등 우회·연결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으로 곧장 기울면 전선이 만들어진다. 일본·인도 등으로 연결망을 넓혀 우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폭탄·동맹수탈’로 상징되는 트럼프 시대 질서에 대해선 “바이든의 ‘중산층 외교’에서도 보이듯, 미국 내 구조 변화가 근저에 있다. 트럼프는 그 기류를 더 거칠게 밀어붙인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미국 제조업 부활은 신기루에 가깝고, 관세 정책도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준 기자
한반도 평화 구도와 관련해 그는 “국제사회가 북의 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 곧 합법화는 아니다. 위험을 낮추는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미국이 ‘비핵화 선결’ 프레임을 내려놓는 신호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그나마 트럼프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한 이른바 ‘동맹 현대화’와 ‘평화공존’ 국정과제의 충돌에 대해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미측의 현대화와, 한반도 방위 중심의 한국형 현대화는 다르다. 두 과제는 구조적으로 긴장한다”고 지적했다.
ⓒ김준 기자
Q.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 어떻게 보셨습니까?
A.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은 ‘진영’보다 유엔의 본령인 평화에 방점을 둔 점이 긍정적입니다. 윤석열 정부 때의 진영 구도와 비교하면 훨씬 유엔다운 목소리였다는 인상이에요. 다만 저는 이번만큼은 비핵화 문구를 과감히 빼고 ‘평화·완화’에 집중했으면 더 응집력 있는 메시지가 됐다고 봅니다. 실제 외교 라인의 ‘비핵화 문구 넣기’ 압박을 이기지 못한 대목이 아쉽습니다.”
Q. 조지아주 구금 사태에도 정부가 ‘대사 초치’나 ‘대미 투자 보류’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A. “한미관계가 상호주의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상식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관계였다면 취했을 조치를 미국 앞에서는 주저하죠. ‘미국 없으면 당장 흔들린다’는 공포 마케팅이 정책 판단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NSC(안보실)로 과도하게 쏠린 구조라,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이 약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미 메시지가 더 보수적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어요.”
Q. ‘관세폭탄·동맹수탈’은 트럼프 개인의 현상입니까, 미국 패권 전략의 변화입니까?
A. “둘 다입니다. 바이든의 ‘중산층 외교’ 역시 내부 경제·정체성 정치가 만든 구조적 흐름 위에 있어요. 트럼프는 그 흐름을 거래주의·신고립주의 방식으로 훨씬 거칠게 밀어붙일 뿐입니다.”
“트럼프의 관세정치는 동맹을 압박해 제도화된 부담 분담을 끌어내는 수단이에요. 필요하다면 ‘아시아는 중국에, 유럽은 러시아에’까지 상정하는 냉혹한 거래 발상도 읽힙니다. 그러니 한국은 구조적 변화를 전제로 한 대응을 설계해야 합니다.”
Q. 미국 의존을 줄이자니 제재 보복이 걱정됩니다. 해법은?
A. “핵심은 ‘끊기’가 아니라 의존도를 줄이는 다변화입니다. 바로 중국으로 기울기보다 일본·인도 등과 연결을 넓혀 우회로를 만들고, 중장기적으로 CPTPP·한중일 FTA를 복원·진입하는 게 현실적 경로예요.”
“동시에 공급망에서 다른 입장을 낼 수 있는 파트너(한국·일본·중국·독일)와 작은 지렛대를 많이 만들어 두어야, 미국발 규범 변경 충격을 분산할 수 있습니다.”
Q. ‘동맹은 안보, 미국은 경제에서의 교전상대’라는 모순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A. “지금의 동맹 운용은 한반도 평화와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한국형 동맹 현대화’—즉 한반도 방위 중심, 대만·원거리 분쟁 가담 배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미측이 말하는 **‘전략적 유연성’(주한미군 역외 운용)**과는 선을 긋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이재명 정부가 ‘현대화’라는 동일한 간판 아래 한국 버전과 미국 버전이 다르다는 점을 제도화하려 한다고 봅니다. 전작권 환수·한반도 방위 책임 명확화가 그 골자죠.”
Q. 북미(조미) 대화, 가능합니까? 전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미국이 ‘비핵화 선결’을 대화의 문턱에서 잠시 치우는 신호가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그 카드를 트럼프가 가장 낼 가능성이 커요. 다만 국내 정치·안보 관료조직의 거센 반발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릅니다.”
“에이펙 정상외교와 같은 단기 이벤트에서 극적 돌파를 기대하긴 어렵고, **‘장소·형식에 구애 없는 저강도 접촉’**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게 현실적인 순서라고 봅니다.”
Q. ‘비핵화 목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A. “북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그 사실을 ‘합법화’와 구분해 위험을 줄이는 관리로 전환해야 합니다. 긴장이 높을수록 핵은 더 고도화됩니다. 그러니 지금은 ‘완전 폐기’가 아니라 위험도 낮추기·검증 가능성 넓히기가 우선이에요.”
“국제사회가 사실상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지, 법적 인정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런 현실 인식이 있어야 대화 테이블이 깔립니다.”
Q. 이재명 정부의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110)과 ‘평화공존’(114)은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A. “두 과제는 구조적으로 긴장합니다. 그래서 **한국형 현대화(한반도 방위 중심)**와 **미국형 현대화(전략적 유연성·역외 연루)**를 명확히 구획하고, 제도 설계에서 이견을 관리해야 합니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가 지향한 상호운용성·지휘체계 일치가 과도해지면 평화공존 의제와 충돌할 수 있어요.”
Q. MAGA로 대표되는 극우의 준동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한국의 대응은?
A. “MAGA는 국제협력 질서를 부정하고 규칙을 바꾸려는 에너지입니다. 미국 패권의 ‘파편화’와 맞물려 국내 정체성 정치가 외교를 밀어붙이고 있죠. 이런 파고 속에서 한국이 할 일은 일방 편승이 아니라 ‘연결과 다변화’로 지렛대를 쌓는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기자말]
"모든 인간은 섬이다. 하지만, 분명 어떤 이들은 수면 아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영화 <어바웃 어 보이> 윌의 대사 中
"누구도 홀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대륙의 일부다"
-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中
'인간 = 섬'이라는 은유를 흔히 접한다. 너무 익숙해서인지 우리가 섬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자주 빠진다.
섬은 한마디로 '물'에 둘러싸인 '뭍'이다. 국제 기준에 의하면 자연으로 형성된 육지이되,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만조 시 수면 위에 있는 땅.
육지에 사는 이들에게 섬은 먼 존재다. 일단 물리적으로 그렇다. 대도시의 지하철처럼 원하는 일정의 출발 도착을 기대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여유가, 육지 사람에겐 그만큼 더 요구된다.
백령도 취재 일정에 맞춰 예매해 둔 배편이 안개로 취소되어 출발이 하루 미뤄졌다. 다음날 인천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4시간 30분 만에 백령도에 도착했다.
어민들의 우스갯소리 중에 "백령도에서 인천항까지 여객선으로 4시간 걸리지만, 백령도에서 북한까지는 통통배로 30분이면 간다"는 말이 있다. 인천과 백령도의 거리가 230km, 백령도와 북한의 거리가 15km임을 감안할 때, 근거 있는 얘기다. NLL이 코앞인 백령도에 도착하고 보니, 웃음 뒤에 다소 서늘함이 남는 농담이었다.
NLL(Northern Limit Line)은 다른 말로 북방한계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그어진, 남과 북의 경계선이다.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황해도 지역의 개략적 중간선을 기준으로 구불구불 그어진 선은 서해로 갈수록 북상한다. 그만큼 백령도는 북한과 가깝다.
멀리 응시하면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땅, 종종 출몰하는 중국 어선, 해병대가 주둔해있어 곳곳에 보이는 옹벽과 철책 등.... 낯선 풍경에 이방인은 긴장할지 몰라도, 섬의 일상은 아랑곳없이 흐른다.
백령도를 둘러싼 바다는 서해. 국제사회에선 '황해'로 통한다. 중국과 한반도에 둘러싸인 황해에는 함부로 경계를 넘어선 안 될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와 무관하게 황해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과 뭍을 오가는 생명체가 있다.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해양보호생물, 깃대종. 주어진 타이틀만 몇 가지인, 점박이물범이다.
오랜 옛날, 백령도에서 점박이물범은 물개, 바다표범 등으로 잘못 불리기도 했다. 물범과 물개는 지느러미(鰭)가 다리(脚) 역할을 하는 '기각류(鰭脚類)'라는 면에선 공통점이 있지만, 형태도 습성도 전혀 다른 별개의 종이다.
▲점박이물범. 앞지느러미 발을 활발히 사용하는 물개와 달리, 물범의 앞지느러미 발은 매우 짧아서 육상에서 이동 시 배로 기어가듯 움직인다.인천녹색연합
점박이물범을 보호하기 위해 2019년 백령도에 터를 잡은 시민단체가 있다. (인천녹색연합 특별기구)황해물범시민사업단. 백령도에서 박정운 단장이 활동하는 1인 단체다. '황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점박이물범의 서식 반경을 고려해 지은 이름이다.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박정운 단장. 백령도 옹진군에 자리잡은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사무실에서.정소은
얄미운 물범에서 안쓰러운 물범으로
전 세계 점박이물범 중 약 20% 정도가 백령도에 서식한다. 이들은 주로 중국 보하이(渤海) 랴오둥만(遼東灣)의 인적이 드문 단단한 유빙(流氷) 위에서 출산하고, 해빙기에는 털갈이를 마친 어린 새끼와 함께 백령도에 와서 봄-가을을 지낸다. 12월이면 번식을 위해 다시 중국으로 떠난다.
물범이 백령도에 산 지는 오래되었지만, 보호 필요성이 제기된 건 2004년부터다. 녹색연합은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실행한 현장 조사 과정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백령도 물범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백령도를 주기적으로 오가며 지역민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박정운 단장도 당시 녹색연합 소속으로, 2006년부터 점박이물범 조사 연구 활동에 참여해 왔다.
물범 서식지와 어민들의 어업 활동 구역이 겹치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물범 '보호'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물을 찢어 그 안의 물고기를 꺼내먹거나, 물질할 때 물속을 휘저어 흙탕물로 만드는 물범은 어민들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물범 보호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자'는 말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웠다. '물범이 백령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한 끝에 떠올린 것이 '생태관광' 개념이었다. 그렇게 해양생태관광 시범사업이 추진되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생태해설사 양성 과정"이었다.
참여 주민들이 1, 2, 3기까지 배출되면서 자연스레 동력이 생겼다. 심화 과정까지 마친 주민들은 이대로 멈추긴 아쉽다며 공부 모임을 만들었고, 모양새를 갖춘 활동 모임으로 지속하자는 의견이 모여, 2013년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점사모)'이 만들어졌다.
백령도에 살면서도 물범을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 어업에 손해만 끼치는 골칫거리로 여기는 사람, 얄미운 물범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사람... 물범에 대한 백령도 사람들의 인식은 대부분 무관심 혹은 부정적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생태해설사 양성 과정'과 '점사모'에 참여하면서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태를 공부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이 쌓이면서 가능해진 변화다.
2016년에는 인천녹색연합 주최로 <백령도 해양생태계 보호·수산발전을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 관계자, 어촌계, 그리고 점사모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해양 보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던 중, 어민 한 명이 물범에 관해 건의했다. "물범들이 주로 머무는 하늬바다 물범바위를 보면, 늘 비좁아서 자리다툼이 심하더라, 자리를 넓혀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백령도를 찾아오는 물범 중 절반 이상이 하늬바다의 '물범바위'를 이용한다. 폐호흡을 하는 포유류이기에, 수시로 뭍에 나와 털을 말리며 체온을 관리하는 등 휴식이 필요한데, 바위 면적(약 400㎡)은 개체 수에 비해 너무도 비좁았다. 7-10월 간조 때에는 특히 경쟁이 심해, 약하거나 어린 개체들은 밀려나기 일쑤였다.
해당 의견을 낸 어민은 점사모 회원이었다. 물범 서식지와 어업구역이 겹치는 일종의 경쟁 관계이지만, 그만큼 물범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어민들이다. 바다에서 늘 봐왔고, 점사모에서 공부하며 활동한 것이 더해져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날 점사모 회원들은 "자연석을 쌓고, 그 아래에 인공어초를 조성해 물고기들이 서식하게 함으로써 물범으로 인한 어망 훼손도 줄여보자"는 아이디어를 함께 제안했다. 어민의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하늬바다 물범바위 인근에 '인공쉼터 조성' 공사에 착수, 2018년 11월 완공되었다. 어촌계 주민, 행정, 환경단체 모두 함께 물범과 지역민의 상생 방안을 고민해 이뤄낸 첫 번째 성과였다.
▲백령도에서 점박이물범이 주로 이용하는 바위는 두무진 물범바위, 하늬바다 물범바위, 연봉바위 등 3곳이었다. 여기에 2018년 11월 완공된 하늬바다 인공쉼터가 추가된 것이다. 크기는 하늬바다 물범바위와 유사한 350㎡(20m×17.5m)다.인천녹색연합
이게 지역의 힘이구나
인공쉼터가 착공될 때 점사모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완공되고 나니 기대감은 압박감으로 바뀌었다. 이듬해 중국에서 돌아온 물범들이 낯선 인공쉼터를 보면 "어, 이건 뭐지?" 싶을 텐데, 과연 주민들의 바람대로 그곳을 잘 이용해 줄까? 국가 예산으로 만든 구조물인 만큼, 책임과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야생동물의 행동을 인간이 정확히 예측할 순 없기에, 할 수 있는 건 '관찰' 뿐이었다. 하지만, 생업이 바쁜 주민들이 물범 관찰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누군가 하늬바다를 계속 지켜보면서 모니터링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점사모 회원 중 한 명이 '끝섬 전망대'에 자신의 지인이 근무하고 있다는 걸 문득 떠올렸다. 하늬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였다.
"점사모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서 그분께 인공쉼터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해 드렸어요. 마침, 회원 중 한 분과 아는 사이셔서 어렵지 않게 섭외할 수 있었죠. 그날 이후 그분이 인공쉼터 상황을 모니터링해 주셨고, 점사모 카톡방에 수시로 공유해 주셨어요. 그때 '이게 지역의 힘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렇게 박정운 단장은 지역공동체의 가능성을 실감했다. 그 일을 계기로 점사모 회원들도 물범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주는 어렵지만 주 1회씩이라도 해보자'며 조를 나누어 일정을 짜서 움직였고, 점차 횟수를 늘려갔다.
단지 '지켜보는' 정도로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박 단장은 회원들에게 모니터링 방법을 알려주며 함께 기록을 쌓아갔다. 날짜, 장소, 관찰자, 물때 등... 세부 항목별로 기록하는 방법을 익혔다. '관찰 장비가 있으면 훨씬 정확한 기록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서 지원사업으로 비용을 마련해 망원경도 장만했다.
점사모 회원들의 연령대는 60-70대가 대부분이기에 장비를 다루는 것에 서툴 수밖에 없다. '나이가 있다 보니 뭘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지만 이젠 제법 익숙해진 편'이라며, 점사모 회장을 맡고 있는 문영희씨는 말한다.
"망원경 조작하는 법이랑, 삼각대에 고정하는 법도 다 같이 배웠어요. 삼각대에 장비를 올려놓으면서 우리끼리 "딸깍 소리가 꼭 나야 해, 단장님이 딸깍 소리가 나야 제대로 고정된 거라고 그랬어!" 하면서 서로 가르쳐주고, 장비도 엄청 조심스럽게 다뤄요.(웃음) 이제는 우리끼리 조별로 나가서 모니터링도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좌)모니터링 중인 점사모 회원들, (가운데)점사모에서 상세하게 작성한 모니터링 기록지 (우)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간의 기록을 모아 엮어낸 '주민 모니터링 종합보고서'인천녹색연합
백령도 주민들은 점사모 활동을 통해 우리 지역의 데이터베이스를 스스로 생산, 구축, 활용하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박 단장은 그러한 '지역 자산' 구축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절감해 왔다.
"전문가들이 지역에 들어와 조사를 하고 나가면, 자료는 그들의 보고서에만 남고 정작 지역 안으로는 공유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백령도에 굉장히 많은 전문가들이 다녀가지만, 지역 내에 어떤 '거점'이 없으면 그 많은 정보는 계속 밖으로만 흘러 나가고 안으로는 쌓이지 못하는 구조가 되죠. 그래서 우리(주민)에게 자료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해요."
점사모 회원들이 일일 모니터링을 이어가던 어느 날, 드디어 기다리던 장면을 포착했다. 인공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물범들의 모습이었다. 완공된 다음 해 여름, 2019년 8월이었다.
물범들이 특정 바위를 이용하는 것에는 물때와 직결된 패턴이 있었다. 그동안 "인공쉼터가 생겼는데도 물범들이 전혀 이용하지 않더라"며 인공쉼터의 쓸모를 의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물때가 어긋났기에 마주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범들이 인공쉼터를 즐겨 찾는 물때는, 근처 바다에 물이 많이 차 있는 물때예요. 그런 날엔 조업하는 사람도 관광객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해변과 어느 정도 거리 확보가 되거든요. 그럴 때 물범들이 인공쉼터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거죠."
▲하늬바다 물범바위 인근에 조성된 ‘인공쉼터’에서 물범들이 휴식 중이다.인천녹색연합
박정운 단장과 점사모 회원들은 물범바위와 인공쉼터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물범바위에는 제법 나이든 물범이 주로 보이는 반면, 인공쉼터에는 어린 물범 위주로 관찰됐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물범바위는 중장년 어르신들이, 인공쉼터는 청소년 그룹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어리고 약한 개체가 기존 바위에서 밀려난 거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야생 물범이 보통 30-35년 정도 살아요. 그들이 태어나 처음 겪은 5년 사이의 기억을 떠올려볼 때, 사람들과 긴장 관계에 놓인 시기를 살아온 물범들은 인공쉼터가 낯설고 두려울 수 있어요. 반면, 작년이나 올해 태어난 어린 물범들은 사람들과의 갈등을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죠. 그저 해맑을 수 있는 거예요. "어, 여기에 바위가 있네? 저쪽엔 경쟁이 치열해서 못 가니까 여기서 쉬어야겠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어린 물범들이 인공쉼터로 많이 올라가는 것 아닐까 싶어요."
세대에 따라 서식지를 감각하는 차이는 물범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백령도에서 전쟁과 분단을 겪은 세대의 경우, 6·25 때 들었던 포 사격 소리, 해안가에 만리장성처럼 들어선 옹벽, 해변에서 지뢰 사고로 발목을 잃은 사람들....이런 기억들이 그들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 70년대 백령도에 옹벽이 들어서면서 일부 어촌계는 해체되었고, 설렘을 안고 조업을 나서던 어부는 일할 바다를 잃었다. 수많은 이들이 어부에서 농부로 정체성을 바꿔야 했다. 해당화가 잔뜩 피어있던 바다 풍경은 옹벽과 용치(龍齒)로 대체되었다.
백령도의 청소년 세대가 만난 점박이물범
점박이물범은 서식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회유성 동물'이다. 피난 간 지 몇 년이 흘러도 기어이 고향을 찾아 돌아왔던 백령도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의 백령도는 또 다른 세계다. 전쟁, 분단, 어업 활동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 세대는 백령도를, 점박이물범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을까.
백령도에는 초등학교가 2곳, 중고등학교가 각 1곳씩 있다. 그중 백령중학교에서 2016년에 "점박이물범 생태학교"가 열렸다. 그해 여름, 생태학교에 참가한 학생들은 점박이물범과의 짧고 특별한 만남을 경험했다.
2011년 제주 중문 해수욕장에서 탈진 상태로 구조된 어린 점박이물범 '복돌이'가 5년간의 회복 및 적응 훈련을 거친 후 백령도 바다에 방류되던 날이었다. 복돌이를 태운 선박에는 해수부, 연구자, 현장 관계자, 기자, 그리고 생태학교에 참가 중인 학생 십여 명이 있었다. 학생 두 명에겐 복돌이의 케이지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 맡겨졌다. 문이 열리자, 복돌이는 망설임 없이 하늬바다로 풍덩 뛰어든 후, 이내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 해, 박정운 단장에게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복돌이를 방류하던 날 함께 했던 중학생들이 진학한 백령고등학교였다. "교내에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백령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를 만들었고, 복돌이가 방류된 8월 25일을 '점박이물범의 날'로 정했다. 이후 매년 8월마다 교내 캠페인과 함께 해양쓰레기 수집·탐구 활동을 진행 중이다.
동아리가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인 <여름 생태학교>는 올해로 제10회를 맞았다. 점박이물범, 철새, 갯벌 생물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강의, 야외 탐사, 그리고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마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들로 구성되었다.
▲제10회 <여름생태학교>는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 인천녹색연합,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늘 공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백령청소년문화의집'이 주관, 인천광역시와 점사모가 후원했다. 행사 동안 동아리 학생들에게는 파트별 모둠 교사가 배정되었다. 해양 동물 전공 대학/대학원생, 그리고 후원기관인 인천광역시 해양환경과 담당 직원까지 모둠 교사로 참여, 행사가 열리는 3일 내내 학생들과 함께하며 현장 진행을 도왔다. 행사장은 가족과 친구 단위로 방문한 백령도 주민들로 가득한 축제 분위기였다. (좌측 : 야외탐사 시간에 학생들이 물범바위를 관찰 중이다. / 가운데 : 강사와 함께 갯벌 생물을 관찰 중인 학생들 / 우측 : 물범의 생태를 알기 쉽게 보드게임으로 만들어 시연 중이다)정소은
대다수의 백령도 청소년은 고교 졸업 후 진학 및 취업을 위해 육지로 떠난다. 동아리 초창기에 활동했던 중학생은 어느새 육지에서 대학생이 되었다. 그중 몇 명은 해양 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박 단장은 가끔 상상해 본다. 겨울철 중국으로 떠났던 물범들이 봄에 백령도로 돌아오듯, 도시로 떠나 해양 관련 분야에서 활약하던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물범 인공쉼터를 만들자고 건의한 어민, 학교에 물범 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는 청소년, 생태해설사 활동으로 시작했다가 공부 모임까지 만든 마을 어르신.... 모두 뜻밖의 순간에 변화를 보여준 이들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박 단장이 하늬바다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던 어느 날의 일이다. 어르신 한 분이 다가와 '혹시 뭘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냐'며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박 단장은 점박이물범을 관찰 중이라며,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시길 권했다. 그분은 백령도에 살면서도 물범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손주가 "할아버지, 물범 본 적 있어요?"하고 묻는데, 잘 몰라서 대답해 줄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박 단장은 망원경을 통해 물범의 모습을 보여드리며, 손주에게 들려주면 재미있어할 만한 정보도 알려드렸다.
"그분의 순박하신 표정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요. 그 일화를 떠올리면서, '아, 내가 이곳에서 정해진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들은 정말 곳곳에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관계라는 것, 미래세대가 중요하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용치(龍齒) 사이를 누비는 생명들, 긴장감 속 평온함
하늬바다에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용은 이빨을 드러냈다가 감추기를 되풀이한다. 용치(龍齒/Dragon's Teeth). 용의 이빨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1970-1980년 사이, 북한 선박의 접근을 막기 위해 국방부가 해변에 박아놓은 철 구조물이다. 백령도 북쪽 해안가에는 약 3m에 달하는 쇠말뚝이 수백 개씩 박혀있다.
▲서해5도 해변에만 3,000여 개의 용치가 있다. 대부분 녹슬고 쓰러지거나 파손되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일부 주민이 어업 활동 지장 및 미관상 이유로 철거를 요청한 바 있으나, 당분간은 철거 계획이 없다고 한다. 향후 국가 안보 정책에 따라 철거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사진은 하늬해변의 용치)정소은
간조가 되면, 갯벌과 용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용치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수백 대의 대포가 같은 방향을 겨누고 있는 것만 같다. 바닷물, 세월, 바람을 맞아 녹이 슬어버린 용치에, 적을 위협할 기운은 더 이상 남아있어 보이지 않았다. 다가가 들여다보니 따개비가 빼곡히 붙어있다. 그런 용치 사이를, 어민들이 분주히 누비며 조개를 캐고 있다.
인공쉼터 근처를 둥둥 떠다니는 물범들의 느린 몸짓, 용치 사이를 누비는 어민들의 부지런한 몸짓. 그들의 생명 활동이 백령도 바다의 긴장감을 완화해 주고 있었다. 과거가 어떻든, 미래가 어찌 되든, 현재는 그저 이렇게 흘러갈 뿐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바다에 이렇게 서 있다 보면, 우리가 물범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언제부턴가 물범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사람은 뭘까? 이런 느낌으로.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를 관찰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그저 이 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 경계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오거든요. 저들도 나를 보고 있고, 나도 저들을 보고 있는. 서로 궁금해하는 그런 묘한 느낌."
▲물이 빠져나간 하늬바다에서 용치 사이를 누비며 조개를 채취 중인 어민들. 양동이에는 갯벌에서 캐낸 바지락과 실조개가 가득하다.정소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이인삼각
박정운 단장이 백령도에 터를 잡고 산 지 7년이 되어간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물범 보호 활동을 위해 육지와 백령도를 오가는 건 쉽지 않았다. 2004년부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하며 십수 년 이어온 활동이지만, 단체 측에선 지속하기 어려워졌고, 큰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시기가 닥쳤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물범 이야기에 눈을 빛내기 시작한 주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온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홀로 백령도에 남았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누군가의 권유 때문도 아니었다. 지역 학생들과 주민들을 오랜 세월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약속' 같은 거였다.
백령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이전 같으면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도 쉽게 안 풀리던 일들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현장'에 사는 것의 힘을 실감했다. 동료들과 함께 오랜 세월 뿌려놨던 것들이 성과로 확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터를 잡기 전에는 쉽지 않았다. 특히 환경단체 활동가를 잘 만나주지 않던 어민들을 만나러 가야 할 땐 늘 어려웠다. 그때마다 점사모 회원들이 동행해 주었다.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에서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든든히 곁을 지켜준 덕분에, 힘든 고비들을 잘 넘겨왔다.
"주민분들이 이런 얘길 하신 적이 있어요. 단장님이 백령도에 들어와서 뭔가 하는 것 같긴 한데, 같이 뭘 하자는 말도 없고, 우리한테 뭘 하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면 같이 밥 먹고, 물범 이야기 나누고....그런 것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우리가 물범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 (웃음)"
섬사람, 육지 사람, 그리고 점박이물범, 이들에겐 서로를 관찰할 시간이 필요했고, 변화를 겪으며 성장 중이다. 어부는 어부로, 농부는 농부로, 사람은 사람으로, 청년은 청년으로, 그리고 물범은 물범으로, 서로의 정체성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조심히 지켜보며 상대에 관한 지식을 넓혀가는 것. '공존'이라는 이인삼각에서 넘어지지 않고 완주하려면 그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샌가 내 곁에 야생동물이 다가와 앉아있다면, 그 마법 같은 순간을 그저 숨죽인 채 조용히 느끼고 지나가면 되는 것이다.
▲(좌)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에서 실시한 '점박이물범 여름 정기조사(2025년 8월)'에서 포착된 어린 개체 무리가 물범바위에서 쉬고 있다. (우)점박이물범 어린 개체인천녹색연합
[참고문헌]
김준. (2023). 「섬의 권리, 지속가능한 섬을 위한 길」. 『작은 것이 아름답다』, 279, 109.(인용)
(사)녹색사회연구소. (2011). 『백령도 사람들의 점박이물범 이야기』, 서울: (사)녹색연합부설녹색사회연구소
덧붙이는 글*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에서 실시한 '점박이물범 여름 정기조사' 결과, 8월 27일 현재 백령도 연안에 머물고 있는 점박이물범 개체수가 355마리로, 어린 개체(1년생)는 최소 10마리 이상 관찰되었다. 조사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단지 개체수가 많다고 해서 긍정적이라 볼 수는 없다. 점박이물범의 서식 반경은 백령도에서 중국까지 뻗어있기 때문이다. 중국 번식지의 실태 파악이, 점박이물범 연구를 위한 한중 정부 기관 및 민간 교류 협력 재개가 시급한 이유다.
진보당이 ‘약탈적 대미 투자 저지 투쟁 주간’을 선포하고, 주한미국대사관 맞은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미국의 무리한 투자 요구에 전면적인 투쟁에 나선 것이다.
24일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앞엔 ‘미국의 약탈적 대미 투자 강요 거부한다’, ‘제2의 IMF 불러 올 3,500억 불 투자 강요 거부한다’, ‘동맹인가 날강도인가’라고 적힌 피켓들이 깔려 있었다. 위기감으로 차 있다. 하지만 우려의 외침은 울려 퍼지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탄핵과 외환위기를 언급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는데도, 어째 나라가 잠잠하다. 더 큰 스피커가 필요하다. 김 상임대표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모욕적 관계에서 공정한 협상 불가능”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김 상임대표는 약탈이라고 규정했다. 협상 과정에서의 통상적인 요구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이 아무리 과도한 요구를 강압한다고 해도, 그만큼 한국도 얻는 게 있어야 서명을 할 수 있다”면서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사항들은 한국에 이득이 될 게 없는, 심지어 한국 경제를 송두리째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은 투자금 회수 시까지 양국이 50%씩 나눠 갖고, 투자금 회수 이후엔 미국이 90% 가져가는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투자 규모와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김 상임대표는 “미국은 한국 정부가 충분히 설명하고 입장을 밝혔음에도 강압적으로 요구를 계속 들이밀고 있다”면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정도의 표현을 넘어, 한국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다 빼앗겠다는 의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지아주 구금 사태와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더 이상 정상적인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는 게 김 상임대표 시각이다. 그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외교 관계자들이 유감 표명을 했으니 사과를 한 거라고 얘기하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며 “미국 정부의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상당 기간 기획한 강제 구금이었을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할 일을 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까지 했다”고 짚었다.
이어 “굴욕적 상황을 안겨놓고 ‘더 많이 투자해라’, ‘더 많이 채용해라’, ‘기술까지 전부 다 이전해라’라고 얘기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모욕적”이라며 “이런 모욕적 관계에서 어떻게 공정한 협상이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약탈 시도는 3,500억 달러 투자 강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김 상임대표 진단이다. 그는 “미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번 협상이 마무리된다고 해서 그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일단락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로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트럼프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요구를 수용해 섣불리 갈등을 봉합해 버리려 한다면, 계속 미국에 끌려다니면서 국익이 훼손되는 상황에 내몰릴 우려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상임대표는 민간 차원의 대미 투자가 확대되는 데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으로 투자를 유인했다. 한국 주요 대기업이 호응했다. 이젠 트럼프가 관세 폭탄을 앞세워 투자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김 상임대표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울산과 같은 대규모 자동차 공단이 있는 지역의 노동자들은 큰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면서 “기업은 관세 부담을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장이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지역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을 살리려다가 노동자들을 완전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며 “기업도 지키고, 노동자들의 일터도 지키고, 우리 세금도 지켜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4일 주한미국대사관 맞은편 광화문 광장에서 ‘약탈적 대미 투자 저지 투쟁’ 농성 중인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홍희진 공동대표, 장진숙 공동대표. ⓒ진보당
“소극적 민주당 비겁…용기 있는 행동 보여야”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은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탄핵당했을 것”,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1997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우려된다”고 했다. 미국에 강경한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김 상임대표는 “(이 대통령이) 국민의 불안과 걱정을 잘 알고 있어서 성급하게 협상을 마무리 짓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뜻은 미국의 저런 무리하고 강압적인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때 발생할 치명적인 국가적 피해에 대해선 대통령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역할이 요구된다. 김 상임대표는 “많은 국민들이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왜 나라가 조용한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면서 “국민들의 어려움이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어렵게 관세 협상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국민들 말씀이 굉장히 많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의 소극적인 반응이) 미국과 맞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한다면 상황 판단을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어찌 보면 비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어제 이 대통령이 UN 연설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얘기했는데, 이런 국민들의 뜻과 의지를 믿고 정부가 당당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민주당이 보다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미국의 약탈 시도에 대해 정치권과 더불어 시민들이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약탈 시도가 3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규모 촛불집회를 촉발한 한미 FTA 쇠고기 협상보다 더 심각할 사안일 수 있다”면서 “지금은 국민들이 이재명 정부를 믿고 지켜보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거리로 나올 거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오는 26일 저녁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김 상임대표는 “뉴스를 보면서 답답했던 분들, 트럼프의 만행에 분노하는 분들이 함께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외교무대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우선 남북 교류부터 시작하는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는 길을 만들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현지시간 23일 낮 미국 뉴욕 유엔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회기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유엔 80년이 이룬 성취? 대한민국 80년 역사를 봐라"
이 대통령은 우선 유엔 창설 80주년을 축하하며 "유엔이 걸어온 지난 80년은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미래세대를 위한 길을 모색해 온 소중한 여정"이었다며 "누군가 유엔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80년 역사를 바라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유엔이 설립된 해 식민 지배에서 해방됐고 유엔의 도움으로 분단의 상흔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며 산업화를 일궈내고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며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유엔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나라"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12월 3일 일어났던 내란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한때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기에 처했지만 대한민국은 그때마다 불굴의 저력으로 일어섰다"며 "친위쿠데타로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국민의 강렬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었다며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 세계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오늘 유엔총회에서 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적대행위도 추구하지 않을 것"
이 대통령은 '민주 대한민국'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며 "취임 직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END 이니셔티브'를 새롭게 제창했다.
즉,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평화 이티셔티브가 무위를 끝나고 뒤이은 보수 정권의 대결적 자세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일단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화해와 평화로 가는 물꼬를 터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한반도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남북 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추켜세우고 자신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했던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화해 및 비핵화 과정에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측이 곧바로 일축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비핵화 집념만 털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해 북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해서도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하여,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AI, 지구적 과제 해결할 중요하고 새로운 도구"
글로벌 현안 해결과 관련 인공지능(AI) 기술의 위협과 순기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AI 시대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닌다면 기술 악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디스토피아를 맞이할 것"이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높은 생산력을 동력 삼아 혁신과 번영의 토대를 세우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유용한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24일 안보리 의장으로서 주재하는 공개토의 자리가 "AI의 책임있는 이용을 촉진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10월말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에서는 'APEC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첨단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모두를 위한 AI'의 비전이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AI가 주도할 기술혁신은 기후 위기 같은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중요하고 또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대한민국은 과학기술과 디지털 혁신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 안으로 책임감 있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여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에 동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최희덕 국가안보실 외교정책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의원,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 연합뉴스
이 대통령 첫 유엔연설 약 20분 소요... '평화' 25번, '민주주의' 12번 언급
7번째로 등장한 이 대통령의 첫 유엔연설에는 약 20분이 소요됐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 2022년에 11분, 2023년에 15분씩 걸렸던 것에 비해선 약간 길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22분과는 비슷한 길이였다.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한 만큼 이날 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이 33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했고, '평화' 25번, '민주주의' 12번 순이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외쳤고, 2023년에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홍보하며 '대한민국'을 20번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2023년에는 직접 참석해 연설을 했지만, 2024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대신 연설했다.
이날 한국 대표부 자리에는 위성락 국가안보실 실장, 임웅순 국가안보실 2차장, 차지훈 주유엔대사 등이 앉았고, 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최희덕 국가안보실 외교정책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의원,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등은 관객석에서 지켜봤다.
서방 선진국 그룹인 주요 7개국(G7)으로 보면, 미국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개국이 추가된다. 이를 주요 20개국(G20) 그룹으로 넓히면 한국이 추가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국가의 공식 승인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는 나라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하루 앞둔 22일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관련 '두 국가 해법' 실행을 논의하는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프랑스의 팔레스타인 국가 공식 승인을 선언하고 있다. 2025. 09. 22 [AFP=연합뉴스]
프랑스·영국·호주 서방국들 '팔 국가 승인'
NYT "미 동맹국들, 워싱턴과 결별 공식화"
이들과는 달리, 프랑스는 22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승인한다고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하루 앞둔 이날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팔레스타인 관련 '두 국가 해법' 실행을 논의하는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때가 왔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우리는 두 국가 해법의 가능성을 보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늘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를 포함해 안도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몰타, 모나코 6개국이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대열에 합류했으며 그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날인 21일에도 캐나다, 호주, 영국, 포르투갈이 승인을 발표했다.
2025년 4월 기준으로 이미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승인한 나라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 약 147개국이다. 이번 추가 승인국들을 포함하면 유엔 회원국의 80% 이상이 팔 국가 승인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권과 이를 옹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립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NYT는 '세계 지도자들, 미국과 이스라엘에 도전장 내밀며 팔 국가 승인'이란 기사에서 "프랑스와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워싱턴과의 결별을 공식화했다"고 논평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시티 서쪽 알-라시드 도로를 따라 가자 남부를 향해 피란길에 올랐다. 2025. 09. 22 [EPA=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선언"
산체스 "인간 존엄성 이름으로 학살 멈춰야"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에 의해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해 주민 등 6만5300명 넘게 학살됐다. 앞서 17일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인류 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담은 72쪽짜리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모든 국가가 국제법상의 의무를 다해 "제노사이드를 끝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마크롱은 이날 정상회의 연설에서 가자 전쟁 이후 '새로워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창설을 위한 틀을 제시했으며, 여기엔 가자 통치를 넘겨받을 PA 준비 작업을 도울 '국제안정화군'(ISF)의 주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팔 국가를 승인하고 이스라엘 제재에 들어간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두 국가 중 한 국가의 국민이 제노사이드의 희생양이 될 때" 두 국가 해법은 불가능하다면서 "팔레스타인 국민이 몰살당하고 있다. 이성과 국제법,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이 학살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 09. 22 [EPA=연합뉴스]
이스라엘·미국 반발 "하마스에 보상" 주장
유엔 총장 "팔 국가 지위는 팔 인민 권리"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로 뉴욕 유엔본부에 올 수 없었던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화상 연설을 통해 팔 국가를 승인해 준 프랑스 등에 감사를 표했으며, "아직 승인 안 한 국가들도 뒤를 이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에 지지를 요청했다. 알자지라는 "국제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정상회의를 보이콧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스라엘과 그의 가장 가까운 동맹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이날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는 외교가 아니며 서커스"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서방국의 팔 국가 승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대한 보상이라고 믿는다"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하마스를) 대담하게 만들고" 전쟁 종식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두 국가 해법'이 폭력 이후 평화를 향한 유일한 실현이 가능한 길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는 "하마스에 대한 보상이 아닌, (팔 인민의) 권리"라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장을 비판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은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위반 행위와 가장 최근의 카타르 공격을 포함해 아랍, 이슬람 국가들을 향해 반복적 공격"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동들은 이스라엘이 역내 및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역내 평화 노력을 훼손하는 공격적인 관행을 계속하겠다는 집요함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참석,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9.23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팔 국가 승인 '유보' 한국, 트럼프 눈치 보나?
"다른 지역 일 살필" 여유 없다는 조현 외교
국제사회의 최대 주권과 인권 관련 이슈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스탠스는 조금씩 팔레스타인 지지 쪽으로 이동하는 모양새였다. 작년 4월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관련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종전의 입장을 바꿔 찬성표를 던졌으며, 다음 달인 5월 유엔총회의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결의안에 찬성한 데 이어, 지난 12일 142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된 유엔총회의 '두 국가 해법' 지지 결의안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 공식 인정 문제에는 지금까지 '유보적'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정부 차원에서 설명한 적은 없지만, 팔 국가 승인에 완강히 반대하며 '관세 폭탄'까지 위협하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게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8월 3일 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발언이 한국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 장관은 '정책을 바꿔 팔 국가 승인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말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에 몰두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변화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취약함을 느끼고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는 사치를 누릴 수 없다"고 말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독일은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원죄'로 인해, 일본 역시 미국 눈치를 보느라 팔 국가 승인에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총회 고위급회기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대한민국은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7번째 순서로 나서서 이같이 밝히며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단계적 해법이 담긴 한반도 평화 구상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는 유엔 창설 80주년이자, 한반도 분단 80주년이다. 새로운 도전과 함께 미완의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민주 대한민국은 평화공존, 공동 성장의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며 "취임 직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한 것도 같은 이유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의 길을 일관되게 모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면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즉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굴곡진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해 왔던 불변의 교훈"이라며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다"면서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우리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5.09.24. ⓒ뉴시스
이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계기로 "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었다"며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 세계인의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피고 있는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란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밖에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당면한 공통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자주의적 접근'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문제를 겪는 모든 국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다자주의적 협력'을 이어갈 때 평화와 번영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시기일수록 유엔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더 협력하고, 더 신뢰하고, 더 굳게 손잡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다자주의적 협력의 길에 대한민국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강조해왔던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인권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또 주도해 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안보 기술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 협력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다음 달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APEC AI 이니셔티브'를 통한 AI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모두를 위한 AI'가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면서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 협력하며 전 지구적 도전을 함께 헤쳐 나가는 미래가 꿈 같은 장밋빛 전망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며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들었던 오색빛 응원봉처럼, 국제사회와 유엔이 인류의 미래를 밝힐 희망의 등불을 함께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과도 연관 있던 통일교…한 총재 구속에 일본 언론 주요 뉴스로 다뤄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5.09.23. 16:28:46 최종수정 2025.09.23. 17:18:58
일본 언론들이 한학자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 구속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통일교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사망을 계기로 정치권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일본 언론들의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23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통일교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는 한 총재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이후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2일 한 총재가 출석한 가운데 구속영장 심사를 진행하여 발부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한 총재에 대한 수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점술가인 전성배(건진법사)를 통해 시작됐다"며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점쟁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신문은 전 씨가 통일교 전 간부로부터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다는 올해 4월 한국 언론의 보도로부터 해당 수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사이인 전 씨를 통해 영국 브랜드 그라프(Graff)사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을 김 전 대표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또 지난 7월 15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전 씨의 법당에 일본 신화에서 황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모셔져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했다.
신문은 "이 교단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선에서 당선됐다"며 "교단 교인들이 2023년 3월 국민의힘 대표 선거 당시 대거 가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해 통일교가 각종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과 통일교가 연관된 '정교유착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한 총재의 구속을 상세히 보도하는 것은 통일교가 일본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통신>은 이날 한 총재의 구속을 전하면서 "이 종교단체의 큰 액수의 기부금은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자유민주당(자민당)과 의심스러운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통일교는 지난 20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현장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쓰야 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집까지 팔아 통일교에 1억 엔 (한화 약 9억 4000만 원)을 헌금한 것에 대해 반발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야마가미 씨가 아베 전 총리를 노린 이유는 아베의 집안이 예전부터 통일교와 연관됐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마가미 씨는 당초 통일교 간부를 저격하려 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지자 일본에서 통일교가 교세를 확장하게 된 배경에 아베 전 총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당시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실제 아베 전 총리 측과 통일교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70년대 통일교가 일본 자민당에 들어가면서 포교가 본격화됐고,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파벌에 속하는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아베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에 이어 아베 신조 전 총리까지 대를 이어 통일교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전 방위상의 경우 지난 2022년 통일교 관계자들을 알고 있고, 그들과 교제도 하고 있으며 선거 때도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통일교와 일본 정치권의 연계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고액 헌금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2023년 일본 문부과학성은 통일교에 대한 해산 명령을 청구했다. 이후 2025년 3월 25일 도쿄지방법원은 통일교에 해산 명령을 내렸는데, 민법상 불법 행위인 '기부 권유'를 근거로 들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통일교의 해산은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해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옴진리교와 2002년 사기 사건 등에 연루된 묘카쿠지(明覺寺)에 이어 종교단체로는 세 번째 사례였다. <요미우리신문>은 민법상 불법 행위로 해산 명령을 내린 것은 통일교가 처음이라고 전했다. 앞선 두 종교의 경우 교단 간부가 형사 사건에 연루됐었다.
통일교는 지난 4월 이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다만 일본 언론들은 법원의 해산 결정을 반영해 기사에는 '구 통일교'라고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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