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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이 대통령, 호르무즈 통항 위한 정상회의 참석…“해협 항행 자유 보장에 실질적 기여할 것”

수정 2026.04.17 23:20

영국·프랑스 등 50여개국 정상·대표와 화상회의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프랑스·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에 관한 화상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등을 위한 국제 정상회의에서 “교착 상태를 조속히 해소하고 해협의 안정을 위한 관리 메커니즘을 국제사회가 함께 모색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12분쯤 시작한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관련 국제 정상회의에서 “우리 국민들을 포함해 해협 안에 발이 묶여있는 선원들의 안전과 건강이 충분히 보장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전은수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이날 정상회의에는 주요 7개국(G7) 유럽 국가를 비롯한 49개국 정상 및 대표가 참여했다.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구 2곳도 참여했다.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은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 일본도 참석했다. 화상회의로 참석한 이 대통령은 프랑스 현지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발언이 끝난 뒤 첫 순서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공공의 자산이자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축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전 세계 에너지, 금융, 산업, 식량안보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약 70%를 수입하는 핵심 이해 당사국”이라고 밝히며 “해협 내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기여를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전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총 4분30초로, 이날 회의는 약 90분간 진행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프랑스·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에 관한 화상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날 회의에서 정상들은 호르무즈 해협 관련 상황 평가를 공유하고, 종전 후 해협 내 항행의 자유와 안전을 확보하고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외교적· 군사적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국제적 노력, 선원 안전 및 선박 보호, 전쟁 종식 후 항행 안전보장을 위한 실질적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전 대변인은 “이번 화상 정상회의는 중동 지역 평화를 촉구하고 전쟁 종식 이후 호르무즈 해협 내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자유로운 국제 통항 원칙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주도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일상이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정상회의는 항행의 자유를 회복하고 신속한 해협의 개방 목표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모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종전 후 필요한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영국은 외교 채널, 프랑스는 군사 채널 협의를 주도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4일 회의 개최 사실을 알리며 “비교전국들 중에서 안보 여건이 허락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다자적이고 순수하게 방어적인 임무를 우리와 함께할 준비가 된 국가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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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고도 현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psyt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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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온갖 전쟁범죄로 얼룩진 이스라엘

파괴, 봉쇄. 강제이주, 감금, 차별, 집단학살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범죄자 ICC 체포 대상

‘주권과 인권은 존중돼야’ 지적 무엇이 틀렸나

도덕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국익에도 부합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X에 게시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며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전쟁 상황에서도 민간인 살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용납할 수 없으며 강력한 규탄을 받을 만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해당 발언이 홀로코스트를 가볍게 만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이러한 반발은 핵심을 빗나간 것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논리적 설득력도 가질 수 없는 궤변이다. 과거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현재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나는 과거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고문해도 괜찮고, 나의 고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내가 당한 고통을 경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역사적 고통은 기억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잘못을 면제해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을 막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귀를 닫고 있는 이스라엘의 태도에 실망을 표하며, “각국의 주권과 보편적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역지사지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도 적용된다”며 “내 생명과 재산만큼 타인의 생명과 재산도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반드시 공유하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강제 이주, 학살, 점령, 봉쇄… 이스라엘의 반인권 범죄

이스라엘을 둘러싼 인권 혹은 전쟁범죄 논란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인권 행위와 전쟁범죄를 저질러왔고 그 과정에서 국제법,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해왔다. 다음은 국제사회에 의해서 확인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반인권 행위를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군의 공격 개시 이후 두 달여 만에 철저히 파괴된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 2023년 12. 05. 신화=연합뉴스

1948년, 나크바(Nakba). 유엔 자료에 의하면 1948년 전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대규모로 축출·이주·재산 박탈을 겪었다. 이 사건은 이후의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와 귀환권 논쟁의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1956년, 카프르 카심 학살. 이스라엘 국경 경찰이 통행금지 사실을 알지 못한 아랍 주민들을 사살한 사건이다. 훗날 이스라엘 대통령도 이를 국가 차원의 잘못으로 사과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뒤 서안·가자·동예루살렘 점령이 시작됐고, 이후 정착촌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는 이 점령지 내 이스라엘 민간인 정착촌의 설치·확대를 제4제네바협약 49조 6항에 어긋나는 것으로 규정했다.

1982, 사브라·샤틸라 학살. 이 학살 자체는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가 저질렀지만,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의 카한 위원회가 이스라엘이 이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간접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고, 아리엘 샤론의 개인적 책임도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1987~1993, 제1차 인티파다 기간. 유엔은 이 시기 이스라엘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았다.

2000, ‘10월 사건’. 이스라엘의 아랍 시민들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후 오르 위원회(2000년에 이스라엘이 아랍 시민 시위 사망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 조사위원회)는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과 국가의 오랜 차별·방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2002, 제닌 난민캠프 공세. 휴먼라이츠워치는 제닌 공세에서 의료접근 차단, 구급차 제한, 민간인 보호 실패 등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다만 당시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04. ICJ(국제사법재판소)는 분리장벽과 그것에 수반되는 체제가 불법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이 의견은 점령지 내의 장벽 건설과 관련 조치가 국제법에 반한다고 본 핵심 문서이다.

2007, 가자 봉쇄 강화.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6월 이후 강화된 봉쇄가 가자를 인도주의 위기로 몰아넣었고, 주민들을 사실상 가둬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가자의 16년 봉쇄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2008~2009, 가자 ‘캐스트 리드(Operation Cast Lead)’. 앰네스티와 유엔 조사단은 민간인 대량 희생, 주택·기반시설 파괴, 전쟁범죄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엔 골드스톤 보고서는 양측 모두의 위반을 다뤘지만, 특히 이스라엘군의 행위에 대해 중대한 국제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네타냐후는 120여개 ICC 회원국의 체포 대상 전쟁범죄자

2010, 마비 마르마라/가자 구호선단 급습. ICRC에 의하면 이스라엘군이 구호선단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9명이 사망했고 국제적 비난이 뒤따랐다.

2014, 가자 전쟁. UN 조사위원회와 로이터는 이스라엘이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2018, 가자 ‘귀환 대행진’ 시위. UN 조사와 로이터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군은 비무장 시위대에 실탄을 사용하여 다수의 사망·부상을 냈는데, 이는 전쟁범죄 및 반인도범죄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21, 셰이크 자라 강제퇴거 시도와 5월 가자 공습.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특별보고관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가족 퇴거 시도가 강제이주 금지 원칙에 배치된다고 지적했고, 같은 해의 가자 폭격으로 25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HRW는 2021년 보고서에서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아파르트헤이트와 박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2. 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통치 전체를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했다. 이것은 단일 사건보다 구조적 지배 체제를 범죄로 본 보고서이다.

2023, 10월 7일 이후 가자 전쟁. 유엔 특별보고관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규모 인종청소 위험을 경고했다.

2024. 국제사법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1월 잠정조치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집단학살 방지 조치, 선동 처벌, 인도주의 상황 개선 등을 명령했다. 또 7월 자문적 의견에서는 이스라엘의 점령 지속과 정착촌 정책이 불법이며 가능한 한 신속히 끝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UN OHCHR과 HRW는 가자에서의 대규모 민간인 살해, 강제이주, 물 접근 박탈 등을 두고 전쟁범죄·반인도범죄·집단학살 행위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25. 가자에서의 민간인 살해, 원조 차단, 파괴와 강제이주가 계속됐고, HRW는 이를 전쟁범죄·반인도범죄·집단학살 행위로 규정했다. 2025년 9월에는 유엔 조사위원회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결론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주변 국가들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령하여 정착촌을 세우고 토지를 수탈해왔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으며, 가혹한 집단처벌을 지속했다. 나아가 민간인에게 거리낌없이 무력을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반인권, 국제법 위반 범죄행위는 네타냐후가 총리에 선출된 이후 부쩍 심해졌다. 이 때문에 2024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한국을 비롯한 ICC 회원국(120여 개국)은 네타냐후가 입국하면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네타냐후는 국제사회가 공인한 반인권, 반인륜 전쟁범죄자이다.

 

9일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참여연대, 사단법인 아디 등 단체 회원들이 네타냐후 총리 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 등 이스라엘 전쟁범죄자 7인을 형사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4. 05. 09 연합뉴스

전쟁 후 중동 정세는 이 대통령의 현명함 증명할 것

지금까지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서방 세계는 이스라엘의 반인권 범죄 행위에 대해 거의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미국 나아가 서방 세계에 대한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양심적 인류가 지키고자 하는 인간 존엄성 같은 중요한 가치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매우 용감한 행동으로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은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이란 전쟁이 종결되면 중동에서 이란의 입지는 커지고 이스라엘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란이 중동의 최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그렇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은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 국민들이 치를 떠는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낸 것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은 도덕적으로도 옳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올바르고 현명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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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민주당, ‘1호 인재’ 전태진 변호사 영입…김상욱 지역구 ‘울산 남갑’ 출마

수정 2026.04.17 09:37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착!붙 공약 프로젝트; 8·9호 공약 발표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7일 울산 남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전태진 변호사를 영입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열릴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맞아 발표한 민주당의 첫 영입 인재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인재 영입식을 열고 전 변호사 영입을 발표했다. 울산 출신의 전 변호사는 울산 학성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33기로 현재 법무법인 동헌에서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정 대표는 “전 변호사는 뼛속까지 울산 토박이”라며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과 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경찰청, 국가유산청 등 정말 많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을 자문하며 정책과 행정 경험을 두루 익혔다”고 소개했다.

정 대표는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와 김태선 울산시당위원장에 이어 전 변호사가 울산 지역 민주당의 젊고 파란 물결을 너울거리게 만들어줄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변호사 합류 자체가 울산에서의 새로운 바람, 파란 바람을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전 변호사는 공익성이 매우 강한 훌륭한 변호사인 한편 굉장히 투지가 있다”며 “제게 강한 의지를 말씀하시는 걸 보며 문무를 겸비한 덕장이고 용장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첫 직장인 법무법인 정세가 청와대 관련 법률 업무를 많이 하고 있다 보니, 제가 변호사로서 처음 출석한 사건의 당사자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맡은 사건의 당사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그러면서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 자리에 나서게 되니 정말 문 전 대통령 책 제목처럼 이것도 다 운명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의 아들인 저부터 앞장서 낡은 지역주의의 틀을 깨고 울산 정치를 바꾸는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김상욱 의원의 울산시장 선거 출마로 오는 6월 치러질 울산 남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전략공천을 공언한 상황에서 전 변호사는 1호 전략공천 후보가 됐다.

김 의원은 “울산 남갑이 쉽지 않은 지역구이지만 반드시 민주당이 승리해야만 하는 곳”이라며 “정말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오셔서 다행인 것 같다. 지도부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영입식에 앞서 페이스북에 “100% 제 바람대로 공천이 된 것은 아니나 우리 민주당의 역량과 선배들의 경험과 고민이 담겨서 훨씬 더 현명한 결정을 하셨으리라 믿고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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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없듯이 영원한 동맹도 없다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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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4.1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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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가 세상을 나누는 ‘분류’라는 기준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산호는 분명 동물이지만 그 몸 안에는 식물인 조류(藻類)를 품어 에너지를 얻고 몸 바깥으로는 탄산칼슘이라는 광물질을 쌓아 단단한 집을 짓는다. 동물이라는 존재 하나에 식물성과 광물성이 뒤엉켜 있는 셈이다. 자연은 원래 교과서처럼 칸칸이 나뉘어 있지 않다. 인간이 그 위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룰루 밀러의 2020년 책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가』(Why Fish Don’t Exist)가 날카롭게 파고드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우리는 상어와 연어, 폐어(Lungfish)를 모두 ‘물고기’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전부 다른 동물들이다. 놀랍게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지동물은 폐어와 같은 육기어류(肉鰭魚類)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 물에 산다는 이유로 이들을 묶어 ‘물고기’라 부르는 것은 산에 사는 모든 짐승을 ‘산고기’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거친 편의주의다. 폐어는 생물학적 계통으로는 연어보다 인간에 훨씬 더 가깝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이러한 오류가 생물학 책장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난 80년간 한국 사회는 미국을 대등한 국가라기보다 일종의 ‘구원자’로 투영해 왔다. 미국이 설계한 질서 안에서는 안전할 것이며, 한미동맹만 굳건히 지키면 번영과 평화가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동맹은 신앙이 아니라 철저한 전략과 거래의 영역이다. 2004년 자이툰 부대 파병과 2007년의 파병 연장은 ‘동맹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고, 2016년 역시 동맹의 이름으로 결정된 사드 배치 이후에는 중국의 보복이라는 청구서를 받아야 했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자 합의는 북핵을 넘어 중국 문제까지 대응 수위를 높였고, 그 결과 2024년 타결된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 따라 2026년 한국의 분담금은 1조 5,192억 원으로 8.3%나 껑충 뛰게 되었다. 이어 2025년 트럼프는 주한미군 비용을 관세와 엮어 협상하는 ‘원스톱 쇼핑’식 접근까지 들고 나왔다. 우리는 ‘보호’라는 수사 뒤에 반드시 ‘비용’이 따라붙는 냉혹한 현실을 거듭 목격하고 있다. 말이 보호지 사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주한미군임에도 우리는 주둔비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동맹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동맹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처럼 떠받들어 한국 스스로의 전략적 판단 능력이 마비된다는 데 있다. 국가는 우정을 맺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공존한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진정으로 동맹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더욱 냉정해야 한다. 무엇을 함께하고 무엇은 거리를 둘 것인지, 어디까지는 부담하고 어디서부터는 거절할 것인지 스스로 선을 긋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동맹은 바야흐로 종속이 아니라 협력이 된다.

주한미군의 성격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미동맹을 한반도 방어용으로만 국한하지 않았다. 2021년 미 국방장관은 동맹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으로 정의했고, 2025년 한미 연례안보협의는 그 역할을 동북아 지역 안보 유지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 내 기지 재배치가 미국과 한국 공동의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설정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한국만을 위해 존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이 자명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지독할 정도로 편의적이었다. 우리는 북한을 ‘절대 악’ 아니면 ‘언젠가 껴안을 형제’ 중 하나로만 보려 했다. 하지만 실제의 북한은 늘 그 두 얼굴이 뒤섞인 채 존재해 왔다. 2018년 판문점 선언과 남북 군사합의가 비핵화와 긴장 완화를 약속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202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을 헌법상 ‘불변의 주적’으로 못 박은 사건도 있었다. 동일한 북한이 한 때는 협력의 파트너였고 지금은 적대의 대상이다. 북한의 본질을 어느 한 단어로 고정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북정책도 신앙이나 감정이 아니라 현실 감각 위에서 다시 짜여야 한다. 북한을 무조건 악마화하면 대화의 문을 스스로 닫게 되고, 반대로 막연한 화해의 대상으로만 보면 적대의 실체를 외면하게 된다. 필요한 것은 선악의 언어가 아니라 관리의 언어다. 군사적 억지는 유지하되 대화의 채널은 복원하고, 원칙은 분명히 하되 접촉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 접근 말이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배척이 득세하고 포용도 환상으로 흐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파란 약은 안락한 허구 속에 남는 것이고, 빨간 약은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직면하는 선택이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삼켜온 것은 동맹이라는 이름의 ‘블루필’이었다. 미국의 질서를 자연 섭리처럼 여기고 분단의 적대감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레드필을 먹는다고 해서 세상이 단숨에 명쾌해지지는 않는다. <매트릭스>는 체계의 배후를 폭로했지만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체계를 벗겨낸 자리에도 선명한 ‘본질’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진실은 단순한 곳에 있지 않다. 우리가 믿어온 이름과 질서들이 사실은 얼마나 임의적인 것이었는지 인정하는 데서 진실은 시작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 해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을 ‘영원불변한 본질’로 숭배하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물고기가 본질이 아니고 산고기도 본질이 아니듯 ‘영원한 한미동맹’ 또한 본질이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계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미국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이며, 북한 또한 적과 형제라는 낡은 이분법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미국을 신성시하던 인식과 북한을 단순화하던 인식, 그 두 개의 낡은 분류표를 동시에 걷어내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질서를 수호하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제는 인식을 초월해야 할 때다.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가, 왜 산고기도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영원한 한미동맹이란 존재할 수 없는가. 답은 명확하다. 세계는 처음부터 그토록 단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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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란 무엇인가

[오찬호의 틈새] 그들은 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을까

오찬호 작가 | 기사입력 2026.04.17. 08:55:43

내게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한 줄로 기억했고,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라고 흥얼거리며 노래도 불렀다. 제주에서는 다르게 기억되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삼별초를 제주에서 완전히 진압한 여몽연합군의 몽골인들은 제주를 목장의 섬으로 바꾸면서 100년간 직접 통치했다. 그리고 원나라가 명나라에 중원의 지배권을 뺏겼을 때도 명 황제에게 말을 바치는 걸 거부했는데, 이게 '목호(牧胡)의 난'(1374년)이다.

<고려사>에 최영 장군이 전함 314척과 병력 2만5600명으로 이 난을 한 달 만에 진압했다고 명확히 기록돼 있다. 그래서 악을 응징한 정의로운 일처럼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지만 설마 목호만 진압했겠는가. 한 세기 동안 얽히고 얽힐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제주도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제주 향토사학자들은 목호의 난을 '고려판 4·3 사건'이라 부를 정도지만 제주도 사람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기록은 없고 오직 전해지는 이야기만 있기 때문이다. (4·3으로 비유하는 이유에는, 명나라에게 고려가 누구 편인지를 보여주려는 다급함이 미국에게 완전히 무결한 자유주의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이승만의 조급함과 같음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다.)

연구를 통해 역사가 복원될 수도 있지만 한 번도 분위기조차 없었다. 교과서에 한두 줄 정도로 가볍게 기록된 게 전부인 섬의 역사, 그리고 나쁜 놈을 물리쳤다고 알려진 승리의 역사 그 이면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불과 78년 전이었던 제주 4.3의 의미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훼손하는 이들도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652년 전의 국가폭력의 진실이 드러나겠는가. 그러니 '당시 제주도 사람 절반이 죽었다'라는 말이 떠돌 수 있는 거다. 나도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 답답하니까.

이스라엘은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2024년 4월, 가자 지구 남부에 위치한 도시 칸 유니스(Khan Yunis)의 나세르 병원 구내에서 수백 구의 민간인 시신이 매장되었음이 드러났다.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다음이라 모든 의심을 이스라엘로 향했지만, 그들은 늘 그랬듯 사실무근이란 말로 넘어갔다.

그러면 두 가설이 남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존의 집단묘지에 매장하는 게 전쟁으로 어려워 그곳에 매장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시신이 이상하다. 뒤로 묶여있고 눈은 가려져 있는 등 일상적인 장례절차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머지 가설은 하마스의 집단 처형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종종 팔레스타인을 본보기 식으로 공개처형하곤 했으니 의심할 순 있지만, 평소에 비해 규모가 너무 크다. 게다가 목격자 증언이 전혀 없는데, 심지어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피난민 수천 명이 그곳에 있었는데 말이다. 반면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군사기지화하면서 의료진과 환자들을 강제로 끌고 나갔다는 증언은 많다. 그러니 여러 인권단체에서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게다가, 그곳은 칸 유니스이니까 말이다.

칸 유니스. 1956년 11월 3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벽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을 난사한 곳이다. 이스라엘은 사실의 외부 유출을 차단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알렸기에 유엔 보고서에 짤막하게나마 '275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랬듯 눈도 안 깜빡거렸지만 기록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라도 했다. 그 작은 말들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된다.

당시 이스라엘 군인이었던 마렉 게펜(Marek Gefen)은 훗날 기자가 되어 그날을 증언한다. 26년이 지난 1982년이었다. 묘사는 생생했다. 자신의 양심이 느낀 그대로였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발견했다. 피범벅이 된 채, 머리가 으스러져 있었다. 아무도 시신을 치우지 않았다. 끔찍했다. 나는 멈춰 서서 구토했다. 인간 도살장 같은 그 광경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칸 유니스의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치했다. 이스라엘은 교전이 있었다 정도로 대꾸했지만, 명백한 처형이었음이 가해자 입에서 직접 밝혀졌다. 1983년, 노언 촘스키는 <숙명의 트라이앵글>(Fateful Triangle)을 출간하면서 이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훗날 이 책을 읽은 몰타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이자 만화가 조 사코(Joe Sacco)는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고, 7년의 작업 끝에 출간한 그래픽 노블 <가자 지구에서의 발자취>(Footnotes in Gaza)를 2009년에 출간한다. 국내 번역 출간 제목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글논그림밭, 2012)이다.

각주(footnote) 수준의 취급을 받는 가자 지구의 눈물을 직접 발(foot)로 기록(note)한 이 책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며 학살을 온전하게 복원했다. 이 책은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 상(Eisner Award)을 포함 여러 도서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이 일을 사과한 적 없다. 인정을 안 했으니. 그러니 더 알려져야 한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대학가에서 십수 년 넘게 붙고 나서야 그들이 법정에 설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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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란 무엇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SNS을 통해 이스라엘 군인들의 만행을 공유했다. 야당은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외교 리스크를 만들었다며 비판했다. 가짜라고 해서 AI가 만든 조작영상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2년 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을 사살한 뒤 시신을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게 소년을 고문하고 떨어트렸다는 글과 함께 공유되었으니 사실관계의 왜곡이 있는 건 맞지만, 그 간격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이스라엘이 작년 10월에 하마스와 휴전을 하고도 가자 지구를 계속 공격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7개월 동안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750명이라서 그럴까? 그중 80%이 민간인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이런 죽음에 대해 사과는커녕 늘 '하마스의 지휘부 아무개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라는 말만 했던 그들의 뻔뻔함이 기가 차서일까? 그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휴전하면 어쩔 건데, 민간이 좀 죽으면 어쩔 건데. 과거의 사실이 밝혀지면 어쩔 건데. 상식의 종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영상을, '제발 좀 알아주세요'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라 여겼다. 조회수 늘려 돈이나 벌어보자는 사이버 렉카가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의 죽음을 알아달라는 외침으로 말이다. 제주에서의 학살을, 칸 유니스의 학살을, 광주에서의 학살을 알아달라는 그 간절했던 절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이재명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준 것을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며 반응한 것 아니겠는가. 설마 낚였다고 좋아하는 거겠냐. 이제야 관심이냐는 아쉬움과 앞으론 달라질 수 있다는 조금의 안도감이 교차된 환희였을 거다.

이 문제를 복잡한 외교 문제와 연결해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최소한 머리라고 긁적거려야 한다. 이 난리통에 굳이 이스라엘을 자극하냐고도 투덜거릴 수 있다. 다만, 추임새라도 넣어야 한다. '네타나휴가 체포라도 된 다음에 하지'라고 중얼이라도 거리는 게 그래도 학살의 공범이 아님을 드러내는 길이다. 역사는 증명했다.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폐되었던 수많은 국가폭력이 존재했음을. 그리고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 더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니, 인권 앞에 솔직한 게 더 최선임을. 그래서 시대는 묻는다. 국제법을 위반하고, 병원을 공격하고, 학교를 폭격하는 걸 비판하지 않는 게 과연 국익인지를.

오찬호 작가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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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2주기, 아이들은 노란 리본에 '트럼프 OUT'이라 썼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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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4/17 09:48
  • 수정일
    2026/04/17 09:5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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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적어 매단 노란 리본에는 '잊지 않겠다'는,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란 전쟁을 떠올리며 반전의 메시지를 적은 것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 서부원

어느덧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았다. 올해 우리 학교의 추모 행사 주제는 '하느님은 전쟁을 축복하지 않는다'로 정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최근 X(엑스, 옛 트위터)를 통해 올린 이 짧은 '선언문'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당면한 현실적 상황에 가장 부합한다고 여겨서다.

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촉발한 이란 전쟁에 대한 전 세계 가톨릭 수장의 반전 선언이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바티칸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돈에 대한 우상숭배도, 권력 과시도 이제 그만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란 문명을 멸망시키겠다"라는 트럼프를 향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척점에 섰다.

잠자코 있을 트럼프가 아니다. 교황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발끈하며 "급진좌파에 영합하는 걸 멈추라"고 몰아붙였다. 심지어 그가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았을 거라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급기야 같은 국가 출신인 교황과 정치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맞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기억에 한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돈 보다 생명'이라는 구호의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이틀 전날 저녁, 학생자치회 친구들이 학생자치회실에 모여 각 학급에 나눠줄 리본을 자르고 배분하고 있다. ⓒ 서부원

세월호 참사로 절실하게 깨닫게 된 '돈보다 생명'이라는 구호의 범위를 세계로 넓히기로 했다. 참사와 전쟁의 차이일 뿐,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 당했다는 점에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전쟁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떠안기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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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미국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란의 민주화를 돕겠다고 했다가,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젠 '승전국'으로서 전리품을 챙겨야겠다며, 전쟁의 대가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란이 징수하겠다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세를 나누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전쟁을 일으킨 목적조차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뇌리에 남은 건, 호르무즈 해협으로 상징되는 석유의 위력뿐이다. 폭격으로 희생 당한 숱한 사람들의 주검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시나브로 희미해지고 있다. 이란과 미국 등의 당사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주판알만 퉁기는 상황이 참담하다.

이 와중에 나온 교황의 일갈은 '돈보다 생명'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맥락이 맞닿아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공감 능력이 거세된 무능한 지도자의 실상을 마주하며 가슴을 쳐야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물욕과 권력 과시욕에 취한 한 지도자의 난동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두 달째 모든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한 이란 전쟁으로 학교에서 잊힌 채 지나칠 뻔했던 12주기 추모 행사를 교황의 일갈이 되살려낸 셈이다. '잊지 않겠다'는,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추모의 대상이 이란 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들로 확대됐다. 얼마 전 미군의 오폭으로 17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희생된 참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작년엔 학생자치회에서 교정 곳곳에 노란 바람개비를 꽂고 노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기억을 되살렸다. 올해는 기억과 추모의 대상이 늘어난 만큼 아이들 각자의 다짐과 바람의 글을 노란 리본에 적어 끈에 묶어 걸기로 했다. 수업 교실을 오가며 '노란 리본의 물결'을 볼 수 있도록 복도에 공간을 마련했다.

리본에 적힌 글귀는 이란 전쟁과 관련된 내용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옆으로 '전쟁 NO, 평화 YES', '이란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나의 기도가 이란에 닿기를', '트럼프 OUT' 등의 바람을 적었다. 자연스럽게 '반전(反戰)'이 올해 추모 행사의 키워드가 됐다.

세월호 참사 되새기며, 이란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하느님은 그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는 교황 레오 14세의 일갈이 올해 세월호 참사 12주기 추모 행사 주제가 됐다. 학생자치회 친구들이 교문에서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서부원

학생자치회 주도로 아침 등굣길 캠페인 활동부터 시작했다. 올해 추모 행사의 주제를 홍보하고 친구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사전에 제작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손목에 채워진 노란 고무링이 학생자치회 임원임을 알리는 '신분증'이 됐다.

청소 시간과 점심시간에 트는 교내 방송도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채워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주는 것처럼, 4월 16일엔 '천 개의 바람 되어'와 '아직, 있다', '노란 리본' 등의 노래가 오늘의 '주크박스'다.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번개 음악회'도 추모 행사의 일환이다. 이번엔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 나섰다. '천 개의 바람 되어'와 '네버 엔딩 스토리' 등 그들에게 익숙한 곡으로 정했다.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데 노래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함께 듣고 노래하면 추모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계기 수업도 빠질 수 없다. 여러 추모 행사로 '동기 부여'가 됐다면, 수업을 통해 '살'을 붙이고 배움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예년의 경우엔 안전 교육 일색이었는데, 올해는 나눌 이야기가 훨씬 다채로워졌다. 참고로,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은 국가가 공식 지정한 '국민 안전의 날'이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주를 '안전 주간'으로 설정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당장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이란의 역사 등에 대해 질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답해 줄 깜냥이 못 되어 전자 칠판에 중동 지역의 지도를 띄워놓고 AI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을 이어 나갔다. 어설펐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떤 수업보다 초롱초롱 빛났다.

이란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기, 승, 전, 트럼프'로 귀결됐다. 대화가 오갈수록 전쟁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를 향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신정 국가인 이란에 대해 호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이란 공습을 두둔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들 대다수는 핵 개발을 막는다는 건 허울일 뿐, 트럼프가 석유를 약탈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 여겼다.

트럼프를 향한 증오심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몰래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해 가고,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종주국이 맞는지 반문했다. 이 와중에도 탄핵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이란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건 다 석유 때문이라며, 이참에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그만 나라 이란이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다 석유 때문 아니냐는 거다.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조차 산유국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도 했다.

해마다 해오던 계기 수업이었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매조지게 됐다. 석유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동차를 덜 타고, 플라스틱 제품을 덜 쓰는 습관을 갖자고 서로 다짐했다. 2026년 4월은 세월호 참사보다 이란 전쟁으로 기억될 성싶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란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고 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운해하실 것 같진 않다.

#세월호참사12주기#이란전쟁#국민안전의날#계기수업#번개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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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들 "李대통령, 국가폭력 공식 인정하고 사과해 달라"

참사 12주기 앞두고 국회 기자회견…與 "가족들이 '그만 됐다' 할 때까지 최선"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6.04.16. 05:18:46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더불어민주당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유족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국가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저질렀던 국가폭력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정기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께선 작년 7월 16일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현안을 듣근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때 말씀드렸던 해결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의 과제들이 간담회 이후 그는 "못다 한 진상규명 완수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지금까지 제공하지 않은 국정원, 군 등 정부기관의 모든 자료를 제공해 달라",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참사 12주기 이전에 제정하겠다는 약속 대로 지금 당장 제정해 달라"는 등 구체적인 과제를 전했다.

유족들은 이날 회견을 주최한 민주당 세월호 특위와 협의를 통해 △세월호 관련 미공개 정부 기록물의 투명한 공개 △참사 이후 발생한 국가폭력과 2차 피해 진상 및 책임자 규명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 추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이행과 피해지원체계 개편 등을 참사 해결을 위한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9개월이 지나고도 아예 진행되지 않고 있거나,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거나, 이제 시작하는 등 지난 12년간 노력해 온 우리 유족들의 바람과는 달라서 참사 12주기를 하루 앞두고 이렇게 단상 앞에 섰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가족들은 시민들과 함께 빛의 광장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내란세력을 몰아내고, 국민이 주인인 국민주권정부를 함께 세웠다"며 "국민주권정부가 출범 당시 국정과제로 천명했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진다'는 책무를 다 해주시길 바란다"고 거듭 호소했다.

이태호 4.16 연대 공동대표도 "독립적 국가 조사기구(특조위)가 조사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게 권고한 바가 아직도 다 이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다만 대법 판결을 통해 우리가 대통령 기록물의 '목록'은 볼 수 있는 기회가 최근 열렸다. 그것을 통해 대통령 기록물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을지 저희가 도전해 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참사 당시 문제가 된 박근혜 청와대 '7시간 문건' 등 대통령 기록물로 보호되고 있는 비공개 문건 문제를 제기한 것. 이 대표는 "국정원 미공개 기록들도 계속 공개하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국정원에서는 협력하겠다고 했는데...(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다 공개를 안 한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아 4.16 단원고 가족협의회 위원장은 "304명의 희생자 중엔 국가를 믿고 배·보상안에 사인한 가족들이 있다"며 "(그런데) 국가는 배보상에 차이를 둬서 우리를 두 번 죽였다.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진행된 참사 피해자 배보상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다.

참사 발생 초기였던 2015년 당시 정부는 '국가의 선제적 배보상'을 명분으로 배보상안에 동의한 일부 유가족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이후 진상규명 활동 끝에 참사 당시 국가의 구조 작업 부실과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유족들은 '국가 책임을 알았다면 보상금을 받지 않았을 것'이란 취지로 지난 2018년 보상금 지급 취소 결정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2015년 당시 희생자 위자료를 받은 유족들과 당시 보상안에 불복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 유족이 받는 위자료 차이가 3배 이상 벌어지면서 '죽음의 차별'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월 '4.16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심의위원회 보상금 지급 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당시 배보상 절차를 두고 "사실관계나 법률적인 판단을 기술하지 않고 배·보상금을 정한 다음, 동의를 얻는 '화해' 절차"라며 "화해 절차에 대해서는 판단 누락이라고 볼만한 내용이 없다"고 각하 판결을 내렸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님도 국무회의에서 (유족들을) '서운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며 "저희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서운하지 않게 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우린 내일부터 2014년의 4월 16일로 계속 살겠다"며 "이 점을 감안해 주셔서 모든 것이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이날 회견을 주최한 민주당 세월호 특위는 "현 정부는 세월호를 포함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며 유족들 요구사항 이행 및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 참사 후속 과제에 대한 국회·정부 차원의 노력을 약속했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김현 의원은 이날 모두발언으로 "이 대통령은 세월호 문제에 대해 '끝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다'라고 말씀하셨다"며 "피해자들이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세월호특별위원장인 김현 의원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과 함께 참사 12주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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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유대인 학살' 비교가 중요하고 적절한 이유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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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국방

  • 입력 2026.04.16 07:40

  • 수정 2026.04.1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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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 전쟁범죄 면죄부인가?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피해의 독점적 대변자?

나치의 유대인 추방에 협력한 시온주의의 과거

서방의 '속죄'는 아랍인 희생으로 떠넘긴 거짓

반시온주의를 반유대주의로 호도하는 이스라엘

지금의 학살 중단이 진정한 홀로코스트 추모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전쟁범죄 비판 발언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일깨우며 큰 공감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도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발언이 지닌 무게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특정 잘못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그 비극적 실상을 인류사 최악의 범죄로 꼽히는 "유대인 학살"과 직접 비교했다는 점에 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홀로코스트를 경시"했다며 즉각적이고 강렬한 반발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이 인류에게 남긴 본질적인 교훈에 대한 철저한 무지이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고집하기 위한 의도적 왜곡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홀로코스트는 인류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범죄이며, 그 본질은 나치의 파시즘과 극우적 인종주의가 600만 명의 집단학살을 낳았다는 것에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민족이 겪은 불운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 속에 근대 문명이 광기 어린 인종주의를 제어하지 못했을 때 도달하게 되는 참혹한 종착역을 상징한다.

따라서 인류는 산업적으로 수행된 학살이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해 '절대 다시는' 파시즘과 극우적 인종주의가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뼈에 새겨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를 보편적 인권의 경고등이 아닌, 자신들의 전쟁 범죄나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활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팔레스타인 출신 'Jvnior'이 올린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시온주의가 오랫동안 쌓아 올린 왜곡된 신화들을 하나씩 해체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신화는 '집단학살은 유대인만이 겪은 예외적 범죄이고 그 피해자들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게 이스라엘'이라는 신화다. 이러한 주장은 홀로코스트를 다른 모든 인종청소와 격리해 절대적 예외로 만듬으로써 자신들이 피해자의 지위를 독점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히틀러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점령지 주민 등도 학살했다. 나치의 'T4 작전'을 통해 수만 명의 장애인이 학살당했으며, 수많은 로마인(집시)과 슬라브족 역시 가스실과 처형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홀로코스트는 자본주의 위기의 시기에 파시스트들이 집권하면 누구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말이다.

집단학살의 가해자도 독일의 나치만이 아니었고,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새로운 이름과 집단으로 나타나 왔다. 더욱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부가 파시즘에 철저히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유럽 내에서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적 연대를 통해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했다.

특히 많은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은 '유럽에서 인종을 넘어선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반면에 시온주의자들은 파시즘이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것을 긍정적 효과로 받아들였다. 멀리 중동으로 가서 유대인들만의 국가(이스라엘)를 따로 만들자는 시온주의의 주장이 힘을 얻을 기회로 본 셈이다.

실제로 1933년 시온주의 기구는 나치 정권과 '하아바라 협정'을 맺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위해 사실상 협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초기에 유대인의 10~20%만이 이스라엘로 이동했고, 지금도 유대인 절반은 이스라엘 밖에 있다. 즉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자리를 독점할 수 없다.

 

이스라엘 비판을 반유대주의라고 입막는 것을 풍자하는 만평 - 출처: X

두 번째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홀로코스트 방관을 반성하고 이스라엘 건국을 도우며 속죄했다'는 신화다. 이는 서구 강대국들의 위선을 가리는 도덕적 분칠에 불과하다. 물론,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제대로 막지 않았다. 반유대주의는 이 나라들에서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려던 유대인들의 절규를 서방은 외면했다. 1939년 900여 명의 유대인을 태운 성 루이스호가 미국과 캐나다 연안까지 도달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해 유럽으로 회항했고, 결국 그중 상당수가 가스실에서 사망한 사건은 서방의 반유대주의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 나라들은 유대인들의 도움 호소를 대부분 외면했고, 유대인들의 망명과 이민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유럽과 미국은 시온주의자들을 도와서 중동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인들을 내쫓고 유대 국가를 만들어 주는 길을 택했다. 이는 인종주의적 범죄의 형태와 공간을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 인종청소(홀로코스트)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는 아랍인 인종청소(나크바)가 벌어졌다. '재앙'을 뜻하는 나크바(Nakba)를 통해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당하거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영국과 미국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잘못과 부채를 아랍인들에게 떠넘기며 스스로 '탕감'했다.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왜 우리가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에 의문을 던졌고 항변했다. 그 항변은 지극히 타당하다. 당시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던 아랍인들은 히틀러를 도운 적도 없었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적 억압과 차별의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학살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웹자보 - 출처: X

이 불합리한 비극이 관철된 이유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있었다. 아랍인들의 의문에 대한 답은, 서방의 강대국들이 중동에서 석유를 빼앗아가고, 아랍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같은 자신들의 전초기지(경비견) 국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에 있다. 결국, 서방 강대국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도운 것은 '속죄'가 아니라 '범죄'였다.

이스라엘 정부가 비판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가장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세 번째 신화는 '반시온주의는 곧 반유대주의'라는 거짓말이다. 이들은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민족 전체에 대한 증오로 치환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시온주의는 극단적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시온주의는 1930년대 나치에서 이어진 새로운 파시즘의 대표적인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나치가 '게르만족의 사명'을 내세워 타 민족을 절멸시키려 했듯, 오늘날의 시온주의는 '성서적 권리'를 내세워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고 말살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국제 극우 네트워크의 핵심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배타적 민족주의, 소수자 혐오, 그리고 폭력에 의한 통치를 공유하며 서로를 돕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혐오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그 구조는 동일하다는 점에 있다. 30년대의 파시즘이 희생양 삼았던 것이 유대인이라면, 오늘날의 신파시즘이 희생양 삼는 것은 무슬림이다. 유대인 혐오는 이슬람 혐오로 변화하고 발전해 있다.

1930년대 파시즘의 피해자였던 유대인의 이름을 빌려서, 오늘날 새로운 파시즘의 피해자인 아랍인과 무슬림들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대공황의 위기가 1930년대에는 '유대인 피해자'를 필요로 했다면, 오늘날은 '유대인 가해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극우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유대주의만큼이나 시온주의에도 철저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유대인 학살'과 비교한 것은 시의적절했고, '홀로코스트를 경시'한 것이긴커녕 이러한 역사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 측이 14일 가자지구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아동들의 단체인 '생존자들의 메아리' 대표 라마 아드함 아이드(Rama Adham Eid) 씨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쓴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팔레스타인긴급행동

반대로 이스라엘을 비판한다는 핑계로 '히틀러가 옳았다', '역시 유대인들이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완전히 부적절하다. 이러한 반유대주의적 혐오는 비판의 정당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정부를 돕는다. 그런 사람들은 의도하든 아니든 시온주의자들이 자신을 정당화할 무기를 주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과 시온주의에 반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의 이름으로 학살하지 마라(Not In Our Name)"라고 외치며 가자지구의 학살 중단을 요구하는 이들이야말로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교훈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는 유대인의 절반 이상, 특히 유대인 청년층의 대다수가 네타냐후에 반대한다.

그들은 홀로코스트를 '경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중시'하기에 '유대인의 이름으로 또 다른 집단학살을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한 유대인들 스스로의 처절한 거부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은 명확하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며,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한 집단학살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이스라엘과 네타냐후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를 막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길이다. 그 길만이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는 사슬을 끊어내고, "절대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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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방문 후 '롤 모델' 된 나라? 자가율 90%의 함정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 권우성

개인적으로 "모두가 내 집을 소유하는 사회"를 굳이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 집을 소유해야만 주거안정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면 명확히 반대합니다. 주택을 임차하는 것은 '인생의 결격사유'가 아닙니다. 세입자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일 좋은 것은, 자가든 임대든 공유든 편하게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도 차별 없이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사회, 한 번의 선택이 다음 선택을 제약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다음 달에 군대를 갈지, 먼 도시로 인턴을 갈지 모르는 사람에게 자가소유의 부담이나 의무를 지우지 않는 사회, 임차인으로 살아도 주거정책의 당당한 대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원칙을 세계세입자연맹에서는 '점유중립성(Tenure Neutrality)'이라고 합니다. '주거중립성'은 나아가 이런 원칙을 점유형태뿐만 아니라 건물형태(아파트냐 빌라냐), 가구형태(혼자 사느냐, 누군가와 함께 사느냐), 입지조건(수도권이냐 지방이냐)에도 적용하자는 개념으로 제가 제안하고 있습니다.

2013 세계 세입자의 날 주제(International Tenants' Day 2013 Theme) :

점유중립성(Tenure Neutrality)

점유중립성(Tenure Neutrality)이란 거주자가 주택을 소유하는 것과 임차하는 것이 재무적으로 무차별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점유중립성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점유형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 즉 선택권을 갖는다는 개념이다. 점유중립성은 금융 제도가 임차와 소유 사이의 소비자 선택을 왜곡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며, 이는 금융 지원, 임대료 규정이나 세제와 같은 시장 기제 등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보조금은 점유형태에 중립적이어야 한다. 점유중립성은 어떤 유형의 공급자든 서로 경쟁하고 소비자를 유치할 수 있는 분절되지 않은 주택시장을 전제로 한다.

점유중립성이 왜 중요한가? 점유중립성은 선택의 폭을 넓힘으로써 소비자 주권을 강화하고, 생애주기에 걸쳐 시기별로 필요한 점유형태 선택을 수월하게 하며, 빈곤의 덫을 완화한다.

(출처: 세계세입자연맹 (IUT; International Union of Tenants) 계간지 <GLOBAL TENANT> 2013년 4월호, p.7의 박스를 번역)

이 원칙을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싱가포르 방문을 전후하여, 싱가포르의 높은 자가점유율을 들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많은 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가 이룬 성취는 분명 인상적입니다. '세입자의 서러움'이 유별난 한국에서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작 당사자들도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는 구조적 딜레마가 있습니다.

한 세대의 자산 형성, 다음 세대의 진입장벽?

싱가포르 아파트 ⓒ 연합뉴스

싱가포르 모델을 친절히 설명하는 대표적인 한 기사도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다만 딜레마가 아니라 장점이라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시장에 나온 HDB는 분양 당시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하는데, 이는 싱가포르 젊은이들의 자산 형성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누구나 내 집을 소유하는 사회, 이 나라가 증명했다">, 2026.4.7.오마이뉴스)

그 훨씬 높아진 가격은 누가 부담하는 걸까요. 한 세대나 집단의 자산 형성이 다른 세대나 집단에겐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싱가포르 시민들은 노후를 위한 강제저축인 중앙적립기금(CPF)을 주택 구입에 미리 인출해 쓰다 보니, 많은 경우 집은 마련하긴 좋았지만 현금은 부족한 노후, 싱가포르 정부도 인정하는 이른바 '에셋 리치, 캐시 푸어(Asset Rich, Cash Poor)'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물론 싱가포르도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젊은 가구 우선 공급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노인가구가 주택을 줄여 이사할 경우 현금을 지원하는 실버주택보너스 제도 등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보완책들은 구조적 해법이라기보다는 자산기반 복지의 한계를 다시 자산으로 메우는 고육지책에 가깝습니다.

싱가포르 CPF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55세 도달 경제활동 가입자 중 현금만으로 완전 은퇴기준(FRS·Full Retirement Sum)을 충족하는 비율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낮은 기초 은퇴기준(BRS·Basic Retirement Sum)조차 '집을 소유하고 임대료 걱정이 없는 사람'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자가소유 없이는 가장 낮은 노후 기준도 채울 수 없는 구조, 자가소유율은 높지만 비싼 집값이 유지되어야 하는 구조, 그러다 보니 후속세대에게 높아진 진입장벽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 이것이 싱가포르 자산기반 복지의 딜레마라 하겠습니다.

'1가구1주택주의' 나 '주거중립성'을 넘어,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싱가포르 모델은 건물 분양 방식 하나가 아니라, 토지청(SLA)의 국유화, 주택개발청(HDB)의 배분, 중앙적립기금(CPF)의 금융조달, 토지지분 없는 건물주들의 주거권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도시재개발청(URA)의 재건축이 60년간 쌓아올린 하나의 독특한 주거 체제(Housing Regime)입니다. 이 주거체제는 고용체제 및 복지체제와도 연계되어 있습니다. 거칠게 종합해보자면, 싱가포르 모델은 권위주의적 고용기반 주거체제와 가족주의적 자산기반 복지체제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가소유가 정말 보편화되고 그 부담이 가볍다면, 이를 노후 보장의 한 축으로 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얽힌 시스템이라 해서 무조건 벤치마킹을 거부하고 담을 쌓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일까요?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가율 90% 그 자체야 좋지만, 집이 있어야만 노후 기준을 채울 수 있는 복지체제, 집을 사기 전에 강제저축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는 고용체제 등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사회상일까요. 집을 가졌든 아니든 무관하게 공공의 책임이 고루 미치는 것, 그것이 더 안전한 사회의 기본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집밥'이 좋긴 합니다. 그러나 불량식품 문제의 해법으로 모두가 반드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할까요? 가끔 사 먹고 혼밥을 해도, 집에서 밥해줄 가족이 있든 없든, 혹은 혼자서 밥해 먹을 수 있는 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든 없든, 누구나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공공의 관심은 식자재 사재기를 막거나 물가를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음식점에 대한 위생 감독에도 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역복지관 등에서 직접 어르신들께 점심식사도 제공하는 공공식사 돌봄도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테고요.

우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싱가포르와 같은 강제저축을 어렵게도 하지만, 그 문제는 별도로 해결한다 치더라도 국토공간구조도 고려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서울 면적의 1.2배 크기의 도시국가입니다. 그 안에서라면 어디에 집을 마련하든 통근과 통학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직장이 바뀌거나 가족 상황이 달라지면 멀리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자가소유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임차로 살면서도 충분히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구구조, 산업·고용구조, 국토공간구조와 복지체제의 유사성으로 따지자면 싱가포르 보다는 오히려 주거중립성이 어느 정도 실현된 나라들이 한국의 처지에 더 가까운 참고사례가 될 것입니다. 예컨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등은 자가점유율이 한국보다 낮거나 비슷하지만, 세입자의 주거 안정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이 높은 나라들입니다. 이른바 '주거복지 선진국'은, '내 집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살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들 나라도 한국과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사회주택 비중이 높고, 수도권 집중도 심하지 않습니다. 정책 한두 개만 가져온다고 될 일이 아니며, 당장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쪽만 골라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바라는가입니다. '권위주의적 고용체제와 가족주의적 자산기반 복지 시스템'인가요, '가족이나 점유형태를 구별하지 않는 주거복지 체제'인가요.

한국에도 이미 해법의 싹은 있습니다

협동조합 아파트 사회주택 위스테이 별내 전경 ⓒ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사실, 멀리 싱가포르와 비엔나 사이에서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도 이미 그 싹이 있습니다. 공공주택과 함께 걸음마를 내디딘 사회주택입니다. 여러 유형이 있는데, 제도의 사각지대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중 두 개를 소개드려 봅니다.

남양주 별내와 고양 지축의 위스테이는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아파트 사회주택입니다. 임차인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함께 설계와 운영에 참여합니다. 리츠 소유의 주택에 보증금을 낸 입주자가 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이 협동조합이 리츠의 지분을 확보하여, 소유와 임대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델입니다. 임대료 인상은 법적으로 2년에 5% 이내로 묶여 있는데, 협동조합에서 자체적으로 1% 수준으로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환경부 탄소중립 실천 국민대회 민간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탄소중립 마을이고, 공동육아와 커뮤니티 돌봄도 활발하여 둘째 자녀 출산의향도 매우 높은 마을입니다.

아파트 마을 마당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마을 합창단의 축가가 울려 퍼진다 ⓒ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다다름하우스는 사회주택 사업자와 지역 사회복지법인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LH가 소유하는 특화형 임대주택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소셜믹스를 실천합니다. 공공(Public)·사회적경제(Social)·민간(Private)의 3자 협력(PSPP) 모델로, 건설사나 민간금융도 공급에 참여하되 공공이 건설비를 책임지고 사회연대경제조직이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다다름하우스를 공중에서 본 모습사회복지법인과 사회주택 사업자가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공기업이 든든하게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 사진작가 이재성 제공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곳에서 직접 현장간담회를 열고 자립준비청년 지원 공약을 발표한 것도, 이 모델이 정치 진영을 넘어 성공적으로 볼만한 주거복지 모델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돌봄에 전문성이 있는 기관이, 주택개발에 전문성이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회적기업과 함께 기획하고, 또 시세 50%의 임대료로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공기업이 도와준다는데, 진보나 보수를 가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밖에도 자랑하고 싶은 특화형 임대주택 사례가 많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합니다.

물론 이런 모델만이 정답이거나,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1인가구화와 고령화라는 인구변화, 기후변화, 산업구조와 국토 공간구조의 변화 한 가운데에서 우리들의 주거권을 보듬고, 주택을 사회문제 해결의 플랫폼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어떤 흐름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큰 흐름이 될 거라고 믿는 이들, 나아가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다름하우스의 루프탑 커뮤니티 공간소셜믹스 특화형 임대주택 다다름하우스의 루프탑 커뮤니티 공간 ⓒ 아이부키 제공

이상향이 당장 우리 앞에 놓이지는 못할지라도

'안전한 영양 섭취는 오직 직접 해 먹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원칙이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것처럼, '각자도생 아니면 공기업이 하는 임대주택'이라는 이지선다만 남는 사회도 우리의 이상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원칙적으로 가장 좋은 것인지를 먼저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당장 그 원칙을 다 실현할 수 없더라도, 그 방향으로 제반 조건들을 바꿔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방향이 다른 원칙 때문에, 대안을 위한 노력들이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대안적 실험을 하던 주택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1가구1주택'이 원칙이 되는 기조에서 2010년대 말부터 법인에 대한 종부세가 강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택협동조합들이 '법인 소유라면 투기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종부세를 부과받거나 대출을 연장받지 못해, 결국 해산하고 개별 분양되며 팔려나가기도 했습니다. 전세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사례도, '1가구1주택'의 원칙 아래 보증보험이나 대출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기도 했습니다.

저층주거지에 주민편의시설과 생활 SOC를 제공하는 좋은 거점이 될 수 있는 '특화형 임대주택'의 길도 순탄치 않습니다. '1가구1주택' 원칙이 투기를 잡을 때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금융이나 세제를 비롯한 제도의 여러 디테일에서 대안적인 임대주택의 공급을 가로막습니다. 제도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버티면서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주택협동조합들과 사회적기업 관계자들께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합니다(대표적인 사례는 <"집은 자산 증식 수단 아냐...세입자와 집주인 이분법 넘어야죠"> 2026.4.10.오마이뉴스).

한 개인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건 좋습니다. '다른 사회'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도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행여 '내 집 마련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무리한 자가 마련을 모든 계층에 밀어붙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더 심각한 선례도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입니다. 상환 능력을 넘어선 대출로 내 집 마련을 부추긴 결과는 수백만 가구의 주택 압류와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싱가포르의 딜레마가 "집은 있지만 현금이 없다"는 문제라면, 금융위기의 교훈은 "집을 가지자마자 무너진다"는 문제입니다. 적정 수준의 공공임대와 사회임대가 충분히 공급될 때, 사람들은 생애주기 상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적절히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지금 세대와 함께 다음 세대의 자가마련도 무리 없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어쩌면 모두의 노후 대비의 걱정까지도 덜 수 있습니다(공공주택이나 협동조합주택 등 사회주택이 왜 다음세대의 자가마련을 돕는 주택인지, 그리고 우리의 노후 대비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풍차, 주식회사와 튤립>, 슬로우뉴스 2026.4.13)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싱가포르는 분명 참고할 만한 사례이지만,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이나 다양한 선택권의 보장 차원에서는 어쩌면 반면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자가소유만을 주거안정의 유일한 경로로 제시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획일적인 '내집(만)마련 포퓰리즘'으로 흐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 걱정의 한편에 희망의 싹이 있습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서도 버티고 있는 대안적 주택을 향한 시도들, 더 많은 표정들이 어우러지는 동네를 위한 여러 기획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주거 모델이 아닙니다. 반드시 내 집 마련을 하지 않아도, 어떤 형태의 가구로 살아도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주거중립성이 실현되는 사회의 새싹입니다.

#싱가포르#주거중립성#사회주택#주택정책#1가구1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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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휴전’ 중에 만난 중·러 외교장관 무슨 얘기했나?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6.04.15 16:09
  •  
  •  수정 2026.04.15 16:11
  •  
  •  댓글 0
 
 
14일 오후 베이징에서 만난 중.러 외교장관. [사진-중 외교부]
14일 오후 베이징에서 만난 중.러 외교장관. [사진-중 외교부]

미국과 이란이 2주 간 휴전 중인 가운데, 14일 오후 중국과 러시아 외교 수장이 베이징에서 만나 ‘미-이란 전쟁’을 비롯한 국제 현안을 논의하고 긴밀한 협력을 다짐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난 왕이 외교부장은 “지금 국제정세가 매우 불안정하고 일방적 패권주의 폐해가 가중되고 있으며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가 심각한 조정에 직면해 인류의 평화발전 과제가 엄중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잡하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세심한 관심과 영도 아래” 중·러 관계는 굳건하고 다방면의 협력 또한 강력하며, 국제무대에서 양국이 서로 협조하고 호응하면서 전 세계를 향한 더 큰 책임감을 과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중·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30주년’이자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 체결 25주년’을 맞아 중·러 양자 관계와 각 분야에서의 호혜적 협력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중대한 국제·지역 문제에 관한 전략적 협조를 지속하고 다자주의와 국제적 도의를 지키기 위하여 (두 나라가) 공동 노력하며 ‘세계 다극화 프로세스’를 공동 추진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양측은 올해 하반기 예정된 ‘중·러 정상회담 계획’을 조율하고, ‘미·이란 충돌, 아태 정세, 우크라이나 위기 등 국제·지역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세부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사진-러 외교부]
[사진-러 외교부]

러시아 외교부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왕 부장과의 회담에서 “이번이 올해 첫 대면회의”라며 “이미 계획된 향후 정상 간 만남을 위한 추가적 결정 사항들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제관계의 토대가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데 대해 당신과 의견을 같이 한다”면서 “올해 초 라틴아메리카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지금 중동에서 벌어진 일을 보라”고 지적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서방이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기 위해 조장하려던 우크라이나 위기는 이제 주로 유럽인들에 의해 서유라시아에 새로운 공격 블록을 만들고 우크라이나 정권을 그 블록에 끌어들여 결국 러시아에 맞서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를 포함하여 유라시아 동쪽에서도 매우 위험한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거나 “한반도와 수년 간 협력과 우호의 장으로 남아 있던 아세안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유라시아 일부인 이 가장 중요한 지역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모두를 견제하기 위해 ‘줄긋기’와 ‘블록 만들기’를 통해 분리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세인식도 피력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리 광활한 대륙을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시 주석의 ‘글로벌 안보 구상’과 푸틴 대통령의 ‘유라시아 공동안보 구상’에 따른 공동의 실질적 조치를 내실 있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실질 조치’의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15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난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이 재개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는 2015년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농축 우라늄 문제’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고농축우라늄을 원전 연료 수준으로 전환하거나 이란의 평화적 농축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러시아에 저장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환영하며 이를 계속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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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2주기, 지면에 ‘세월호’ 없는 조선일보



[아침신문 솎아보기]

세월호 참사 12주기, 국회서 잠자는 ‘생명안전기본법’…전남매일 “국가 책임 공식화해야”

청와대, 대통령 제2집무실 준비 본격화…한국일보 “서울-세종 오가며 소모적, 개헌으로 ‘행정수도’ 공식화해야”

쿠팡 산재 유족 순회투쟁 나서…한겨레 “노동부가 초기에 대처 제대로 했어야”

기자명장슬기 기자

  • 입력 2026.04.16 07:11

  • 수정 2026.04.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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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31일 목포신항에 접안한 세월호가 좌현 쪽으로 누워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세월호 참사 12주기다. 16일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광주전남 지역일간지 무등일보는 사설에서 “세월호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구조화하는 현재”라고 지적했다. 여러 매체에서 세월호 관련 기사를 낸 가운데 이날 조선일보는 ‘세월호’ 관련 기사를 내지 않았다.

 

청와대가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위한 부지 조성 공사 입찰 공고를 낸 가운데 한국일보가 “대통령이 제2집무실을 만들어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건 상당히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며 근본 처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개헌을 해서 세종을 행정수도로 명문화하거나 국회에 계류 중인 행정수도특별법을 통과시켜 헌재 판단을 다시 받아보라고 주장했다. 관련해 대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국회가 행정수도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을 두고 실행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쿠팡에서 산업재해(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유족들이 전국 순회투쟁에 나섰다. 쿠팡이 책임을 외면하고 있고 고용노동부가 쿠팡의 산재 은폐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대처를 지시했는데도 이렇다니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소식 1면에 실은 신문사는

 

세월호 참사 관련 소식을 1면에 실은 중앙일간지는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 한국일보, 경기지역일간지 중에는 경기신문과 경인일보, 광주전남지역 일간지 중엔 남도일보와 광주매일신문, 경남지역일간지 중 경남도민일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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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16일자 경기신문, 세계일보, 경남도민일보, 한국일보, 남도일보, 한겨레, 경인일보, 경향신문, 광주매일신문 1면

경향신문은 1면과 8면에서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김다영씨의 어머니 정정희씨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애도를 시작했는지 등을 기사에 담았고, 8면 하단에는 다영씨의 아버지 김현동씨의 이야기도 담았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사설 <세월호 12주기, 잊지 않겠다는 약속 지키고 있나>에서 “국가의 부재를 목격했던 12년 전의 참담함을 정치가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책임있게 답해야 한다”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12년 전 약속을 실천하는 시작이며 안전사회를 위해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법은 “모든 사람의 안전권을 법에 명시하고 안전사고 피해자 권리 보장, 취약계층 보호,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 등”을 담고 있다.

 

전남매일은 이날 사설 <세월호 12주기…국가 책임 공식화하라>에서 “해수부는 참사 12년 만에 세월호 선체 영구 보존과 희생자 추모, 해상 안전 교육 등을 결합한 ‘국립 세월호 생명 기억관’ 건립에 착수했다”며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 제대로 추진하길 바랄뿐”이라고 했다.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선만큼 이제부터라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확한 국가 책임을 공식화하고 온전한 진상규명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문화면 <“세월호 아픔은 현재진행형…선장, 그날 진실 밝히고 용서 구해야”>에서 이준석 선장과 12년째 소통하는 장헌권 목사 인터뷰를 실었다. 장 목사는 세월호 참사 두달 뒤부터 광주법원에서 시작한 이 선장과 선원들의 재판을 찾아갔고 이들 15명에게 양심고백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인물이다. 장 목사는 이 선장이 사과 표현을 하긴 했지만 “진심 어린 사과란 생각은 안 들었다”며 “진심이라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모두 밝히고 유가족 앞에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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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16일 세계일보 10면

세계일보는 1면과 10면을 통해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자의 가족들을 취재해 이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며 자식을 잃은 부모들 중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는 증언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피해자 지원을 위한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에서 아직 제정되지 않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계류 중인 점도 지적했다.

 

한국 “대통령 세종집무실 한계 뚜렷”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세종집무실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완성하는 핵심 기반 시설”이라며 세종집무실 부지 조성 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내년 8월 공사에 들어가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입주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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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16일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사설 <대통령 제2집무실만으로 세종이 행정수도 되지 않는다>에서 “(세종집무실 이전이) 실상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세종 이전 계획에 대해 ‘관습 헌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우회 조치”라며 “대통령이 제2집무실을 만들어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건 상당히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부처 공무원들도 대통령 동선에 맞춰 일정을 그날그날 맞춰야 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후임 대통령이 해당 집무실을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관습헌법’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일보는 “세종시가 출범한지 14년이 됐지만 아직 법적 근거가 없는 반쪽 행정수도에 불과하다”며 “대통령의 세종집무실과 세종의사당이 마련된다면 힘이 조금 더 실리긴 하겠으나 근본 처방은 아니다. 정말 의지가 있다면 헌법 개정을 통해 세종을 행정수도로 명문화해 모조리 옮기는 게 옳다”고 했다. 이어 “혹여 개헌이 쉽지 않다면 국회가 상임위에서 낮잠 자고 있는 행정수도특별법을 되살려 헌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기 바란다”며 “대통령과 여야 모두 정공법을 회피하지 말기 바란다”고 했다.

 

관련해 대전일보는 사설 <행정수도특별법 또 불발, 후순위 핑계 ‘어불성설’>에서 행정수도특별법이 최근에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것에 대해 “여야 모두 말로만 행정수도 운운하면서 실행 의지가 있기나 한 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후순위’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 간 모종의 ‘역할 분담’을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대전일보 역시 “올 하반기에는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의 기본 설계가 시작되지만 행정수도특별법이 없으면 결국 반쪽짜리 제2집무실이나 국회 세종분원으로 전락하고 만다”며 “행정수도특별법 제정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는 세종시’라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대통령 지적했지만 결국 쿠팡 산재 유족 거리투쟁

 

2020년 대전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장덕준씨를 비롯한 쿠팡 산재 사망자 유족들이 지난 15일부터 14박15일간 대구, 광주, 창원, 경기, 서울 등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전국 순회 투쟁에 나섰다. 정부의 신속하고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임원진에게 “그(장씨)가 열심히 일한다는 메모를 남기지 말라”는 등 산재 관련 증거를 은폐하도록 지시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노동부가 지난 1월 정식 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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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16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사설 <거리로 나선 ‘쿠팡 산재’ 유가족, 정부는 뭐 하나>에서 “쿠팡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를 감안하면 (노동부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난 5년 동안 생업을 포기한 채 진상 규명에 매달려온 유족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라며 “노동부가 초기에 대처를 제대로 했다면 유족들이 이렇게 애를 태울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겨레는 지난해 11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쿠팡은 무려 3367만건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키고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고 명백한 개인정보 ‘유출’을 ‘노출’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니 쿠팡의 부당한 행태가 기승을 부린다”며 “정부는 쿠팡의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에 박차를 가해야 제2, 제3의 쿠팡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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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김민기’, 한국 포크의 역사가 되다

곽병찬 언론인

chankb19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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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영어의 ‘포크송(folk song)’이란 우리말의 ‘민요’에 해당한다. 다만 포크송에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전승민요는 물론이고 민요풍의 새로운 창작곡까지 모두 포함한다. 후자를 별도의 장르로 구분해 붙인 명칭이 ‘컨템포러리 포크 뮤직’이다. 모던 포크송(혹은 ‘모던 포크’)이라고도 한다.

창작 포크라 해도, 자신이 속한 국가와 민족의 음악적 전통 속에서 나의 삶과 세상에 관한 나의 이야기, 감정,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포크의 전통을 잇는다. 따라서 지역과 민족의 역사적 특징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특정한 포크송을 지칭할 때 미국 포크, 아일랜드 포크 등 국적이 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크는 이와 함께 작가의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 그리고 가사의 문학성을 중시한다. 문학과 음악의 융합을 지향하는 셈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포크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이런 맥락에서다. 특정한 시대적 상황과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젊은이, 무언가 말하고 외치고 털어놓고 싶은 젊은이들이 포크에 빠져들기 쉬운 건 이 때문이다. 몸은 물론 생각과 정신까지도 모두 국가가 통제하는 상황에 던져진 이들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196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불리던 포크송은 대부분 ‘미국 포크’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시대 상황을 이야기하는 노래라면 ‘한국 포크’라고 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노래가 없었다.

1971년 11월 발매된 앨범 김민기는 한국 창작 포크의 출발점이자 ‘한국 포크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2025년 11월 발매한 앨범 김민기 복각 LP 판 이미지. 출처 :학전 제공

당시 대중가요계를 양분하고 있던 것은 트로트와 서구의 팝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지배적 장르가 되었고, 해방 후에도 그 기반이 공고했던 트로트는 일본의 전통 음계인 ‘요나누키(よなぬき) 단음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 열이면 아홉 사랑 타령이나 애상에 매몰돼 있어 포크의 본령에서 벗어나 있다.

모던 포크는 196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밀려왔다. 처음엔 외국어 그대로 불렸다. 1960년대 후반부터 우리말로 된 포크송이 등장했지만, 열이면 아홉 우리말로 번안한 미국 포크송이었다. ‘한국 포크’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리 대중음악계가 ‘한국 포크’의 시작 혹은 원조를 누구의 어떤 노래 혹은 음반으로 잡을 것인지 적잖이 고민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논쟁적인 주제는 김민기의 등장과 함께 깔끔하게 해결됐다. 김민기의 첫 앨범 <김민기>를 ‘원조’로 꼽는데 이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민기가 ‘한국 포크’의 원조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 팔 할이었다. 청개구리 홀에서 이백천이 공연을 진행할 때였다. 미국 팝송과 번안 포크를 소개하는 게 일이었던 그였으니 진행 중에 영어가 튀어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마침 홀 한구석에 김민기가 있었다. 좀체 말을 섞지 않던 그가 이백천이 진행하는 중에 툭 튀어나왔다. 그것도 하늘 같은 선배에게 당돌하게도 ‘딴지를 거칠게 걸’더란다.

“영어가 아니면 진행이 안 되나요?”

“우리말 놔두고 왜 영어를 쓰는 거죠?”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끈다고 자부하던 터에 새파란 후배에게 면박을 당했으니, 이백천으로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여전히 수양이 모자라나 보다. 한국어를 제대로 몰라 영어를 썼으니 양해해달라”고 얼버무리고 진행을 끝냈다.

며칠 뒤였다. 이백천이 청개구리 홀에서 공연을 진행하는데 그날도 김민기가 앉아 있더란다. 이백천도 빚지고는 못 참는 성격이었다. 김민기에게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청했다. 김민기가 부른 노래는 아니나 다를까, 밥 딜런(Bob Dylan)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이었다. 이백천이 점잖은 한 방으로 복수를 했다. “우리말로 부를 만한 노래는 없을까?”

당시 포크 가수들은 열이면 열, 원곡이나 기껏해야 번안곡을 불렀으니, 자작곡이랄 게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김민기는 무안했다. 두 사람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 풋내기의 발칙한 도발과 유명인의 뒤끝 작렬로 말미암은 이 해프닝은 한국 가요사의 중대한 전기가 된다. 다음은 김민기의 기억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그때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지지 않고 맞서더란 거예요. ‘너도 영어 노래 부르네’라고 하길래 지지 않고 ‘그건 내가 보컬을 따라 반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나도 내 노래가 있다’라고 하더래요.” “이백천 선배도 지지 않고, ‘그래? 그럼 해 봐’라고 부추겼구요.”

1주일 뒤 김민기는 1968년 작곡하고는 책상 서랍에 꼭꼭 숨겨두었던 ‘친구’를 들고나왔다. 이 노래를 듣고 이백천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꼭 샹송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랑이니 이별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래였고.”

마침 그 자리에 김진성 CBS 피디가 있었고, 그는 다짜고짜 김민기를 스튜디오로 불러 ‘친구’를 방송용으로 녹음했으며, 이후 ‘친구’는 CBS 음악 프로그램에서 마치 오프닝이나 엔딩 노래라도 되는 것처럼 흘러나왔다. ‘친구’는 ‘한국 포크’ 가운데 처음으로 전파를 타고 또 ‘인기 가요’가 되었다.

김민기가 그림만큼이나 작곡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그 결실은 이듬해 발매된 앨범 <김민기>로 맺었다. 이 앨범은 전체 10곡 가운데 8곡이 김민기의 자작곡이었다. 자작 포크 앨범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었다. 이후 방의경, 송창식, 한대수, 김의철 등의 자작 포크 앨범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김민기가 ‘한국 포크의 효시’로, 1971년이 ‘한국 포크의 원년’으로 기록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한대수는 1969년 ‘행복의 나라로’ 등을 통해 번안 포크 일색인 한국 포크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사진은 한국에서 가수활동을 시작할 무렵의 청년 한대수. 출처:미주뉴스엔조이

포크의 싱어송라이터 계보만 따진다면 김민기보다 앞선 이가 있었다. ‘친구’가 전혀 뜻하지 않은 해프닝으로 세상에 나와 방송을 타기 1년 전인 1969년 9월 19일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한대수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노래 ‘행복의 나라로’, ‘옥의 슬픔’ 등을 발표했다. 미국 체류 중 지은 것이긴 하지만, 노래가 전하는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시대 상황과 젊은이들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대변하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장막에 겹겹이 둘러쳐진 것처럼 암울했고, 청년들은 그 장막을 찢어버리고 대명천지의 자유로운 광장으로, 미래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한대수가 이런 정서를 표현한 건 아니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이 노래에 감정이입을 했다.

그러나 그는 ‘쎄시봉’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71년 입대하면서 노래 판에선 잊혔다. 1974년 말 그이 첫 음반 <멀고 먼 길>이 나올 때까지 무대에서건 방송에서건 그의 노래는 들을 수 없었다. 평소 성정으로 보아 ‘원조’ 타이틀은 김민기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지만, 한대수로서는 어쩌면 아쉬운 일이겠다.

앨범 <김민기> 발매의 영향은 컸다. 이후 우리 음악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어법으로 노래를 짓고 노래하는 포크송 싱어송라이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김민기보다 앞서 가요계에 진출한 송창식이나 서유석, 윤형주를 비롯해 김민기와 비슷한 시기에 노래하기 시작한 김광희, 방의경 등이 잇따라 자작곡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창작의 열풍 배경에는, 방아쇠 노릇을 한 김민기의 노래들과 자작곡의 실험실이 되어준 청개구리 홀 그리고 통기타라는 전천후 도구가 있었다. 통기타는 자작 ‘한국 포크’ 생산의 설비이자, 공연의 도구이고, 유통의 동력이었다. 김민기는 물론이고 방의경, 김광희 등 신예들은 바로 이 통기타 덕분에 노래를 짓고, 혼자서 반주하며 노래할 수 있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중가요 시장은 전통적인 트로트와 미국에서 밀려온 록, 소울, 발라드, 재즈 등 팝이 양분하고 있었다. 트로트는 이미자, 남진, 문주란 하춘화 등이, 팝은 패티킴, 신중현, 윤항기 윤복희 형제 등이 시장을 이끌었다. 모두 밴드가 필요한 노래였다.

당시 트로트건 팝이건 가요계를 이끄는 ‘큰손’은 (밴드를 이끄는) 작곡가였다. 트로트의 박춘석, 백영호 그리고 팝의 손석우, 이봉조, 길옥윤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20명 안팎의 ‘빅밴드’의 악단장을 겸하며, 가수를 선택하고 육성하는 프로듀서 역할까지 했다. ‘박춘석 사단’ 혹은 ‘이봉조 사단’ 등이 가요계를 쥐락펴락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1964년 신중현이 6~7명 규모(‘캄보 밴드’)의 록 밴드 ‘애드훠’를 이끌고 나타난 이후 록 그룹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빅밴드는 캄보 밴드에 자리를 넘겨주기 시작했지만, 작곡자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작곡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가창력이 훌륭해도 곡을 받을 수 없었고, 무대에 설 수도 없었고, 방송 출연도 불가능했다.

대중음악의 이런 생산 및 공연 그리고 유통 구조에 제3의 길을 열어준 것이 통기타였다. 포크는 민요가 그렇듯이 간단한 어쿠스틱 악기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했기에 포크 가수들은 통기타만 잘 다루면 다른 연주자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능력만 된다면 언제든 자신의 노래를 만들 수도 있었다.

작곡이 힘들다면 무진장 널려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포크를 부를 수도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저작권 계약을 맺을 필요도 없었고, 로얄티를 지급할 일도 없었다. 60년대 중후반 통기타가 대중화하면서, 번안곡 위주의 포크 음악이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당시 청년들은 트로트에 진력이 나 있었다. 허구한 날 울며 짜고 매달리는 노래를 듣느니, 차라리 무슨 뜻인지 모르고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도 팝송을 선택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선 영어 가사 몇 줄 읊조리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중고생조차 악보의 마디마다 기타 코드가 적힌 조잡한 포켓 판 팝송 책을 한 권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포크의 유행과 함께 통기타 바람도 거셌다. 1969년 서울에만 기타 학원이 무려 40여 개에 이르렀다. 수강생들이 부르는 노래는 포크였다.

1969년은 미국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린 해였다. 베트남 전쟁에 염증이 난 젊은이들은 반전 평화의 기치 아래 기성의 권위를 거부하는 히피 문화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 유행을 앞장서 이끈 것이 포크와 록이었다. 그해 8월 베델 평원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는 50여 만 명이 몰려들어 텐트에서 먹고 자며 록과 포크로 반전과 평화를 외쳤다.

그해 우리의 문화방송, CBS, 동아방송, 동양방송 등 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음악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신설했다. 주로 포크와 록, 소울 등을 소개한 이 프로그램들은 얼마지 않아 청취율 상위권을 휩쓸며 심야 음악방송 전성시대를 열었다. 얼마나 인기였으면,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는 톱 탤런트 못지않은 당대의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외국 노래다 보니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알아듣거나 따라 부르기 힘들었고, 감정을 살리기는 더 힘들었다. 특히 메시지가 중요한 포크의 경우 더 그랬다. 1960년대 후반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등 포크계의 ‘아이돌’들이 주로 미국 포크를 우리 정서에 맞게 개사해 부르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었다. 이른바 ‘번안 포크’였다.

한때 ‘음유 시인’으로까지 불렸던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 ‘사모하는 마음’이 그렇고, 최고의 청춘스타로 떠올랐던 2인조 남성 포크 그룹 트윈폴리오의 ‘두 개의 작은 별’과 ‘케세라’,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의 ‘어린 시절’, 송창식의 ‘사랑’,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등 당대의 히트곡은 대부분 번안 포크였다. 조영남 하면 떠오르는 ‘내 고향 충청도’ 역시 올리비아 뉴튼 존의 ‘더 뱅크스 오브 오하이오’를 번안한 것이었다.

이런 번안 풍토에 충격을 준 게 앞서 소개한 한대수였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돌아온 한대수는 스무 살 되던 1968년 송창식·윤형주·조영남이 등판하던 ‘쎄시봉’ 무대에 섰고, 1969년 9월 송창식 등의 도움을 받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팝송 혹은 포크의 본바닥 물을 먹고 들어온 그의 무대는, 등장하는 장면부터 한국의 대중음악계에는 충격이었다. 조명이 완전히 꺼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다가 어디선가 향이 피어오르면서, 한대수는 커다란 톱을 연주하며 나타났다. 그가 이날 부른 노래 ‘행복의 나라로’ 역시 충격적이었다. 다른 출연자들이 부른 ‘말랑말랑하고 달착지근한’ 노래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장막을 찢는’ 것들이었다. 이로써 한대수는 번안 포크에서 창작 포크로 넘어가는 발판이 되었다.

한대수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번안 포크 시장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한 이가 김민기였다. 청개구리 홀에서 잇따라 소개한 그의 노래들은 ‘한국 포크’의 원조로 평가되는 앨범 <김민기>(1971년 11월 발매)에 실렸다. 앨범 <김민기>의 10곡은 김민기의 자작곡 8곡과 한대수의 ‘바람과 나’, 최경식이 번안한 ‘저 부는 바람’으로 이루어졌다. ‘바람과 나’는 한대수가 김민기의 앨범 제작을 위해 지은 노래였다.

이 앨범에는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색소폰, 오르간, 플루트 등의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었고, 클래식에서 재즈, 포크록까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재즈 뮤지션 정성조에 힘입은 바 컸다. 정성조는 앨범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편곡과 연주는 물론 반주를 맡은 ‘정성조 콰르텟’을 이끌고 있었다. 정성조는 앨범 <김민기> 앞서 양희은 1집, <김민기> 이후엔 한대수, 쉐그린 등의 당대의 명반 제작에서 편곡과 연주 등 세션을 맡았다.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 포크 1세대로서는 자존심이 잔뜩 상했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정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할 때 다시 한번 이 선배들을 자극한 후배 가수가 있었으니, 방의경이었다. 김민기와 함께 청개구리 홀을 창작 포크 공작소로 이끌었고,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노래에 담으려 했던 이였다. 그는 앨범 <김민기>가 나온 이듬해인 1972년 자작곡 10곡을 모아 앨범 <내 노래 모음>을 발매했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로는 방의경과 비슷한 시기 ‘그리운 사람끼리’ ‘모닥불’ 등을 노래한 박인희가 있었지만, 자작곡 앨범을 낸 것은 방의경이 처음이었다. 방의경의 첫 앨범 역시 ‘불나무’ 등 ‘불온한’ 노래로 말미암아 앨범 <김민기>처럼 출시하자마자 수거되고, 방송 금지를 당했다.

방의경은 김민기와 함께 청개구리 홀에서 창작 포크의 지평을 넓혔고, 1972년 자작곡집을 내며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새 길을 열었다. 사진은 40년만인 2011년 발매한 방의경 복각 음반. 출처:알라딘

김민기와 방의경은 청개구리 홀을 단순히 발표하는 무대가 아니라, 함께 노래를 짓고 다듬고 발표하는 무대로 바꿔나갔다. 그런 노력은 1971년 초 열린 창작 포크송 페스티벌로 결실을 보았다. 이 페스티벌에는 ‘새로운 노래’에 관심을 가진 가수들이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한국 포크’ 운동의 기폭제였다.

앨범 <김민기>는 지금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을 선정할 때면 꼭 상위권에 올랐다. 1998년 음악 잡지 <서브>가 선정한 100대 명반 리스트에선 13번째에 올랐고, 2007년 가슴네트워크가 기획하고 선정한 100대 명반 리스트에는 세 번째로 올랐으며, 2018년 음원 서비스 <멜론>, 일간지 <한겨레>와 음악 전문 출판사 <태림스코어>가 공동 기획한 100대 명반 리스트에선 네 번째로 올랐다. 이들 리스트에 오른 음반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은 <김민기>였다. <김민기>는 한국 현대 대중음악의 향도가 되고 길이 되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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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이재명 정부...성장 중심 경제 정책의 한계

[소셜 코리아] 불평등 심화와 AI시대, 복지국가 청사진 절실

26.04.15 06:47최종 업데이트 26.04.15 06:47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불평등이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격차는 줄지 않고,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불안은 기술 변화와 산업 재편 속에서 더 넓게 확산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 위기의 무게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정부가 앞세우는 것은 성장·투자·인공지능(AI)·산업전환·지역 활성화이다. 반면 복지·재분배·사회보험·실업보호·돌봄은 늘 뒤로 밀린다. 성장이 본문이고 복지는 부록인 듯하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출신이어서인지 보건 분야만 집중하는 것 같다. 통합돌봄 정책이 있긴 하지만, 사회복지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비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청와대에서 이 분야를 담당하는 사회수석의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국정에서 사회복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희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조화된 불평등, 기회와 선택권 격차로 이어져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 및 소득 5분위배율 추이(2019~2024년)가계금융복지조사(2026년)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의 소득분배 지표를 보면 최근 분배 상황이 다시 악화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빼고 이전소득을 더한 뒤의 분배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5분위배율은 상위 20%와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격차를 나타낸다. 이 지표들이 최근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장에서 벌어진 격차를 완충하는 재정과 복지의 역할이 약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산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순자산 지니계수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최근 들어 그 폭은 더 커졌다.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 가운데 자산 불평등까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단순한 경기 국면이 아니라 구조적 양극화의 심화 국면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순자산 지니계수의 추이(2017~2025년)가계금융복지조사(2026년)

문재인 정부 시절 유행했던 '벼락 거지'라는 말이 상징하듯,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이미 거대한 현실이 됐다. 최근에는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식·채권·펀드·예금 같은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은 금리 변화와 자산시장 회복, 배당과 이자 수익의 혜택을 누리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다시 기회를 만든다. 금융자산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사람은 물가 상승과 대출 부담, 경기 변동의 충격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함께 보유한 계층은 상승기뿐 아니라 조정기에도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강하다. 무주택이면서 금융자산도 부족한 계층은 전월세 부담, 금리 변화, 소득 충격을 더 직접적으로 짊어진다. 결국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함께 가진 계층과 어느 쪽도 갖지 못한 계층 사이의 복합적 격차로 나타난다. 이 차이는 재산의 양을 넘어 기회와 선택권의 격차로 이어진다.

자산 불평등을 더 우려하게 만드는 것은 저출생이다. 과거에는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여러 자녀를 두면 상속과 증여 과정에서 자산이 어느 정도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세대 안에서 자산이 나뉘는 기제로 작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자녀 가구가 늘면서 이런 분산 효과가 크게 약해지고 있다. 부모 세대가 축적한 주택과 금융자산이 한 자녀에게 집중적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자산의 집중화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자산 격차는 교육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고, 교육 격차는 다시 노동시장의 성과 차이로 연결된다. 그 차이는 노후 준비와 자녀 세대의 출발선 격차로 번진다. 결국 불평등은 소득·자산·교육·주거·건강·돌봄·노후를 관통하는 하나의 연결된 구조가 된다.

이런 사회 구조 앞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성장의 과실이 나중에 흘러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기회를 재배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더 두터운 복지국가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런 복지국가의 비전은 선명하지 않다.

국정에 복지가 안 보인다… 기술적 진보 비용은 제도의 문제

정부의 발표를 보면 취약계층 지원, 생계보호 강화, 안전망 확충, 비정형 노동자 보호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국정의 중심 철학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장동력 회복이 우선이고, 투자 확대가 핵심이며, AI와 산업정책이 미래의 해법이다. 복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하는 보완 장치에 그치고 있다.

소득재분배가 뒷받침되지 않은 성장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미 강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몰아주고, 약한 사람에게는 더 큰 적응 비용을 떠넘긴다.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은 정책 변화와 시장 변동 속에서도 새로운 수익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충격을 완충할 장치 없이 더 쉽게 흔들린다. 정부가 자산시장과 주가의 반응에는 민감하면서도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소극적일 때, 정책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은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저절로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을 비판한다.생각의힘

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가 던지는 경고는 그래서 더 무겁다. 두 경제학자는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저절로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을 비판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기술적 진보는 자동으로 분배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고, 그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변화의 비용을 누가 떠안는가는 결국 권력과 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하고 안전망이 빈약할 때 기술혁신은 다수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소수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성장과 혁신이 공동의 번영으로 이어지려면 국가는 그 과실의 분배 구조를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술 변화가 빠를수록, 시장의 파괴력이 클수록, 국가의 사회정책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이 바로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정부는 AI와 첨단산업, 생산성 혁신과 산업구조 개편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 변화가 커질수록 전면에 나와야 하는 것은 복지와 안전망이다.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은 일부에게는 기회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해고·전직·소득 감소·경력 단절·노동의 불안정화를 뜻할 수 있다.

이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실직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소득 보전 체계,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재교육과 전직 지원, 의료와 돌봄의 공백을 메울 공공 체계, 주거비 부담을 낮출 제도를 함께 내놓는 것이다. 이런 장치 없이 기술 혁신만 앞세우는 정부는 강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약한 사람에게는 더 빠른 불안을 제공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고용유연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제 인식 자체는 옳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려면, 해고와 전직의 위험이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직장을 잃는 순간 집세와 대출 상환, 교육비와 의료비, 돌봄 부담이 한꺼번에 짓누르는 사회에서 유연화는 개혁이 아니라 공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아직 적당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했다.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단시간 노동자·특수고용 노동자의 상당수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중장년층 전직 지원은 약하고, 상병으로 일하지 못할 때 버틸 소득 보장 체계도 충분하지 않다.

국가가 먼저 "일자리를 잃어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를 증명한 뒤에야 유연화는 사회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유연화의 필요성은 말하면서도, 그것을 감당할 사회적 기반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정책적 취약점이 있다. 복지국가의 상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복지의 청사진을 주도해야 할 사회수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선순위서 밀린 복지… 국정 중심으로 끌어올리자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1기 출범을 맞이해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잠재 위험은 성장의 과실이 사회에 퍼지지 못하고, 불평등이 계층이동의 희망을 무너뜨리며, 노동자와 청년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 복지가 약한 사회에서 성장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내수 소비 기반은 취약해지고, 교육 기회는 세습되며, 정치적 분노는 커지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약해진다.

양극화 극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복지가 국정의 맨 앞줄은 아니더라도 맨 뒤에 처져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고용보험 확대, 상병수당 제도화,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 청년·무주택층 주거 안정, 중장년 전직 훈련 확충,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사회보험 편입 같은 청사진을 전면에 놓아야 한다.

아울러 금융자산이 거의 없는 계층에게도 장기 저축이나 매칭형 지원 등을 통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 기회를 넓혀야 한다. 지금 한국의 격차는 집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과 근로소득만으로 오늘을 버티는 사람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

정치의 역할은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을 위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장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공동으로 분담하게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기술과 성장의 속도를 자랑하는 정부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끝까지 붙드는 정부여야 한다. 성장은 자동으로 공동 번영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결국 제도다.

AI와 산업전환을 말하려면 그보다 먼저 변화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답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말하려면 그보다 먼저 안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면 취약계층 지원 몇 가지를 나열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소득과 자산, 고용과 주거, 돌봄과 노후를 함께 다루는 구조적 복지 개혁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복지를 국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은 양극화를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양극화를 관리하는 정책에 머물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장의 약속만이 아니다. 그 성장 속에서 자신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사회수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불평등과 사회복지 의제를 이끌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본인

필자 소개 : 우석진은 현재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로 있습니다. 명지대 빅데이터연구소 소장,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재정학회 이사,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방문교수,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이재명복지 #보건복지부장관 #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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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꺾으려던 트럼프, 미국 몰락 앞당기나…포춘 "영국 몰락 수에즈 위기와 판박이"

유가 부담 커지며 "로마 제국 경제 붕괴되듯" 미 경제 위기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4.14. 18:56:25 최종수정 2026.04.14. 21:37: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서면서 이를 둘러싼 긴장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 당국에서도 향후 몇 주 내에 유가가 정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유가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이란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몰락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세마포어 월드 이코노미 포럼'에서 "유가의 정점이 아마 몇 주 안에 나타날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의미 있는 선박 통행이 재개되기 전까지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걸프 국가들이 여전히 세계 에너지의 생명선 중 하나"라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의 석유 수출량은 늘어나지만 소비자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원자재 및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인 클레플러(Kpler)를 인용해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이달 하루 500만 배럴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다만 신문은 "미국이 원유와 가스 수출을 늘리고 재고를 소진한다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신문은 전미자동차협회(AAA)를 인용, 이날 기준 미 전국 일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13달러로 지난주보다 3센트 하락했지만 전쟁 발발 당시보다는 1.15달러 상승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수출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라며 "셰일 원유 생산 업체들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신규 시추 장비 증설을 꺼리고 있다. 이는 원유 및 기타 석유 제품 재고 감소로 이어져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하여야 할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하락하는 가운데 이를 "로마 제국 경제의 붕괴"와 비교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13일 컨설팅 회사인 전략자원그룹(Strategic Resource Group)에서 오랜 기간 소매 유통 마케팅 등을 분석했던 버트 플리킹거 3세 디렉터가 현재 미국 소비자의 시장 신뢰도가 하락세라며 이같이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3월 신뢰도 수치가 지난 5년 중 최저 수준이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2022년 6월의 역대 최저치에서 불과 3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면서 "이처럼 여러 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플리킹거 디렉터는 지난 70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이 의료비, 지방세, 부채 상환, 식비, 주택비, 교통비, 공과금, 보험료, 유흥비, 휴대전화비, 의류비, 교육비 등 12가지 주요 월간 지출 항목에 동시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만으로도 "모든 미국인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산운용사인 스라이번트 파이낸셜의 데이비드 로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힘든 시기였다"라며 "소비자들의 신뢰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열 CIO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충격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미치지 않는다면서 휘발유 급등 등은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전쟁 발발 6주 차에 미 정부 당국이 사실상 (전쟁을) 통제하지 못하는 협상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1956년 영국이 세계 패권자리에서 내려오게 되고 미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결정적 사건인 수에즈 운하 위기와 현재 미국의 이란 공격이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려는 이집트를 공격했는데, 미국과 소련은 이들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압력을 넣었고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빼고 철수하게 됐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 질서가 형성됐다.

매체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절박한 국가, 공모자인 이스라엘, 전략적 수로, 모두가 쉽게 항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적, 당시 미국 행정부가 소집조차 하지 않았던 동맹국들" 등을 고려했을 때 그때의 영국 및 프랑스 상황과 지금 미국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1956년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고 지역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운하를 봉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동맹국들을 격분시킨 임박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해야만 했다"라며 "이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맹국들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몇 달 만에 영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앤서니 이든 총리는 사임했으며, 영국의 강대국 시대는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라며 미국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매체는 "결국 이 사태(미국-이란 전쟁)의 실질적인 주도권은 중국에 있다"라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역할을 중국이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 중동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애런 제이크스 시카고대학교 부교수는 매체에 미국과 이란 전쟁을 "수에즈 위기의 뒤집힌 버전"이라고 규정했다.

매체는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이 전쟁에 나선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중동에서 파운드화로 결제되는 석유 판매에 기반한 파운드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었지만 "전쟁에 돌입한 것은 오히려 그 통화 체제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짚었다.

제이크스 부교수는 "미국이 걸프 지역에서의 지배력을 재확립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이란에 위안화나 암호화폐 등 달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라며 "이번 전쟁은 영국이 전쟁을 결정할 당시 피하려고 했던 바로 그 유형의 문제를 오히려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 6주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겨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체는 "물론, 이것만으로 달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수로나 하나의 통행료 제도가 '페트로달러'(petro-dollar, 석유를 팔아 얻은 달러. 달러로만 석유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하는 체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라며 "하지만 이란이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다면, 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이크스 부교수는 "이런 일은 나중에 역사가들이 (미 제국주의의)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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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삼성생명, ‘정보 유출 막는다’며 직원 PC에 모션인식 카메라 설치···“사실상 근태 감시” 와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4/15 08:32
  • 수정일
    2026/04/15 08: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수정 2026.04.15 06:24

임직원 80여명에 시범 적용···상반기 확대 예정

직원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설치 강요” 반발

법조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소지’ 지적

사측 “보안사고 방지용···노조와 지속 협의 중”

일러스트┃NEWS IMAGE

삼성생명이 올 상반기 안에 일부 직원 PC(개인용 컴퓨터)에 모션인식(특정 행위 감지) 카메라를 설치해 정보유출 등 부정행위를 잡아내기로 했다. 사측은 타인이 PC를 사용하거나, 휴대전화로 화면을 촬영하는 행위 등에 국한된다고 설명하는데 직원들은 “사실상 동의 없이 실시간 감시를 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14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올해 1월부터 임직원 80여명에게 시범 적용 중인 모션인식 프로그램을 상반기 내 고객정보를 다루는 주요 부서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현업에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해 70여명을 대상으로 테스트 했는데, 프로그램 설치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은 제외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PC에 설치되면, 직원들은 PC와 사내 프로그램에 안면인식 등 생체정보를 통해 접속해야 한다. 또 설치된 카메라와 모션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모니터 화면을 찍는 행위, 담당 직원이 아닌 사람이 PC를 사용하는 행위를 감지해 전자 정보 형태로 기록한다.

사측은 도입 취지가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고, 근태를 상시 감시하려는 취지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근무 과정을 영상·사진으로 남기거나, 자리비움을 기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최근 고객 정보 유출 사고가 카드사 등에서 발생하면서 이러한 모션인식 프로그램을 금융계에서 많이 도입하고 있다”며 “확대 도입 전 노조와 협의 중이고, 개인정보 수집 동의도 모두 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부서 이동 등으로 근무를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삼성생명 게시판에는 모션인식 카메라 설치에 항의하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다. “카메라 설치 정말 괜찮으신가요?” 제목의 글에서 작성자는 “노조에 충분한 설명을 했다는데 임직원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하고 카메라 설치 및 프로그램 설치를 강요받고 있네요. 이게 정말 다들 괜찮으신가요?”라고 밝혔다.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거나 설치를 거부할 경우, 상급자가 요청하는 식으로 해서 사실상 프로그램 설치가 강제된다는 취지의 댓글도 올라왔다.

최근 홍채, 지문, 안면인식 기술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근로 관리·감독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에 기업 편의를 위해 노동자의 생체정보 보호권리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공평한 노사관계 탓에 노동자가 생체정보 수집을 거부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을 때는 정보주체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체정보는 민감정보인데도, 사측 요구에 따르지 않을 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어 현행법상 권리도 누리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경아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기술 발전에 따라 법 제도도 개선해야겠지만 현행법이라도 제대로 준수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며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개별 노동자가 회사의 요구를 거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항목과 선택항목조차 구분하지 않은 채 동의만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고, 철회가 가능하다는 점도 안내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회사가 수집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고 (제3자에) 제공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 역시 문제”라고 말했다.

법원은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어도, 거부할 시 불이익을 예고했다면 적법한 동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HD현대중공업 노조는 2024년 4월 사측이 울산조선소에 안면인식 출입시스템과 폐쇄회로(CC)TV 기능이 있는 화재감지기를 설치하자, 이를 무단 철거했고 업무방해 및 특수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됐다.

울산지법은 지난 1월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정당행위였다”며 노조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근로관계에서 근로자는 사용자와 비교하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근로자가 갖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그 보호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사용자로부터 다른 대체수단 없이 자신의 민감정보인 안면인식 정보를 일률적으로 제공하기를 요구받는 것은 중대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 및 행사가 문제 되는 사항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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