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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종묘 사적 이용 때문에 '이성계 고조부 신실' 개방

2024년 9월 3일 휴관일 김씨 일행 방문 때 '목조 제1신실' 개방 확인...유네스코 문화유산, 평소 출입 통제

김지현(diediedie)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받는 김건희(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아내)씨가 8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대기 장소인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김건희씨의 세계문화유산 종묘 사적 이용의 절정은 조선 왕실 최고의 신성한 장소인 종묘 영녕전 내 '목조' 신실 개방이었다. 목조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다. 영부인이라는 지위를 남용한 신실 개방 행위는 윤석열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9월 3일 종묘 영녕전 내 어느 신실이 열렸는지'를 국가유산청에 질의했다. 2일 국가유산청 측은 "목조(穆祖)를 모신 제1신실"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당시 외국인 2명 등과 함께 어느 신실을 방문했는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다만 김씨 일행 중 신실 내부에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목조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로 조선의 추존 왕이다. 고려에서 문신을 지냈다.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 왕조에 있어 대대로 매우 신성한 곳인 영녕전은 1985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또한 영녕전을 포함한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녕전은 평소 관람 및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곳으로 통상 신실은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대제와 11월 첫째 주 토요일 추향대제 행사 때에만 열린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허민 청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김씨 종묘 사적 이용 건을 자체 감찰하다가 김건희특검(민중기 특별검사)의 수사 개시로 현재 내부 감찰이 중단된 상태다.

태조 이성계 고조부 신주 모신 신실 열려


▲2024년 5월 5일 국가 사당이자 세계유산인 서울 종로구 종묘 영녕전에서 종묘대제가 진행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제례의식이다. ⓒ 연합뉴스

김씨의 종묘 영녕전 신실 방문 사실은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문체위 소속)이 2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해당 자료 내용을 종합하면 종묘 휴관일인 2024년 9월 3일 오후 2시 50분께 김건희씨와 외국인 2명, 궁능유적본부장 이재필씨, 통역사가 방문했다. 이들은 일반인이 출입하는 곳이 아닌 비상시 사용하는 소방문을 통해 출입했다. 김씨 등은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했고,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진행했다.

종묘 방문을 위해 대통령실까지 나섰다. 차담회 하루 전인 2024년 9월 2일 사전점검이 이뤄졌는데, 이 자리에는 대통령실 문체비서관실 비서관도 참여한 것으로 국가유산청은 파악했다.

"문체비서관실이 김씨 동선과 관련해 영녕전 1신실 개방을 요구했다"는 게 국가유산청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대통령실은 의자·가구 제공 및 배치, 꽃장식 제공, 다과 준비 장소(냉장고) 설치, 창덕궁·경복궁 행사물품 설치, 형광등 교체를 국가유산청 궁능관리본부 측에 요구했다. 지시를 하달받은 종묘관리소는 차담회 전날 청소 등 시설정비에 나섰고, 이때 병풍도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임오경 의원은 "김건희씨 일행의 사적 사용을 위해 신실 개방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라며 "위법성을 떠나 영부인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사안이 국가유산 사적사용으로 결론나면 김건희씨에게 비용 및 손해배상 청구하고 담당자들은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라면서 "특검과는 별도로 이번 국정감사에서 명확히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영녕전은 조선 왕실의 신주가 봉안된 공간으로서 신실은 제례와 보존 관리 이외의 목적으로 개방할 수 없으며, 이러한 원칙을 엄격히 지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종묘#영녕전#이성계#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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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3년 반, 장기 교착과 확전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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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다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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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10.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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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발 3년 반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장은 동부 돈바스와 하르키우, 남부 자포리자 일대에서 여전히 격화되고 있다. 전체 전선은 교착 상태에 가까운 양상을 보인다.

전선의 특징은 대규모 돌파보다는 국지적 충돌과 소모전이다. 러시아는 동부지역 주요전선인 ‘오스킬 강’을 넘는 공세와 드론·미사일을 동원한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드론 공격을 이어가고 있으며 서방의 지원 확대를 통해 전세의 전환을 노리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있었던 푸틴-트럼프 회담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후, 유럽은 오히려 강경기조가 득세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폴란드 영공을 침범했다는 ‘러시아 드론 사건’은 나토(NATO)의 직접 대응 가능성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의 드론이 아니라는 입장이며 ‘러시아 악마화 캠페인’을 우려했다. 나토는 러시아 전투기가 동맹국 영토에 진입할 경우 격추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지만, 이는 곧 확전 가능성과 제3차 세계대전의 불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유럽 각국은 국방예산을 늘리고 ‘드론 방벽(Drone Wall)’과 방공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복지 삭감에 반발하는 자국민의 시위와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투스크 총리는 “이것이 우리의 전쟁임을 인식해야 한다”며 EU 회원국들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촉구하며 유럽의 강경한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최대 후원국이다. 최근 유엔총회 기간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러시아를 ‘종이호랑이’로 묘사하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빼앗은 모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면서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이며 나토의 적극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특히 토마호크 제공 문제를 두고는 신중한 입장이다. 러시아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넘어가면 이는 곧 미·러 직접 충돌의 위험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되 직접개입은 피한다’는 원칙 아래 지원을 조율하고 있다.

 

러시아는 135,000명 규모의 추가 징집령을 발표하며 장기전을 대비하는 모양새다. 전쟁으로 인한 부담에도 전시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전쟁 지속 능력을 확보하고 유럽의 제재에도 중국, 인도 등을 통한 에너지 수출 수익을 기반으로 국가적 역량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의 안보위기론을 부정하며, 오히려 유럽의 과장을 지적한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러시아는 나토와 EU를 공격할 의도가 없다”며 유럽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오히려 나토 회원국들에게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보 보장’을 마련하자고 거듭 제안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 쟁점에 모이고 있다. 첫째, 유럽과 나토가 군사적 지원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직접 참전에 나설지가 핵심 변수다. 둘째, 미국이 지원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 특히 러시아 본토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무기 제공 여부가 향후 국면의 변수가 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향후를 세 가지 경우로 전망한다. 첫째, 지금처럼 소모전이 이어지는 장기 교착국면 둘째, 피로도 누적과 재정 부담으로 인한 휴전과 평화협상에 나서는 경우다. 셋째는 가장 위험한 가능성으로 나토 동맹국과 연관된 군사적 사건으로 전쟁이 확전돼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경우다.

세계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이 전쟁이 계속되는 한 피해는 끝없이 누적되고, 불안은 유럽대륙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유럽이 이를 외면한 채 전쟁의 수렁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피해자는 결국 자국 국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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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경제 침탈’... 5개 정당 “미국 부당 강압에 강력히 맞설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10/03 07:28
  • 수정일
    2025/10/03 07:2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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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정당 의원들, ‘부당한 대미투자 요구 철회 촉구 기자회견’ 개최0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동맹무시 경제 침탈 부당한 대미투자 요구 철회 촉구 공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0.02 ⓒ민중의소리

더불어민주당 등 5개 정당 의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미투자 요구를 ‘동맹국에 대한 경제 침탈’이라고 규정하며 미국을 향해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침탈과 세계를 향한 수탈적 압박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5개 정당 소속 의원 13명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부당한 대미투자 요구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외환보유액의 84%에 달하는 3,500억달러를 현금 선불로 지급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파괴하는 무도한 압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와 관련해 ‘선불’을 강조하며 압박하고 있다”며 “이것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은 상관없으니, 경제적 항복 문서에 당장 서명하라는 명백한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러트닉 미국 상무부장관은 우리의 투자 규모를 일본 수준인 5,500억달러(한화 약 770조원)까지 늘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다”면서 “얼토당토않은 무도함을 넘어 경제적 수탈이자, 동맹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명백한 약탈”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미국의 부당한 관세 폭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당장 의약품에도 100% 품목 관세를 적용하고, 반도체의 수입 비중이 미국 내 생산을 넘어서면 100% 관세를 때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밖에서 제작된 영화에도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협박과 현금 강탈도 모자라서 미국이 도둑을 맞았다고 강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세계를 강탈하고 파괴하고 있는 쪽은 미국 자신이다.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세계를 배신한 자는 바로 트럼프의 미국”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는 미국의 불합리한 관세협박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그리고 이어질 안보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하고, 부당한 강압에는 불복종으로 강력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 미 대사관 찾아 부당한 대미출자 강요 규탄 ⓒ민중의소리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인 구금사태에 대한 날 선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미국은 부당한 대미투자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조지아주에서 우리 노동자들을 수갑과 사슬로 묶어 구금하고, 비인도적 처우로 고통을 준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면서 “그것이 동맹국인 한국을 존중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달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엘러벨에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사 직원 등 한국인 316명을 체포했다. 당시 미국 이민당국은 한국 노동자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손발을 수갑과 쇠사슬로 결박해 논란이 됐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대미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얘기했듯 현금 강탈에 가깝다”며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통상 압박이 마치 미국의 갱이 일정 보호구역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보호비를 갈취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이러한 방식의 현금 갈취는 승전국이 패전국에나 하는 짓이다. 우리는 동맹국이지 미국의 패전국이 아니다”라면서 “한미 동맹이 과한 요구를 하고 우리의 주권을 무시할 때는 분연히 일어나서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손솔 의원도 “미국 조지아주 사태를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미국이 대한민국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에 대해 국민들께 물음표가 생겼다”며 “그 이후로 이어지는 관세압박, 투자강요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께서 불안해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손 의원은 “온 국민이 걱정하고 분노하는 사안”이라며 “원내 정당들이 오늘 이곳에 모여 대미 투자 강요 철회를 촉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미국에)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솔 진보당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동맹무시 경제 침탈 부당한 대미투자 요구 철회 촉구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02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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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사유] 재판의 독립성이 국민의 주권 위에 있을 수 있을까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개입 의혹 관련 긴급현안 청문회’에 조 대법원장과 다른 증인들이 불출석했


12.3 내란이 가져온 해악과 혼란을 빠짐없이 열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지금 국가 체제 자체를 가장 흔들리게 만들고 있는 것을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아무 고민 없이 ‘사법 불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사법 불신은 법원 스스로가 자처했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반성적 태도가 없다는 점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담한 심경이 든 지 오래다. 내란과 같은 상황에서 국가를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 되어야 했던 사법부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지난 5월 1일 불과 대선을 1달 앞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자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말 그대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그간 판례 경향을 뒤집은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자체도 놀라웠지만,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판결에 이르는 절차의 속도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건이 접수되자마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순식간에 판결을 내렸는데 사건 접수 기준으로는 34일 만에, 재판부 사건 배부 기준으로는 9일 만에 판결이 이뤄진 것이다. 당연히 이재명 대통령의 상고심은 법원 역사상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판결해버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피고가 누구든 절차에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하물며 피고가 유력한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유무죄 판결 여부와 관계 없이 판결에 걸린 시간과 판결의 시점 만으로도 어느 한쪽으로부터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처럼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과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이는 지귀연 판사가 자신만의 괴상한 논리로 윤석열을 구속취소했던 사건과 함께 한국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의 사법 불신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정보공개센터는 이처럼 사법 불신의 발단이 된 이재명 상고심과 관련해서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행정심판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대법원 재판부가 심리와 합의를 할 때 재판연구관 보고서가 제공되는데, 이 보고서가 대법관들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보공개센터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재판연구관 보고서가 언제 작성되었는지, 언제 대법관들에게 배부되었는지, 그 분량은 얼마나 되는지를 법원행정처에 정보공개 청구했다. 이 정보들이 공개되면 재판부가 적절한 시간을 두고 숙고해 합의를 진행했는지 여부를 국민들이 보다 면밀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내용의 법원조직법 제65조를 근거로 ‘재판연구관 보고서에 대한 이런 기초정보들이 공개되면 불필요한 논란이 일게 되어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며 비공개 결정을 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법원행정처가 법원조직법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적용하고 있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재판에 대한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로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이다.

 

 

 

출근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자료사진 ⓒ뉴스1
그런데 법원이 국민의 알권리의 제한을 주장하며 강변하는 이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말이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법원은 판결에 신뢰가 가기 힘들 정도로 합의에 이르는 절차가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져 국민들로 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인데, 이런 비판을 불필요한 논란으로 치부하고 재판과 관련된 단순한 행정정보마저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법원이 국민과 여론의 비판 자체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법원의 인식은 다분히 권위주의적이며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말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는 차원에 머문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법원이 주장하고 있는 재판의 독립성은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적 가치, 국민의 감시와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재판의 독립성의 본질은 국민주권과 국민의 감시와 참여를 성립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국민주권과 국민의 감시와 참여와 같은 가치 보다 중요하거나 그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즉 진실한 의미의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부당한 권력의 압력과 영향으로부터 법관들과 사법부 구성원들이 견고한 양심과 윤리로써 지키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관심이 지대한 재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국민의 감시로부터 감춘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설령 이런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들의 의견이나 비판이 형성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되려 장기간 해결되지 않는 의혹과 책임 문제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더욱 장기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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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뜯는 '호구 동맹'은 끝났다...동맹관계 재정립, 지금 반드시 필요하다

평화너머, 11월 2일 부산에서 '제1회 한국평화주권대회' 개최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5.10.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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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평화너머)가 1일 오전 주한미군사령부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동창리 게이트 앞에서 주권과 국익을 강탈하는 종속적 한미동맹을 거부하는  기자회견과 행동전을 진행하고 오는 11월 2일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에서 '제1회 한국평화주권대회'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 울산시청, 경상남도 진해 미군기지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평화너머)가 1일 오전 주한미군사령부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동창리 게이트 앞에서 주권과 국익을 강탈하는 종속적 한미동맹을 거부하는 기자회견과 행동전을 진행하고 오는 11월 2일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에서 '제1회 한국평화주권대회'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 울산시청, 경상남도 진해 미군기지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관세협상에 이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이른바 '투자협상'에 '동맹현대화' 요구까지 동맹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요구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7월 한미 정상이 구두합의한 대미 투자 규모가 3,500억 달러(약 490조 원)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25일 일방적으로 한국의 투자는 관세를 인하한 전제조건이라며  '선불'(up front)이라고 못박았다. 

일부 현금에 대부분을 대출·보증 방식으로 조달하겠다는 한국의 입장과 달리 미국은 직접 자본 투자 또는 현금 지출 방식으로, 뿐만 아니라 투자규모도 더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이 투자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수익 배분도 일본식 모델(원금회수 전 5 : 5, 회수 후 미9 : 일1)을 압박하는 분위기이다.

올해부터 4년 동안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원유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에 1,000억 달러, 한국 민간기업들의 추가 투자 2,500억 달러 약속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렇다.

투자라고 말하지만 '강도적인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무리한 요구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어 '이런 동맹 필요없다'는 국민의 분노와 탄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평화너머)는 1일 오전 주한미군사령부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동창리 게이트 앞과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 울산시청, 경상남도 진해 미군기지에서 주권과 국익을 강탈하는 종속적 한미동맹을 거부하는 동시다발 기자회견과 행동전을 진행하고 오는 11월 2일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에서 '제1회 한국평화주권대회'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2년을 맞는 이날 전지예 평화너머 공동대표의 사회로 캠프 험프리스 동창리 게이트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동맹수탈은 지난 72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며, "한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을 중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 "종속적 한미동맹을 넘어 서는 길이 자주와 평화, 주권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강도적 대미투자 철회하고 한미동맹현대화 추진 중단하라! △종속적 한미동맹 필요없다, 한미동맹 해체하라! △미국의 '항공모함, 기지소유' 발언 철회하고 전략적 유연성 추진 중단하라! △한국의 대중국전쟁기지화 반대한다! △한반도 전쟁위기 부르는 한미연합훈련부터 중단하라!는 구호와 함께 앞으로 우리의 10월은 '한미동맹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한국노동자를 쇠사슬로 묶어 겁박하는 트럼프에게 평화주권의 망치로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준 상징의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노동자를 쇠사슬로 묶어 겁박하는 트럼프에게 평화주권의 망치로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준 상징의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화명 평화너머 서울대의원은 "대미 투자금액 3,500억 달러를 국민 한 사람 한사람으로 나눠보면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일할 수 없는 노인들까지 모든 국민이 1인당 1천만 원 정도씩 부담해야 할 액수"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아무 대가도 없이 미국을 위해 일하고 갖다바치라는, 한마디로 갈취하겠다는 이야기"라고 개탄했다.

"광장을 열어 무도한 대통령을 갈아치운 우리 국민들이 미국의 이런 부당한 요구를 가만히 앉아서 수용할 수는 없다"며, "트럼프의 강도적 요구를 막아내고 자주의 새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시작은 제1회 평화주권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욱 평화너머 대전세종충남본부 운영위원은 "미국은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어 대중국 전쟁을 벌이기 위해, 한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한국 영토밖에서 전쟁을 수행하도록 '동맹현대화'라는 포장을 씌워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국가주권을 유린하는 행위이자 내정간섭이다"이라고 하면서 "한반도는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 멋대로 남의 전쟁에 개입되지 않도록 한미, 한미일 전쟁연습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현 평화너머 서울대의원은 트럼프가 평택미군기지 부지소유권을 원한다고 한 언급에 대해 "평택기지는 건설 비용 약 10조원 중 90%가 한국 국민의 세금"이라며,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는 건 잠꼬대같은 소리라고 일갈했다.

또 극동 최북단의 미군기지이자 해외 미군 기지 중 최대 규모이며, 미군 전력의 신속한 전개가 가능한 평택기지를 미국이 소유하겠다는 건 "평택기지를 더욱 유연하게 운영하여 미중 대결의 전초기지로 사용하겠다는 목적이자 국방비 증액과 방위비 인상, 무기구매 확대 요구를 계속 제기하려는 의도"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영토, 군대, 인적·물적 자원 다 내놓으라는 이토록 무리하고 뻔뻔한 날강도 미국의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이 따위 동맹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이제 미국과의 호구동맹을 끝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선포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선포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연희 평화너머 공동대표는 최근 미국의 첨단 무기가 계속 국내 미군기지에 배치되면서 한반도는 상시적인 전쟁위기에 시달리고 있다며 "언제까지 우리가 대중국 전초기지로서 전쟁의 위기를 감당하면서 살아야 할지 이제 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랜디 조지 미 육군참모총장이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주한미군 제35 방공포병여단을 방문했을 당시 배치가 확인된 '간접화력방어능력'(IFPC, Indirect Fire Protection Capability) 체계, 군산공군기지에 상시배치된  MQ-9 리퍼(Reaper) 무인기와 미군 중령이 대대장을 맡은 제431원정 정찰대대 창설, 그리고 군산기지 상시배치가 검토중인 최신형 스텔스 F-35A 등에 관한 것. 

이 대표는 또 주한미군은 이같은 첨단무기와 새로운 작전계획, 그리고 다국적 연합군사훈련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은 '대중국 전초기지, 항공모함'의 처지를 벗어나지 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군사전략 실현을 위한 '동맹현대화'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우리 정부가 대미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안보보복이 우려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 수탈은 반드시 안보 수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 맞서지 않으면, 대미투자 철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동맹현대화'할 수 없다. 한국은 대중국기지·항공모함 기지 발언을 철회하라'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까지 끌려들어갈 지 알 수 없다는 것.

이 대표는 "한미동맹 72년을 맞아서 이제 불평등하고 종속적이기까지 한 한미 동맹을 재정립하기 위한 전 사회적인 운동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했다.

평화너머가 준비하는 제1회 한국평화주권대회는 11월 2일 부산 주한미군 55보급창에서 진행된다.

[선포문] (전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2년 
종속적 한미동맹을 넘어 평화주권의 길로 나아갑시
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동맹수탈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조지아 한국 노동자 체포구금, 3500억 달러 강도적인 대미투자 협박은 미국이 한미관계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트럼프의 관세협박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독 만만한 동맹, 수직적인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 일련의 사건들은 '이런 동맹 필요 없다' 우리 국민의 분노와 탄성을 터져 나오게 했습니다. 

동맹수탈은 지난 72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은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72년이 되는 날입니다. 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맺어진 한미동맹은 지난 72년 동안 한국 사회에 군림하며 유형무형의 영향을 행사해 왔습니다. 

주한미군은 우리 땅 구석구석에 기지를 두고 주둔하며 치외법권을 누려왔습니다. 기지는 우리 국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온갖 범죄와 인권유린, 환경파괴의 근원이 되어 왔습니다. 한국군의 실질적 작전통제권을 가진 주한미군과 주한미대사관이 4.19, 군사쿠데타와 5.18, 6월 항쟁 등 현대사의 모든 순간에 개입해 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지난 윤석열 내란사태까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은 냉전기 소련 봉쇄의 수단에서 현재는 대중국 봉쇄를 우선순위에 두는 미국의 군사안보전략 실현의 수단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한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 존재해 왔다는 신화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난 72년 동안 미국은 자국의 패권 이익을 위해 주둔해 왔고,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지금, 더 노골적인 개입과 수탈의 민낯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을 중단해야 합니다.
미국은 동맹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미국의 대중국봉쇄전략에 동원하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365일 전쟁연습이 진행되고, 수많은 첨단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로 결집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주둔의 목적도 훈련의 성격도 바뀌고 있습니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 항공모함’ 발언은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말입니다. 한국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만큼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동맹현대화 추진에 동의했고, 이미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한미동맹의 근거가 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차도 위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법제도적 통제를 벗어나 '한국군은 동원할 수 없다' 정도로 타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트럼프의 주한미군 기지소유 발언도 그렇습니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가자지구를 소유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트럼프가 어떤 의도에서 기지를 소유하겠다고 했는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기지 사용료 한 푼 내지 않고 지난 72년간 우리 땅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반환된 기지들의 환경오염 문제는 나 몰라라 한 채 자신들이 필요한 새로운 부지들을 골라가며, 세계 최대의 기지를 만든 미국입니다. 

군산 공항 활주로는 왜 미군의 소유이며, 왜 한국 땅에서 우리가 사용료를 내야 하는지 묻고 따져 바로 잡아야 합니다. 군산과 진해, 부산이 미국 해군 함정의 MRO(Maintenance, Repair, Operation)기지로, 또 다른 치외법권이자 조차지가 되는 것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주권국가로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모욕적인 발언과 주장들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됩니다.  

종속적 한미동맹을 넘어 서는 길이 자주와 평화, 주권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트럼프의 관세협박에 인도, 멕시코, 브라질과 캐나다 등 많은 나라들이 맞서고 있습니다. 나토와 한국, 일본. 이 특별한 동맹들만 수탈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관세와 제조업이지만 다음은 안보보복과 수탈입니다. 

미국의 군사전략을 위해 한반도를 신냉전 전쟁터로 내줄 수 없습니다. 하나를 내어주면 전체를 빼앗으려 드는 것이 한미동맹과 미국 패권의 본질입니다. 종속적인 한미동맹으로는 달라진 질서에서 주권과 평화는커녕 살아남을 수조차 없습니다. 동맹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 지금이야 말로 한미동맹을 넘어설 때입니다.

한미동맹과,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근거인 주한미군과 기지문제를 해결해야 온전한 자주국가로 설 수 있습니다. 당장 미국의 대미투자 압박에 맞서는 것부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는 11월 2일 한국평화주권대회는 자주와 평화주권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입니다. 위대한 민중항쟁의 역사를 가진 우리는 지난 윤석열 퇴진투쟁을 통해 또다시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종속적인 한미동맹과 결별하고, 평화와 주권을 위해 투쟁해왔던 지난 72년간의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자 나섭니다. 
한미동맹 72년, 10월은 트럼프 미국의 강도적 대미투자 철회와 한미동맹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강도적 대미투자 철회하고 한미동맹현대화 추진 중단하라!
종속적 한미동맹 필요없다, 한미동맹 해체하라! 
미국의 ‘항공모함, 기지소유’ 발언 철회하고 전략적 유연성 추진 중단하라! 
한국의 대중국전쟁기지화 반대한다!
한반도 전쟁위기 부르는 한미연합훈련부터 중단하라! 

 

2025년 10월 1일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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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제학자 눈에 비친 이재명의 '국익 실용 외교'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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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안보

  • 입력 2025.10.02 05:30

  • 수정 2025.10.02 08:31

  • 댓글 0

"미·일과 협력, 대중 도발 회피…세심한 균형 잡기"

"이재명 대미 외교, 노무현·문재인과 달라"

"한국민 구금 사태, 반미 감정 기름 부어"

시진핑 APEC 참석, 한중 관계 해빙 신호

"윤석열 때 서울의 친미 편향으로 악화"

"푸틴 초청, 이재명의 다자 외교 의지"

"미국, 일본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도발을 피하는 신중하고 세심한 균형 잡기를 보여준다."

베트남 호찌민시립 교육대 국제학부의 카오 응우옌 칸 후옌 박사는 '한국의 APEC 정상회담. 이재명 '실용' 외교를 위한 시험대'란 29일 자 <더디플로매트> 기고에서 지난 5개월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외교 행보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SNS를 통해 한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글을 올려 회담 전망을 어둡게 만든 바 있다. 2025.8.26 EPA 연합뉴스

베트남 국제학자가 본 이재명 '실용 외교'

"미·일과 협력, 대중 도발 회피…균형 잡기"

칸 후옌 박사는 "취임 이후 이재명의 '신중한 외교'는 명백했다. 그의 첫 해외 순방은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일본이었다"며 "더구나, 도쿄(8월 23일), 워싱턴(8월 25일)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도,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특사단을 베이징에 파견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사하게, 이재명 자신은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불참했지만, 그의 자리에 우원식 현 국회의장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도 중국을 '배려'한 대목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비슷한 '중견국'으로서 미·중 간 자주적 균형 외교를 펴는 베트남의 국제 전문가가 이재명 외교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경청할 만하다.

칸 후옌 박사는 윤석열 정권의 친미, 반중 외교를 소환해 "전임 정부가 두 강대국 관계에서 균형 잡기에 실패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에겐 값비싼 교훈으로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은 '실용적 유연성' 독트린을 통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중 관계를 안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동시에 '참석'하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 경주 정상회담에 참석한다면, 한국은 균형 전략을 가동하고 가장 중요한 두 파트너와의 양자 관계를 개선할 중요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3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미 외교, 노무현·문재인과 달라"

"한국민 구금 사태, 반미 감정 기름 부어"

대미 외교에서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차이'도 부각했다. 그는 "노무현이나 문재인 같은 이전의 진보 지도자들과 달리, 이재명은 '상대적 자율성'의 입장에서 워싱턴에 접근하거나 의존도를 줄이고, 양자 관계에 긴장시켰던 정책들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대신, 그는 미국 관세 압력에도 대화를 우선하는, 더 부드럽고 유연한 접근을 선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칸 후옌은 8.25 한미 정상회담을 이재명 정부의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등 관세 협상 후속 협의에서 도전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미 관계에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합의는 잠복한 위험에 비유되며, 통화 스와프 약정과 신중한 정책 조율이 없으면 한국은 재정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더구나 9월 초에 미국의 불법 노동 단속 중 한국민 300명의 구금은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부었고, 양자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논평했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리셉션 장에서 함께 서 있는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본경제신문 9월 3일

시진핑 APEC 참석, 한중 관계 해빙 신호

"윤석열 때 서울의 친미 편향으로 악화"

시진핑의 APEC 참석에도 주목했다. 이를 두고 칸 후옌은 "윤석열 대통령 때 서울의 친미 편향으로 악화된 한중 관계의 '해빙'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심지어 작년 12월 자신의 계엄령 선포를 정당화하고자 중국의 정치 개입을 비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베이징은 물론, 지난 4월 윤석열을 탄핵한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고 썼다.

칸 후옌은 또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와 시진핑 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관세, 무역 분쟁, 공급망 회복 등의 주요 협상 분야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APEC 기간 중 북미 협상 또는 남북 대화 재개의 실현 가능성은 현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보유' 의지와 대남 적대적 태도로 볼 때 거의 없다고 봤다.

다만 김정은이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칸 후옌은 "워싱턴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발언이 트럼프가 APEC에서 시진핑과의 회담 사실을 발표한 지 사흘 만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칸 후옌은 "이는 평양이 중·미 역학 관계를 계속 면밀하게 모니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이번에 아니어도 내년 초 트럼프의 방중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점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2025. 09. 26 [스푸트니크=AP=연합뉴스]

러시아 푸틴 APEC 초청 자체에 의미 부여

"다자 외교에 대한 이재명 정부 의지 과시"

칸 후옌 박사는 또한 한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APEC에 초청했다는 러시아 타스 통신의 보도를 거론한 뒤 "만약 올해 정상회의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혹시 러시아까지 온다면, 이재명 정부의 주목할 만한 외교적 성과가 될 것이고, '동서양의 가교'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고 지난 몇 년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 이후 아시아에서 선도적 위치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의 참여는 불확실하지만, 서울의 초청은 이재명 정부의 다자 외교에 대한 의지를 과시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감안할 때, 대러 관계 강화는 남북대화를 촉진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유연한 외교 전략을 가동할 또 다른 경로를 서울에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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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트럼프 미국의 미래...100년 전에 이미 예견됐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0/02 08:59
  • 수정일
    2025/10/02 08: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20세기 영국과 21세기 미국의 평행이론

25.10.02 06:58최종 업데이트 25.10.02 06: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30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화이자와의 약가 협상 발표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역사는 종종 반복되듯이, 강대국이 정점에 오른 뒤 도전에 맞서는 순간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는 패권이 본질적으로 내부 압력과 외부 도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은 세계의 패권국이었지만, 후발 산업국들의 추격을 받으며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국은 보호무역 관세와 배타적인 특권으로 제국을 떠받치려 했으나, 그 같은 대응은 오히려 쇠퇴를 가속시켜 세계 패권을 내주게 만들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실패, 그대로 따라가는 트럼프

오늘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래에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치 아래 관세, 경제 민족주의, 다자주의 리더십 이탈을 강화하며, 스스로가 주도해 온 국제 질서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정책 궤적이 20세기 초 영국의 실패한 선택과 놀라울 만큼 평행하다는 점은, 단순한 역사적 유사성을 넘어 오늘의 미국이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트럼프는 제조업 일자리 상실과 무역적자를 명분으로 전면 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1기 임기에는 중국과의 관세전쟁과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시행됐고, 2기 들어서는 "해방의 날"까지 선포하며 관세의 범위와 강도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4월 5일, 미국은 전 품목에 10% 일괄 관세를 부과했고, 4월 9일부터는 대미 무역적자 규모에 따라 국가별 추가 관세를 얹는 이중 구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0월 초 현재, 관세는 생활·주거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조치들을 보면, 미국의 관세 압력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장비 트럭에 25%, 철강·알루미늄에 최대 50% 관세가 부과되며 제조업 가치사슬 전반에 직접 충격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브랜드·특허 의약품에는 100% 관세를 예고하면서 미국 내 공장 착공 시 면제를 부여해 사실상 기업 투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활과 직결된 품목들도 관세 대상에 포함되었다. 소프트우드 원목(10%)과 가구·주방 캐비닛(25%)이 대표적이며, 이는 주택 건설과 소비재 가격에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 이처럼 관세 확대는 수입 물가와 공급망 비용을 밀어 올리는 동시에,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유발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단기적 산업 보호 효과와 달리 장기적으로는 비용 상승과 동맹 갈등을 불러오며,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고, 그 결과는 패권 쇠퇴로 이어졌다.

영국은 19세기 내내 자유무역의 선구자로 군림했지만, 미국과 독일 같은 후발 산업국들이 높은 관세와 적극적인 산업 정책으로 추격하면서 점차 우위를 잃어갔다. 수출 둔화와 실업 문제로 국내 정치적 압력이 커지자 자유무역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1932년, 영국은 마침내 수입관세법을 제정해 대부분의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일부 원자재와 식량, 그리고 특정 제국 내 제품은 예외를 적용받았으며, 이후에는 수입관세자문위원회 권고에 따라 품목별로 추가 관세가 더해졌다.

같은 해 열린 오타와 회담에서는 제국 특혜 체제를 공식화하여, 영연방 내부에는 특혜를 주고 외부에는 장벽을 세우는 이중 구조를 제도화했다. 이는 영국이 스스로를 제국 블록에 가두는 선택이었으며, 기존의 개방적 무역 질서와 결별을 의미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산업 보호와 제국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곧 소비자 물가 상승과 해외 보복관세가 뒤따르면서 영국 경제는 새로운 제약에 직면했다.

더 큰 문제는 보호막 안에 있던 산업이 경쟁 압력을 잃고 점차 혁신 능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결국 영국은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섰고, 세계 경제 질서의 주도권도 미국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경고

영국 국기연합=OGQ

무역과 통화 질서에서 나타나는 평행은 단순한 표면적 유사성이 아니다. 미국이 WTO 무력화와 TPP 탈퇴로 다자 규범에서 이탈하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CPTPP와 RCEP 같은 '미국 없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1932년 영국이 오타와 회담을 통해 제국 특혜 블록으로 후퇴하며 세계 무역을 배타적 구획으로 쪼갠 것과 같은 구조다. 두 경우 모두 보편적 규칙을 버리고 자기 블록에 의존한 결과, 단기 협상력은 커졌지만 세계 질서의 신뢰와 개방성은 약화됐다.

통화 질서에서도 구조적 평행은 드러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중심 통화로 기능하지만, 관세·제재의 무기화와 누적되는 재정 불안은 점차 신뢰의 균열을 키우고 있다.

달러가 당장 무너질 일은 없지만, 신뢰의 소모가 누적되면 장기적 퇴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과거 영국의 파운드가 전간기(戰間期)에 겪은 운명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1925년 금본위 복귀는 과대평가된 파운드를 낳아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었고, 1931년 금 태환 포기는 국제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가 줄어서가 아니라, 기축통화의 핵심인 신뢰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파운드는 결국 달러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 점은 오늘날 달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경제 규모와 군사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해도, 관세·제재의 무기화와 재정 불안정이 누적되면 기축통화의 토대인 신뢰가 균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분명한 경고를 남기고 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채무국으로 전락하고, 산업 경쟁력은 미국과 독일에 밀리며, 실업과 무역적자가 쌓이는 구조적 압력에 직면했다.

자유무역을 유지할 힘이 약화되자, 단기적 돌파구로 보호관세와 제국 특혜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길은 곧 고립과 쇠퇴로 이어졌다. 산업의 혁신은 둔화됐고, 무역 질서는 블록으로 쪼개졌으며, 파운드의 권위마저 흔들린 끝에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현재의 미국 역시 비슷한 압력에 놓여 있다. 제조업 일자리 상실, 만성적 무역적자, 그리고 재정 불안이 결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제재·규범 이탈로 대응하고 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동맹 갈등, 혁신 둔화, 달러 신뢰의 균열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특권은 패권을 지켜주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18일 영국 에일즈베리 인근 총리 별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패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특권처럼 사용되는 패권은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고 즉흥적 결정을 부추긴다. 순간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관세를 높이고, 내부 지지를 얻기 위해 규칙을 깨뜨리는 태도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책임으로 이해되는 패권은 다르다. 그것은 긴 호흡으로 세계 질서를 바라보며, 동맹과 경쟁자 모두가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신뢰를 지켜내는 일이다. 단기적 유혹을 절제하고, 장기적 안정과 공공선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패권은 유지된다.

100년 전 영국은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패권국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역사적 혜안과 철학적 통찰을 갖추지 못한 채, 눈앞의 압력과 조급한 계산에 매달렸다. 그 결과 산업은 쇠퇴하고 무역 질서는 분열되었으며, 파운드의 위신은 무너졌다.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 불안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세계 패권을 특권처럼 휘두르는 순간, 책임의 긴 호흡은 사라지고 단기적 정치 계산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특권은 패권을 지켜주지 못한다.

현재의 미국은 100년 전의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초강대국이다. 군사력, 기술력, 금융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깊이에서 미국을 대체할 나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폭주하는 태도가 위험하다. 오늘날의 세계는 20세기 초와 달리 기술 혁신이 질주하고, 자본과 정보가 국경을 가로질러 실시간으로 이동하며, 신흥국들의 집단적 협력이 과거보다 훨씬 민첩하게 전개된다.

초강대국의 지위가 단단해 보일지라도, 신뢰를 소모하는 순간 균열은 예기치 않게 확대될 수 있다. 달러의 권위 역시 힘이 아니라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는다면, 미국은 스스로 만든 질서 속에서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무너진 제국들의 뒷모습은 흔히 비슷한 흔적을 남겼다. 그 공통점은 힘의 부족이 아니라, 힘을 잘못 쓴 오만이었다. 외부의 도전은 늘 있었지만, 패권은 내부의 오만이 그 도전을 오독할 때 무너졌다.

#미국 #영국 #트럼프 #임상훈의글로벌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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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전 대구 “미군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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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5.10.01 15:39
  •  
  •  댓글 0
 
 

'10월 인민항쟁' 79주년

미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와 시민
미군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와 시민

1946년 10월 1일, 대구지역 400여 개 공장 노동자와 시민 1만여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미군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시민 1명이 총에 맞아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구 시민 1만5천여 명이 밤새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10월 2일 오전 10시, 대구경찰서 앞 광장에서 항의 집회가 이어졌다. 한 청년이 분노에 찬 연설을 하던 그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연설하던 그 청년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5명의 연사가 연단에 올랐다. 그들 역시 차례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같은 참변은 운집해 있던 시민의 분노를 일거에 폭발시켰고 원한의 표적이었던 경찰서를 향해 맨몸으로 돌진하게 만들었다. 탄압의 아성인 경찰서를 때려 부수고 무기를 탈취했다. 무장한 시민은 100여 명씩 대오를 지어 시내의 모든 파출소를 공략함으로써 대구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10월 인민항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10월 2일 오후 6시, 미군정청은 대구지역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미군이 대구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한번 점화된 봉기의 불길은 대구와 인접한 영천, 의성, 군위, 왜관, 선산, 그리고 포항, 영일 등지로 무섭게 번져 갔다. 이르는 곳마다 미군정에 대한 민중의 사무친 증오심이 폭발했고, 미국의 식민통치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항쟁의 불길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10월 3일 서울시민 1만여 명이 미군정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 광주에서는 경찰서를 습격하여 수감 중인 애국자들을 석방시켰다. 대전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시민 31명이 체포됐다. 전라도에서는 화순탄광을 필두로 도내 전역이 봉기에 돌입했다. 화순탄광 노동자 5천여 명이 파업에 돌입, 이중 3천여 명이 광주로 향했다. 이에 발맞추어 목포 지역 전화 교환원들이 파업을 단행했다. 이들은 미군 병력이 투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통신을 마비시켰다.

10월 인민항쟁이 벌어진 곳
10월 인민항쟁이 벌어진 곳

한편 미 군정은 미군과 친일 경찰, 그리고 정치 깡패 등을 총동원해 피비린내 나는 진압 작전을 펼쳤다. 그들은 38선 이남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언론 활동을 전면 통제하는 등 삼엄한 통제망을 펼쳤다. 대구에서는 10인 이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금지됐다.

10월 7일 마산에서는 미군과 경찰이 시위 중인 시민 6천여 명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12월 중순 전주에서는 시위자를 함정에 몰아넣은 후 말을 타고 돌진, 곤봉과 소총 개머리판을 휘둘러 아이와 여성 20여 명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죽였다.

 

3개월 동안 계속된 ‘10월 인민항쟁’ 과정에 1,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6,000여 명이 중상을 입었고, 무려 15,000여 명이 체포‧구금됐다.

당시 주요 정당 및 사회단체가 연석회의를 통해 시국선언에 해당하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의견서에서 ‘10월 인민항쟁’이 발발한 원인을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조국해방 전도에 대한 절망감에서 오는 격렬한 울분

2. 경찰 및 각 행정기관 내에 박혀 횡포한 행동을 하는 민족반역자, 친일파 및 군정에 아첨하는 신형 왜놈 등 친일 반동분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

3. 가혹한 공출제에 대한 반감과 식량난으로 인해 해방 이전보다 더 불행한 처지에 대한 반발의식

하지만, 잔인한 진압을 명령한 미군정 장관 하지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는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지령이 없었다면 10월 2일의 피비린내 나는 제 사건들이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간단히 말해 10월 봉기는 공산주의자들이 조종한 것이지 결코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라고 단정했다.

‘10월 인민항쟁’에서 표출된 우리 민족의 조국해방 의지에 놀란 미 군정은 1946년 12월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개원한다. 이듬해 7월 ‘입법의원’은 친일파 청산을 위해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률안'을 제정해 미군정청에 제출한다. 하지만, 미군정 장관 하지가 비준을 거부함에 따라 실제 실시되지 못한다. 하지가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당시 미군정청 산하 경찰‧군인‧관료‧기업인 약 70%가 친일파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이 시행될 경우 이들 대부분이 청산 대상이 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미군정청 경무국장 매글린은 “만약 그들이 과거에 일본을 위해 일을 잘했다면 그들은 우리 미국을 위해서도 일을 잘해 줄 것”이라며 친일파들을 계속 등용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숭미주의자로 둔갑해 한미동맹을 부르짖으며 지금까지 떵떵거리고 있다.

‘10월 인민항쟁’으로부터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폭탄에 이어 조공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를 노예처럼 쇠사슬로 묶어 구금한 것도 모자라 미국 비자를 얻으려면 1억3천만 원을 내라며 ‘삥’을 뜯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미군정 장관 하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79년 전 ‘10월 인민항쟁’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의 주권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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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 보다 더 심각... 일본 대미투자 양해각서의 실체

[강명구의 뉴욕 직설] 한국이 대미 투자 협상에서 피해야 할 세 가지 함정

25.10.01 06:57최종 업데이트 25.10.01 06:57

지난 2월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미국과의 3500억 달러 투자 협상 관련해서 통화스와프, 비자 문제 등 다양한 조건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공론화는 바람직하다. 더 많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토론되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검토해야 할 선례가 있다. 지난 9월 4일 일본이 서명한 5500억 달러(77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다. 일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실제 합의 내용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첫째, 투자가 실패해도 미국 정부는 법적·재정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둘째, 일본은 투자자의 권리도 채권자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기형적 지위다. 셋째, 투자를 거부하면 관세 인상과 수익률 감소라는 이중 페널티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소상히 알려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함정 #1] 돈을 대는 일본, 책임 없는 미국

일본 양해각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본이 770조 원을 대면서도 투자자도 채권자도 아닌 기형적 지위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는 경영 참여권과 의사결정 승인권을 갖는다. 그러나 일본은 투자처 선정부터 운영까지 아무 권한이 없다. 미국 대통령이 결정하고, 상무장관이 감독하며, 일본은 '협의' 대상일 뿐이다.

채권자로서의 보호도 없다. 채권자라면 담보권, 우선변제권, 원금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양해각서 어디에도 이런 보호 조항은 없다. 투자가 실패하면 손실은 100% 일본이 부담한다. 미국은 법적·재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한 투자 조항이 그 비밀이다. 양해각서 제11조는 모든 투자마다 별도의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하도록 명시한다. 일본의 투자금은 미국 정부가 아닌 이 특수목적법인에 들어가는 구조다. 투자가 실패하면 특수목적법인만 파산하고, 미국 정부는 '별도 법인의 문제'라며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제17조는 더욱 충격적이다. 미국은 각 특수목적법인의 모든 투자 결정권을 행사하면서도 "투자에 대한 어떠한 판단이나 행위에도 책임지지 않으며 수탁자 의무도 없다"고 명시했다. 권한은 100% 갖되 책임은 0%인 구조다.

이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 구조다. 의사결정권자(미국)와 위험부담자(일본)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성공하면 초과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지만, 실패하면 손실 100%를 일본이 부담한다. 이러한 비대칭적 보상 구조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위험 추구를 유발한다. 고위험 투자가 대박 나면 미국이 90%를 차지하고, 실패하면 그 손실을 전액 일본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투자 결정권자가 정치적 행위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적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될 개연성이 크다. 러스트벨트 지역의 고용 창출, 경합주 유권자 배려,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투자 등 정치적 투자가 상업성보다 우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기형적 구조는 금융 교과서 어디에도 없다. 투자자와 채권자의 불리한 조건만 선별적으로 결합한, 오직 돈을 대는 쪽만 손해 보도록 설계된 구조다. 향후 교과서에 최악의 불공정 합의의 사례로 등장할 만한 합의다.

[함정 #2] 성공해도 일본이 손해 보는 수익 배분 구조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유엔 총회 기간 중 미국 뉴욕의 파크레인 호텔에서 기자회견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AFP 연합뉴스

일본이 투자자도 채권자도 아닌 기형적 지위를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수익 배분만큼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양해각서가 설계한 수익 배분 메커니즘은 일본의 불리한 지위를 더욱 악화시킨다. 언론은 "원금 회수까지 50:50, 이후 90:10"이라고 단순화했지만, 실제 구조는 복잡한 계산식으로 일본의 손실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핵심은 일본이 받아야 할 '기준 배분액(Deemed Allocation Amount)' 계산식이다. 기준 배분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이자는 미국 단기금리에 추가 금리를 더해 계산하고, 원금은 투자액을 프로젝트 수명으로 나누며, 여기에 못 받은 금액의 이월분을 합산한다.

예를 들어, 100억 달러를 투자한 경우를 보자. 미국 금리를 기준(단기금리 4.5% + 스프레드 1% = 5.5%)으로 연 5.5억 달러의 이자가 발생하고, 100억을 20년에 나눠 갚는다고 보면 연 5억 달러의 원금 상환이 더해져, 일본이 매년 받아야 할 기준 배분액은 10.5억 달러가 된다.

얼핏 보면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처럼 안정적이다. 매년 10.5억 달러씩 20년간 받으면 원금과 이자를 모두 회수하는 구조다. 하지만 은행 대출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은행은 기업이 망해도 담보를 처분해 원금을 회수하지만, 이 양해각서에는 담보도 원금 보장도 없다. 오직 프로젝트가 실제로 벌어들인 현금이 있을 때만 받을 수 있다.

프로젝트 수익이 기준 배분액보다 적으면 일본은 극히 일부만 받는다. 기준 배분액이 10억 달러인데 프로젝트가 5억 달러만 벌었다면, 일본은 2.5억 달러(50%)만 받고 나머지 7.5억 달러는 장부에만 쌓인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수익이 부족하면 이 돈은 영원히 받을 수 없다.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기준 배분액을 다 채워도 문제다. 초과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가고 일본은 10%만 받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대박 나서 1000억 달러의 초과 수익이 나도, 일본은 100억 달러만 받는다.

구조적 불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일본의 기준 배분액은 늘어나지만 프로젝트 수익은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비율은 더 줄어든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손실 100% 부담, 성공해도 초과 수익의 10%만 수령. 망해도 손해, 흥해도 손해인 구조다.

[함정 #3] 거부하면 더 큰 손해, 형식뿐인 선택권

양해각서 제8조는 일본이 "독자적 재량으로" 특정 투자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 거부권 또한 허울에 불과하다. 일본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더 큰 손해를 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투자를 거부하면 세 가지 벌칙이 즉시 작동한다. 첫째, 수익 배분에서 이자를 받을 권리가 영구히 사라진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준 배분액'을 통해 일본은 매년 이자와 원금을 합쳐 받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투자를 거부하면 '개정 배분액'이라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자가 통째로 사라진다. 더 나쁜 것은 이것이 거부한 그 투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든 투자에도 영구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100억 달러 투자 하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5500억 달러 전체 투자의 이자가 사라져 버리는 구조다.

둘째, '캐치업 메커니즘'이 발동된다. 이것은 미국이 일본보다 먼저 돈을 챙기는 장치다. 일본이 100억 달러 투자를 거부했다면, 미국이 다른 투자에서 100억 달러를 먼저 회수할 때까지 일본은 불리한 조건으로 받는다. 예를 들어 다음 투자에서 200억 달러 수익이 나도, 미국이 먼저 100억을 챙긴 후 남은 100억만 분배한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이자도 받지 못한다.

셋째, 미국 대통령이 재량으로 일본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양해각서는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는 동안 관세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이를 역으로 이해하면, 일본이 45일 내 투자 이행을 거부하면 언제든 관세를 임의의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제21조가 이 양해각서를 "법적 구속력 없는 행정적 양해"라고 명시한 점이다. 얼핏 보아, 법적 의무가 없으니 일본이 빠질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트럼프는 이미 "약속 어기면 관세 25% 이상"이라고 공개 협박 중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경제적 압박은 언제든 가동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의 거부권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거부하면 수익률 하락, 캐치업 벌칙, 관세 인상이라는 삼중고가 기다린다. 협상의 핵심인 '아니오'라고 말할 힘이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다. 2029년까지 4년간 일본은 미국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단순한 투자가 아닌 '경제적 종속'인 이유다.

일본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소속 민주노총, 진보당 등 정당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한국노동자 구금과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트럼프 대통령 사과, 관세협박 중단, 대미투자 철회 등을 촉구하며 미국대사관앞까지 행진을 벌였다.권우성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타임>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한 투자 합의서에 서명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고 공개 발언한 점이다. 일본도 2029년까지 나눠서 투자하는데 한국은 한꺼번에 내라는 것인가? 일본보다 더 나쁜 조건을 요구받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미국의 요구 조건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국민에게 불평등한 조건을 미리 알렸다면, 결코 이런 양해각서에 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핵심 쟁점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투자 실패 시 손실은 누가 부담하는지, 거부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 환율과 금리 리스크는 누가 지는지. 미국 측 요구의 실상을 정확히 알수록 국민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 정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미일투자양해각서 #관세협상 #대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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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구치소서 교정직원 7명 심부름꾼으로 부렸다' 교도관 카페에 폭로글 올라와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5.10.01. 07:27:37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수괴 혐의로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교정직원 7명을 징발해 윤석열의 심부름꾼으로 부렸다'는 내용의 글이 현직 교도관임을 인증해야 가입 가능한 온라인 카페게시판에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겨레>를 보면 현직 교도관임을 인증해야 글을 쓸 수 있는 한 온라인 카페게시판에 '탄핵 후 법무부에서 감사해야 할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교정 보안 직원 7명을 차출해 사동 도우미로 부렸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이 게시된 시점은 지난 3월 8일 윤 전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출소한 지 한 달 만인 지난 4월 4일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체포돼 구속된 뒤 52일 동안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익명의 게시자는 이 글에서 '윤석열이 어떻게 외부에서 들어온 미용사의 손질을 받았는지, 지시한 자에 대한 책임',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주말과 휴일에 변호사 접견을 무한정하게 한 근거와 지시자에 대한 조사' 등 7가지 사항을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교정보안 직원 7명을 징발해서 윤석열의 심부름꾼 및 사동 도우미로 부렸는데, 그 지시를 한 사람(과) 그 직원들이 3부제로 운영되어 24시간 수발을 들었는데 그게 근거가 있는 일인지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을 주장했다. 이 게시자는 '이런 일들이 자체 조사가 이뤄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교정이 국회 감사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예산도 잘 받지 못할 것'이라며 '감사 담당관실은 철저히 조사 바란다'고 했다.

이 글에는 85개의 댓글이 달렸다. '원칙대로 했어야 한다', '실상은 이 건보다 더한 거로 알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법무부는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해당 부분에 대해서 감찰을 진행 중"이라며 "당시 근무일지가 미작성됐다는 의혹 등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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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IT를 어떻게 고쳐야 하나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mindlenews01@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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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5.09.30 19:40

  • 수정 2025.10.0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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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산망 마비, '디지털 종합대책' 무용지물

시대 뒤떨어진 보안규정으론 사고 못 막아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최고의 전문성 갖춰야

또 하나의 번지르르한 대책 보탤 생각 말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는 29일 서울의 한 구청에서 시민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5.9.29 연합뉴스

2011년 당시 영국 정부는 무려 2,000여 개의 부처 및 정부 기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모두 따로 놀았다. 온라인 공공 서비스 이용률은 민간 부문에 훨씬 뒤처져 있었고, 시민들에게는 끔찍한 경험을, 정부에게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다.

IT프로젝트는 빈번히 실패했다. 2002년 시작한 NHS(국가보건서비스, 건강보험) 국가 IT 프로그램은 96억 달러 규모로 출발했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총 비용이 무려 195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정확한 비용은 아무도 몰랐다. 영국 정부의 '비즈니스 링크'라는 웹사이트는 5백 페이지 정도의 소규모 사이트였지만 외주로 운용한 덕분에 해마다 7700만 달러의 비용을 쓰고 있었다.

2011년 영국 의회 공공행정위원회는 "정부와 IT바가지의 공식: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라는 리포트를 발표하며 IT 전문성 부족, 중앙집중식 수평적 IT 거버넌스 부재, 소수의 대형 민간 공급업체와의 대규모 장기 계약 의존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처음부터 디지털'(Digital by default)을 기치로, 민간 개발자로 구성한 GDS(정부디지털서비스 Government Digital Service)를 만들었다.

2011년 2월, GDS를 설립하라는 임무를 받은 공무원 크리스 찬트는 세계 최대의 시빅해커(자신의 개발역량을 시민사회를 위해 쓰는 사람)단체 <마이소사이어티> 창립멤버인 베테랑 개발자 톰 루즈모어에게 팀 구성 임무를 맡기며 말했다.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오세요." 가디언지의 디지털개발 책임자 마이크 브래큰을 비롯, 최고의 민간 엔지니어들이 속속 합류했다. 정부의 느리고 답답한, 이해할 수 없는 서비스에 지친 개발자들은 자기 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반가워했다.

GDS에 모인 최고의 민간 엔지니어들은 머리를 맞대고 역사에 길이 남을 정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을 발표한다. 이 원칙은 이후 전세계 정부 IT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만큼 아름다운 정부 문서를 본 적이 없다. 최대한 원문을 인용한다.

1. 사용자 요구에서 시작하라(Start with user needs):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 요구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올바른 것을 만들 수 없다. 조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용자와 대화하라. 짐작하지 마라. 사용자에게 공감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것이 항상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2. 덜 하라 (Do less): 정부는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작동하는 방법을 찾았다면, 매번 바퀴를 다시 발명하는 대신 재사용 가능하고 공유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과 레지스터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리소스(API 같은)를 제공하며,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링크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데이터로 설계하라 (Design with data): 대부분의 경우 기존 서비스의 실제 사용 패턴을 관찰함으로써 배울 수 있다. 직감이나 추측이 아니라 데이터가 의사결정을 이끌도록 하라. 서비스 출시 이후에도 사용자와 함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하라. 분석 도구는 처음부터 내장되어 항상 작동하며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분석은 필수 도구다.

4.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애써라 (Do the hard work to make it simple): "겉모습을 단순하게 꾸미는 것은 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실제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뒤에 있는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더욱 그렇다. '원래 그래왔습니다'라는 변명을 받아들이지 마라. 단순하게 만드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길이다.

5. 반복하라. 또 반복하라 (Iterate. Then iterate again):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비결은 작게 시작해서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다. 최소 기능 제품을 빨리 내놓고, 실제 사용자와 테스트하라. 알파에서 베타로, 정식 버전으로 나아가며 필요한 기능은 추가하고, 쓸모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사용자 피드백으로 계속 다듬어라. 반복이 위험을 줄인다. 대형 참사를 막고 작은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만든다. 프로토타입이 실패하면?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 두려워 말고.

6.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This is for everyone):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 곧 좋은 디자인이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명확하고, 읽기 쉬워야 한다. 세련미를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하라. 우리는 '타겟 청중'이 아닌 '실제 필요'를 위해 일한다. 디지털에 능숙한 이들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해 디자인한다. 우리 서비스를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을 가장 사용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들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

7. 맥락을 이해하라 (Understand context): 우리는 화면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디자인한다.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상황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가?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가? 페이스북밖에 모르는가? 아예 인터넷을 처음 쓰는 사람인가?

8. 웹사이트가 아니라 서비스를 구축하라 (Build digital services, not websites): 서비스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일은 사용자의 필요를 발견하고, 그 필요를 충족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중 상당 부분은 웹 페이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웹사이트를 만들러 온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는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비스의 모든 측면을 생각하고, 그것들이 합쳐져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무언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

9. 일관성을 유지하되, 획일적이지 마라 (Be consistent, not uniform): 같은 언어, 같은 디자인 패턴을 써라. 그래야 사용자가 익숙해진다. 안 되면 최소한 일관성을 유지하라.

이건 족쇄가 아니다. 상황은 늘 다르다. 좋은 패턴을 찾으면 공유하고 이유를 설명하라.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을 찾거나 사용자 필요가 바뀌면? 주저 없이 개선하고 바꿔라.

10. 공개하라, 그것이 더 좋게 만든다 (Make things open: it makes things better):할 수 있을 때마다 공개하라. 동료, 사용자, 세상 모두에게. 코드, 디자인, 아이디어, 의도, 실패까지. 많은 눈이 볼수록 서비스는 좋아진다. 실수가 발견되고, 더 나은 대안이 나오고, 기준이 올라간다.

우리 일은 오픈소스와 커뮤니티의 관대함 덕분에 가능하다. 우리도 보답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GDS는 1,882개의 서로 다른 정부 웹사이트를 하나의 GOV.UK로 대체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GOV.UK는 1년 이내에 출시됐고, 운영비는 즉각 30% 미만으로 떨어졌다.

2012년에서 2015년까지 3년간 디지털 및 기술 전환을 통해 35.6억파운드(약 5조 8천억 원)를 절감했다. 영국 정부사이트는 출시한 그해 모든 민간 사이트를 제치고 올해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GDS 창설 후 5년 이내에 영국은 UN 전자정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좋은 일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정부 홈페이지 개편을 추진중이던 뉴질랜드정부는 영국 정부의 새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트의 코드는 모두 영국정부의 디자인원칙 10. "공개하라, 그것이 더 좋게 만든다'에 따라 오픈소스였다. 뉴질랜드 정부는 "우리는 '바퀴를 재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GOV.UK 디자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축한다. 덕분에 훌륭한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다. 사이트 구축비용이 터무니없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2025년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불이 났다. "재해복구시스템(DR, Disaster Recovery)이 있어서 금새 재가동할거다", "백업을 하고 있어 3시간내 가동이 될거다"... 약속들이 많았지만 하나도 맞지 않았다. 공주에 무려 전자기파(EMP)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재해복구센터가 있다고 했지만 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1년도 더 전인 2024년 1월 대한민국 정부는 디지털사고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철저한 상시 장애 예방 ▲신속한 대응․복구 ▲서비스 안정성 기반 강화가 3대 추진전략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번 종합대책은 지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와 같은 대민서비스 중단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며, 신속하게 대응․복구하는 장애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 나아가 장애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정보시스템 구축․운영사업 관련 제도와 인프라 전반을 전면 개편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 정부는 종합대책 수립을 위해 지난 11월 29일부터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14개 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TF를 운영하였으며,

○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기업인,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종합대책을 수립하였다.

○ 특히, 이번 종합대책은 지난해 장애 대처 과정에서 신속한 인지·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민원·행정처리를 포함한 적절한 대응·조치가 부족했던 점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는 한편,

○ 과거 30년간 디지털정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행정·공공기관의 정보시스템이 급격히 증가하며 누적된 복잡성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하고 노후화 및 구조적 제약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난 30년간 누적된 복잡성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하고, 노후화 및 구조적 제약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종합대책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사고가 난 것이다.

2022년 카카오 장애가 났을 때 <시사인>에 "카카오 장애가 우리에게 던진 3가지 질문"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번에 불이 난 것은 정전에 대비해 SK C&C 데이터센터가 보유한 배터리라고 한다.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 있다. 당연히 다른 건물에 두거나, 방화벽으로 고립된 공간에 설치해야 한다. 물로는 불을 끌 수가 없으니 하론 가스나 이산화탄소 소화기가 자동으로 작동되게 해두어야 한다. 바이패스, 즉 배터리 쪽으로 가는 전원을 차단할 수 있는 기능도 제대로 작동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전체 전원을 내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전원이 이중화돼 있으면 한쪽 전원을 차단해도 다른 쪽 전원이 살아 있다. 또한 배터리는 통상 불이 나기 전에 온도가 올라간다. 온도센서가 있었는지, 일정 온도 이상이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고 운영자에게 경고가 가는지, 소화기는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돼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같은 층에 예비발전기를 위한 경유 1만5000L가 함께 보관돼 있었다. 화재가 자칫 대형 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장애가 발생했을 때의 프로토콜을 SK가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3년 전에 쓴 글이다.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 있으니 당연히 다른 건물에 두거나, 방화벽으로 고립된 공간에 설치해야 한다고 썼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배터리는 서버에 바짝 붙어 있었다.

"2001년 9·11 테러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가 참혹하게 붕괴됐다. 25개 층에서 직원 3700명이 일하고 있던 모건스탠리 투자은행의 본사도 통째로 사라졌다. 하지만 모건스탠리는 살아남았다. 원본을 고스란히 저장해둔 재해복구 시스템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복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많은 회사들이 건물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이후로 전 세계에서 재해복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21년 전 얘기다.

'카오스 몽키'라는 개념이 있다. 넷플릭스에서 나왔다. '야생의 원숭이가 무장을 한 채 우리 데이터센터에서 난동을 부려도 우리 서비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개념이다. 카오스 몽키와 카오스 고릴라, 카오스 콩이 있다. 몽키는 서비스에 장애를 주입해보는 일이다. 그래도 서비스가 견디는지를 보는 것이다. 고릴라는 가용 영역 하나를 통째로 날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데이터센터 두 곳을 운용하고 있었다면 그중 하나의 전원을 끄고, 남은 데이터센터가 서비스를 이어받아 중단 없이 가동하는가를 본다. 콩은 한 지역 전체의 가동을 멈추는 것이다. 서울의 데이터센터 전체 가동을 멈춘 뒤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의 데이터센터들이 제대로 이어받는지를 보는 것이다.

재해복구 시스템은 말 그대로 '재해'에 대비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사태는 단지 데이터센터의 전원이 예고 없이 내려간 것이다. 서버도, 사람도 다친 데 없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것을 재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큰 재해라고 할 수 있을까?"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도 작동하는 게 재해복구시스템이라고 썼다. 그게 작동하는지를 '카오스 몽키'로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3년 전 얘기다. 1년 전에는 정부 스스로 30년간 쌓인 복잡성에 대응할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됐다. 왜 이럴까?

영국의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다. 영국 의회 공공행정위원회는 "정부와 IT바가지의 공식: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라는 리포트를 발표하며 IT 전문성 부족, 중앙집중식 수평적 IT 거버넌스 부재, 소수의 대형 민간 공급업체와의 대규모 장기 계약 의존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고시 출신의 공무원들은 IT를 모른다. 순환보직은 문제를 더 키운다. 한자리에 채 2년을 근무하지 않는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낄 리가 있나. 전문성을 앗아갈 뿐 아니라 면피에도 그만이다.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조금만 있으면 다른 보직으로 옮겨간다. 내가 할 정책이 아니니 마구 던져도 그만이다. 후임자는 전임자 탓을 하면 된다. 사뭇 편리한 구조다.

종합적인 IT 거버넌스도 당연히 부재하다. 제품요구사항을 담은 문서(PRD) 한 장 쓰지 못하는 간부가 책임을 맡는다. 그러니 시스템 설계가 제대로 되기가 어렵고, 된들 담당공무원은 까막눈일 때가 많다. 검은 건 글씨고 흰 건 종이다.

모든 개발은 외주개발사에 맡기는데, 갑을병정무기경신... 하청에 하청을 거듭해 반토막이 난 예산을 작은 중소기업이 초급개발자를 데리고 개발하기가 일쑤다. 개발이 끝나면 개발사는 떠나고 운영사가 뒤를 잇는데, 운영계약기간은 대개 1~2년이다. 두세 번 운영사가 바뀌고 나면 개발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이때쯤부터 무서워서 시스템을 건드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가 AI전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산다. 데이터를 쓰려면 클라우드가 기본이 된다. 그런데 시스템이 이 지경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가 된다. 모두가 아다시피 정부는 클라우드를 제대로 운용할 전문성이 없다. 영국 정부가 일찍이 2017년부터 '민간 클라우드 우선' 정책을 편 것은 그 때문이다. 몇 억씩 하는 민간 개발자의 연봉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그 많은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바퀴를 다시 발명하듯' 만드는 게 옳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 민간 클라우드를 쓰려면 국정원의 PPP(민관협력형클라우드) 인증을 받았거나, CSAP(클라우드서비스 보안인증)를 받아야 한다. PPP는 사실상 개점휴업이고, CSAP는 보안을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눠서 민간클라우드를 쓸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세부 규정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다. 쓸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씩 짚어보자. AI는 데이터를 먹고 산다. 일을 할수록 데이터가 쌓이는 구조여야 정부를 AI정부로 만들 수 있다. 각 부처가 제각기 서버를 끌어안고 사일로처럼 일을 하고 있으면 천 년이 지나도 AI정부는 무망하다. 클라우드는 AI를 위한 기본이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러이러한 규정을 충족해야 민간 클라우드를 쓸 수 있다"는 틀렸다. "민간 클라우드를 쓸 수 있기 위해서는 보안규정이 이렇게 발전해야 한다"가 맞는 말이다. 시대에 뒤처진 보안규정이 사고는 제대로 막지도 못하면서 진보에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게 현상황이다. 질문이 틀린데 답이 맞을 순 없다.

전문성이 없으면 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 영국 정부의 선례가 있다. GDS와 같은 기관을 만들어 최고의 전문가들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버넌스도 이렇게 유지하는 게 옳다.

매번 사용할 때마다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하는 정부의 민원페이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기꺼이 손을 들 민간 개발자들이 차고도 넘칠 것이다. 톰 루즈모어는 영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당장 우리 AI수석만 해도 세계 최대·최고 권위의 AI 학회인 NeurIPS2025에서 수석심사위원(Senior Area Chair)으로 활약중인 최고의 엔지니어다. 수석심사위원은 연구 성과와 역량, 경험이 검증된 전세계 Top AI연구자 199명으로 구성된다. 시빅해커는 충분히 있다. 없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용기와 의지다.

영국 정부가 GDS를 시작할 때 모토는 '진화가 아니라 혁명을!'(Revolution not evolution!)이었다. 부족한 것은 정부의 용기와 결단이다. 또 하나의 번지르르한 종합대책을 보탠 채 흐지부지해선 미래가 없다. 100조의 AI 예산을 이 시스템에다 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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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만에 배임제 폐지…조선일보 “‘이재명 구하기’ 의심”

[아침신문 솎아보기] 검찰청 해체에 검사 40명 집단 행동, 한겨레 “이게 검사인가”

조희대 청문회에 한국일보 “조희대 없는 조희대 청문회”

기자명정민경 기자

  • 입력 2025.10.01 07:37

  • 수정 2025.10.01 07:38

▲이재명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30일 배임죄 폐지를 공식화하며 선의의 사업주 보호를 골자로 한 ‘경제 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당정은 “과도한 경제형벌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 기업 운영에 부담을 줬다”며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방안이 현실화하면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비상경제점검TF, 지난 15일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한국에서 투자 결정을 잘못하면 배임죄로 감옥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러면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며 배임죄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다만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가 “이재명 구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에서 배임죄로 기소된 이 대통령에게 면소 판결을 받게 하려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이날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배임제 폐지를 1면에 다뤘다. 또한 대부분의 주요일간지가 사설로 배임제 폐지에 대해 다뤘다. 다음은 주요 일간지의 배임제 관련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형법상 배임죄 폐지, 정교한 보완책 전제해야>

동아일보 <72년 만에 배임죄 폐지… 불합리한 경제형벌 확 줄여야>

서울신문 <배임죄 폐지, 기업인 부담 덜되 정치적 논란 없앨 해법을>

세계일보 <배임죄 폐지… ‘李 대통령 구하기’ 오해 불식시키길>

조선일보 <배임죄는 과도한 적용이 문제,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중앙일보 <배임죄 폐지, 기업 자유 넓히되 정치 면죄부는 경계해야>

한겨레 <당정 배임죄 폐지, 처벌 공백 없도록 보완책 마련해야>

한국일보 <배임 폐지 후속조치 단단히… 정략적 의도는 없애야>

▲1일 동아일보 1면.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배임죄는 경계가 모호한 규정 때문에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의견에, 재벌 총수·경영진 전횡을 막는 안전망이라는 반론이 맞섰던 뜨거운 쟁점”이라며 “하지만 배임죄가 재벌 총수·경영진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온 수단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정은 ‘경영 위축 방지’를 폐지 근거로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배임죄가 적용된 대부분 사례는 재벌 총수일가의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같은 부당 내부거래 문제였다. 배임죄 폐지가 투명한 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추진한 상법 개정 취지와 일관성을 무력화한다는 우려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 전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해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배임죄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배임죄가 아예 없다. 주로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거나 필요하면 사기죄로 다룬다”며 “다만 오랫동안 유지돼 온 배임죄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법적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보완 입법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 전했다.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은 이날 사설에서 배임제 폐지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이재명 구하기’라는 관점을 언급하며 대체 입법을 강조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정치적 논란 차단도 절실한 문제다.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무원의 배임죄까지 없애야 하는지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다”며 “당장 야당은 배임죄 폐지를 ‘이재명 구하기’라고 반박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으로 배임 혐의를 받는 이해 당사자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 대체 법안을 서둘러 모색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마저 위축시켰던 배임죄의 폐지는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라 하겠다”라면서도 “당장 형법상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대장동·백현동·성남FC 사건에서 관련 혐의로 기소됐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그 측근의 면소(免訴)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중요 범죄에 대한 사법 집행 공백이 없도록 당정이 약속한 대로 대체입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 전했다.

▲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배임죄의 과도한 적용이 문제이지 배임이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폐지에 따른 처벌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가 ‘이재명 구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에서 배임죄로 기소된 이 대통령에게 면소 판결을 받게 하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런 의심을 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정부가 배임죄 보완 내용과 입법 일정을 밝히면 사라질 의심”이라 전했다.

중앙일보는 “주주 충실 의무 등을 강화한 상법 개정안이나 과도한 친노조 성격의 ‘노란봉투법’ 등으로 기업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옥죄던 각종 법제도를 폐지·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야당은 ‘친기업법으로 포장한 배임죄 폐지가 실상은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 법’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이런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대체 입법 과정에서 주체와 행위 요건을 구체화하고, 기존 배임죄에 해당하는 범죄와 관련해 정치인 등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배임죄를 두고 ‘경영상 판단까지 처벌하는 과잉 형벌’이라는 지적이 꾸준했던 만큼 제도를 손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죄 자체를 없앤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정은 배임 비범죄화 본질이 ‘이재명 구하기’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한겨레는 배임제 폐지 자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날 사설에서 “배임죄 등 형사처벌이 일감 몰아주기 같은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 행위를 견제하는 유력한 수단이 돼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제도적인 대체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폐지할 경우 기업 투명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1일 한겨레 사설.

검찰청 해체에 검사 40명 집단 행동, 한겨레 “이게 검사인가”

검찰청을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30일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에 파견된 검사 40명 정원이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이 마무리되면 원래 소속된 검찰청으로 복귀시켜달라”고 특검에 요청했다.

검찰개혁과 관련해 검사들이 집단 목소리를 낸 것을 주요 일간지들은 1면과 사설에서 다뤘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검사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냈고 중앙일보는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수사와 사법 시스템 보완을 강조했다. 다음은 검찰 개혁 관련 1일 사설을 낸 신문들의 사설 제목이다.

▲1일 서울신문 1면.

경향신문 <검찰개혁 싫다고 특검서 빼달라는 검사들의 몰염치>

중앙일보 <무리한 검찰청 폐지가 불러온 혼란과 파열음>

한겨레 <‘개혁 반발’ 특검 수사도 팽개치겠다니 이게 검사인가>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검찰개혁이 싫다고 특검에서 빼달라는 검사들의 후안무치에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어이가 없다. (...) 검찰청 해체는 전적으로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검찰이 한 일을 스스로 돌이켜보라. 최소한의 독립성과 중립성도 지키지 않고, 정권의 시녀 노릇만 하지 않았나”라고 전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검찰청을 해체하고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검찰개혁에 반발한 집단 항명이다.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 공직자의 직무를 볼모로 삼다니 좌시할 수 없는 공직기강 문란”이라며 “검사들은 김건희 특검이 왜 출범했는지 벌써 잊은 모양이다. 다른 특검도 아니고 김건희 특검은 검찰이 윤석열 정권 내내 김씨의 각종 의혹을 노골적으로 봐주거나 덮어온 탓에 도입됐다. 검찰의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파견 검사들은 특검 수사에 한층 더 매진해야 마땅하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어떤 이유로든 파견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검찰개혁과 관련해 “이름이 뭐가 됐든 수사기관은 인사와 예산을 통제하는 정권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수사와 사법 시스템이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민 전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전문가들의 문제 지적을 겸허하게 듣고 문제점을 충실히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1일 중앙일보 사설.

조희대 청문회에 한국일보 “조희대 없는 조희대 청문회”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조희대 대법원장 국회 청문회가 30일 끝났다. 민주당은 2심에서 무죄가 난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대법원이 대선 직전 서둘러 파기환송한 경위와 조희대·한덕수 회동 의혹, 지귀연 내란사건 재판부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 건을 추궁하겠다며 청문회를 열었으나 조 대법원장은 사법 독립 등을 내세워 출석하지 않았다. 법사위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기존 대법원 국정감사 일정을 하루 더 늘리고 오는 15일엔 대법원에 직접 가서 현장 국감을 하기로 의결했다. 다음은 관련 주요일간지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조희대 대법원장, 언제까지 ‘대선 개입 의혹’ 입 닫을 건가>

국민일보 <맹탕 청문회 이어 대법원 현장 국감까지 의결한 법사위>

서울신문 <‘조희대 청문회’ 헛심… 與, 독주 자제하고 국정 뒷받침을>

한국일보 <조희대 없는 조희대 청문회…사법개혁 스스로 훼손한 與>

경향신문은 “삼권분립과 사법독립 침해 논란까지 감수하며 청문회를 열어 얻은 실익이 무엇인지

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조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수 국민은 대법원의 전광석화와 같은 파기환송을 사법부의 대선 개입 시도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사법독립 보호막 뒤에 숨어 입을 닫는 식으로는 임계점에 이른 사법불신만 더욱 커질 뿐이라는 걸 ‘조희대 사법부’는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반면 국민일보는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의 파기환송 과정에 대해선 조 대법원장의 해명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청문회 등으로 밀어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라며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청문회 수준의 국감을 진행하겠다고 엄포를 놓기 전에 의혹의 근거를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한 채 대법원장에 대한 공격을 이어간다면 사법부에 대한 정치 공세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사법개혁이 필요하더라도 이쯤에서 여당은 자제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맹탕 청문회로도 모자라 맹탕 국감으로 사법부를 계속 흔드는 모습으로 국민 눈에 비칠 수 있다”고 썼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민생을 외쳐온 집권여당이 되레 정쟁을 부추기는 격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도 정당성이 훼손되기 마련”이라며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행태를 또 지켜봐야 하나. 막무가내로 상대를 흔들고 뭉개는 거대여당 폭주에 국민의 갑갑함이 쌓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얼마든지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다. 다만 입법부 우월주의를 앞세워 대법원장을 손보려는 건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무시한 일방 행위일 뿐”이라며 “조 대법원장 출석을 촉구하기에 앞서 여당이 납득할 만한 추가 근거를 공개하는 게 먼저”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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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목표’를 폐기해야 하는 4가지 이유

기자명

  •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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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09.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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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화공존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2. 한반도 핵전쟁 위험을 없애기 위해
3. 트럼프의 강탈을 막기 위해
4. 내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의 ‘평화공존 전략’이 좌초될 위기다. ‘비핵화 목표’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을 방문 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 국가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정리되기까지는 아직 역부족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지적처럼 이재명 대통령 주변에는 위성락 안보실장 같은 한미동맹 맹신자(동맹파)가 너무 많이 포진한 것이 주요 요인이다.

미국이 싫어하기 때문에 ‘비핵화 목표’를 폐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 동맹파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서 비핵화를 언급하는 순간 평화공존은 고사하고, 대화조차 불가능해진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비핵화는 영원히 없다”고 선언했으며, “그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여전히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하는 일명 ‘E.N.D’ 구상을 끌고 나왔다. 결과는 예상대로 냉담한 무반응과 대화 단절이다.

비핵화 목표는 이제 낡은 간판이다. 이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를 4가지로 정리한다.

1. ‘평화공존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남북간 대화 재개, 긴장완화·신뢰구축, 제도화’라는 평화공존 전략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비핵화는 평화공존의 전제가 아니라 걸림돌이다.

조선(북한)은 핵무장을 '국체'로 선언했고, 이를 포기하라는 요구는 곧 정권 붕괴를 노린 적대행위로 간주한다. 더구나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다른 핵보유국에겐 그러지 않으면서, 조선에게만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중잣대다.

사실 평화공존 전략이 실현돼 남북이 적대하지 않고 관계 정상화가 이룩되면, 조선이 핵을 가지고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관계 정상화가 실현된 중국과 러시아의 핵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컨대 비핵화 목표를 폐기해야 평화공존 전략이 실현되고, 평화공존이 이룩되면 비핵화는 의미 없는 목표가 된다.

2. 한반도 핵전쟁 위험을 없애기 위해

 

비핵화를 고집하는 한 미국과의 핵 공조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미 핵협의그룹(NCG), 핵‧재래식 통합훈련(CNI), 새로운 작전계획(OPLAN)의 초전 타격 시나리오로 나타난다.

핵 선제공격이 포함된 군사 훈련은 북의 핵 대응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뇌관이 된다. 상시적 한미연합훈련(연 340회 이상)은 조선에겐 사실상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정전체제에서 군사훈련은 곧 전쟁준비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은 평화를 이야기하며 핵전쟁을 준비하겠다는 모순이며, 긴장 완화는커녕 핵전쟁의 가능성만 높이는 셈이다.

3. 트럼프의 강탈을 막기 위해

트럼프는 ‘안보’를 미끼로 한국에 막대한 관세와 '투자 조공'을 요구하고 있다. 조지아주 구금 사태와 맞물려, 한국 정부의 대미 자세는 더욱 위축됐다. 이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방식이다. “핏값을 내라”는 식의 협박을 동맹국에게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트럼프의 방식은, 전쟁 동맹이 경제 착취로 이어진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관세 협상에서조차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는 종속적 군사동맹이 낳은 결과다. 평화공존을 통해 전쟁동맹을 해체하지 않는 한, 미국의 강탈은 반복될 것이다. 비핵화 목표 폐기는 전쟁 구조를 깨는 첫걸음이자, 경제주권 회복의 단초다.

4. 내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비핵화 기조는 ‘북풍 정치’를 가능케 한 내란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논리다. 이들은 헌법 제3조를 앞세워 남북 간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고, 선거철마다 ‘안보 장사’를 벌이며 권력을 잡아왔다.

조선을 ‘핵 위협’으로 고정시켜야 정권 유지가 가능한 이들은, 평화공존이나 관계 정상화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조선과의 관계 정상화는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적이 없는 정치’는 이들의 존재 기반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목표를 폐기하고 평화공존을 현실로 만들어야, 이들의 정략적 안보 이용을 끝장낼 수 있다.

이제는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대결만 부추긴다. 비핵화를 말하는 순간, 대화는 사라지고, 미국의 지배는 강화되며, 평화는 멀어진다. 반면 비핵화를 폐기하는 순간, 비로소 남북은 마주 앉을 수 있다. 이는 항복이 아니라 현실 인정이다. 냉철한 인정 위에서만 진짜 평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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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탄핵 청원' 10만 돌파…국민 분노 불붙었다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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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5.09.29 23:25

  • 수정 2025.09.29 23:26

  • 댓글 2

국회 등록 1주일, 공개 3일만…무서운 속도

'사법 독립' 가장한 '사법 독재'에 민심 불길

서명 10월 26일 종료…아직 27일이나 남아

최대한 많이 동참하면 '조희대 탄핵' 대세로

윤석열 국민청원 때처럼 법사위 청문회 가능

청원인은 카이스트 총학생회장 출신 김혜민

"대선 개입으로 사법부 독립성 스스로 훼손"

"민주주의 근간 흔들어"…30일 국회 기자회견

조희대 대법원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있다. 2025.9.18. 연합뉴스

'사법 독립'을 가장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 독재' 행태를 두고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응집되고 있다. 국회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의 참여자가 29일 10만 명을 돌파했다. 해당 청원이 국회 사이트에 등록된 지 1주일, 공개된 지는 불과 3일 만이다.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에 관한 청원'에 대한 동의자 수는 이날 오후 10시 30분 기준 10만 3785명을 기록했다. 이 청원은 지난 23일 등록됐으며 청원 요건 충족 여부에 관한 국회 측 검토를 거쳐 26일부터 공개됐다. 청원서 공개로부터 30일 뒤인 다음 달 26일에 종료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동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간은 아직 27일이나 남아 있다.

국민동의청원이란 국회에 입법 등에 관해 청원을 하려는 자가 국회법에 근거한 전자청원시스템을 이용해 청원 사항을 등록하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 제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30일 이내 5만 명이 동의하면 국회에 제출되기 때문에 이미 청원 접수 요건을 100% 충족한 상태지만,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시민이 서명해 들끓는 민심을 입증한다면 '조희대 탄핵'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들 수도 있다.

동의 기간이 종료되면 이 청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다. 법사위는 청원심사소위원회의 심사 및 전체 위원회 의결을 거쳐 해당 청원을 본회의에 부의하거나 폐기하게 된다. 지난해 7월 법사위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동의가 100만 명을 넘자(최종 143만여 명) 관련 청문회를 2회에 걸쳐 개최한 바 있다('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과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에 관한 청원'에 대한 동의자 수는 29일 오후 10시 30분 기준 10만 3785명을 기록했다.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

청원인은 카이스트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현재 카이스트 '입틀막' 재학생‧졸업생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국민의힘해체행동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는 김혜민 씨다. 김 씨는 30일 오후 국회에서 '조희대 탄핵 청원 10만 돌파'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 관련 기사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응원봉은 꺼지지 않는다">

김 씨는 이번 청원 취지에서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과 삼권분립을 근본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이례적인 속도로 재판을 추진해 정치 개입,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며 "이에 국회가 헌법 제65조에 따라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절차를 개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을 규정한 헌법 제65조 1항에는 '법관'이 포함돼 있다.

청원 이유에서 제시한 조 대법원장 구체적인 탄핵 사유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대법원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연계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사법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사법부 최고책임자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재판 방향을 조율하려 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누구나 법 앞에 공정하게 판결해야 할' 사법부의 수치이다.

둘째, 재판 절차의 이례적인 운영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했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일반적 절차를 벗어나 신속히 전원합의체로 회부되었고, 그 과정과 시기가 투명하지 않아 국민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재판 절차의 비정상적 운영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중대한 문제이다.

셋째, 헌법과 법률상 책무를 위반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정치적 고려 속에 사법 행정을 운영하고, 권력과 이해관계에 유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넷째, 이로 인해 사법부 전체의 신뢰가 심각하게 추락했다. 국민은 사법부가 더 이상 정의와 법치의 최후 보루가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느끼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사태이다.

김 씨는 "위와 같은 이유로 조희대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책무를 저버리고 사법부 독립성과 국민 기본권을 훼손한 책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의결해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재판 절차의 불투명성, 정치적 압력 수용 여부, 언론 보도로 제기된 문제 발언 등을 철저히 조사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에 관한 청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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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투쟁을 겪은 한국, 이스라엘 학살 저지에 함께 해야

 [장석준 칼럼] 보편성의 자리에 서서 '가자'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자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봉쇄가 끝날 줄 모른다. 이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려는 집단행동도 분출한다. 대학가 등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더 빈번히 개최될 뿐만 아니라(지금 미국에서는 이것만으로도 혹독한 탄압을 받을 빌미가 된다), 유럽 여러 나라 항만 노동자들이 이스라엘로 무기를 수송하는 선박의 출항을 막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는 그간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던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등이 부랴부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에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는 유엔 제80차 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슬로베니아의 나타사 피르치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준엄히 비판하면서 국제사회의 긴급하고 효과적인 개입을 호소했다. 반면에 9월 한 달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대한민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연설에서 가자 학살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엔 193개 회원국 중 4분의 3(9월 현재, 158개 국)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데도 여전히 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어울리는' 연설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게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험난한 상황에 과연 '어울리는' 처신일까? 관세협상, 북핵문제 등만 해도 제 코가 석자이니 괜히 이스라엘이나 미국 정부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이나 행동은 삼가는 게 한국 정부에게 최선의 방도일까? 물론 현재 가자 상황은 인류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그 자체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주제다. 하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근시안적 태도, 그리고 이에 따라 작금의 전 지구적 혼란을 헤쳐 나갈 한국 사회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비겁함과 어리석음에 관해 짚고 싶다.

▲2025년 8월 21일, 가자시에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

 

 

미국이라는 정박지를 떠나 항해에 나서야 할 대한민국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이재명 정부가 맞이한 가장 커다란 시련이 미국 트럼프 정부와 벌이는 관세협상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한국의 대미투자액으로 이야기가 오간 3500억 달러(490조 원)를 현금으로 선지급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거의 한국 외환보유고 전체(올해 7월 현재, 4113억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을 그야말로 미국에 즉각 바치라는 이야기다. 자본주의 역사상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우방국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한 적이 있나 싶은 상식 밖 행태다.

 

이쯤 되면 트럼프 정부에 도대체 장기 비전이라 할 만한 게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그만한 비전도 없이 관세협상으로 기존 질서를 이토록 뒤집어 놓을 리는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많은 전문가는 지난 몇 개월간 트럼프 정부의 행보를 합리적으로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것은 점점 시지포스의 노동임이 드러나고 있다. 보호무역과 투자 유치를 통해 정말로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게 목표라면, 이런 식으로 '깽판'을 칠 수는 없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단번에 현금 3500억 달러를 챙겨갈 경우, 이것은 미국 사회를 '구호'하는 한국판 '마셜플랜'이 될지언정 애초에 이야기가 오가던 제조업 투자일 수는 없다.

 

아무리 추리해 봐도 트럼프 대통령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다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내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 때까지 반드시 업적이라 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상원, 하원 모두 공화당이 지배하는 덕분에 거칠 것이 없지만, 중간선거에서 이 균형이 무너진다면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파시즘적 국내 정책을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만큼, 중간선거 '패배'를 계기로 닥칠 역풍 또한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트럼프 진영으로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중간선거에서 여대야소 구도를 지켜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왜 트럼프 정부가 미국 내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온갖 표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제조업 투자 유치나 생산 설비 구축과는 상관없는 행보를 보이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트럼프 정부에게는 단지 중간선거 때까지 미국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실적'이 필요할 따름이다.

 

이제 막 뼈대를 짓고 있는 미완의 공장이나 아직 눈에 띌 만큼 많은 인력을 고용하지 못한 채 가동을 준비 중인 설비 따위는 그런 '실적'이 될 수 없다. 성미 급하고 방향 모를 분노에 들떠 있으며 제조업이 무엇인지 망각한 지 이미 한, 두 세대 지난 트럼프 지지 성향 미국인들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이들에게 '실적'이라고 자신 있게 내밀만한 것은 밉살스런 무역수지 흑자국에 매겨진, 충분히 '가혹'해 보이는 관세율이나 미국 바깥 어딘가에서 노획해온 현금 더미다.

 

여기까지 추리하다 보면, 트럼프 대통령 머릿속을 지배하는 또 다른 생각이 무엇일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즉각적인 '실적'을 만들어내고자 혈안이 된 패권국의 폭압적 지도자가 지금 세계 지도를 펼친다면, 가장 눈길을 둘만한 곳이 어디이겠는가?

 

중동? 거기에는 골치 아프고 답도 없는 현안들만 있을 뿐이다. 토니 블레어한테나 맡기는 게 좋겠다. 유럽? '취임 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공언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 24개월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판이다. 게다가 실속은 없으면서 능구렁이 같기만 한 유럽 국가들을 뜯어먹는 것은 수고롭기만 하다. 주요국 지도자들이 다 이탈리아의 극우파 조르자 멜로니 총리 같은 고분고분한 인물로 교체될 때까지 일단 놔두는 쪽이 낫겠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남는 곳은 중국과 대치한(미국이 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일본, 한국, 대만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나라인 일본조차 미국에 대해서는 늘 저자세였다. 이번 관세협상에서도 일본은 스스로 나서서 불리한 협상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 나라 모두 미국이 중국에 맞서 펼쳐놓은 핵우산과 미군 기지에 과거보다 더 비싼 '보호비'를 납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히 써먹을 카드가 하나 더 있다. 6년 전에 한 번 낭패를 봤던 북미협상 카드가 그것이다. 중동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성사보다 더 수월하게 북미협상을 진전시킨다면,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 훌륭한 '실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노고'의 명목으로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챙겨갈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북미협상을 추진하려는 '선의'의 트럼프가 따로 있고, 3500억 달러를 날로 뜯어가려는 '악당' 트럼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단 한 사람의 폭군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 그물에 지금 한국 사회가 걸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말도 안 되는 관세협상을 놓고 당장 다음 대답을 어떻게 내놓을지 고뇌에 빠져 있다. 그런데도 정부 내 상당 부분도 그렇고 심지어는 미국 정부의 횡포에 맞서 다시 반미투쟁에 나서자고 촉구하는 이들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할 두 번째 북미협상 가능성에 잔뜩 기대를 건다. 관세협상은 북미협상과는 별개이고 트럼프 정부의 세계정책도 알 바 아니며, 한반도에 평화의 기회를 열기만 하면 된다는 투다. 세상에 이런 '공상'이 또 어디에 있을까? 온 세상이 불바다인데 이곳에만 '평화의 기회'가 열린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공상'에 스스로를 마취시키며 미국이라는 '불타는' 정박지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적어도 내년 말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라도 이 정박지 밖의 먼 바다로 나아가 전에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외교정책을 펼치며 우방국들과 함께 생존을 도모하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중견국'이라고 자처만 할 게 아니라 최소한 유럽 국가들이 하는 만큼은 '중견국'다운 행보를 보임으로써, 트럼프 정부와 함께 공멸하는 최악의 운명을 피하고 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보편성의 자리에 서서 '가자'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자

 

이런 역사적 상황에 처한 한국 사회에게 '가자'는 결코 피해가면 좋을 머나먼 낯선 땅의 문제일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석상에서 민족해방투쟁과 광주항쟁을 경험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가자 봉쇄 해제와 학살 중단을 촉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가자 문제 자체만 두고 보더라도 유엔 회원국인 대한민국이 마땅히 취해야 할 최소한의 태도이자 조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을 개척하는 차원에서도 역시 중대한 출발점이다. 지구자본주의의 패권국이 이제껏 뒤집어쓰고 있던, 보편적 이상과 규범의 가면을 훌훌 벗어버릴 때에 한국 같은 나라가 비슷한 처지의 다른 많은 나라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며 활로를 열어나갈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인가? 내동댕이쳐진 그 '보편성'의 자리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그럴만한 역사적 자원이 이미 풍부하게 존재한다. 소니 픽처스가 한국 문화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기만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36년의 역사는 결코 약소국의 구질구질한 기억만이 아니다. 지기만 하는 것 같았던 이 외로운 투쟁은 제국주의 국가들까지 끼어 있던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정상회담에서 유독 한국의 독립을 명기하는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보편적'이었다. 45년 전 봉쇄됐던 저 도시, 광주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통해 전해진 광주 이야기에서 세계인이 본 것은 변방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가 아니라 폭력과 절망을 넘어 전진하는 인류의 '보편적' 형상이었다.

 

이 보편성의 자리에서 이제 한국 사회는 그간 비겁하게 미뤄왔던 결정을 뒤늦게나마 과감히 내려야 한다.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근거 삼아 국제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 아일랜드만의 특허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 역시 민족해방투쟁의 결실로 건국된 나라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과 자결권을 옹호해야 하고, 민주화투쟁을 겪으며 성숙한 나라로서 이스라엘군의 학살을 저지하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

 

보편성에 호소하지 못하는 하소연은 늘 무력하고 무능할 뿐이다. 포스트-트럼프 시대에 대한민국이 우선 확보해야 할 '진지'는 인류에게 호소할 근거가 되는 보편성의 자리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적 약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루한 협상을 끌고 갈 힘도, 한반도 평화의 숨통을 틔울 기회도 이 진지에서 비롯될 것이다. 벌써부터 자국민 절반 이상과 대치하고 있는 패권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곡예가 아니라 말이다.

 

 

▲2025년 6월 19일, 가자시의 알시파 병원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반응하고 있다. 이들은 전날 북부 가자지구에서 구호 물자를 찾던 중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다. 이는 가자 보건부의 발표에 따른 것이다 ⓒ로이터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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