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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리산 거림골, 세석산장 (5) 2007/01/15
  3. 부모님께... (13) 2007/01/10
  4. 양경규 (12) 2007/01/09
  5. 어머니 칠순, 금혼식 (6) 2007/01/08
  6. 첫날 다시 북한산... (6) 2007/01/05
  7. 북한산... (2) 2007/01/05
  8. 예수님 덕분에 지리산.. (6) 2007/01/05
  9. 문자 새해인사... (11) 2007/01/02

뚝방의 추억...

from 단순한 삶!!! 2007/01/18 16:31

행인님의 [뚝방의 추억] 에 관련된 글.

행인님이 안양천 뚝방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산오리도 그 동네서 오래 살았으니,

추억이 많다...

 

산오리네 집은 행인이 살던 뚝방은 아니었고, 칼산이다.

71년도 여름에 서울로 왔는데, 아버지가 영등포국민학교에 넣어줬다.

칼산에서 문래동의 영등포 국민학교까지 3형제가 걸어서 등하교를 했는데,

지금 걸어가라 해도 한시간은 더 걸릴 거리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학교 가는데 한시간 반씩 걸어가고, 다시 집에 오는데 한시간 반 걷고...

아마도 산오리가 조금 잘 걷는다면 이때 단련한 것이 아닐라나 모르겠네..

 

 




논둑길을 지나서(이당시 논둑길이 지금 목동아파트 14단지 부근이다)

안양천 뚝방을 올라가서 뚝위로 한참을 걸어가서

행인네 집 근처의 안양천 아래에 구름다리가 하나 있었다.

안양천 물이야 장마철 빼고 나면 항상 어른들이라면 걸어서도 건널 정도의

깊이와 폭이었으니 20~30미터쯤 되는 다리였던 거 같다.

양쪽에 쇠줄을 걸고, 그 아래에는 빈 드럼통을 몇게 받쳐 놓고,

다리바닥은 나무 판자를 어설프게 올려 놓은 모양새다.

그러니 건너 갈때 다리 위에서 출렁거리며 장난치고 놀기 좋은 다리였다.

 

그 다리는 물론 정부에서 만들어준 다리는 아니었나 보다.

다리 입구에 조그만 움막(요즘 이동식  화장실 만한)을 지어 놓고,

다리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돈을 받고 있었다.

한번 건너는데 5원이었던가?...

(그다음해 중학생이 되었을때 시내버스 교통비가 10원인가 15원이었으니까 결코 싼편은 아니었다.)

아마 한달치로 끊으면 몇십원 됐던거 같은데, 얼마였는지 기억이 없다.

이 다리는 안양천 뚝방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문래동이나 도림동의 공장으로 넘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었기에 아침 출근시간이면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름 방학때나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가다 보면,

어라, 다리가 없어졌다. 큰 비 와서 다리를 쓸고 내려가 버린거다.

그러면 또 그 다리 다시 만들어질때까지 오목교까지 걸어내려 가거나,

고척동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고 가기도....

 

겨울방학 시작할때 쯤이나 2월 봄방학 전에는

군데군데 조금씩 물이 고인 곳이 있었는데,

얼음 아래 붕어들이 놀고 있었다는....

그때까지는 안양천이 그나마 물고기 정도는 살정도는 되었었나 보다.

산오리는 안양천에서 목욕해 보지는 않았는데, 그 전 몇해까지는 안양천에서 여름에

수영을 하고 놀고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 긴 안양천 뚝방을 따라서 서너줄의 판자집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칼산에 올라가서 보면 그건 예술이었다.

서울 중심가에서 쫓아내니까 쫓겨 와서 집단적인 주거지가 형성되었거나

시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변두리로 모여들어 만들어진 주거지였을텐데,

그래도 줄을 맞춰서 지었으니까 위에서 보면 멋있어 보였다.

학교 갔다 오다가 심심하면 뚝방위를 걷는것이 아니라,

뚝방 아래의 동네 좁은길을 걸어서 왔다.

문앞에 내놓은 연탄재를 차기도 하고,  동네 개 똥구멍을 차기도 하고...

그 동네 지나다니면서 행인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화장실도 가끔은 애용하고...

 

74년인지 75년인지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안난다.

엄청 큰 물난리가 났는데, 안양천이 넘칠 지경에 이르렀고, 지금 목동아파트가 들어선

논바닥은 완전히 잠겨서 커다란 바다가 되었다.

안양천 뚝방으로 물구경을 갔는데, 뚝방아래 사람들이 온통 가재도구를 꺼내들고선

뚝 위로 피난을 올라 오고 있었다.

뚝방아래 집들 가운데 낮은 쪽의 집들은 절반이 물에 잠겼다.

그 동네에 살던 우리 친척 한사람이 애를 낳았는데, 물이 집에 잠겼으니

갖난애기를 싸들고 우리 집으로 피난을 왔다.

뭔지 모르고 물구경에다, 집에는 손님들이 왔으니 그저 좋아 했었다는...

당시에 물이 안양천을 넘기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소문에 의하면, 문래동 쪽의 뚝에 대포를 설치했다는 거였다.

문래동쪽으로 둑이 터지면 공장들의 피해가 막심할테니까

아예 목동과 신정동 쪽의 뚝을 터뜨리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직접 보지 못했기에 사실인지 소문인지는 모르겟다.

물 내리고 다시 안양천 건너 문래동으로 갔더니, 그동네도 어른 가슴만큼은 물이 잠겼는데,

당시에 수세식 변소 없었으니까 온통 똥물로 물이 잠겼던 선을 선명하게 그려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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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8 16:31 2007/01/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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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스머프...님의 [지리산에 다녀와서..] 에 관련된 글.

 

역사와 산을 따라 나선지 오래다.

지난해 애 학원을 핑계거리로 거의 가지 않았기때문이다.

가지 않다 보니까, 은근히 무박산행이 무서워지기도 한다.

잠자는 시간을 그 좁은 버스의자에 앉아서 몸을 비틀며 잠을 청하는게 싫어서인데,

그렇게 보니까 아예 1박을 잡아서 이틀동안 움직이는건 여유로와서 좋았다.
이틀동안 지겹도록 본것은 하얀 눈길, 새파란 하늘, 그리고 쏟아지는 별, 그리고 떠오르는 해,

그 붉은 바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하자 마자 눈이 어른거리고, 침침하고, 눈꺼풀은 떨리고, 하늘은 침침하고,

형광등 불빛에 눈을 껌벅이면서 적응하자니, 꽤 답답했다.



거림골로 올라간 적은 없었던 초행길이지 싶다.

김재영처럼 지리산을 57번째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름있는 계곡은 대충 다녀본 듯한데,..

 

1. 세석산장은 너무 호화찬란(?)한 산장이었다.

    지나치기만 했지, 산장에서 잠자본 적은 없었는데, 그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산장에서 자야하는 칼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지리산을 오더라도 장터목을 굳이 가지 않고, 세석에서 잠자면 편하고 좋겠다.

    넓고 편하다고 해서, 그리 편하게 깊게 잠들었던건 아니었던거 같다.

    몸을 뒤척일때마다 불편해서 깼는데, 그리고는 또 잠들고, 코를 골아서 옆사람에게

     방해를 주고....

    어쨌든 세석은 너무 좋은 산장이다. 산에서 그렇게 좋은, 편한 곳에서 자는건 좀 미안하다.

     별도 많고, 먹을 것도 잘 먹고, 잠까지 오래도록 잤으니 그이상 뭐가 더 필요하랴..

    술 따로 안가져 가는 바람에 조장한테 '기본이 안되었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는데,

    무겁더라도 담부터는 소주 한병은 챙겨가자..

 

2. 아침에 우리 조는 가장 먼저 출발했는데, 전날 엄청 먹고서도 아침에 또 배가 고파서

   누룽지 끓인걸 먹고 걷기 시작했다. 근데, 처음 30분 정도는 오르막 길이고, 조장이

   빠르게 빼서 그렇기도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넘 힘들었다.

   약간의 준비운동이나 여유도 없이 출발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가슴이 막혀 못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3. 장터목을 지날때부터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었는데, 이게 언제쯤 해가 떠오르려나 몰라서

   좀 기다렸다가 보고 갈까 하면서 계속 올랐다. 제석봉에 올랐을때 해가 떠올랐고,

   그 추운데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뛰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그바람에 카메라를 바위에 약간 부닥쳤는데, 그다음부터는 작동중지....

   밧데리가 없어서이거나 , 추워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래에 내려와서도 여전히 중지.

    오늘 에이에스센터에 맡겼다.....ㅠㅠ

 

4. 올라가면서도, 그 추위속에서 산등성이를 걸으면서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언제부터 무릎이 아프다고 오래 걷는 것은 가지도 못했고, 이러다가 산에 가는 건 포기해야

   하는거 아닌가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럭저럭 잘 걸어가고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약간 무게가 더 나가더라도 큰 배낭을 지고 갈수도 있겠다는 자만심까지..

   이렇게 또 무리 하다가 완전히 무릎이 고장나는거 아닌지 모르겠네..

 

5. 로타리 산장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으면서, 물을 뜨러 법계사에 들어갔는데, 물 뜨고,

  내려오면서 절을 들른 김에 열심히 합장을 해서 부처님께 기도했다.

  재수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를 동희가 맘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기도와, 산에 가기전에

  일출을 보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한 공주가 커플생활(?)을 할수 있게해 달라고 빌었다.

  일출을 보면서  빌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도가 효험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짝들을

  찾아서 즐겁게 살아가시길...

 

6. 아침 겸 점심 먹으면서 박인해에게 한 농담은 그에게 마음에 남았나 보다.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산오리 아저씨의 말처럼 비와 강동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걸 보면....

   박인해가 한 말은 다 공감이 가고 반성해야 할 것들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나

   중고등학생을 만나면 더 할 말이 없어지고 마는 듯하다.

   그나마 몇번 보아왔기에 아는 척하거나, 친한 척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으로

   또는 '어른들은 항상 그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어릴적에 어른들이 반말하거나,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 왔을 테지만,

   나이 먹어가고, 어른이 되면서 다시 어른들이 하던 것들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반성할 일이다.

 

7. 2월엔 태백산을 간다는데, 무박이란다.

   가고 싶다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버스안에서 불편함으로 시달릴걸 생각하니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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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5 18:25 2007/01/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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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from 나홀로 가족 2007/01/10 18:14

벌써 1학년의 모든 행사가 끝이나고 몇일만 학교에 더나오면 어느덧 방학이네요...

중간고사때는 학교시험 포기한다고 하고 제과제빵필기를 따겠다고 하다가 결국

제과제빵도 못따고 시험도 반꼴등을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하고 다음에는 학교시험이라도 잘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독서실도 다니고 나름 공부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제과제빵 필기시험도 붙고 많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평균점수도 조금 올라간 것 같습니다.

중학생때와는 달라서 한달정도 한꺼번에 공부하려니 꽤나 벅찼던것 같습니다.

다음시험  때는 지금보다 더욱 수직상승한 성적표를 부모님품에 안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안좋은 머리에다가 들어가지도 않는 것들 꾹꾹 쳐넣느라고 힘들었지만

다음에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2학년때는 잘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  ^ ^

 

동명이가...

 

성적표와 함께온 동명이 편지다...

 

'이 안좋은 머리'를 만든 아빠로서 심히 괴롭고 미안한 마음을 주체할수 없구나...

되는 데로 적당히 공부하려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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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0 18:14 2007/01/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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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규

from 단순한 삶!!! 2007/01/09 14:19

양경규 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했다.

언젠가는 한번쯤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이번 출마가 이른건지 늦은 건지는 모르겠다.

민주노총이고 당이고, 중앙이 거의 개판 수준인거 같아서,

그런 판에 누가 하든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어서

된다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찜찜하지 않을까 싶다.

 



철도웨딩홀을 가득 메우고도 넘칠 사람들이 왔고,

분위기는 좋았다.

 

가기 싫었는데, 일산으로 근무지를 옮겨온 친구가 퇴근길에 같이 가자고

해서 갔더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끝나고 나오는데 얘기했듯이 '경로잔치 하냐?'는 말처럼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같이 활동했던

전문노련 시절의 동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얼굴도 보고, 반가웠다. 

그래도 17~8년을 넘기면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아직도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또 이런 곳에 나와서 양경규에게 박수를 보낼수 있다는건

좋은 일이 아닐까.

 

식이 시작되고, 중간에 박준이 나와서 민주노총가를 불렀는데,

산오리는 그 가사를 거의 다 까먹었다.

뒷부분 소리 높이는 곳만 좀 생각났다.

민주노총 조합원인데, 이모양이라니.......

 

참석한 친구들 가운데 산오리가 알고 있는 친구들은

한 4분의 1쯤 될라나..

모르는 새얼굴들이 많다는 건 활력이 있어서 좋은 일..

허나 경로 잔치에 온 산오리 같은 친구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도 아닐테니까 별 영양가는 없는 듯하고,

다만 선거경비로 약간씩 추렴할 정도가 아닐까..

 

민주노총 선거공보를 들여다 보니까,

90년 초반 전문노련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들도

이래저래 정파로 갈려져 있었다.

산오리가 가장 좋아하는 허영구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부위원장으로 출마했다.

그가 추구하는 게 '무정파'라서  더욱 좋다.

김예준은 기호 3번의 선대본부장으로 이름이 올라와 있고,

김태일은 지난번 선거에서 사무총장으로 당선되기도 했으니

기호 2번의 핵심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파로 갈라져서 서로 경쟁하는 거야 나쁠 거 없지만,

요즘 민주노총이고, 당이고 모조리 정파로 사람을 갈라 버리니까

예전 함께 했던 동지들도 서로 못본척하는 사이로 바뀌어 버린 듯하다.

 

전진 만들때 산오리한테도 가입하라 했지만,

이상하게 가입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진에 있는 친구들은 산오리와 가까운 친구들도 많고,

그들이 표방하는 것들도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이것도 어쩌면 그들과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렇게 수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은 전진이고 뭐고 간에 어떤 단체에 가입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슨 회의다, 무슨 수련회다, 뭐해라, 뭐해라 하는게 싫어서 였을 것이다.

어디나 사람이 모자르니, 한두번 얘기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움직여지기를 강요(?)받게 되고, 또 당사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단체의 소속원으로서 기본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전진이고, 노힘이고, 다함께고, 전국회의고 간에 어디든 다 가입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예수님도 믿고, 하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고, 천주님도 믿고, 마호멧도 믿고

그래서 어느 신이라도 어여삐 봐줘서 천당이라도 갈 행운이라도 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

하는 것처럼,  이단체 저단체들이 다들 표방하는 것들이야 얼마나 좋은 생각들인가 말이다.

부질없는 넋두리겠지..ㅎㅎ 

 

어쨌거나,

양경규는 산오리를 볼때마다 연맹에 나와서 일좀 해달라고 했는데,

산오리는 그즈음에 그랬다.

"양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 되면 도와 드리죠."

그 당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내뱉은 말이지만,

그 친구들은 당연히 산오리 얼굴 볼때마다 잊지 않고 상기 시켜 왔다.

 

물론 지금 양경규가 민주노총 위원장이 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설사 산오리가 일하고 싶다 하더라도,

이제 별로 쓸모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같이 일하자고 하지도 않겠지만,...

그보다도 그게 하고 싶은 일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밤늦게 까지 회의하고, 전국을 여기저기 돌아 다니고,

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서 소리지르며 팔뚝을 흔드는,

그런 것들이 벅차게 느껴지고, 도저히 할 자신이 생기기 않는다.

 

어쨌거나,

출마한 양경규가 이번선거에서 이겨서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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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9 14:19 2007/01/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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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결혼 한 거는 맞는 거 같은데,

결혼식 날자도 정확하게 모르신다. 두분다...

신행 가고 오는 어느날을 헷갈리는지

아니면 세월이 지나다 보니, 결혼날자라는게 무슨 의미가 없어서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후자가 더 크겠지.

 

어쨌거나 지난 토욜(6일)저녁에

어머니 칠순 잔치를 치렀다.

 



그때도 안하신다, 못하신다 하다가도 막상 하고 나니까

그저 좋아 하셨던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는

어머니 칠순에다 금혼식까지 겹쳐서 잔치를 해야겠다고 추진했다.

 

장소에, 사진에, 이런거 저런거 챙기기 싫어서

아예 무슨 상조회사라는데 계약을 했다.

부모님 웨딩 사진 찍어준다 해서

모시고 가서는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맘에 안든다고 다시 가서 찍었다.

두번째 가신다고 할때는 난 모르겠다고 안갔더니,

막내 동생이 함께 갔다 왔단다.

사진을 액자로 크게 만들어 가져 왔는데,

그사진이나, 새로 찍은 사진이나...그게 그거인듯.

(어쨌든 그당시의 결혼 사진도 한장 없다..사진이라고 찍지도 않았겠지)

 

아버지와는 칠순잔치를  하겠다, 안하겠다로 실갱이를 좀 벌였고,

"저도 낼모레면 나이 50이니까 그냥 제가 하는대로 좀 따라오시죠!"

하고 아버지한테 대들었더니 그담에는 부모님으로부터는 말이 없어졌다.

막상 청첩장 만들어 드렸더니,

올친구들 아무도 없다고 하셨다가는 다 연락해 가지고,

예약한 자리보다 50석이나 자리가 많았는데도

막상 자리가 모자랐다는...

 

문제는 형제들간에 있었다.

형제들이라기보다는 며느리들의 불만이 나오고,

며느리들끼리도 의견이 안맞아 말다툼도 하고....

 

물론 원인제공은 큰아들인 내가 했지만,

그래도 일을 시작할때 이런저런걸 계약해서 하려고 하고,

그걸 추석 때 만나서 얘기는 했고, 

또 지난 12월 초에 시골에 묘사지내러 갈때

청첩장 나눠주면서 이렇게저렇게 할 거라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이 동생들이 자기 아내들한테 제대로 설명을 안해줬다.

대충 이렇게 칠순잔치 한다더라... 정도로.

 

그러다 보니, 불만이 일을 추진한 장남 한테로 몰렸고,

왜 그런 행사를 하려면 전체가 다 모여서 결정을 하지 않고,

장남 맘대로 진행했느냐는 거였다.

(이 형제들이 회비를 거둬서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고,

 행사비를 이 돈으로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직접 자식들은

'그정도는 일추진하는 사람이 알아서 하면 편하고 좋은거 아니냐?'였고,

한다리 건넌 자식들은

'전체가 회의를 해서 결정해야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게 어딧냐?'였다.

 

한다리 건넌 사위들은 '별의견 없음....' 이런정도..

 

그나마 장남의 아내라고, 남편을 위해서인지, 큰며느리라고 그런지 모르지만,

아내가 대충 지지해 줬고, 그래서 행사는 무사히 마쳤다.

행사 끝나고, 장남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일요일날 모여서 향후 계획이라도 얘기하자고

밥이라도 살테니 모이라고 했더니,

아들 한명과 며느리 셋은 불참.

모인 사람들만 대충 결정하고 마쳤다.

불평 있는 사람들이 빠지면, 회의는 언제나 일사천리??

 

하튼, 칠순 잔치에는 부모님 친구들과 친척들이 많이 왔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들보다 훨씬 인물이 낫다'는 중평이었고,

더구나

아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산오리를 남편이라고 소개했더니,

'할아버지랑 사냐?'고 되물었다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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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8:37 2007/01/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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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은 해마다 정발산에 올라 해맞이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끓여 주는게 당 행사였는데,

올해에는 이틀동안 집안에 손님 치레 하느라 피곤한데다

아침일찍 동명이가 제주도에 무슨 걷기 행사에 참가한다고해서

공항에 애를 실어다 주느라고 해맞이 행사에 못갔다.

 

공항에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해맞이 행사한 사람들 모여 떡국 먹고 있으니까 오라고...

(아침 일찍 집에서 떡국도 먹었는데..)

공항갔다 와서 가서는 술한잔 하고는 이런저런 야그를 풀고 있었는데,

'서른즈음에'선배에게 전화를 했고,

이 선배가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잠시 들리겠다고 왔다.

 

그리고는 다시 술 한잔씩 마시고서는

가던길이니까 북한산에나 가잔다.

 

 



손빨래 해야 한다고, 그래서 못가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놈의 세탁기는 연휴시작하면서 고장났고, 빨래는 넘치는데 못한다고 해서

  그전날 두차례의 손빨래를 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남은 걸 밤 늦게 아내가 하겠다고 하길래

  내일 노니까 그건 내가 하겠다고 해서 남겨 두었는데...)

 

그 빨래야 나중에 갔다 와서 하면 된다고 꼬득이고,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그러자고 하고

집에 가서 배낭 챙겨서 나왔다.

 

지난 연말에 같이 가자 약속했다 못간 청년과 준혁 아빠, 서른즈음에 그리고 산오리.

산성 매표소에서 돈을 받지 않으니까 웬지 불안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입장료 안내고 들어가니까 기분은 좋더라.

 

아침에 해맞이 하러 갔던 등산객들은 다 내려왔을 테지만,

첫날이라 북한산에 사람들은 엄청 붐볐다.

그래도 대부분 내려오는 사람들이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서

부닥칠 정도는 아니었고...

 

대남문으로 향해서 가다가

마지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올라가서 능선에 올랐고,

대동문 쪽으로 가는데, 성곽 아래는 눈이 얼어서 엄청 미끄러웠다.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과 술을 먹고 마시고,

하산하기 시작했고,

조금 내려오니까 인적이 완전히 끊어졌고,

그 틈에 풍욕을 한판 하고,

(이 멤버들 풍욕 엄청 좋아한다...)

내려오니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화정에서 사우나 까지 하고 왔더니,

아내는 '빨래 끝나고 나니 들어오네' 한다.

미안한 마음에 내 옷 몇개를 손으로 빨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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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14:07 2007/01/0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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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from 단순한 삶!!! 2007/01/05 14:06

이건 또 누구 덕분인가?

새해라고 노는 날이 3일이라니...

 

당 송년회때 한 청년을 만나서 북한산에 가자고 했더니

시간 있다고 같이 가자 했다.

마침 또다른 청년이 연락이 왔길래,

구파발역에서 9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정했다.



첨 약속했던 청년이 안나타난다.

전화를 했더니, 산에 가자고만 하고, 언제 어디서 만날지를 얘기안해줘서

안가는줄 알았다니... 으이그 순둥이 같으니라고...

전화하기 귀찮아서 당 게시판에 올려서 다른 친구들 갈수 있으면

가자고 했는데, 이친구는 그동안 당게시판에 가보지 않았단다.

 

둘이서 호젓하게 걸어서,

마지막으로 내는 국립공원 입장료도 당당하게 내고,

(마지막이라 하니까 막 더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는..)

대남문까지 설겅설겅 올라갔다.

아직 2주 전에 내린 눈이 햇빛 들지 않는 계곡에는 그대로 남아 있어

대남문 뒷편은 꽤나 미끄러웠지만,

살금살금 잘도 올라 갔고....

 

문수봉아래서 점심을 거나 하게 먹고,

사모바위를 거쳐 이북5도청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구기동 입구에서 등산객들이 즐기는 사우나에서

목욕까지 했더니, 정말 행복했었다는....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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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14:06 2007/0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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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그리고 지신님부터 산신령님까지

온갖 신님들을 다 믿으니 역시 복이 있다.

예수님 탄생일이라고 놀게 해 주셨으니..ㅎㅎ

 

놀게 해 준날은 놀아야지.

지난해 12월 23-25일 3일동안 함양, 산청과 지리산 연하천을 다녀왔다. 



이준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가면서

함양의 이런저런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갔다.

안의에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이러면서

정자가 계곡을 따라 가면서 계속 있었다.

불타 사라졌다는건 농월정이던가?

 

그리고 정여창 고택을 비롯하여

한옥마을을 한바퀴 둘러 보았는데,

사람 살지 않고, 가꿔 놓은 집이야 깨끗하게 보였지만,

인간미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직 사람 살고 있는 집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농가였다.

 

함양의 상림은 신라의 최치원이 만들었다던가?

그 시대에 홍수를 막기위해 강변에 나무숲을 만들었다던데,

그래도 인위적으로 가꾼 냄새가 덜나서 좋은 숲이었다.

물론 겨울이라 나뭇잎이 없어 숲의 느낌이 덜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좋아 보였다.

 

오도재 휴게소에서 지리산 능선을 바라봤는데,

날씨가 약간 흐릿해서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았다는것.

휴게소 마당에 개 한마리 개팔자로 늘어져 있었고,

커피 마시러 휴게소 안에 들어갔더니.

오래된 선데이 서울이 있어서 한참 들여다 보면서 키득거렸다.

 

산청 이준위원장 집에 가서 저녁 잘 얻어 먹고 술까지 한잔하고 자려 했더니,

아랫집 사는 분이 과메기 주문해서 사왔다고 다시 모여서 2차를 했고,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는 음정으로 가서 벽소령으로 올랐다.

 

벽소령 가는 군사도로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지만,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을 걷듯이 유유자작..

벽소령에서 점심 먹고 이준위원장 내려가고,

셋이서 연하천으로.

 

연하천 산장지기 병관옹의 지극한(?) 환대를 받고,

따뜻한 내실에서 주인을 쫓아내고 손님만 자는 무례를 범했지만,

너무 행복했다는...

그 환대에도 불구하고 같이 갔던 낭자는 감기 탓도 있었겠지만,

산장의 그 꾸질꾸질한 모습과 추위에  적응 안되는 모습이었다

 

다음날도 또 느긋이 일어나서 뱀사골로 내려갈까 했는데,

낭자의 발길이 아무래도 뒤쳐질거 같아서 바로 음정으로 하산.

복돌아빠는 그래도 지리산엘 와서 이렇게 조금 걷는 것에 대해

아쉬워 했지만, 어쩔수 없었지.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축복은 날씨.

연하천 산장의 밤 기온이 영하 1도에 머물 정도로 포근해서

낮에는 약간 더울 정도였고,

눈은 많이 쌓여 있어서 흙이나 바위 밟을 일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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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14:05 2007/01/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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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간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또 다른 한 해가 온다고 해서 별다른 희망이나 기대랄 것도 없는데,

그래도 뭔가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고,

그에 휩쓸려 다니는건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무슨 난리난 지랄을 떨어도 그냥 내가 가지 않으면

헌해가 가는지, 새해가 오는지 알수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전화기에 끊임없이 오는 스팸성 문자 인사는

내의지대로 무조건 안볼수가 없다.

 

보험판매원 아줌마부터 시작해서

전자제품 대리점,

대리운전 기사,

온갖 단체와 동창회까지,

그리고 친구들과 회사동료,

노동조합과 당의 활동가들까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하고 살다보니,

어느 곳에고 연락 잘 안하고 살아가는데,

그나마 1년만에 한번씩(추석에도 문자가 오는구나..)

연락이라도 주는 이런 친구들에게

고맙고, 또 그렇게 잘 살아 있으려니 하니까 안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이라도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문자 알람이 울려 열어보면 온통

지난해의 성원에 감사드리면... 어쩌구 저쩌구...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어쩌구 저쩌구...

건강한 한해를... 어쩌구 저쩌구...

아무리 친한친구의 반가운 안부마저도 짜증이 난다.

 

그나마 여러가지 이모티콘이나 도형을 조립하거나,

커다란 글자를 만들어서 보낸 친구의 문자는

약간의 성의 나마 있어서 예쁘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문자들에 대해 문자를 씹기도 뭣해서 

산오리가 보낸 답문자는

 

지난해 까지는 " 해피 내년!"

올해부터는 "해피 올해(새해)!"  로 끝냈다.

그 무성의야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겠지만,

의미없는 스팸성 문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받은 문자 한토막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는데,

"새해 복 다 꽉오빠꺼!! "

여기에 좀덧붙여서

'내 복까지 모두 산오리한테 줄게' 이정도의 문자 였으면

백만배 만족스런 새해인사가 되려나..

 

사실 새해 인사도 '복많이 받으시오' 하기 보다는

어차피 주지도 못할 내 복이지만,

'내 복도 당신에게 드리겠다'는 내용이 들어간다면

행복한 인사가 되지 않을라다...

 

산오리 블로그 찾아오신 동지들!

산오리 복도 모조리 다 뺏어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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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2 09:18 2007/01/0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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