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야옹이님의 [전임]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연말 노동조합의 선거가 꽤 많다.

공공연맹과 과기노조, 과기노조의 지부 가운데 여러곳에서도 연말에 선거가몰려있다.

또 대전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 민주노동당의 시당과 지구당에서도 선거가 있다.

 

공공연맹의 선거에는 세 팀이나 등록했고,

과기노조의 지부에서도 경선을 하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과기노조 임원 선거는 세 차례나 공고가 나갔음에도 아직 후보자가 없다. 



2년 전에도 두어달 비대위 체제를 거쳐서 겨우 세명의 임원후보가 급하게 등록해서

6대 집행부를 구성했는데, 또 사람이 없어서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연맹 선거에는 무려 세 팀이나 나와서 경선을 치르고 있고,

또 사업장별로 편제된 각 지부에서도 경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과기노조 임원선거에는 출마하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우선 연맹의 입후보자들처럼 과기노조에는 해고자가 거의 없고,

또 단협이 쪼그라들면서 본부(또는 상급단체)로 내보낼 추가전임을 확보하지 못한 곳이

많다. 조합원이 수십명인 경우에 지부에 전임자 두고 본부로 또 전임자 추가로내보내겠다고 하면 사용자는 물론이고 조합원들도 쌍수를 들어 반대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본부에서 전임을 할 수 있는 인원이 거의 없다.

 

둘째로는 소산별노조의 위원장은 단협 체결권도 가지고 있고, 4천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임원들이라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기업별 노조의 운영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 사업장별로 지부장의 권한이 막강하다.

지부장들은 사업장내에서는 조합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조합원들의 불만과 의견을 모아서 사용자들과 협상하고 싸우는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도 자기 사업장의 지부장과 간부들은 인정(?)해 주지만, 산별노조의 간부들은 외부의 투쟁(정부 등)이나 또는 활용할 가치가 있을 경우 불러서 쓰지만, 사업장내의 치부는 또 숨기려 노력한다. 그러니 본부의 임원이나 간부를 하려는 조합원이 거의 없을 수 밖에...

 

셋째로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전임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건 간부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전임을 몇 번 하면, 노조전임을 오래 한다고 비난한다.(노조간부는 선거때마다 항상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고, 새로와 지기 위해서...) 그런데 또 노조는 전문성이 없다고 비난한다.(해마다, 아니   2년마다 한번씩 바뀌는데 무슨 전문성이나 일관성이 있을 쏘냐?) 그러니 능력 있는 노동조합 활동가를 만들기 어렵고, 전임을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88년 민주노조를 만든 이후, 또 과기노조 만든지 10년 동안 우리는 제대로 된 활동가들을 노동조합에 열정을 쏟을 조합원들을 만들지 못했다. 1-2년 간부 하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그리고는 사용자가 되거나 악덕 사용자 노릇을 하는 경우도 보아 왔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활동가, 간부를 찾고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전임을 하겠다고 나설까?

어떻게 하면 우리 과기노조에서도 임원선거를 경선으로 치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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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6 22:25 2004/11/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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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from 단순한 삶!!! 2004/11/26 16:45

오전에 지부에 전화를한다.

"오늘 대전역에서 총파업 집회가 있는데 몇명이나 오실 거죠?"

"저랑 사무간사랑 2명..."

"간부들 더 오실 분은 없나요?"

"요즘 보고서 써야 하고, 바쁜 철이고..."

"............"

 

중앙위의 결의는 간부들의 파업이라고 했는데,

전임자만 집회에 참가하는 수준이 되었다.

 

대전역에 두시에 나갔는데,

1천여명이 모였다.

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집회 간단히 하고,

30-40여분쯤 행진하고, 그리고 마무리 집회...

행진출발하면서 보니까

빨간 조끼를 입은 사회보험 노조는 꽤 많이 왔다.

언제 어디서나 투쟁을 확실하게 하는 노조다.

 

의무감에 치르는 투쟁처럼 집회를 마치고,

대전역으로 되돌아 와서 피씨방이다.

 

총파업을 파업처럼(?) 하기는 틀려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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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6 16:45 2004/11/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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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치고 벌써 보름이 넘었는데, 나는 겨우 사흘인가 나흘인가 잤다.

그리고 오늘 실무교섭에서 대부분의 교섭안이 정리되었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만큼, 또는 그동안의 활동에서 따져보면

너무나 밀렸고, 너무 많은 걸 내주었지만,

그나마 노동조합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공세적인 싸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마무리할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산자부에 너무도 많이 시달렸고, 또 우리 노조로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나마 지금상태에서라도 노조를 살리고, 그리고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노동조합을 살려 나가겠다는 전략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 본교섭을 열어 마무리하지 못한 한 조항을 협상해 봐야겠지만,

이로 인해 더 끌수는 없을 거 같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그리고 여전히 정리되지 못하는 지부가 남아 있다.

지부마다 사정이 같지 않으니 남아 있는 지부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싸움이, 단협이 끝나는 곳도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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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3 23:32 2004/11/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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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님의 [본색이 드러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집안에서 가족이나 친척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서 선배나 후배로 만난 사람들은 또 그런 모습으로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은 그 모습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려진 모습대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당황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오프에서 만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산오리는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오프에서 보자고 하면

사실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가 예상(상상)하고 있던 그의 모습이 있는데,

이것과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또 거꾸로  나에 대한 모습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래서 온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대로 온에 남아 있는게

더 아름다울 거란 생각도 해 본다,

그보다는 그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내가 맘대로 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냥 항상 그렇게 희미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어제 그 주점에서

복잡함속에서, 그 시끄러움 속에서

정신없이 이사람 저사람 만나서

손잡고 인사하고, 얼굴 새기려 노력해 보고...

재밋는 오프였네요.

 

한 번 얼굴 보는 것으로 오히려 '본색'을 밝히지 못했기에

좀더 많은 기대와 아름다운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을 거란 기대를 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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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15:08 2004/11/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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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접근할수 있는 안을 가져 오라 했는데, 사측은 움직임이 없다.

그러니 예정된대로 파업투쟁 출정식과 삭발식을 거행했다.

위원장과 지부장 두 사람이 삭발을 했다.

두 동지의 삭발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원래 무감각한 산오리의 감성이라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유행가 가사를 들으면서도 눈물이 날 것같고,

시덥잖은 가족이나 친구얘기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코끝이 찡했는데...

 



오래전에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앞두고 지부장(위원장)이 삭발을 하면

흰 천에 '파업투쟁 승리' '결사투쟁' 등이라 쓰인 밑글에다

그 잘라낸 머리카락을 한올, 한줌씩 테이프로 붙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 눈물이 나왔고, 여성 조합원들은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잘라낸

머리카락을 한줌씩 들고 나가서 붙였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단식하는 동지가 있으면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 단식농성장에 가서 정말 가슴메이게 숙연하기도 하고,

뭔가 할말이 없어서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돌아 오기도 했다.

요즘에 열흘 단식하면 경찰들도 그런단다.

"40일 단식한 사람도 많은데,,,,그거 가지고...."

경찰 뿐만 아니라, 나도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파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1백일 파업한 것은 어디가서 말도 꺼내지 말고,

1년 동안 파업한 것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말을

우리 스스로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 그리고 수긍한다.

그러니 어떻게 감동을 느낄 수 있으랴...

오늘 집회에서 잠간 발언을 한 동지는 140여일 파업한 와중에

열흘(보름?)동안 단식한 노조위원장을 수갑을 채워서 끌고 다니다 유치장에 가두었단다.

열흘동안 굶은 강아지가 있다면 그 강아지 발 다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우리도, 우리의 적들도 자극에 대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엄청 무디어져 버렸다.

적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잃어 가면서

나는 정말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이 11월 18일이다.

      이제 한달 후면 이 고민도 사라질까?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나는 좀 더 인간적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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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8 21:40 2004/11/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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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교섭하겠다고 해서 열심히 전향적으로 해서 10개 안쪽으로 중요한 것만

남겨 놓으면 본교섭 열어서 정리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지부에서는 딱 8개 조항을 남겼다.

내용상으로는 7개 조항을 남긴게 맞다.

 

 



점심시간에 천막에 모인 조합원들이 오늘로 교섭이 마무리되고 끝날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마무리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하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메우고, 조합을 다시 정상적으로 만들고....

남아 있는 조항들이 쉽게 끝나지 않을 텐데 이상하다 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산오리도 그러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오늘 마무리한다면 그거와 왔다지.

 

교섭에 들어가서 미합의 조항을 서로 확인하고,

서로의 요구안과 당위성을 설명하고,

수정안을 서로 내고, 몇 차례의 정회를 하고...

그리고 밤 9시에 마지막으로 교섭회의를 열어서

더이상 진전이 없어서 그만하고, 상대방의 안에 근접된 안이 있으면 교섭요청을 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끝냈다.

그렇게 교섭해서 낸 결과물은,

1개조항은 잠정합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그리고 6개 조항은 여전히 의견차가 큰 채로 그대로 남았다.

 

교섭은 어디서나 쉽지 않다.

더구나 산자부의 탄압을 직접 받고 있는 산자부 산하기관인데야 말해 뭣하랴...

120여개 조항 가운데 110여개를 하향조정해서 내주고도 교섭이 마무리 되지 않는, 

그런 교섭을 하고 있다.

 

어쩌랴, 노동자가, 노동조합이 할수 있는 최후의 발악(?)을 해 보는 수밖에...

붙어보는 것이지....

 

**** 오늘 세번째로 천막에서 자야 하는데,

       아! 천막은 정말 너무 지저분하다.

       돼지 우리 수준?

       같이 잠자는 우리노조의 국장은 '깔끔떠는 인간이 없어서'란다.

       그런 거 보면 산오리도 제법 깔끔을 떠는 편인데,

       귀찮다,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돼지처럼 잠자기로 하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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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6 22:12 2004/11/1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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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현근님의 [도장찍고 왔습니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5.1절과 노동자 대회는 전야제와 본대회를 꼭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붙잡혀서

참가하다 보니, '도장찍고' 온다는게 적절한 표현인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별다른 일도 생기지 않고 또 무슨 약속이나 일이

생긴다 해도 당연히 안가거나 취소하는 것으로 정리해 왔다.

이번 토요일도 별일(?) 없어서 5시에 민중대회에 가고 그리고는 동국대에 전야제,

그다음날 사전대회와 본대회,,, 이렇게 참석하는 계획을 세웠다.



대구에 사는 박성옥이 토요일 서울에 오니까 얼굴이나 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산오리뿐만 아니라 같이 만나왔던 친구들 몇이 보자는 것이었고, 다들 전야제 간다니까 동국대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시간은 4시쯤... 그러자고 했다. 다만 민중대회 갔다가 가면 좀 늦을 수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 만나고 있으면 7시쯤 가겠노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또 전화가 왔다. 김승호가 전화를 했는데, 오창근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아산병원에 계시는데, 토욜 저녁 7시에 친구들 같이 만나서 문상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했다. 친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어찌 노동자대회 땜에 못간다고 할 것인가? 그러자고했다.

 

그리고 토욜에 어떻게 했나? 오후 2시에 집을 나서서 4시가 넘어 병원에 들러 문상을 하고, 6시에 동국대 앞에서 대구에서온 친구와 다른 몇명의 친구들이 만나서 저녁을 먹고, 9시가 넘어서 동국대로 올라갔다. 그러니 민중대회는 못갔다. 그러니 좀 자유롭게 움직인 편인가?

 

전야제에 우리 노조는 거의 전멸...지부장 두명, 조합원 너댓명, 그걸로 끝이었다. 술라와 바다소녀와 마돈나와 최종두와  11시가 되서 주점에 가서 소주를 몇 잔 마셨다. 그리고1시가 넘어서 학교를 나와 술라네서 잠들었다.

 

본대회는 느지막히 종로로 나와서 공공연맹 사전결의대회, 그리고 본대회.... 2시부터 6시까지 꼼짝 못하고 그놈의 종로통에 앉아서 연설듣고, 노래 듣고, 연설듣고, 노래 듣고...로보트처럼 앉아 있었다. 그판에 소주 까서 마시지 않는 조합원들이 어쩌면 바보이고 멍청한 것이지. 조합간부들이, 조합원들이 얼마나 착한 로보트들이라고, 그렇게 너댓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혀 놓고 설교하고, 또 노래 들려주고... 그렇게 하는지.. 산오리도 몸 상태가 좀 좋았으면 아예 2시부터 술이나 먹고 앉아 있던지 했을텐데.. 몸도 별로 따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왜 행진도 없는 것인지... 정권이 그 종로통에 우리를 가두었는지, 우리가 스스로 그 좁은 도로에 갇히기를 원했는지... 모를일이다. 그렇게 6시가 다되어 갈즈음에 대회는 끝났다. 공무원들이 어디로 가서 파업투쟁을 벌인다는데, 그곳에라도 따라가서 파업분위기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서라, 말어라 하는 소리가 내몸뚱아리에서 들려온다.

 

그렇게 2004년 노대도 지나갔다.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파업명령'을 얼마나 이행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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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4 22:03 2004/11/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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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약 엄청 뿌려 놓고, 양쪽 귓구멍에는 휴지를 돌돌말아서 꽉틀어막고,

치킨에다 맥주까지 몇잔 마시고 드러누웠더니

이틀째의 천막잠은 날씨가 추워졌지만 그런대로 몇번 안깨고 잘 잤다.

물론 잠들기 직전에 마신 맥주 덕분에 얼굴이 팅팅 부었지만...

7시에 일어나서는 세수하고선 사당역으로 가서 버스타고 경기대 후문에 내렸다.

9시 20분쯤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한시간도 더 먼저 도착했나 보다.



다행이도 동수원 톨게이트를 나오고 있단다. 경기대를 통과해서 정문 앞쪽의 주차장에서 한시간 반을 기다려 조합원들이 다 모여서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전품지부 조합원 등반대회에 오라 해서 갔는데, 당초 조합원 70여명이 오기로 했다는데, 51명이 왔단다.)

반딧불이 화장실(?)을 지나 약간 경사진 곳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숨이 찬지 모르겠다. 명치 윗부분이 꽉막힌듯 한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심장을 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원래 산행 시작할때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은 너무 심하다 싶다.

(이러다 가슴을 부여안고 주저앉으면 그냥 못일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출발부터 우리 조의 제일 뒤쪽에 처졌다.

 

완만하게 오르고 그리고 평지를 걷고 또 완만하게 오르고, 평지를 걷고...

돌계단이나 쇠계단 하나도 없고, 모두가 흙길로 되어있어서 너무나 걷기 좋은 길이다.

차츰 가슴이 진정되어 가기는 하는데, 그래도 우리 조의 꽁무니를 지키고 있다.

날씨가 쌀쌀해 졌지만 해가 오르니까 추운줄은 모르겠고, 낙엽 쌓인 길을 너무 편하게

걷고 있었다. 어느 산에서도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은 없었던 거 같다.

산이 높으면 당연히 험한 길들이 있고, 또 그 산이 망가진다고 온통 계단으로 길을 만들어

어느 산을 가든지 나무계단과 철계단, 돌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거나 내려와야 하는데,

이 산에는 그게 없다. 그저 부드러운 흙길을 걸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의 산을 가는 방법도 또 색다르다.

형제봉과 비로봉 봉우리에는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두세곳에서 미리 도착한 조합간부들이 퀴즈도 내고 춤도 추게 해서 조별로 점수를 매긴다. 그저 헐렁헐렁 걷다가 쉬다가, 봉우리에 올라서는 사방을 구경하다가 슬금슬금 가는 산오리인데, 조편성이 되었으니 속한 조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마냥 따라 갈 수 밖에..

그리고는 토끼재에서 하산해서는 상광교동이라는 버스종점까지 내려오는데 두시간 남짓 걸렸다. 산오리가 가는 방식대로라면 세시간은 더 결렸을 텐데...

 

어쨌거나 수원과 의왕을 걸쳐 있는 이 산을 처음으로 따라 갔는데, 더 긴 코스를 택하면 대여섯시간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거 같다. 걷기에는 너무 좋은 산이다. 산을 못가는 사람도 산책삼아 가기에 좋은 산이다.

 

그리고는 음식점에 앉아서 푸짐한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 두잔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상태가 좋지 않은 산오리는 손과 팔이 붓기도 하고, 영 기운이 없다. 엔지니어링 노조 창립 기념식에 들러서 집에 왔는데도 아직까지 얼굴이화끈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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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2 22:42 2004/11/1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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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은지 1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났다.

올 연말이 지나면 2년이 된다. 그동안 한 두개피 피워 본적도 있고,

몇 번은 꿈속에서까지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얼마전에는 술자리에 앉아서 술 몇잔 마시고 옆사람이 피는 담배를 보면

나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끊고 있다....



우선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담배를 피지 않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는 동료들이 많지만, 억지로 강요를 해서라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지 않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담배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사무실을 나서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직도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곳은 노동조합 사무실이다.

비록 금연건물이라 하더라도 노동조합은 이를 자랑스럽게(?) 어기고 있고,

조합원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도 조합사무실을 찾게끔 하는,

처절한(?) 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니 조합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죽음이다.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건자재시험연구원 지부도 마찬가지다.

노조사무실에는 항상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산오리는 이 연기를 피해 사람들이 조합간부나 조합원들이 있을때는 사무실 문밖에서

서성거리거나, 또는 그옆 회의실에서 앉아 있기도 한다.

천막도 마찬가지다. 저녁먹고 여성조합원 두 명이 있어서 같이 얘기하는 동안에

담배연기가 없다 했더니, 두 여성 조합원이 가고 나자 마자, '담배 피우자' 면서 모두다

한개피씩 빼어 문다.

다시 슬그머니 일어나서 천막 밖에 나와서 서성이다가 이제는 날씨도 추워지니까

이번에는 노조 사무실로 돌아왔다.

 

노동조합 전임하면서 내가 담배를 피울 공간이 없다고 판단해서

(대부분이 다 피우니까 내가 피지 않아도 핀 것 만큼, 또는 그이상 피운 효과가 있으니..)

담배를 끊었는데, 지부나 다른 노조 사무실에 가면 담배연기와 숨바꼭질을 벌여야 한다.

 

담배연기 잘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참세상 게시판을 뒤져보니, 지난 연말에 금연 1년만에 쓴 글이 있는데,

여전히 그때의 생각이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담배 끊어 1년....(2003년 12월 31일)

 

지난 연말 촛불시위하고서 소주 한잔 마시고 일산 들어오다가
담배 끊어버리겠다고 하고서는 딱 1년이다.
그동안 두어번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담배연기가 싫다.
담배 끊고서 달라진 거...

지갑에 돈이 남아 있다.
하루에 반갑정도 밖에 피우지 않았는데도 담배 사는 것은 한갑으로도 안되고
때로는 그보다 더 샀던 거 같다. 그러니 지갑만 열면 담배 사는 것으로 시작하고
때로는 보루로 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니 돈이 남을수 밖에...
근데, 그렇게 많은 돈이 남았는데, 1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이너스 통장은
마찬가지 수준이니..그 돈은 어디로 간 걸까?

오락가락 덜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가도 '아 담배' '아 라이터' 하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움직일때 마다 호주머니를 만져보고 확인하고, 담배나 라이터 없으면 불안했는데
그게 사라졌다. 이제는 챙겨야 할 것이 지갑과 휴대폰 이렇게 절반으로 줄었으니
집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줄었다.

쫓기지 않는다
실내공간에서 나와서 차로 이동하거나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르거나
잠시라도 밖에서의 여유가 있으면(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담배를 피워 물어야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다른사람 눈치보면서 허겁지겁 담배를
빡빡 빨아댈 시간을 찾아 헤멜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은 여유...

잔소리 안듣는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꼭 한마디씩 듣던 잔소리, 그거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이제는 밖에서 잔소리 크게 하는 쪽으로 역전되었다...

건강---좋아진 거 느끼지 못함(배는 더 늘었음)
담배연기와 함께 하는 여유, 긴장해소 ---- 이건 잃어버려 아쉬움
담배친구들과 느끼는 진한 동료애--- 이것 역시 잃어버려 아쉬움

또 뭐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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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1 22:05 2004/11/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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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시설안전기술공단에서 파업하는데, 천막에서 자다가

용역깡패들한테 얻어 맞은 이후로 천막에서 잠잔 적이 없었지 아마...

그리고 천막에서 잠자는게 조금은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용역 깡패들이 나타날까봐...

그렇게 다시 깡패들이라도 나타나 준다면  오히려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니까

깡패들이 오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요즘 갑갑한 사업장에서는.



오늘 부터 다시 천막에서 한댓잠을 자야 할 형편이다.

물론 계속해서 천막에서 잠자지는 않고, 가끔(?) 들러서 천막에서 잘 계획이지만,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 이즈음에 천막은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서초동에 있는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 지부의 단협이 풀리지 않고 있다.

산자부의 망령이 여전히 살아 있는데다, 사용자들도 이를 이용해서 노동조합을 아예 허수아비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 점심시간에 천막농성 출정식을 갖고 오후에 교섭에 들어갔는데,

사측의 원장이 천막농성 들어간 것이 유감이라고 중얼중얼거린다.

우리측 교섭위원들이 '단협해지 통보는 괜찮고 고작 천막 친 거로 시비를 거는 거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더니, 사측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말싸움이라도 붙어보자는 듯이

시비가 계속된다.

'교섭하기 싫다는 것이냐? 뭐냐?'는  큰소리가 우리측에서 날아가고,

책상도 두드리고 물병도 날아가고... 책상도 밀고...

개새끼, 소새끼 얘기도 나오니까 원장이란 인간은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결국은 교섭은 10분도 안되어서, 본격적인 조문 논의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났다.

 

저녁에 천막 바닥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천막 옆 벽 천으로 둘러서  설치하고, 난로도 들여놓고, 전기매트도 들어 오고...

조합원들 모여서 도시락 시켜먹으면서 넘 즐거워 한다.

싸우는 것은, 모여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오늘 저녁 천막에서 잠들면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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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21:02 2004/11/0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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