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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년 전임을 마치고... (4) 2004/12/18
  2. [퍼서] 그꼬마 최고였다. (2) 2004/12/16
  3. 관악산행.... (2) 2004/12/13
  4. 오랜만에 이기다... (7) 2004/12/10
  5. 6개월 후에 오세요... (3) 2004/12/09
  6. 산기평 지부 투쟁본부 개소식... (4) 2004/12/07
  7. 보험금 받아내기... (4) 2004/12/07
  8. 그저 오락 가락? (2) 2004/12/04
  9. 혈관은 깨끗하다.. (7) 2004/12/01
  10. 보호자... (16) 2004/11/29

17일로 2년동안의 임기가 끝났다.

시작할때도 별 생각없이(?) 시작해서인지 마치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나마, 그래도 생각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1. 재미가 없었다.

   노동조합 전임자를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임자로서의 재미가  없다면 단 하루도 전임자 노릇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 재미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정도로 정의 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지가 이미 16년이 거의 지나갔지만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회사에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거나, 서로를 비난 하는 회사 동료들보다 훨씬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97년 연맹에서의 전임 이후 5년이 지난 다음에 들어선 노동조합 전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동안의 상황변화나 사업장에서의 어려움 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의 근본을 벗어난 전임자와 간부들이 너무 많아졌고, 이것도 오히려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와 싸워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거창하게 자본과 정권과 싸워야 하는데, 안에서 조합의 간부들과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고 힘들어 한 날들이 많았다.

 

2. 임기를 겨우 마쳤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동조합이고, 또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다 보니, 산자부 산하 사업장의 조직을 많이 잃어 버렸다. 산기원 200여명, 산기평과 건자재 100여명씩 어림잡아도 400명이 넘는 조직원(조합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에 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조직을 복원하겠다고 들어선 집행부가 그건 못하고, 그에 더해서 또 잃었으니...

   그럼 당연히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들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사퇴해야 겠다는 충동(?)에 고민했다. 그때 사퇴하는 것이 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임기를 채운 것이 잘 한 것이었는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다.

 

3. 엉거주춤한 자리...

  수석부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엉거주춤한 자리였다. 의사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자리도아니고, 실무적으로 이것저것을 기안하고, 챙기고, 맡기는 자리도 아니었다.

  위원장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을 대타로 때우거나, 사무처장이 일손이 달릴때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거나 그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결정된 무슨 투쟁위원회 같은 것을 맡아서 운영해 나가는 것은 있었지만, 뭔가 잘 안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 이를 추진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하면 위원장의 권한이나 사무처장의 업무영역을 침범하게 될 거 같아서....

   그래서인지 몰라도 위원장, 사무처장 보다는 편안한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자리가 있어도 못한 일도 있다. 비정규직 특위를 하라 했는데, 회의 구성 제대로 한번 못하고, 어정쩡한 설문조사나 하고 말았으니...(이건 욕먹을 만하다..)

 

4. 노동자 의식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또 이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하지만, 사무전문직으로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연구소의 정규직들의 의식은 여전히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현장을, 조합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반영해야 하기에 또 조합원들의 힘이 그기에 있기에 별다른 고민이나 대안 없이 '이기적인' 요구에 맞춰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팎이 함께 고민하고 바꿔나가야 할 일이다.

 

5. 작은 조직에서도 나눠져서...

   4천명 조합원에 중앙위원 40명의 작은  조직이다. 그 안에서도 서로 감정적인 앙금으로 갈라져서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논쟁이 가끔은 일어난다. 그리고 잘 섞여지지 않는다. 10명도 안되는 사무처 안에서도 실무자들이 2-3명씩 나눠져 있는게 눈에 보인다.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또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차이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처럼 문제제기를 하거나, 일상에서도 '패거리'처럼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2년동안 이 문제도 시원하게는 아니더라도 별로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또 절감했다.

 

6. 같이 한 동지...

    임원 못구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나서서 2년을 때웠는데, 임기를 마쳐도 새로 일할 임원이 없다. 연맹에서는 3팀이나 나와서 피나는 싸움을 벌였는데, 여기는 왜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지 모를 일이다. 역시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이 지나면 또 임원도 만들고, 내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잘하는 집행부가 되겠지...

    그래도 아쉽고 미안한 것도 있다. 함께 일한 위원장은 연맹으로 보냈고, 사무처장은 아쉬움 속에 또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게 맘에 걸린다.

    대전과 서울의 무시할 수 없는 지리적인 거리를 위원장이 앞으로 2년동안 오가게 만드는데 나도 일조를 했는데, 앞으로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라나 모르겠다.

    사무처장은 동지들을 향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대갓집 맏며느리처럼 넓고 편하고 좋았는데, 정작 본인의 고충이나 고민은 한자락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 고민 한자락이라도 같이 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임원출마하면서 조합원 들에게는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  

  

<2년 전에 쓴 출마 결의문>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제 6대 임원선거에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한국건설기술연구
원 지부의 곽장영입니다.

1990년부터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고, 꾸준히 노동조합과 민주노동
당 활동 을 해 왔지만, 과기노조 중앙의 간부로 활동한 경험이 없는
제가 이번에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출마하면서 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과기노조를 만들어 가자'
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과기노조가 민주노조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
인 문제를 소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조를 세우고, 민주노조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가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민주노동조합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 때문이며, 더 나아가 IMF를 빌미로 정부출연기관 노동
자와 노동조합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고 있는 간부들이 조합원과 함께 문제를 토
론하고 해결해 가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현재 과기노조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우리가 민주노조를, 그리
고 과기노조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싸웠던 처음을 되돌아
보고,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본다
면,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
다.
노동조합의 기본은 '단결과 투쟁'입니다. 저는 과기노조가 이러한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조
합원으로서, 그리고 수석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입니
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정부출연기관의 올바
른 위상을 정립하고,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 소외받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
어가는 데 중심에 서는 노동조합, 자랑스런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조합원동지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질책을 기대합니
다.


2002년 12월 2일
제6대임원선거 수석부위원장 후보 곽장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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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11:59 2004/12/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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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gimche/140008620609

 

어제 퇴근하고 게임방에 갔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보니 옆자리에 초등학생 한명.
그리고 그 옆자리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한 명 앉아 있더군요





둘 다 카트라이더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 형제였나 봅니다.
그 꼬마가 중학생에게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형은 좀 컸다고 대답 시원찮게 해주고 -_-

아무튼 열심히 게임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스피드전을!!
꼬마는 계속 드리프트하다 벽에 부딫히고.... ㅜ_ㅜ
차라리 제가 대신 해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는 안했습니다) - 그림 출처 이로동님의 블로그

뭐 아무튼 열심히 게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계속 주목하고 있는데
갑자기 게임을 끄더군요.
그리고 카르마 온라인을 하려고 창을 여는데 갑자기 등장하는
성인용 스팸쪽지 2장!! -_-

타X메신저를 켜 놨던데 거기서 성인용 스팸쪽지가 날라오더군요.
대략 내용은 '오빠 나 오늘 심심한데 이것저것!#!@$하아하아 XXX-XXXX'

......정말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린애에게.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가 다 민망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본 그 꼬마는 자기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 이상한 누나가 나한데 쪽지보냈어."

중학생 녀석은 카트에 혼이 나가서 대답도 안해줍니다.
한 세네번 보채니 쳐다보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지워." 라더군요.

그러자 그 꼬마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더니
그 쪽지를 보낸 『 개념없는 새끼 』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답장을 본 저는 기절초풍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답장이...


 

문제의 그 쪽지
"오빠 오늘 나 심심한데 %$#^%^해줘요. 24살 직딩 @%$@#하아하아 오늘 밤 날 가져봐요. 연락해 줄거지? XXX-XXXX 오빠 꼭이야~~"

꼬마의 답쪽지
"네"

네.

네.


네.



꼬마몰래 고개를 돌리고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푸하하하.
저렇게 성실하고 이쁜 대답을 하다니... 아이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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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6 11:48 2004/12/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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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행....

from 단순한 삶!!! 2004/12/13 20:35

역사와 산 산행에 따라가 본지가 1년이 넘었나? 어쨌나?

연말 마지막 산행에다 송년회까지 있다는데,

그기다 알엠님의 '엄마' 보러오라는 거 빼고는 아무런 약속도 없이 조용한데,

영화는 담에 보기로 하고 산으로 갔다.

 



오르기 시작할때부터, 아니 지하철역에서부터, 김밥 한줄 사는 가게에서부터,

또 물 한병 산 가게에서 부터.... 하튼 장난 아니게 사람들이 많다.

'오늘이 무슨날인가? 산으로 다 가고 나면 서울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하나?'

절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 들었는데,

앞으로는 등산화 뒷꿈치와 살찐 엉덩이만 보이고,

뒤에서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와 비키지 않는다고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

'어쩌란 말이냐? 이 $%를... 어쩌란 말이냐? 이 &*을....'

정말이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좃선일보 춘천 마라톤을 함께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니....

 

잠간 앉아서 쉴만한 바위를 찾아서 앉으면

주위의 땅도 바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인간들이 가득하고,

좀 쉬었다고 출발하고 나면,

앞뒤 좌우로 인간들이

또 가득하고,

 

아 답답해라, 아 숨막혀라....

 

연주대 못미쳐서 과천으로 향했고,

이제야 숨이 조금 트인다.... 혼자서 룰루랄라 노래부르면서...

왜 이날(12일) 인간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하튼 역사와 산 송년회가 이어졌고,

2차까지 가는 동안에 산에는 오지 않은 사람들이 또 몰려오고,

그래서 맥주집에 가서는 산오리는 또 졸다 말다 구박당하다 집으로 갔다.

(제발 부탁인데, 산오리는 2차 데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또 끌고 갔다면, 그냥 잠자게 냅뒀다가 3차 가자고 일어날때 깨워주세요,

  그럼 3차 가서는 또 술마시고, 노래 부르고 놀테니까요....)

 

박준성 선생님 건강이 좋아지셨다 해서 넘 기뻤고,

연말이라 어디 가면 노래 시킬 거 같아서

노래 가사 열심히 인쇄해서 들고 갔는데, 안시켜서 넘 서운했다.

(그래도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다....)

 

내년부터는 산에 열심히 가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무박으로 버스타고 왔다 갔다 하는건 넘 힘들다.

 버스를 구하는데, 40인승이나, 28인승이나 이런 거 구하면 안될까? 영모씨, 인모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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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20:35 2004/12/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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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산오리가 지지하거나 지원한 팀이나 사람이

이긴 것도 오랜만인 듯하다.

공공연맹 선거에서 내가 지지한 팀이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끝에

150:143, 7표 차이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다.

 

 



들여다 보니까 개표함을 열때 마다 왠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래도 그 생각과 달리 이겼다는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거가 끝났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사지에 동지들을 밀어 넣고서는

산오리는 여유있게 놀 생각만 하고 있다.

뭔가 도움이 되거나 함께 할 일이 있는지 찾아보기 보다는

이제 감투(?)를 쓴 그들이 모든 걸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뒤돌아 보지 않고 나오고 싶다.

 

그래도 그 어렵고 힘든 사지에 뛰어들겠다는 동지들이

경선으로 세 팀이나 나오고,

부위원장 후보로 7명이 나오고, (3명 당선)

여성부위원장 후보로 3명이 나오고 (2명 당선)

그렇게 경선을 치르면서 하겠다는 동지들이 많다는 게 오히려 즐거웠다.

근데, 왜 우리노조에는 하겠다는 사람들이 없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소에는 그저 동지이고, 노조활동을 함께 하는 좋은 친구들인데,

선거때만 되면 누구편, 무슨 파, 이러면서 사람들의 경계가 거의 정확하게 구분된다.

그 경계가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다시 허물어지고

평소의 관계로 되돌아 가면 좋으련만,

선거 때의 경계가 자주 남아 있게 된다.

그 경계들이 우리들만의 경계가 아니라 더 깊고 큰 곳으로 경계를

넓혀 간다면 좋으련만...

 

* 개표 참관 하는 도중에 문자가 왔다.

  껌씹고 있는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잡힌다고....

  하루종일 풍선껌 씹고, 풍선 불었더니 이빨이 뻐근하네. 껌 씹는거 보기 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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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0 21:40 2004/12/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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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에 오세요!"

갖가지 우여곡절끝에 오늘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리고 결론이다.

감기로 시작되어서 약먹다가 대전의 동네병원 두군데 다니고,

그러다 기어코 서울까지 진출하여 입원하여 검사받은 결론이 이것이다.



심장초음파 검사와 폐기능 검사를 하고 나왔는데,

그 결과를 다음에 와서 확인하라면서 오늘 예약을 넣어주었다.

사실은 그 결과 보러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실제로 의사도 그 결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생명보험을 통해 수술비라도 조금 건질수 없을까 해서 기어코 갔다.

 

"요즘 좀 어때요?"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약간은 숨차고..."

"약 먹지 말죠... 약 먹어도 효과 없으면 먹을 필요 없고,

  또 약 먹어도 낫는 병도 아니고..."

"네..."

(지난번 퇴원할때 숨가빠지면 혀밑에 넣으라는 알약과  또다른 알약 3개씩 들어있는 봉지약을 하루에 한봉지씩 먹으라고 주었는데, 하나도 안먹었다)

"한 6개월마다 한번씩 오세요."

"네.."

이걸로 끝이다.

 

그 전에 집에서 찾아간 생명보험 약관을 들이밀면서 '혹시 제가 수술받은게 여기 없나요?' 했더니, '환자분은 수술이 아니라 검사를 받은 거예요. 없어요' 한마디로 정리했다.

덧말이나 이의를 붙여보려고 생각했는데, 별 소용없을 거 같아서 포기..

 

병원 입원하고서는 그게 보험에 해당되는지 안되는지를 알아본다고 했더니,

누군가 그러는데, 이게 정답일듯....

"보험약관 들고 가서 '여기 있는 병명으로 진단서 끊어주세요' 이러면 되는데..."

 

하튼 2-3년 마다 한번씩은 병원에 가는데,

'증상은 있는데, 원인은 없는' 꼴을 계속 당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비로 돈만 날리고(?) 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의사들한테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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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15:56 2004/12/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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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 사무실도 아니고 투쟁본부 개소식이다.

일이 꼬이고 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대치동 어느 즈음에 오피스텔을 하나 구하고, 그걸 지부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어용노조가 들어 서는 바람에 노조원들이 모일 곳조차 빼앗겼고,

결국은 회사 밖에 사무실을 내게 된 것이다.

 

* 이 글은 산오리님의 [산기평을 어찌해야 하나..]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래 저래 인사겸 한마디씩 했는데,

지부장은 준비해온 글을 읽는데, 비장함이 느껴졌다.

 

세명이 해고 되었다가 복직되었고,

반부패연대인가 하는 곳에서 해고자 두명에게는 투명한사회기여상인가 뭔가 하는 상도 주기로 했단다.

연구사업 평가비리, 학위 취득 등 온갖 문제를 해고를 무릅쓰고 제기하고,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 밝혀 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은 떳떳하게 기관 경영을 하고 있고,

어용노조를 만들어서 내부고발을 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다.

이게 이나라의 현실이라면 그냥 받아 들일수도 있다... 어쩌랴...

오랜 세월을 또 싸우고, 싸워서 바꿔내도록 노력하는 수밖에는...

 

지부장과 사무국장을 생각해 보면,

한 공간에서 본부의 임원으로 활동해 온 내 낯짝이 정말 뜨겁게 느껴진다.

그들이 사업장에서 몸으로 부닥치며 싸우고, 밤새워 고민하고,

주말도 버려 가면서 각종 소장과 자료를 만들며 투쟁해 온 것에 비하면,

본부 임원으로서 너무 편하게,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싸우고도,

이제는 어용노조에 밀려서 회사밖에까지 나와서 사무실 만들고,

또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게 어찌 쉬운 일이랴..

 

해고까지 당했던 동지들,

그리고 그어려움 속에서 지겹도록 싸워온

지부장과 사무국장동지에게 가슴속에서 나온 찐한 박수라도 보낸다.

 

2년 임기 마무리해 가면서

가슴 무거움 느끼지만,

좁은 사무실에 갇히면 점차 잊어가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내가 싫다.... 이런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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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7 23:59 2004/12/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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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 하나 들어 놓은게 있는데,

보험을 들때 병원에 입원하면 입원비도 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보험가입서류와 약관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 또 본다 한들 알수나 있을까?

보험사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고 내 보험 관련 자료가 있나 찾아 봤는데, 그런 건 또 없다)



입원한 것으로 입원비는 지급될수 있는데, 3일간 입원했다고  했더니 3일입원으로는 입원비 지급이 안되고 4일입원부터 된단다.(허거.. 그때 3일만 입원해도 된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수술은 어찌되냐고 했더니, 정확한 수술명과 분류번호를 알려달란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원무과에서는 그런건 모른단다. 의사에게 확인해 봐야 한다나 어쩐다나...그러면서 심장내과에 알아보란다.

심장내과에 전화했는데 여전히 같은 대답이다.

열이 받아서

"진료비, 치료비 계산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돈을 받은거냐? 그 계산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병에 어떤 치료를 받았고, 그건 의료보험공단에 제출해야할 서류에도 다 있는 거 아니냐? 병도 모르고, 분류도 모르면서 당신들 맘대로 적당히 계산해서 진료비 받은거냐?"

하고 목소리 좀 높였더니, 차트를 찾아 봐야 하고, 교수님에게 물어봐야 하고, 어쩌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교수한테 물어보고 와서 알려준 병명은 '비후성 심근증, 코드는 I42.2' , 그리고 정확한 것은 9일날 예약되어 있으니까 그때 교수님께 물어보란다.

더 얘기해야 나올게 없는 거 같아서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다시 보험사에 전화해서는 이런 병과 이런 코드라고 했더니, 수술명은 무엇이냐? 이걸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정확하게 알아서 연락달란다. 치질이나 맹장수술같은 것은 간단하게 보험금 지급이 되지만, 다른 것은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나중에 지급하려면 진단서도 첨부해야 한단다.

그래서 또 더 할말이 없어졌다.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보험 들어놓고 보험금 타 먹는다는게 어렵다는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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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7 11:34 2004/12/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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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오락 가락?

from 단순한 삶!!! 2004/12/04 00:42

수요일 병원에서 나와서 건자재 지부의 조인식에 얼굴보러 갔고,

진보넷 6주년 기념식에 가서는 술 안마시고 밤 1시 넘어까지 앉아서

이런 저런 친구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담날 대전으로 내려갔고,

사무실에 잠간 앉았다가는 동학산장으로 가서

밤 1시까지 인지 2시까지 인지 토론을 했다



(아! 왜 이렇게 전임자 구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이렇게 지겨운 토론을 하다보면 산오리는 지겨운 것에 지쳐서

 '그까짓거 내가 할게!' 라고 말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대전으로 다시 내려갈 수가 없어서,

 그리고 2년간의 짧은 활동에더 너무 지쳐서,

 더이상 하겠다는 그 말은  할수가 없었다.

 어디서나 끝까지 버티는 건 이기는 것이다.

 답답함에 지겨움에 지고 나면 금새 후회하고 말테니까...)

그리고 소주도 몇 잔 마시고,

임기 2년동안 해 보지 못했던 카드놀이도 했다.

그리고 잠든건 5시 30분.

(이렇게 오래도록 잠들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10여년 전에 회사 동료들과 한참 백운저수지 음식점에 앉아서

 돈 잃어 가면서 고스톱 칠때가 마지막이었던가?)

후다닥 깨어난 건 8시 30분,

물 한바가지 끼얹고 옆사람들 깨워서

8시 52 분에 출발해서 9시 15분에 한 연구소에 도착해서

그 연구원의 원장과  면담...(운전은 운전전문가인 우리 사무처장이 하고..) 

그리고 되돌아 가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와서 유성에서 점심먹고

사무실 들렀다가 서울로...

서울의 한 연구소 들러서 잠간 얘기..

그리고 영등포에서 친구들 만나서 저녁겸 소주...

또 일산에서 지구당 사무실로 와서는 자격도 안되는 회계감사하고

집에 돌아 오니 12시..

 

집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왜 사는지,,,

우리 가족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낼 아침에는(아니구나, 오늘 아침에는 다시 홍성으로 간다.)

그저 오락가락 하고 있다.

내년에는 정말로 움직임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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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4 00:42 2004/12/0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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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혈관조영촬영을 할 것인지 설왕설래 하다가 결국은 하기로 했다.

젊은 의사는 심전도 검사 결과 그래프를 놓고서는

'이건 50%도 아니고 80%는 협심증이 의심된다, 따라서 이 촬영과

 시술을 해야 한다' 고 권고했다. 위험성은 2년동안 이 병원에서  검사한 300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부작용이 있었단다.

하튼 이 조영촬영이란게 뭔지 잘 모르고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입원하라고 무조건 한 내가 선택한 일인데 뭘....



양쪽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수술준비를 한다.

"50대 이상은 이 검사를 받지 말든지 해야지..."

내 앞에서 70대 할아버지가 이 검사를 받고 나갔는데,

시술하는 과정에 서로가 꽤 힘들었나 보다.

"무서워요?"

"예 조금은요..."

"괜찮아요... 피부에 마취를 합니다."

그리고는 오른팔에 약간의 통증 째는지 무얼 넣는지 느낌이 좀 있고,

뭔가가 팔을따라서 올라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는 기계소리가 윙~ 크게 나면서 무슨 약품을 분사하는 모양인데,

이게 흑백모니터에 다 보인다.

검은 색이 혈관을 나와서 나무뿌리처럼 뻗어 나간 혈관을 따라

좌악 갈라져 뻗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런 것을 몇번이고 반복한다. 내 배위에서 이리저린 각도를 달리하면서

촬영을 하는데, 그모양새란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검은 약물을 뿌리면 그게 여러갈래의 가지를 따라 좌악 흩어지고...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끝났단다. 시간은 20-30분정도..

 

그리고는 문밖에서 기다리던 보호자에게

"혈관은 깨끗합니다." 라고 의사는 말했다.

어디 막힌 곳도 없고, 어디 좁아든 곳도 없이 깨끗하단다.

 

깨끗하다니까 기분은 좋은데, 여전히 숨가쁘거나 어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찾지 못하고, 또 엉뚱한 곳만 열심히 뒤졌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오늘 폐기능 검사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고서는 이제 퇴원해야 한다.

2박 3일동안 병원에 있으니 환자도 환자가 될거 같고,

환자가 아닌 정상인도 환자가 될 거 같다는 생각만 든다.

일분이라도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와서 호들갑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어딘가 불편하고, 답답하긴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니라니까

더 아플때 까지 또 기다려야 하나보다 하는 생각만 든다.

 

**검사한다고 호들갑 떨어서 주위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

   특히, 의사선생님 소개시켜주시고, 그 늦은 밤에 병원까지 찾아와서 위로해 주신

   뻐꾸기님께 죄송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여 술라 총각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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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1 14:31 2004/12/0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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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from 단순한 삶!!! 2004/11/29 19:18

큰 병원에 가서 혈관 색전술인가 뭣인가를 한번 받아 보라고 둔산의 의사가 권했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병원에 예약했다가 한번을 연기하고, 지난 목요일 의사앞에 앉았더니

둔산의 병원에서 만들어준 의뢰서를 보고, 몇가지를 물어보더니,

심장을 놓고 약간의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고서는 입원을 하란다. 그게 오늘(29일)이다.

 

 



점심먹고 병원으로 와서 입원을 했는데,

간호사가 따라 오더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보호자를 데려 오란다.

'보호자? 난 정밀 검사를 하러 왔는데 왠 보호자?'

보호자가 꼭 필요하나고 물었더니, 검사도 하고 시술도 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어서 보호자에게 설명을 해야 한단다.

병원에 제수씨가 근무하고 있어서 올라 왔는데,

이미 내일 오후에 검사와 시술(혈관 색전술이라고 들었은데, 엔지오라 하든가?)스케줄을

잡아 놨고, 그래서 그 검사와 시술은 입원이 필요하고, 또 보호자가 필요하단다.

그리고 의사에 대해서, 또 이 병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선

정확하게 물어 보고서는 검사를 하든지, 시술을 하든지 하란다.

나는 그런 위험성이나 시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검사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일날 의사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다.

 

교수라는 의사는 올라오지 않았고, 젊은 의사가 와서 얘기를 나눈다.

입원을 한다는 것은 곧 이 검사와 시술을 뜻하는 것이고,

다른 검사는 입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방의 병원에서도 의심소견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기 위해서 왔는데,

바로 위험성 있는 검사와 수술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젊은 의사는 교수선생님과 의논해 보겠다고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그보다도 이 병원에서 담당 교수라는 그 의사는 나 같은 환자가 오면

무조건 이 검사와 시술을 하자고 입원하라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단다.

다른 의사들은 이런저런 상황을 봐 가면서 쉽게 이 검사와 시술을 쉽게 하라고

권하지 않는데, 이 의사는 바로 그렇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 선생에게 환자를 소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쉽게 이 시술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오늘 아침에 아내가 오늘은 어디로 가냐고 물어봐서

오늘은 병원가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 먼곳에 가서 입원하면 자기는 가 볼수도 없다고 미리 못을 박고 나왔다.

그러니 보호자인 아내를 이 병원으로 오라 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하루저녁 병원밥 얻어 먹고, 병원침대에서 자고,

그리고는 아무 소득 없이 내일 퇴원해야 할 거 같다..

 

그리고는 어찌할까?

대전에서 올라와서는 좀 차분하게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라도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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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9 19:18 2004/11/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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