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을 나가기 전에는 점심시간에 국선도를 했다.

그리고 나서 12시 50분쯤에 같이 운동한 사람들과 구내식당으로 갔으니까 점심시간에 밥을 누구와 어떻게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2년만에 돌아오니 국선도는 거의 해산했고, 점심시간엔 밥 먹으러 가는 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같이 밥먹으러 다니는 패거리들도 그렇고, 실 사람들도 모두다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울타리를 벗어나 일산시내로 나간다.

산오리도 1월달까지 이들을 따라서 바깥의 식당으로 밥을 먹으로 다녔는데, 한달도 안가서 질리기 시작했다.

 



우선,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예전의 4천원짜리는 눈 씻고 봐도 없고, 보통 5천원에 공기밥이나 볶은 밥 값을 따로 받으면 6-7천원이 된다. 매일 점심을 이렇게 먹는 건 아무리 경기활성화를 위해서 기여한다지만, 도저히 따라잡기 쉽지 않을 거 같다. 구내식당은 2천8백원이다.

 

밥값이 비싸면 또 맛있거나 먹고 싶거나 특별한 게 있다면 그런대로 감수할 만 하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맛있는 것도 없고,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맛있는 걸 찾아서 산천을 돌아다니는 미식가들도 있다지만, 산오리 생각에 우리나라의 어디나 특색있는 음식이나 맛이 없는 거 같다. 그러니 음식의  세계화(아니, 국내화인가?)가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산오리는 후각장애인 이지만, 음식맛에 있어서는 좀 까다로운 편이다. 조미료나 설탕으로 범벅해 놓은 것은 금새 입안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아마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음식에 길들여 지지 않아서 그럴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산오리가 '먹을만하다'고 하면 우리노조 지부장은 '맛있는 집'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나가보면 정말 맛있는 집은 찾기 어렵다.

 

산오리는 군대 있을때도 짬밥을 잘 먹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추장이나 깻닢 절인 걸 사서 밥에다 비벼먹는다고 법썩을  떨었는데, 산오리는 두부 콩나물 된장국이 그렇게 맛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하얀 돼지비계만 둥둥 떠있는 고추장 푼 '돼지고기 국'은 정말 얼마나 맛있었는지...

돼지고기 국 먹고 싶다.

 

또 밖에 나가면 이상하게도 과식하게 된다.  밥 한공기 다 먹어도 항상 모자르는 거 같아서 한공기 더 시켜서는 한두 숟갈 떠먹고는 남긴다. 그러나 구내식당에서는  밥의 양을 적당하게 조절해서 먹는다. 자기가 먹을 만큼 밥과 반찬을 스스로 식판에 떠서 먹으니 적당히 먹게 된다.

나가서 배부르도록 밥 먹고 들어오니까 오후 내내 졸리기만 했는데, 구내식당에서 먹은 이후로 이런 졸림이 사라졌다.

 

음식점의 필수요소인 청결은 또 어떤가? 한달동안 돌아다닌 식당 가운데, 무려 3곳에서 머리카락이나 쑤세미 조각(이건 같이 간 친구 음식에서)이 나왔다. 처음 한집에서는 그냥 모른척 버렸고, 또다른 두집에서는 나중에 주인(종업원)한테 보여줬더니, 미안하다면서 서비스 반찬(?)을 주거나 나중에 와서 먹으라고 음식 상품권(?)을 주기도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구내 식당은 주방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느껴 진다. 구내식당에서 머리카락이나 쑤세미 조각 나오면 당장 게시판에 올라오고, 난리가 날 것이다.

 

또 시간도 엄청 걸린다. 일단 차를 타고 나가면 왕복하는데, 30분, 음식 나오길 기다리는데 10-15분, 먹는데 10-15분, 그러니까 빨리 와야 1시간에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고, 보통은 10분가량 늦게 들어오게 된다.

근데, 구내 식당까지 걸어서 5분(왕복 10분), 줄서서 5분, 밥 먹는데 10분, 기껏해야 30분이면 모든게 끝난다. 덤으로 10분간 산책을 했고,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 점심시간에 포스팅도 할수 있다. 날씨 따뜻하면 산책을 더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 실 20명 가운데 한 명도 짬밥을 먹으러 가는 사람이 없다. 산오리가 '짬밥먹으로 가자'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산오리는 밥먹으로 가는데 완전한 '왕따'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랴, 혼자라도 짬밥 먹으러 가기로 했고, 혼자서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옆의 다른 부서 사람들에 끼어서 가게 된다. 그래도 짬밥이 좋다.

 

친구들아, 짬밥 좀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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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2 12:52 2005/02/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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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의 뜻이 산 봉우리가 하얗다는 뜻이라던가요?

봉우리는 꽤 오래도록 눈을 쓰고 있어서 따뜻한 봄에도 하얀 정상이 보이죠.

마지막 눈구경을 소백산으로 가려 합니다.

이번 주말에 25일(금) 저녁(6시쯤 서울)에 출발해서 산밑에서 하룻밤 자고,

26일(토) 산에 올랐다가 돌아올 계획입니다.

'게으른 산행'이나 '먹고 노는 산행'이 산오리의 산행원칙(?)이므로

힘들거나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교통편과 숙박은 가실 분들을 고려해서 목요일쯤 정해도 될거 같구요.

아무 대책없이 떠나도 이 땅에서야 어딘들 못가겠어요?

 

'간장공장' 님은 자기가 번개를 때리면 사람들이 안온다는데,

산오리가 번개를 때린다고 해서 뭐 얼마나 달라진다고?

 

하튼 소백산에 함께 가실 분들은 덧글을 붙여 주세요!!

24일(목) 낮 12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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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2 09:32 2005/02/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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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산'(www.historymt.org) 을 따라 오대산엘 갔다.

올겨울 눈에 굶주렸는데, 다행이 며칠전 강원도에 눈이 많이 내렸다고,

오대산에도 50센티이상의 눈이 내려서 눈구경은 실컫 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갔다.

 

서울에서 세시간만 차를 타고 가면 딴 세상이 나온다.

강원도는, 그리고 오대산은 딴세상이었다.

'강원도의 福' 이라 생각했다.

 


아침 햇살을 받아서 눈꽃도 붉게 보였다.



정상을 조금 못미쳐 해가 떠올랐다.


 

정상 아래에 눈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박준성 선생님과 함께,

역사와 산의  탐스런 일꾼 김인모..

정상에서 그 추위를 무릎쓰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지만, 맘에 드는 건 없다.

정상,,,, 비로봉...

 

산의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가 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래도 올라가는 도중에는 아랫도리가 싸늘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그러나 정상을 지나 상왕봉을 향해 산등성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을때

'이게 장난이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길을 계속갈게 아니라 아예 되돌아 가서 비보봉에서 왔던길로 바로 내려가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무릎, 허벅지, 엉덩이까지 빠지는데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서 손발을 꼼짝못하게 마비시켰고, 조금 내놓은 눈 주변의 살까지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모자를 두개나 눌러썼는데도 귀가 시리고 아팠다. 몇년전 태백산 갔을때 이후에 가장 추운 산행이었다.  그래도 사방의 전경이 다 들어오는 곳에 이르러 너무 멋있다고 사진을 찍으려고 디카를 꺼냈더니 작동불능이었다.

이렇게 추운날은 기계도 작동을 멈추는데, 인간들은 정말 지독하게도 이 추위속을, 눈속을 헤집고 다니다....

 

그렇게 한시간인지, 두시간인지 모르게 추운 능선을 타고 오니까 제법 비닐  썰매를 탈 곳도 있고, 햇살이 따뜻한 곳도 있다. 또 한참을 지나서 겨우 상원사로 내려오는 도로를 만났다. 도로는 완전히 눈에 덮여서 차는 커녕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웠다.

 

그 찻길에서 사람들은 눈내린날의 '강아지'와 마찬가지였다.

드러눕고, 뛰고, 기고., 빠지고, 소리지르고, 노래부르고...

그즈음에 다시 카메라는 작동을 시작했다. 조금 따뜻해 진 것이다.

 

내 얼굴은 어땠을까?

길은 이렇게 눈으로 덮였고,

 

바람따라 눈싸라기도 모래처럼 휘날려 사막의 바람무늬를 만들었다.

 

내려오다 되돌아 본 비로봉 방향... 하늘은 왜 그리도 푸르던지.

사진을 찍었는데, 얼굴은 없다...

 

일행 중 2명이 얼굴에 동상을 입었다.

한 친구는 물집이 생겼고, 한 친구는 볼이 푸르게 바뀌었다.

나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그렇게 시리고, 감감이 없더니,

집에 와서 보니 벌겋게 바뀐데다 여전히 감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비록 손발에 동상이 온다 할지라도 또 그렇게 걸어라면 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은(?),

그런 산행이었다...

으..........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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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0 22:09 2005/02/2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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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지역위원회로 바뀌었는데, 쉽게 적응이 안된다) 선거유세가

어제 저녁에 있었는데, 어느 국회의원이 자료 만들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지구당으로 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저녁먹고 시간만 죽였다.

(팀원 한 친구가 투덜거리면서도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있어서 미안해서

일찍 가지 못했다)

11시가 다 되어 갈 즈음에 지구당으로 갔는데, 당연히 선거유세는 끝났고,

뒷풀이 장소인 삼겹살집으로 갔다.

 



대충 11시 반이면 끝낼 것이라고 했고, 당원들은 계속 술을 마셨는데

차도 있고 해서 2잔을 마시고 12시쯤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와서는 잠들기 위한 술로 독한 술 세잔을 목안으로 털어넣고는

1시쯤에 잠들었든가...

 

휴대폰 소리가 울려서 아침이 되었나 보다 하면서 건너방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까 술집에서 만났던 당원이었다.

평화바람에 당비를 지원한다는 소문이 있어 이걸 확인한다고 했는데,

그런일 없다고 해도 도대체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구당의 상근자들 인건비도 모자라 우리가 특별당비 내 가면서

겨우 인건비 만들어주고 있는데, 평화바람에 공식적인 당비를 어찌 보내겠느냐고

설명하고,  떠들고.... 그러다가 나도 열받아서 목소리 높아지고...

 

잠들기 전에 마신 술이 아직도 덜깨어서 머리가 띵한데,

어렴풋이 시계를 본건 2시 반쯤이었나 보다.

 

도대체 그 얘기를 한 놈이 어떤 놈이냐? 바꿔달라 해서는 그 옆에 있는

나이 많은 당원과 또 통화한다. 그 당원은 내용이 뭔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런소문이 있다고만 얘기한다.

답답해서 '좀 알아 보고 뭐라도 얘기해라'고 하고서는

또 처음 전화한 당원과 계속 목소리 높여서 떠들었다.

 

그 와중에 아내는 깨어서 문을 열어보더니 빨리 끊어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또 얼마나 통화를 하고서는 끊었다.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어 가는지 '삑' 소리가 몇번 났다.

전화를 끊고 통화시간을 봤더니 46분 몇초였던가?

그리고 잠자리에 누우려고 시계를 봤더니 3시 15분을 넘고 있었다.

이 야밤에 도대체 무슨 짓거린지....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던 아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도대체 어떤 X인데 이시간에 전화해서..."

"당원인데....................."

"당신 또 당에서 뭐해?"

"........................."

"뭐 미쳤다고 그기다 돈을 그렇게 많이 내?"

"..........................."

(아무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도 얼마나 둘은 뒤척뒤척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몸이 무겁다. 더구나 비와 눈 내려서 아침걷기도 생략...

 

아침에 출근했더니 그 당원의 전화가 왔다.

"곽동지, 어제 술먹고 미안했수다......."

"그렇지요. 뭐....."

 

생각이 나서 옛날 게시판을 뒤져보니

대전에 있을때 전화 스토킹을 당할때 37분이 찍힌 적이 있었는데,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산오리-1&id=776&page=8 )

이 기록도 갈아 치웠다...

 

제발 밤에는 잠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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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6 13:18 2005/02/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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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가 아니라 당직자 선거) 당은 활기가 있다. 좋은 일이다. 특히 고양시지역위원회 위원장 선거도 경선이어서 제법 뜨겁다.

고양시라도 '민주노동당'답게 남아 있어야...

 

 

지난 해 민주노동당 중앙의 최고위원들이 선출되었을 때
나는 '엔엘' 이니 '주사파'려니 하면서 사람들이 떠들어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거냐고 반문했다.
민주노동당을 만들때의 취지와 목적이 있고, 또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많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당선되었는데... 하면서.

그런데, 나는 언제나 단순하고, 멍청하고, 바보 같아서
도대체 당의 중앙이, 세상이,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못했다.

그러고 나서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듣고 절망해야 했던 것은
열우당 2중대에다 국보법 올인, 그리고 여성당직자 폭행자들의 복직 판결,
민주노동당이 좋아서, 생계를 팽개치고 일하겠다고 들어왔던 연구원(보좌관)들을
떠나 보내고, 비정규직은 내팽개치고,.....
총선때 국민들한테 제법 약발이 먹혔다던 '부유세'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별로 관심도 없는 듯하고...

그래서 산오리가 순진하게 생각했던게, 이렇게 달라지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을 꽤나 많이 잃었다. 국민승리 21부터 계속해 왔고, 그래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인지 바쳐서라도 제대로 된 진보정당 되어가는 꼴 구경할수 있겠노라고 가졌던 희망들도 많이 버렸다.
"안되면 말지, 언제 내가 바라고, 내가 기대했던 그런 단체나 정당이 있었겠어?"

그래도 한가닥 희망이 있었던 것은  그나마 일산 지구당이, 고양시지역위원회가
저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희망 하나 겨우 붙잡고 민주노동당의 실낱같은 희망을 바라 보고 있다.

나는 이번 우리 지역위원회의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이걸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엔엘인지 피디인지 그런건 잘 모르겟지만, 중앙당이, 그리고 중앙당 최고 위원들이  지난해에 해 왔던 것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중앙당의 최고 위원들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위원장이 되어도 올해 또 그런식으로 결정하고, 사업을 한다면, 중앙과 지역을 쪼개는 한이 있더라고 머리박고 반대해 나갈 것이다.

또 이홍우 위원장 후보는 노동자 중심성을 지키고 있고, 지난해 그나마 경기도 에서 중앙의 '당을 말아먹는' 정책과 사업과 달리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해서 그를 지지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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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8:46 2005/02/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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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副'자 인생...

from 단순한 삶!!! 2005/02/06 18:11

'부'자 붙은 자리를 또 하나 챙길(?) 전망이다.

당에 다시 선거 시즌이 돌아와서 어제까지 지역의 당직과 대의원 후보자

등록을 마쳤는데,

산오리는 고양시위원회 부위원장 후보로 등록했다.

 

위원장과 중앙위원, 중앙당 대의원 등은

뭔가 힘이 있는 자리인지, 아니면 뭔가 가문에 영광이 되는 것인지,

뭔가 챙길것이 있는 자리인지, 당을 위한 충성심(?)이 넘쳐 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살벌한 '정파싸움'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겠다는 것인지,

하튼 뽑아야할 인원보다 후보자가 많아 경선으로 선거를 치른다.

 

 



지역위 부위원장, 도당 대의원, 지역위 대의원 등은

뽑아야할 사람보다 지원한 사람이 적거나 겨우 숫자를 맞춘 거라서

찬반투표로 이루어 진다.

 

산오리에게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출마해 달라고 했을때,

'할 사람 없으면 하겠지만, 회의 하기 싫어 하니까 다른사람 좀 찾아 봐라'고 했는데도

할 사람 없다고 해서 결국 등록했다.

할사람 없으면 그 자리나 때우는 건 산오리가 대충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후보등록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계속들었다.

회의에다 주말에 이런저런 활동에 기본(?)이라도 할라치면

앞으로 '열심히 놀자'는 산오리의 생활 방침에 상당한 타격이 올 것이다.

 

중앙위원이나, 당 대의원에 경선으로 출마한 사람들 가운데 한두명이라도

부위원장으로 출마하면 좋았을 것을,.....

 

산오리의 '副'자 인생도 꽤나 길다.

노조 사무국장과 위원장 마쳤던 1992년부터 1997년 연맹에 파견갈때까지

부위원장과 부지부장만 줄곧 했고,

그리고 과기노조에 전임을 나가면서도 수석副위원장이었다.

 

'副'자가 붙으면 정말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러붙지 않는걸 보면 그만큼 영양가는 없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또 회의로 고문을 받아야 하고,

주말에도 이런 저런 당 활동에 모른 척(?) 할수 없는

자리를 맡았는데, 이제는 좀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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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6 18:11 2005/02/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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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팩 10:민주노총임시대의원대회, 사회적교섭안] 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확히 민주노총의 임시대의원대회와 관련된 핵심사항은 아니지만,

언제나 언론에 열받는 동지들이 많아서 산오리도 단순하게 생각해 봤다.

 

1.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좋든 싫든 우리는 상품을 사서 먹고, 쓰고 해야 한다. 이렇게 사서 쓰는 상품들 가운데 마음에 안드는 '불량'이 있다면 당연히 바꿔 달라 하거나, 아예 반품하고 돈을 되돌려 받거나, 에이에스를 받거나 뭐 이렇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되는게 있는데, 산오리는 교육과 공무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거 바꿔달라거나 물어 달라거나 에이에스해 달라고 아무리 지랄 떨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거꾸로 돈 내고 물건사는 학부모들한테 큰소리치면서 법에도 없는 돈이나 선물 더 내놓으라 하고, 자신들의 고객인 학생들을 두드려 패기도 한다. 이건 정말로 자본주의의 원칙에 , 저들이 입만열면 떠들어대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안맞는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존나 힘들게 일해서 세금 만들어 주고, 먹여 살려 주는데, 국민들 알기를 개좇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이 공무원도 에이에스 받거나 바꿔달라고 해도 소용없다. 반품은 더더욱 안되지....

 

산오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거 말고도 더많이 있겠지만, 이 두개의 '불량식품'은 산오리의 머리에 오래도록 불량으로 남아있다.

 

2. 기아자동차 노조가 직원 채용과 관련하여 돈을 받아 먹었고,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열었는데, 그기서 약간의 난장판이 있었다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언론의 난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락가락하고, 함께 기절하고, 함께 쓰러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언론들이 어제 오늘 그래 왔던게 아니고, 언제나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민주노총을 씹어 왔고 못잡아 먹어서 안달해 왔다. 그래서 좃선일보니 조중동이니 해 가면서 그 신문들 보지 말자고 운동(?)까지 해 오지 않았던가?

 

산오리도 민주노총에 관심이 많고, 기아자동차 노조간부들이 채용을 미끼로 돈 받아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화가 많이 났다.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난장판도 다음날 어느 블로그를 보고서 알았는데, 좀 짜증이 났다. 짜증과 더불어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 이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테레비든 신문이든 뉴스든 논설이든 보지 않으니 더이상 열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까 민주노총부터 시작해서 다시 논의해 보고,  또 연맹, 단위노조에까지 함께 반성할 일은 반성하고, 또 다른 방식이 있으면 시도해 보면 된다. 누구나 들먹거리기 좋아하는 '현장'과 '현장의 정서'도 새로 찾아 보고 그걸 반영해 가면 된다.

 

3. 그래서 어차피 우리들 편 아닌 언론, 그 불량 식품에 너무 목메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거 핑계 대고 빨리 절망하고, 더 많이 열받아서 우리한테 좋은게 뭐 있으랴.. 제대로 된 내용도 아닌 왜곡과 엉터리와 철저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썩은 재료와 조미료가 범벅이 된 불량식품을 왜 맨날 돈 내고 사 먹으면서, 설사났다고 아우성인지 정말 모르겠다.

 

4. 트랙백을 건 어느 분도 한겨레를 끊었다고 했는데, 한겨레 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과 텔레비전을 끊어 버리자. '저들의' 뉴스를 끊고 나니까 정말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 가 없다. 그리고 항상 뭔가에 눌려 있고, 불안한 마음도 사라진다.  그게 불량식품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영양을 주는 것도 없다. 인터넷도 발달하고, 신문 만드는 기술도 발달해 있어서 민주노총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우리 편에 있는 다른 단체들도 있다. 실제로 이들이 식품을 만들어서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로 만든 식품은 쳐다보지도 않고, 불량식품을 돈을 주고 사 먹으면서 배아프다. 곧 죽을 거 같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게 너무 답답하다.

 

제발 불량 '언론' 모조리 끊어버리자!  

테레비전 뉴스와 신문 끊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운 삶'에 첫발을 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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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17:42 2005/02/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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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님의 [폭력의 기억은 핏속에 남는다]쭌모님의 [집단체벌.. 그 기억..]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세상이 어떤지 잘 몰랐던 국민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나면 중고등학교 선생들 가운데서는 선생이라 이름 붙일 만한 선생들을 몇 사람 만나지 못했다. 신생 사립학교이기도 했겠지만, 도시라는 곳이 벌써부터 빈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고, 선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학부모의 돈을 뺏어서 배를 채워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골 국민학교에서의 선생님들은 촌놈들보다 사정이 나았었는지, 애들이나 학부모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다.

물론 선생 김봉두 같은 선생도 있었겠지만, 다행이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조회와 종례 시간에 등록금 빨리 내라는 독촉을  계속했고,

때로는 반장을 통해서 학급회의 시간에도 등륵금 독촉이 이어졌다.

애들이 6명이나 되는데 아버지 혼자 근근히 노동자로 살면서 등록금 제때 제때 내기가 어찌 쉬웠으랴...

 

나는 아마도 학급회의 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다.

 

"등록금 독촉 그만 했으면 좋겠다. 누구는 안내고 싶어서 못내는 거냐?"

 

그 얘기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당장 선생의 귀로 전해졌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너 그런말 한 적 있냐?"

"예..."

"싸가지 없이 학생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

"너희 아버지 학교 오시라 그래라"

"왜요?"

"그걸 몰라서 묻냐?  너같은 놈은 부모님께 얘기해서 그 삐뚤어진 성격 좀 고치라고 해야겠다."

"선생님!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저 학교 보내주시는데, 또 학교까지 오라 가라 합니까? 그건 못하겠어요?"

"뭐????? 이새끼가!!!  다시 얘기해봐!"

"그러니까,.... 돈벌어 등록금 내주시는 것만 해도 힘든데, 학교까지 오시라고 말 못한다구요..."

 

그리고는 존나게, 정말 존나게 얻어 터졌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얻어 터졌는지 기억은 없다. 이선생은 원래 수업시간에는 자를 세로로 세워서  손등의 손가락 마디를 때리거나 얼굴에도 아주 짜증스럽게 찌르거나 따귀를 때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 당시 별명도 '쥐꼬리'였다. 얼마나 쫀쫀하고, 치사했으면 쥐새끼도 못되고 쥐꼬리였을까?

 

그리고 할수 없이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하루이틀 사이에 아버지는 학교로 가셨고, 봉투를 건넸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너무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뭐 이정도로 말씀하시면서....

 

도저히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 당한 모욕과 굴욕을 참을 수가 없었고, 돈도 없는 아버지를 불러서 봉투까지 받았다는 선생이 저게 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런 건 선생도 아니다고 외치면서...

 

그래서 학교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교 뒷길에서 숨어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 감춰놓고 선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내려 오면 그 큰 돌로 머리통을 내리치겠다고 생각했다.(학교가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후문쪽은 산길에 포장도 안된 길이 한참 이어져서 나무 숲에 숨어 있으면 지나가도 모를 정도 였다.)

 

그런데, 내가 살려고 그랬는지, 선생이 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 선생이 한번도 혼자 내려오는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다른 선생과 얘기하면서 내려오거나, 어떤때는 혼자 내려 와도 앞뒤로 다른 학생들이 있었다.

혹시 혼자 내려왔는데도 너무 무섭거나 소심해서 막상 돌을 내려치지 못했는지도모르겠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그걸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겨우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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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23:01 2005/02/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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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산오리님의 [지부장에게 마구 퍼붓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조합 전임하고 왔다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선임부장이 얘기했는데,

어제 그동안 기관평가 자료 만드느라 고생한 기조실 직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함께 끼이게 되었고, 기조실 직원들 대부분이 모였다.

삼겹살에 소주를 얼마만큼 마셨고,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떠들고 있어서 무슨 얘기가 진행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튼, 선임부장과 기조실장에게, 그리고 연구직 팀장들에게까지  

 

"권력이면 권력, 돈이면 돈 한가지만 추구해야지

 두가지를 다 손에 쥐려고 하니까

 직원들한테 원성을 사는 거 아니냐?

 기조실로 오겠다는 사람들 줄 서 있다는 말도 들리든데,

 공개적으로 경쟁을 해서 온 것도 아닌데,

 돈으로도 보상 받을 거 다 받고

그기다 다른 거까지 특혜를 누리면 문제 있다"

 

그렇게 한참을 퍼부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었다.

 

요즘 산오리가 좌충우돌하고 있다.

별로 반응도 없는...

그리고 군대에서의 '고문관' 같은 느낌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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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7:19 2005/02/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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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알엠님의 [횡설수설 보충설명]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알엠님의 글을 읽고 여자들이 가진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 할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알엠님 처럼 밑줄을 그어가면서 일일이 반박할 마음도 없고, 또 그렇게 반박할만큼의 지적인 소양도 없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두어번 읽고 나서 또 결론을 간추려 보면,

1. 남자들의 바람.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3. 가정에서의 투쟁

이렇게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에 대해 제 맘대로 또 한번 정리해 볼게요.

 

1. 남자들의 바람.

 

저 결혼한지 올해로 17년째입니다. 그동안 아내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두세번의 '바람'이 제게 왔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집으로 전화가 와도(그 전에는 휴대폰이 없었으니까...) 자기가 받아야 된다고 했고, 밤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도, '누굴 만나러 가냐?'고 물어 봤어요. 그즈음에는 제가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여자친구들이 있었지요. 굳이 애인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 아니면 바람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부부이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라 그러면,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가 생기면 당장 이혼해야 하나요?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요?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기도 하고, 또 싫어지면 돌아서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이건 그야말로 국보법에서 얘기하는 양심의 자유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감정은 자유롭게 표현될수도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관계이기 때문에 정리해야 되요?

 

그리고, 설사 그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와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또 '부부'는 당장 정리해야 하는 건가요? 육체적인 관계도 몸이 원한다면 그대로 따라 가야 된다고 봐요. 다만 '서로가 원할때'라는 단서가 붙겠지요.

또 감정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육체적인 매력' 만 쫓아 가고 싶은 때도 있어요. 그럼 감정을 주지 않았으니까  '부부'관계는 유지해도 행복한 것인가요? 그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서양(특히 유럽)에는 평생동안 섹스파트너가 평균 잡아서 남자는 30여명, 여자는 20여명이라는 보도를 봤어요, 미국도 별반 다르진 않더군요... 그럼 서양에서는 모두다 '관계'를 정리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마음이 끌리는데로, 몸이 원하는 대로 왜 못간다는 것이죠?

'관계' 는 그저 관계일 뿐이죠. 평생동안 몸과 마음을 다바치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만 가있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도 마음도 못가는 부부관계도 있겠지만, 어느것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유로와야 하거든요... 남자든, 여자든......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2년만에 회사에 다시 돌아왔어요. 지난주에 회사사람들 술자리에 갔지요. 지난 연말에 새로 채용되었다는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술자리에 앉자 마자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수저통 찾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숟가락과 젓가락 챙겨서 다소곳하게 두손으로 받쳐서 전해 주는 거예요, 오늘도 회사 사람들과 술마셨는데 여전히 똑 같아요..

 

지난 번 첨 술마실때 그래서 뭐라 했는지 아세요?

"숟가락 젓가락 선배들 한테 챙겨줄 생각말고, 선배들 맘에 안드는거 들이 받아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근데 달라지지 않아요.

더구나 요즘에 들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심해진거 같아요, 취직하기 어려운데, 저 높은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나를 뽑아 주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죠...

젊을수록, 패기있게 아닌건 아니다 라고 들이 받아야 한다는 거죠.

 

커피든, 담배든, 스스로 주위의 눈치를 보는 순간

그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할거라 생각해요.

 

3. 가정에서의 투쟁.

 

남자들이 투쟁하지도 않고,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거 인정할수도 있어요. 현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런 거지요. 그렇지만 선사시대든 역사시대든 바르게 서술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고대에는 '모계사회'라고 하잖아요,(그런적 있었어요?)

당시에는 어머니가, 아내가 권력을 잡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즈음에 와서 남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어요?

여성들이 너무 너그러워서 남자들에게 권력을 스스로 넘겨 준 것인가요?   
그건 아니죠, 그 동안에 남자들이 적과 싸우든, 내부의 동족과 싸우든, 아니면 옆에 있는 여자와 싸우든 하여튼 싸워서 지금까지는 이겨왔기 때문에 이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다고 산오리는 생각해요

산오리가 팔불출처럼 아내의 예를 잘 드는데....

우리 부부도 한때는 부모님 모시고 살았어요. 또 따로 나가서 살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기도 했어요, 제가요, 6남매 중에 누님 한분 있고, 장남이에요, 그럼 아래로 동생 4명과 부모님과 동희 동명이와 한집에서 살았어요, 그럼 식구가 몇인가요? 기본이 10명은 되죠?

아내는 그 10명의 살림살이도 훌륭하게 해 냈어요. 얼마나 손이 크고 맏며느리 처럼 잘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만 하고 있으면 부모든, 시누이와 시동생도 바라기만 하지, 형수나 올케언니에 대해 뭘 해줄까 고민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죠.

 

참다 못한 아내는 무조건 나가자고 개겼고, 산오리도 중간에서 불편하니까 돈 한 푼 없이 다시 나왔어요. 그리고 아내는 시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어지간하면 가지도 않고, 명절에도 기본적으로 할일만 하고, 시댁에 무슨 일이 있어서 남편이 부모님한테 좀 가자 하면 '당신이나 갔다 오세요'하고 안갔어요. 그래서 정말이지 산오리는 이런 거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도대체 우리 부모님을 뭘로 보냐면서....

 

한데, 계속 아내가 개기니까(?) 결국은 아내의 뜻대로 대부분 정리되더라구요. 부모님도 아내를 인정하고, 산오리도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그래서 저는 여자도 '이혼할 각오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신부님의 아내라고 신부님을 챙겨줄 필요는 없죠.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일하시고, 영화를 만드시는 알엠님은 알엠님대로 살면 되죠...

신도들이 뭐라하든 그건 신경쓸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도들은 신도일뿐이고(남편과 아는 사람들이고), 나는 나일뿐이죠.

 

그건 투쟁도 아니고, 내 맘의 자유일 뿐이죠.

내 맘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남편과 자식들에게 뒷바라지 잘 하면서 살라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해야 일도 재밋고 본인도 스트레스 안받는 것이죠.

불만은 불만대로 있는데, 주위 눈치 땜에 속이 다 타는 것은 무조건 피하세요!!

 

 

아즈라엘 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담에 또 얘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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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22:29 2005/01/3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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