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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5가지 속보이는 거짓말'

기계적인 실증주의 신고전파에 대한 체계적인 반박

그러나 레이건-대처 이래 여전히 신보수주의의 시대

IMF에 대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아무 책임감 죄의식도 없이 고용=복지라고 짖어대는 자유기업원 전경련 경총...

 

그러면 비정규직 고용은? 무슨 복지가?

정규직 고용 야근 수탈로 인한 삶의질 저하, 반복지는?

 

그러나 레이건-대처 이래 여전히 신보수주의의 시대... 시대 유감

 

 

 

이영훈의 '5가지 속보이는 거짓말'
  장상환 교수 "노동자-농민-중소기업 희생이 없었다니 웬 궤변?"
  2005-05-10 오후 1:12:45
  '뉴라이트'의 이론가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교수(54)가 "한강의 기적 이면에는 노동자-농민-중소기업의 희생이 있었다는 교과서 내용은 실증적 자료로 볼 때 현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데 대해,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교수(54)가 이 교수 주장의 5가지 허구성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이영훈의 첫번째 오류: 저임금 노동자가 희생되지 않았다?
  
  장상환 교수는 지난 7일자 <교수신문>에 기고한 '이영훈 교수의 한국경제사 분석은 타당한가/통계자료 잘못 인식. 농촌, 중소기업의 파탄현실 외면'이라는 글을 통해 이 교수 주장의 허구성을 신랄히 비판했다. 이 교수는 앞서 지난 4월29일 교과서 포럼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그려진 한국경제의 모습’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성장 이면에는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교과서의 내용은 실증적 자료에 비춰볼 때 현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장 교수는 우선 첫번째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희생 아래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 이 교수 주장에 반박했다. 이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박덕제 교수 등의 연구결과를 인용, "한계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임금증가율은 기본적으로 동일했고,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착실하게 임금은 올라갔다"고 주장했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이에 대해 "이런 분석은 일면적"이라며 "고도성장의 과실을 노동자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노동자가 저임금(노동력 가치 이하의 임금), 장시간노동이라는 초과착취라는 고통을 당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70~80년간 임금은 이론생계비의 40~50%, 실태생계비의 50~60%에 불과했고, 제조업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1987년 현재 54시간으로 대만의 48.1시간보다 훨씬 길었다"며 "저임금이 잔업을 강요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성진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비농림부문의 착취율(잉여가치율: 잉여가치/가변자본)은 1974년의 3백92%에서 1986년 4백48%로 높아졌다"고 실증적 자료를 들어 이 교수 주장의 잘못을 지적한 뒤, "경제성장의 과실을 자본, 재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분배받은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결론내렸다.
  
  장 교수는 이어 "이렇게 노동자가 초과착취당한 것은 정부가 노동운동을 억압했기 때문"이라며 "김삼수 교수가 잘 분석하고 있듯 박정희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조합을 법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반에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에 관한 임시특례법’,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1971년) 등 반노동자적인 법률들을 제정하고 노동법을 개악함으로써 사실상의 단결금지정책을 취하였다. 노동자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노동3권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두번째 오류: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착취하지 않았다?
  
  장 교수는 두번째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관계는 1980년대 이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왔다"고 한 이 교수 주장의 허구성을 여지없이 파헤쳤다.
  
  장 교수는 "이 교수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며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경제와 미약한 연계가 아니라 불공정한 도급거래를 통한 비대칭적 연계와 그 귀결인 격차 심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분명 이교수 지적대로 고용과 생산액, 기업체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부가가치, 종업원 급여, 수익률 등의 지표는 대기업과 그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1980년에 중소기업의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생산은 대기업의 55%였던 반면, 2001년에는 33%로 하락했다.
  
  장 교수는 "이러한 상반된 현상의 원인은 대기업이 부가가치가 낮은 생산단계를 중소기업에게 외주로 돌리는 동시에, 자신들은 고부가가치의 효율적인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기업의 종업원수는 정체되지만 이들은 고임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반면, 하도급의 불공정거래를 통해서 대기업의 위험과 비용을 전가받은 하청 중소기업은 저부가가치부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임금노동력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세번째 오류: 농업은 차별 당한 게 아니라 과보호 받았다?
  
  장 교수는 세번째로 "한국농업은 차별당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보호받았으며 미곡 수매제도 덕분에 농산물가격도 공업제품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고 한 이 교수 주장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이 교수는 심포지움에서 자신의 주장의 증거로 "1965~2004년간 농산품/공산품의 상대가격지수가 0.3에서 1.2로 상승한 점"을 들며, "농업이 낙후되고 농민이 가난한 이유는 농업이라는 산업 자체의 불리함에다가 농촌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역사적 제약조건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우선 이 교수의 상대가격 지수 변화 평가는 생산성 향상이 농업 부문보다 공업 부문에서 더 빠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예컨대 시계 값은 크게 떨어졌지만 쌀값은 올랐다. 그렇다고 시계제조업자가 망하고 농민이 큰 소득을 올린 것은 아니다. 생산성 향상을 고려한 가격을 비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농업·농촌의 피폐는 기본적으로 역대 정권의 농업소외정책 때문"이라며 "농업정책은 1950년대의 임시토지수득세 징수 등 ‘농업착취정책단계’에서 1960,70년대에 녹색혁명 등 ‘농업발전정책단계’를 거쳤지만 모든 선진국이 경험한 농산물가격지지를 핵심으로 하는 ‘소득보장적 농업보호정책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략한 채 바로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지향적 농업자립정책단계’로 이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농정의 구체적 예로 "1980년대 이후에 본격화된 이른바 개방농정, 구조조정농정"을 꼽은 뒤, "이는 미국의 공산품 수입규제를 피하기 위해 농산물을 과다하게 도입하고 경쟁력을 높인답시고 미약한 가격지지정책도 후퇴시키고 소수 대농을 육성하는 정책을 강행한 것으로, 그 결과 2004년 현재 식량자급률은 25.9%로 떨어졌고, 농가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77.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네번째 오류: 한국의 소득분배는 뛰어난 모범생이다?
  
  장 교수는 네번째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소득분배가 약간 악화된 것을 논외로 친다면 한국은 소득분배의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뛰어난 모범생이었다"는 주장의 허구성도 신랄히 질타했다.
  
  장 교수는 "한국이 다른 개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분배 불평등이 덜한 것은 역사적 요인으로서 1950년의 농지개혁으로 소작지가 분배되어 지주계급이 소멸한 것도 작용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정부가 발표하는 소득분배 지수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소득분배 측정지수인 10분위 분배율과 지니계수를 산정하는 기초통계인 도시가계조사에는 재벌가계 등 고소득층이 제외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부(특히 토지소유)의 불평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며 "사유재산 절대주의가 횡행하여 1963년부터 1979년까지 토지가격이 매년 두 자리 숫자로 17년만에 1백80배나 오름으로써 고소득층인 자가(自家) 이상의 부동산소유자가 누린 불로소득은 실로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정우 교수의 추계에 의하면 1988년에만 해도 지가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은 20-30조원으로 1천만노동자들이 번 피용자보수 53조원의 거의 절반에 달했다"며 "현재의 재벌들도 특혜금융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하여 자본을 축적한 측면이 크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현재 지가총액/국민총생산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이것이 이제는 비용 상승 부담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부동산 투기'가 한국의 소득구조를 치유불능의 상태로 악화시킨 현실을 지적했다.
  
  다섯번째 오류: 남한은 통일을 준비할 필요 없다?
  
  장 교수는 다섯번째로 "북한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아니라 무계획의 명령경제였다. 남한의 준비보다는 북한의 체제개혁, 즉 시장제도의 이식 건설이 핵심"이라고 한 이 교수의 북한.통일경제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장 교수는 "북한 경제체제 개혁의 필요성은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동-서독의 통일에서 보듯이 서독에 두터운 사회보장체제가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일후 서독 주민들의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동독 주민들은 이 사회안전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고, 결국 동-서독 주민간의 마찰을 완화할 수 있었다"며 남한의 통일준비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반면에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비정규직 증대와 함께 사회복지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출산율이 1.17로까지 내려가 노동력 재생산조차 어려운 가운데 통일이 되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 최종결론, '공부 좀 폭넓게 더 해라'
  
  장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같은 다섯가지 부실한 주장에 근거해 경제교과서를 '성찰형'과 '비판형'으로 구분한 뒤 "현재의 비판형 교과서는 단선론의 입장에 서 있고 사회갈등만을 초래한다"며 "성찰형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흘러온 데는 나름의 불가피한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여 우리 경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 이 교수 주장의 허구성을 질타했다.
  
  장 교수는 "이 교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확립된 통설만을 가르치자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식의 논리를 주장하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국정교과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한 뒤,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한 경제이론과 한국경제의 상을 교육할 때 학생들도 균형 있는 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열려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이 교수 주장의 편협성을 지적했다.
  
  그는 또 이 교수의 지론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적하며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는 이 교수처럼 일제 식민지 지배때 경제가 상당히 성장했고 이것이 그 후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허수열 교수가 <개발 없는 개발>(은행나무 刊)에서 잘 정리하고 있는 대로 일제하에서 개발은 있었지만 그것은 일본인들을 위한 개발로서 식민지 민중이 누리는 부분은 지극히 작았던 개발이었고, 해방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많이 파괴되어 버렸다"고 '일제 시대가 한국경제의 도움이 되었다'는 이 교수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장 교수는 "학생들이 한국경제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경제교과서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며 "경제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와 세계 여러 나라 경제를 폭넓게 이해해서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고전파의 주류 경제학만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 케인즈 등 다양한 경제학자의 시각을 가르쳐야 할 것"이라는 지적으로 글을 끝맺었다.
  
  한마디로 말해, 신고전파의 '기계적 실증주의'에 매몰돼 있는 이 교수의 반쪽 지식에 대한 동년배 동료교수의 "공부 좀 폭넓게 더 해라"는 신랄한 비판인 셈이다.
  
  과연 이 교수 주장이 나왔을 때 이를 대서특필하며 사설 등을 통해 "용기있는 주장"이라고 격찬했던 보수언론들과 경제단체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교수 자신이 장 교수의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박태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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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차별 병역법 개혁합시다!   여성부폐지   2005-05-10 13:2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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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삼청교육대와 광주는 장군님 빛나는 업적”?

다시한번 더 밝히나 놀랄 일 결코 아니다. 박사모(박근네인지 박정희인지) 설래바리가 이미 우리 현실 안에 들어와있다. 유럽 선진국에도 신나찌주의자들 공존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본다.

 

초딩들은 테크닉을 본다. 의리, 남자다움, 카리스마 이런 처세술이 세상 전부인 줄 안다. 철학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이미 초딩이 아니쥐... 명백한 하극상 재연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안보? 쥐랄이다. 지들 나라 잡자고 전방까지 전부 비우고 내려와 총질했다.

 

제작진의 전두환 미화? 조폭 두목이 돈 좀 호탕하게 잘쓰고 다닌다고 그걸 보고 멋지다 하는 인간들이 초딩이지...  일진회 vs 하나회... 같은거지

 

 

 

“삼청교육대와 광주는 장군님 빛나는 업적”?


△ MBC드라마 ‘5공화국’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MBC ‘5공화국’ 방영에 ‘전사모’등장…조직적 활동

“전두환 장군님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잘못한 점도 있지만 공이 더 크기 때문에 반드시 재평가해야 한다.”(문화방송 5공화국 게시판 ‘정계순’)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방어하시었으며 우리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분이다. 장군님은 수백명을 죽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4000만을 구했다” “민족의 태양 박정희 어버이께는 감히 필적할 만한 그릇이 못되지만 전두환 장군은 민족이 낳은 제 2의 대 영웅이시다!” (〃 ‘남상규’)

“그래도 전두환 장군님 시절에는 집값 걱정없지, 물가 걱정없지, 사교육비 걱정없지, 취직 걱정없지 서민들은 살기 좋았다.”(〃 ‘장해령’)

“전두환은 이후 후계자 노태우의 88년 올림픽과 92년 엑스포 등 국위선양을 위해 짐이 될 수 있는 놈들 양 김씨 친북 좌익 주사파 운동권놈들을 삼청교육대로 결딴내주고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을 지속해 노태우에게 넘겨준 태종과 같은 인물이다”(〃‘고대윤’)

“6회 방영분에서 12.12 거사 당일 날 돌연히 정승화 총장이 전두환 소장을 호출한다. 평범한 인간 같으면 오금을 저리며 일을 그르쳤겠지만 전두환 소장은 고작 권총무장한 부관 한 명을 대동하고 적진 한복판(육본 총장실)에 용감히 들어갔다가 무사히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고 수나라 본진에 들어가 정탐을 마치고 무사히 빠져나온 을지문덕 장군이 오버랩됐다.”(〃 ‘이종호’)



△ 문화방송이 정치드라마 5공화국을 방송하면서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전빠들이 전 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글을 도배하고 있다.



<문화방송>이 선보인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이 방송된 뒤, 5공화국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http://www.imbc.com/broad/tv/drama/5republic/5attend/board/index.html)에는 일부 누리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내용을 올려 다른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1일 평균 300~400여건의 댓글이 올라오는 게시판에는 드라마에 대한 얘기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얘기들로 가득하다. 이를 가리켜 일부 누리꾼은 “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할 때처럼 전빠(전두환 지지자)들이 문화방송 게시판을 쿠데타(도배질)로 장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빠’로 불리는 이들은 5공화국의 경제, 안보적 국가 공헌을 강조해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역사적 재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전두환 이름의 삼행시를 올려놓는가 하면 삼청교육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뚱맞은’ 주장까지 펼친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도를 진압했다고 얘기하고, 전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 별도의 카페까지 만들고 여론몰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문화방송> 제공.



“삼청교육대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은 전두환의 ‘업적’”(?)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cafe.daum.net/leejongpirl·전사모)’이란 팬 카페는 9일 현재까지 가입한 회원이 2400여명이다. 카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업적’ ‘전두환 전대통령의 참모들’ 등의 코너가 만들어져 있다. 카페 회원들은 전 전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봉사한 일로 ‘삼청교육대’와 ‘광주민주화운동’을 들었다. 군홧발로 짓누른 억압을 ‘업적’으로 표현해 놓고, 삼청교육대를 가리켜 “이 나라의 치안프로그램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로 표현했다. 또 카페 회원 박아무개씨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이) 광주시민의 반란·폭동·소요사태를 조기진압하여 나라를 음해하려는 반역의 무리를 영웅적인 행동으로 토벌한 빛나는 업적 후세에 찬양받을 것”이라고 써놓기도 했다.

이들과는 달리 다음에 만들어진 다른 카페 가운데는 ‘전두환 사형추진 서명 카페(cafe.daum.net/deathtodoohwan)’ ‘전두환 쓰레기 청산 대국민위원회(cafe.daum.net/killdoowhan )’ ‘5.18을기억하라(cafe.daum.net/JunDuHwanYoudie)’ 등 전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보기 드물게 ‘전사모’가 인터넷에 나왔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전두환 찬양’은 찾아보기 힘들어다. 간혹 전 전 대통령 재산과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면 일부 누리꾼들이 방어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화방송 게시판에서 보이는 ‘전사모’는 12·12 사태의 주역 전 전대통령처럼 점령군에 가깝다. 어느날 갑자기 드라마 방영과 함께 나타나 게시판을 순식간에 도배했기 때문이다.

누리꾼 ‘이정환’은 “제5공화국과 보궐선거시기에 맞춰 희귀하다던 ‘전빠’들이 대거 나오고 있다”며 “전두환을 두둔하는 자들에게 살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5공화국 드라마를 보며 전두환의 카리스마에 감복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해 왜곡된 방식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누리꾼 ‘윤성은’은 ‘박통에 이어 전통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댓글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은 오직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켜 죄없는 군인과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고 중앙정보부라는 부서로 공포정치 수년간 독재로 말미암은 부패, 정경유착 썩을 때로 썩은 오직 권력에만 집착했다”며 “박정희 망령이 아직도 통하는 사회 전두환 망령까지 살아나는 사회 이게 우리 나라 현실이라니 참으로 부끄럽다”고 말했다.


△ <문화방송> 제공.



시청자들 “제작진이 전두환 미화하는 거 아니냐?” 의구심

일부 시청자들은 게시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제작진의 5공 인물들의 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 ‘이진경’은 “쿠데타. 그 잔인함과 그들이 만든 계략에 말려든 사람들의 억울함도 보통이 아닐텐데 마치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정권을 자신이 잡으려고 욕심 부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다 바보고 전두환이 똑똑한 것처럼 느껴진다. 카리스마 넘치게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리꾼 ‘이종원’도 “전두환 역을 이덕화씨가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미화”라며 “사실 사람이 잘생기거나 말투나 품행이 뛰어나면 행동도 다 정당화하여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5공화국 제작진은 “주인공이다 보니까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는데, 7~9회에 가면 악역이 나오니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며 “7~9회에 12·12사태, 하나회 세력이 모여 최규하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어떻게 군대를 동원했는지 등의 상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5공화국’은 이번 달 광주에서 5.18 민주화 항쟁 장면을 촬영하고 다음달 삼청교육대 등과 함께 방송할 예정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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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냐? 지금도 단지 박통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한 충성하는 초딩들이 널렸는데...

 

 

전두환 장군을 을지문덕과 비교?



[마이데일리 = 이경호 기자] 극중 12.12 사태를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MBC TV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유정수 극본, 임태우 연출)의 일부 시청자들이 1979년 10.,26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을지문덕 장군과 비교하는 등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된 직후부터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지의견은 극중 10.26 사태직후 사태를 재빨리 파악하고 정보를 장악하는 기민한 모습을 보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모습이 방송되며 그 빈도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일부 시청자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터넷 모임을 만들고 역사적 재평가 및 5공화국의 경제, 안보적 국가 공헌을 강조해 대다수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과 빈축을 샀다.

이러한 일부 시청자들의 전두환 전 대통령 지지는 드라마에서 전두환 역을 맡고 있는 이덕화의 카리스마 연기가 극 초반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민첩하고 강한 추진력을 보이고 있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모습을 잘 소화하고 있어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의견과, 그동안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드라마 홈페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여기다 제작진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일부 시청자들의 의문도 제시됐다.

이 드라마의 제작관계자는 이러한 의견에 “미화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제작초기 전두환 전 대통령 및 5공 인사들의 명예훼손을 걱정하며 촬영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앞으로 전개될 5.18 민주화항쟁, 삼청교육대 등의 내용이 방송된다. 역사적 근거와 자료에 기초해 제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5공화국’의 대다수 시청자들은 이러한 논란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99년 법원에 의해 12.12사태 주동, 5.18 민주화 운동 탄압 등으로 유죄를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을 수수하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7년간 후퇴시킨 장본인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일부 시청자들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제5공화국’은 이번 달 광주에서 5.18 민주화 항쟁 장면을 촬영하고 다음달 삼청교육대 등과 함께 방송할 예정이다.

['제5공화국'에서 1979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역으로 출연중인 이덕화,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이경호 기자 rus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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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이건희에 준 철학박사 학위는 어떤 철학인가?”

박노자 교수님, 반갑습니다. 민족주의에 대한 객관적 시각!

초딩들 보는 교과서부터 우리 한민족은 단일 민족이고... ... 우리는 언제나 외국인 혐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교육부터 당장 바꿔야 

 

 

 

박노자 “이건희에 준 철학박사 학위는 어떤 철학인가?”
SBS 라디오 출연 “고대 학생들의 시위 통쾌했다”
2005-05-10 11:52 김선애 (iyamm@dailyseop.com)기자
“민족주의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서양이념이다. 이런 철학을 가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어떤 철학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교수는 10일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묻고 “고려대 학생들이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보고 통쾌했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우승열패의 신화’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민족주의는 서양 민족주의가 일본을 통해 들여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주의는 사회진화론에서 나온 것으로 강한 자가 살아남아야 그 민족이 강해지고 진화된다는 이념이다. 그래서 초기 사회진화론은 복지국가를 세울 필요 없다고 까지 주장한다. 복지가 강화되면 약자도 살게 되고, 약자의 후손이 살아남으면 사회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우수한 민족이 저열한 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민족주의로 발달한다. 히틀러·무솔리니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이러한 이념을 배경으로 하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것도 바로 이 민족주의이다.

박교수는 신채호 선생이 만든 ‘독립신문’에도 강한 민족주의 이념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민족주의는 신채호·박은식 선생 등 당시 지식인 사회의 담론이었다. ‘흑인 같은 열등한 민족은 당연히 소멸돼야 한다’ ‘당장 근대화 하지 않으면, 부국강병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소멸된다’ 등의 주장이 독립신문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수있다.”

민족주의의 위험은 사회의 약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여성에게 현모양처의 생활패턴을 강요하는 등의 예가 한국 민족주의의 폐단”이라며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민족주의의 개념이 성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선애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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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를 다시 알려주랴?

음 얼추 정리... 지금 니들은 난닝구랑 뭐가 다른데?

 

 

 

난닝구를 다시 알려주랴?
     등록 :   조회 : 2555  점수 : 590  날짜 : 2005년5월9일 17시50분 

열린우리당에서 자주 논란이 되고 사용되는 난닝구라는 말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것의 유래와 의미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상당한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간단히 정리를 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정치적 의미의 난닝구에 대한 유래


2003년 하반기경으로 기억됩니다만, 민주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로 민주당의 리모델링이냐 해체 후 신당의 창당이냐를 놓고 세 겨루기는 물론이고 극심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비로소 태동된 갈등은 아니지만 극심하게 외부로 표출된 시기가 그때였던 것입니다.


2002년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국민경선에서 단기필마로 출마한 노무현이 광주경선에서 1위를 하면서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경선주자들이 줄줄이 사퇴를 하면서 경선의 판을 깨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노무현을 후보로 대선을 치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표출한 것이지요. 정동영이 끝까지 완주하면서 경선지킴이를 자처한 것이 그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 얼마나 반노무현정서가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근태도 당시에 경선사퇴를 한 것은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아마도 민주당의 갈등이 태동되던 시기로 생각됩니다.


경선에서 노무현이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승복하고 후보를 중심으로 대선을 위한 대오를 형성하자는 사람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단협의 위력과 세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후보의 캠프와 후단협 및 당권파들의 반칙이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대선준비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고, 후보의 지지율은 지속적인 하락을 하여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후단협의 활약이 상당히 위력을 발휘한 셈입니다. 당의 재정권도 후보 측에서 넘겨받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던 시기입니다.


결국은 후보단일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면돌파로 명분을 얻었기에 이길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단일화 여론조사를 간신히 승리하였습니다.


그러고도 후단협은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탈당해서 한나라당으로 자민련으로 가거나 남아서 계속 후보를 흔들거나 겉으로는 승복을 하는 척 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당에 해악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후보에게 굴복하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었고 엉성하지만 대선을 치루기 위한 대오도 형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2.19의 감격적인 승리로 모두 정리가 되는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내부의 심각한 갈등들은 용암처럼 끓고 있었습니다. 인수위가 꾸려지고 당선자가 되었지만 당내의 분열은 좀처럼 해소되지를 못하였습니다. 대선을 이기고도 당이 분열한 예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구당파들에게 노무현은 여전히 정치권 변방의 후배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당을 자신들이 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에 대통령이 동의해주기를 바란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쯤 조순형이 당의 발전적인 해체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천신정과 추미애 등이 그것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구당파들의 기득권수호 의지는 강력하였습니다. 거기에 정통야당의 계보를 잇는다는 명분을 대면서 상당히 강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조각과 취임 등을 거치면서 해체론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일부가 이탈하고 추미애도 오히려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한 것입니다. 아마도 입각이 좌절된 반감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천신정과 조순형을 중심으로 개혁신당에 대한 추진의지가 비춰지고 정대철이 대표가 되어 나름대로 그들에게 힘이 실리는듯 하지만, 그들 구당파의 저항은 갈수록 강해지기만 합니다. 오히려 추미애에 이어서 조순형까지 그들에게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조순형은 신당의 추진이 김원기를 중심에 세우고 시작하려는 것에서 반감이 생긴 것으로 추측이 가능할 것입니다.


전당대회를 통한 민주당의 발전적인 해체와 신당의 창당을 당무회의에 상정하려고 하다가 여러 번 좌절되고 다시 추진을 하는 과정에서, 당무회의장에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머리채 사건도 있었고 난닝구 입은 구당파 측 당원의 당무회의 깽판도 등장을 합니다. 상정과 논의 자체를 못하게 막는 물리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에서 난닝구 등의 활약으로 결국은 해체 및 신당창당의 안건은 당무회의에서 표결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활약한 난닝구가 바로 탈당 후 신당창당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후 정동영이 앞장서서 탈당을 하고 몇 명이 후에 합류하고 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개혁당세력과 시민사회의 신당추진세력과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독수리 오형제 등이 함께하는 신당이 오늘의 열린우리당이 된 것입니다.


당시의 정동영등에 의한 탈당은 호남의 철옹성을 버리고 전국정당을 지향한다는 명분과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을 만든다는 명분도 좋았지만 지지기반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상당부분 포기하는 결단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일입니다.


그렇게 난닝구라는 단어는 구당파에 의하여 동원되면서 정치에 빈번히 회자되는 전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민주당의 신당추진을 위한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저지한 사람 중에 난닝구 차림으로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탄생한 용어입니다.


▲ 난닝구의 추억(?) ⓒ 엠파스 검색


2. 난닝구의 의미.


난닝구라는 단어를 언어적 측면에서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아마도 RUNNING이라는 영단어를 일본인들이 잘못 발언하면서 그것이 널리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상체에 걸치는 under wear를 일컫는 말이지요. 언더웨어만을 걸치고 뛰는 모습에서 유래되어 런닝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일본식 발음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인 의미의 난닝구는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거나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니 하나씩 의미를 나열해 보는 방식이 좋을 듯합니다.


첫째, 특정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동원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정치인의 지지자이면서 유력 정치인이 원하면 몸을 던져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저 정치인에게 휘둘리는 동원패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당파에 의하여 감성적으로 동원된 행동파 당원이라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폭력이나 완력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상적인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무력화시킨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그중 난닝구 차림의 구당파 측 사람이 상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채 사건보다 아마도 그 선정성이 뛰어나서 주로 사용된다고 보여집니다.


세째, 지역적인 이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당시의 민주당이 호남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으로 이미지가 고착화된 탓에, 구당파가 당연히 호남의 지역주의를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으로 연결지으려는 의도를 가졌고 그들의 뜻에 동조행동을 하면서 널리 알려진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신당의 추진에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추진한다는 명분도 포함되어 있어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네째, 극단적 패거리 주의를 말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동원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강력한 연대의식이 깔린 행위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패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합리성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성과 순리에 의존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반발을 보이는 행위로 합리성과는 엄청난 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당무회의가 토론을 하고 나름의 과정을 거쳐서 의결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것은 불합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였기 때문에 불합리성을 그들의 특징으로 들 수 있습니다.


여섯째, 국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무회의를 완력으로 무산시킨 사람들이 구당파에 의하여 동원이 되는 과정에서 순수한 자신의 반발심리와 감성적인 흥분 때문에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의 동원당원들은 모두가 뭔가를 기대하고 정치인들을 지원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돈을 줄 수도 있고, 정치인이 이권을 줄 수도 있고, 일자리를 청탁해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호가호위하는 것을 묵인해줄 수도 있고, 그런 국물과 관련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하면, 동원, 폭력, 지역집착, 패거리주의, 불합리성, 국물기대 등으로 간추려집니다. 정치가 이루어지는 무대의 주변에서 이런 특징들을 모두 가지거나 상당부분 가지고 있는 당원, 지지자, 선거운동원, 이익집단 등을 난닝구라는 비하의 의미를 담아서 칭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민주화의 기나긴 여정을 거치면서, 호남인들의 소외와 핍박과 고통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표하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비교적 완성되어 갑니다.


호남민중이 이 땅의 민주주의에 기여한 그 소중한 기록들을 과소평가하거나 그분들을 구태라고 함부로 폄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분들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휘한 옳은 선택들이 이 땅의 오늘이 있게 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 잘못된 부분만을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몰이해와 감성적 충돌 등은 아직도 질적인 민주주의로 가는 험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있는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증진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조건적인 비판도, 무조건적인 감싸기도 모두가 지양되어야할 비이성이라는 점에서 비판은 하되 대상도 행위도 명확히 구분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난닝구라고 비판하는 그분들도 과거 독재시절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며,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에 비하여 정치적으로 훨씬 소중한 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난닝구적 특성을 지닌 그룹을 비판하는 것도 몰이성의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 많은 대중성과 우중의 이성을 발전시키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비하의 뜻을 담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부적절한 경우가 없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비토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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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검색시간 : 0 sec.
  [1/27] 비토세력  IP :211.47.228.x    작성일 : 2005년5월9일 17시53분    
유종필이 지껄인 지역우월주의란 무엇인가?이글을 쓴 비토세력은 호남산이며 김대중의 수십년 지지자이고 오로지 호남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를 최고로 평가하는 사람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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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분 드라마'... 시민정신이 장애인 구했다

훈훈한 이야기

솔직히 인터넷 잘 찾아보면 좋은 내용도 많다. 좆같은 내용이 더 많아서 그렇지...

 

 

지하철 '3분 드라마'... 시민정신이 장애인 구했다
선로 떨어진 장애인 구조 수신호에 열차 급제동
  손병관(patrick21) 기자
▲ 지난 8일 오후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자 이를 본 시민들이 수신호로 역에 진입하던 전동차를 세워 후 시각장애인 김씨를 구하고 있다.
ⓒ2005 연합뉴스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장애인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수신호로 역에 진입하는 전동차를 세움으로써 참사를 막아냈다.

사건은 8일 저녁 8시15분경 서울 1호선 종로3가역 승강장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기 위해 종각역 방향 전동차를 기다리던 1급 시각·청각 장애인 김모(43)씨는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란 주변의 승객들이 이 남자에게 "승강장 바로 밑 틈으로 피하라"고 손짓을 했지만 김씨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고 선로에 그냥 엎드리고만 있었다.

승객 몇 사람이 김씨를 구하러 선로로 내려간 순간 멀리서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열차의 불빛이 보였다. 열차가 그대로 진행한다면 김씨만이 아니라 김씨를 구하는 승객들까지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때 승객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기 시작했고, 이를 이상히 여긴 전동차 기관사는 급제동을 걸어 승강장에 진입하기 전 30여m 지점에서 멈춰 섰다. 선로에 있던 승객들이 김씨를 무사히 승강장에 들어올리며 긴박했던 3분은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로 마무리됐다.

119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실려간 김씨는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를 구한 시민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2005/05/09 오후 9:19
ⓒ 2005 OhmyNews
손병관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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