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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 미스테리, 누구 말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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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미스테리, 누구 말이 맞나

잔인한 박정희...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군...

 

 

김형욱 미스터리, 누구 말이 맞나
'청와대지하실'에서 '양계장분쇄기'까지... 26년간 7가지 가설
  손병관(patrick21) 기자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지난 김형욱씨의 실종사건에 진상을 놓고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생전 김형욱의 모습.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6일 오전 '김형욱 실종사건'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역대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씨는 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서울가정법원은 1991년 3월 "김씨가 1984년 10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를 내려 그의 법적인 사망을 인정했지만, 그의 행방을 둘러싼 구구한 억측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언론보도들을 종합하면 김씨가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개입으로 인해 납치·살해된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김씨를 언제 어디서 살해했느냐는 핵심적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중정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당시 권력층이 어느 선까지 이 사건에 개입됐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김씨가 실종된 후 지금까지 나온 가설은 대략 7가지로 정리된다. 진실위가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해서 26년간 쌓인 의문점들이 완전히 해소될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김씨 실종을 놓고 그동안 나온 가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박정희가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했다"

94년 4월 개봉된 영화 <증발>에서 묘사된 가설. 신상옥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쓴 김씨를 외교행낭에 넣어 강제 귀국시킨 뒤 반체제 활동을 중단할 것을 종용하지만 김씨가 응하지 않자 청와대 지하실에서 권총으로 사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영화배우 김희라씨가 김형욱 역을 맡았다. 김형욱의 최후를 목격한 김재규 중정부장이 권력에 취한 박 대통령을 시해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방준모 전 중정 감찰실장은 2005년 2월 4일 방영된 KBS와의 인터뷰에서 "공군대위 김모라는 사람이 두 손을 결박시킨 김씨의 이마에 직접 권총을 대고 발사해서 죽였다는 증언을 받았다"고 말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김씨의 며느리를 비롯해 직계가족들도 김씨가 서울에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② "차지철의 특수공작팀이 제거했다"

생전의 김씨와 <김형욱 회고록>을 공동 집필한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의 주장. 김 전 의원은 98년 8월 1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김형욱 처리문제에서 강경론을 폈던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 김재규팀의 회고록 협상공작에 특수공작팀을 개입시켜 김형욱을 제거함으로써 박정희 앞에서의 충성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확보하려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변호사였던 강신옥씨도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 불타던 차지철 경호실장 쪽일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

79년 11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투옥된 송진섭 경기도 안산시장도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옆방에 있던 박선호 전 중정 의전과장과 통방(벽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하던 중 '청와대 경호실 간부들이 김형욱을 살해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 시장은 "박씨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지만 과거의 불분명한 기억을 현 시점에서 증언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며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증언을 꺼리는 상황이다. 윤일균 중정 해외담당 차장도 "차지철 라인에서 뭔가 정보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그쪽에서 해외 정보(공작)활동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본다"고 반박했다.

③ "산채로 자동차에 실려 폐차장에서 압사했다"

영화 <증발>의 박정희 개입설에 '유력인사 증언'이라는 살이 붙어 확장된 가설. 99년 10월 5일 <서울신문>에 소개된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의 회고록에 실려있다.

문씨의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따르면,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80년대 초 유럽여행을 하다가 파리의 지인으로부터 "서울로 납치된 김형욱이 박정희의 지시로 산채로 자동차에 실려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문씨에게 이 얘기를 전해준 소식통은 "잔인하다 잔인하다 했지만 박정희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잘못했다고 비는 김형욱을 자동차에 실어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버렸다네"라고 말했는데, 문씨는 86년 정 전 총리로부터 "내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라는 증언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94년 1월 타계했다.

④ "제네바에서 살해한 뒤 한국으로 시신 운반했다"

99년 11월 28일 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에 소개된 일본 유력일간지 간부의 증언. 그는 "(김형욱을) 제네바에서 살해한 뒤 주검을 차량에 싣고 파리로 옮겼다, 그리고 비행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운반했고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다, 지금도 활동중인 한국의 정치인한테서 90년대에 직접 들은 말"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욱 실종 당시 파리에서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던 그는 중정의 김형욱 제거작전 암호명이 '오작교 작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MBC 제작진은 당시 국내와 프랑스를 오가던 항공기의 경우 화물칸과 승객칸의 위치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어서 살아있는 사람도 몰래 입출국시켰을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

⑤ "중정 요원이 유인한 뒤 현지 조직폭력배가 살해했다"

<월간조선> 3월호가 중정 고위간부를 지낸 복수의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내놓은 가설. 프랑스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 요원이 김씨를 유인하자 파리의 조직 폭력배가 그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중정인사들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실패를 교훈삼아 중정이 김형욱 제거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현지 조폭을 활용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중정 총무국장이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도 2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형욱은 갱단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았다.

인터넷신문 <프런티어타임스>는 25일 관계당국 핵심관계자의 말을 빌어 "김씨를 납치한 괴한들이 야산에서 김씨의 옷을 벗기고 소음총으로 머리에 7발의 총탄을 발사해 살해한 뒤 사체를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괴한들이 김씨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야산에 은닉한 것으로 보이며, (살해증거로) 신분증은 한국에 있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전했다.

⑥ "파리시 외곽의 양계장 분쇄기로 갈아 죽였다"

올해 4월 11일자 <시사저널>이 보도한 가설로, 최근 들어 가장 논란이 됐다. 북파공작원 출신 이아무개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캐딜락 승용차 안에서 김씨를 마취시킨 뒤 파리시 서북방향으로 4km 떨어진 외딴 양계장의 분쇄기에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난 3일 방영된 MBC < PD수첩 >은 이씨가 납치지점과 양계장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고, "분쇄기로 동물을 절단할 수 없다"는 프랑스 축산전문가들의 증언을 들어 '양계장 살해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은 "부실한 현지취재로 무리한 결론을 내렸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⑦ "프랑스에서 죽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뉴욕 한국일보>가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를 근거로 보도한 가설. 미 국무부가 80년 2월 29일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보 형식으로 보낸 '주간동향 보고서 한국판' 메모에는 "김씨는 한국남자 1명과 분명히(apparently) (1979년) 10월 9일 파리를 떠나 취리히(스위스)를 거쳐 다란(사우디아라비아)으로 갔다, 하지만 거기서부터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세계일보>에 따르면, 국정원 관계자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프랑스에서 증발된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2005/05/25 오후 7:00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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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헌재 재판관 10년간 세금 3억여원 탈세

음...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 서울은 500년 관습 헌법...

봉건 시대 이래로 국가의 녹을 먹는 엘리트들이 직권을 이용해 내 배 불리는 것은 500년 이상의 관습 헌법인데 죄송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치 수준이 대한민국 딱 현실 수준이다.

 

 

 

이상경 헌재 재판관 10년간 세금 3억여원 탈세
"집사람이 관리... 공직자로서 물의 일으킨 데 국민들께 죄송"
  유창재(karma50) 기자
웅진닷컴

▲ 이상경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지난 10년간 3억원의 세금을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당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 재판관이 헌재에 출근하고 있는 모습.
ⓒ2005 연합뉴스 전수영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 집안 살림을 집사람이 하다보니 (주택 관리에) 내가 관여하지 않았다. 그 사람(세입자)을 만난 적도 없고, 같이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 최근에야 (탈세 문제를) 알았고 정말 당황스럽다."

이상경 헌법재판소 재판관(사진)은 25일 밤 10시경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0년간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건물 임대 소득을 실제보다 줄여 신고해 그동안 3억원 가량의 임대소득을 누락시킨 사실을 고발한 언론 보도에 대해 이와 같이 시인했다.

특히 이 재판관은 전화통화 도중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으며, 이 재판관은 세입자와의 소송 과정에서 합의금 명목으로 2000만원의 돈을 건넨 부분에 대해 "공직에 있다보니 이번 일로 문제가 될 것이 우려돼 (돈을) 건넸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 재판관은 "(저의) 지휘를 떠나서 이번에 부주의해서 정말로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KBS 뉴스 보도로 탈세 사실 드러나

KBS <뉴스9>은 이날 "이상경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서울 강남에 있는 자신 소유의 건물 임대 소득을 실제보다 줄여 신고하는 수법으로 지난 10년간 세금을 포탈해온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동안 3억원 가량의 임대소득을 누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재판관측이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지난 94년부터 10년간 세들어 살던 세입자에게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면서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세입자는 그동안 이 재판관측이 세금을 포탈해 왔다고 주장해왔다.

이상경 재판관은 누구?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경북대사대부속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19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군법무관을 거쳐 1974년 서울민사·형사지방법원 영등포지원 판사로 출발했다.

이 헌법재판관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판사를 두루 거쳤고,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등 지낸 후 대구·인천·부산고등법원장을 역임하고 지난 2004년 2월 헌법재판관에 올랐다. 임기는 오는 2010년까지이다.
이와 관련해 서상홍 헌재 사무차장은 "이상경 재판관은 임대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탈세의도는 없었고 (이 재판관의) 부인이 세무사에게 맡겼는데 이는 당시 세무관행"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월 28일 공개된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재산변동 내용에 따르면, 이 재판관은 아파트 평가차액 덕분에 2억4998만7000원이 늘어났다고 신고, 헌재 재판관 중 재산 증가액이 가장 많았다.

한편 이 재판관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당시 주심 재판관을 맡기도 했다.
2005/05/25 오후 10:4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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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의 해학과 에로티시즘

음... 대충 데이트 코스로 강추!

 

 

 

우리 삶 속의 해학과 에로티시즘
사설공원 석화촌의 테마
  이승철(seung812) 기자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의 조건으로 돈과 권력, 그리고 건강을 필수항목으로 꼽는다. 무형의 조건으로는 물론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그런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서 요즘 크게 대두되는 것이 유머(humor) 감각이라고 한다.

▲ 우리 풍물패 조각상
ⓒ2005 이승철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조건 가운데는 유머감각을 필수항목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도 재미없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유머는 아마 양념에 해당 되지 않을까. 유머가 없는 삶이 재미없는 삶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생선이나 고기 등 좋은 재료를 요리하여도 양념이 제대로 첨가되지 않으면 결코 맛있는 음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머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해학(諧謔,) 또는 익살이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그 해학과 익살의 가장 많은 재료는 아무래도 에로티시즘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기본욕구중의 하나인 에로티시즘은 변함없는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멋있는 모양의 세열(공작)단풍나무
ⓒ2005 이승철
그런데 옛날 점잖 빼는 양반사회에서도 과연 그런 해학이 통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그렇다고 한다. 요즘 시대상황과 맞물려 인기 있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에게 이순신의 탄핵을 간하여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이항복과 그의 친구인 이덕형의 해학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많다.

어느 날 대궐에서 중신들끼리의 회의가 열렸다. 해당되는 벼슬아치들이 다 모였는데 뒤늦게 이항복이 나타난 것이다. 친구인 이덕형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왜 늦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항복이 말하기를 “내가 회의에 참가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는데, 오다가 길에서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고 있지 않겠나,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글쎄 큰길에서 대낮에 환관은 스님의 머리털을 잡고, 스님은 환관의 음경을 잡고 대판 싸우고 있지 뭔가, 그래서 잠깐 구경하고 오다보니 늦었네 그려” 하는 것이었다.

회의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머리털 빡빡 깎은 스님의 머리털을 어떻게 잡으며 음경 없는 환관의 음경을 어떻게 잡고 싸운단 말인가. 그러나 이 해학에는 당시의 당쟁으로 서로 뜬소문을 만들어 내고 모함하며 싸우는 정치판을 비판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두 사람의 해학에는 꼭 점잖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과연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릴만한 것들도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왼쪽은 둥근 조팝나무, 오른쪽은 불두화
ⓒ2005 이승철
점잖고 도덕적인 양반들의 해학에서도 에로티시즘은 빠질 수 없는 재료였던 셈이다. 즉 해학 중에서도 에로티시즘이 가미되어야 그만큼 재미있고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에로티시즘의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지난 토요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사설 공원 석화촌에 다녀왔다. 나지막한 언덕 1만 2천여평에 조성된 공원은 꽃과 나무, 그리고 400여개의 석재 조각품들이 어우러진 해학과 에로티시즘의 조화였다.

나무와 꽃들이 잘 가꾸어져 아름다운 숲길 곳곳마다 세워져 있는 석재 조각품들은 보는 사람들 마다 미소를 자아내게 하였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남근상 앞에서 치성을 드리는 여인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바지 앞이 불룩한 상투 튼 선비상도 있었다.

치마를 올리고 용변 보는 여인을 훔쳐보는 옹기장수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넌지시 바라보는 선비상은 해학의 극치였다. 관음증으로 불리는 인간의 본능은 옹기장수나 양반계급인 점잖은 선비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용변보는 여인을 훔쳐보는 옹기장수와 선비상(왼쪽)과 남근상앞에서 치성드리는 여인상
ⓒ2005 이승철
한 곳에는 사립문 안뜰에서 실물보다 엄청 크게 만들어진 남근을 자랑하며 유혹하는 선비를 비스듬히 누워 감상하는 여인상과 담 너머로 이들을 훔쳐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조각품이 추한 포르노처럼 보이지 않고 웃음을 짓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묘사된 남근이 실물크기가 아니라 엄청 크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리라. 지나친 과장이 현실을 뛰어넘는 해학으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간 친구들도 누구 한사람 추하다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이 웃기만 하였다. 지나가던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도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조각상 앞에 서보란다.

마침 한 떼의 고등학생들이 우리 앞으로 몰려와 조각상들을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는데요” 한다. 여학생들도 전혀 얼굴을 붉히거나 수줍은 표정이 없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 왼쪽은 도깨비상, 오른쪽은 바지 앞이 불룩한 선비상
ⓒ2005 이승철
조각상은 전설로 내려오는 .고려장. 하려고 지게에 노모를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재래식 결혼 모습과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는 모습, 풍물놀이패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었다.

한 곳에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버들잎을 띠워 선비에게 대접하는 여인상과 보리방아를 찧는 삶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공원의 주요 테마는 단연 해학과 에로티시즘이었다.


동지 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돌 벽에 새겨 있는 몇 편의 시조 가운데 기생시인 황진이의 시 한수가 유별나게 눈길을 붙잡는 것은 왜였을까? 이 시 또한 깊은 은유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에로티시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조각상
ⓒ2005 이승철
급속도로 개방된 성 풍조와 인터넷을 통한 무절제한 포르노 문화 때문에 뜻있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은근하고 해학적인 에로티시즘은 사람들의 삶에 여유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더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5/05/24 오후 9:25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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