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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때문에 1년 늦어진 대통령의 동문회

아아 탄핵

서울법대 나와서 사시 백날하다가 실패한 두 인간(최병렬,조순형)이 상고 출신 사시합격생 날려버린 사건! 단지 대학 안나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대통령 인정 못하겠다 노래부르다가...

 

 

탄핵 때문에 1년 늦어진 대통령의 동문회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취임 후 첫 모임... 검찰 쪽 동기는 못 불러
2005-05-29 20:43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은행 대리 시험을 피하다 만난 친구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988년 13대 초선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자신이 왜 변호사가 됐는가를 밝힌 적이 있다. 원래 은행원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새 직업을 찾아야 겠다’고 맘먹게 만든 것은 바로 피 말리는 ‘대리시험’의 공포였다.

“저렇게 뼈빠지게 공부하느니 그 정성으로 차라리 고시를 보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노 대통령은 1975년 사법시험에 붙어 은행을 떠나고 법조인이 됐다.

이렇게 해서 만난 고시동기들을 28일 대통령 취임하고 3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사법연수원(사시 17회) 동기생 40여명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해 경내 관람 후 녹지원에서 만찬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정부 출범 초기에 초청하고 싶었는데 신용불량자, 북핵문제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서 초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3년에 동기들을 초청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 것.

그렇다면 2004년에는 이들을 초대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노 대통령은 “작년에는 탄핵 때문에 못했다”며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는 이렇게 초청했지만 검찰 쪽은 모시지 못했다”며 “늦게 초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소감을 밝힌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멀리 보고 일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법과 원칙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청문회 이야기 등 환담을 나누며 오랜 만에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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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이상경 헌법재판관 사퇴 촉구 목소리 이어져

대한민국 극우 수구

썪고 구린건 둘째치고 너무 비굴해

 

 

'탈세' 이상경 헌법재판관 사퇴 촉구 목소리 이어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30일 성명 통해 "변명 늘어놓지 말라"
  김병기(minifat) 기자
지난 10년간 임대소득을 탈세한 이상경 헌법재판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 447개 시민사회단체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30일 성명을 통해 "이상경 재판관이 (탈세 사실을) ‘몰랐다’는 석연찮은 변명을 늘여놓거나 부인과 세무사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헌법재판관을 즉각 사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특히 "조세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헌법재판관이 부동산 소득세를 탈루했다면 이는 이상경 재판관 개인의 자격문제일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 "세금이라고 하는 국민의 당연한 법적 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헌법재판관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앞으로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복종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대회의는 또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등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사회적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서 "이같이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영향력이 커진 만큼 헌법재판관들은 그 권한에 맞는 도덕성은 물론이거니와 법질서 준수의 측면에서 모든 국민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최근 여러 공직자들이 ‘주변 사람의 부동산 관련 의혹’ 등 도덕성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비리 의혹만으로도 공직에서 물러났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법을 철저하게 준수할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관이 부동산 소득을 줄여서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것은 용인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상경 헌법재판관은 지난 10년 동안 임대소득을 줄여서 신고하는 방식으로 3억원에 달하는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4천~5천여 만원의 소득세를 탈루한 사실이 최근 드러난 바 있다.

이와관련 이 재판관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집안 살림을 집사람이 하다보니 (주택 관리에) 내가 관여하지 않았다, 그 사람(세입자)을 만난 적도 없고, 같이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 최근에야 (탈세 문제를)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오마이뉴스>는 부산고등법원장으로 재직했던 2003년 말 이 재판관의 집에 세들어살던 세입자가 소송 과정에서 '탈세 사실'을 알리는 내용의 문서를 이 재판관 앞으로 직접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이 임차인은 당시 이 재판관에게 보낸 통지서에서 "귀하의 부인께서 저희 부부에게 매월 1백만원씩 임대료를 지급한 것으로 하여 비용신고를 하라고 하여 저희들은 귀하가 시키는대로 매월 1백만원씩 월 임대료를 낸 것으로 신고를 하였다"며 "저희들은 결국 월임대료를 1백만원이 아닌 3백80만원 낸 것으로 계상하여 신고를 하였다면 매월 2백80만원 상당의 비용만큼 세금혜택을 받았을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고 적시했다.

그는 또 "저희 딸과 사위는 세무서에 알려서라도 세금혜택을 받자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면 귀하께서 세금을 포탈한 것이 되므로 이를 만류하고 있다"면서 탈세 사실을 이 재판관에게 알렸다.

계속되는 시민사회의 사퇴촉구 목소리

참여연대는 지난 26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이상경 재판관은 도덕성 면에서뿐만 아니라 법질서 준수에서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이 재판관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도 지난 26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이 재판관의 탈세에 대한 일부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다른 비리 사건 관련 보도와 비교해볼 때 상식 밖으로 소극적"이라고 비판한 뒤 "다른 사람도 아닌 헌법재판관이 소득을 줄여서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흥사단도 27일 '성역은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상경 헌법재판관의 탈세가 부인이나 세무사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 하더라도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 재판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재판관은 구차한 변명보다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즉각 사퇴하고 법의 정당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05/30 오후 12:5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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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김근태-손학규, 2007년 환갑의 ‘용꿈’ 꿈틀

닮은 꼴 김근태-손학규, 2007년 환갑의 ‘용꿈’ 꿈틀
느긋한 따라잡기 속 유시민-박근혜와의 공조 행보도 눈길
2005-05-29 10:33 김성곤 (skzero@dailyseop.com)기자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언론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정치인이다.

우선 각자가 소속된 당적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 다르지만 나이와 출생지에서부터 학력, 주요 경력 등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군 경력까지 일치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 스타일도 닮았다. 각자의 정치적 라이벌로 평가받는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이명박 서울시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 등의 면에서 다소 열세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언론매체의 여론조사에서 김근태 장관이나 손학규 지사 모두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보는 이에 따라서는 ‘과연 대권에 뜻이 있는지’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지만 최근 이들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 지사로서 각자의 업무를 착실히 수행해 나가면서 내실을 다지는 알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 장관과 손 지사 주변에서는 “대선은 결국 100m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으로 후반 역전승을 장담하는 모양새다.

“65학번 동기동창, 김근태와 손학규는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둘 다 1947년생 동갑으로 김근태 장관은 경기도 부천 태생이고 손학규 지사의 출생지는 이웃한 경기도 시흥이다.
▲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손학규 경기도 지사.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또한 두 사람 모두 서울대 65학번 동기로 학생운동에서 시작,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재야인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기고를 졸업한 것도 같아 국내 최대 인맥이라는 ‘KS(경기고·서울대) 라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갖출 토대도 마련했다.

특히 두 사람은 손학규 지사가 밝힌 대로 서울대 재학 당시, 인권변호사로 유명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가 자랑하는 당시 운동권 삼총사였다.

여야를 대표하는 유력 대선주자인 두 사람은 196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 학과공부보다는 시대에 저항하는 기나긴 민주화투쟁을 시작한 뒤 70년에는 재야운동에 헌신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경력은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로 불렸던 귀한 신분이라는 점과 이명박 서울시장이 개발독재 시절, 현대건설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이 3공화국과 유신시절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지위를 누렸다면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의 생활은 한마디로 수난의 연속으로 정통 민주화세력이라는 강점을 각자 지니고 있다.

김근태 장관은 67년 대선 부정선거 규탄시위로 경찰에 끌려가 그의 표현대로라면 무지막지한 매를 맞고 제적돼 강제 징집된다. 69년에는 3선 개헌과 영구집권 반대 투쟁, 71년에는 대선파동에 개입돼 기나긴 민주화투쟁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후 서울대생 국가내란음모 사건과 학생시위 배후조정 혐의로 71년 수배돼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수배생활을 지속한다.

손학규 지사도 대학시절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 시위 참여와 학원자유화 투쟁으로 두 번의 무기정학을 당했다. 또한 강원도 함백탄광에서 스스로를 ‘막장인생’이라 자조하는 광부들과 쪽방에서 칼잠을 자면서 생활하는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고 73년 졸업 이후에는 소설가 황석영의 자취방에서 기거하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청계천에서 빈민운동을 벌이다가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이 붙은 수배자로 생활, 어머니의 장례식 때 체포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80년대 민주화투쟁과 유학의 다른 삶 살다 90년대 초 나란히 정계입문”

70년대 고난과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삶은 80년대 들어서며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김 장관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죽음과도 같은 고문을 이겨내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손학규 지사는 영국 유학생활을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소장 정치학자로 성장한다.

우선 김근태 장관은 익히 알려진 대로 83년 민청련을 결성, 민주화운동에 나서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을 경험한다. 이로 인해 김 장관은 87년 부인 인재근 여사와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88년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으로부터 세계적 양심수로 선정되는 등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반면 손학규 지사는 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홀연 영국 유학의 길에 오른다. 당시 손 지사는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으니 그 동안 빈 머리를 채우고 싶다”고 밝혔었다.

영국유학생이면 쉽게 할 수 있다던 유럽구경 한번 못한 가난한 유학생활로 학업에만 매진하다 88년 귀국, 90년부터 서강대 정외과 교수로 활동한다.

민주화투쟁과 유학이라는 다소 상반된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90년대 들어서며 각각 김대중과 김영삼을 선택, 여의도라는 현실정치에 발을 담근다.

김근태 장관은 92년 대선에서 김대중 지지를 선언한 후 95년 야권통합 과정에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부총재직을 맡으며 정계에 공식적으로 입문한다. 96년 총선 이후 15, 16,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손학규 지사의 정치입문은 93년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다소 급작스럽게 이뤄진다. 이후 96년 15대,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되고 2002년부터 경기도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 입문 이후 두 사람의 의정활동은 가장 신사적인 현역 국회의원에게 수여되는 백봉신사상 수상경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근태 장관은 99년에 이어 2000년과 2002년, 2004년 네 차례나 수상할 만큼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보였고 손학규 지사 역시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여의도를 떠나기 전 2000년과 2001년 두해 연속 수상했다.

“아직은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두 사람, 본선이 다가올수록 달라진다”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는 유력한 대권후보군 중 하나로 오피니언 리더 등 여론주도층의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막상 국민들에게는 대권주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하고 있다.

실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진행된 상당수 매체의 여론조사에서는 아직까지 김근태 장관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손학규 지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의 경험을 돌이켜보지 않더라도 대선이 2년 반 이상 남은 시점에서의 여론조사 의미는 제한적이다.

지난 대선의 전체적 구도는 이회창 대세론이 압도적이었지만 이회창 후보는 대선 재수에서 실패했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은 역시 이인제 대세론이 압도적이었지만 막상 후보선출 과정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가 선출된 사실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는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뚜렷한 정치적 자산과 세력을 갖추지 못한 고건 전 총리와 정계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회창 전 총재가 일반 국민의 여론조사에서 대권후보로 꾸준히 거론된다는 것에 비춰봐도 김 장관과 손 지사의 현재 열세는 유의미한 평가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확실한 여야의 차기대권 후보로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이 정치적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 현재의 지지도는 두 사람의 능력 여하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극복이 가능하다.

먼저 김근태 장관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면 이는 대선국면에서 상당한 플러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업무라는 것이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미래 한국사회가 직면한 통일, 경제, 복지라는 세 가지 난제 중 하나다.

이 문제와 관련, 국내 상당수의 학자들은 미래 한국사회가 직면할 가장 큰 이슈로 고령화사회의 이행에 따른 대비책과 빈부 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확충 등 복지분야를 꼽고 있다.

김근태 장관의 당 복귀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러한 문제에 천착한다면 ‘복지 지도자’라는 확고한 이미지 구축이 가능하다. 더구나 보건복지부 소관업무가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기 때문에 국가 지도자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자리도 없다.

특히 혼선을 빚고 있는 국민연금의 문제는 김근태 장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소지도 다분하지만 만약 이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수직상승하는 전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손학규 지사 역시 김영삼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대권후보로서 광역자치 단체장을 경험했다는 것이 대권레이스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선진국 대부분의 국가지도자들이 수도의 시장이나 주지사 등의 경력을 거친 뒤 대권에 나선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미 파리시장을 거쳤고 미국 전현직 대통령인 클린턴과 부시는 각각 아칸소 주지사와 텍사스 주지사를 역임했다.

특히 손 지사는 의욕적인 행보가 정치적 구설을 초래하기보다는 해외 외자유치와 한류우드 조성 사업 등 경제회복을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는 것도 점수를 얻고 있다.

손 지사는 5월 한달동안 국내 첨단기업의 수도권 신증설 문제로 이해찬 총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며 대권을 향한 의욕적인 행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경기도만의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손학규 지사가 던진 승부수는 일단 대권후보로의 가능성을 제고시켰다. 한나라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해찬 총리와의 전투에서 사실상 정치적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이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개발사업 수사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동안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 약하지 않느냐는 약점을 크게 불식시켰다.

유시민과 박근혜 카드,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 될 수 있을까?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는 여러 장점에도 대권후보로서의 대중적 이미지는 아직 약하다. 당내 기반 역시 라이벌로 평가받는 다른 후보군들보다 취약한 편이지만 올들어 주목할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단 김근태 장관의 경우 여권에서 대권후보 조기 가시화는 곧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움직임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양상이다. 또한 후원세력인 ‘김근태 친구들’과 ‘GT클럽 희망’ 등 외곽지원 세력의 통합이 거론되면서 하나로 묶이는 양상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네티즌과의 유대 강화 및 유시민 후보와의 연대설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아닌 네티즌들에게 패했다고 할 만큼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의 위력은 매우 컸다. 차기 대선에서도 이런 영향력이 증대될 것은 자명한 이치. 김근태 장관은 이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매주 홈페이지에 올리는 그의 일요편지는 네티즌과의 의사소통에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업무에는 소홀한 채 얼굴 알리기에 급급한 것이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진솔한 글들은 네티즌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급속도로 회자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씨와의 만남을 적은 글에는 네티즌들의 격려가 주렁주렁 댓글로 달려있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대목은 바로 4·2 전당대회 과정에서의 유시민 의원과의 연대다. 정동영 장관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유시민 의원과의 연대는 김근태 장관의 차기 행보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조커 유시민’이라는 카드에 대한 네티즌과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고려해 볼 때 김근태 전 장관의 약점을 자연스럽게 커버해준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특히 여당 후보로 누가 나서도 한나라당에 이길 수 있다는 분석이 여권 내에 나돌면서 김근태 장관으로서는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일차적이다. 기간당원의 영향력 확대와 이들에 대한 유시민 의원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김근태 장관은 일단 의미있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다.

손학규 지사 역시 김근태 장관과 마찬가지로 현 도지사라는 신분으로 이런저런 제약이 뒤따르지만 나름대로 실속 있는 대권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해외자본 유치 등은 ‘정책보다는 정쟁’에 익숙한 국내 언론환경에서 부각되지 못할 뿐이지 해외라면 대서특필이 가능한 치적.

또한 손학규 지사의 경우 한나라당이 행정도시법 통과의 파동 때문에 분당 직전까지 갔던 3월초 수도이전 반대를 피력한 이명박 시장과는 선을 그으며 박근혜 대표와의 연대를 구축했다.

손 지사와 박 대표와의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이명박 시장 견제용이라기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경우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만일 개헌논의 과정에서 정치권과 국민들이 대통령 4년 중임과 정부통령 도입을 선택할 경우 대권후보간 합종연횡은 필수적이다.

박근혜 대표는 최근 재보선 압승을 바탕으로 대세론을 키워가고 있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내에는 내사람이라고 부를만한 뚜렷한 세력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서 자신을 겨냥해 쏟아질 과거사 공격을 감안하면 손학규 지사와의 연대는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취약한 당내 기반으로 고생하는 손학규 지사와 당 안팎의 반박세력에 시달리는 박근혜 대표. 두 사람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이는 열린우리당의 김근태·유시민 제휴 만큼이나 매력적인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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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부사장, 콘돔만 걸치고 덮쳤는데 하필 여경

음... 인생 조지는 방법도 가지가지

 

 

JP모건 부사장, 콘돔만 걸치고 덮쳤는데 하필 여경
2005-05-29 09:49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미국 월가의 유명 금융업체 간부가 대낮에 ‘콘돔만을 걸친 채’ 숲속에 숨어있다 조깅중이던 여성을 덮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언론매체들이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JP 모건 체이스의 부사장인 존 켈리(39)씨는 뉴저지주 유니언 비치의 산책로에서 나체로 숨어있다 조깅중이던 여성에게 다가섰다.

웬만한 여성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혼비백산했겠지만 켈리씨의 상대는 경찰관이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자경찰관은 지니고 있던 후추가스 분사기(페퍼 스프레이)를 뿌려 켈리씨의 접근을 저지한 뒤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 사이 켈리씨는 팬티를 차려입고 150m 가량을 달려 주차돼 있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그는 지니고 있던 티셔츠로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는 '침착함'을 보였으나 뒤쫓아 간 여자경찰관은 티셔츠를 걷어내고 자동차 번호를 식별해내는 데 성공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차량은 켈리씨가 전날 뉴저지주 뉴어크 공항에서 렌트한 포드 토러스 승용차임이 밝혀졌다. 사흘 뒤 켈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동시에 전국에 수배됐고 열흘이 넘게 도피해 있던 그는 결국 유니언 비치 경찰에 자진 출두해 체포됐다.

유니언 비치를 관할하는 만모스 카운티 검찰은 켈리씨가 법정 처벌이 징역 5-10년에 이르는 중형인 성폭행 미수와 18개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공연음란 혐의가 적용됐다고 밝혔다. 카운티 감옥에 수감된 그에게는 보석금 10만2500달러가 책정됐다.

수사당국은 그가 지난 27개월동안 18개 도시에서 100여차례나 차량을 렌트한 사실을 밝혀내고 여죄가 있는지도 조사중이다. 켈리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그가 “자신을 노출시키려 했을 뿐”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만모스 카운티 검찰의 존 케이 검사는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용의자가 어린아이나 대처능력이 없는 다른 사람보다 강인하고 훈련이 된 비번의 여자 경찰관을 범행대상으로 고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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