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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2

연재기사 | 전운혁의 <아니메 월드> + 종합

 

 

 

연재기사 | 전운혁의 <아니메 월드> + 종합
국내 개봉 1호작 <아키라>
일주일 뒤 강제 철거 사태 맞아
저패니메이션의 문화적 저력과 우리 왜곡된 역사 ①
텍스트만보기   전운혁(ourworld) 기자   
▲ 무사쥬베이
2001년 상반기까지 국내에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사 쥬베이>와 <인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켓몬스터―뮤츠의 역습> 등 모두 네 편이다.

이 가운데 흥행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은 <포켓몬스터>로, TV시리즈에서 비롯된 "아동물"이라는 세간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서울관객만 28만여 명을 동원했고,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난 12월 개봉돼 서울관객 11만여 명(전국 14만여 명)을 기록한 채 막을 내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무려 일반에 처음 공개된 지 17년이 지난 '노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계의 추정에 의하면 2001년 6월 현재 불법 복제본을 포함하여 약 80만 개의 비디오/CD/LD가 한국시장에서 팔려 나갔거나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다시 말해 이미 국내 정식 개봉 전에 "볼 사람은 거의 다 본" 영화라는 점에서 서울 11만여 명의 수치도 상당한 선전으로 받아들여졌던 상황이다.

ⓒ 인랑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하고 싶다'는 매니아적 수요를 제외하면, 신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거의 없었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형성시킨 시장은 스크린과 비디오를 제외하고도 또 하나 있다. 바로 만화책 시장.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일본의 저명한 만화잡지 <월간 아니메쥬>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그 만화 내용 중의 일부를 시나리오화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케이스였다.

그 원본 만화책을 국내에서 '학산문화사'가 7권짜리 무삭제 번역본으로 묶어 발간했고, 신기하게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책은 "만화 = 대여용 or 업소용"이라는 저간의 공식을 깬 채 오히려 국내에서 판매용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무려 석달 동안이나 각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문화관련 서적 베스트 10에 이 7권짜리 장편만화는 당당히 자리를 차지했었고, 지금도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이제 올 여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이웃의 토토로>가 국내 극장에 공개될 채비를 마친 상태다.

<이웃의 토토로>는 또 어떤가? 이미 그 불법 비디오본과 CD가 국내에 200만 개 이상 팔린 것으로 확실시되고, 버젓이 자막까지 달린 채 고화질의 화면을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봐온 상태다.

또한 국내 각 '애니메이션 동호회'를 통해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는 파일까지 감안하면, <이웃의 토토로>를 본 사람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아울러 이미 '토토로'의 캐릭터는 인형으로, 각종 팬시 상품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려왔었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일본의 유행을 넘어 이제 본격적으로 한반도 상륙을 개시하고 있는 일본 만화산업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앞서 언급했던 상황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의 아이러니한 역사를 먼저 되짚어봐야 할 듯하다.

ⓒ 이웃의 토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극장 개봉작 1호는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의 <무사 쥬베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얘기이다.

이제부터 언급하는 사실들은 우리나라에서 해방 후부터 최근까지 버젓하게(?) 이어진 '일본 애니메이션의 왜곡된 역사' 가운데 주요한 단면이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극장 개봉작 1호? 그것은 바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역작 [아키라 Akira]이다. 1988년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국내에선 곧 이어 서울의 한복판 대한극장에 내걸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 아키라
비로소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게 된 것은 일본문화 3차 개방이 발표된 작년 여름에서야 가능해진 일이었고, 게다가 지금 현재까지도 일본 영화는 '부분적으로만' 개방되어 저패니메이션의 경우 공식적인 세계 주요 영화제의 수상작이라야 들여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1988년에, 그것도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 아니며, 게다가 시뻘건 폭력이 난무한 사이버펑크물 <아키라>가 국내의 대표적인 극장 '대한극장'에서 상영되다니?

수입사측은 <아키라>의 폭력적인 장면을 적당히 걷어내고, 또한 왜색이 느껴지는 부분을 교묘히 지운 후, 거기에다가 성우 더빙까지 입히는 치밀성을 더해 일본 작품이 아닌 헐리우드작으로 둔갑시켜 이 영화를 극장에 내건 것이다.

물론 곧 이런 사실이 들통나 <아키라>는 일주일 만에 극장에서 강제 철거되는 '사태'를 겪고 말았는데, 이런 해프닝 속에 바로 우리의 아이러니한 저패니메이션 상륙 역사가 녹아나고 있다.

더 많은 무수한 예가 있지만, 여기선 일단 <원령공주>의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일본에서만 24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되어 5개월 만에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극장관객을 동원했던 메가 히트작 <원령공주>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상태다. 단일 작품으로 1997년 당시의 국내 비디오 시장 전체규모 2500억 원을 능가하는 300억 엔(약 3천억 원)의 흥행 실적을 남겼을 정도이니….

이 <원령공주>의 판본이 우리나라 일반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7년 이 영화가 한창 일본에서 상영되던 바로 그때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1997년 <원령공주>가 대만에서 상영되고 있던 당시이다. 그때 우리나라 한 대학생이 대만에 놀러갔다가 광둥어(廣東語) 더빙판으로 상영중이던 <원령공주>를 보게 되었고, 이 극장 화면을 캠코더로 몰래 찍어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 원령공주
일본만화 캐릭터들이 중국어로 말하는 이 불량화질의 캠코더판은 곧바로 국내 ○○○대학 중국어과 학생 두 명에 의해 번역 작업이 되었고, 이 번역물이 같은 대학 영화동아리에 의해 자막으로 입혀져 주위에 돌게 되면서 <원령공주> 국내 유통 1호작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복사하거나 빌려보는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석달여 후 일본에서의 개봉이 끝나갈 즈음, 1300만 관객 동원과 엄청난 흥행 성공 소식이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나서, 중국어판이 아닌 정식 일본판이 이제 불법 복제되어 청계천 골목을 넘어 강남역 사거리 대로에서까지 버젓하게 만원씩에 팔리게 된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아직 화질 수준은 몇 번의 재생작업을 거친 탓인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두달여 후, 일본을 방문했던 우리나라의 한 여배우가 정식 출시된 <원령공주> 비디오 테잎을 구해 들어왔고, 이 정식판에 일본영화 번역 전문가의 꼼꼼한 자막 작업을 더해 드디어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원령공주>를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불법'인 것은 두말 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령공주>는 본격적으로 국내에 정식 개봉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이 <원령공주>를 둘러싼 우리의 우여곡절 역사인 셈이다.
# "일본 문화개방 시대, 저패니메이션의 문화적 저력과 우리의 왜곡된 역사"는 총 6회에 걸쳐 연재되며, 매주 2번, 화요일과 금요일에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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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중음악의 저력은 여전하다

 

 

 

연재기사 | 김기영의 <음악파일> + 종합
영국 대중음악의 저력은 여전하다
김기영의 <음악파일>
텍스트만보기   김기영(rockmuse) 기자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 음악적 뿌리 역할을 하는 영국 대중음악은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매니아라면 가장 먼저 입문해야 할 코스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특히 락에 있어 영국 음악은 가장 먼저 거론돼야 할 핵심적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다국적인 음악 성향과는 달리 보다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음악 흐름을 고수해온 영국의 음악은 미국에서 발생한 블루스를 재빨리 수용하면서 그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으로 불리는 비틀즈, 롤링스톤즈, 후(The Who)의 등장은 전세계 록의 가장 큰 트렌드인 모던락의 뿌리가 되었으며 오늘날 영국 락밴드의 전형적인 음악 스타일인 브릿팝(Britpop)이 탄생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퀸, 딥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사바스는 하드록, 헤비메틀의 원형을 제시하였으며 핑크 플로이드, 예스, 에머스 레이크 앤 팔머는 변화무쌍한 악곡구성, 테크니컬한 연주기법, 심오한 분위기의 앨범쟈켓 등을 선보이며 프로그레시브 락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또한 70년대 후반에 등장, 온갖 기행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괴짜밴드 섹스 피스톨즈, 클래시는 영국의 부정적인 사회상을 성토하며 락의 원초적 본질인 저항성에 기반한 펑크(Punk)락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었다. 이들이 추구한 펑크 사운드는 이후 80년대 뉴웨이브, 90년대 얼터너티브 락, 네오펑크 등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음악적 토양을 이루는 구실을 한다.

이처럼 영국 대중음악은 전세계 음악의 흐름을 리드해나가면서 세계음악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비록 최근 락음악 시장의 계속되는 침체, 미국 흑인음악의 득세 등으로 인해 다소 위축된 감이 있지만 가장 큰 음악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꾸준히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을 봐서 영국 음악의 저력은 여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리티시 모던락에 대해 다루면서 사실 모던락의 정확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지금도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모던락이란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현대적 감각의 락을 통칭하는 말로 해석되고 있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현대 대중음악을 포괄해서 지칭하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 90년대 이후 등장한 브릿팝을 중심으로 하면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영국 인디락, 일렉트로니카 및 그 세부 장르, 그리고 브리티시 모던락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 영·미권 주요 아티스트 및 영국적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는 국내 모던락 밴드의 음악에 대해 다뤄나갈 계획이다.

우선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브릿팝의 대표적 밴드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블러(Blur)의 음악에서부터 출발해 영국 음악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조망해 나가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조언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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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방송, 록에 죽고 록에 산다

 

 

 

문화 + 종합
우리가 만드는 방송, 록에 죽고 록에 산다
[자유정신 부활 시대, 음악의 힘 ④] 아마추어 록·메탈 전문 방송 'WeRock24'
텍스트만보기   박봄이(myeris) 기자   
살다보면 한번쯤 겪게 되는 상황.

비 내리는 날, 모처럼 창가에 폼 잡고 앉아 커피 한잔을 하고 있다. 분위기도 적당히 잡히고 나름대로 추억의 회상도 그럴 듯하게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적막하다. 분위기 잡아주는 음악 한 곡 정도 나와 준다면 하는 아쉬움.

또 하나 생각해보자. 직장상사에게 잘하고도 욕먹는 억울한 하루. 술 한 잔으로 풀어도 좋겠지만 더 화끈하게 달리고 싶어 차를 몰고 질주를 한다. 분위기를 맞춰줄 메탈 한 곡 정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째 가지고 있는 거라곤 카페 메들리뿐이다.

▲ WeRock24의 방송 모습.
ⓒ 박봄이
얼마 전, 꿀꿀한 기분을 가눌 수가 없어 이 기분을 풀어줄 달리는 록 음악 한 곡이 너무나 절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딱히 어떤 음악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막연한 기분만으로 음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음악 사이트들을 둘러보았지만 기분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이 미친 것이 '윈앰프 방송'이라 불리는 아마추어 게릴라 음악 방송방.

내가 찾은 곳은 록·메탈 전문 방송방인 'WeRock24'였다. 늦은 시간에 과연 방송방 안에 사람이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취자는 40여명에 이르렀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들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활기찬 분위기였다.

새로운 세상, 음악이 있는 곳, 사람이 있는 곳

WeRock24는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평균 청취자가 100여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록/메탈 전문 방송방이다. 물론 가요, 팝, 댄스 방송방의 경우 몇 백 명에 달하는 청취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공중파도 아닌 아마추어 방송이라는 점과 우리나라의 록/메탈 장르의 대중적 위치와 비중을 따져보자면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WeRock24의 시삽인 이경석(38)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을 했어요. 록, 얼마나 신나는 장르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또 청취자 분들이 추천하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아, 이런 곡도 있었구나' 하며 알아가는 것.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죠. 또 성별도, 지역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록이라는 음악 하나만으로 이렇게 모여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WeRock24의 최고 강점이랍니다."

▲ 음악과 함께 즐기면서 사는 인생.
ⓒ 박봄이
또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음악 방을 찾는데에는 물론 음악이 주요 이유이지만 단순히 음악만을 틀어주는 방송이 아닌 전문 라디오 방송과 마찬가지로 CJ(Cyber Jockey)들이 24시간 체계적인 멘트 방송을 하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록에 죽고 록에 산다

WeRock24에는 10명의 정규방송 CJ와 4명의 도움방송 CJ, 그리고 4명의 카페 스태프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 각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가능한 시간대를 정하여 방송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어떠한 보수도 없이 오로지 음악을 듣고 들려주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돈 바라고 하면 못하죠. 오히려 CJ들의 돈을 모아서 서버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다들 흔쾌히 따라주고 혹시나 방송에 지장이 생기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모두 발 벗고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어요. 모두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록이 좋아서 모인 건전하고 평범한 성인들입니다."

실제로 이경석씨의 경우 다원당이라는 전통공예방의 어엿한 사장님으로써 일터에서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있으며 그 덕에 손님이 없는 날이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집사람도 몰라요. 알게 되면 아마 많이 혼날 겁니다. 저희 집은 찬양의 곡들이 흐르는 집인데 남편이 밖에 나와서 록이라는 장르, 더군다나 방송까지 하고 있는걸 알면…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합니까. 록에 살고 록에 죽는 사람들이 우리인걸요."

▲ 록을 사랑하는 이들끼리의 조촐한 친목도모 자리.
ⓒ 박봄이
사람이 듣는 음악,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WeRock24는 기본적으로 웹 플레이어로 청취가 가능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은 채팅방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이 채팅방이라는 곳이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이다보니 기본적인 사이버 매너가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들이 가끔 들어와서 50대 청취자에게 시비를 걸거나 혹은 나이가 많다고 어린 학생들을 무시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 때문에 분쟁이 생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몇몇 분들 때문에 방에 모인 많은 분들까지도 감정이 상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겐 말 한마디부터 예의를 알려주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껜 권위의식을 버려 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있답니다.

우리가 여기 왜 모였습니까. 록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되겠죠. 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가 친구처럼 가족처럼 오순도순 모이기는 힘들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송을 하는 CJ들이 가장 사양하고 싶어 하는 유형의 청취자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서 이경석씨와 WeRock24의 부시삽이자 시스템 담당을 맡고 있는 강덕규(36)씨와 정방 CJ 윤상연(28)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록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지, 일반적인 채팅방처럼 남녀 간의 만남을 목적으로 모인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꼭 들어오셔서 음악은 관심 밖이고 '작업'만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 때문에 불쾌해서 나가시는 분도 봤고요. 물론 오랜 시간 사이버 상에서 교류하며 정이 드는 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 하지만 목적자체가 순수하지 않으신 분들은 정말 사양합니다."

"이 곳에는 단순히 록을 즐기시는 분들도 있지만 활동을 하시는 뮤지션 분들도 많이 오세요. 또 록/메탈 장르를 하시는 분들 고집은 대단하잖아요. 그러니 자연히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분쟁이 일어나죠.

그런데 꼭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셔서 싸움이 일으키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다른 이들은 싫어할 수도 있는 거고, 또 반대일 수도 있잖아요. 부디 WeRock24에서 만큼은 서로간의 음악적 취향과 생각에 대해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으면 해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록/메탈 방송이라고 해서 꼭 그 장르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CJ의 재량껏 분위기를 봐서 다른 장르의 신청곡도 받고 선곡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꼭 다른 장르의 음악을 비하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또 국내음악을 틀면 촌스럽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제발 그러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정말 감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CJ의 선곡에 대해서 묵묵히 감상해주시는 분들과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언제나 WeRock24의 열혈 청취자를 자처하시는 분들.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곡들을 꼭 함께 듣고자 하시는 많은 분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언제나 방송이 즐겁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한다.

록으로 뭉쳐보자, 그것이 살 길이다

WeRock24는 오프라인 모임 또한 활발한데 2005년에는 부산 록 페스티발에 CJ를 비롯한 청취자들이 버스 한 대에 모여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이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공연들에 '벙개' 형식으로 만나 참여하는 등 회원 간의 친목도 끈끈하다는 것.

▲ 부산 록 페스티벌 현장!!!
ⓒ 박봄이
"하지만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록 음악방의 통합이에요. 다들 고집 있는 친구들이다 보니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신들 취향의 음악에만 빠져 있기 쉽죠. 우리나라에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요나 팝만큼 많은 것도 아닌데 적은 인원일수록 뭉쳐야죠.

록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인 장르, 모두가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으려면 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뭉쳐야 합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록 음악방들이 모두 모여 한 곳에서 방송을 해보는 것이 꿈이에요."

음악이 그리울 때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

이경석씨는 음악에 대해서는 어릴 적에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공연을 즐기던 것일 뿐, 그 어떤 음악적인 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고. 그랬기에 지금까지 방송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 록이라는 장르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한다고 한다.

▲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록/메탈 사랑 실천.
ⓒ 박봄이
WeRock24 청취 방법

┃방송듣기┃

┃윈엠다운┃

┃CJ Studio┃



/ 박봄이
"문득 음악이 무척 듣고 싶은 날이 있죠. 그런데 어디서 들어야할 지도 모르겠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도,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던 곡의 제목조차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생활에 쫓겨 살다보니 자연히 그러한 감성들과는 멀어지는 것이죠. 그런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대기 중인 CJ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청취자분들이 그 갈증을 해소시켜 드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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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과 '잡색'에 해학과 풍자 있다

연재기사 | 최육상의 <문화콘텐츠를 찾아서> + 종합

 

'굿'과 '잡색'에 해학과 풍자 있다
[문화콘텐츠를 찾아서 15] 동덕여대 '전통놀이와 춤'
텍스트만보기   최육상(run63) 기자   
▲ 영광농악에 등장하는 비리쇠 '나잘라'. 자신의 코가 크기 때문에 남근도 커서 장가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자기도취적이고 건방진 성격이 특징이다.
ⓒ 동덕여대
"굿놀이와 잡색놀이에는 삶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노는 행위인, 연희(演戱)를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사업으로 '전통놀이와 춤' 콘텐츠 개발을 책임졌던 동덕여대 미술학부 황우철 교수의 말이다. 황 교수는 "전통놀이와 춤의 생명력은 연희현장에 있다"며 "우리의 전통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애환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놀이와 춤의 생명력은 연희현장에 있다"

굿놀이와 잡색놀이란?

굿놀이는 무당이 가장인물(일부는 가장인형)로 분장하여 재담(노래 포함), 행위 등을 통한 연극적 전개를 보여주는 놀이이다.

잡색놀이는 농악에서 잡색들이 벌이는 춤, 동작, 노래, 재담 등 연희적 행동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잡색이란 가면을 쓰거나 혹은 인형을 통해서 하나의 등장인물 성격을 지니고 농악에 참여하는 연희자를 의미한다.
'전통놀이와 춤'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개발했다. 놀이와 춤의 자료 정리와 학술적인 고증은 학자들이, 산업화 디자인과 캐릭터 개발은 동덕여대가, 콘텐츠 서비스는 웹개발 회사가 담당했다.

콘텐츠는 굿놀이 33종, 농악 잡색놀이 18종, 전통춤 2종 등으로 구성됐다. 황 교수는 특히, "그동안 학계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이너' 성격의 전통놀이만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데 콘텐츠 개발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봉산탈춤처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놀이는 학술적으로도 잘 정리됐을 뿐만 아니라 연구학자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놀이는 자료정리조차 안 되어 있습니다. 영감놀이, 영광놀이 등 연희 현장을 찾아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을 누볐습니다. 그렇게 전통놀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콘텐츠 개발은 진흥원 지원사업 일정에 따라 8개월여가 소요됐다. 황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놨다. 8개월이라는 제한된 기간 때문에 직접 연희 현장을 찾지 못하고 정리한 자료가 몇몇 있었다는 것.

"연희 현장에서 드러나는 놀이와 춤을 제대로 고증하고 복원하려면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자료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마이너 성격의 놀이다 보니 연희 내용과 복식 등이 매년 달라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연희를 몇 번 정도는 지켜봐야 콘텐츠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동덕여대가 다룬 놀이와 춤은 그때그때 연희 상황에 맞춰 이야기가 바뀌기도 하고, 탈과 의복 등 가장 형상도 변한다. 황 교수는 개발결과물의 80% 정도에 이러한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이 부분은 진흥원의 콘텐츠 심사과정에서 '왜 서울과 부산의 놀이에서 드러나는 복식이 각기 다르냐?'는 등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전통놀이와 춤은 연희 자체의 변화가 중요한 특징"이라고 전제하며 "같은 연희라도 인간의 고민거리를 없애거나, 집안의 다툼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건이 첨가되거나 하며 주제도 매년 변하는데 하물며 복식이 안 바뀌겠느냐?"고 항변했다.

▲ 세경놀이에 등장하는 여인 '풍풍'(왼쪽)과 남해안 별신굿 판놀음에 등장하는 기생 '기쌩쌩'
ⓒ 동덕여대
"전통놀이 모형 인물 놀이공원 만들자"

콘텐츠 구성요소 중 가장(假裝-분장, 인형 형상 등) 인물을 개발했던 변용석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는 이 대목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문화원형사업은 궁극적으로 문화콘텐츠를 사업화하기 위한 것인데, 막상 개발을 하다 보니 사업화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는 것.

"놀이와 춤에 대한 자료는 정본이 아니라 판본만 있다고 보면 됩니다. 모형 인물이 오른쪽 발목에 리본을 맨 경우가 있는데 물어보면 그냥 맸다고 하는 식이거든요. 두루마기를 입어야 하는데 격식을 파괴하기도 하고, 평상시 옷을 입은 인물에게 '네가 기생이냐?' 그러면 기생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식이나 색상 등에 대한 규정을 너무 앞세웠어요."

변 아티스트는 이어 "정해진 틀이 없는데도 그 틀을 만들라고 해서 힘들었지만, 연희 현장에서 이야기로 드러나는 인물의 역할과 성격 등을 고려해 인물 작업을 진행했다"며 "전통놀이의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해 가장인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여러 놀이공원을 보면 국적 불명의 모형 인물이 넘쳐납니다. 아이들 생활공간에 전통놀이 인물을 보급한다면 우리 전통을 알리면서 수익도 함께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모 건설업체와 아파트를 중심으로 모형 인물 놀이공원을 만들기 위해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전통놀이와 춤'은 전국에 흩어져 연희 되고 있는 굿놀이와 농악 잡색놀이를 정보로 저장했다는 점에서 자료가치가 높다. 이들에 대한 원천자료는 웹사이트를 통해 문자, 사진, 동영상 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는 여러 놀이와 춤을 정리했음에도 마이너 성격의 놀이와 춤에 대한 원천자료를 모두 모으지 못한 한계도 드러낸다. 이는 그 전승이 끊겨 연희자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경우나, 연희자들이 구술한 것에 의존한 원천자료만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업화를 위해 개발한 모형 인물은 2D 79종, 3D 5종, 상품화 10종 등으로 구성됐다. 모형 인물은 놀이와 춤의 현장 가변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원형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수정과 보완을 반복하며 개발했다. 하지만, 영광농악 등 소수 놀이를 제외하고는 전수되어 온 복식이나 디자인 기본이 확실하지 않고 최근에 창작된 것인 경우 고증에 어려움이 많았다.

▲ 영광농악에 등장하는 홍적삼 '주책꽝'. 어려서부터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온 몸에 주독이 퍼진 인물로 여기저기 간섭하며 주책을 부리지만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우리 대신 하는 대변인 역할도 한다.
ⓒ 동덕여대
정부의 문화원형사업 추가지원 아쉽다

황 교수는 "진정한 사업화는 이제부터인데 정부(진흥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쉽다"며 "문화원형 콘텐츠를 사업화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문화원형사업은 원천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하는 데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화를 위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미 개발된 문화콘텐츠 중에서 사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것들에 대해 추가로 지원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차 문화원형지원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성공 뒤에는 광대와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했던 문화원형콘텐츠가 있었다. 이는 영화제작비를 절감하는 효과와 더불어 우리 문화원형의 정확한 복원이라는 성과를 함께 이뤘다. '전통놀이와 춤'에 담긴 문화원형 역시 잘 다듬고 가꾼다면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동덕여대 '전통놀이와 춤' 콘텐츠 자료 열람
http://www.culturecontent.com -> 문화원형관 -> 전통놀이와 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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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노당 만화

수레떡...

 

 

2005. 8. 26. 금요일
남로당 명랑만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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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빠'가 된 '노빠'들을 우려하는 이유

 

 

'황빠'가 된 '노빠'들을 우려하는 이유
[반론] 서영석씨의 '똥물보다 못한 진중권'에 대해
텍스트만보기   오마이뉴스(news)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황우석 서울대 교수를 지지하는 특정 웹사이트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진씨가 지난 6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서프라이즈>의 노골적인 황 교수 지지 행태를 비판하자 언론인 서영석(<서프라이즈> 개설자)씨가 같은 날 '똥물만도 못한 진중권!!'이라고 반박하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진씨는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서씨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편집자 주>
▲ 지난 1월 12일 오전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 조사위원회 최종 조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회견을 마치고 나서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황 교수를 향해 "힘내세요"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황우석 박사 연구재개 지원을 위한 촛불행사'가 지난 4일 저녁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황우석 연구재개지원 국민연합' 회원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황홀경(黃惚境)

황 교수는 국민을 '엑스타시'에 빠뜨렸다. 그 황홀경 속에서 한국의 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고, 해마다 33조의 거액이 거저 한국에 들어왔고, 휠체어에 앉은 환자들이 벌떡 일어나 걸었다. 이 비전은 환각으로 드러났고, 한 때의 열광은 차가운 환멸로 바뀌는 중이다. 하지만 휴거가 없다고 어디 종말론이 사라지던가? 줄기세포가 없어도 황 교수에 대한 신앙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게다.

데자뷔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패전이 임박하자 총통의 전능을 믿는 자들은 "총통은 잘못 없고 아랫것들 잘못"이라고 했다. '황빠'들 역시 똑같은 논리를 편다. 노성일이 나쁘다고 어디 황우석이 결백해지겠는가? 사실은 분명하다. 논문은 조작됐고, 줄기세포는 없다. 남은 것은 이 총체적 사기극을 일으킨 너절한 공모의 구체적인 실상뿐. 사태의 책임은 그 논문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린 그 사람에게 돌아간다.

패전이 임박해도 총통의 찬양자들은 끝까지 총통이 비밀병기로 전세를 역전시킬 것이라 믿었다. 황빠들 역시 검찰수사에서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킬 '마지막 한 방'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은 조작됐고, 줄기세포는 없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미 대마가 잡힌 상황에서 귀퉁이 싸움에 헛된 희망을 걸어서 뭐하겠는가. 그런다고 없는 줄기세포가 다시 나타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래, 그들의 주장대로 황우석은 까맣게 모르고 모든 조작을 밑의 사람들이 했다고 하자. 그럼 더 큰 문제가 남는다.

즉, 도대체 뭘 근거로 황우석은 "6개월만 주면 재연해 보이겠다"고 했단 말인가. 그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줄기세포 배양과정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고도 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그가 무슨 재주로 6개월 안에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어낸단 말인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노빠에서 황빠로

▲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아이러브 황우석'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6일 오전 황 교수의 조속한 연구복귀를 희망하며 서울대 수의대 입구부터 연구실까지 진달래꽃으로 꽃길을 만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이러브황우석' 같은 팬카페에서 그러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어차피 사람들마다 성향이 달라, 인구의 일정 비율은 잿빛 현실에서 황금빛 가상으로 도피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하긴 황홀한 엑스타시에 빠져 있다가 줄기세포가 없는 황량한 현실로 돌아오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런데 <서프라이즈>와 같은 친노 사이트까지 이런 사람들의 대열에 가세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흔히 '개혁적'이라 불리는 매체들은 황 교수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보수언론들과 달리 황 교수에 대해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문제를 제기한 MBC가 그랬고, 그냥 덮일 뻔한 의혹을 다시 끄집어낸 <프레시안>이 그랬고, 그보다는 좀 더 유보적이었지만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도 그랬다. 그런데 정작 '친노'를 표방하는 <서프라이즈>에서만은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서프라이즈>가 '나홀로 황빠'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황우석이 노무현 정권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정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정권에 대한 과잉충성에서 이들은 황우석에 대한 비판을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사태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하자 '관성'에 따라 움직이다가 결국 스스로 옴짝달싹 못하는 '체크메이트'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분열증이 대중의 혁명?

더 황당한 것은 쌍생아인 <서프라이즈>와 <데일리서프라이즈> 사이에도 논조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서프라이즈>가 온갖 음모론을 비롯하여 '황빠'의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재생산해 낸다면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사안에 비교적 비판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두 매체 모두에 관여하고 있는 서영석씨가 걱정스러워졌다.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분열증'이 아닌가.

<서프라이즈>와 다른 개혁적 매체들의 괴리, 특히 <서프라이즈>와 <데일리 서프라이즈> 사이의 분열은 매우 징후적이다. 이 분열을 <서프라이즈>에서는 "지식인 권력에 대한 대중의 위대한 승리"라 자화자찬한다. <서프라이즈>에서 이른바 '먹물'에 대한 공격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 또한 새로운 게 아니어서, 이미 1930년대에 나치 철학자 알프레드 보이믈러는 이렇게 말했다.

"1789년 이래로 혁명은 본질적으로 지식인의 작품이었다. 지식인은 국가의 단합에 반대하는 썩어빠진 목적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반면 영웅적인 전민족적인 나치 혁명은 그것의 결정적인 국면마다 지식인의 지배력에 대항하여 이루어졌다."

황우석의 말이 수없이 '거짓'으로 드러나도 황빠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한다. 이 역시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30년대 '히빠'의 말이다.

"모든 확실함이 솟아나오는 곳. 그 곳은 믿음입니다. 총통께서 지식인에 반대하신다면, 그것은 옳을 것입니다. 나는 그 분을 믿으니까요."

지도자에 대한 믿음은 이렇게 늘 반(反) 지식인 캠페인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스탈린 시절에도 그랬고, 중국의 문화혁명 때도 그랬다.

말씀이 없다?

▲ 지난 1월 11일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장애인 참가자가 황 교수에게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재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요구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믿지, 일단 있다고 믿어놓고 없다는 증거를 대란다. <서프라이즈>의 이런 유사 종교적 성향을 지적했더니 서영석씨가 발끈한다. "황 교수에 대한 황빠들의 태도도 '교주-신도'의 관계로 보기는 힘들다. 이 관계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말씀과 약속이 없는 광신도란 없다." 이 말을 듣고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말씀"이 왜 없는가? 황 교수가 그동안 쏟아놓은 말씀만 해도 수만의 황빠를 먹이고도 다섯 광주리가 남을 게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을 먹이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줄기세포 두 개로 모든 병을 고쳐 5천만을 먹여 살리겠다는 '만병이포(萬病二胞)'의 기적이 황 교수의 말씀, 기쁜 소리 복음이 아니던가. 그들이 이제까지 믿어왔던 것은 황우석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약속"이 왜 없는가? 33조의 부가가치를 벌어다주겠다는 약속, 휠체어 탄 환자들을 일어서 걷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무엇인가. 논문조작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계속된 황 교수의 약속은 무엇이란 말인가. "6개월만 주면 재연해 보이겠다." 이는 황빠들이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약속'이 아니란 말인가?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없는 것은 "말씀"이 아니다. 없는 것은 체세포복제줄기세포다.

인터넷 강제수용소

<서프라이즈>에서 나타나는 지도자-대중의 결합은 원래 노짱을 위한 것이었다. 그 곳의 논객들은 행여 지식인들이 노짱에 대해 쓴 소리를 하면, 그 지적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외려 지식인들의 '먹물근성'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 버릇이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옹호라는 계기를 매개로 그대로 황우석에게 옮겨진 것이다.

지식인들 망명보내고 자기들끼리 노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자기들 사이에서도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데에 있다. 한 때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던 여러 사람들이 사소한 견해 차이로 배신자로 몰려서 쫓겨나곤 했다. 스탈린 시대의 숙청문화가 이미 보여주듯이, 이런 소통구조에서는 결국 텅 빈 머리를 뜨거운 가슴으로 채우는 광신자들만 남게 된다.

이 숙청의 문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서프라이즈>에서 운영하는 도편추방제. 마음에 안 드는 글이 올라오면 마이너스 점수를 주고, 그렇게 해서 마이너스 점수가 일정 정도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해우소'라는 곳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몇몇 광신자들이 작당을 하면, 어느 글이든 해우소에 처박히게 된다. 그들의 '해우소는 인터넷 공간에 존재하는 견해의 강제수용소인 셈이다.

어떤 순교자

이제는 진보개혁 성향의 매체들 뿐 아니라 황 교수를 찬양하던 보수언론들마저도 분위기 파악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아직도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좁은 동아리 안에서 자기들만 알아듣는 글을 주고받으며 서로 믿음을 강화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진리는 오직 <서프라이즈> 안에만 존재하고, <서프라이즈> 밖은 온통 적그리스도들의 세계라는 투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믿음이 객관적 사실이라 강변한다. 그들의 눈에 피해자는 수백억의 연구비를 낸 납세자도 아니고, 2천개의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도 아니고, 국제망신을 당한 조국 대한민국도 아니다. 수백억의 예산을 낭비하고 수천 개의 난자를 헛되이 써서 고작 국제적 망신이나 안겨준 사이비 과학자가 빌라도에게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런 광적인 분위기에서 순교자까지 나왔다. 대구에 이어 서울에서도 황우석을 위해 분신을 한 사람이 등장했다. 믿음과 사실을 혼동하는 착란에서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불행한 사태에 서영석씨와 <서프라이즈>의 철없는 논객들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특히 목숨을 잃은 그 사람이 분신을 하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서프라이즈>에 글을 올렸다. 이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재개를 요구하며 지난 4일 새벽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정해준(59)씨가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자살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뽕과 황뽕

인터넷이 자정능력을 가지려면 끝없이 밖에서 다른 물길이 들어와야 한다. 지식인들의 비판은 '먹물근성'의 발로라 배척하고, 대중들이 제기하는 이견은 모두 '해우소'로 보내버리니, 남은 일은 썩어 들어가는 것뿐. 요즘 <서프라이즈>가 종종 <썩프라이즈>라 불리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게다. 거대한 정신병동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그나마 제 정신 박힌 글을 보려면 외려 해우소로 가야 한다.

문제는 황우석에 대한 이들의 비이성적 태도가 노무현에 대한 그들의 태도까지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005년 논문이 조작됐다면 자연히 2004년 논문도 의혹의 도마 위에 오르는 법. '황뽕'의 병리현상이 분명하다면, 그동안 이들이 했던 노무현지지 역시 과연 건강했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무튼 <서프>로 인해 합리적 노무현 지지자들까지 졸지에 '노뽕' 맞은 사람들로 여겨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남을 걱정해줄 처지는 아니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개혁진영'의 인터넷 기지가 '황뽕' 먹고 해롱거리는 것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최근의 보수화 바람으로 인터넷 분위기도 더 이상 열린우리당에게 호의적인 편은 아닌데, 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서프라이즈> 이래도 되는지 한번 진지하게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금단의 고통

현실에서 도피해 약을 먹고 환상에 취하는 사람들에게 약을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금단'의 고통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나타나는 환각의 세계가 곧 현실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약은 빨리 끊고, '금단'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게 이성적인 선택일 게다. 이제라도 <서프라이즈> 논객들이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쪽팔림'의 고통을 선택하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주의의 주창자들이 그 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과거에 그것을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독일 철학자의 말을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새겨듣기 바란다. 누구나 한번은 멍청한 짓 할 수 있다. 한두 번 그런다고 그 사람을 "멍청하다"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한 짓이 멍청한 짓으로 드러났는데도, 그걸 잘한 짓이라 우기며 그 짓을 계속한다면 그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왕 깨는 김에 <서프>의 자칭 논객들이 '과대망상'에서도 깨어났으면 좋겠다. 똑같은 사람들 모인 동네에서 환호받는다고 대단한 '논객'이라도 되는 양 서로 자화자찬하는 모습도 옆에서 봐주기 많이 안쓰럽다. 서툰 말발로 어설프게 설치다가 개망신당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드리워진 드높은 벽의 존재를 깨닫고, 앞으로 차근하게 실력을 쌓아 프로만큼 무서운 아마추어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똥물보다 못한..."

내가 <서프라이즈>에 내 칼럼의 게재를 허락했던 것은, 물론 서영석씨가 신촌에서 자장면을 사주면서 친히 부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지지가 다소 맹목적이기는 하나 그 안에 건강한 측면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황우석 사건에서 나타난 이들의 비이성적 광기를 보면서, 거기에 걸린 내 칼럼의 방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후 서영석씨가 내 욕을 하고 나섰다. 수많은 황까들 중에서 그가 특별히 내 이름을 거명하며 인신공격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번의 불행한 자살사건의 배경에 <서프라이즈>의 황홀한 분위기가 있다고 한 나의 지적 때문이리라.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발끈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남몰래 양심의 가책 비슷한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똥물" 운운하는 서영석씨의 유치한 분변문학(糞便文學)에 대해서도 한 마디. 똥침 좋아하는 딴지 총수도 아니고, 똥꼬 좋아하는 항문기 아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이 라블레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도 아니고, 명색이 언론사 편집장이라면 욕을 하더라도 좀 풍류가 있게 했으면 좋겠다. "똥물보다도 못한 진중권"이라니, 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믿는 걸까?

▲ 지난 6일 서영석씨가 <서프라이즈>에 올린 칼럼 '똥물만도 못한 진중권!!'.
ⓒ 서프라이즈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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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국무회의에서 친일파 선처 지시&quot;

노덕술 vs 김창룡

 

일제로부터 전수받은 고문 기술을 3공 5공에서 심화

 

 

이승만, 국무회의에서 친일파 선처 지시"
행자부, 국가기록물 재분류 작업
텍스트만보기   연합뉴스(yonhap)   
(서울=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삼청교육대 사건의 계획수립부터 사후관리까지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국가기록물이 국방부와 국가기록원에 비밀이 해제되지 않은 상태로 대거 보존돼 있는 사실이 21일 드러났다.

이에 따라 관련 기록에 대한 재분류 작업을 거쳐 비밀이 해제되면 삼청교육대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보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6.25 전쟁 관련 기록도 체계적으로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현대사와 군사연구에도 큰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이 1949년 국무회의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와 관련, 노덕술 등 친일파에 대해 선처를 지시한 사실이 국무회의 기록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21일 작년 10월부터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 123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기록물 보존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삼청교육대, 6.25전쟁, 5.16 쿠데타, 반민특위,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기록이 상당수 보존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승만 대통령 친일파 선처 지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된 국무회의 기록에서 이 전 대통령이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를 조사한 뒤 선처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 등 반민특위 관련 기록 21건이 확인됐다.

이 전 대통령의 선처 지시는 학계에서 그동안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관련 국무회의록 자체까지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9년 1월28일 국무회의록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정부가 보증'을 해서라도 노덕술을 석방하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같은 해 2월11일 국무회의록에는 노덕술을 체포한 특위관계자를 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중요한 내용은 1949년 2월9일 이 전 대통령이 정책당국자에게 직접지시하는 '의명친전(依命親傳)'의 형식으로 반민법 제5조 해당자인 정부내 친일파를 비밀조사해서 선처하라는 통첩을 내린 사실이라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이 정부내 친일파 청산을 반대해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지만, 1949년 국무회의 기록물은 정부내 친일파 처리와 관련, 의명친전으로 통첩을 보냈다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반민법 5조와 관련, 정부의 특위와의 합동좌담회 기록으로 반민특위와의 교섭의 건, 반민특위 간부와의 회담결과 보고의 건 등이 있다.

이 기록들은 윤치영 전 내무부장관과 이범석 전 국무총리 등이 특위간부와 직접 협의를 통해 정부내 친일파 청산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5.16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일지 공개

5.16 쿠데타와 동시에 최고의 권력기구로 군림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일지가 공개됐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일지는 5.16 쿠데타 당일부터 작성돼 제3공화국 출범 직전인 1963년 12월17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을 남겼다.

주요 일지는 혁명진행상황, 의결사항, 인사, 외교, 중요발표, 재판, 주요지시, 중요업무, 국내외 뉴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면 5월16일 일지에는 '미명(未明.새벽) 군부에서 무혈혁명, 군사혁명위원회 설치와 전국에 비상계엄령, 혁명위, 각급 의회 해산과 전 국무위원 체포 명령' 등이 수록돼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일지는 개별 사안에 대해 서술형으로 풀어 쓴 기록은 아니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활동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국가기록원 5.18 광주화 민주화운동 기록 소장

국가기록원은 광주민주화 관련기록으로 1980년 사건 발생부터 광주민주화 및 성역사업이 진행되기 전까지의 과정이 수록된 기록물 499권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기록에는 5.17 전국비상 계엄포고문 제10호 시달문과 5.17 전국 비상계엄의 배경 책자 배부, 사망자 및 사상자 처리와 피해상황처리 등이 포함돼 있다.

◇대대적인 문서폐기 부실관리 원인= 국가기록원은 이번 기록물 실태조사 결과, 권위주의 정부시절, 62년과 68년, 75년 세 차례 걸쳐 '누적문서 정리 및 영구보존 문서 소산계획'에 따라 대대적인 문서폐기가 이뤄져 기록물의 부실보존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또 기록관리법 제정 이전에는 핵심 정책기록들이 대부분 10년 이하 한시 보존문서로 분류.폐기됨에 따라 주요기록의 보존이 누락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비밀기록의 경우 보호기간이 끝나면 즉시 폐기토록 함으로써 주요기록이 폐기심사도 없이 대량으로 사라졌다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은 분야별 주요정책, 사업, 사건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면실시와 함께 체계적인 기획수집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기록관리의 관련법령 정비와 전자기록물관리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jaehong@yna.co.kr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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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압축성장-양극화는 박정희가 낳은 쌍둥이”

문제는

초딩들은 김영삼 때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성수대교 무너졌다고 이를 단지 김영삼 시기에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김영삼 책임으로 생각한다. 이런 즉물주의가 없다.

특히 즉물주의 초딩의 거두 이명박 보면 기가 막힐 뿐이다.

현상과 본질이 일치하지 않기에 필요한 것이 과학이다. 남덕우-김만제-이승윤... 현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우리의 본질이다.

물론 노무현 정권은 양극화 심화 책임에서 결코 면책될 수 없다.

 

 

 

청와대 “압축성장-양극화는 박정희가 낳은 쌍둥이”
‘불균형전략’ 주장 서강학파에 문제제기…군사정권 한나라 동시 겨냥
입력 :2006-02-21 17:28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한국은 압축성장을 일궈내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불균형이 너무나 고착화된 나머지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새로운 도약이 도저히 어렵게 돼버렸다. 균형이 시대정신으로 부각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균형은 양극화해소의 키워드다.”

청와대가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양극화해소를 위한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압축성장과 양극화 심화현상을 ‘불균형성장’이 낳은 이란성쌍둥이로 규정했다.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는 제목의 글은 불균형성장의 최대수혜자인 전경련이 지난 1986년 발간한 ‘한국경제정책 40년사’에 등장하는 “경제개발계획의 기조는 허쉬만(A. O. Hirshman)적인 불균형 성장모형에 입각한 공업부문 중점개발계획이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개발계획이 한편으로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

청와대는 “압축성장과 양극화 심화는 불균형전략이 낳은 이란성쌍둥이”라며 “IMF사태 이전까지는 불균형전략의 장점(압축성장)만 보였지만 그 이후에는 단점(양극화 심화)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불균형전략계획이 성공했으니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경제성장 만큼 양극화도 압축적으로 가파르게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개발독재 ‘압축성장’ “물레방아 못 돌리는 흘러간 물”

불균형성장전략에 대해 청와대는 “명칭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차별의 정책”이라며 △핵심은 관치금융에 의한 소수의 재벌육성이며 △소위 경부축 위주의 개발전략으로 지역갈등을 야기했고 △공업우선정책(이농촉진)과 노동기본권 억압 등을 지적했다. 또 사실상 “양극화심화를 내제하고 있었다”며 “불균형전략의 치명적인 한계”로 지적했다.

‘선성장 후분배’ ‘파이키우기’ 등은 소외계층이 주장하는 분배문제를 배격하는 주요 논리였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출신의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태두인 세칭 ‘서강학파’는 “성장이냐 분배냐”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외치며 성장우선론을 내세워 불균형전략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압축성장의 신화는 1997년에 IMF를 맞이하며 종말을 고했다.

청와대는 “불균형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달성한 한국경제는 IMF사태를 맞아 성수대교 무너지듯 참담하게 파괴되고 말았다”며 이를 ‘압축성장이 지속 불가능한 성장모델’로 꼽았다. 또 “그것은 서강학파의 종언을 의미한다”며 “서강학파는 시대적 역할을 마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고 지적했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남 전 총리는 군사정권 시절이던 지난 1969년부터 78년까지 경제부처의 수장을 역임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최고의 지도자’로 꼽았을 뿐 아니라 이승만과 더불어 ‘실천적 지도자’라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활발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여전히 “성장이 없으면 분배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며 성장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화정권 수립된 98년 이후 ‘경제성장 2배’

‘불균형성장전략’의 한계를 지적한 청와대는 이어 한국이 IMF사태를 단기간에 극복했을 뿐 아니라 10년 사이에 국가경제성장이 2배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수출액, 주가지수(증시규모)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IMF사태를 기준으로 대부분 2배 이상 상승했다는 것.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었던 국가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 7355달러에서 2004년 1만4162달러에 이어 지난해 16000달러(추정)로 급상승했고 △수출은 1998년 1323억 달러에서 지난해 2846달러, 올해 30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며 △IMF사태 전후로 300수준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1300∼1400까지 치솟았다.

청와대는 “압축성장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민주화 조치를 병행하면서 이 같은 경제적 성과를 이뤘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특히 언론자유가 100% 보장되어 있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독재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또 “불균형 성장모델이 경제발전의 유일한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균형”이라고 말한 청와대는 “진짜 힘은 균형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고, “균형이 동태적 개념이라면 평등은 정태적 개념”이라며 ‘균형’과 ‘기계적 평등(평균)’의 차이를 짚었다. 청와대는 또 “새로운 국가발전계획의 수립과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며 “부유층과 소외계층의 격차,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원리도 균형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양극화 책임은 군사정권과 보수세력의 몫

이날 청와대의 반응을 단순히 양극화해소와 균형성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만 해석하기엔 개연성을 암시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여러 역사적 사례와 IMF 이후 실질성장을 거론하며 “서강학파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대목은 여전히 성장위주의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을 일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강학파의 우두머리격인 남 전 총리가 박정희정권에서 국무총리와 경제기획원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10년간 경제수장을 역임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서강학파의 몰락’이 남 전 총리에 그치지 않고, 박정희정권과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듯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박 대표가 서강대 출신인 점도 눈길을 끈다.

사회양극화 심화의 원인을 집권3년에 불과한 ‘현 정권의 실정’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허쉬만과 전경련의 ‘고백’을 포함한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양극화는 참여정부의 실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군사정권, 나아가 여전히 ‘성장위주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바로 “서강학파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발전이론이 나와야 할 때다”였다. 불균형전략을 내세웠던 서강학파의 주장이 여전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서강학파는 압축성장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마쳤다”는 냉정한 답변을 전한 셈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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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quot;

 

 

 

한국영화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
[해외리포트-인터뷰] 장 자크 아야공 전 프랑스 문화장관
텍스트만보기   박영신(jocaste) 기자   
▲ 프랑스 전 문화장관 장 자크 아야공.
ⓒ 안병규
지난 달 26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스크린쿼터를 기존의 146일에서 73일로 대폭 축소할 것을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UNESCO) 총회 본회의에서 찬성 148표, 반대 2표(미국, 이스라엘)라는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된 지 불과 3개월여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물론 찬성표를 던진 국가 중 하나였다.

전후 몰려오는 미국영화로 인해 침체기를 겪은 바 있는 영화의 고향 프랑스도 한국처럼 적극적인 자국영화 보호정책을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다. 한국에 스크린쿼터제도가 있다면 프랑스는 국립영화센터(CNC) 위주로 광범위한 자국영화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프랑스에서 개봉되는 영화의 입장권에는 10.6%의 특별부가세(TSA)가 포함돼 프랑스 영화, 특히 독립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지원한다. 이로 인해 막강한 관객 동원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의 성공은 곧 프랑스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관객 비율이 높은 영화, 또는 뛰어난 시나리오 및 영화 등을 선발해 다음 영화 제작비를 지원한다. 그 결과 지난 2004년 CNC통계에 따르면 그 해 프랑스에서 개봉된 영화 총 560편 중 프랑스 영화가 239편에 달했다. 프랑스 영화는 매년 평균 200여 편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맞선 프랑스 영화의 위기는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유럽에서 자국 영화 발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와 아시아의 한국은 이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현재 프랑스의 불어권 공영 위성TV 채널 <테베5몽드(TV5 Monde)>의 사장인 장 자크 아야공 전 장관을 만났다. 지난 2002년 5월~2004년 3월까지 프랑스 문화통신장관을 지낸 바 있는 아야공은 장관 재임시절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 마련에 직접 참여했다.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관장을 역임하는 등 프랑스에서도 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한 아야공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자국의 영화를 보존하는데 가장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이제 와서 자국 영화에 대한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 안병규
"스크린쿼터제도와 같은 자국 영화 보호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생존했고 걸작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도 덕분에 한국은 자국의 영화 보존에 성공한 나라'라고 평가한 아야공은 "한국이 이제 와서 영화에 대한 모든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아야공은 문화인이기에 앞서 한-불 양국의 외교 문제에 민감한 프랑스 현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발언이 내정간섭으로 비쳐질까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러나 아야공은 일선 정치인으로서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호의적 견해를 밝히면서도 영화를 비롯한 문화 분야에 관해서는 '프랑스적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다음은 아야공 전 장관과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스크린쿼터제도를 왜 포기하려 하나?"

- 프랑스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 그리고 문화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 '문화다양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화다양성은 전 세계의 문화가 획일화된 실재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미래에 단지 미국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문화를 생산하는 각각의 민족이 그들의 문화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게 문화다양성이다. 이것은 프랑스 문학과 한국 음악, 인도 예술에도 적용된다. 각각의 문화가 그들만의 문화 속에 갇히지 않는 가운데 전 세계가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고유한 문화의 병렬이며 문화적 경험의 교류인 동시에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각 개인의 시각과 호기심을 향한 개방이다. 모두가 같은 이미지, 같은 영화만을 보게 될 때 더 이상의 호기심은 존재할 수 없다. 호기심과 지적 자극은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는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된 지 3개월여 만인 지난 달 26일 한국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줄일 것을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일반 공산품에 관한한 자유무역은 긍정적 원칙이라고 생각하나 문화자산은 일반 공산품이 아니다. 자국의 문화에 충실한 국가는 그들의 문화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한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문화대국이 그들의 문화자산을 양성하고 보급하기 위해 보호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세계의 다른 문화를 무시하면서 자국의 문화 속에만 갇혀서는 안 되는 까닭에 자국 문화 보호정책이 너무 과도하면 안 되지만 문화 영역에서 자유무역의 원칙은 문화의 평준화, 독창적이고 고유한 문화의 소멸을 의미한다는데 주의해야 한다. 전 세계 막대한 대중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미국 문화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다. 미국의 언어는 물론 전 세계 제1의 언어인 까닭에 미국 작품의 관객은 필연적으로 미국 땅 밖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한국, 프랑스의 문화를 보급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돼 있다.

자국 문화 보호정책이 그들 자신에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싶다. 자국 영화 보호정책인 스크린쿼터제도 덕분에 한국은 자국의 영화 보존에 성공한 나라이다.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

▲ 영화배우, 감독, 제작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1인 시위 및 대규모 장외집회를 통해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
ⓒ 오마이뉴스 남소연
- FTA를 보는 프랑스의 입장은?
"프랑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인 까닭에 자유무역의 원칙에 개방적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음악이나 시청각물에 관한 예외 조항을 설정했으며 이것은 특히 문화적 예외로 보호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내에서조차도 유럽의 제작물을 보호하는 규약이 있다.

자유무역의 원칙에는 동감하지만 문화는 냉장고나 자동차와 같은 성질의 공산품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이다. 영화는 언어의 상징이며 한 민족의 정신인 동시에 세상을 보는 독자적인 방식이다. 세상을 보는 이 같은 독자적 방식이 사라진다면 인류전체가 빈곤해질 것이다.

문화를 다루는 부분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이 규칙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도 공평해야 한다. 영화, 음악, 시청각 프로그램과 같은 지적 활동과 연관된 경우 '대단히 대단히' 신중해야 하며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 '문화다양성 협약'은 지금까지 상업적 시각 아래 교역의 대상으로 인식돼온 문화의 가치와 상징성을 인정하고 국제법으로 보호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직접적 근간이 된 스크린쿼터제도를 축소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문화장관 재임시절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칸 영화제를 계기로 당시 한국 문화부장관이었던 이창동 감독을 만난 적도 있다. 이 전 장관과 나는 '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해 토론을 했고 한국 문화를 위해 '문화다양성 협약'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함께 공감했다.

나는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한국 책임자들의 대리인이 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국의 영화를 보존하는데 가장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이제 와서 자국 영화에 대한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스크린쿼터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생존했고 걸작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프 영화의 국제배급 난항은 전 세계 극장이 미국영화에 지배돼온 탓"

▲ "프랑스 영화의 약점은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이다.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은 세계 많은 나라의 극장이 다른 영화에 자리를 거의 남겨주지 않는 미국영화에 의해 지배돼온 결과다."
ⓒ 안병규
- 프랑스 영화 보호 정책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프랑스 관객의 5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영화는 프랑스에서 매우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극장에서 미국영화를 몰아내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영화에도 걸작은 많다. 20세기의 수많은 위대한 걸작들은 미국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지 프랑스와 유럽 영화를 배려하는 조치 즉 프랑스와 유럽 영화들을 TV와 극장에 배급하는 적절한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를 수립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으며 더욱이 극장이나 TV에서 프랑스와 유럽 영화의 독점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해 열려있으나 프랑스 또한 영화 제작 대국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보호의 작은 틀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 프랑스의 자국영화 보호정책이 확고하다고 강조했는데, 프랑스 영화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 프랑스 영화는 건강하다. 매년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영화를 제작하며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 내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

프랑스 영화의 단 한 가지 약점은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유니프랑스'처럼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들이 집결한 기구를 통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은 세계 많은 나라의 극장이 다른 영화에 자리를 거의 남겨주지 않는 미국영화에 의해 지배돼온 결과다.

우리는 전 세계의 관객이 모든 종류의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관객의 흥미를 배양하고 가꾸는 것이 바로 문화다양성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2006-02-21 11:46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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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로 한글 배워요

가사 처음 알았다.

 

 

LPG로 한글 배워요
2006-02-20 10:28 | VIEW : 1,831

쭉쭉빵빵 미녀 그룹 LPG의 히트곡 `캉캉'이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어 학습 교재에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 유명 출판사 보도사(寶島社, 타카라지마샤)는 지난 13일 `한글 스타트- 기초 완벽편'을 발간하면서 LPG의 노래 `캉캉'을 학습 소재로 제시했다.

보도사는 만화 소설 잡지 어학교재 등 다채로운 출판물을 판매하는 일본 5대 출판사중 하나.

이번에 보도사가 발행한 한국어 교재 `한글 스타트'는 한글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에게 한글의 자음과 모음, 기초단어, 문법, 실용어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돼있다.

이 교재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뜻을 이해보게끔 한다는 취지에서 `K-POP, Let' try'(한국 가요, 도전해봅시다)라는 2페이지 분량의 코너를 따로 배치, 여기에 LPG의 `캉캉'을 가사 전체를 올려놓았다.


소개된 `캉캉'의 한국어 가사 위에는 일본인들이 따라 읽어 볼 수 있도록 단어마다 일본어 발음이 병기돼있고, 그 뜻과 일부 단어에 대한 해설도 자세히 덧붙여져 있다.

나아가 이 교재는 `한국에서 기대되는 샛별'이라는 제목의 1 페이지짜리 LPG 특집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는 파격도 보였으며, `캉캉'의 노래를 일본인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아예 LPG의 노래를 CD에 담아 별책부록으로 첨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PG측은 "어떻게 알았는지 지난해 12월 일본 유명 출판사 직원이 우리를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 해갔고, 당시 노래를 소개해도 좋겠냐는 요청이 있어 이를 허락했다"면서 "막상 교재로 나온 것을 보니 느낌이 무척 새롭다"고 말했다.

LPG의 멤버 연오는 "우리 노래를 따라부르며 한글을 익힐 일본인들을 떠올리면 뿌듯하기가 이를데 없다"면서 "한류에 힘입어 우리 문화와 우리글을 배우는 일본인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즐거운 미소를 전했다.

한편 LPG는 이달 말경 타이틀곡 `캉캉'에 이어 후속곡 `나쁜 남자'를 발표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막바지 안무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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