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9

2007/09/29 19:10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일상이다.

 

이 공부를 과연 내가 하라고 있는건지, 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해야할 양이 굉장히 많고, 그 양을 사실 1년간 한다고 해도 시간이 결코 넉넉치는 않은데

 

나같은 경우는  몇달을 규칙적으로 공부하지 못한채 날려버리고 이제서야 타이트

 

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암기 귀신들이 많은가 어안이 벙벙해지기도하다.

 

하긴, 열심히 따라가면 어느정도는 다 따라할 수 있는 양인데, 내가 요즘 몸도 맘도 튼튼하지 못해서

 

보통 수험생들의 컨디션에 못미치고 있는 것 같다.

 

속을 다스리기 위하여 죽을 며칠 먹었다.

 

돈많이드는 것 신경쓰지 않고,  정크푸드와 차가운 김밥 나부랭이들로 하수구같이 된 내 속을

 

다스리는 것을 우선하기로 했다.

 

정문있는데에 각종 깜직한 종류의 죽을 파는 집이 있더라.

 

무슨 클로렐라 죽, 매운 김치죽, 대게죽, 치즈 해물죽(?)

 

상냥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잘게갈은 명란과 조그맣게 찢은 김치를 사뿐하게 작은 종지에 담아

 

쟁반에 뜨거운 죽과 내어오는 잔잔한 분위기의 죽집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맘을 편하게 하는 것만 가까이하고,  불편한 것은 거리를 둬야 하는데.

 

 현재 나의 삶에 차단해야 할 것들이 있다.

 

본인은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 사람 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자체 로 인하여 불편한

 

사람들은 이제 관용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만 흘려보내야 겠다.

 

게중에서는 그래도 나를 좀 생각하고 위해준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준다고 해도 이미 나이든 성인들끼리 어떻게 바꿔볼 수 없는 문제들이

 

없어질수가 없다.

 

내 잘못이라고 하기도, 그쪽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진작 그랬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에 끝까지 잘 지낼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작 그러지 못한 바에야 이제라도 그렇게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내 방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이사갈때는 왠지 아쉬움에 꾸역꾸역 지고가지말고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07/09/27

2007/09/27 00:42

그것을 확대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있지만

 

나 역시 감당하기 어렵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추석이 다 추석인가

2007/09/25 04:32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러운 투쟁 “부모님 죄송해요”
입력: 2007년 09월 21일 17:52:22
 
이랜드 홈에버노조 조합원 고모씨(39·여)는 추석이 다가올수록 들뜨기는커녕 서글픈 생각뿐이다. 이미 귀향도 포기했다. 40만~50만원 정도 드는 귀향길 경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이랜드 파업에 동참한 뒤 석달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해 가게 수입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탓이다. 삼삼오오 선물을 사들고 고향에 내려가는 이웃들을 보면 고씨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21일 서울역에서 이랜드 해직 노조원들이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김문석기자>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친척들이라도 찾아뵐까 생각도 했지만 이 역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랜드 파업에 고씨가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척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한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파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친척들에겐 못내 송구스럽다.

고씨는 “매년 추석때마다 작은 선물이라도 사서 친정과 시댁을 찾아뵙곤 했는데 올핸 죄송스러울 따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1일 오후 민주노동당 대회의실에서는 홈에버노조 소속 모 지부의 총회가 열렸다. ‘추석 이후의 투쟁입장 발표’와 ‘귀향 예정 노조원 파악’이 이날의 안건이었다. 추석은 지부 소속 조합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추석 전에는 끝나겠거니’ 생각했던 노조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운 현실에 지치고 실망한 조합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남편과 “추석때까지만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던 한 노조원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남편과의 약속을 어길 수도, 동료 노조원들의 뜻을 져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참여하겠다”고는 밝혔지만 추석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게 됐다. 다행히 다른 지부원들은 추석 이후에도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어두웠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이날 총회에 참여한 30여명 중 대부분은 연휴 기간 동안 서울에 남기로 했다. 경제적 이유로 귀향을 포기한 조합원들이 상당수다. ‘승리’한 모습으로 친척들을 뵙고 싶다는 노조원도 있었다.

노조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투쟁 휴일은 추석 당일날 단 하루. 이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노조원을 빼고는 연휴기간 파업투쟁에 동참할 예정이다.

연휴를 앞둔 노조 집행부 사무실도 이날 분위기가 무거웠다.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서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동료들 때문이었다. 지난 7월 말 김경욱 위원장이 구속 수감된 이후 엊그제까지 6명의 동료들이 구속됐다.

회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후 집행부 간부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가 이젠 협상을 벌일 노조측 대표도 공석인 상태가 됐다.

노조 관계자는 “추석연휴가 길어 연휴가 끝나면 이랜드 문제가 더 관심에서 잊혀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양측의 협상전망도 밝지 않다.

노동부 안경덕 노사관계조정팀장은 “마지막 교섭을 벌인 지난 16일에도 노측은 징계 규모 축소를 요구하고 사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협상이 결렬됐다”며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아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진 만큼 이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결국 노사 양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노사간 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라며 정부 역할이 한정돼 있다고 털어놨다.

이랜드 노조는 본격적인 추석 귀향길이 시작되는 내일까지 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 등지에서 사측을 규탄하는 ‘귀향 선전전’을 펼친 뒤 추석연휴가 끝나는 대로 매장타격투쟁을 재개할 방침이다.

〈심희정·송진식기자〉

 

===========================================================================

 

이 기사를 보고서 명절이라고 집에와서 고기며 과일을 꾸역꾸역먹을 나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멈칫해져서,  부침개라도 주문해서 농성장에 가져갈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으나 나의 통장잔고를

 

생각하니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한숨쉬었다. 

 

돈이 있어야 뭘하지.... 평소에 돈을 잘 비축해놓아야 한다.  안그러면 항상 말뿐이지.

 

돈돈...... 豚豚

 

추석이라고 다 추석인가. 다음달에는 수입이 생기니, 얼마간이나마 떼어서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따끈한 커피라도 배달해야겠다.

 

하루에 내가 잠깬다는 명목으로 ㅊ 먹는 커피를 생각해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내 것

2007/09/20 23:58

장혜진의 '아름다운 날들' 을 들으면서

 

나도 이렇게 노래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유후~

 

생각해보니 어떤것도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사랑도,

 

추억도,

 

사람에 대한 신뢰도,

 

눈물조차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를 위해 남겨진   자리가 아니었다.

 

그 모든것들은 마치 소실이 남편 장례식장에 당당히 참석할 수 없듯이 (구린 비유지만;;)

 

나는 그 어떤것에 있어서조차  당당할 수 없었다.

 

 

 

다만, 이노래를 들으면서

 

이 모든 기억이 나에게 오랫동안 뇌를 파고드는 종양이 되겠지만

 

동시에 그 경험자체가 나에게 어떤식으로든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이 내게 남겨진 온전한 내것이라는.

 

아무도 비웃을수도,  뺏아갈 수도  없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축하해!

2007/09/18 09:19

니가 행복하니까 나도 좋다야

 

솔직히 공병호(!) 책 보는 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요즘 죄다 우울하고 불행한 가운데, 자기들이 행복하다면

 

내 옆구리가 든든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까....

 

많이 행복해져 많이

 

많이 행복해져서, 내게도 그 행복이 좀 번지게 해주렴...

 

난 너희들의 행복의 기운이 좋거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소중한것

2007/09/15 01:13

알고보면 사소하고

 

잡스러운 오기에 지나지 않고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원하는 바에 가까운지조차 알 수 없는

 

고집스런 습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다른 어떤 것들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존재확인을 위한

 

공격적인 논리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래서 어떤 자격이나 신념이라고 하기도 어설프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나 그것들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

 

얼마나 휘청거리고 전전긍긍하게 되는지

 

그게 얼마나 초라할지라도 자신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질갱이처럼 강한 생명력의 근원이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나는 비겁쟁이

2007/09/12 23:17

나는 비겁쟁이다

 

내가 비겁쟁이다

 

민주납부... 도 단지 리스크가 두렵고 신경쓰는 것이 짐스러워서 하지 않았다.

 

그 외에 많은 것에 있어서 난 비겁쟁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덜 비겁쟁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  땅땅.

 

욕먹을때는 욕먹고, 말해야할때는 말하고, 몸사리지 않겠다. 땅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어젯밤 꿈

2007/09/12 05:01

(더이상 이런 얘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워낙에 꿈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남기고 싶었다.)

 

오늘 낮에 몸이 안좋은 것을 핑계로 낮잠을 자다가, 두가지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 #1.

 

내가 그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시냇가 옆을 걷고 있었다.

그 꿈의 상황은, 아마 헤어짐을 예비하고 있는 상황인듯했고 그래서인지 나는 예민하고 슬퍼져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손을 잡고 정답게 걷고 있었고,  그 상황에 있어서만큼은 현실의 어떠한 너저분한  조건

과 체면이 개입되지 않은 채로 그 친구와 나 둘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있는 모습이었다.

 

그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꺼냈다.

 

' 우리 앞으로 한번도 못볼 걸 생각하니까 좀 섭섭하다. 짐 무거운거 너 혼자 들기 그렇지?

혼자 못들겠으면 나 부르고....'

 

그 얘기를 듣자 나는 대답했다.

 

' 뭐 언제는 싫다면서 뭐가 서운해? '

 

그러자 그 친구 얼굴을 정색하며 어두운빛을 띄며

 

' 내가 싫다고 말한적은.... 없어.'

 

그러자 내가 감정이 복받쳐서 흐느끼며 소리를 쳤다.

 

'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결국 싫다, 좋다 둘중에 하나만 있는거지 중간은 없어!  

단지 이유를 자신이 설명하지 않을 뿐이지, 좋아하지 않을때는 싫다고 느끼는 이유를 마음

속으로는 다 느끼고 있는거야. 싫다고 명시적으로말만 못할뿐이지, 좋아하지 않고 묵시적으로

가만히 있는것은 결국 싫어한다는 것이나 같아!

 

그러자 그 친구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너의 그런 이분법적인 태도가 관계에 문제를 만든다는 생각은 안하니?'

 

 

 그리고 그 뒤에는 내가 계속 울었던 것 같고,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계속 손을 잡고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걷는동안 옆의 시냇물이 정말 세차게 콸콸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듯이 시원하고 계곡의 물소리처럼 청명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고 그 친구도 나도 이별에 관한 대화를 나누어 우울해졌어야 할 모드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 힘차게 흘러가는 시냇물의 소리에 힘을얻은듯 그저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없이

 

앞만 바라보며 걸었던 것 같다.

 

 

 

두번째 꿈#2

 

두번째 꿈에서는 전쟁이던지, 무엇때문인지  큰 난이 벌어져서 다들 피난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가족들과 이모(?) 그리고 초등학교때 내내 짝이었던 장난꾸러기 남자애(?) 와 강에서 짐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이제 피난을 가기 위하여 강위로 흘러갈(?)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모 왈

 

 

' 지금 가면 안늦어~ 빨리 가자!'

 

(다들 웅성웅성)

 

 

그런데 나는 무엇을 놔두고 온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내 소지품인지, 그리운 사람인지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꿈속에서는 그때 내가 피난을 떠나면 매우 안전하게 피할 수 있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시는 출발할 수 없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인지 모르지만 절대 그것을 놔두고 갈수는 없을것 같았다.

 

' 나는 지금 못가겠으니 먼저가세요'

 

라고 이모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내게 남겨진, 내가 찾아야 할것이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저 멀리에 보이는

 

숲인지 성인지 모를 미지의 곳으로 강에서 물을 헤치고 나와 올라갔다.

 

----------------------------------------------------------------

 

 이 꿈 두개를 꾸고나서 마음으로 너무 그리워졌다.

 

그리워서 잠자리에서 일어나고싶지가 않았다.

 

바로 옆에 늘 함께 있는데 내가 찾아 헤메었던 것 같고

 

그래서 바로 옆집으로 가면 불러낼 수 있을것만 같았다.

 

헨드폰을 정지해둔것이 다행인게

 

어쩌면 너무 그리움에 온몸이 익어서 전화라도 두들겨서 혼자 감상에 떠들려

 

헛소리를 지껄였을지도 모르겠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황당

 

한게 없을게다)

 

 글쎄,

 

 교통사고라도 나서 온몸을 못쓰도록 크게 다쳐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도 있고

 

알고보니 너 역시 비겁한 인간이라고 경멸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나의 마음 100%를 차지할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내 꿈속에서  나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던 그 소년같은 모습에 대한 그리움은

 

내가 이성과 의식을 무방비 상태로 놓고 그저 가만히 나의 느낌에 순응하는 상태가되면

 

안개처럼 피어올라 나의 마음을  메워버릴수밖에 없다.

 

나의 그런 그리움은 매우 허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현실의 그 친구에게 있어서 내가 꿈속에서 본 것같은 그런 모습은 착각일수도

 

있고, 결국 현실에서 길러지고 타협하며 어느새 목이 굵어져버린 30대의 남자의 모습이 사실

 

은 그의 본 모습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차피 나의 시선이 얼마나 잘못된 초점이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바라보던 그 한 면만을 바라본다는 것이겠지.  

 

 

힘들때면 언제든 짐을 들어주겠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소년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결국 나의 머리를 병신같이 짓찟고 으깨버리는 냉소로 남았을 뿐이지만.

 

 

............ 그리고 잠기운이 깨면서 다시 현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오래전에 내가 알던 다른 이의 블로그에 아주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가보았다.

 

그가 몇년전에 올린 짧은 일기들을 보며

 

 내가 그의 마음을 아주 아프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나서 나도 아팠던 것이 생각났다.

 

아팠지만 그에게로 갈수 없었기에 괴로웠던 그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의 조용했던 말투, 피부의 체취, 얼굴을 보면 느낄 수 있었던

 

 오롯이 무공해로 순수하기만했던 그의 마음이 생각났다. 

 

괴로웠지만 참기가 힘들었고  아마 그 친구는 더 했을 그 시절.

 

 광화문 뒤편을 느리게 걸어올때 무척 세상이 휘청거렸고

 

감당하기 힘들게 휘둘리고있어서 오직 살아 ' 있기만' 했던.

 

지금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그건 다 지난 일이고

 

이제는 아마 그 정도 일에 그렇게 아프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투르고  우스꽝스러운 선택의 연발이라 지워버리고 싶은 일일지도.

 

그렇지만 오직 그 '기억' 때문에

 

그의 글을 보고

 

 ' 기억'이 생생하게' 아직도 느껴져서

 

나는 울었다.

 

두번째 꿈에서처럼, 나는 현실에서는 모두 놔두고 떠나야 하지만

 

만일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된다면 무엇을 끝까지 놔두고

 

떠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  놔두고 떠날 수 없어 강물을 헤치고

 

나와서 다시 성으로 찾으러 들어갈 그것은 무엇인지.

 

져버릴 수 없는 기억은 허상이고 집착에 불과할 지 몰라도

 

모두 지나간일이지만

 

그 옛날의 일이나 지금의 일이나

 

여전히 나를 생생하게 지배하여

 

그 두개가 겹쳐져 나를 눈물흘리게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취향이

2007/09/10 21:48

구멍님의 [2007년 9월 9일, 좋아하는 노래들] 에 관련된 글.

취향이 나와 비슷하신 분 같아 퍼놓는다.

 

펄잼, 레드 제플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아주머니들과 거절

2007/09/09 23:01

오늘 이대앞 거리들의

 

수많은 미용실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팩! 거절하면서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하루에 수백번 수천번 거절을 당하지만

 

아무도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그 아주머니들의 물집생긴 발바닥을 치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방문쾅 닫고 어머니를 귀찮아 하는 자식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그 냄새를 귀찮아하면서 잠자리에서 조차

 

돌아누울지도 모르는 남편

 

그리고 그들과 함께 생존하기 위하여 전단지를 돌리고 돌아와 밤 늦게까지

 

빨래와 설겆이 들을 할 아주머니들

 

그들을 보면서 나의 모멸감이란 아주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작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좀더 초연하게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