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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결핵,

도진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각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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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1997년

1997년과 헤어지는 일은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 때 난 열아홉 살이었고,

외로움도, 무서움도 많이 타는 아이인 주제에 그렇지 않은 양,

혼자 있을 자리를 찾아 끝없이 헤매곤 했다.

 

그 때 스물여섯의 선배는,

내가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때로 적막한 기숙사에서 서울로 탈출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언제나 차가웠던 내 손을 녹일 수 있는 주머니가 되기도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던 그를 두고,

나는 가까이 다가왔다 멀리 떠나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좁혀지지 않던 그 거리를 못 견뎌했으므로....

 

알고 지낸 후, 아마도 처음으로, 내가 먼저, 가라, 고 말했다.

할 말이 많지 않았다.

 

...

 

그리고 난 다시 많이 아프다.

 

그렇게, 힘들게, 1997년의 봄에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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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life in the universe / 펜텍 라타나루앙

 

절박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았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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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si que te quiero

 

좋아하든 사랑하든,

그 거리는 좁힐 수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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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 고즈 나오에

 

곱지 못한 마음의 하늘에, 조용한 저녁이 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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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투쟁은 드라마다

썩은 돼지님의 [폐허가 된 하이텍 농성장] 에 관련된 글.

 

참세상에 들어온 지 1년 반.
두루두루 다녔다. 이런 현장, 저런 현장..

 

하지만 한 현장에 지속적으로 결합한 경험은,
아마도 하이텍이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애틋한 지도 모르겠다.



17일은, 아주 끔찍한 날이었다.
지회장이 경찰특공대의 손아귀에 잡혀가던 참혹한 광경.
그걸 보며 울부짖던 조합원의 얼굴.
전경들의 방패와 뿜어져 나오던 소화기 분말.
아수라장이 된 천막농성장 터.
땀에 절은 노동자들과 학생들.

 

이 모든 이미지가 풍경으로 남았다.

 

18일은, 아주 행복한 날이었다.
5명의 해고자에 대해 전원 복직 판정. 행정소송에서 승리한 것이다.
"복직판정 났대요!"라고 외치며 울던 조합원.
웃으며 눈물 흘리던 조합원들.
카메라를 들이대도 거부감이 없었던 건, 아마 그 순간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5월 초부터 꾸준히 그들을 만나왔지만,
그렇게 기쁜 표정은 처음이었다.
덩달아 얼마나 기쁘던지.

 

하룻밤 새 이렇게 절망과 희망을 오갈 수 있다니,
모든 투쟁은 드라마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극적인 순간들.

 

스러진 농성장을 애도하며, 그 이틀 간의 상황만 짤막하게 편집하려 했으나,

매우 아쉽게도.. 다른 일에 치여 전혀 진행을 못 하고 있다. ㅡㅡ

* 하이텍, 고공농성에서 경찰특공대 연행까지

* 하이텍, 폭력연행부터 철야농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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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철거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용산동 5가 철거민들은, 40일 넘게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집중집회라도 있어 동료가 찍어온 소스로 편집을 하면서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애감을 느꼈다.

 

도입부의 인터뷰는 1분이 넘어가지만, 자르지 않았다.

동네에 집이 한 채씩 사라질 때마다, 새벽녘에 들려나갈 때마다,

챙겨오지 못 한 장난감을 생각했을 일곱 살 먹은 철거촌 아이.

제 손으로는 부족하여 형아, 형아, 숨이 차올랐을 그 아이.

그 아이를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을 힘없는 어른들.

 

구청 화장실 출입도 못 하게 해, 벌건 대낮에 길바닥에 오줌을 싸버려야 했던,

기껏해야 30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곱게 생긴 철대위원장.

 

용산구청에는, 이들의 천막마저 철거해 버리려는 수순으로,

모든 보상절차를 마쳤음에도 이들이 어거지를 쓰고 있다는 식의 펼침막이 걸렸다.

구청장 쌍판대기 한 번 본 적 없다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절벽으로 내몰릴 상황에 처해있다.

 

안암철대위원장은 70대 할머니다.

가난이 죕니까? 따져묻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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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점거농성 3일차


 

다른, 캡처 사진들은 디카 페이지에.



하이텍조합원들에게 전원불승인이 떨어진 날, 허름한 중국집에서 뒷풀이가 있었다.

공대위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김성윤 집행위원장이 구로공단 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조만간 이슈화 할 거라며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전해왔다. 애초의 얘기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가 아니라 회의든 뭐든 결합을 하며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물론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독립제작자가 아닌 터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6월 30일에 있었던 첫 기자회견이며, 불법파견 판정된 날이며, 엊그제 집회까지

가능하면 챙기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는 중이다.

 

관악지방노동사무소에서 집회를 끝내고 기륭전자까지 행진해 왔을 때..

새로 해 달았다는 철창문을 봤다. 그 안으로는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고, 경비들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철창문 바로 앞엔 지게차까지.

 

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을 점거하고 농성 시작한 지 3일째.

철창문을 사이에 두고 집회가 시작되었다.

안쪽 마당엔 열 명 정도 되는 기륭조합원들이 나왔고, 옥상에도 열댓 명이 나와있었다.

회색빛 도는 유니폼하며,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흰색 머리띠를 하고 나와 있는 조합원들을 보니, 구로동맹파업 자료영상이 절로 떠올랐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울컥, 했다.

20년 전의 그 곳에서, 지금도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주위 건물이며 도로는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별 다를바 없는..

오히려 그 때에는 그 용어조차 생소했을 '비정규직' 투쟁을..

'불법파견'에 대항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집회가 끝나고 철창틈으로 몇몇 분을 인터뷰 했다..

3,4,50대 아주머니들이 대다수인데, (연대온 학생들을 보더니 '밥 먹고 다녀요' 한다. ^^)

아직은 재밌게 싸우고 계셨다.

일전에 보았던 70년대 프랑스 영화 '주먹에는 주먹'이 생각났다.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섬유노동자들의 5주간의 파업을 극화한 영화..

그녀들은 참으로 신나게 투쟁을 배우며 만들어가는데,

기륭조합원들도 그래보였다. 힘차고 밝았다. 

 

회사는 안마당에서 농성해도 좋으니 제발 생산라인에서만 나와달라고 했고,

노동자들은 세 가지 요구조건(대표이사 면담, 계약해지 중지, 정규직화) 중 앞의 두 가지가 우선 해결되면 농성을 풀겠다는 상황이다.

사측에서는 29일까지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조만간 공권력이 투입될 거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들려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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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륭분회와 함께(님과 함께 개사)

눈치보며 살지말고 기륭분회 단결투쟁

사랑하는 기륭분회 모~두가 투쟁하세

정규직 쟁취해서 우리모두 행복하게

민주노조 단결하여 평생일터 보전하세

기륭전자 너~무나 무대포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뭉쳐싸우면

기륭분회 기륭분회 힘차게 이겨

우리함께 투쟁을 하니

총단결 총투쟁 정규직화 쟁취하여

금속노조 기륭분회 금강산을 다녀오세 (투쟁!)

 

2. 투쟁가(소양강 처녀 개사)

노조는 살아있다 우리를 봐라

이렇게 단결투쟁 철야농성 시작했다

가녀린 여자라고 얕보지 마라

열받아 투쟁했다 너는 너는 어쩔래

아아 괴로워서 외면만 하는 대표이사님


3. 산할아버지 개사

기륭분회 악으로 뭉쳤네 인간답게 살아보세

단결만이 살길이다 흩어지면 죽는다

노조결성 희망있다 대표이사 교섭에 응하여

정규직화 실시되었다 투쟁승리 하였다네

노조결성 희망있다 대표이사 교섭에 응하여

정규직화 실시되었다 투쟁승리 하였다네

투쟁승리 하였다네

(부당해고 중단하고 정규직화 실시하라!)


4. 기륭분회 찬가(서울찬가 개사)

동트는 새벽 붉은 태양 단결투쟁 정규직화로

기륭분회 단결하고 기륭을 떠나지마오

우리 만나 인연을 맺은 기륭분회 총단결하여

인간답게 기륭에서 기륭에서 일하렵니다.


5. 어머나 개사

어머나 어머나 그러지 마세요

노동자 마음은 하나랍니다

안돼요 왜이래요 그러지 마세요

해고를 하면 절대로 안돼요

우리모두 단결투쟁하면은 정규직될꺼야

흔들리면 노예되고 파견직되겠지만

투쟁해요 민주노조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해요 민주노조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해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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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들, 익숙해지지 않는..

탈주선님의 [다시 제자리로.] 에 관련된 글.

 

말하지 못 했다.

 

조금만 더 머물 수는 없겠니?

한 번 만 더 생각해 보지 않을래?

 

모두가 울었다.

 

가겠다고 정한 마음, 돌릴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도 이래선 안 되는 거야.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보내서는 안 돼.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도,

그냥 보내줘야 한다는 사람도,

아프긴 매한가지다.

 

벌써 몇 번 째 겪고 있건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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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혁명 특별전

0815 야마, 제국에의 공격

 

: 고용안정센터의 셔터가 서서히 오르는 틈을 비집고 달려드는 일용노동자들.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달려드는 노동자들'의 그것. 일본은 정말 한국과 다를 바 없어서, 무서웠다.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적 풍경이 될 것 같아서.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 같아서.

 

: 뱃노래가 그렇게 구슬피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나는 왜 여기서 석탄이나 캐고 있나, 일본 가면 좋을 거라 누가 말했나, 일본 와서 살자니 배고파 죽겠네, 수레를 끌면 죽은 자가 끌려나오고, 천장을 보니 눈물만 나네, 강제징집 당한 어느 늙은 한인노동자의 노래 끝에 뱃노래가 흘렀다. 해질 무렵 강물 위로. 어기야 디여라 어기야 디여 어기 어차 뱃놀이 가잔다... 연주곡에 맞춰 낮게 따라부르는데 비석도 없어져가는 재일한인들의 공동묘지가 나온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일용노동자, 거기서도 차별 받는 한인노동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노숙자들. 제국은 그렇게, 한일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산야 지역의 일용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조차 없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했다. 동경원정투쟁 때 보았던 늙은 노숙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붉은 깃발 아래 모여앉은 그들은 함께였지만, 분리되어 있는 듯 했다...

 

0815 주먹에는 주먹

 

: 단순명쾌한 선이 주는 발랄함.

 

: 이런 영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니, 부르삭 사장놈의 말처럼 프랑스인들은 '68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나 보다. 굳이 만사형통과 비교해 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카탈로그에 실린 평만 읽어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이야 당연히 비판했겠지.. 유쾌하게 웃으면서 봤다.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줄 몰랐던 터라 더욱 신나게..



0806 치네지오날레

 

: 이탈리아 학생운동 그룹이 제작했다는 뉴스릴 3편.

: 1편을 보면서, 편집되지 않은 60분짜리 생필름을 보는 듯한 고역스러움을 겨우겨우 견뎌냈다. ㅡ.ㅡ 이탈리아어가 영어로 번역된 부분이 전체 20%도 안 되는 듯했고, 그걸 한국어로 번역(번역은 좋았다. 르노를 리놀트로, 시트로엥을 시트론이라고 번역한 영화도 있었으니...)했으니, 맥락은 겨우 이해해도 정확한 내용파악이 어려운 데다가, 촬영자가 초보였던지 당췌 멈춰있질 않는 거다. 일전에 보았던 오에 마사노리의 카메라는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이건 으... 안 그래도 멀미나는데 뒤에 앉은 프랑스인 두 명이 60분 내내 조잘대서 짜증나 죽는 줄 알았다. ㅡㅡ 오로지 기록했음에 미덕이 있는, 뉴스릴.

: 로마대학 학생들이 단대를 점거하고 있을 때 파시스트 그룹이 쳐들어오는데, 가히 전쟁이라 부를 만 했다. 경찰이 노동자, 학생 때려잡는 거야 뭐,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하긴 G8 반대 제노아 투쟁 당시 영상을 보면 이탈리아 경찰의 폭력성은 말할 것도 없겠다.

: "대학은 우리의 피아트, 피아트는 우리의 대학"이라는 구호와 "우리의 베트남은 공장과 학교에 있다"는 피켓이 인상적이었음. (피아트는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군인에게 얻어맞는 베트남인과 경찰에게 얻어맞는 이탈리아인을 교차편집한 장면이랑.

: 뉴스릴 2, 3편에는 일본이나 프랑스에서의 시위 장면도 보여주는데, 오프사운드로 이탈리아어 나레이션이 지겹게 깔리지만 번역되지 않아 뭐 알 수가 있나. 학생운동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 얘기했겠거니, 짐작할 뿐.

: 여튼 신기했다. 16미리 카메라 들고 열심히도 찍었구나. 누군지 몰라도.. 촬영자의 시선이 역사로 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카메라를 드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 한없이 무거워지는구나. 현실을 가려볼 줄 아는 눈, 그게 아니라면 폭넓게 볼 줄 아는 눈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렌즈 청소 잘 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ㅡ.ㅡ

: 리포트로 불거진 논란을 조만간 정리해야 하는데, 이건 결국 참세상에서 어떤 뉴스릴 작업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겠지. 어차피 한순간에 정리될 것은 아니고, 이런 가설 하에 일정 기간 실험과 평가, 그걸 통한 수정, 다시 실험과 평가, 그걸 통해 발전해 나가겠지.. 고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68년 5월 이탈리아의 거리에서는 bandiera-rossa가 불려졌더군.

 

0805 투쟁하고 승리하리라 / 서른 살의 죽음

 

68년 5월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표현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다. 98년 5월쯤, 68년 5월에 대한 레포트를 쓰기로 작정했을 때 이 영화들을 보았다면 좋았을텐데.

: 투쟁하고 승리하리라, 는 학생들의 봉기에 자극받아 기층부터 파업에 뛰어든 르노 노동자들의 5주 간 투쟁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 과정 상에 드러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입장에 서서 정리하고 있는데, 그래선지 <유언>이 떠오르기도. 노동자 투쟁에 관한 한, 69년과 05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자본가와 다를 바 없는 관료성을 드러내는 지도부, 기껏 일주일에 한 시간 감축과 한 시간에 62센트 임금인상을 위해 5주 간 파업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노동자, 노동자들은 처음엔 감자만 먹고 견디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하는 지도부, 6개월을 감자만 먹고 살더라도 투쟁하겠다는 노동자, 요구한 걸 다 얻진 못 했지만 이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는 지도부, 침묵하는 노동자, 그리고 자본가와 경찰. (프랑스 공산당은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 서른 살의 죽음, 은 68년 당시 학생이었던 이들의 관점에서(대학생도 아니고 중고등학생), 그리고 감독이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 쓰기 귀찮다.

: 화자들이 죄다 남성이란 점이 언제나 불편하다. 남성들이 끌고 가는 영화에 여성들이 비춰지고 등장하는 방식부터 무척 거슬린다. 아녜스 바르다를 보려면 여성영화제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고, 이런 특별전에서조차 보고 들리는 건 남성들의 목소리 뿐이라니....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의식적으로 여성들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뛰어나지 않아도 자꾸 뭔가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화나잖아. "미셸과 너를 기다려 식사를 준비하고..."라고 말하는 리벨륄르를 보다가, 연설하고 선동하는 미셸의 모습을 보면서, 고뇌하는 미셸이 과연 빨래를 했을까? 밥을 했을까? 청소를 했을까? 란 생각도 설핏 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미셸이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그를 돌봐주는 뭔가가 있었을 거다. 돌봐주는 뭔가가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으려면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고 정말 부지런해야 된다구.

: 역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 역사와 철학, 그리고 영화. 그러려면 먼저 건강해지고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한데. 결국 하지 않겠다는 거냐?

 

0804 오에 마사노리 특집

 

S1번 S no.1 1967 5min 16mm
헤드 게임 Head Games 1967 10min 16mm
노 게임 No Game 1967 17min 16mm
살로메의 아이 Salome's Child 1968 7min 16mm
프레임의 사이 Between the Frame 1967 10min 16mm
거대사회 Great Society 오에 마사노리Oe Masanori & 마빈 피시먼Marvin Fishman 1967 17min 6 multi screen 16mm→DVD

: 집중과 배제, 자유, 동참... 맘에 들었던 초반 세 편의 뉴스릴을 보면서 내내 머릿 속에 맴돌던 단어들. 약간의 용기, 유치함을 견디고 끝까지 밀어부치는 곤조가 필요해. 거진 비슷비슷한 그림을 찍는 일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잔재주나 부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경계로 아무 것도 시도해 보지 않은 채, 너무 경직되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는 거다. 마침 그러던 와중에 만난 이런 뉴스릴들은 숨통을 트이게 만든다. 최근 몇 번의 즐거웠던 촬영 경험을 떠올리며, 이제 그것들을 즐겁게 붙여보는 작업을 시도해 보자는 생각. 뭐, 허접하겠지.. 그래도 내가 즐거울 수 있다면, 신이 날 수 있다면, 숨이 트일 수 있다면.. 뭔들 못 할까.. 스토리텔링의 지나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 거대 사회, 는 리플렛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그렸던 그대로의 작품 -  몽타주, 사운드의 충돌, 순간적인 침묵의 효과, 틸트 업다운의 불일치가 가져오는 조형적인 리듬. - 이었다. 실은, 편집증적으로 매달린다면 누군들 못 하랴 싶은, 그닥 대단하지는 않은 은유와 풍자의 꼴라주요 편집이다. 하지만 그는 '했다'는 차이가 있지. 오노 요코스러운 전위음악이 흐르면서 파편적인 푸티지들이 혼란 속에 어느 순간 통일감과 리듬을 만들어내는.. 시청각적 즐거움 속에 미제국주의와 60년대 반문화, 베트남전과 민권 운동까지 두루두루 짚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상상 속에 동의되는 '일본'의 느낌으로..

: 역사 속의 어느 한 순간에 카메라를 든 나는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 대상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는, 적어도 나의 감정의 기록을 충실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는 그것을 통해서 혁명 운동에 동참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맞나? 도저한 주관이 객관을 만나는 순간이 존재할까?

 

0803 작품 / 68년 5월의 청년 봉기 / 씨네트랙트

: 영화삐라라더니, 과연... ㅋㅋ 씨네트랙트에 대한 궁금증 : 1) 어떻게 배급되었고 당대 관객들(대중을 상대로 배급했을 것 같진 않고)의 반응은 어땠을까. 2) 현재적 시점에서 어떻게 응용, 활용될 수 있을까.

 

* cinetracts 관련 자료

http://www.garyelshaw.com/jlg/cinetracts.pdf#search='cinetracts'

 

0729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

: 한 번 더 봐야할 듯. 고다르의 딜레마로부터 정리해보는 나의 딜레마

: 나와 노동자, 나와 이라크, 삶에서 나의 개인적 투쟁과 사회적 투쟁.

: 집단제작이라는 것. 68 프랑스로부터 1999년 imc,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프로젝트.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노동자계급과 단절되어 있지만, 미국영화에 대한 나의 투쟁은 노동자 계급과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내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나와 베트남의 단절과 동일한 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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