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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9
    028 - 리탕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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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5/08
    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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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5/06
    026 - 리탕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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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 리탕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028 - 리탕(理塘)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오래전에 읽은 책의 내용중 하나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렇다.

 

'한 겨울 작은 암자에 한 노승과 수발을 드는 스님이 있었다.

몹시도 추운 날 땔깜이 떨어지자 노승이 모시고 있는 부처님(나무로 만들어진)을

도끼로 쪼개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스님이 어떻게 부처님을 그렇게 할수 있느냐고

눈물로 애원 한다. 그러자 노승이 왈, '이 어리석은 것아 넌 이게 부처로 보이냐?'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광에 놀랐다.

처음 본 열대 우림, 만년설산, 빙하, 바다 같은 호수, 장강의 도도한 흐름,

사막의 아름다움,,,,,,,

 

그러다가 그들의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티벳의 사원, 이슬람 사원, 막고굴의 벽화, 진시황제의 병마용, ,,,

 

마지막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장 골목, 고단한 삶의 모습, 가족간의 우애, 들판에서 혹은 작은 공장에서의 노동,

초라한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는 가난한 노동자,

한잔 술에 흥겨워 하는 사람들.....광장에서 춤추는 청춘들과 노인들.

 

그리고 불안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리탕쓰에서 백탑위에서 자리잡고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든 생각 이었다.

 

흑백의 묘한 조화,

 

저 까마귀는 백탑의 의미를 알까?

인간이 숭배하고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죽어있는 백탑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

즉 인민들의 고단한 오늘과 내일(내세 일 수도 있고...)이 아닐까?

 

인민들이 얼어죽을 지경이면 부처님인들 불쏘시게로 쓰이지 못할까?

 

리탕쓰에서 내려다본 티벳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야 할

오래된 마을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내가 리탕쓰를 와야 했던 이유인가 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명칭과 유래는 정확히 모르겠다.

 

 

집을 수리 중인 티벳탄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여자들이었다.

 

 

흙과 돌 그리고 목재로 만들어진 티벳탄의 집들

 

 

지붕에는 롱다(불경을 적은 천)가....   담벼락엔 야크 똥이....

 

이집도,,,,,

 

다양한 돌을 아귀를 맞추어 가며 쌓아 올린 담벼락

 

 

색바랜 회 칠 한 벽

 

홍(붉은 색)과 백(흰 색)의 강렬한 결합

 

 

오래된 대문위에는 풀들도 자리잡고...

 

 

낡았지만 화려한 문양의 대문

 

티벳탄의 마을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점점이 흩어진 야크,,,그리고 마을 

 

 

마을길과 목책

 

 

여기 저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풀 밭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흙담벼락과 돌로 새로 만든 집

 

 

언덕위에 홀로 빛나는 타르쵸

 

 

 

 

그들의 염원이 샇여 만든,,,,

 

 

나도 돌 하나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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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리탕은 세계 고성(高城)이다.

라싸 보다 높은 고도를 자랑한다.

 

약간은 고산병을 우려 했으나, 별탈이 없어서 다행이다.

 

티벳과 중국을 여행하면서 고산병도 없고, 몇번의 감기 이외엔 특별히 아픈곳도 없고,

좀 무리다 싶은 트레킹과 강해군에 잘버텨준 내 몸과

이 몸을 갖게 해준 두 분께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

 

리탕의 주변에 있는 마오야(毛亞) 대초원은 면적이 5000평방km에 달하는 초원이며,

매년 8월 1일에 열리는 말 경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도 말타기는 잘하는데...

(오래전 네이멍구에 가서 일주일 내내 양한마리 다 해치우고 오로지 말만 탄적이 있다.) 

 

허나 지금은 초원의 푸르름은 간데 없고 마른풀만 지천인 늦가을,

2007년 10월 27일이다.

 

아침은 거의 변함없는 아침메뉴인 '시판(죽)과 티아우(꽈배기),  삶은 계란(이건 항상 2개)를

9원에 먹었다. 착한 숙소를 소개해준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따오청 가는 버스를 확인하니 오후 2시에 출발 한단다.

아침에는 표를 팔지 않고 그때 와서 사란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짐을 맡기고 오후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숙소 종업원이 하루 더 묵으라고 하나 착한 가격과 친절에 주저앉아서는 안되다.

 

야딩이 2007년 여름부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따오청에 가서 일단 부딪쳐 보고 입장이 불가능하면 ,

무리를 해서라도 무리(木里)를 통해서 트레킹하여서라도 야딩에 가려고 계획하였다.

 

시간이 문제다. 더 늦어지면 추위와 눈 때문에 야딩 트레킹 진입조차도

불가능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를 묵은 설역명주식숙점

 

리탕쓰(理塘寺)에 가기로 했다.

리탕쓰는 창칭춘커얼쓰(長靑春科爾寺)라고도 불리며

원래는 흑교사(黑敎寺)였으나 명(明)대에 3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을 지나면서

황교(黃敎)로 바귀었다고 한다. 그 후로 캉띵 주변의 가장 큰 절이 되었고

 남부 캄(동부 티벳)의 주요 라마교 성지가 되었다.

 

사원내에는 석가모니 금동상과 불교경전, 3대 달라이라가가 사용했던 말안장, 명/청대의 벽화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티벳력으로 정월 15일, 수유채소화회 - 꽃 소조에 양, 야크의 젖으로 만든 기름, 수유와 각종 물감을 혼합하여 채색하는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시내에서 20분정도 걸으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도 거의 없어 조용하고 좋았다.

 

 

초입에 있는 백탑과 마니석 더미

 

리탕쓰 정문 : 입장료는 없었다.

 

 

 

라마승과 어린이

 

나는 보기와는 달리 뻔뻔스럽지 못해 사람들 사진을 찍을때면 막 들이 대지를 못하겠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못 할 짓이다.

그리고 옳지도 않다.

설사 아이들일지라도...

 

그래서 그저 멀리서 찍는 정도 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그리 즐겨 하는 것도 아니고...

 

 

 

새롭게 단장 한듯 하다.

 

 

 

 

 

마니석,  옴마니 반메옴

 

내 지갑에도 오래전 집을 떠나 올때 어머니께서 주신 '옴마니반메옴'이 수 놓아진 부적이 있다.

시골집에 가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이지만 갈때마다

어머니는 슬그머니 부적 잘 가지고 다니는지 확인하시곤 한다.

종교나 믿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 마음이니 지니고 있다.

 

 

리탕쓰의 외곽 모습

 

 

백탑과 까마귀

 

백탑위에 올라앉아 있는 까마귀를 한참 보다가,

 

내가 왜 리탕쓰에 와야 하는지를 깨닭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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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 리탕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26 - 리탕(理塘)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빠탕(巴塘)에서 오후 4시경 리탕가는 빵차를 잡았다.

차안에 아침에 망캉에서 같이 온 사람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빠탕에서 리탕까지는 60위안(元).

 

그런데 한가지  좌석이 뒷자리 중간 최악이다.

하지만 즐겁게 가야지,,뭐 방법이 없다.

 

빠탕부터는 스촨(四川)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티벳에서 보기 힘든 터널도 있었다.

 

이제 막 공사를 끝낸듯한 터널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역시 지방정부 재정 규모의 차이인듯 하다.

 

한참을 달린후 오후 6시경 뭐 좀 먹자고 차를 세운다.

나도 따라 내렸으나 늦은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탓에

별 시장기를 못느껴 주변만 구경하고 말았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은 것은 몇시간 후였다.

리탕에 밤 9시 30분정도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배가 고팟다.

ㅎㅎ 자업 자득이다. 먹을 수 있을때 먹어야 한다.

 

낡고 좀 지지분한 식당과 상점이 있었다.

 

주변은 좀 낡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타고 간 빵차, 차 지붕에도 짐이 가득하다.

 

이 곳 역시 캄(동부 티벳트)지역이어서 역시 먼 곳에는 타르쵸가 있었다.

 

 

 

 

빙설에 주의하란다. 시속 20km가 제한 속도란지 도로 번호가 20번이란지 잘 모르겠다.

 

빠탕에서 리탕 가는 길은 해자산(海子山 하이쯔 산 4675m)이 놓여 있다.

리탕에서 윈난성 방향으로 따오청(稻城) 가는 중에도 하이쯔산(4602m )이 있는데,

빠탕에서 리탕가는 곳에 있는 해자산이 좀 높아서 대(大) 해자산,

따오청 방향에 있는 것은 소(小) 해자산으로 불린다.

 

소해자산이라도 4600m가 넘는다.

 

대 해자산을 넘다 보면 자매 호수 메이메이 후(妹妹湖)가 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두 호수의 풍광은 색 달랐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으나 나중에 보니

아쉽게도 온통 어둠 뿐이었다.

 

메이메이후는 괴물이 살고 있어 괴물이 화가나면 '구구'하는 소리를 내어

티벳탄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을 생각하며 본 어두운 밤 달빛에 의지해 설산을 비추는 메이메이후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한 밤 중 초원을 달리는데 보름달만이 비추고 있었다.

 

밤길을 달리는 중 옆에 있던 젊은 친구는 비포장길에 차가 덜컹 거릴때마다

곡예하듯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지붕에 실은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지 살피곤 했다.

 

중간에 운전수가 문제가 생긴듯 차를 세웠다.

그러자 다들 하나씩 손전등을 꺼내 운전수를 도왔다.

여행자에겐 손전등이 다들 필수품인것 같다.

 

보름달이 떳다지만 어두운 밤 운전수는 차 밑으로 들어갔다.

별 일 없어야 되는데...고립무원 초원에서 밤새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 온다. 지나가는 차들도 끊긴지 오래다.

 

운전수가 임시조치를 하고서 차는 다시 달렸다.

이전 처럼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속도가 늦자 운전수는 음악소리를 키워 속도감을 높였다.

댄스음악에서 팝송, 중국노래, 티베탄 민속노래까지 참 곡 선정이 다양했다.

한국 댄스음악도 한곡 있었다.

 

wax의 '오빠'를 중국어로 번안한 노래였다.

천장남로를 달밤에 달리며 듣는 왁스의 오빠라니...참 오빠는 나쁜가보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밤 리탕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랑이는 여기에서도 있었다.

 

저녁무렵 나말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한명 있었다.

운전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약속이 있는지 운전수에게 늦는다고 화를 내며 계속 재촉을 하였다.

그건 좀 무리였다.

이 상황에서 재촉한다는 것은 운전수에게 '죽음의 레이스'를

강요하는 것 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좁은 빵차안에서 소위 "왕따"가 되었다.

아무도 그 사람의 말에 대구조차 하지 않고,,

담배도 권하지 않고,,,

 

중국에서(어느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빠오처를 하거나 빵차(사설승합차)를

탔을때 비굴하게 아첨할 것 까진 없지만 운전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대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존중해주면 한없이 친절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면,,감당키 어렵다.

친절하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끝없이 담배를 권하는 것일때가 많아서

 평소의 흡연량을 초과하기 일쑤이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늦었다고 애초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운전수 강하게 나온다. 결국 주변사람까지 운전수의 편이되어 원래 금액을 지불하고 말았지만.

자기가 급하면 빠오처를 하면된다. 정당한 대가 없이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 하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식당에서 8위안에 볶음밥을 먹고, 식당주인이 소개해준 건너편에 숙소를 잡았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랬는데 25위안 달란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라고 했다니까 웃으면 그건 3인실의 침대 하나값이란다.

글쿤,,,25위안이라는 착한 값에 침대 2개의 방을 혼자 사용했다.

 

하루 밤 25위안,  전기장판도 있다.

 

그렇게 세계고성(世界高成),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도시

(누구는 4500m라고도 하고 어디에는 4100m라고 하고, 어쨌든 4000m가 넘는다)

리탕(理塘)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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