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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파오마산을 내려 오며 저 멀리 금강사와 남무사가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걸어온 궤적이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네요,,,,

 

그래도 고생했다,,,내 두발,,,이렇게 칭찬해주었습니다.

 

 

오른쪽이 남무사, 왼쪽이 금강사입니다.

 

하지만 천천히 자세히 산허리를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랬동안 가꾸었던 밭들이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그저 경의를 표할따름입니다.

 

 

남무사

 

오른길과 내려온 길이 다랐지만 결국에 출발한 그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문성공주 다리와 나란히 마주해있는 다리에서요,  그 주변에는 올 여름(2007년)에 무너지 옹벽을

다시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세찬 물줄기가 캉딩 시내로 가로 질렀습니다.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욕실(목욕탕?)은 먼지쌓인지 오래 더군요,,,

 

 

캉딩 시내 안각사 근처

 

정지 표지판 (물론 보행자는 해당 안되지만,,,)을 보고 머추었는데 보기 드문 건물이 있었네요..

지붕을 경사가 심하게 만드는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동남아에서 볼수 있는 풍광인데요..

캉딩 시내 한가운데에서 보네요, 하지만 그 내력은 역시나 알수 없었습니다.

 

 

 

수정자(水井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우물입니다.

캉딩 시내에도 있더군요, 그 사연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점심으로 고작 쏘세지 하나 먹었더니

빨리 밥먹어야 한다고 온 몸이 아우성이었습니다.

 

그저 빨래 하는 아낙을 흘긋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수정자에서 빨래 하는 아낙

 

캉딩에는 기독교 교회당과 천주교당, 그리고 이슬람교 사원(청진사 : 중국식 표현)가 있다지만

역시 배고픔에 장사 없다고 찿지 않고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산위에 새겨진 암각화

 

 

다리위에 마련된 간이 채소 시장

 

 

역시 이곳에도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민이 있었습니다.

 

 

캉딩에서 거의 매끼를 해결한 식당에서 그날 저녁은 좀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당 주인장이 정성스럽게 담았다는 과일주도 한잔...

 

역시 백주 만큼 독했습니다.

 

 

식당의 마스코트, 이름은 메이메이(여동생,,,)

 

이렇게 빤이 올려다보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의자위로 단번에 폴짝 오른답니다.

 

몇번 보았다고 요리사와 종업원이 아는 체를 합니다.

티벳탄이었던 종업원은 고향이 중국의 제일 가는 전통마을의 하나로 손꼽히는

단빠(丹巴)에서 왔답니다.

단빠에는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 왈,,,,이제는 미인들 없어요,,,모두 북경이나 상해로 가버렸답니다.

춘절(설날)이나야 볼 수 있답니다...허걱,,,

 

주인장과 실없는 농담을 하며 캉딩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냈습니다.

캉딩 주위에는 무거쵸라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지만 이미 눈도 많이 내리고 해서

직접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여유로운 나는 그날 저녁을 그렇게 실없이 보냈습니다.

 

 

식당 주인장,,, 며칠 더 캉딩에서 묵으라 권했지만...

 

다음날 아침 눈덮인 캉딩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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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2007년 11월 1일

 

선녀대에서 바라본 선녀상의 등에 난 허망한 바람구멍을 보고 난후의  허한 마음이

역시 선녀대에서 바라본 바이타(백탑 白塔)이 충만하게 해주어 다행이었다.

 

 

백탑 너머로 보이는 산 정상에는 간밤에 내른 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일은 저 산 너머로 길을 재촉해야 하지만 오늘은 캉딩에서 머물 것이기 때문에

눈덮인 고개를 넘어야 할 험난함을 걱정하기 보다는

흰눈에 더 쌓였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만이 솟구쳤다.

 

파오마산 정상에는 아직도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이 있었다.

입장권에 안내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염치가 있어 보였다.

 

무료였다가 여기저기 공사투성이면서도 입장권을 받은 것이 괘씸했지만 한가닥 남은 염치가

그려려니 하게 만든다.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은 가려 간게 아니라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파오마산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하면서 오르고 오르다 보니 눈에 띄인 것이었다.

 

 

공사중인 라마 사원의 측면

 

 

라마 사원의 정면 -- 당시 그리 높지 않은 파오마산임에도 아래녘은 비가 위녘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일갈하는 석가모니의 탄생설화를 형상화한 석고 조각 

  - 쓰레기 하며 정리가 않되어 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음악은 흘러 나오는데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일하던 사람들이 눈온다고 일을 멈추고 아래 공사 현장으로

간식이라도 먹으러 갔나보다고 짐작해보았다. 

 

공사중인 사원에 음악(티벳음악 - 혹은 캉딩정가였는지도 모르겠지만)만 흘러 넘치고 인적은

없었다.

 

 

사원 입구에는 비비다 만 시멘트와 말똥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원 밖으로 나오자 들어 올때는 못보았던 20여분을 발길을 붙잡았던 모습이 있었다.

 

강소성의 우시의 영산대불, 홍콩의 청동좌불, 수 많은 사원의 부처를 보았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록 부처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고해의 삶을 표현하듯 우는듯(눈물을 흘리는 듯) 

혹은 웃는듯 한 모습이 오래도록 사라지지않았다.

 

 

 

눈 내리는 가운데 외로이 앉아있는 동자상

입장권에 표시도 되지 않은 작은 오솔길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하루종일 비와 눈이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3시경에 멈추었다.

하지만 파오마산 여기저기 운무(雲霧)가 자욱했다.

 

 

 

숲길을 걷다가 만난 노랗게 물들은 침엽수

 

 

한참을 걷다가 만난 막다른 길,,,담배 한데 피우고 되돌아 왔다.

 

 

달리고 싶은 것은 철마(鐵馬)만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공사중이었던 정인지(情人池)

 

 

정인지 옆에 있었던  선산정석(仙山情石)

 

 

어디서 많이 본듯한 정인지(情人池)

 

 

백탑

 

 

 

 

 

 

 

 

보호받고 있던 임려림(林侶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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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 캉딩(6 - 파오마산 - 中) - 길위에서 길을

051 - 캉딩(6 - 파오마산 - 中) - 길위에서 길을

 

 

해라석에서 5분정도 걷자 정가평(情哥坪)이 나타났다.

캉딩은 정가로 유명하다. 난 캉딩에 머물면서 정작 캉딩정가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들었다손 치더라도 알지를 못했을 것이다.

 

 

 

크기도 한 정(情)...계단 위로 올라가면 정가평이 나온다.

 

정가평은 작은 운동장만한 것인데 원형으로 만들어서 공연등을 하기에 적당하게 만들었다.

 

정가평 위에는 파마평이 있었다.

파마평은 원형으로 말을 타고 돌게 만들었다.

말이 눈비를 맞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비도 오고 그랬지만 드넓은 초원도, 험난한 고개길도 아닌

좁은 운동장에서 말을 타는게 무슨 흥이 있겠는가?

 

이미 내몽고의 초원에서 엉덩이 피부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일주일 내내

말을 타본적이 있기 때문에 별 흥미가 가질 않아 거절하였다.

 

여기저기 아직 정비가 다 끝나질 않았다.

입장료 받고 그러려면 최소한 정비라도 다 끝나고 하던지...

참 이럴땐 돈이 웬수란 생각이 절로 난다.

 

정가평 옆에는 참 이름도 거시기 한 칭궁(정궁 情宮)이 있었다.

건물은 새로 지은 것이라서 별 맛이 나지 않지만....이름 하나는 끝내준다.

 

정이란 무엇이뇨,,,수많은 인간들이 붙들고 웃고 울던 주제이고

앞으로도 끝임없이 불려질 인간사 최대, 최고, 가장 중요한 것이 정 아닌가?

그런데 정가(情歌)에 더해 정궁(情宮)이라니...

그 안에 들어가면 새로운 애인이라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식당과 기념품 판매점,,방금 페인트 칠한 듯

심하게 말하면 정나미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다.

 

 

정궁(情宮)

 

 

 

정궁 내부, 화려하지만 어딘가 좀,,,,

 

한참 위로 올라가니 선녀대(仙女臺)가 나타났다.

 

 

선녀대 전경

 

가운데 선녀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다른 조각상들이 있었다(역시 선녀일 듯)

선녀상 밑의 돌에는 캉딩정가와 파오마산에 얽힌 사연들을 적어 놓았다.

 

 

캉딩을 유명하게 한 캉딩정가 (영어로도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다.)

 

 

파오마산의 전설 이야기...

 

 

 

 

선녀상

 

 

 

연(緣),  인연이라,,,,아마 정(情)도 여기서부터 비롯되리라.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선녀상 뒤로 가자 내 마음도 휑하니 구멍이 난 듯 하였다.

 

 

풍만한 몸이나 등에 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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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 캉딩(5 - 파오마산 - 上) - 길위에서 길을

050 - 캉딩(5 - 파오마산 - 上) - 길위에서 길을

 

금강사를 나와 문성공주교를 지나면 파오마산에 올를수 있는 등산로에 다다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마부와 말들이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타라 권하지만 난 걷는게 좋다.

물론 케이블도 있지만 피치못할 상황이 아닌 경우엔 이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두발로 뚜벅 뚜벅,,,,,,

 

넓은 길이 있었지만 나는 왼편의 숲속으로 난 작은 길을 택했다.

아마 말들도 이길로는 다니지 않았듯이 군데군데 풀이 무성했다.

하지만 길임에는 분명했다.

 

 

20여분 오르자  탑인지 사당인지 모를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물어볼 사람도 없어

끝내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전탑이 눈에 거슬렸다. 좀 피해서 설치 하면 안되었을까?

 

곧 이어 중국의 왠만한 산엔 꼭 있는 악몽같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끝에는 성(誠)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유교의 흔적인지 도교의 흔적인지 역시 알도리가 없었다.

 

30분여분을 오르자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케이블카가 있고 관광객들이 있었다.

다들 케이블카를 타고 온 모양이다.

한손엔 카메라 하나씩, 다른 손에 먹을 것, 카우보이 모자 쓰고 요란스럽다.

 

예전엔 무료였다는데 이젠 입장료를 받는다.

일반 50위안, 학생 20위안,  다 돌아보고 느낀 것지만 좀 입장료가 과한 것 같았다.

 

 

 국가급풍경구 - 파오마산

 

 

 吉양禪院

 

 

 

주룽지 전 총리의 글 -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유명하다는 곳(자연풍광이 아름답거나 역사적 유산이 있는곳)에는

중국정치인들의 방문기념 사진이나 글이 꼭 있다.

 

가장 많은 것이 장쩌민 전 주석이다.

5A 급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장쩌민의 사진이나 글이 있다.

참 어지간히도 돌아다닌 것 같다.

 

그러나 현 후진타오 주석의 사진은 거의 없다.

관광지 보다는 개발 현장 그런데는 가끔 있다. 일하는 주석의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 장쩌민이 다 돌아다니며 글도 써 놔서 더이상 건드릴 곳이 없는가 모를일이다.

 

 (중국은 관광지 등급을 A로 매기는데 A가 다섯인 5A가 최고다. 마치 호텔의 별 다섯개와 비슷)

 

 

米라日巴 대사의 상이라는데 ....아래사진임

 

 

바위의 형상을 보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그 옆에는 하이로스(해라석 海螺石)이 있다.

모양이 소라같이 생긴 돌이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물이 솟았다. 신기했다.

 

 

 

해라석 안내판 - 한자를 잘아시는 분은 어떤 연유인지 아실 듯 해서,,,

 

 

신기하게 바위 가운데에서 물이 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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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 캉딩(4 - 금강사) - 길위에서 길을

049 - 캉딩(4 - 금강사 金剛寺) - 길위에서 길을

 

난우쓰에서 5분정도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금강사가 있다.

 

 

돌담길 사이로 금강사가 보인다.

 

 

금강사에 도착하기 직전에 보이는 군부대 숙소에 나 붙은 구호

 

정치합격, 군사?경 작풍우량 기율?명 보장유력(몇자는 뜻은 알겠는데 잘 모르겠음), 

현재 중국의 어느 군부대에나 반드시 붙어 있는 구호이다.

예전 한국의 전두환 시절 '정의사회구현' , '선진조국 창조'  뭐 그런 것이다.

 

하지만 뜻을 좀 음미해보면 현재 중국의 정치사회를 반영 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치 합격,

후진타오 시대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중국공산당의 지도력에 대한 여전한 충성 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군사?경,

군사력(인민해방군)의 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이미 굳건해졌다라고 읽을 수도 있다.

최근 인민해방군의 개혁(군인수의 위주에서 현대화된 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정예부대 재편)을

추진하면서도 인민해방군의 중국사회에 대한 지배력(중국공산당의 지배를 뒷받침하는)이

흔들림 없음을 과시하는 구호일 것이다.

 

작풍우량, 

일하는 방식이 우량하다는데 그건 좀 글쎄,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관력적이고 권위적인데...

수긍하긴 어렵지만 과거 인민해방군의 민간인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는

많이 누그러진게 사실이다.  

 

 기율?명,

군기가 확실히 잡혀있다  라는데 인민해방군을 보면 우리가 가끔 비아냥조로 하는

'당나라 군대'라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여전한 것 같다.

 

보장유력,

마지막 구호는 좀 더 심각하다. 힘이 있다. 그러니 까불지 말라는 엄포와 협박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물론 '인민해방군에게 (중국인민을 지킬 수 있는)힘이 있으니 자부심을 가져라, 안심해라 -

서양세력과 일본의 침략을 받은 바 있는 중국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라고

읽히기를 바라겠지만 나의 눈에는 대외적인 것보다는 중국인민들에 대한 엄포로 읽힌다.

 

하지만 모두 다 내 생각일 뿐이다.

누구에게 물어보기에는 적절한 대상(편견없이 솔직하게 제대로 대답해줄수 있는)을 찾기도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내 말 능력이 부족했다. 이럴때 언어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 뿐인게 더 큰 문제다.

공부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하는  내 성정, 아마 이건 고치기 힘들듯 싶다.

 

 

 

 

 장막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장식이 눈을 끌었다.

 

 

 

진강쓰(金剛寺)에는 버마에서 온 옥불상이 유명하다.

* 버마는 현재의 미얀마의 옛 이름이다.

미얀마의 현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버마라고 부른다.

 

 

옥으로 만든 와불 --아마도 저 자세가 가장 편한 자세일 듯,,,

 

 

 

역시 옥으로 만들어졌다.

 

 

금강사 경내에 있는 백탑

 

 

담장에 핀 이름 모를 들 꽃(민들레 같기도 하고,,,)이 금강사의 생명력을 말해주는 듯 하다.

 

 

캉딩의 금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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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 야딩(12-선내일 신산)- 길위에서 길을

041 - 야딩(12-선내일 신산)- 길위에서 길을

선내일 신산(仙乃日 神山 선나이르 신산)이 관세음 보살의 현신인 것은

그 모양새에 있어서 연화(蓮花, 연꽃) 의 좌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선내일 신산 - 그 모양이 연곷 좌대(부처님의 좌대는 연꽃)

 

 

장엄한 기운의 선내일 신산 ---  그 앞에 작은 검은새(아마도 까마귀)

  

 

나뭇가지 끝에 정좌한 검은새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가기전 저녁 예불을 드리는 듯 하다,

검은 것은 더 검게, 흰것은 더욱 희게,,,,,이게 흑백이 만날때 더욱 도드라져 보엿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 앉을 분위기이다.

마지막이 항상 힘들지만 많이 걸어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입구를 앞둔 충고쓰 이후는 무건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중국인 친구는 낙융목장부터 입구까지 말을 타는데 150위안(元)을 지급했다.

좀 비싸다는 느낌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하산길 마지막 구간

 

 

멀어져 가는 하납다길 신산

 

입구(매표소)에 도착하자 표를 사란다.

허걱 입장할때 표두 안팔구서(입장시간이 오전 7시, 넘 이르다) 나갈때 표를 사란다.

 

야딩이 공식적으로 출입금지되었지만 표는 판단다.

그리고 대부분 여행자가 아침 일찍 출입하는 것을 알기때문에 저녁 늦게는 업무시간이 지났지만

표 팔기 위해 지켜서 있다. 그런데 학생표는 없단다.

 

현재(2007년 10월 29일)는 공식적으로 출입이 허가가 되지 않아  학생표는 없다.

이후 공식 개장되면 학생표도 만들거라 한다.

 

표는 150위안(元)이다.

 

입구에서 혹 따오청 갈 수 있는 차량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저녁이 다되어서 실패했다 .

그럼 하루 더 묵어야지...숙소를 구하려 하는데 입구에서 만난 노인이 자신의 집으로 가잔다.

거리도 입구에서 야딩촌보다 더 가깝단다.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그 노인을 따라 나섰다.

 

 

 농농바 언덕위에 자리잡은 민박집  

 

숙박비는 1인당 하루 20위안(元)이었다.

비교적 최근(2007년 8월)에 내부를 새로 개조해서 집은 깨끗했다.

늘어나는 야딩 여행객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기 위해 무리해서 큰 돈들여 수리했는데

예상치 않게 야딩 출입이 금지되어 그동안 별 재미를 못보았단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오후에 야딩 출입구에 나가서 손님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숙소가 정해져 있는 여행객이

많아서 쉽지는 않다고 한다.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

 

 

 

 

 

 

 

 

 

 

응접실에 불을 피우고, 우선 수유차로 허기와 피로를 달랬다.

그리고 저녁을 주문했다.

중국인 친구가 부엌에 가서 재료를 보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거의 이틀만에 밥을 보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먹을 만했다.

저녁밥값은 30위안. (세명이니 1인당 10위안)

 

 

만 이틀만에 먹어보는 밥다운 밥,

우리셋은 거지꼴한 이몽룡이 월매한테 얻은 밥먹듯 '밥아 너본지 오래구나' 하면서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적어도 20여명은 잘만한 방에서 3명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퍼졌다.

물론 비단 금침을 뒤집어 쓰고,,,,,

그런데 새벽녁 서선생(쥐)이 새벽강연을 하는지 요란을 떨었다.

 

그렇게 농농바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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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 야딩(4-문수보살과 농부철학자) -길위에서

033 - 야딩(4-문수보살과 농부철학자) - 길위에서 길을

 

양메용 신산은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현신이다.

 

 

지혜란 순백으로 정결하면서도

차갑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것이랍니다.

 

서른이 넘어서

 

'난 이제 세상을 다 알아,,,

내 판단과 결정은 절대 틀려서는 안돼...내 말을 못알아 먹는 니가 바로 멍청이야!"

 

그런 오만과 아집과 독단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해를 보내고나서 아직도 지혜의 바다는 넓고 알아야 할 그리고 체험해야 할 길(道)은

가도가도 끝없음을 알았습니다.

 

문수보살의 현신인 양메용 신산에서 퍼득 다시금 들었습니다.

신산이 찬양을 받아서도 아니고 그 자체로 빛남을 알것같습니다.

 

3인의 다국적 일행 중(한국인 나, 중국인 아마츄어 사진작가, 프랑스인 농부)

한명인 프랑스인 데이비드는 농부입니다.

 

데이비드가 프랑스를 떠나 여행을 하다보니 영어식 이름이 필요해서 데이비드 랍니다.

우리의 철수, 영수 그런식이지요,,,

 

서른살이고 밀을 재배하는 농부이며, 여자친구는 패션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답니다.

 

러시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몽골을 지나 북경, 사천의 청뚜, 그리고 윈난으로 가서

티벳, 네팔,,인도로 갈 예정이랍니다.

 

그는 그 흔한 똑딱이 카메라도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연출되지 않은 양메용을 보는 농부철학자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왜 세계여행을 나섰냐는 질문에 '상상력'이 고갈되어서,,,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매이진,,,,,

 

데이비드의 여행원칙은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랍니다.

오로지 걷거나 버스, 기차, 배로만 움직일 예정이랍니다.

 

ㅎㅎㅎ 그럼 아메리카는 어찌 갈려고,,,,,방법을 찿아보겠답니다.

 

2008년 5월 지금 데이비드는 인도에 있답니다.

4월말 네팔에서 기다란 수염을 면도하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2008년 5월 그의 상상력은 아마도 문수보살의 지혜만큼 충만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지혜라는 것이 한꺼번에 알수 없는가 봅니다.

저 멀리 문수보살(양메이용 신산)이 한걸음 딛는만큼씩 다가옵니다.

 

 

 

때론 살짝 비켜가기도 합니다.

물론 뭇 중생이 오해할때가 더 많지만요.

산은 그자리에 있었건만 비딱하게 보면서 잘 안보이네 하는 것이겠지요.

 

 

다시 중심을 잡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건 산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시각이겠지요.

아마도 맘이 흔들리니 시각도 흔들리겠지요.

 

 

 

 

설산 건너편에는 황량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설산이 빛나는지도 모릅니다.

 

 

 

 

산과 그리고 물,,나무 이것이 완벽한 천국이겠지요...

천국의 비밀화원을 몰래 훔쳐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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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 야딩(3) - 길위에서 길을

032 - 야딩(3) - 길위에서 길을

 

좀되었지만 영화 '여고괴담'으로 첫 선을 보였던 최강희가

주연을 한 '달콤 살벌한 연인'  중에 최강희 후배로 나오는 장미의

남자 친구,,,양아치로 나오는 사람이 영화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동차 정비소인지 폐차장인지에서 한 젊은애를 놓고

자기에게는 1촌을 거부하고 자기 경쟁자에게만 1촌 맺은 것에 대해

격분한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에 대화 하면서 돌아보며

"내가 토토리를 달라고 했냐?..."  허걱,,,,

 

요즘 여행기를 쓰면서 그 인간이 왜그리 격분했는지 알것만 같다.

 

블러그 가르쳐 주면서,,,

'악플보다 무서운게 무플지옥이라며....무플방지대책위란것도 있다며.."

은근 협박하면서 이야기 했건만,,,

세상이 'give and take' 라고 평소 댓글다는데 서툰이답게 역시 리플은 가뭄에 콩나고 있다.

 

몇 몇 님들이 보내주는 리플성원에

그래도 품이 들어가는 여행기를 적어가고 있다.

이 참에 한꺼번에 '퉁'으로 감사의 말씀 전한다.

 

댓글, 혹은 답글은 잘 안다는 편이지만 꼼꼼히 보며

'아하 ,,,그게 이렇게도 읽혀지는구나,,,예상치 않은 것에 대한 반응에,,,허걱,,"

하면서  또 즐긴다는 사실을 밝히며,,,앞으로도 죽,,,,,변치않는 성원과 댓글을,,,,,,

(무슨 약장수 같네요,,)

 

글 특히 여행기(내가 쓰는 경우에만 해당될지 모르지만,,)는

남 염장지를려고 자랑질 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공유하잔다고 어쭙잖은 것 알리려고도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가는 여행의 기억을 정리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천불암의 끝자락,,,

 

시간과 보는 위치가 다르다. 뭔 차이가 있나?,,,(돈드는 일 아니니 올려봤음.)

 

오른쪽으로 천불암을 바라보면서 걸어 오르면 멀리 양메용 신산이 보인다.

야딩 내에는 초입에 약간 오르막이 있고 천불암이 보일 때부터 니우롱무창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는다. 고산병만 없다면 그야말로 가벼운 발걸음,,,

 

 

길을 넓힌다고 여기저기 파놓아서,,,,,,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의외로 천불암이 큽니다.  한참을 걸어도 천불암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네요,,,

 

 

돌무더기가 나오면 잠시 걸터 앉아 물한모금 마시고,,,

담배도 한대 피우고,,,

 

 

급하면 화장실도 가고,,,,,,,

 

 

저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가끔은 지나쳐 온 길을 되 돌아 보기도 하고,,,

 

그래서 마침내,,양메용 신산이  나타납니다.

 

 

순백의 꿋꿋함이 흔들림없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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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 야딩(2-천불암) - 길위에서 길을

031 - 야딩(2-천불암) - 길위에서 길을

 

2007년 10월 28일 늦가을의 야딩

 

여행중에 만난 곳중에는

어떤 곳은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어떤 곳은 풍광에 압도되어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다.

 

야딩은 사실 미려(美麗)한 수사나 자세한 설명이 불필요한 곳이다.

오히려 그 느낌을 해칠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 곳에 직접 가서 호흡하며 보는 것이다.

물론 불행하게도 고산병이 오면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에 그냥 사방을 돌아가며 휘둘러댄 똑딱이지만

감안하시고 사진이라도 봐주시길,,,,)

 

 

천불암(千佛巖)이 떠 오르는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에 가깝다.

 

 

 

해가 떠오르며 어둠에 감추어졌던 곳이 서서히 드러난다.

천불(千佛)이 아침 예불을 받는듯 햇다.

 

 

 

 

 

 

 

패트김이 부른 노래 중 '빛과 그림자"가 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가사는 신파조이지만 모든일에 양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적지않은 기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오자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햐,,부럽다,,,잘놀았군,,,좋았겠어,,,나두 한번 떠나볼까?,,, 팔자늘어졌군,,

돈은 얼마나 든데....'

 

그런데 단 한 사람  '외롭지는 않았어...."라고 물었다.

ㅎㅎㅎ 대답대신 웃고 말았지만 그 사람만이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빛만을 쫒으려 하고 그것만 보려 하지만...모든 사물과 일에는

'빛과 그림자'  양면이 항상 존재함을 잊지말아야 한다.

빛을 기꺼이 즐기지만

그림자보는 것을 애써 피하려 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생각이다.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동행자의 뒷 모습을 보면 들었던 생각이다.

 

 

빛속으로 걸어가는 동행자

 

그 빛 너머에 지상의 천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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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 리탕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26 - 리탕(理塘)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빠탕(巴塘)에서 오후 4시경 리탕가는 빵차를 잡았다.

차안에 아침에 망캉에서 같이 온 사람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빠탕에서 리탕까지는 60위안(元).

 

그런데 한가지  좌석이 뒷자리 중간 최악이다.

하지만 즐겁게 가야지,,뭐 방법이 없다.

 

빠탕부터는 스촨(四川)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티벳에서 보기 힘든 터널도 있었다.

 

이제 막 공사를 끝낸듯한 터널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역시 지방정부 재정 규모의 차이인듯 하다.

 

한참을 달린후 오후 6시경 뭐 좀 먹자고 차를 세운다.

나도 따라 내렸으나 늦은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탓에

별 시장기를 못느껴 주변만 구경하고 말았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은 것은 몇시간 후였다.

리탕에 밤 9시 30분정도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배가 고팟다.

ㅎㅎ 자업 자득이다. 먹을 수 있을때 먹어야 한다.

 

낡고 좀 지지분한 식당과 상점이 있었다.

 

주변은 좀 낡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타고 간 빵차, 차 지붕에도 짐이 가득하다.

 

이 곳 역시 캄(동부 티벳트)지역이어서 역시 먼 곳에는 타르쵸가 있었다.

 

 

 

 

빙설에 주의하란다. 시속 20km가 제한 속도란지 도로 번호가 20번이란지 잘 모르겠다.

 

빠탕에서 리탕 가는 길은 해자산(海子山 하이쯔 산 4675m)이 놓여 있다.

리탕에서 윈난성 방향으로 따오청(稻城) 가는 중에도 하이쯔산(4602m )이 있는데,

빠탕에서 리탕가는 곳에 있는 해자산이 좀 높아서 대(大) 해자산,

따오청 방향에 있는 것은 소(小) 해자산으로 불린다.

 

소해자산이라도 4600m가 넘는다.

 

대 해자산을 넘다 보면 자매 호수 메이메이 후(妹妹湖)가 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두 호수의 풍광은 색 달랐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으나 나중에 보니

아쉽게도 온통 어둠 뿐이었다.

 

메이메이후는 괴물이 살고 있어 괴물이 화가나면 '구구'하는 소리를 내어

티벳탄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을 생각하며 본 어두운 밤 달빛에 의지해 설산을 비추는 메이메이후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한 밤 중 초원을 달리는데 보름달만이 비추고 있었다.

 

밤길을 달리는 중 옆에 있던 젊은 친구는 비포장길에 차가 덜컹 거릴때마다

곡예하듯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지붕에 실은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지 살피곤 했다.

 

중간에 운전수가 문제가 생긴듯 차를 세웠다.

그러자 다들 하나씩 손전등을 꺼내 운전수를 도왔다.

여행자에겐 손전등이 다들 필수품인것 같다.

 

보름달이 떳다지만 어두운 밤 운전수는 차 밑으로 들어갔다.

별 일 없어야 되는데...고립무원 초원에서 밤새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 온다. 지나가는 차들도 끊긴지 오래다.

 

운전수가 임시조치를 하고서 차는 다시 달렸다.

이전 처럼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속도가 늦자 운전수는 음악소리를 키워 속도감을 높였다.

댄스음악에서 팝송, 중국노래, 티베탄 민속노래까지 참 곡 선정이 다양했다.

한국 댄스음악도 한곡 있었다.

 

wax의 '오빠'를 중국어로 번안한 노래였다.

천장남로를 달밤에 달리며 듣는 왁스의 오빠라니...참 오빠는 나쁜가보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밤 리탕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랑이는 여기에서도 있었다.

 

저녁무렵 나말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한명 있었다.

운전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약속이 있는지 운전수에게 늦는다고 화를 내며 계속 재촉을 하였다.

그건 좀 무리였다.

이 상황에서 재촉한다는 것은 운전수에게 '죽음의 레이스'를

강요하는 것 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좁은 빵차안에서 소위 "왕따"가 되었다.

아무도 그 사람의 말에 대구조차 하지 않고,,

담배도 권하지 않고,,,

 

중국에서(어느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빠오처를 하거나 빵차(사설승합차)를

탔을때 비굴하게 아첨할 것 까진 없지만 운전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대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존중해주면 한없이 친절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면,,감당키 어렵다.

친절하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끝없이 담배를 권하는 것일때가 많아서

 평소의 흡연량을 초과하기 일쑤이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늦었다고 애초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운전수 강하게 나온다. 결국 주변사람까지 운전수의 편이되어 원래 금액을 지불하고 말았지만.

자기가 급하면 빠오처를 하면된다. 정당한 대가 없이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 하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식당에서 8위안에 볶음밥을 먹고, 식당주인이 소개해준 건너편에 숙소를 잡았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랬는데 25위안 달란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라고 했다니까 웃으면 그건 3인실의 침대 하나값이란다.

글쿤,,,25위안이라는 착한 값에 침대 2개의 방을 혼자 사용했다.

 

하루 밤 25위안,  전기장판도 있다.

 

그렇게 세계고성(世界高成),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도시

(누구는 4500m라고도 하고 어디에는 4100m라고 하고, 어쨌든 4000m가 넘는다)

리탕(理塘)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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