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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파오마산을 내려 오며 저 멀리 금강사와 남무사가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걸어온 궤적이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네요,,,,

 

그래도 고생했다,,,내 두발,,,이렇게 칭찬해주었습니다.

 

 

오른쪽이 남무사, 왼쪽이 금강사입니다.

 

하지만 천천히 자세히 산허리를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랬동안 가꾸었던 밭들이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그저 경의를 표할따름입니다.

 

 

남무사

 

오른길과 내려온 길이 다랐지만 결국에 출발한 그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문성공주 다리와 나란히 마주해있는 다리에서요,  그 주변에는 올 여름(2007년)에 무너지 옹벽을

다시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세찬 물줄기가 캉딩 시내로 가로 질렀습니다.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욕실(목욕탕?)은 먼지쌓인지 오래 더군요,,,

 

 

캉딩 시내 안각사 근처

 

정지 표지판 (물론 보행자는 해당 안되지만,,,)을 보고 머추었는데 보기 드문 건물이 있었네요..

지붕을 경사가 심하게 만드는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동남아에서 볼수 있는 풍광인데요..

캉딩 시내 한가운데에서 보네요, 하지만 그 내력은 역시나 알수 없었습니다.

 

 

 

수정자(水井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우물입니다.

캉딩 시내에도 있더군요, 그 사연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점심으로 고작 쏘세지 하나 먹었더니

빨리 밥먹어야 한다고 온 몸이 아우성이었습니다.

 

그저 빨래 하는 아낙을 흘긋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수정자에서 빨래 하는 아낙

 

캉딩에는 기독교 교회당과 천주교당, 그리고 이슬람교 사원(청진사 : 중국식 표현)가 있다지만

역시 배고픔에 장사 없다고 찿지 않고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산위에 새겨진 암각화

 

 

다리위에 마련된 간이 채소 시장

 

 

역시 이곳에도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민이 있었습니다.

 

 

캉딩에서 거의 매끼를 해결한 식당에서 그날 저녁은 좀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당 주인장이 정성스럽게 담았다는 과일주도 한잔...

 

역시 백주 만큼 독했습니다.

 

 

식당의 마스코트, 이름은 메이메이(여동생,,,)

 

이렇게 빤이 올려다보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의자위로 단번에 폴짝 오른답니다.

 

몇번 보았다고 요리사와 종업원이 아는 체를 합니다.

티벳탄이었던 종업원은 고향이 중국의 제일 가는 전통마을의 하나로 손꼽히는

단빠(丹巴)에서 왔답니다.

단빠에는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 왈,,,,이제는 미인들 없어요,,,모두 북경이나 상해로 가버렸답니다.

춘절(설날)이나야 볼 수 있답니다...허걱,,,

 

주인장과 실없는 농담을 하며 캉딩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냈습니다.

캉딩 주위에는 무거쵸라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지만 이미 눈도 많이 내리고 해서

직접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여유로운 나는 그날 저녁을 그렇게 실없이 보냈습니다.

 

 

식당 주인장,,, 며칠 더 캉딩에서 묵으라 권했지만...

 

다음날 아침 눈덮인 캉딩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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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2007년 11월 1일

 

선녀대에서 바라본 선녀상의 등에 난 허망한 바람구멍을 보고 난후의  허한 마음이

역시 선녀대에서 바라본 바이타(백탑 白塔)이 충만하게 해주어 다행이었다.

 

 

백탑 너머로 보이는 산 정상에는 간밤에 내른 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일은 저 산 너머로 길을 재촉해야 하지만 오늘은 캉딩에서 머물 것이기 때문에

눈덮인 고개를 넘어야 할 험난함을 걱정하기 보다는

흰눈에 더 쌓였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만이 솟구쳤다.

 

파오마산 정상에는 아직도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이 있었다.

입장권에 안내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염치가 있어 보였다.

 

무료였다가 여기저기 공사투성이면서도 입장권을 받은 것이 괘씸했지만 한가닥 남은 염치가

그려려니 하게 만든다.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은 가려 간게 아니라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파오마산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하면서 오르고 오르다 보니 눈에 띄인 것이었다.

 

 

공사중인 라마 사원의 측면

 

 

라마 사원의 정면 -- 당시 그리 높지 않은 파오마산임에도 아래녘은 비가 위녘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일갈하는 석가모니의 탄생설화를 형상화한 석고 조각 

  - 쓰레기 하며 정리가 않되어 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음악은 흘러 나오는데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일하던 사람들이 눈온다고 일을 멈추고 아래 공사 현장으로

간식이라도 먹으러 갔나보다고 짐작해보았다. 

 

공사중인 사원에 음악(티벳음악 - 혹은 캉딩정가였는지도 모르겠지만)만 흘러 넘치고 인적은

없었다.

 

 

사원 입구에는 비비다 만 시멘트와 말똥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원 밖으로 나오자 들어 올때는 못보았던 20여분을 발길을 붙잡았던 모습이 있었다.

 

강소성의 우시의 영산대불, 홍콩의 청동좌불, 수 많은 사원의 부처를 보았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록 부처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고해의 삶을 표현하듯 우는듯(눈물을 흘리는 듯) 

혹은 웃는듯 한 모습이 오래도록 사라지지않았다.

 

 

 

눈 내리는 가운데 외로이 앉아있는 동자상

입장권에 표시도 되지 않은 작은 오솔길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하루종일 비와 눈이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3시경에 멈추었다.

하지만 파오마산 여기저기 운무(雲霧)가 자욱했다.

 

 

 

숲길을 걷다가 만난 노랗게 물들은 침엽수

 

 

한참을 걷다가 만난 막다른 길,,,담배 한데 피우고 되돌아 왔다.

 

 

달리고 싶은 것은 철마(鐵馬)만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공사중이었던 정인지(情人池)

 

 

정인지 옆에 있었던  선산정석(仙山情石)

 

 

어디서 많이 본듯한 정인지(情人池)

 

 

백탑

 

 

 

 

 

 

 

 

보호받고 있던 임려림(林侶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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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 리탕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028 - 리탕(理塘)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오래전에 읽은 책의 내용중 하나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렇다.

 

'한 겨울 작은 암자에 한 노승과 수발을 드는 스님이 있었다.

몹시도 추운 날 땔깜이 떨어지자 노승이 모시고 있는 부처님(나무로 만들어진)을

도끼로 쪼개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스님이 어떻게 부처님을 그렇게 할수 있느냐고

눈물로 애원 한다. 그러자 노승이 왈, '이 어리석은 것아 넌 이게 부처로 보이냐?'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광에 놀랐다.

처음 본 열대 우림, 만년설산, 빙하, 바다 같은 호수, 장강의 도도한 흐름,

사막의 아름다움,,,,,,,

 

그러다가 그들의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티벳의 사원, 이슬람 사원, 막고굴의 벽화, 진시황제의 병마용, ,,,

 

마지막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장 골목, 고단한 삶의 모습, 가족간의 우애, 들판에서 혹은 작은 공장에서의 노동,

초라한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는 가난한 노동자,

한잔 술에 흥겨워 하는 사람들.....광장에서 춤추는 청춘들과 노인들.

 

그리고 불안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리탕쓰에서 백탑위에서 자리잡고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든 생각 이었다.

 

흑백의 묘한 조화,

 

저 까마귀는 백탑의 의미를 알까?

인간이 숭배하고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죽어있는 백탑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

즉 인민들의 고단한 오늘과 내일(내세 일 수도 있고...)이 아닐까?

 

인민들이 얼어죽을 지경이면 부처님인들 불쏘시게로 쓰이지 못할까?

 

리탕쓰에서 내려다본 티벳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야 할

오래된 마을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내가 리탕쓰를 와야 했던 이유인가 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명칭과 유래는 정확히 모르겠다.

 

 

집을 수리 중인 티벳탄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여자들이었다.

 

 

흙과 돌 그리고 목재로 만들어진 티벳탄의 집들

 

 

지붕에는 롱다(불경을 적은 천)가....   담벼락엔 야크 똥이....

 

이집도,,,,,

 

다양한 돌을 아귀를 맞추어 가며 쌓아 올린 담벼락

 

 

색바랜 회 칠 한 벽

 

홍(붉은 색)과 백(흰 색)의 강렬한 결합

 

 

오래된 대문위에는 풀들도 자리잡고...

 

 

낡았지만 화려한 문양의 대문

 

티벳탄의 마을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점점이 흩어진 야크,,,그리고 마을 

 

 

마을길과 목책

 

 

여기 저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풀 밭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흙담벼락과 돌로 새로 만든 집

 

 

언덕위에 홀로 빛나는 타르쵸

 

 

 

 

그들의 염원이 샇여 만든,,,,

 

 

나도 돌 하나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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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오후 늦게 빠이(八一)에 도착하였다.

 

빠이는 원래 '라르가(拉日伽)'라고  하는 작은 부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린즈(林芝, 닝트리)지역의 중심도시이다.

그래서 이름도 중국인민해방군의 창군기념일(8월 1일)을 따서 八一로 불린다.

린즈는 원시삼림 지역으로서 나무가 빠른속도로 자라고 질이 좋아서

목재산업이 발달해 있다.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방을 잡고 택시를 탔다.

'천년의 나무'가 있다는 곳을 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택시비는 담합을 하였는지 일률적으로 30원을 부른다.

깍으려해도 안된다. 거리가 꽤되려나. 지도상으론 얼마 안되는데...

채 10분이 안걸렸다.

허 참....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樹王園林)'이란 곳이다.

입장료는 15위안이다.

비교적 늦게 도착하여 폐장시간을 물어보니..

관리인이 참 걸작이다.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단다.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천천히 보란다.

참 맘 좋은 아저씨...

수천년을 버텨온 나무들을 관리해서인지 통 한번 크다.

그 이름에 비해 입구는 소박하다.

바이수(柏樹)는 측백나무과의 나무로 원산지는 중국이며, 중국에서는 소나무와 함께

사찰이나 묘지에 많이 쓰이는 나무이다.

린즈에 있는 바이수는 중국 최대, 최고의 바이수이다.

해발 3040미터 주변에 10헥타르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것은 중국최대로 높이 57미터, 직경이 5.8미터, 추정 수령은 2600년이라고

입장권에는 안내가 되어 있다.

 

그런데....이건 뭔가...????

 

이 표지석의 설명에는 높이는 50미터, 수령은 2500년으로 나와 있다.

갑자기 키가 7미터, 나이가 100년이 줄어버렸다.

아니면 이 표지석은 이 나무가 50미터 정도, 2500살쯤일 때 세워진 것일까?

적어도 표지석이 100년 전 것이란 애긴가? 그럼 100년 동안 7미터 컸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아직은 여러가지 것들이 정확히 정리되지 못한 측면 들이 많다.

수천년을 모진 풍상을 겪으며 버티어온 역사 앞에서 100살이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단순한 나무를 넘어 '생명의 나무'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 경배되고 있는 마당에...

나무가 크고 오래되어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잘 보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이수 주변에는 수 많은 하닥(흰 비단천 : 티벳인들의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

이 걸려 있었다.

경배의 대상이 된 다바이수(대백수 : 大柏樹)를 한 컷으로 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대백수왕 ,ㅎㅎㅎ 어감이 그렇다. 나의 삶의 적지 않을 부분을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백수,... 친근하기도 하고 좀 거시기 하기도 하고,,,,,

아래부분

윗 부분

줄기 부분,,

다바이수왕 옆에는 사당 비슷한 것도 있다. 이미 주변에는 땅거미가 갈리고 있었다.

주변은 한 30여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양 각색의 나무들은 수천년을 지켜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군락을 이루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외감을 갖게 한다.

비록 그 줄기가 잘리고 갈리엇다 해도 생명의 연속성마저 귾을 순 없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그 자리를 지켜 내고 있었다.

저 멀리 어둠이 밀려와 여행자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자연에 비해 인간이 하는 짓이란 때론 이 정도 밖에 안된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싶을까?

하지만 저 나무는 그 상처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또 몇 천년을 버티어 낼 것이다.

낡은 표지판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너의 행동이 좋으면 그많큼 경치도 좋다 "   - 정확한가...ㅎㅎㅎ

오늘 밤에도 타르초는 낮은 울림으로 바람결에

'인간의 행복'을 위해 경전을 외고 있을 것이다.

 

올 때 받았던 명함을 이용 택시를 불렀다. 돌아가는 것 역시 30위안..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진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시절 집안에 잔치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를 잡을 때 듣던 그 소리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용 트럭에 군인들이 농가에서 돼지 두마리를 잡아서 실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 부대원들 '회식"하는 날인가보다.

앳된 병사의 얼굴들에는 오늘 밤에 있을 만찬을 기대하며 안색이 밝다.

집떠나, 애인과도 떨어져,,,얼마나 외롭고 힘들 것인가....

  

하지만 2008년 오늘은

그 때 보았던 병사들이 티벳 전역에서 티벳인들을 학살하는 도살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젊은 병사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총 칼을 쥐어 내보내서 학살을 명령하는 자들이고,

이를 방조하는 자들이다.

 

이밤도 앳된 병사들의 밝은 얼굴이 간직되어지기를,

티벳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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