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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053 - 캉딩(8) -  길위에서 길을

 

파오마산을 내려 오며 저 멀리 금강사와 남무사가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걸어온 궤적이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네요,,,,

 

그래도 고생했다,,,내 두발,,,이렇게 칭찬해주었습니다.

 

 

오른쪽이 남무사, 왼쪽이 금강사입니다.

 

하지만 천천히 자세히 산허리를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랬동안 가꾸었던 밭들이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그저 경의를 표할따름입니다.

 

 

남무사

 

오른길과 내려온 길이 다랐지만 결국에 출발한 그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문성공주 다리와 나란히 마주해있는 다리에서요,  그 주변에는 올 여름(2007년)에 무너지 옹벽을

다시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세찬 물줄기가 캉딩 시내로 가로 질렀습니다.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욕실(목욕탕?)은 먼지쌓인지 오래 더군요,,,

 

 

캉딩 시내 안각사 근처

 

정지 표지판 (물론 보행자는 해당 안되지만,,,)을 보고 머추었는데 보기 드문 건물이 있었네요..

지붕을 경사가 심하게 만드는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동남아에서 볼수 있는 풍광인데요..

캉딩 시내 한가운데에서 보네요, 하지만 그 내력은 역시나 알수 없었습니다.

 

 

 

수정자(水井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우물입니다.

캉딩 시내에도 있더군요, 그 사연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점심으로 고작 쏘세지 하나 먹었더니

빨리 밥먹어야 한다고 온 몸이 아우성이었습니다.

 

그저 빨래 하는 아낙을 흘긋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수정자에서 빨래 하는 아낙

 

캉딩에는 기독교 교회당과 천주교당, 그리고 이슬람교 사원(청진사 : 중국식 표현)가 있다지만

역시 배고픔에 장사 없다고 찿지 않고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산위에 새겨진 암각화

 

 

다리위에 마련된 간이 채소 시장

 

 

역시 이곳에도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민이 있었습니다.

 

 

캉딩에서 거의 매끼를 해결한 식당에서 그날 저녁은 좀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당 주인장이 정성스럽게 담았다는 과일주도 한잔...

 

역시 백주 만큼 독했습니다.

 

 

식당의 마스코트, 이름은 메이메이(여동생,,,)

 

이렇게 빤이 올려다보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의자위로 단번에 폴짝 오른답니다.

 

몇번 보았다고 요리사와 종업원이 아는 체를 합니다.

티벳탄이었던 종업원은 고향이 중국의 제일 가는 전통마을의 하나로 손꼽히는

단빠(丹巴)에서 왔답니다.

단빠에는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 왈,,,,이제는 미인들 없어요,,,모두 북경이나 상해로 가버렸답니다.

춘절(설날)이나야 볼 수 있답니다...허걱,,,

 

주인장과 실없는 농담을 하며 캉딩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냈습니다.

캉딩 주위에는 무거쵸라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지만 이미 눈도 많이 내리고 해서

직접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여유로운 나는 그날 저녁을 그렇게 실없이 보냈습니다.

 

 

식당 주인장,,, 며칠 더 캉딩에서 묵으라 권했지만...

 

다음날 아침 눈덮인 캉딩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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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052 - 캉딩(7 - 파오마산 - 下) - 길위에서 길을

 

2007년 11월 1일

 

선녀대에서 바라본 선녀상의 등에 난 허망한 바람구멍을 보고 난후의  허한 마음이

역시 선녀대에서 바라본 바이타(백탑 白塔)이 충만하게 해주어 다행이었다.

 

 

백탑 너머로 보이는 산 정상에는 간밤에 내른 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일은 저 산 너머로 길을 재촉해야 하지만 오늘은 캉딩에서 머물 것이기 때문에

눈덮인 고개를 넘어야 할 험난함을 걱정하기 보다는

흰눈에 더 쌓였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만이 솟구쳤다.

 

파오마산 정상에는 아직도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이 있었다.

입장권에 안내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염치가 있어 보였다.

 

무료였다가 여기저기 공사투성이면서도 입장권을 받은 것이 괘씸했지만 한가닥 남은 염치가

그려려니 하게 만든다.

 

공사중인 라마불교 사원은 가려 간게 아니라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파오마산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하면서 오르고 오르다 보니 눈에 띄인 것이었다.

 

 

공사중인 라마 사원의 측면

 

 

라마 사원의 정면 -- 당시 그리 높지 않은 파오마산임에도 아래녘은 비가 위녘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일갈하는 석가모니의 탄생설화를 형상화한 석고 조각 

  - 쓰레기 하며 정리가 않되어 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음악은 흘러 나오는데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일하던 사람들이 눈온다고 일을 멈추고 아래 공사 현장으로

간식이라도 먹으러 갔나보다고 짐작해보았다. 

 

공사중인 사원에 음악(티벳음악 - 혹은 캉딩정가였는지도 모르겠지만)만 흘러 넘치고 인적은

없었다.

 

 

사원 입구에는 비비다 만 시멘트와 말똥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원 밖으로 나오자 들어 올때는 못보았던 20여분을 발길을 붙잡았던 모습이 있었다.

 

강소성의 우시의 영산대불, 홍콩의 청동좌불, 수 많은 사원의 부처를 보았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록 부처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고해의 삶을 표현하듯 우는듯(눈물을 흘리는 듯) 

혹은 웃는듯 한 모습이 오래도록 사라지지않았다.

 

 

 

눈 내리는 가운데 외로이 앉아있는 동자상

입장권에 표시도 되지 않은 작은 오솔길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하루종일 비와 눈이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3시경에 멈추었다.

하지만 파오마산 여기저기 운무(雲霧)가 자욱했다.

 

 

 

숲길을 걷다가 만난 노랗게 물들은 침엽수

 

 

한참을 걷다가 만난 막다른 길,,,담배 한데 피우고 되돌아 왔다.

 

 

달리고 싶은 것은 철마(鐵馬)만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공사중이었던 정인지(情人池)

 

 

정인지 옆에 있었던  선산정석(仙山情石)

 

 

어디서 많이 본듯한 정인지(情人池)

 

 

백탑

 

 

 

 

 

 

 

 

보호받고 있던 임려림(林侶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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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 리탕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028 - 리탕(理塘)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오래전에 읽은 책의 내용중 하나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렇다.

 

'한 겨울 작은 암자에 한 노승과 수발을 드는 스님이 있었다.

몹시도 추운 날 땔깜이 떨어지자 노승이 모시고 있는 부처님(나무로 만들어진)을

도끼로 쪼개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스님이 어떻게 부처님을 그렇게 할수 있느냐고

눈물로 애원 한다. 그러자 노승이 왈, '이 어리석은 것아 넌 이게 부처로 보이냐?'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광에 놀랐다.

처음 본 열대 우림, 만년설산, 빙하, 바다 같은 호수, 장강의 도도한 흐름,

사막의 아름다움,,,,,,,

 

그러다가 그들의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티벳의 사원, 이슬람 사원, 막고굴의 벽화, 진시황제의 병마용, ,,,

 

마지막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장 골목, 고단한 삶의 모습, 가족간의 우애, 들판에서 혹은 작은 공장에서의 노동,

초라한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는 가난한 노동자,

한잔 술에 흥겨워 하는 사람들.....광장에서 춤추는 청춘들과 노인들.

 

그리고 불안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리탕쓰에서 백탑위에서 자리잡고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든 생각 이었다.

 

흑백의 묘한 조화,

 

저 까마귀는 백탑의 의미를 알까?

인간이 숭배하고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죽어있는 백탑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

즉 인민들의 고단한 오늘과 내일(내세 일 수도 있고...)이 아닐까?

 

인민들이 얼어죽을 지경이면 부처님인들 불쏘시게로 쓰이지 못할까?

 

리탕쓰에서 내려다본 티벳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야 할

오래된 마을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내가 리탕쓰를 와야 했던 이유인가 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명칭과 유래는 정확히 모르겠다.

 

 

집을 수리 중인 티벳탄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여자들이었다.

 

 

흙과 돌 그리고 목재로 만들어진 티벳탄의 집들

 

 

지붕에는 롱다(불경을 적은 천)가....   담벼락엔 야크 똥이....

 

이집도,,,,,

 

다양한 돌을 아귀를 맞추어 가며 쌓아 올린 담벼락

 

 

색바랜 회 칠 한 벽

 

홍(붉은 색)과 백(흰 색)의 강렬한 결합

 

 

오래된 대문위에는 풀들도 자리잡고...

 

 

낡았지만 화려한 문양의 대문

 

티벳탄의 마을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점점이 흩어진 야크,,,그리고 마을 

 

 

마을길과 목책

 

 

여기 저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풀 밭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흙담벼락과 돌로 새로 만든 집

 

 

언덕위에 홀로 빛나는 타르쵸

 

 

 

 

그들의 염원이 샇여 만든,,,,

 

 

나도 돌 하나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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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리탕은 세계 고성(高城)이다.

라싸 보다 높은 고도를 자랑한다.

 

약간은 고산병을 우려 했으나, 별탈이 없어서 다행이다.

 

티벳과 중국을 여행하면서 고산병도 없고, 몇번의 감기 이외엔 특별히 아픈곳도 없고,

좀 무리다 싶은 트레킹과 강해군에 잘버텨준 내 몸과

이 몸을 갖게 해준 두 분께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

 

리탕의 주변에 있는 마오야(毛亞) 대초원은 면적이 5000평방km에 달하는 초원이며,

매년 8월 1일에 열리는 말 경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도 말타기는 잘하는데...

(오래전 네이멍구에 가서 일주일 내내 양한마리 다 해치우고 오로지 말만 탄적이 있다.) 

 

허나 지금은 초원의 푸르름은 간데 없고 마른풀만 지천인 늦가을,

2007년 10월 27일이다.

 

아침은 거의 변함없는 아침메뉴인 '시판(죽)과 티아우(꽈배기),  삶은 계란(이건 항상 2개)를

9원에 먹었다. 착한 숙소를 소개해준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따오청 가는 버스를 확인하니 오후 2시에 출발 한단다.

아침에는 표를 팔지 않고 그때 와서 사란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짐을 맡기고 오후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숙소 종업원이 하루 더 묵으라고 하나 착한 가격과 친절에 주저앉아서는 안되다.

 

야딩이 2007년 여름부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따오청에 가서 일단 부딪쳐 보고 입장이 불가능하면 ,

무리를 해서라도 무리(木里)를 통해서 트레킹하여서라도 야딩에 가려고 계획하였다.

 

시간이 문제다. 더 늦어지면 추위와 눈 때문에 야딩 트레킹 진입조차도

불가능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를 묵은 설역명주식숙점

 

리탕쓰(理塘寺)에 가기로 했다.

리탕쓰는 창칭춘커얼쓰(長靑春科爾寺)라고도 불리며

원래는 흑교사(黑敎寺)였으나 명(明)대에 3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을 지나면서

황교(黃敎)로 바귀었다고 한다. 그 후로 캉띵 주변의 가장 큰 절이 되었고

 남부 캄(동부 티벳)의 주요 라마교 성지가 되었다.

 

사원내에는 석가모니 금동상과 불교경전, 3대 달라이라가가 사용했던 말안장, 명/청대의 벽화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티벳력으로 정월 15일, 수유채소화회 - 꽃 소조에 양, 야크의 젖으로 만든 기름, 수유와 각종 물감을 혼합하여 채색하는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시내에서 20분정도 걸으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도 거의 없어 조용하고 좋았다.

 

 

초입에 있는 백탑과 마니석 더미

 

리탕쓰 정문 : 입장료는 없었다.

 

 

 

라마승과 어린이

 

나는 보기와는 달리 뻔뻔스럽지 못해 사람들 사진을 찍을때면 막 들이 대지를 못하겠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못 할 짓이다.

그리고 옳지도 않다.

설사 아이들일지라도...

 

그래서 그저 멀리서 찍는 정도 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그리 즐겨 하는 것도 아니고...

 

 

 

새롭게 단장 한듯 하다.

 

 

 

 

 

마니석,  옴마니 반메옴

 

내 지갑에도 오래전 집을 떠나 올때 어머니께서 주신 '옴마니반메옴'이 수 놓아진 부적이 있다.

시골집에 가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이지만 갈때마다

어머니는 슬그머니 부적 잘 가지고 다니는지 확인하시곤 한다.

종교나 믿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 마음이니 지니고 있다.

 

 

리탕쓰의 외곽 모습

 

 

백탑과 까마귀

 

백탑위에 올라앉아 있는 까마귀를 한참 보다가,

 

내가 왜 리탕쓰에 와야 하는지를 깨닭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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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 빠탕 - 길위에서 길을

025 - 빠탕(巴塘) - 밥벌이의 서러움 - 길위에서 길을

 

망캉(芒康, 마캄 : 티벳식 지명)은 천장공로와 전장공로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쓰촨으로 윈난으로 라싸로 갈수 있다.

 

야딩으로 가려는 나는 바탕 가는 차를 알아봤다.

없다네... 

 

야딩은 리탕으로 해서 갈수 도 있고, 윈난의 중티엔에서 갈수도 있다.

중티엔은 지난 여름에 다녀왔기 때문에 리탕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그러자면 천년의 소금 우물 엔징은 못 보게 된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법,,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는 부를 버려야 하고

명예를 얻고자하는자는 부와 권력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 문제되는 강/부/자나 고/소/영이나

다들 어느 것 하나 놓지 못하고 다 얻으려 하는 자들이다.

못된자들이다.

 

 

삶은 어쩌면 무언가를 얻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는 선택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버스가 없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아침부터 먹고,,,

 

 

아침 식사를 한다는 표시의 좌판,,,만두와 꽈배기 튀김..

 

아침을 먹고 터미널 주변을 어슬렁 거리자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먼저 찾는다.

 

어디가냐? 묻는다,  빠탕,

얼마냐? 50위안,  오케이,

버스비와 같다. 소위 빵차(사설 승합차)는 대개 버스비와 같거나 비슷하다.

그래야 영업이 가능 할듯,

버스가 없더래도 버스비는 확인해두는 게 필수,

그래야 빵차 요금 흥정 할때 기준점이 된다.

 

언제 출발할거냐? 한시간 정도 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상(馬上 : 곧, 즉시라는 의미)이라고 하는 것보다 낫다.

마상이라는 의미는 5분후일수도 있고 30분 후일수도 있고, 한시간 혹은 두시간 이후일수도 있다.

 

이제는 이 빵차 기사가 최대한 빨리 다른 승객을 구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럴때 책은 거의 필수다.  아침먹은 식당에서 차를 무한 리필 하면서 기다린다.

 

무려 2시간 반이나 지난 11시에 출발한다. 불행이도 내가 맨처음 예약자였다. 정말,,,

두대가 함께 출발하려니 더욱 시간이 걸렸다. 둘이 동업자인지 친구인지 모르겠다.

 

 

가던중 망캉행 빵차가 멈추어 섰다.

우리 빵차도 동업자 정신 발휘, 차 세우고 공구들 꺼내 펑크난 타이어 교체 하는 걸 돕는다.

길이 비포장이니 이런일이 자주 있을 듯

 

,,,  )...

 

 

길은 역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운전수의 불친절, 안하무인의 태도(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잘 못알아먹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는 차가 겉보기와는 달리 차 바닥이 잘못되었는지 먼지가 차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차안이 뽀얗게 먼지가 춤을 추었다.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우여곡절 끝에 빠탕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리탕까지 갈 생각 없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다들 캉딩이나 리탕으로 가야 할 사람이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도 그 차로는 갈려고 안한다.

 

좋은거든 나쁜거든 사람들이 느끼는건 비슷하고 반응도 비슷하다.

 

오후 2시쯤 도착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터미널에서 버스를 확인한다.

낼 아침에 캉딩가는 버스가 있단다. 그런데 리탕은 표를 안판단다.

낼 아침에 와보란다. 다행히 좌석이 있으면 그때 타라고 한다.

캉딩행(장거리니까..) 표부터 우선 팔겠다는 심산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표 예매하고 숙고 잡고 하는데

난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퍼밋없이 티벳을 여행한 나는 사천에 들어오자 약간 여유로와졌다.

별 신경은 안썻지만 그래도 좀 꺼림직한건 사실이었다.

 

 ..

언제 다시 라싸에 갈보려나...

 

터미널 주변에서 식당을 찾았다.

 

 

간판도 새로하고 깔끔해 보였다.

 

이미 2시가 넘어서 우선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한단다.

중국의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영업을 안한다.

 

우선 배부터 채우자. 젤 불쌍한게 배고픈 여행자이니...

 

 

음식 맛 비교적 훌륭했다. 시장해서 그런가.....

 

그런데 한 종업원 아가씨가 계속 비교적 물을 많이 마시는 내가 잔을 비울때 마다 채우는 것이었다.

그냥 주전자를 달라고 해도 괜찬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속 물을 채운다.

식당안에 오로지 손님이 나하나 밖에 없어서 그냥 편히 쉬라고 해도 계속 서비스를 한다.

 

중국의 고급 식당에서는 비교적 서비스가 훌륭하나 일반식당에서 이런 서비스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고급 호텔이나 일식집에서조차 서비스 받는 것을 불편해 하고 심지어 고급 고기집에서조차

직접 고기 자르고 굽는게 속편해 하는 나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다가 식사를 마치고 내가 여행지도와 책자를 보고 있자니 묻는다.

중국사람 아니냐고,,,갑자기 종업원 모두가 몰려왔다. 자기들은 한국사람만이 아니라

외국 사람  첨 봤다나...

 

리탕 가는 차를 못 구했다고 하니,,,빵차가 있을 거라는 둥,

아니면 자기들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트럭이 곧 올거라는 둥 여기저기 알아보고 난리다.

나야 곱맙지요..

 

짐은 식당에 맡겨 놓고 식당 앞에서 해바라기도 하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도 했다.

 

녹음이 우거진 마을

 

위의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앞에는 진사장(金沙江)이 흐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가 식당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윈난에서 왔다고 한다.

 

 

 

밝은 웃음이 너무 좋은 친구다.

 

그렇게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들 무슨 모임을 한다고

나보고 오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종업원들이 다들 원형 식탁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뭔일인가?

 

나보고 손님 역할을 하란다. ㅎㅎ 허걱.

그러마, 그러니 종업원 한명이 차를 내오고 차이딴(메뉴판)을 들고 와서

뭘 시킬지 물어본다. 어딘가 좀 서투르다.

그래서 이집에서 가장 잘하는 요리가 뭐냐, 이것 저것 주문해 보았다.

 

궁금해 물어 보니 접대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시후 종업원 복장이 아닌(아마도 사장인 듯 싶다) 여자 2명이 지적한다.

순서가 틀렸느니,,뭐가 어쩌니....정색을 하고 지적하는 통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러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친구가 적극 옹호하며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나선다.

 

자리가 어색해져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아마도 그 종업원은 티베탄이고 좀더 한 단계 높은 일을 맡기위해 테스트 중이었나보다.

티베탄에게는 보통화는 외국어이다. 그리고 서비스란게 익숙치 않으면 쉽지 않다.

 

허걱 내가 괜히 잘 못 끼어들었나. 거의 울상이 된 그 종업원이 잘 되었으면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서비스 연습도 하고

그래서 아까 이상할 정도로 그렇게 친절하게 대했다는 생각이든다.

 

밥벌이는 녹녹치 않다.

 

요즘 내가 충성(용어가 적절치 않지만,,) 하는 대상은

첫째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맞는 것이다.

둘째는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일 거리를 주는 사람)이다.

 

세상에 꽁짜도 없고 밥벌어 먹기도 싶지 않고...

식당에서 서빙하는 것 조차 엄격히 테스트를 거치고 연습해야한다는 모습에

새삼 밥벌이의 녹녹치 않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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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 쭈카, 붉은 빛의 향연 - 길위에서 길을

024 - 쭈카((竹그 붉은 빛의 향연 - 길위에서 길을

쭈카는 산맥을 횡단하는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특이하게도 붉은 빛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흙 빛이 한국의 남도 황토처럼 붉은 빛이다.

 

 

특히 해저무는 시점에 도착한 주카는 그 붉은 빛이 여행자를 황홀케 하였다.

 

 

 

건기라서 강물은 그 수량이 매우 적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햇살에 비추는 티벳탄의 집은.... 

 

 

하역 작업을 지켜보는 운전사 아저씨...

 

 

보물 하역이라도 되는 듯 여행자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방향이었다.

그림자는 한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길을 막자 집으로 돌아가는 양떼는 도랑으로 우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쭈카의 잊을 수 없는 붉은 빛을 뒤로 하고 밤 늦게 망캉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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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 각파산 - 길위에서 길을

023 - 각파산(脚巴山)  - 길위에서 길을

 

빵다에서 출발한 버스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내내 달렸다.

비교적 너른 밭이 있어 여기저기 보리 추수의 흔적이 보인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천장공로를 가다보면 가로수를 보기 힘들다.

땅이 척박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야크나 양떼가 남겨 두지를 안는듯 하다.

 

그래서 가로수를 보면 이렇게 가시나무를 둘러 치거나 돌로 샇아

보호막을 설치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티벳 전통 가옥,,

 

 

우리 버스의 운전사 아저씨(대머리 아저씨)와

캉파 티베탄 전통의 붉은 머리 장식을 한 두명의 차장, 그리고 승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늦가을 볕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가끔 충동적이 될 때가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보면 이 곳에서 며칠 머물다 갈까?

 

저 여인을 따라 가면 무슨일이 생길까?

갑자기 그녀를 따라 가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렸다.

 

 

망캉행 버스, 나와 마찬가지로 라싸에서 왔다.

 

쭈어꽁(左貢)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는 각파산을 향해 달렸다.

 

 

 

고개에 접어들자 대머리 운전수 아저씨가 피곤한지,

젊은 차장에게 운전대를 넘긴다. 그저 차장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운전은 더 와일드 해졋다. 길이 험해져 가는데도...

 

 

구비 구비 돌아서,,,,

 

물 채우는 곳을 지나

 

 

 

 

저 길을 지그 재그 돌아 내려 왔다. 

길을 어찌 만들었는지,,,, 그 고생이 눈에 선했다.

 

버스의 브레이크는 과열될대로 과열되었다.

 

 

 

그렇게 각파산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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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 빵다(갈림길) - 길위에서 길을

022 - 빵다(邦達) - 갈림길 - 길위에서 길을

 

아침 6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부산하다.

 

팍쇼 버스터미널 안에는 버스가 2대 있었다.

하나는 창뚜(昌都  참도 : 티벳식 지명)행 버스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지인  망캉(芒康 마캄 : 티벳식 지명)행 버스다.

 

그런데 망캉행 버스에는 빈 좌석이 없단다. 낭패다.

우선 창두행 버스를 타고 빵다에서 다른 차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빵다는 망캉, 창뚜, 라싸  세방향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다시 말해서 교통의 요지다.

 

버스 차장이 숙소마다 버스승객들을 깨운다.

어제 늦게 도착한 승객들인 것이다.

 

이른 아침에 깬 아기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간단히 세수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빠진 사람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버스는 떠난다.

 

 

누지앙산 (怒江山)  72 고개길을 이른아침부터 힘들게 올라간다.

사진은 안타갑게도 통로쪽 좌석인지라....없네요...

 

72 고개길을 돌고 돌아 이에라산( 業 拉山  4615미터)을 넘자

비교적(?) 평탄한 길을 달린다.

 

앞 쪽 창가에 앉은 여행객 중 하나(한족인듯 싶었다)가 창문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 댔다.

 

하지만 그통에 찬바람이 온통 내에게 달려 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바람은 차가웠다.

 

문좀 닫아 달라 부탁하자 못 마땅한 표정의 그 남자, 마지 못해 닫는 시늉만 한다.

허걱,,, 당혹스럽게 하는 뻔뻔스러움,,,, 

자신만 좋다면 다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는 중국인의 행동에 혀를 내두룰 때가 자주 있다.

 

...때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기도 한다.

 

  

 

 

 

 

 

힘들게 고개를 넘어온 버스가 물을 채우기 위해,,,사람은 물을 버리기 위해 잠시 섰다.

 

 

아침부터의 소란스러움에 한 아이가 나와 지켜 보고 있었다.

 

 

물레방아도 있었다. 현재도 이용하는 듯 했다.

 

 

라싸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들도 있었다.

 

 

빵다 풍경이다. 

 

전형적인 길이 생기고 나서 식당과 숙박 업소가 생긴 마을이다.

특히 삼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한마디로 목이 좋은 곳이다.

 

 

 

 

 

짐도 내리고 사람도 내린다.

 

나는 배낭을 챙겨들고 망캉방향으로 자리잡고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뭐 오겠지..급할거 있나?.

 

곧 버스가 들어왔다.

망캉행이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그런데...

 

 

저 멀리 버스가 들어 오고 있다.

이게 왠걸, 아침 빠수에서 빈좌석이 없다는 그 버스였다. 

우리 버스를 뒤따라 왔던 것이다.

 

혹시나 내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가봤다.

버스 차장이 타라고 한다.

 

버스에 올라서 자리는 하고 물어 보니?...

천연덕스럽게 씩 웃으며 자신의 옆을 가르킨다.

 

정식 좌석은 아니고 보조석 비슷한 ,,,,

허걱,,,허나 어저랴 길은 가야 하고 찬밥 더운밥 가릴대가 아니다.

엉덩이를 비집고 자리를 앉자 차장 게면적게 웃으며 과자를 건넨다.

ㅎㅎㅎ  그렇다고 해서 버스비는 절대 할인 없다.

 

  

천장 남로에 본 비교적 튼튼한 다리, 수심도 무척 낮고,,,,,

30여분 달리자 버스가 선다. 마을도 없는데....

 

도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을 기다린 것이다.

 

인상 좋게 생긴 그 차장 또 씩 웃으며 이제 빈좌석에 앉으라 한다.

 

 

온 동네 오토바이가 다 나온듯 했다.

 

 

강렬한 태양을 피 할길 없는 도로변이라 다들 스카프를,,,춥기도 하고,,,

 

 

짐을 내리는 차장

 

균형을 맞추어 최대한 짐을 실은 오토바이...

 

 

아내와 아이까지 태우고 오토바이는 출발한다. 

 

사내의 넓은 등이 듬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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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 통마이 다리와 뽀미 - 길위에서 길을

019 - 통마이(通麥) 다리와 뽀미(波密) -길위에서 길을

길은 점 점 험악해져 간다.

천장공로 중 가장 험악한 구간 중 하나이다.

 

길은 비포장되었고, 우기에는 산사태로 끊기기가 다반사라 한다.

 

길 옆은 낭떠러지이고, 거친 물살이 쉼없이 달리고 있었다.

좁은 길에서 간혹 차라도 만나면 신기에 가깝게 서로 피해간다.

분명 1차선에 가까운 길을 어찌 저리도 잘 피해가는지...

 

길을 돌때마다 기사는 경적을 울려 댄다.

서로 알아서 상대방을 인식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버스가 좌우로, 위아래로 몹시도 흔들려 대는 통에

사진이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만사가 신의 뜻'이라 여기고 운전사만 믿어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편물 수송트럭이 갑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밀려나가 거의 종이 한장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앞에서 오던 우편물 수송 트럭 운전사나 우리의 버스 운전사나

서로 화를 낼 겨를도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빴다.

 

한참을 후진해서야 서로 비킬 만한 곳을 찾았다.

후진은 더 살벌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통마이 다리이다.

 

2000년에야 새로운 다리가 완공되었다니...

아직 옆에 남아 있는 예전 다리를 보니,

이전엔 얼마나 험한길이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 웠다.

 

 

통마이 다리는 이꽁(易貢)과 뽀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이공은 차농원과 이꽁호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통마이 대교의 도로 표지판

 

 천장공로 가다 보면 무경(武警)교통 당국의 경고표지판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주로 정원초과 문제, 중량초과 문제 등의 주의 표지판이다.

 

이곳 교통경찰은 무장경찰이다. 그래서 이름도 무경(武警)이다.

군인과 경찰의 중간적 성격이랄까?  이들이 검문검색을 담당한다.

 

내가 탄 버스안에는 2명의 어린남매가 타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운전수가 신호를 한다.

그러면 이 두남매 중 번갈아 가며 하나는 아버지나 엄마의 좌석과 무릅사이로 숨는다.

그리고 커다란 옷으로 덮는다.

 

정원초과인 것이다. 그러면 다른 승객인 우리들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시치미를 뗀다.

대개 검문소에서는 버스 차장이 내려가서 보고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끔 직접 차안에 올라와서 검문하는 경우도 있다.

 

퍼밋없이 여행하는 나로서는 퍼밋 보잔 이야기가 나올까봐 잠시 걱정도 해봤지만

'걸리면 벌금 내지' 하는 여유로움마저 갖게되었다.

 

그렇지만 천장공로를 지나는 동안 여권이나 퍼밋 보잔 이야기는 없었다.

주로 올라와서 정원 초과 여부 등만 살펴보고 가는 것 같았다.

 

 

  정원/중량 등등 지키래요,,,,

통마이 대교를 넘는 차량은 15톤이 넘으면 안된다.

그래서 버스안 승객은 모두 하차해야만 한다.

 

다리 앞에서 버스가 서자 모두 내리란다.

내 짐작으론 '또 화장실 다녀오란 이야기구나" 했다.

 

그런데 왠걸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는 건 눈치뿐,,,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내려서 걷는게 당연했다.

 

 ,,,

 

다들 버스에서 내려서 이열 종대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 상판은 이랬다.  보기보단 튼튼했지만...

 

이렇게 밑을 보면 좀 아찔하다.

 

 

 

군기는 금방 무너져 내렸다. 이열 종대는 곧 각자 맘대로 ....

 

 

랜드크루져 또한 다리를 건넜다. 여기에 탄 승객은 하차하지 않았다.

 

내려서 다리위를 걸어 보는 것도 괜챤을 텐데.....

 

 

옆 난간은 케이블과 철빔으로 만들어져 튼튼해 보이긴 한다.

 

 

승객이 다 건너자 우리의 버스도 다리를 건넌다.

 

 

저입니다.

 

 

옛 통마이 다리입니다.

 

좀 험난해 보이지요.

 

 

우리의 앞길에 또 설산이 부르고 있었습니다.

 

 

점심 무렵 도착한 뽀미(포메 : 티벳식 지명)의 시장거리입니다.

 

중국을 혼자 여행할때의 불편한 점 하나가 밥 먹는 것입니다.

 

자주 먹었던 볶음밥(양저우 짜오판)입니다. 

양만큼은 부족함이 없었읍니다.

 

 

뽀미의 파롱짱부강변에서 본 풍경입니다.

여기도 광동에서 돈을 댔군요..

 

 

강 상류쪽 방향입니다.

 

 

강 건너편 마을 모습입니다.

 

 

강 하류 방향에는 역시 설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버스 터미널 안입니다.

 

 

 

설산이 보이는 터미널 넓은 공터에 오로지 우리가 타고가야 할 버스 한대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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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 린쯔(링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16 - 천장남로 - 닝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길을 가다 보면 갈 길을 막는 것은 다양하다.

 

때로는 폭우나 폭설로 길이 막히기도 하고,

돌더미가 굴러서 오도가도 못하게 한다.

 

또한 멎진 풍광이 여행자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고,

새로 사귄 친구가 손을 붇잡고 잠시 머무르기를 청한다.

친구가 머무르기를 청하는 것은 가장 최상의 길막음이다.

 

길막음 중 가장 최악은 보내기로 한 돈이 제 날짜에 오지 않아

여행자의 행보를 막는 것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거나 걷는 수 밖에 없다.

 

빠이(八一)로 향하는   길을 막은 것은

내가 사랑하는 놈이었다. 그것도 잠시 막은 거지만...

 

그 녀석이 없었으면 중국 여행 하는 동안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인민들에게 닭과 함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니까..

 

바로 이녀석이다.

 

 

그 내딛는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급 할 것도 없었다. 사방천지가 자신의 영역이었다.

 

굳이 누구의 소유라고 표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 가 둘 필요도 없는 듯햇다.

스스로 돌아 다니며 먹다가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예전 고향집 암소가 생각났다.

어릴적 논갈이가 끝나면 늙은 암소를 그냥 풀어 놓는다.

그러면 제 스스로 논둑, 밭둑을 따라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주인보다 먼저 집에 돌아가

있었다. 시골 동네에서는 뉘집 소라는 걸 잘알기에 도난의 우려도 없었고,

비록 짐승이라지만 수년을 함께 살아온 덕에 제 집을 잊을리 없었다.

영특하게도 인간이 사용 할 식량에는 눈 길 한번 주지 않고 스스로 먹을 풀을 찾기까지 한다.

 

아마도 우리의 길을 막고 섰던 이 녀석도 이 동네에선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또 다른 녀석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용맹함은 늑대와도 겨룰만하고 변치않는 충성심을 겸비한 녀석이었다.

 

요즈음은 중국인 부유층에게 사치품으로 인기가 높다는 티벳의 개였다.

 

    

 

빠이로 가다 보면 티벳식 명칭은 잘 모르겠으나 중국인들이 중류지주(中流砥柱)라 불리우는

것이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강 중간에 있는 돌기둥이다.

 

관광객들이 몇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아마도 매일 그곳을 지나치는

우리의 운전사 아저씨는 잠시 쉬기는 거녕 속도조차 늦출 생각이 없었다.

 

수만년을 그자리에서 한결같이 버티었을 것인데, 그냥 획 지나가버렸다.

아쉬어도 어디 항변 할 것은 못되었다. 속된말로 운전사 맘대로 아닌가....

 

 

 

그렇게 획 지나가버렸다...ㅎㅎㅎ

 

 

 

하지만 그 길의 풍광은 사뭇 변화무쌍하였다.

 

 

정처없이 길 떠나는 베가본드(vagabond)에게는 하교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잠시나마

떠나온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 도착하게 될 빠이는 저 설산 너머에 있는 걸까?

눈이라도 올 듯 심상치 않다. 

 

 

 

저 설산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는 여행자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운다. 왜 섰는지 언제 출발할지 별 말도 없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에서 내린다.

아하 생리적 현상을 해결 하라는 것인가 보다. 여기저기 흩어진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후에도 출발할 생각이 없다. 일부는 주저 앉아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2006년 천장공로에서 다수의 외국인을 태운 버스가

전복되어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천장공로를 가다보면 사고가 않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 할 정도로 험악하다.

 

그래서 당국은 운전사들의 과속을 막기 위해 구간구간을 정해서 출발시간과 도착 시간을

지정해준다고 한다. 1초라도 빨리 목적지(검문소)에 도착하게 되면 약 800위안 정도의

벌금을 물린단다.

 

그렇다고 운전수가 저속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목적지에 다다를 쯤 적당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라도 운전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니 사고는 어느정도 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하는 일 없는 당국이 그나마 잘한 일중의 하나 인것 같다.

 

티벳지역을 여행하다보면(버스 이용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토를 한다.

아마도 평소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큰 맘먹어야 장거리 여행을 하니 버스타는 일이 익숙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멀미약을 구비할리 만무하고,,,,,

 

힘들어하는 티벳탄에게 좀 진정이 될까 싶어 생수를 건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과자며 이것 저것을 답례로 건넨다.

이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디를 가냐, 어디서 왔냐..자기집이 남가파와봉 근처인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들 관심을 표했다.

 

 

어떤 휴게소 보다 아름다운 휴게소였다.

 

주변엔 강도 있어 금상첨화였다. 

 

천장공로는 고개를 넘으며 강을 따라 가는 길이기도 했다.

 

  저 물길 처럼 나도 어딘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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