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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8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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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5/27
    금자탑_아마츄어증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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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5/19
    屍즙 혹은 詩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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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3/11
    노회찬 조선일보 댕겨 왔다며?(뽀린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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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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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0/02/19
    [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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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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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12/10
    가난- 우중독보행. 시젬 쌀롱바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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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 등록일
    2010/06/08 17:43
  • 수정일
    2010/06/08 17:43

새벽 대취해서 간만에 거리에 발라당 누웠다.

 

 

 

새벽 밤하늘...별은 가물가물 보이지않았지만, 솔솔 바람이 불어오고

흰 새털 구름이 흘러가더라.

 

세월들...아픈 세월들이 그렇게 흰구름처럼 흘러 사그라저만 간다.

 

새털구름이 지나고 나면 날이 흐려지고 소나기가 온다던데

 

그 말이 맞은 셈. 어제 명동성당앞엔 소나기가 한차례 왔다고 한다.

 

내 맘에도 궂은 추억들, 잠깐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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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탑_아마츄어증폭기

  • 등록일
    2010/05/27 10:30
  • 수정일
    2010/05/27 10:30

아마추어 증폭기의 금자탑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아니아니 아니예요

 

 

   나는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아침 깨어나자마자 간만에 녹음을 해본다.


어떤 아침은 찌뿌등한데

오늘은 하루밤 꿀잠 단잠 잔 느낌이다

개운한 생각들로 하루를 시작해본다.

 

생의 쉼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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屍즙 혹은 詩즙

  • 등록일
    2010/05/19 22:17
  • 수정일
    2010/05/19 22:17

屍즙 혹은 詩즙


한때,내 몸을 간질거리며 돋아나던 초록이파리들
달콤한 시가 되고 흥얼거릴만한 노래가 되던 시절이 있긴 했다.

이젠, 낙엽들만이 내 온몸 더덕더덕 장식하고
바람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다.

떨어져야할때 떨어지지못한
버리지못한 욕망들 물큰거리며
가슴 시리게 한다.

후드득 잠시 빗방울 지나고 나면
날개를 쉬던 영혼의 작은 새
다른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겠지.

생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은
단 한번의 계절일뿐

생의 재미났던 봄 지나고
서늘하기만 했던 여름을 추억한다.

뿌리는 더 깊히 뻗지 못하고
열매 맺기 위해 피워 냈던  꽃엔
서리서리 서리가 일찌감치 내렸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내 삶의 뭉텅뭉텅한 한 시절,

시즙이 자꾸만 땀방울처럼 흘러내린다.
시즙이 고여 썩기만 한다.

 

 

요새 연습하는 노래는

 

 

아마추어 증폭기의 금자탑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아니아니 아니예요

 

 

  나는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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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조선일보 댕겨 왔다며?(뽀린글)

  • 등록일
    2010/03/11 00:01
  • 수정일
    2010/03/11 00:01

(미리 말해두자. 욕 많다. 근데 보이스웨어로 욕 읽으면 웃기지 않나?)

잘했다.

1.

진 보놀이 하는 등신들 또 잔뜩 달려들어서 안티조선 꺼내들며 블라블라 해대고 있을 텐데, 까는 소리하고 있네. 니들은 그럼 노회찬이 또 난 조선일보랑 인터뷰 안할꺼걸랑요 따위의 개드립 날려서 대통령질이라도 해먹을 꺼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예전에 도 말한 적 있지만, 21세기 남한에서 사회주의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진보가 좆망한 원인 중 안티조선의 몫이 아마 가장 클 거다. 뭐랄까, 이제는 대세가 되어버린 전면적 퇴행의 뿌리가 되었달까. 조선 개새들 옛날에 두환이 존나 빨았어요. 이게 전부잖아. 근데 사실 조선이 조선이라서 문제가 된 건 영삼이 시절이거든. 나잇살 먹은 놈들은 기억할 게다. 김영삼 장학생이라는 게 있다 어쩌고 했던 말. 열혈호국정신의 수호자들이 (라고 쓰긴 하지만 사실은 관청 정기구독으로 땡 잡은 애들이) 작문의 기술을 활용하는 특정 정파 지지자로 변모했던 게 이미 그때부터였을 터. 준만이나 중권이가 무슨 비평씩이나 되는 줄 알고 첨삭지도 시늉냈던 거, 결국 안티안티DJ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라는 것.

정작 개새들이 두환이 빨아줄 때는 별 거 없었다. 청와대에 개를 두 마리 키웠어. 밤이 늦어서 두환이는 자고 한 마리는 그 옆에서 자고, 나머지 한 마리는 순자 옆에서 테레비 보고 있었단 말야.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두환이 자지 개 자지 순자 보지 개 보지. 이런 게 소위 쌍팔년도 개그인데, 그땐 워낙 서킹하는 개새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 개새가 빨든 말든 씨발 뭐 어쩌라고. 무시하는 거지. 만약 그때 안티조선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의제가 나오면 그냥 병신 소리밖에 못들었을 꺼야. 그딴 거 할 시간에 시뻘건 정치신문이나 만들자는 게 자연스럽지.

그 래서 안티조선은 일종의 비극적 숙명이 된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거야. 발전적 측면에서 그것은 인민들에게 펼쳐진 보다 현대적인 삶-정치의 국면에서 자연스럽게 호출된 행동임에 분명하다. 전체주의의 완화는 개새들이 빨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탈출해 빨 권리를 획득하도록 해줬고, 정치를 하자면 개새들이 빨든 말든 예전처럼 팔짱 끼고 무시깔 수는 없어졌겠지. 두번째 측면은 퇴행적인 부분. 간단히 말해, 끽해야 히끼꼬모리 덕후질이나 해댈 종자들이 언론운동씩이나 해대며 인민의 삶-정치에 기생하게 된다는 것. 어차피 사회주의도 사람이 하는 건데 어떤 연속성 같은 게 없어진 거야. 일이 제대로 되려면 시뻘건 정치신문 만들려던 보이스카웃들이 각성하고 변태를 했어야 했는데 그 개새들은 또 유학이네 학원질이네 다 텼거든. 여기에 결정적으로 망강국의 씨발스러운 거품이 작용하면서 단절은 단절이 아닌 것처럼 간주되는 거지. 개백수 새끼들이 열심히 copy paste만 해도 거 뭐라냐 진보진영논객인데 뭐. 낄낄.

다시 정리하면 양가성은 이런 거다. 원칙적으로 탈보이스카웃 수준의 언론운동은 당연히 호출된다. 그런데 안티조선 때문에 다 씨발 좆됐다. 언더스탠? 하긴 정확히는 언론운동이라기보다는 좋게 말해야 비평운동이지. 언론운동이라는 게 무슨 논객 나부랭이들이나 히끼꼬모리 덕후 개새들 키워질로 되나. 조선이 뭐 어때서? 난 한겨레가 한참 끗발 날릴 때 딸배 노릇을 했는데, 조선은 해도 한걸레는 절대 안했다. 왜? 그 개새들은 돈을 안주거든 씹새들. 내가 볼 때 한걸레는 딸배 피빨아서 먹물들 허위의식 채우는 악마들의 찌라시야. 조선 보는 애들은 대가리 나쁜 노땅들이라 냅둬도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이 악마들은...

아 문득 생각나는 일 하나 있다. 딸배 하다 보면 부가수입이 생기는 게 있어. 지나가는 데 불러서 내일부터 넣어달라는 주문을 받는 거지. 바닥용어로 확장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수당을 주거든. 아마 만 원이었던가. 전문 요원들은 훨 많이 받지만 딸배야 그냥 주워먹는 거니까 그게 어디야. 어느날인가, 그러니까 한걸레 두번재로 돈 떼먹히기 조금 전에, 한걸레 신청을 하나 받았어. 오우 존나 감사 베리베리땡큐. 머리 숙여 인사하고 설명을 해줬지. 서비스 세 달 무료 드리구요 1년 안돼서 끊으시면 반납하셔야 하구요, 이렇게 하는데 그 개새가 인상을 쓰고 있어. 생겨먹은 것도 꼭 어디 시민운동 같은 거 간사 노릇하게 생겨먹은, 그러니까 존나 재수없게 생겨먹은 놈인데 딱 가로채서 이러더라구. 난 서비스 필요 없고요 한겨레 꾸준히 보는 독자니까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라고 말야. 싸가지없게 말했냐고? 아니 존나 공손하게. 그러나 귀찮은 티 팍팍 내면서. 아놔 씨발. 그때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라고. 쪽팔리는 거지. 그 개새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건지 너무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잘난 한걸레 독자님이시면 본사에 전화해서 신청하지 엄한 딸배 붙잡고 한걸레 독자인 거 쪼개고 싶었던 거야 뭐야 니미. 이게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아마 요즘에도 그때 그 개새처럼 대가리속에 걸레밖에 안 든 새끼들도 많을 꺼야. 조선 어쩌고 하는 뉴스 밑에는 꼭 달리는 댓글 있잖아. 무슨 상품권을 준다고 했는데 문 닫아버렸다고 자랑하는 좆병신 아구라쟁이들. 아마 그때 개새도 마찬가지겠지. 까고 있네 씨발들. 나 결국 그 때 만 원 못받았다.

각설하고,

결 국 남는 게 뭐냐. 사회주의는 곧 삶인 건데, 단절로도 부족해서 IP에 실려 과잉부양된 안티조선에 할당된 행동의 폭이 뭐겠냐. 뭐긴 개뿔이나. 사실상 없지. 희재처럼 해바라기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봐야 할 거고, 실제 그 전선에 놓이는 건 일종의 개념뿐이야. 이것도 두 가지 측면이 있겠지. 하나는 위에서 말했던 퇴행성의 전면화. 옛날에 조선이 두환이 존나 빨아줬어요. 이게 가장 유력한 대중적 근거가 된다. 소위 386스러움의 재현이랄 건데, 정치라는 생명을 통과하면서 요즘에 조선이 명박이 존나 빨아요 건희도 존나 빨아요라는 걸로 너무 쉽게 치환되지. 왜? 두번째 측면, 진보놀이덕후질을 하며 자위나 해대기에 안티조선만큼 말랑말랑하고 쫄깃쫄깃한 게 없거든. 더구나 그것이 변질됐다고 말할 수 있는 요즘이라면 애초에는 그 병신짓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는 거. 원래 시국이 하 수상하면 대체 이제껏 뭔 병신짓들을 했을까 따져보는 게 순리. 전문용어로 자아비판이라고 하지. 그러나 백수 덕후들이 그걸 하자고 들면 결국 맞닦뜨리는 게 삶-정치의 단절이라는 사회주의 본연의 문제야. 이걸 걔들이 어떻게 하나? 못하지. 기껏해야 금뱃지 은뱃지에 환장하는 걸로 땜빵하는 애들이 자기 몸에 칼 댈수는 없는 것. 존나 싸고 싶은 새끼가 좆이 안 선다고 생각을 해보자. 걔가 뭐가 되겠나? 조고처럼 정치에 미치는 거지. 궁녀들 간이나 보고. 낄낄. 안티조선은 그냥 변태짓이라는 거.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소묘 하나가 참 어울리는 병싯짓으로 오버랩된다. 뭐라더라 하는 왕년의 KBS 기자가 태우 후보 선출할 때 빨았다고 존나 씹대? 이런 개새들. 성기 위에 날 털이 심장에 났냐? 그 시절에 제일 열심히 빨았던 게 니들이 환장하는 개비씨잖아 니미. 퇴행에 퇴행 거듭해서 얻을 게 나가리냐 독박이냐.

2.

결 국 회찬씨가 우리 안의 조선일보 어쩌고 한 건 뻘소리다. 이건 소위 임지현류 파시즘 논리 가져다 재범 빠순질 해대는 듀나게시판 병신들한테나 어울리는 얘기겠지. (하긴 똥파리가 똥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고, 거기 좆타는 병신들도 한 트럭이더구만.) 차라리 고딩스럽게 말하자. 조선은 외부에 있고, 진보놀이덕후들은 대당함으로써 조선의 영향을 받는다. 조선을 닮는다 하는 식의 얘기 아니다. 외부의 조선으로 인해 내부가 규율된다. 이게 문제라면 문제인 거다.

이렇게 말해보자. 오늘의 조선이 개새스러운 건 국보법의 개새스러움과 같은 거다. 국보법 없어져야 하나? 아마 그렇겠지. 그렇겠지만, 이미 경험했듯, 국보법 폐지 투쟁 올인 따위 하면서 원내정당의 정책담당자들 핸펀에 집회 필참 문자나 쏘고 지랄하는 건 사회주의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다. 그냥 꼴값일 뿐. 그런 무개념질들을 하다보면 또 어떤 대통령이 아 국보법은 박물관용이네여라고 중얼댈 경우, 이래서 미워할 수가 없단 말야 낄낄거리며 화답하는 아메바짓으로 귀결되게 된다. 막말로 전향한 왕년의 맹동주의자들 전과 털어내는 거 말고 국보법 폐지가 인민의 삶과 뭔 관계가 있냐.

내부와 외부의 얘기를 조금 더 깊게 해보자. 거듭 말해, 우리 안의 조선일보 어쩌고는 그냥 잠꼬대다. 어떤 의미에서 잠꼬대인가 하면, 우리 안에 조선이 없어서 잠꼬대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안의 조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꼬대다. 회찬씨가 됐든 듀게식 빠순이들이 됐든 이런 류의 말들이 가리키는 건 뻔한 거잖아. 조선일보가 기사 쓰듯 거두절미 문장 들어내기 사유를 하면 안된다 운운. 지랄 옆차기 하다가 담 들리는 소리들 하고 자빠졌네. 안티조선 비평운동, 히끼꼬모리 덕후들의 그 병신짓을 언제까지 지속할 참이냐. 그런 식의 단문비평은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조선 개새들이 여기저기 빨아주는 게 씨발스러운데, 그 씨발스러움의 핵심을 혀놀림의 속도와 각도에서 찾는 거야. 낄낄, 니미, 똥구멍을 빨면 빠는 거 자체가 더러운 거지 혓바닥을 어떻게 놀리든 말든.

예를 들어 무상급식 보자. 사회주의적이네 뭐네 딴지 걸리는 데도 용케 썩이 죽질 않고 꾸준하게 이슈되는 이유가 당장의 먹고사니즘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는 건 초딩도 안다. 그런데 그냥 그 수준에서 대당하는 선을 긋고 적대를 찾아내는 건 안티조선스러운 병신짓이지. 진보놀이들이 무상급식에 버금가는 제안들을 새롭게 진행한다 치자. 끗발 좀 날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진보덕후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방과후수업의 강한 공공화 정도일 텐데, 그런 거 쥐고 흔들어 봤자 예비내각 이범 교육부장관, 이거 한 방에 훅 간다. 급식은 몇 만원 단위지만 사교육비는 미니멈 기십만원 단위. 그 좆 같은 시장에서 삥 존나 뜯던 애가 아무리 핀란드 타령을 해댄들 인민이 아 교육은 자일리톨이구나 하고 속아넘어가겠나? 우리 안의 조선일보는 어법과 사유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체적인 이익 함수로 작동한다는 얘기다. 출판기념회와 창간기념회가 서로 같네 다르네 따지는 유딩짓은 제발 안티조선들끼리 모여서 딸칠 때나 하라고 씨발들아.

차라리 단정지어 말하자. 우리 다 조선이다. 안티조중동을 한답시고 꼴값 떠는 개새들에게 실제의 안티란 문화상품권이나 현금 부채처럼 펼치고 대형마트 입구에 서서 호객하는 중년 확장 요원들을 향한 짜증에 불과한 거다. 그 개새들은 그나마 언론운동의 지향을 내포한 공동딸배제가 어째서 한걸레 이익지상주의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걔들이 신자유주의니 뭐니 씹어대는 건 빠순이들의 탈민족 오빠니즘이나 별 차이 없는 거다. 어법과 정파를 지지하기 위한 문장술의 현란함과는 무관하게 편드 복지 대세는 강화되고 은마 똥값 되면 줄줄이 빵꾸날 멀티들이 쌔고 쌨다. 순영씨 투기를 생존을 위한 투기니 뭐니 병신 소리 해대던 애들, 상정씨 애들 학교 문제 나오니까 아닥 쉴드 치던 병신들, 그런 개새들이 바로 조선이고 우리다. 아니냐?

그 러니 회찬씨가 조선 창간 축하하러 가서 와인을 빨든 쐬주를 빨든 뭐가 문제냐. 그거 안 가는 기갑씨가 오히려 해철이스럽고 골까는 거지. 가지 말아야 했다고? 왜? 니들이 조선하고 뭐가 다른데?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니? 상근이한테 얘기해줘도 못알아듣겠다. 그딴 얘기는 이를 테면 이런 식인 거다. 우리 짱님이 본심은 그렇지 않고 존나 정의로운데 경제를 잘 몰라서 주변의 관료들한테 낚이는 바람에 FTA도 하고 신자유주의도 쪼금 하고 그런 거네여. 징징징. 정치가 도덕재무장 운동이냐. 대가리속에 계급 이익을 담보할 물리가 없으면 그냥 다 똑같은 거지. 신세기 미디어그룹을 지향하는 조선 창간 기념회장에 아이폰 덕후만큼 어울리는 궁합이 또 어딨냐. 지랄들 고만해. 가는 게 정상인 거야.

그래서 일단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간 게 문제가 아니라 갈 수밖에 없는 게 문제인 거지. 이거, 너무 원론적으로만 얘기하는 거 같나? 아니, 각론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회찬이 빠돌이 애들이 쉴드 쳐주는 짓을 보면 각론이 뭔지 각 나온다. 이 개새들은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실천적 문제로 사유하는 대신 지들 금뱃지 은뱃지 집착증의 표현 기회로 본다. 블라대는 문장들 뻔한 거지. 우리는 조선과 다르지만 정당의 활동이라는 건 이러저러하고 요로조로해서 씨발 회찬이 몸빵 세우고 나 은뱃지 좀 달자구 씨발들아. 낄낄. 정치라는 거, 하면 할수록 이 경향은 강화되고 지향은 이상으로 화석화될 거다. 당장 현장에서 부대껴 친해져야 할 건 해병대전우회고 반공전우회고 호남향우회거든. 아마 이 개새들은 혼연일체를 완성한 후에도 주둥이는 살아서 우리와 조선은 지향이 다르지만이라고 안티조선식 병신짓을 부여잡겠지. 아놔. 돌고래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겠지만 어차피 죽을 때까지는 니 어깨 위에 놓여 있을 뇌, 그 존재가 불쌍해서라도 생각을 하면서 살란 말야. 거듭, 간 게 문제가 아니라 갈 수밖에 없는 게 문제이고, 그건 정치학개론 이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더스탠?

3.

물 론 회찬씨 쓰다듬어주고 싶어 하는 말은 아니다. 처음에 잘했다고 말은 했지만 세상 이치라는 게 원래 병신짓을 하느니 뒈지는 게 낫거든. 아니, 그래, 좋다. 정치개론 얘기 나왔으니 그것도 마저 짚어보자. 회찬이 빠돌이들, 니들은 진심으로 그 유치한 당적정치론 달랑 들면 세계와 사건들이 해명될 꺼라고 생각하냐? 병신들아 쉴드는 이엠피 한 방이면 다 벗겨지는겨.

이 막장극에서 제일 웃긴 게 뭐냐면 회찬씨가 절반짜리 사과문을 올렸다는 점. (참고로 그거 읽다가 트위터 친구들인가 뭔가에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어우어우 썅 손발이 다 오글거려. 이거 전형적인 잉여 멘트잖아. 회찬씨 중3병 걸렸냐?) 두환이하고 컨택 깐 김에 왜 나만 갖고 그래 드립을 치겠다는 건가 본데, 아놔 씨발, 나만 갖고 그러기 전에 나만 갖고 그래 달라고 말해야 하는 게 정치 아냐? 회찬씨, 금뱃지도 또 달고 또 달고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자면 무조건 깝을 쳐야 하는 거잖아. 근데 깝을 왜 안쳐?

정 상적인, 소위 진보 정당이라면 아마도 이런 식으로 진행됐을 거다. 회찬씨가 먼저 선빵을 날렸어야 하는 거야. 나 낼 조선 놀러 감. 진보덕후들 빡치겠지. 뭐임? 정말 감? 응 감. 조선에 왜 감? 우리 안의 조선이 더 문제라서 감. 헐 나 삐졌뜸. 먄 그래도 감. 대충 이런 식이어야 그 지랄 맞은 소통인가 뭔가 하는 것에 그나마 격이 맞는 건데 정작 벌어진 상황은 이게 아니다. 편의점에서 슬러시 사먹고 몰래 리필 하다 걸린 중딩이 애교떠는 식인 거야. 아잉 트위터 친구끼리 좀 봐줘염. 이거 대체 뭐냐. 왜 이런 식의 막장 봉합극이 펼쳐지는 거냐.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겠지.

회찬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든.

즉, 회찬씨가 우리 안의 조선을 말하는 방식은 진실을 행동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거든. 사실 회찬씨는 우리 안의 조선이라는 걸 제대로 고민해본 적도 없거든. 이 점에서는 빠돌이들의 수준이 곧 교주의 수준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꼴랑 하나밖에 없지만 그래도 금뱃지 갖고 있는 당의 대표니까 조선을 대표하는 신문사 조선의 창간 기념회쯤 가는 거야 정치공학적으루다가 크게 문제될 건 없으니...후다닥 결론 나온다. 이거, 그 잘난 당적정치의 또다른 종말적 징후다. 모든 말들은 준비돼 있는 건데, 왜 이것들의 말은 온갖 종류의 봉합을 위해서만 준비돼 있는 걸까. 뱃지에 환장하는 건 교정불가능이니 그러라고 쳐도, 그 집착이 세계속에서 어떤 효용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계량하는 섬세함이 없다. 막말로 회찬씨가 안티조선은 이제 거품만 남지 않았나여라고 먼저 솔까말했다면 최악의 경우 회찬씨가 매장되더라도 그만큼의 말들은 남았을 게다. 우리 시대의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아주 처참하게 내버려져야 할, 예전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벽에 열리지 않는 문을 그려 놓고 피흘리며 죽어야 그나마 슬픈 애도라도 받게 될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

사족 삼아, 상상조차 힘들 텐데, 니들은 지금이 행복한 거다. 괜히 일 꼬여 장차 교섭답체 수준이라도 되면 니들은 안팎으로 칼부림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어. 하긴 그런 거 대충 깜냥으로 잡았으니까 번듯한 386개새당 하나 만들어볼라구 진보니 대연합이니 뭐니 꺼진 불 다시 보기 운동을 하고 있는 거겠지만.



ps. 잘한 건 잘한 거고 회찬씨상정씨 정계은퇴 겸 진보신당 해산 촉구는 변화없다. 4+5, 이건 작명 센스가 일단 너무 후져. 뭔...이마트냐.

2nd ps. 방씨들 앞에서 아이폰 자랑질 좀 했나 모르겠다. 데일리조선을 오픈아잎티비 형식의 앺으로 만들어 팔아보라고 권유했으면 방씨들이 오오 회찬씨 했을 수도. 아마 쌍권총 업무 처리에 뻑이 가서 잘 모르고 있겠지만, 원래 아이폰 수준의 덕후질은 노땅들끼리 해야 제대로 웃기는 거다.

3rd ps. 지방선거는 득표율 망해도 당은 안 망한다며? 이거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낄낄.

 

 

진보신당 당게에서 무단 뽀려왔다.

읽을만하긴 한데 까봐야 양파껍질처럼 서글픈 눈물만 나오는 당 꼬라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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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정신은 어디가고???

  • 등록일
    2010/03/03 18:39
  • 수정일
    2010/03/03 18:39
사설 • 칼럼
[메아리/3월 3일] 독립영화 정신은 어디 가고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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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인간이 쓴 관련 기사를 읽기전에

대체 뭣하는 작자인지를 공개부터 하고 볼 일.

프레시안에 실린 무비위크 오동진  편집장 기사 뽀려옴

영화진흥위원회의 최근 인선을 들여다 보면 마치 한편의 깜짝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희문 신임 위원장 임명 이후 6명의 위원들 얘기다. 그중 이덕화, 이대현, 정초신 위원 등은 뜻밖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김형수, 김동률 위원 등은 그간 영화산업이나 정책분야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덕화, 이대현, 정초신 위원들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평가하기에 좀 이른 감이 있다. 선입견을 가져서도 안될 터이다. 세 사람 모두 국내 영화계에 대한 식견이 남다른 터라 자질에 대해 운운하는 건 결례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신선하지가 않다. 마치 2기와 3기, 그러니까 과거 10년의 영진위 구성을 그대로 따라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및 영화전문기자를 위원으로 임명한 것 역시 과거 안정숙 한겨레 기자가 위원이 됐던 것과 대칭된다. 안정숙 기자는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렇다면 이대현 기자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는 뜻으로 읽힌다. 정초신 감독 역시 과거 이은 감독 등 영화업계 종사자가 위원회 활동을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신선하지 않다고 한 것은, 우리사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잃어버린 과거 10년'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도 바로 거기서 사용했던 인선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다른 방식은 없었을까. 영진위 위원 구성은 늘 개혁과 보수 사이에서 저울추가 왔다갔다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거기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영진위가 국내 영화산업의 각종 현안들을 앞장서서 풀어나가는, 명실공히 정책기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각설하고 이대현씨가 쓴 한국일보 논설에 실린 관련 기사를 보시라~!

독립영화 정신은 어디가고
독립영화의 생명은 독립이다. 다름 아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영화가 자유롭기 위해서다. 자본이 요구하는 어떠한 타협이나 왜곡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영화의 정신이자 본질이다.

 

그래서 독립영화는 운명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가 주머니를 털고, 감독이 집을 담보로 제작비를 마련해 굶어가며 영화를 찍는다. 독립영화에 돈을 대겠다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유명 배우도 출연을 꺼린다. 상업적 테크닉이나 화려한 영상도 불가능하다. 이 또한 독립영화의 숙명이다.
 
근데 운명적이기 보담은 숙명적으로 가난해 지긋지긋할정도로... 글 보니
주변의 고생하고 있는 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돈다.
 
돈에 집착하는 독립영화

대신 독립영화에는 상업영화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는 영화를 강하고 실험적인 것으로 만든다. 주제나 소재에 거침이 없다. 감독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멋대로 표현한다. 상업적 흉내내기를 하다가는 서투르고 초라한 꼴만 당한다. 독립영화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비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존재의 방식이고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마저 없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독립영화가 돈을 의식하거나, 돈 맛을 느낄 때는 이미 독립영화가 아니다. 독립영화라고 흥행에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독립영화가 <워낭소리>처럼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워낭소리>의 성공은 상업적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니다. 독립영화 고유의 정신이 시대정서와 맞아 떨어진 '기적'이다. 기적이 두 번 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지금의 한국 독립영화는 그 '기적'만을 기대하는 태도를 보인다.

독립영화의 타락이다.

 

기적이 두 번 오지는 않는다. -> 기적은 두 번 오지는 않는다. 이->은 으로 바꾸면 문맥이 좀더 부드러워 질듯하다능. 그리고 지금의 한국 독립영화판 사람들을 다 싸잡아 타락이라고 말하면 안되시징...

상업적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다. 국가나 특정 단체의 자본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어느 정권이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며 대범한 척하지만, 자신을 욕하고 화살을 쏘아대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절차와 방법이 어떻든, 지원 역시 자기 편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 10년을 돌아보라. 영화에 젊은 피를 수혈하고, 인프라를 다진다며 지원한 돈과 사업을 누가 독점했는지.

지금의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회 균등을 위해 지정위탁제를 공모제로 바꾸었지만,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자 선정을 보면 결국 결과는 비슷했다. 차이라면 과거 정부가 교묘하게 객관성으로 위장했다면, 지금 정부는 절차와 방법이 서투르고 엉성한 것뿐이다. 보수 정권답게 형식과 명분만 그럴 듯하게 바꾸었지, 디테일에 소홀한 결과다.

 

과거 정부는 교묘했고 현 정부는 디테일에 소홀한 결과일뿐이란다. 명색이 영등위 위원이라는 작자의 呪둥아리에서 나올 말인가? 그  현 정부 공직에 몸 담고있는 실제 공모를 책임진 단체인 영진위 현직위원의 爪둥아리에서 말이다. 어째든 지 주둥아리로 디테일에 소홀한 결과라고 말을 하긴하넹.

 

여기서 위의 주둥아리에서 나온 말을 축약하자면 역시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여!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동안 기득권을 누려오다 밀려난 영화인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정치인, 언론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절차의 하자, 공정성에 대한 문제점 지적을 넘어 공모제 자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선정된 단체가 급조됐다며 평가절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2002년 처음 영상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지고 사업자를 선정할 때 그들 역시 급조된 단체에 불과했다. 가난한 독립영화계에서 지원사업을 맡으려 일찌감치 '준비된 단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경험만 앞세워 "우리가 적임자"라고 말하는 것은 염치 없다. 

 

미디액트의 퍼블릭억세스에 대한 고민과 독립영화 전용관을 통한 배급권에 대한 확보, 그것에 대해 전혀 준비없이 급조되었다고 말한것 대해 또 어떻게 책임을 지려하는것일까? 내가 알기로도 독립영화전용관이 만들어지기 전 적어도 몇년간 필요성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준비하고 요구했던걸로 아는데 그에 따른 성과물일진데 ...


결국은 '돈'때문이다. 8년 동안 누려온 혜택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정부는 이렇게 독립영화계까지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그 돈은 독립영화 제작과 유통에 도움도 됐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독립영화의 정신을 망가뜨렸다. 어쩌면 다분히 반발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자 선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립영화인들이 정부 도움 없이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야말로 독립영화다운 태도인지 모른다.


8년간의 혜택이라...이 부분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논쟁은 계속하고 있다. 정신이 망가졌다고 하는 부분 일면 수긍할 지점도 있겠지만, 사업자 선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립영화인들이 아니라 사업자 선정의 불공정과 저질개그에 실망하고 분노를 금할수 밖에 없는 이들이 느들 도움없이 꿋꿋이 가던데로 계속 갈 뿐이다. 당신이 그렇게 태도 운운하지않아도 꿋꿋하게 자기 작업 하는 사람들 많으니 걱정마시라.

정부 지원 꼭 필요한가

문제는 정부가 독립영화까지 돕겠다는 욕심에 있다. 이제부터라도 독립영화는'독립군'으로 두는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영화 인력양성과 인프라를 위해 꼭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싶다면, 정부부터 과거 정권에 대한 복수심으로 '내 식구 챙기기'에 매달리지 말고 대범해지자. 출신 중에 삐딱한 놈이 많다고 지금의 한국영화를 있게 한 영화아카데미까지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독립영화 시절은 있다. 그리고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그것 역시 한 때이다.

 

이런 글 같잖은것도 기사로 올려주는것 보면 한국일보도 별거 없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에 따르면 나, 지극히 비정상적인 감독이다.

아직도 독립영화의 한 때를 계속 겪고 있는데...

그렇게 계속 비정상적으로 독립영화 시절로 살아갈것 같은뒈...

 

어째든 OK  대범해지자고...

 

자본이 요구하는 어떠한 타협이나 왜곡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영화의 정신이자 본질이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는 영화를 강하고 실험적인 것으로 만든다. 주제나 소재에 거침이 없다.

감독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멋대로 표현한다.

상업적 흉내내기를 하다가는 서투르고 초라한 꼴만 당한다.

독립영화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비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존재의 방식이고 이유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우연히 제목이 눈에 띄어서

논설을 읽게 되었는데 구려서 토 나올뻔 했다.

 

머 요새 쌍용차 옥쇄파업 영상 작업 조낸 골 싸매고 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는 말이긴 하당. 고마버요!

 

아래는 서비수 영상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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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거리 공연, 한받과....

  • 등록일
    2010/02/20 15:56
  • 수정일
    2010/02/20 15:56

 

눈은 아직 녹지 않았고,

겨울 바람은 제법 쌀쌀했고

공연 준비중에 한받씨의 클래식 기타는 자꾸만

바닥에 미끄러지고

옆자리 가판 알록달록한 양말을 내다파는 청년이 있었고

 

울부짖는 노래 소리에 내 기타를 섞는데

추워서인지 슬퍼서인지 자꾸만 눈물,콧물이

뺨과 턱을 타고 흐르고

허공중에 대고 읽는 홍대 근방 

철거당하고 있는 두리반 식당의 이야기

 

눈 앞엔 하얀 김이 모락모락나는 리어카

솥에 감자와 고구마를 쪄 파는 아주머니,

2000원 어치 감자를 사서 먹었더니

그 돈을 다시 모금통에 넣어주시고...

 

 

어째든 난 한받씨 노래도, 그리고 세상의 진자리에서 연대 활동하는 그도 참 좋다!

다음주 토욜 홍대 두리반에서 한받씨 공연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증폭기를 카피하는 한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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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변호사

  • 등록일
    2010/02/19 18:21
  • 수정일
    2010/02/19 18:21

[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

여러가지 모순이 있지만,  광고 하나 제대로 실리지 못하는 책이 있다(프레시안, <김용철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 일간지 광고 '원천 봉쇄'>). 삼성에 대한 언론의 '알아서 기기'를 생각해서라도(차마 깨뜨릴 수 있다고 기대는 못하겠다.), 책광고 릴레이합시다. 격렬하게.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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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by 조지 오웰

  • 등록일
    2010/02/16 15:07
  • 수정일
    2010/02/16 15:07

 

나는 왜 쓰는가

Written by George Orwell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나이 다섯 아니면 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나중 커서 작가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에서 스물네 살이 되기까지의 청소년 기간에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게 내 진정한 본성에 어긋나는 짓이고 결국은 내가 오래지 않아 책상에 앉아 책을 쓰게 되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세 아이의 중간이었다. 위 아래로는 각각 다섯 살씩의 터울이 졌고 여덟 살이 될 때까지 나는 거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리고 몇 가지 다른 이유들도 작용해서, 나는 좀 외로운 편이였으며 좋지 않은 버릇들이 몸에 붙어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인기가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의 인물들과 대화하는 외로운 아이의 버릇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문학에 대한 내 포부는 내가 외톨이이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뒤섞인 것이었다. 나는 내게 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들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능력 덕분에 나는 나만의 비밀스런 사적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로 들어가 내가 일상의 삶에서 겪은 실패들을 보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통틀어 내가 써낸 진지한(말하자면 진지한 의도로 쓴) 글은 모두 합쳐봐야 여섯 장도 되지 않았다.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나는 내 생애 최초의 시를 썼다. 썼다기보다는 내가 읊조리고 어머니가 받아쓴 것이었다. 그 시에 대해선 지금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게 호랑이에 관한 것이었고 호랑이 이빨을 <걸상 같은 이빨>(제법 그럴 듯한 표현 아닌가) 어쩌고 하며 묘사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필시 윌리엄 블레이크의 「호랑이, 호랑이」를 표절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열한 살 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는데 그때 내가 쓴 사뭇 애국적인 시 한 편이 지방 신문에 실렸다. 그로부터 2년 뒤 호레이쇼 키치너의 죽음에 대해 쓴 시도 신문에 났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따금 조잡한, 그리고 대개는 미완으로 끝나는 <자연시>들을 조지 시대 스타일로 썼다. 두어 차례 단편 소설도 시도해 보았지만 형편없는 실패작이었다. 이것이 그 시절 내가 종이에 실제로 써본 자칭 <진지한> 글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이 기간 내내 나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활동이라 부를 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을 때 주문에 맞춰 쓰는 행사용 글이었다. 이 종류의 글을 나는 빠르고 쉽게 쓸 수 있었으나 나 자신 별로 큰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다. 학교 숙제 외에 나는 지금 생각해도 아주 놀라운 속도로 희극시 비슷한 행사용 중답시들을 썼고(열네 살 때 나는 아리스토파네스를 흉내낸 각운 희곡 한 편을 일주일 만에 써냈다) 학교의 여러 잡지 인쇄물과 원고 편집을 도왔다. 그 잡지들은 아주 형편없는 광대놀음 같은 것들이었지만, 요즘의 싸구려 신문잡지들에 비하면 오히려 봐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들과 함께 나는 15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아주 다른 종류의 <문학 연습>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인데, 이는 유년기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흔히 있는 버릇인 것 같다. 꼬마 시절 나는 내가 이를 테면 로빈 후드라 생각했고 신나는 모험담의 주인공 자리에 나를 앉혀보곤 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얼마 안 가서 불쑥 그 나르시시즘을 잃었고, 대신 내가 한 일이나 눈으로 본 것을 열심히 <묘사>해 보는 일에 점점 더 열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몇 분씩 내 머리에 이런 문장들이 흐르곤 했다. <그는 문을 밀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노란 광선 한 줄기가 모슬린 커튼을 뚫고 들어와 탁자에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반쯤 열린 성냥통 하나가 잉크병 옆에 놓여 있었다.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그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길에는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나뭇잎을 쫓고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 이 버릇은 나의 비문학적 연대랄 수 있는 스물다섯 살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런 묘사를 위해 나는 정확한 어휘들을 찾아야 했고 또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스스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어떤 충동질 때문에 그런 묘사 작업을 해보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건대 나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나이 때의 내가 그때그때 존경했던 이런저런 작가들의 문체를 반영한 것이었을 테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언제나 뭔가를 꼼꼼하게 묘사해 보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열여섯 살쯤 되어서 나는 돌연 말의 재미-말의 소리와 연상이 주는 재미를 발견했다. 예컨대 『실락원』에 나오는

 

 

그래서 그는 힘들게 온몸으로 버둥대며

나아갔다, 힘들게 온몸으로 버둥대며 그는,

So hee with difficulty and labour hard

Moved on: with difficulty and labour hee,

 

 

라는 두 행은 지금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지만, 당시 그 두 줄을 읽는 순간 내 몸에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었다. <그he>라는 대명사의 철자가 로 되어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사물 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알 만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쓰고 싶었던 책(감히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해도 된다면)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분명하다. 말하자면 나는 거대한 자연주의적 소설-불행한 결말로 끝나고 미세한 묘사와 인상적인 직유로 가득 찬, 그리고 말이 소리 그 자체를 위해 사용되기도 하는 화려한 문장들 투성이의 그런 자연주의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 사실 나의 첫 장편 『버마 시절』(서른 살 때 쓴 것이지만 구상은 훨씬 이전부터 되어 있었다)은 다소 그런 종류의 작품이랄 수 있다.

 

이 모든 배경 정보를 내가 여기 털어놓는 까닭은, 우리가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서는 후일 그를 지배하게 되는 이런저런 동기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적 제재들은 그가 어떤 시대에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럽고 혁명적인 시대의 경우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기 특유의 어떤 정서적 태도를 획득해 놓고 있고 그렇게 획득한 태도로부터 아주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기질을 길들이고 어떤 미숙한 단계나 괴팍한 기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초기 영향들로부터 아주 벗어난다는 것은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 자체를 죽이는 일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외한다면, 나는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데는(산문 작가의 경우) 네 가지 큰 동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에 따라 그 각각의 정도가 다르고, 동일 작가의 경우에도 그가 사는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각개 동기의 비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 네 가지 동기란 이런 것이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부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 할지 모르지만.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이런 미학적 동기는 산문 작가들의 경우엔 대체로 미약한 편이지만 그러나 팸플릿 저자나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휘와 문구들을 갖고 있고, 이것들은 공리적 이유를 떠나 그를 매혹한다. 어떤 활자체를 쓰고 책의 여백은 어떤 크기로 할까 등의 고려도 그런 것이다. 철도 안내서의 수준을 넘는 책이라면 어떤 책도 이 같은 미학적 관점을 아주 벗어날 수 없다.

 

3)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

 

4)정치적 목적-< 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이 여러 가지 충동들이 어떻게 서로 싸우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그 각각의 충동이 갖는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성질상 나는 (여기서 <성질>이라 함은 처음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가 도달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동기들 가운데 1, 2, 3번 동기가 네번째 것을 족히 압도했을 그런 사람이다.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것이 틀림없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어찌 어찌해서 나는 결국 일종의 팸플릿 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잘 맞지 않는 직업(인도와 버마에서의 대영제국 경찰이라는)으로 첫 5년을 보냈고 가난을 경험했으며 실패를 맛보았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권위라는 것에 대해서 안 그래도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증오를 한층 더 키웠고 노동자 계급의 존재를 처음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 또 버마에서의 내 직업은 제국주의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도 웬만큼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경험들은 내게 정확한 정치적 정향을 주는 데는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 내란 등이 발생했다. 1935년 말까지도 나는 어떤 확고한 결정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나의 고민을 표현한 짧은 시 한 편을 썼던 기억이 난다.

 

 

행복한 목사가 되었으리라

2백 년 전이었다면,

영원한 운명에 대해 설교하고

호두나무 자라는 것이나 지켜보는.

 

하지만 사악한 시대에 태어나

나는 잃었네, 그 행복한 천당을.

내 코 밑에는 털이 자라는데

목사들은 털을 깨끗이 면도한다.

 

나중 시절이 좋았던 한때

우리는 아무 일에나 즐거웠고

우리의 심란한 생각들을 흔들어 잠재웠다,

나무들의 가슴 위에.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가지려 했지

지금 우리가 숨기는 그 기쁨들을.

그리고 믿었지, 사과나무 가지의 방울새가

내 적들을 떨게 하리라고.

 

그러나 처녀들의 배, 살구들,

응달 시냇물의 물고기들,

말들, 그리고 새벽에 날아오르는 오리떼,

이 모든 것은 꿈이다.

 

꿈을 다시 꾸는 일은 금지되었다.

우리는 기쁨을 흉내내거나 감춘다.

말들은 크롬 강철로 만들어지고

작고 살찐 자들이 그 말들을 몬다.

 

나는 꿈틀거리지 않는 벌레,

하렘 없는 환관

승려와 인민위원 사이를

나는 유진 아람처럼 걷는다.

 

라디오가 울리는 동안

인민위원은 내 미래의 점괘를 봐주고 있다.

그러나 승려는 내게 오스틴 세븐 차(車) 한 대를 약속했다.

목사일은 언제나 수지맞으니까.

 

나는 차가운 대리석 홀에 사는 꿈을 꾸었다.

깨어보니 그것은 진실,

나는 이런 시대에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스미스는? 존스는? 그대는?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어졌다.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넌센스이다. 이 시대의 작가는 누구나가 다 이런저런 형태로 그 문제들을 다룬다. 그것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어떤 방법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더 많이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진 미학적 지적 성실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도 활동할 기회도 더 많이 갖게 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의식, 곧 불의(不義)에 대한 의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자, 지금부터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 쓴다는 것이 도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책을 쓰지 못하고 잡지에 실릴 글조차도 쓸 수가 없다. 누구든 내 작품들을 검토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가 쓴 것들 중에 전적으로 선전적인 책의 경우에조차 본격 정치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내가 어려서 획득한 세계관을 아주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버리고 싶지도 않다. 내가 살아 활동할 수 있는 날까지 나는 계속 산문 스타일에 강한 집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구의 표면을 계속 사랑할 것이며 단단한 것들과 쓸모없어 뵈는 정보에도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나의 이런 면을 억누른다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문제는 내게 깊이 뿌리 내린 개인적 호오(好惡)들을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는 근본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들에 어떻게 화해를 시키는가라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구성의 문제와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며 진실성의 문제도 새로운 각도에서 제기한다. 그런 어려움들 가운데 노골적인 예 하나만을 여기 적어보기로 하자.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나의 책『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솔직히 정치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그 소설 역시 어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리고 형식을 존중하면서 씌어진 것이다. 나는 그 작품에서 나 자신의 문학적 본능들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진실의 전부를 이야기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우선 그 작품에는 신문 기사 등을 인용한 긴 장이 하나 있는데 그 장은 프랑코와 공모했다는 비난을 받은 트로츠키파를 변호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었다. 일이 년 시간이 지나면 보통의 독자들로선 흥미를 느끼지 못할 이런 장이 거기 끼어 있다는 것은 소설을 망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존경하는 비평가 한 사람은 그 장을 놓고 내게 훈계하기를「왜 그런 장을 거기 넣었는가?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저널리즘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그 말은 옳았지만, 그러나 나로선 그렇게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당시 영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한 가지 사실-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내가 분노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예 그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형태로 계속 대두된다. 언어의 문제는 훨씬 더 미묘해서 그걸 논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이다. 단지 나는 근년 들어 아름답게 쓰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만 해두고자 한다. 어떤 글쓰기의 스타일 하나를 잘 다듬어 터득하고 나면 이미 그 순간 우리는 그 스타일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지금 7년째 나는 소설에 손대지 않고 있으나 곧 하나 쓸까 한다. 물론 실패작일 것이고 모든 책은 실패작이지만 내가 쓰려는 책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 이 글의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니 마치 나의 글쓰기 동기가 전적으로 공적 정신에서 나온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나는 그것을 이 글의 최종적 인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게으르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동기의 밑바닥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하나 놓여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고 고통스런 투병과정처럼 끔찍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 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피곤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귀는 어린 아기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내지를 때의 그 본능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지워 없애려 노력하지 않고서는 어떤 읽을 만한 책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도 같다. 내 경우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하게 작용했는지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그 여러 동기들 가운데 어느 것이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안다. 내가 쓴 책들을 회고컨데,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일수록 나는 어김없이 생명력 없는 책들을 썼고 분홍색의 화려한 단락과 의미 없는 문장과 수식형용사들 속으로 속아넘어갔으며 그래서 대체로 허튼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밑줄 친 구절만 옮겨올려다가 전체를 옮겨와본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채찍질이 좀 되주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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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 너 마저도!

  • 등록일
    2010/01/26 19:48
  • 수정일
    2010/01/26 19:48

* 2010년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발표

http://www.kofic.or.kr/cms/139.do?task=kofic.unityboard.command.Unityboard2Retrieve2Cmd&MASTER_NO=14&BOARD_NO=30995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로 선정되었습니다.

단체 소개 참고 기사: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96

*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발표



http://www.kofic.or.kr/cms/139.do?task=kofic.unityboard.command.Unityboard2Retrieve2Cmd&MASTER_NO=14&BOARD_NO=30996

'(사)시민영상문화기구'로 선정되었습니다.

 

 

 

차곡 차곡 쌓아 왔던걸 송두리채 빼았겼다.

 

후안무치한 저 파렴치함들에는 대체 어떻게 상대를 해야하는걸까?

 

후안무치한 넘들을 언젠가는 응징을 해줘야 할텐데...

 

여튼 새해 갑갑한 소식만 들려온다.

 

그간  맷집 약해진 여기 진보진영

 

두둘겨 맞다보면 다시 좀 강해지겠지.

 

 그럴까? 그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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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우중독보행. 시젬 쌀롱바다비.

  • 등록일
    2009/12/10 23:41
  • 수정일
    2009/12/10 23:41

가난 - 우중독보행,  그간의 가난들은 어찌할고 지금의 가난들은 어찌할고 앞으로의 가난들은 어찌할고 하늘 가득 구름 가득 가난한 마음이 날 지배하고 있으니 의지의 박약인가 신념의 굴절인가 언제든 가난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왔으나 유독히도 독이 되어 내 마음을 어찌할바 모르겠다. 이불 자락 가득한 가난을 무게로 실감할때 나의 잠자리도 늘 가난을 함께 덮고 간다. 꿈에서조차 마음의 허함을 감출 수 없으니 현실적인 가난이야 어찌할 수 있겠지만 마음의 가난과 공허함은 어찌할바 모르겠다. 햇볕이 따스한 봄이 그립다. 세평 정도 되는 봄날의 따듯한 텃밭위에서 나비의 움직임을 함께 하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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