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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폭력, 가시적폭력. 가족

구조적 폭력은 가시적 폭력을 낳고, 가시적 폭력은 구조적 폭력을 은폐한다.

 

저소득층청소년들이 삥을 뜯는다.

그러면 마구 욕을하면서 저들의 저소득층 상황을 보지 않는다.

 

담배를 피는 일진을 지나가던 어른들이 흘금흘글 쳐다본다.

그래서 그 일진이 '뭘 꼬나봐' 라고 했다.

(흘금흘금 거리는 게 청소년들이 담배피는 것에 대한 악의를 품고있는 구조적 폭력이고, 뭘 꼬나봐는 가시적 폭력.

그 가시적 폭력이 나타났을 때에 사람들은 너흰 이래서 안돼 싸가지가 없어. 그러면 구조적인 폭력이 뭔지는 아무도 못보게되.)

 

동시대를 사는 청소년으로서 활동가로서 안산에 가서 이야기하기.

안산은 끝날꺼다. 끝은 아마도... 너흰 안되. 이래서 안되. 청소년들은 안되. 너흰 아직 독립된 개체가 아니야.

만약 하더라도 나다는 안되. 나다의 쩡열이란 청소년은 안되. 변이나 슈가 필요해.

 

나에게 선생을 요구해. 스스로도 의존적이라고 인정하는 계기로 끝날 순 없어.

나는 선생이 되고싶지 않고, 선생일 수 없어. 다 이야기 할 꺼야.

나한테 그런거 요구하지 말라고. 그치만 말하지는 못하겠지. 그냥 같이 잘 해보자고 해보자고

 

신뢰를 받을 방법이 필요해.

신뢰. 준비를 잘 해야되.

준비. 지금 안산평학에서는 나를 아마 불신할거야.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건 애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아.

그럴려면 할려면 내말을 어떻게 들을까를 고민해야되.

내가 어떤 언어로 어떤 말로 다가가야할까를 고민해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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