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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와서 남은 문화생활. '대책없이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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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이 해피엔딩' (김연수,김중혁. 씨네21)

 

만약 이들 네 명의 남녀가 서로 떠들어대는 일 없이 각자 혼자서 이 사태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면 혼자서 그 일들의 의미를 해석해봤더라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뭐 어떻게 됐겠는가? 서로 죽이네, 살리네, 속았네, 당했네, 복수하네, 그랬겠지. 35세 미만의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그래 봐야, 아니 그렇기 때문에 막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 있을 때, 우린 그다지 아름답지도, 총명하지도 않으니까.

/ 112p, 서른다섯이 지난 뒤 깨달았던 진리 - 김연수

 

그건 아마도 엄마는 이미 그 공간이 텅 비어 있다는 걸, 거기에 진실이 부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은 엄마에게 '이미' 있다. 그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엄마의 달리기, 즉 '운동'은 그 진실을 좀더 빨리 증명하려는 욕망일 뿐이다. 진실을 선취한 자들에게는 모든 건 시간의 문제니까. 세계는 저절로 본 모습을 드러내지만, 엄마는 그 세계를 마중하기 위해 달린다. 운동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엄마의 촌스러움은 여기서 비롯한다. 진실을 선취한 자들은 삶의 모든 국면을 그 진실에 맞춰서 행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촌스러워진다. 스스로 뼈를 분질러버리는 것처럼 아픈 이야기지만, 내가 스스로 나를 복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마더>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3인칭 시점을 가장한 1인칭 시점을 사용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반칙이지만, 이 반칙은 우리 시대에 일반적이다. 서초동 검찰청사에 계신 분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리고 엄마 역시. 엄마는 3인칭 전지적 시점을 가장하는 1인칭 주인공이다. 거기에 모성이란 없다. 존재하는 건 스스로 복제하려는 분열된 자아 뿐이다

/ 151p, <마더>에 존재하는 건 모성이 아닌 스스로 복제하려는 분열된 자아뿐 - 김연수

 

연수 군은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같은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는 조금 더 위쪽에 있게 되는 그런 길'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예전보다 조금 넓어진 곳'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우리의 삶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다. 같은 자리를 맴돌긴 하지만 그 자리는 조금씩 넓어진다. 많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큰 원을 그릴 것이다.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은 더 적고 촘촘한 원을 그릴 것이다. 어떤 게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넓은 모기향과 좁은 모기향은 삶의 취향일 뿐이다.

/ 239p, '모기향' 인생사가 더 아름답다 - 김중혁

 

극중의 월터 코월스키가 몽족 갱들을 찾아가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달라고 하는 장면에 이르렀다. 그 장면에서 나는 조금의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미리 총을 겨누고 마주선 일당들은 물린이거니와 이층에도 총을 든 놈들이 있다는 걸 카메라는 보여줬지만,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그런 불가능한 대결장면을 보여주는 건 일상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기관총도 아니고!)를 꺼낸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는데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의 영웅이 그렇게 맥없이 죽을 줄 몰랐다기보다는 무방비 상태로, 대략 일곱 살 정도의 정신 연령으로 뭔가 화려한 복수를 기대하고 있다가 "맞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라는 마흔 살의 늙은이로 귀환할 때의 멀미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221p, 고향사람들을 대신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 김연수

 

"나는 통속을 좋아하고, 신파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통속과 신파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 데 실패한 자의 것이다. <호우시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은 물론 판다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지만(기다려라. 청두의 판다들이여. 반드시 찾아가서 말을 걸어보고야 말겠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메이가 남편의 영정 앞에 돼지내장탕면(너도 기다려!)을 바치고 구슬프게 울 때였다. 메이처럼 예쁜 여자가 그렇게 울면 그게 어떤 장면이든 나는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그 장면에서 메이가 운 건 아무래도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의 영정이 웬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행은 사후에 낭만적으로 변형된다고 믿는 나는 동하가 한국으로 떠난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동하는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기 쉽지 않겠다."

/ 260p, <호우시절>을 보며 중국 하얼빈의 북방 미녀들을 떠올리다 - 김연수

 

세 명의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들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고민하는 대통령들이다. 머리와 마음의 특정한 부분을 열어놓아야만 혀의 감각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대통령들이다. 귀를 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대통령들이다. 맛과 인생과 충고는 받아들일 준비가 돠어 있는 사람에게만 열린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키 크고 잘생긴 대통령이 아니라(기보다 아휴, 잘생기면 좋긴 하겠지만 그보다) 귀가 열린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 265p, 대통령에게도 요리를 가르쳐주자 - 김중혁

 

그렇게 스쿠터 위에 앉아서 나는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좋은 일들도, 나쁜 일들도 지나간다. 좋은 시절은 조금 천천히, 그리고 나쁜 시절은 조금 더 빨리 지나가면 참 좋겠지만, 모든 시절들은 공히 같은 속도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느낌상 좋은 시절쪽이 좀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원래 인생이 뭐, 그 따위'라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38년하고도 몇 달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모두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라면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거야." 스쿠터 위의 명상은 대개 그런 식의 결론을 낳았다. "지나간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러자 헬멧은 말한다. "그러니까 네 머리가 남들보다 크다는 거야. 머리 크기를 줄이고 몸 크기를 늘려보는 게 좋겠어. 이제 국가에서 건강을 관리해주는 생애전환기도 맞이했으니까 말이야." 헬멧을 쓰고 있으면 머리 크기는 두 배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뇌가 아니라 뇌를 둘러싼 것들이 생각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요컨대 헬멧을 쓰고 스쿠터 위에 앉아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

그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물대포를 피해서 서 있는 철거대책위원장 김중식(형부)에게 최은모(처제)가 "왜 이런 일을 하세요?" 라고 질문할 때였다. 그 물음에 김중식은 씁쓸한, 말하자면 생애전환기의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 이처럼 무서운 대사가 어디 있는가? 멋져 보여서 시작할 때 그는 선배 부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갚을 게 많아서 그 일을 계속할 때 그는 아내가 죽는 걸 지켜봐야만 했고,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길 때는 처제에게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구의 종말까지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종말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선의로 시작되든, 악의로 시작되든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인간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이 지경에 이르면 거기에는 선의도 악의도 없는 것이다. 마흔이 가까워지니까 나 역시 선의도 악의도 없어지더라. 네 진심을 알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받는 상처가 너무 크다. 그래서 "걍, 넌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하면, 그게 바로 한 인간의 종말이다.

/ 268, 269p, 인간의 종말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 김연수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김연수 군과 나는 세계 유명작가의 소설을 어디쯤 배치할 것인지 정리했다. 무서우면서도 수다스러운 스티븐 킹, 무덤덤하게 수다스러운 폴 오스터, 쿨하게 밝고 수다스러운 무라카미 하루키, 묵직하고 조용하고 무거운 코맥 매카시 등 수많은 작가가 우리에 의해 분류됐다. 그런 수다를 떨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명작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죠가 한 말이 들리는 듯하다.

"애들처럼 낄낄거리고 농담만 할 거야? 학교 운동장의 계집애들처럼 말이야. 농담 하나 해줄까? 다섯놈이 감방에 앉아서 분석을 하고 있었어. 왜 실패했을까, 하고 말이야. 뭘 실수한 거지? 네 탓이다, 아니 네 탓이다. 개수작들을 하고 있었지. 마침내 한 놈이 말했어. 이봐, 잠깐, 우리는 작전을 짜야 할 시간에 농담을 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계속 그렇게 살아온 기분이다. 작전 짜야 할 시간에 애들처럼 낄낄거리며 농담만 해왔다. 저 말은 타란티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타란티노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애들처럼 낄낄거리고 농담만 한다. 학교 운동장의 계집애들처럼 말이다. 말이 참 많다.

/ 275p, 작전 짜야 할 시간에 애들처럼 낄낄 거리며 농담만 해왔다 - 김중혁

 

피가 넘쳐났지만 피로 보이지 않았고, '피'라고 생각되는 붉은색의 '어떤 것'으로 보였다. 비린내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 고통에 적응하고 나면 감각의 문은 닫힌다. 인간은 잊기 위해 스스로 감각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감각한 몸이 편안하긴 하겠지만 때로는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 때로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고통도 있는 법이니까. 라이조가 '첫 실습' 희생자의 시계를 들고 다니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고통과 피비린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 299p, 군대 의무병 시절 '첫 실습'의 기억 - 김중혁

 

흩어지라고 있는 게 마음이고, 마음이란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게 각오이므로 3월이 되고 4월이 되고 5월이 되어 문득 1월의 마음을 잃어버린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개그콘서트>의 허경환 버전으로) 아~~~, 이래서 12월이 지나면 13월 대신 다시 1월이 오는구나, 생각하며 쓰다 만 다이어리 찾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귀를 후비는 이 고요한 1월, 다짐과 계획과 각오의 순간은 결국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모른다.

올해에는 파란색 다이어리를 하나 샀다. 결국 3월을 넘기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한다 하더라도, 쓴 곳보다 빈 곳이 더 많더라도, 뭐 어떤가, 인생이 다 그렇지, 흩어지라고 있는 게 마음이고, 비워두라고 있는 게 노트고, 무너지라고 있는 게 다짐이고, 쓰라고 있는 게 돈이고(이건 아니고), 자랑하려고 사는 게 아이폰이고 (이 건 연수 군이고), 어긋나라고 있는 게 계획이 아니겠는가.

/ 321p, 쓰다 만 지난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행복한 순간 -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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