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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타자

다섯 시간쯤 전에 페북에 올린 글이다. 내용은 약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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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당권파를 옹호하는 듯한 글은 매우 부적절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국민'의 '여론' 및 보수 언론에 기댄 '매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그로부터 초래되는 비민주성이 문제이지만, 그것은 통합진보당이 선거과정 중에 다른 소규모 진보정당에 대해 보여준 패권과 본질적으로 성격상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당권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적 윤리적 과제이다. 어떻게 차이를 갖는 다양한 운동들을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결집시킬 것인가. 어떻게 집단의 논리 보다 개체의 논리를 우선하면서 더욱 큰 통합의 효과를 낼 것인가. 당원이 아닌 이상, 남의 일에 뭐 나와라 하긴 뭐하지만... 겉으로 볼 때 이번 통합진보당 내부의 선거 문제에 대해 통합진보당 내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서로 애정을 가지고 당 내부에서 토론과 논쟁을 가졌는지는 의심스럽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면서 넓은 의미에서 좌파는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지만, 일단 유시민 등의 자유주의 세력과 심상정, 노회찬 같은 명망가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 같다. 후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당 내부의 모순을 약간은 의도적으로 외부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인데, 어찌보면 그들은 사실상 외부에 끈을 대고 있는 '스파이' 같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이건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리될 때 진보신당의 일부가 써먹었던 '종북주의' 카드와도 비슷하다. 그들은 '국민'의 뜻이니 '여론'이니 하는 권위를 가지고 당 내부의 일정 세력을 압박하는데, 내가 보기엔 같은 당 내부에서 운동을 함에 있어서 매우 악질적인 방법인 것 같다.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를 돌파하는 방법이 이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을 돌파하지 못한 원인은 오히려 좌익 운동 내부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번 사태 속에서 비당권파는 당 내부에서 문제를 정면돌파했어야 했는데, 능력의 부재 때문인지 아니면 의도적이었는지 사실상 당 내부에서 충분한 시도를 하지 않고, 상황은 외부의 여론에 기대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를 낳게될까? 궁극적으로 전유되어야하지만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하는 민족해방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함께 전유할 대상으로서 NL은 사실상 무대에서 퇴장당하고, 이른바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자유주의' 세력들과 진보주의 명망가들이 그 공간을 대체하게 될까? 이건 좌익 운동이 혁신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일수도 있다. 마지막 기회는 아닐 수 있지만, 그 대중적 공간은 그만큼 축소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논의함에 있어 그 타자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우 이상주의적인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NL의 가치는 유지하되, 그 절대적 심급을 내려 놓고, 그 가치가 아래로부터의 여러 운동의 매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의 '재역사화'가 필요하고, 아마도 어쩌면  과거 사회구성체논쟁에 대한 발본적 성찰로부터 그 역사적 힘을 재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듭 강조할 것은 '민족'적 사유의 혁신 없이 '민중'적 운동으로만은 우리 사회의 내부로부터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변혁적 운동을 구성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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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理群《我的回顧與反思-在北大的最後一門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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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출판된 전리군(錢理群) 선생의  <내 정신의 자서전>(글항아리)은 중국 대륙판 《我的精神自傳》(나의 정신 자서전)의 절반 가량을 번역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나중에 대만에서 《我的回顧與反思-在北大的最後一門課》(나의 회고와 반성-북경대학 마지막 강의)로 출판된 바도 있다. 2002년 3월~6월까지 진행된 저자의 북경대학 마지막 강의기록이다.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구어체를 그대로 살려 출판했고, 북경대학에서 1999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수 10명 가운데 1위로 뽑혔던 그 강연의 생생한 목소리를 지면을 들어볼 수 있다. 대만판 책 표지는 그의 강의에 몰렸던 1천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그의 역동적인 삶의 궤적 속에서 그 인생과 학문의 길을 진솔하게 회고하는 부분을 통해 문혁과 6.4천안문 및 그 이후의 우여곡절을 엿볼 수 있고, 또 그가 인생과 학문을 통해서 고민해온 주요 주제들, 특히 지식과 지식인 및 교육의 문제에 대한 성찰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메모를 해두는 이유는 이 책의 번역필요성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 

 

목차

 

들어가며: "주제와 무관함을 종지(宗旨)로 삼아"

1강 내 인생의 길과 치학(治學)의 길 (상)

2강 내 인생의 길과 치학(治學)의 길 (중)

3강 내 인생의 길과 치학(治學)의 길 (하)

4강 지식인의 독립성과 주체성의 문제

5강 지식인과 민중의 관계 문제

6강 계몽주의에 대한 반성

7강 이상주의에 대한 반성

8강 사상과 행동의 관계 문제

9강 자연인성론과 개인주의 문제

10강 마지막 이야기: 대학 교육과 북경대학 전통에 관하여

 

引言:“以不切題為宗旨”
第一講 我的人生之路與治學之路(上)
第二講 我的人生之路與治學之路(中)
第三講 我的人生之路與治學之路(下)
第四講 知識分子的獨立性與主體性問題
第五講 知識分子和民眾的關係問題
第六講 對啟蒙主義的反思
第七講 對理想主義的反思
第八講 思想與行動的關係問題
第九講 自然人性論與個人主義問題
第十講 最後的話題:關於大學教育和北大傳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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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되는 꿈...

국회의원이 되는 꿈을 꿨다. 시국이 그래서 그런가.ㅋㅋ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비례대표로 당선이 되어서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어떤 정치가적 욕망이 있었나보다. 암튼 어젯밤 이런 꿈을 꾸고 얼마 안 지나 손호철 선생님과 임영일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되었고, 간단히 논평을 페북에 올려보았다.

 

먼저 꿈꾸기 전에는 이런 논평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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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파에 대한 도덕적 비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보수 언론이나 정당의 비판과도 다를 것이 없다. 궁극적으로 당권파는 남한 좌익 운동의 한 운동 문화를 보여준 것일텐데, 아마도 집단성을 개체성 보다 우위에 두는 논리가 핵심인 것 같다. '위기'는 적당한 변명 거리를 제공했다. 아래로부터의 주체화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와 해방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운동의 이념과 문화의 혁신이 전제되지 않는 한, '위기'적 상황에서 이러한 패권주의는 계속 반복되게 되어있다.

그런데 사실상 통합진보당 자체가 진보진영 안에서 MB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모종의 거짓 '위기'를 핑계 삼아 다양한 진보의 목소리 위에 군림하고 통합을 강요한 것 자체가 패권 아니었던가? 그것 자체가 집단성, 즉 '통합'과 '단결'을 아래로부터의 주체형성 위에 두었던 '집단 논리' 아니었던가?

진보좌익운동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대안적 세력이 부재한 것이 현재 목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방 주체화와 사회 변혁을 정세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민족문제와 민중운동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민족' 없는 민중운동은 변혁적 전망을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구성체논쟁이 다시 진지하게 재검토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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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507084833&section=01&t1=n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손호철 교수의 칼럼은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당권파 이정희 대표와 자유주의 세력 유시민의 밀월관계와 그 파탄이 갖는 의미에 대한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러한 분석에 '민주주의'의 문제를 한반도와 남한의 좌익 전통으로부터 분리하여 외부화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나는 NL당권파의 패권주의가 잘못된 관행이든 무엇이든, 사실상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당권파를 중심으로 한... NL이 갖는 물질적 힘, 나아가 그 역사적 힘 때문이었다고 본다. 더 긴 안목에서 보면 이 힘은 민족적 역사가 부여한 힘이었고, 정세적 변화 속에서 긍정적으로 전유되어야 할 힘이었다. 이른바 PD는 이러한 힘의 타락에 대해 비판할 수 있었지만, 이를 새로운 힘으로 긍정적으로 전환시키지도 못했고, 대체할 수 도 없었다(어쩌면 이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결국 이러한 전환의 지체는 손호철 교수의 칼럼이 주목한 것처럼 유시민과 같은 외부세력에 의해 '극복'될수도 있는 상황까지 왔다. 이는 유시민의 좌익에 대한 기여인가? 아니면 좌익의 자유주의로의 포섭인가? 답은 결국 민주주의의 타자에 대한 사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손 교수는 이 지체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거나, 그저 당권파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좌익 이론의 한계를 직시할 때가 왔다고 본다. 계급적이고 민중적인 보편적 분석으로는 우리 사회를 역사적으로 조건짓는 개별적 구조들에 맹목적일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이론은 저항을 추수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어찌보면 그것은 실천적 이론이 아니다. 본래 이론은 보편적 명제를 특수한 사례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특수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통해서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만 비로소 대중의 정치적 저항의 힘이 구성적인 변혁의 힘으로 조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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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index.php/archive/2348

임영일 선생의 '하방'은 궁극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의 논리에서 나온 판단이지만, 그 의미는 이중적으로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것 같다.

... 본래 당 운동이나 민족운동(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은 노동운동 등의 민중운동의 결과적 총합일 수 밖에 없는데, 기층이 무너지는 과정을 극적으로 드러낸 노동운동으로부터 그 과정의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판단한 것이다. 나는 어쩌면 당 운동은 곧 민족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변혁운동이다. 그런데 변혁운동은 민중 주체의 해방운동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대중과 유리된 엘리트주의적 정당 내지는 대중을 기만하는 포퓰리즘적 정당 이상의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그러한 당은 그와 결합된 해방적 주체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무화시키고 변혁의 전망을 지속적으로 연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영일 선생의 '하방'은 이미 노동을 넘어 민중운동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다른 차원도 있는 것 같다. 이론적 측면에서의 '하방'은 무엇인가? 나는 이론적 측면에서는 기어코 재조직될 민중의 해방적 운동을 기다리면서, 한편으로 변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 기층의 해방적 민중운동이 당 운동 또는 민족운동과 같은 변혁의 역량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진정한 무기를 벼리는 이론적 '하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론에 있어서의 이 '하방'은 여러 운동이 하나의 사회 속에서 유기적 역량으로 아래로부터 조직되어 수렴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개별특수적 '민족'적 심급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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