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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사회변혁의 기초를 준비하고 확장하는 고민 없는 집권 플랜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사회체제를 재생산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권을 꾀하는 그들이 위선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기존의 체제를 변혁한다고 거짓말하는 위선자라기 보다는 정권 교체가 체제의 재생산인줄 모르는, 즉 그것이 진보가 아님을 모르는 무지자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위선은 그들의 무지를 화려한 수사로 애써 감추려는 어떤 고집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고집의 카르텔은 올바른 인식이 모습을 드러낼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진보를 향한 인식은 바로 이러한 위선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지식인은 올바른 인식에 근거하여 대중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를 사상적 실천으로 실행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그러한 올바른 인식을 온전히 갖지 못함은 사상적 실천의 제약이 된다. 무기 없이 비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기는 현실의 구체적 모순으로부터 얻어진다. 식민, 분단, 내전, 냉전으로 이어지는 지역적/역사적 구조에 대한 재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당대의 모순을 정박점으로 삼으며, 그 위에 인간의 권리를 다시 명명하고 실현하는 구조변혁의 운동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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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손가孫歌 선생의 "아시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 읽었다. 역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일본적인 일본 민족주의"라 할 수도 있고, 크리스테바의 "민족주의 없는 민족"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아시아 자체를 존재하는 실체로 보는 방향(후꾸자와 유끼찌의 탈아론과 오까꾸라 텐신의 흥아론)과 존재하지 않는 기호 또는 이념으로 보는 방향(와쯔지 테쯔로오)으로 나뉘는 일본 내부의 사상적 분기는 전후 일본의 패권주의의 재등장의 정세 속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와 우메사오의 대화로 전환되었다. 아시아를 '방법'이자 '기호'로 간주했던 사상사 연구자로서의 다케우치에게 문명사적 역사관에서 아시아를 바라본 우메사오는 다케우치가 포착한 서구에 대응해 출현한 아시아주의라는 연대의 감성을 구체적이고 복잡성을 갖는 아시아와 연결짓는 계기를 제공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다케우치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민족주의'의 역량을 서구적 좌익 보편주의 입장에서 무시하는 일본 좌익의 무책임과 위험을 경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역사적으로 다시 복원하여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를 다시 쓰고자 했던 것 같다. 특히, 대국과 소국이라는 설정은 전통적 문명과 현대적 국가라는 중국와 일본가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지역구도를 그리는데 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도는 흥미롭게도 남북한의 분단에 오버랩되면서 북한을 중국 문명 쪽에 위치시키고, 남한을 일본의 현대화 노선에 위치시키게 된다. 이러한 구도는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물론 이러한 구도 자체는 '민족' 및 '민족'간의 관계의 조건을 보여주지만, 당대의 문제설정, 즉 정치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논의되지 않으면 아주 쉽게 국가주의적 서사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우치가 손가 선생을 통해서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번역된 다케우치 선집도 '방법'과 '이념'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구체적 역사 조건을 재인식하는 맥락에서 조명 받았으면 한다.

 

한편 나는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 내에서 한자가 갖는 초국적성이 현대화와 국민국가화의 과정에서 탈각되어온 역사적 과정의 상호 참조의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마침 베트남 학생이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탈한자화가 거의 완료된 것 같다. 남한은 탈한자화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어와 중국어의 번역에 일정하게 그런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은 탈한자화가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인데, 좀 알아봐야할 것 같다. 베트남의 경우 탈한자화가 어떻게 가능했는데, 탈한자화는 탈역사화와 관련되지 않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점은 없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탈한자화를 베트남 공산당이 프랑스 식민으로부터 이어 받았다는 점인데, 이는 공산주의와 현대화가 공모했던 지점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 진광흥 선생은 수업 중에 손가 선생을 소개하면서, 하조전賀照田, 왕중침王中沈 등과 같이 중국 동북 지역 출신의 연구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동북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 짓는 듯 했다. 길림성 출신인 손가 선생이 중국에서 '주변적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이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 흥미롭게도 영문판의 제목은 "How does Asia mean?"으로 번역되었다. What으로 번역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오해의 소지 때문이란다. What do you mean?과 같은 문장이 갖는 어감을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한 것 같다.

 

- 한편, 이 글과 함께 Tejaswini의 "Alternative frames?"도 읽었는데, 수업 전 토론에서 프랑스 학생 줄리엔은 손가의 글과 비교하면서 이를 "a piece of cake"이라고 했다. 내가 읽기에도 비슷했는데, 흥미롭게도 영어 어휘는 더 어렵게 느껴졌지만, 내용이 진광흥 선생의 탈식민주의에서 읽었던 것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별 고민할 것 없이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손가 선생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던 다케우치와 마루야마가 자주 비교되는데, 마루야마가 유럽을 참조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상적으로 교토 학파와 같은 계보에 둘 수 있고, 다케우치는 아시아와 중국(특히 노신)을 참조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이어간 것이 미조구치 유조이다.

 

- 주말엔 연구소에서 열리는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미래" 행사로 인해 신죽에 내려갈 것 같고, 그 전에 이번 회의에 참석하러 상해에서 온 小茗 선생에게 내일 점심을 대접해서 지난 해 상해에서 진 빚을 좀 갚으려 한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명단을 보니 유선영, 백원담, 김소영, 김성경, 임우경 선생 등 한국 손님들의 이름이 보인다. 흥미롭게다 모두다 여성이다. 한예종의 김소영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공회대에 계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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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重慶) 모델 실험

박희래(薄熙來, 보시라이)의 해임과 그에 이은 왕립군(王立軍, 왕리쥔) 부시장의 해임으로 일단락된 중경 모델 실험에 대한 정치공학적 분석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거기에 내가 낄만한 능력은 안 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지점은 명확히 해야할 것 같다.

 

중경 모델은 기본적으로 모택동주의적 상층 관료 및 엘리트 중심의 경제개혁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일정하게 개혁개방 이후 초래된 계급간 지역간 격차 확대라는 사회 모순의 심화를 위로부터 해결하고자 한 전형적인 시도였다. 그 내부적 구체적 진행상황은 잘 알지 못하지만, 경제정책의 측면에서는 계획경제 시기의 평등주의가 부활하는 경향을 가졌던 것 같고, 정치적으로는 온가보 총리가 경계했듯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정적/우파 제거라는 제도와 구조의 모순을 인적 청산으로 일부 환원하는 경향도 존재한 듯 하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평등주의와 정치적 측면에서의 전제적 억압의 결합이 얼마만큼 "문혁"과 같이 대중독재로 나아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국 사회에 문혁의 공포는 늘 잠재되어 있지만, 정말 문혁과 같은 대중의 자발성이 결합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나는 오히려 중국의 권력 중심이 "문혁"을 핑계로 경제적 "개방"이 후퇴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막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이를 정치개혁의 신호탄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적 측면에서 전제주의적 당국가 체제를 인민에게 양보할 마음은 이번에 면직된 박희래 등의 신좌파 또는 모택동파나 그의 대척점에 있는 개혁개방 지향적 당국가 관료들 모두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중경모델 실험은 구체적 모순과 저항을 계기로 아래로부터의 주체화가 동반된 사회운동 없이 위로부터 기존의 모택동주의에 다시 호소하는 방식은 그 개혁 내용의 일정한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중국에 있는 친구는 오늘 페이스 북에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글을 올려줬다.

 

"우리 중경이 다시 개방을 하기 시작했어요"

 

방금 호텔 섹스서비스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가 전화에서 말하길, "서비스가 막 정상화된 지 2주가 되었어요. 2~3명의 어린 아가씨가 있고, 짧은 만남 300위안이예요." 왕 부시장이 너희들 잡아가는 거 무섭지 않냐고 하자, 그녀는 "그 사람 수업은 끝났잖아요"라고 말한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말투였다. 공안이 와서 조사하면 어쩔거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문제 없어요. 우리 중경이 다시 개방을 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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